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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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어: أبومصعب الزرقاوي (Abu Musab al-Zarqawi, 1966년 10월 30일 ~ 2006년 6월 7일)
1. 소개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는 요르단 태생의 아랍인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이자 대량살인범이다.
'''ISIL의 대부격 인물이자 만악의 근원으로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의 스승이다'''. 알 카에다의 세포조직이었던 테러단체인 유일신과 성전의 리더였으며, 유엔 관련인사들, 이라크의 시아파에 대한 수없이 많은 잔혹행위와 테러, 시아파 모스크 파괴, 시아파 성직자에 대한 살해 및 종교분쟁을 주도했다. 또 한국인 김선일과 미국인 닉 버그, 일본인 코다 쇼세이의 납치, 살해를 주도한 범죄자이다.
2. 초기 삶
본명은 아흐마드 파딜 안나잘 알할라일라(أحمد فضيل النزال الخلايله, ’Aḥmad Faḍīl an-Nazāl al-Ḫalāyla)이다.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라는 이름은 가명.[1] 요르단 암만에서 20여km 떨어진 자르카에서 출생하였다. 테러리스트가 되기 전인 청소년기에부터 싹수가 노란 인물이었는데, 10대 때부터 양아치의 삶을 살았다고 알려져 있다. 전과 기록으로 집계된 흉악범죄만 '''37건'''에 달했다고 한다. 1984년엔 학교도 자퇴했다고. 거기다 훗날 근본주의 테러리스트로서의 악명이 무색하게 무슬림이면서도 술을 많이 마셔대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류인생을 살다가 어느날 살라피즘의 이념을 접하게 되자, 범죄자로서의 인생을 청산하고 수니파 이슬람의 광신도로 탈바꿈하게 된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일어나자 아프가니스탄으로 갔지만 전쟁이 끝나서 몇년간 기자 생활을 했다고 한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아프가니스탄 내전에도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고국 요르단으로 돌아가 하심 가문을 실각시키기를 도모하고, 이슬람 신정국가 수립을 주장하며 반정부 테러 모의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7년간 감옥살이를 한다.
3. 악행의 시작
3.1. 테러단체 조직 및 활동
1999년에 석방된 알자르카위는 아프가니스탄으로 다시 건너가 빈라덴을 만난다. 빈라덴으로부터 돈을 빌린 그는 '유일신과 성전'이라는 테러 단체를 조직한다.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요르단에서 테러 활동을 했으며,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가하여 싸우기도 했다.
사실 초창기에는 자르카위 쪽에서 빈 라덴에 대한 충성맹세를 거부하고, 빈 라덴도 자르카위가 양아치 출신이자 지나치게 폭력적, 극단적인 사상을 지녔다는 이유로 서로 껄끄러워 했지만, 측근의 설득으로 그를 계속 데리고 있다가 9.11테러 이후에 사이가 괜찮아졌다고 한다. 이후 전우이자 동지로 의형제까지 맺었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가까웠다. 사이가 안 좋았던 초기에 빈 라덴은 자르카위를 제거하고 싶어했지만, 자르카위의 과격한 선전방식이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어 신병을 모집하기 쉬웠기 때문에 그냥 놔두고 이용해 먹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자 본거지를 이라크로 옮겨 세력을 확장했으며, 이후 이라크에서 반군 세력의 사실상 수장 역할을 했다. 그 이전 이라크의 저항세력들은 대체로 바트당 계열 내지는 아랍 민족주의적 저항세력으로서, 미군과 이라크인 동조자들만을 상대로 테러를 벌이면서 최소한의 명분을 확보한 반면, 알 자르카위는 악질 범죄자 출신답게 굉장히 잔인한 성격으로 자기에게 반대하는 사람은 외국인이건 아랍인이건 상관없이 서슴없이 테러로 희생시켜 알 카에다의 다른 세포조직들조차 그를 미워할 정도였다. 때문에 미국에선 그를 빈 라덴보다 더 위험한 인물로 지목, 빈 라덴과 같은 '''25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었다.'''
3.2. 2003, UN 이라크 지부 폭탄 테러
2003년 8월에는 UN 이라크 지부에 폭탄테러를 가해 '세르지오 비에이라 데 멜로' 당시 유엔특사를 비롯한 22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 자르카위가 테러를 행했던 이유가 참으로 어이없는데, '''"UN은 미국과 유대인의 이미지를 미화하는 단체"'''라서 테러를 했다고 한다.
같은 달에는 이라크의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의 이맘 알리 모스크를 공격해서 95명의 사망자를 냈고, 이라크 시아파의 원로 성직자인 '모함마드 바키르 알 하킴'을 죽였다.
3.3. 2004, 이라크 시아파 성지 테러
2004년 3월에는 이라크 카르발라와 바그다드의 시아파 성지를 공격해서 180명을 죽였다. 2004년 12월에는 또다시 카르발라에 차량 폭탄테러를 일으켜 60명을 죽였다. 이라크 내전 항목에도 서술되어 있는, 이라크 수니-시아 간 폭력갈등을 대규모로 촉발시켰던 시아파의 알 아스카리 모스크에 대한 테러공격도 자르카위가 주도했다는 유력한 혐의가 있다. 또한 한국인 김선일을 납치하여 살해하기도 했다. 미국 집계로는 그의 주도로 2003년에서 2006년까지 '''700명'''의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게다가 미군을 상대로 용감하게 싸웠느냐면 그것도 아니어서 정작 근거지인 팔루자에 미군이 쳐들어왔을 때는 추종자들과 함께 도망치고, 정작 미군과 싸우다 죽어난 것은 그저 자기 가족들을 지키려고 총을 들었고 민간인에게 위해를 가한 적도 별로 없는 현지의 일반 저항세력들이었다.
