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튜더
잉글랜드의 왕족. 헨리 7세와 요크의 엘리자베스의 장남이다.
헨리 튜더가 튜더 왕조를 세워서 랭커스터 왕조와 요크 왕조 사이의 길고 긴 장미 전쟁이 끝나고 1486년에 양쪽의 혈통을 둘 다 이어받은 첫 아이가 태어나자, 아서 왕 전설의 유명한 왕 아서 펜드래곤의 이름을 따서 아서라고 지었다. 장남인 아서는 당연히 프린스 오브 웨일스에 책봉됐다.
1498년, 12세의 나이에 이사벨라 1세와 페르난도 2세의 막내딸인 아라곤의 캐서린과 약혼했지만, 잉글랜드 측에서 엄청난 지참금을 요구하면서 여러 번 약혼이 파토날 위기에 처해졌었다.[1] 우여곡절 끝에, 1501년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결혼식을 올리지만, 바로 다음 해인 1502년 4월에 감기에 걸려서 1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서와 결혼하자마자, 과부가 된 캐서린은 아서의 동생인 그 유명한 헨리 8세에게 청혼을 받고 재혼한다.
이후 아서와 캐서린의 동침 여부는 튜더 왕조 역사에서 최대의 전환점 중 하나가 된다.[2] 헨리 8세가 아들을 낳지 못하는 캐서린과의 결혼을 무효화시키기 위해, 교황에게 자신은 형의 아내와 결혼했고 그 때문에 벌을 받았으니 이혼을 허가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교황은 이를 기각했고 결국 종교 개혁이 일어난다.
헨리 튜더가 튜더 왕조를 세워서 랭커스터 왕조와 요크 왕조 사이의 길고 긴 장미 전쟁이 끝나고 1486년에 양쪽의 혈통을 둘 다 이어받은 첫 아이가 태어나자, 아서 왕 전설의 유명한 왕 아서 펜드래곤의 이름을 따서 아서라고 지었다. 장남인 아서는 당연히 프린스 오브 웨일스에 책봉됐다.
1498년, 12세의 나이에 이사벨라 1세와 페르난도 2세의 막내딸인 아라곤의 캐서린과 약혼했지만, 잉글랜드 측에서 엄청난 지참금을 요구하면서 여러 번 약혼이 파토날 위기에 처해졌었다.[1] 우여곡절 끝에, 1501년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결혼식을 올리지만, 바로 다음 해인 1502년 4월에 감기에 걸려서 1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서와 결혼하자마자, 과부가 된 캐서린은 아서의 동생인 그 유명한 헨리 8세에게 청혼을 받고 재혼한다.
이후 아서와 캐서린의 동침 여부는 튜더 왕조 역사에서 최대의 전환점 중 하나가 된다.[2] 헨리 8세가 아들을 낳지 못하는 캐서린과의 결혼을 무효화시키기 위해, 교황에게 자신은 형의 아내와 결혼했고 그 때문에 벌을 받았으니 이혼을 허가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교황은 이를 기각했고 결국 종교 개혁이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