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트당

 

حزب البعث العربي الاشتراكي
Hizb Al-Ba'ath Al-'Arabi Al-Ishtiraki‎
[image]
당기(黨旗). 팔레스타인의 국기와 비슷하다.[1]
1. 소개
2. 바트당(시리아 분파)
2.1. 역대 선거 결과 (대통령 선거)
2.1.1. 일당제 시기
2.1.2. 다당제 시기
3. 바트당(이라크 분파)
3.1. 몰락 이후
3.2. 역대 선거 결과 (대통령 선거)


바트당 찬가[2]

1. 소개


'바트'(بعث, Ba'ath, 바아쓰)는 아랍어로 부흥이라는 뜻이다. 정식 명칭은 아랍 사회주의 부흥당. 아랍 민족주의사회주의, 세속주의적 경향을 지니며, 서구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아랍 세계의 통일을 추구한다. 슬로건은 "통일, 자유, 사회주의"(아랍어 وحدة(wahda), حرية(hurriya), اشتراكية(ishtirakiya))

한때는 서방의 식민지배를 당했던 아랍 지역에서 당시 제국주의 피해국가들은 대부분 그랬듯이 사회주의[3]와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아 아랍민족주의라는 사상을 주창하여 이집트의 나세르주의와 더불어 크게 주목을 받으며 잘 나갔으나 현재는 모순점들이 폭발하여 전쟁, 테러, 독재에 이용당하기만 하는 수준으로 몰락해버린 비운의 정당... 자세한 내용은 의도는 좋았다/현실예시의 바트당 항목을 참조하자.
사실 나세르주의는 안와르 사다트가 나세르가 사망한 이후 집권당인 아랍사회주의연합에서 사회주의를 싹 빼버리고 중도친미 정당으로 변신시키며 순식간에 잊혀져갔고, 바트주의 쪽이 그나마 더 오래 살아남았으나 이는 스탈린주의의 영향을 짙게 받아 파시즘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바트주의가 국민 탄압과 전체주의 국가 건설에 더 앞장섰기 때문이다. 현대 나세르주의에서는 나세르의 일인 일당 독재를 레닌과 같이 '혁명 시대의 비상권력'으로 설명하며 민주주의를 지지하곤 한다. 바트주의는 시리아를 보면 알 수 있다(...).
1947년 시리아의 지식인 미첼 아플라크(기독교도)와 살라 알딘 알비타르(무슬림)에 의해 창당되었다. 1963년부터 지금까지 시리아의 유일 집권당이다. 이라크에서는 1963년과 1968~2003년 사이의 집권당이었다. 시리아와 이라크가 같은 당이 집권한 나라가 되었으니 혈맹+형제국으로 끈끈하게 지냈을 것 같지만, 문제는 시리아이라크에서 집권한 바트당끼리 1966년에 분열해버린 것. 시리아에서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아플라크를 이라크에서 보호하는 등 두 지부는 대립 관계를 이어갔다. 심지어 바트당(이라크)은 시리아 내전 초기에는 앙숙을 몰아내려는지 무슬림 형제단 편을 들었다.
편의상 시리아 바트당, 이라크 바트당이라고 해놨지만, 범아랍주의를 표방하는 특성상 '''바트당 중앙당은 범아랍 세계 전체를 관할하고, 아랍 국가들마다 지역당이 있는''' 구조다.[4] 그런데 바트당이 분열하면서 바트당(시리아)도 다른 아랍 나라들 지부 외에 이라크 지부를 두고, 바트당(이라크)도 다른 아랍 나라들 지부 외에 시리아 지부를 두게 된 것... 조악하게 비유하자면 기독교로마를 따르는 파와 콘스탄티노플을 따르는 파로 분열되고, 로마측과 콘스탄티노플측 모두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예루살렘 총대주교,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를 임명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차피 바트당(이라크)은 이젠 거의 망하다시피 했지만.

2. 바트당(시리아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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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حزب البعث العربي الاشتراكي'''
'''한글명칭'''
바트당 (시리아 분파)
'''영문명칭'''
Arab Socialist Ba'ath Party (Syrian-dominated faction)
'''설립일'''
1947년 4월 7일
1966년 2월 25일(이라크 바트당과 분리)
'''소재지'''
시리아 다마스쿠스
'''중앙당 서기장'''
압둘라 알 아마르 (2000~, 사실상)
'''시리아 지부 서기'''
바샤르 알 아사드 (2000~)
'''이념'''
아랍주의, 아랍사회주의, 세속주의
'''의석 수(시리아 국회)'''
172석 / 250석
시리아 지역당의 정식 명칭은 아랍 사회주의 부흥당 시리아 지부(Arab Socialist Ba'ath Party – Syria Region)이다. 1963년 3월 8일의 군사쿠데타 이후 시리아의 집권당이다. 1970년 이후 하페즈 알 아사드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후, 죽을 때 까지 중앙당 서기장을 역임하였고 사망한 지금도 정식 서기장이다(...) 하지만 실질적 서기장은 압둘라 알 아마르가 하고 있다.
바트당(시리아)의 여러 지부 중 하나인 바트당 시리아 지부의 현 서기는 하페즈 알 아사드의 아들인 바샤르 알 아사드이다. 2003년 기준으로 당원은 180만 명으로 시리아 인구의 18%를 차지하였다.
시리아 구헌법에는 바트당이 '사회와 국가에서의 지도적 정당'이라고 하였고 실제로 바트당과 구색정당들(사회주의자 연합, 아랍 사회주의운동, 시리아 공산당 등)만 허용되었으나, 시리아 내전에 따른 유화책으로 2012년 2월 26일 실시된 신헌법 국민투표가 통과되면서 해당 부분이 삭제되었다. 기관지로는 1948년 창간한 알-바스, 1963년 창간한 알-타우라(혁명)가 있다.
레바논예멘 국회에도 의석을 가지고는 있으나 군소정당에 불과하고 (레바논은 2018년 총선에서 1석. 예멘은 2003년(...) 총선에서 2석)특히 예멘 지부는 본가인 시리아+분가인 예멘이 상태가 모두 막장이 된 이후에는 잉여상태(...)