물론 미국인 4명을 기습해 살해하고 시신까지 불태운 것을 위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블랙워터의 무장 요원들로 군사작전에 참가하고 있었으므로 '''민간인이라고 볼 여지가 전혀 없다'''. 제네바 협약 등 전장에서 전투원의 지위에 대한 국제적 규약을 보면, 민간 군사기업의 무장요원은 교전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지가 불분명하기에 오히려 정규군보다 보호를 못 받는다. 당장 미국 자신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불법전투인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상대를 주권 세력으로 상정하여 전투행위를 하지만 군인이 아니므로 제네바 협약은 지킬 필요 없다'''는 입장을 취했는데, 이 논리는 민간군사기업의 무장요원을 상대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규군에 배속된 무장요원들은 군인으로 대우하는 대신 형사법 적용도 시키자는 주장이 미국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후 이라크 수니파들도 외부 조직이 자신들과 이해 관계가 다르며, 결코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점차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10월경에는 알카에다의 빈라덴에게 공식적으로 충성을 맹세하며, 그의 테러단체 역시 '메소포타미아의 성전사단'으로 이름을 바꾼다.
4. 추적과 죽음, 2006
미군 '기동부대 145'에서 계속 추적하고 있었고 시아파와 수니파도 자르카위라면 치를 떨어서 죽이려고 계속 쫓아다녔지만 간발의 차로 놓치고 있었다. 하지만 매튜 알렉산더(Matthew Alexsander)[2] 와 다른 심문관들이 자르카위의 측근 중 한 명을 포섭하여 정보를 확보했다. 그후 6주간 은신처로 추정되는 위치를 계속 감시한 끝에 자르카위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두 대의 F-16 전투기가 출격해 레이저 유도 폭탄을 2개 투하해 수행원들과 함께 죽었다. [3]
다만 이 때 알 자르카위와 함께 식사를 하던 이라크인 일가족도 같이 피살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100% 좋은 평가만을 받지는 못했다. 자르카위 본인과 그 추종자들이야 죽어 마땅하지만 단순 동조자이거나 자르카위인 줄 몰랐을 수도 있는 이라크인들에게는 죄가 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반면교사가 되어서인지 이후 오사마 빈 라덴 제거작전(2011)에서는 B-2(...)로 갈아버리자는 의견 대신 DEVGRU를 헬리콥터로 보내서 사살했고 민간인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다만 빈 라덴을 미국이 특수부대를 통해 사살한 이유는 사살 후 빈 라덴의 신원 확인을 위한 것도 있다. 폭격으로 갈아버리면 진짜 빈 라덴이 죽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다르지만, 스리랑카 내전을 일으킨 타밀인 반란 세력 지도자 프라다카란도 2009년에 스리랑카군이 죽일때, 최대한 시체를 알아보게끔 공습을 가해 머리가 반터지는 끔살을 당했어도 시체는 온전하게 남아 공개된 것도 같다. 지도자 말고 부하 간부들은 공습으로 그야말로 온 식구랑 같이 시체 형체조차 못 알아볼 수즌으로 끔살시킨 거랑 대조적이듯이.
자르카위 사망 직후,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에서는 그를 지하드의 위대한 순교자로 칭송하는 광역 어그로를 끌기도 했다. 시리아와 이라크, 요르단의 종파주의에 찌든 수많은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사이에서는 그가 영웅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이 지지자들 상당수는 추후에 그의 조직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의 동조자가 된다.
그가 죽으면서 수장을 잃은 테러 활동은 잠시 주춤해졌지만, 이라크 시아파 정부가 사담 후세인을 처형하고 수니파를 노골적으로 탄압하고 각종 실정을 저지르는 등 연이어 사고를 저지르는 바람에 수니파와 시아파의 내전은 IS가 괴멸되어 이라크 내전이 종식되던 2017년까지 계속되었다. 게다가 7년 뒤에는 그보다 더한 인간 쓰레기가 등장했다.
5. 기타
'''ISIL의 수장인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가 그의 제자이다.''' [4] 그의 죽음 이후 위기에 빠졌던 유일신과 성전을 이라크 이슬람국가(ISI)로, 최종적으로는 전 세계에 피를 뿌리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로 만든 장본인이 바그다디이니 그야말로 악의 씨앗이 따로 없다.
[1] 유명한 이슬람 테러리스트, 지하디스트들은 대부분 이렇게 가명을 쓰는데, 주로 이슬람 근본주의에서 존경하는 이름 + 출생지를 붙여 쓴다. '아부 칼레드 알 수리(시리아에서 온 아부 칼레드)',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바그다드에서 온 아부 바크르)' 같은 식으로.[2] 필명이다. 18년 넘게 미 공군과 예비군에서 복무한 심문관. 자르카위의 측근을 설득하여 정보를 얻어낸 경험을 집필한 저서 '어떻게 테러리스트를 꺾을 수 있는가 (How to Break a Terrorist)'를 내기도 했다. 고문의 사용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사람 중 한 명.[3] 빈 라덴의 지시를 받은 알 카에다의 제보라는 설도 있다. 자르카위가 죽기 하루 전에 어떤 전략 분석 사이트에 자르카위가 알 카에다의 신임을 잃었다는 분석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4]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형님, 동생 정도 차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