아바칸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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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칸 프로젝트의 많은 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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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K-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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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승자'''였던''' AN-94. 그러나 현실은...
1981년 소련 정부는 "현용 AK-74의 150%에서 200%의 성능을 갖춘 제식 소총"을 목표로 아바칸(Abakan)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보다 진보된 돌격소총 개발이라는 목표로 볼때 미국의 ACR 프로젝트와 경쟁관계였다고 볼 수 있다.
2차대전 이후 각국이 더 근거리에서 총알을 뿌려대는 것이 먼거리의 정확도보다 낫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1960년경 미국을 시작으로 뒤늦게 소구경 고속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더 작은 총알을 사용하게 되었고, 5.56×45mm NATO를 사용하는 M16 소총이 결국 기존의 7.62×51mm NATO를 쓰는 M14 소총을 밀어내고, NATO에서도 1980년 5.56mm를 표준 탄으로 지정했다. 한편, 소련에서도 1974년경, AK-47을 소구경인 5.45×39mm를 쓰는 AK-74로 교체하였지만, AK 고유의 단점인 낮은 명중률을 고칠 수 없었다.
그래서 현대 전장에서 짧은 점사로 앉아쏴, 서서쏴 등 모든 자세에서의 정확도를 보장할 수 있는 소총을 공모하기 시작하며 전투 효율성이 AK-74보다 1.5~2배급으로 판정되는 총을 채택한다고 했다. 다양한 현대 무기 디자인과 제작방식이 제시되었으며, 수많은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졌다. 계획 시작 3년 후, TsKIB SOO (KBP 무기 디자인부), Kovrovskogo와 이즈마쉬(현재는 칼라시니코프)가 제작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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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8월경, 8개의 프로토타입이 완성됐다. 첫 기술 실험은 1984년 8~9월 사이에 진행됐다.
각 회사별 만든 프로토타입을 나열하면(괄호안은 제작자),
이 경합에서 국방부와 GRAU에선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성능을 검토했고, 이 테스트에서 2개의 도안이 탈락했다. 하나는 신뢰성이 너무 떨어지는 APT였고, 다른 하나는 요구조건에서 제일 성능이 떨어지는 TKB-0111이였다. 이후 18개월이 주어져서, 상세적인 생산계획과 정확도 개량이 이루어졌다.
1986년 5월에서 6월까지, 18개월 동안 AL-9는 AKB-1로 대체되었고, 새로운 프로토타입인 S.G. Simonov와 P.A. Tkachev에 의해 디자인된 AO-63 소총이 추가되었다. 이번 테스트에선 극한 환경에서의 작동 여부가 실험되었다. 그러나 어떤 프로토타입도 모든 요구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고, 그중에서도 특히 명중률 부분에서는 오직 AS와 AO-63만 통과했다.
이후 3개월이 더 주어져서 그 사이 개량이 이루어지고, 실험은 다시 1986년 10월에 이루어졌다. 2개의 디자인은 새로 교체되어, 니코노브가 만든 ASM과 칼라시니코프의 AKB-1 디자인이였다. 다시 테스트를 진행하던 중 결국 TKB-0111과 AEK-971과 AKB는 완전히 탈락했다.
AS/ASM 소총과 TKB-0146이 굉장한 명중률을 보였다. 모든 테스트자가 이 총의 발사가 매우 안정되게 된다고 했으며, 반동도 굳이 견착이 필요없을 정도로 적다고 했다. 둘다 2점사를 매우 빠른 속도로 할 수 있는 모델이었다. 그리고 AS/ASM 모델이 AN-94(Assault rifle Nikonov 1994)로 명명되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 프로젝트가 종료된 1994년은 소련이 멸망하고 러시아가 들어선 후의 극심한 혼란기었고, 당연히 '''군용 소총따위를 새로 사용할리가 없었다'''. 결국 최종 승리자인 AN-94도 스페츠나츠에게 소수 지급되면서 피로스의 승리로 끝나버렸다...
게다가 2차 심사에서 탈락했던 AEK-971은 탈락 이후에도 특수부대 등지에서 소량 사용되었고, 그 개량형인 A-545/A-762가 2018년에 AK-12와 함께 러시아군 제식 소총에 선정되면서 AEK-971이 사실상 최종 승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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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칸 프로젝트의 많은 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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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K-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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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승자'''였던''' AN-94. 그러나 현실은...