2.1. 역대 선거 결과 (대통령 선거)



2.1.1. 일당제 시기


1971년 대통령 선거 하페즈 알 아사드 99.2% 당선[5]
1978년 대통령 선거 하페즈 알 아사드 99.9% 당선
1985년 대통령 선거 하페즈 알 아사드 100% 당선[6]
1991년 대통령 선거 하페즈 알 아사드 99.9% 당선
1999년 대통령 선거 하페즈 알 아사드 100% 당선[7]
2000년 대통령 선거 바샤르 알 아사드 99.7% 당선
2007년 대통령 선거 바샤르 알 아사드 99.82% 당선

2.1.2. 다당제 시기


2014년 대통령 선거 바샤르 알 아사드 88.70% '''당선''' [8]

3. 바트당(이라크 분파)


중앙당 총서기는 1968년의 분열 이후 바트당의 창설자인 미첼 아플라크가 사망할 때(1989년)까지 했으니 이쪽이 정통이라고 볼 수 있으려나...? 아플라크 사후 중앙당 총서기직은 한동안 공석이었다가 이라크 지부 서기였던 사담 후세인이 1992년부터 겸직했고, 후세인이 죽고 난 2007년 이후부터 현재는 이자트 이브라힘 알 두리가 역시 이라크 지역당 서기직을 겸하고 있다.
이라크 지역당의 정식 명칭은 아랍 사회주의 부흥당 이라크 지부(Arab Socialist Ba'ath Party – Iraq Region)로 1968년부터 2003년까지 이라크의 집권당이었다.
1970년대 부통령이던 사담 후세인의 권력이 점차 강화되어가자, 이에 위기를 느낀 아흐마드 하산 알바크르 대통령이 사담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같은 바트당이 집권하던 시리아와 국가통합 논의를 한 적이 있었다. 바크르는 대통령이라는 대표성으로 이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차후 통일국가에서 사담 후세인을 제3인자로 끌어내리되, 하페즈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제1인자로 삼으려는 방향으로 논의하였다. 그런데 알 아사드와 후세인 모두 실질적으로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아사드 대통령은 이라크가 강대한 국력과 인구 수로 시리아를 집어삼킬 것이라 생각했으며, 사담은 바크르와 하페즈가 전면에 나선다면, 자신은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버릴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이에 개입하여 결국 통일 논의는 결렬되었다.

