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크 왕조

 



'''House of York'''
[image]
'''국가'''
잉글랜드
'''본가'''
플랜태저넷 왕조
'''존속'''
'''창건'''
1395년 (랭글리의 에드먼드)
'''최후'''
1485년 (리처드 3세)
'''종교'''
가톨릭
'''성립 이전'''
랭커스터 왕조
'''멸망 이후'''
튜더 왕조
1. 개요
2. 역사
2.1. 초창기
2.2.1. 전쟁의 원인
2.2.2. 여러 내분
3. 가문원
3.1. 요크 공작
3.2. 왕권 성립 이후
3.2.1. 역대 국왕
3.2.2. 역대 왕비
3.2.3. 그 외
3.3. 계보
4. 보유 작위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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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역대 왕조 중 하나이자 플랜태저넷 왕조의 방계 가문.
에드워드 3세의 아들이자 초대 요크 공작인 랭글리의 에드먼드에서부터 시작됐다. 총 3명의 영국 국왕을 배출.

2. 역사



2.1. 초창기


랭글리의 에드먼드에게는 에드워드 공작과 리처드 백작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에드워드는 1402년에 공작 위를 계승했지만, 후계자 없이 1415년에 전사했다. 리처드는 1415년에 반역죄로 헨리 5세에게 처형됐다. 리처드 백작에게는 제3대 요크 공작이 되는 리처드라는 아들이 있었다.
제3대 요크 공작 리처드는 백부 에드워드 공작의 요크 공작령과 아버지 리처드 백작의 캠브리지 백작령을 상속받았다. 또한 리처드 2세의 상속인이었던 동생 에드먼드가 사망하면서 리처드 공작의 어머니인 앤 드 모티머의 백작령까지 상속받았다. 모티머의 앤의 아버지인 로저 모티머는 에드워드 3세의 3남 앤트워프의 라이오넬의 외손자로, 모계 계승을 인정한다면 랭커스터 가문에 비해서도 왕위 계승권이 앞선다고 해석할 수도 있어 리처드는 랭커스터 왕가의 경계 대상이었다.

2.2. 장미 전쟁



2.2.1. 전쟁의 원인


병약한 헨리 6세를 마음대로 다루던 프랑스 출신 왕비 앙쥬의 마가렛은 영지, 작위, 왕위계승권까지 가진 리처드 공작를 경계했고 제2대 서머셋 공작 에드먼드 보퍼트와 함께 리처드 공작를 견제했다. 결국 요크 가문과 보퍼트 가문의 사이는 험악해졌다. 헨리 6세가 병에 걸리자 리처드 공작은 호국경(Lord Protector)의 자리에 올랐지만 헨리 6세가 회복하자마자 보퍼트 가문에 의해 정권에서 밀려난다.
1460년에 리처드 공작은 왕위 계승권을 주장했고 자신의 두 아들을 후계자로 삼았다. 10월에 요크 가문은 랭커스터와의 전투에서 승리해 헨리 6세를 생포했다. 하지만 12월에는 오히려 리처드 공작과 차남 에드먼드가 전투에서 패하고 처형당했다.