1. 개요
1981년 소련 정부는 "현용 AK-74의 150%에서 200%의 성능을 갖춘 제식 소총"을 목표로 아바칸(Abakan)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보다 진보된 돌격소총 개발이라는 목표로 볼때 미국의 ACR 프로젝트와 경쟁관계였다고 볼 수 있다.
2차대전 이후 각국이 더 근거리에서 총알을 뿌려대는 것이 먼거리의 정확도보다 낫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1960년경 미국을 시작으로 뒤늦게 소구경 고속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더 작은 총알을 사용하게 되었고, 5.56×45mm NATO를 사용하는 M16 소총이 결국 기존의 7.62×51mm NATO를 쓰는 M14 소총을 밀어내고, NATO에서도 1980년 5.56mm를 표준 탄으로 지정했다. 한편, 소련에서도 1974년경, AK-47을 소구경인 5.45×39mm를 쓰는 AK-74로 교체하였지만, AK 고유의 단점인 낮은 명중률을 고칠 수 없었다.
그래서 현대 전장에서 짧은 점사로 앉아쏴, 서서쏴 등 모든 자세에서의 정확도를 보장할 수 있는 소총을 공모하기 시작하며 전투 효율성이 AK-74보다 1.5~2배급으로 판정되는 총을 채택한다고 했다. 다양한 현대 무기 디자인과 제작방식이 제시되었으며, 수많은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졌다. 계획 시작 3년 후, TsKIB SOO (KBP 무기 디자인부), Kovrovskogo와 이즈마쉬(현재는 칼라시니코프)가 제작에 참여했다.
2. 프로젝트의 진행
2.1. 1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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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8월경, 8개의 프로토타입이 완성됐다. 첫 기술 실험은 1984년 8~9월 사이에 진행됐다.
각 회사별 만든 프로토타입을 나열하면(괄호안은 제작자),
이 경합에서 국방부와 GRAU에선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성능을 검토했고, 이 테스트에서 2개의 도안이 탈락했다. 하나는 신뢰성이 너무 떨어지는 APT였고, 다른 하나는 요구조건에서 제일 성능이 떨어지는 TKB-0111이였다. 이후 18개월이 주어져서, 상세적인 생산계획과 정확도 개량이 이루어졌다.
2.2. 2차
1986년 5월에서 6월까지, 18개월 동안 AL-9는 AKB-1로 대체되었고, 새로운 프로토타입인 S.G. Simonov와 P.A. Tkachev에 의해 디자인된 AO-63 소총이 추가되었다. 이번 테스트에선 극한 환경에서의 작동 여부가 실험되었다. 그러나 어떤 프로토타입도 모든 요구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고, 그중에서도 특히 명중률 부분에서는 오직 AS와 AO-63만 통과했다.
이후 3개월이 더 주어져서 그 사이 개량이 이루어지고, 실험은 다시 1986년 10월에 이루어졌다. 2개의 디자인은 새로 교체되어, 니코노브가 만든 ASM과 칼라시니코프의 AKB-1 디자인이였다. 다시 테스트를 진행하던 중 결국 TKB-0111과 AEK-971과 AKB는 완전히 탈락했다.
3. 결과
AS/ASM 소총과 TKB-0146이 굉장한 명중률을 보였다. 모든 테스트자가 이 총의 발사가 매우 안정되게 된다고 했으며, 반동도 굳이 견착이 필요없을 정도로 적다고 했다. 둘다 2점사를 매우 빠른 속도로 할 수 있는 모델이었다. 그리고 AS/ASM 모델이 AN-94(Assault rifle Nikonov 1994)로 명명되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 프로젝트가 종료된 1994년은 소련이 멸망하고 러시아가 들어선 후의 극심한 혼란기었고, 당연히 '''군용 소총따위를 새로 사용할리가 없었다'''. 결국 최종 승리자인 AN-94도 스페츠나츠에게 소수 지급되면서 피로스의 승리로 끝나버렸다...
게다가 2차 심사에서 탈락했던 AEK-971은 탈락 이후에도 특수부대 등지에서 소량 사용되었고, 그 개량형인 A-545/A-762가 2018년에 AK-12와 함께 러시아군 제식 소총에 선정되면서 AEK-971이 사실상 최종 승자가 되었다.
[1] 그 유명한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의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