3.1. 몰락 이후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이라크에서는 불법 정당으로 전락한 상태. 하지만 미국은 무조건 묻지마 바트당 축출을 한 탓에 이라크 전쟁 이후 이라크를 개판으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바트당이라고 무조건 친후세인 파가 아니라 일단 먹고 살고자 들어간 이들도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 중에는 이라크 치안과 지리에 대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이라크군이 무기를 어디에 숨겨두었는지 같은 중요한 정보들까지 아는 군 간부나 경찰 간부들도 많았다. 당연히 쫓겨난 이들은 미국에 대하여 이를 갈고 IED를 만들어 미군을 괴롭히는 주축이 되었다.
더 문제는 바트당 인사에 무력 말고도 정계 및 문화적으로도 인재들이 많았던 사실. 이라크 내 동물 관리에서 문화재 관리 및 기술직까지도 미국은 그저 바트당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축출하고 그 자리에 듣보잡을 앉혔다가 반대로 돈만 펑펑 나가고 이들은 무능 그 자체라서 욕만 실컷 먹었다. 한국에서도 나온 <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라는 책에도 동물원 관리에서부터 이라크 동식물에 대한 지식을 가진 이들을 바트당이라는 이유만으로 내쫓아버려 그야말로 백지상태에서 일해야 했던 미국 동물보호단체들의 미군정에 대한 앙금이 돋보이는 비난이 실려있다.
2014년 이라크 내전이 발발하자 수니파 계열의 종교적 극단주의를 표방하는 이슬람 국가와 손을 잡고 말리키 정부를 적대하며 숙련된 병력들을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와 시리아를 전부 혹은 일부라도 떼어 국가를 만들겠다는 이슬람 국가와 이라크 정권을 다시 가지려는 바트당의 견해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아 갈등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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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인즉 아랍민족주의의 한 갈래인 바트주의는 세속주의를 기반으로 한 이데올로기로, 수니파사담 후세인알라위파하페즈 알 아사드 (현재 시리아 대통령의 아버지) 모두 바트주의 기반으로 정권을 잡았을 정도로 종교와는 무관하다. 애초에 아랍민족주의 자체가 아랍 언어를 쓰는 아랍 민족이라는 개념에 기반한 이념이지, 여기에 '종교'는 전혀 중요한 요소로 고려가 되지 않는다[9]. 바트당은 후세인 시절 이라크 주류였던 시아파를 탄압하였는데, 그 이유는 시아파가 이웃 국가 이란을 모델로 한 신정국가체제를 수립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후세인 정부가 붕괴된 후 시아파가 정권을 잡자 ISIL과 바트당은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명분으로 손을 잡았으나, 자국 극단주의를 때려잡으려고 반대 종파와 손을 잡은 것에 불과할 뿐 그 속 알맹이는 사회주의자, 세속주의자이기 때문에 종교 원리주의자들과는 근본적으로 이해가 일치할 수 없는 세력이었다..[10] 결국 2016년 이후로 갈라졌고 결국 바트당과 갈라선 IS는 이라크군의 토벌로 몰락했다.[11]
본국인 이라크에서는 멸망했지만 요르단 국회에 1석을 가지고 있다.
2020년 IS가 몰락한 현재 일부 이라크 바트당의 잔당들과 지지층 세력들이 시리아, 요르단 국경 사막지대에서 게릴라 반군 투쟁을 벌이며 이라크 정부에게 맞서고 있지만 숫적으로도 이라크 정부군보다 딸리는지라 현 이라크 정권을 전복시키고 정국 주도권을 재장악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3.2. 역대 선거 결과 (대통령 선거)


1995년 대통령 선거 사담 후세인 99.9% 당선[12]
2002년 대통령 선거 사담 후세인 100% 당선[13]

[1] 차이점이라면 국기의 규격이 서로 다르고 팔레스타인은 국기의 초록색 부분이 더 밝다.[2] 이 동영상은 그 중 시리아 분파 찬가 유튜브 영상이다.[3] 이런 이유로 바트당이 집권한 국가들은 반미, 친소, 친공산국가 성향이 짙었고 소련의 지원도 많이 받았다.[4] 바트당 이념상 시리아 지부, 이라크 지부, 이집트 지부... 는 한국으로 치면 도당(道黨)급이다. 다만 아랍지역의 범 국가적 정당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코민테른과 비교하는 것이 더 적절할수도 있겠다.[5] 2012년 이전의 구헌법에 따르면, 시리아 바트당은 국가와 사회를 지도하는 정당으로 시리아 대통령은 바트당 당원이어야 했다. 바트당과 구색정당들의 연합인 국가진보전선이 인민대회에서 후보자를 지명하며, 그 후보자는 국회의원의 2/3 이상의 지지를 얻은 뒤, 국민투표에서 51%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당선된다고 했다. 하페즈 알 아사드도 사망할 때까지 계속 단일 후보로 출마했다.[6] 찬성 6,200,428표, 반대 376표, 무효 1,456표[7] 찬성 8,960,011표, 반대 219표, 무효 917표[8] 2012년 개헌되면서 다당제 직선이 허용되었고 대통령 임기도 7년 무제한에서 7년 중임으로 제한되었다. 국회의원의 지지 요건도 최소 35명으로 완화되었다.[9] 다만 <아랍 민족> 의 정체성과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무관하다고 독해버리면 오해의 여지가 크니 주의가 필요하다. 애초에 아랍어의 보급과 이를 통한 아랍인이라는 정체성의 형성 자체가 상당부분 이슬람의 종교적 정체성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즉, <아랍인> 이라는 개념의 형성 과정은 이슬람의 종교적 정체성과 분리할 수 없지만 근대 민족주의에 기반한 <아랍 민족주의>는 이 '이미 형성된 아랍인' 을 종교로부터 독립시키려는 지향을 보이는 이념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10] 비슷한 사례로 이란 혁명 초기에도 무신론을 주장하는 공산주의자들과 민주주의에 입각한 공화제 수립을 주장하던 공화주의자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손을 잡았으나, 호메이니와 하메네이, 라프산자니 등을 위시한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들이 정권을 잡자 숙청이 벌어져 공산주의자와 공화주의자들 대부분이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해 대부분 처형되거나 정부 구성에서 배제되었는데 이라크도 별 다를게 없기 때문이다.[11] 물론 IS의 몰락은 점령한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영내에서 잔혹한 이슬람 극단주의식 통치에 반감을 키운 점령지 주민들의 민심이 떨어져나간 점도 주효한다.[12] 사담 후세인 집권 이후 첫 국민 직선제 선거다. 찬성 8,348,700표, 반대 984표, 무효 7,876표[13] 반대 0표. 그러나 그 다음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