2.2.2. 여러 내분


리처드 공작의 장남 에드워드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고 워릭 백작 '킹메이커' 리처드 네빌의 지원을 받아 랭커스터를 몰아붙혔다. 그리고 헨리 6세와 앙쥬의 마가렛이 북부에 있는 사이에 타우톤 전투에서 랭커스터의 세력을 괴멸시키고 에드워드 4세로 즉위했다. '''그런데...'''
에드워드 4세가 프랑스 왕가와의 정략결혼을 거절, 대신 부유한 미망인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결혼하고[1] 네빌 대신 우드빌 가문 사람들을 중용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한 번 왕권에 혼란이 왔다. 결국 워릭 백작 리처드는 에드워드 4세를 배신하고 앙쥬의 마가렛과 손을 잡아 1470년헨리 6세를 복위시킨다. 하지만 에드워드 4세는 누이의 남편인 부르고뉴 공작 용담공 샤를에게 의탁하여 권토중래를 노리고, 결국 샤를에게 지원군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 1471년 다시 잉글랜드에 상륙한 에드워드 4세는 지지자들을 규합하여 런던에 무혈입성하고 바넷 전투에서 워릭 백작을 전사시키며 승리, 뒤이은 튜크스버리 전투에서도 랭커스터 왕조의 마지막 왕자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까지 전사시키며 승리한다. 이후 헨리 6세 또한 런던 탑에서 사망하는데, 랭커스터 가문의 후계자가 사망하면서 거리낄 것이 없어진 에드워드 4세가 죽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에드워드 4세가 사망할 때까지의 12년 동안 요크 왕조의 잉글랜드 지배는 흔들리지 않았다.
1483년에 에드워드 4세가 사망하고 왕위는 에드워드 4세의 어린 아들 에드워드 5세가 이어받았다. 하지만 에드워드 4세의 동생이자 에드워드 5세의 섭정이였던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는 형이 원래의 약혼자와 결혼하지 않았기에 두 아들은 사생아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탑에 가두고 스스로 리처드 3세로 즉위했다.[2]

2.3. 튜더 왕조


한편, 랭커스터 지지파들은 리치몬드 백작 헨리를 중심으로 새로운 세력의 뼈대를 구축했다. 1483년의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1485년리처드 3세는 리치몬드 백작에게 패해 전사했다. 리치몬드 백작은 요크와 랭커스터의 화합의 상징으로 에드워드 4세의 장녀 엘리자베스를 왕비로 삼고 '''헨리 7세로 즉위해 튜더 왕조를 창건한다'''.

3. 가문원



3.1. 요크 공작


  • 랭글리의 에드먼드 (1385 ~1402)
  • 노르윅의 에드워드 (1402 ~ 1415)

3.2. 왕권 성립 이후



3.2.1. 역대 국왕



3.2.2. 역대 왕비



3.2.3. 그 외


  • 에드워드 4세 & 엘리자베스 우드빌 소생
    • 요크의 엘리자베스 - 헨리 7세의 왕비이자 헨리 8세의 어머니가 된다.
    • 요크의 메리
    • 요크의 세실리 - 웰스 자작부인.
    • 요크의 마가렛
    • 슈루즈베리의 리처드 - 요크 공작.
    • 요크의 앤 - 토머스 하워드의 부인.[3]
    • 요크의 조지 - 제1대 베드퍼드 공작.
    • 요크의 캐서린 - 데본 백작부인.
    • 요크의 브리짓

3.3. 계보


에드먼드
코니스버그의 리처드
요크의 리처드
에드워드 4세
요크의 엘리자베스(튜더 왕조[4])
리처드 3세

4. 보유 작위


  • 잉글랜드 국왕
  • 프랑스 국왕자칭
  • 프린스 오브 웨일스
  • 아일랜드의 군주
  • 요크 공작
  • 클라렌스 공작(Duke of Clarence): 에드워드 4세의 동생 조지의 작위
  • 글로스터 공작(Duke of Gloucester): 에드워드 4세의 동생 리처드(훗날 리처드 3세)의 작위
  • 캠브리지 백작(Earl of Cambridge)
  • 마치 백작(Earl of March)
  • 러틀랜드 백작(Earl of Rutland)
  • 얼스터 백작(Earl of Ulster)

5. 여담



[1] 리처드 네빌이 추진한 정략결혼이었으나 에드워드 4세는 자신이 이미 우드빌과 결혼했다며 이를 거절했다. 자신에게 알리지도 않고 결혼한 상태였다는 것에 네빌은 모욕을 느꼈다.[2] 이후 탑에 갇힌 두 왕자들은 실종됐다. 정황상 암살이 유력하다.[3] 남편이 앤 사후에 작위를 받게 됨으로 서레이 백작부인과 노퍽 공작부인 작위를 받지 못했다.[4] 헨리 7세와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