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간지 켄뇨
本願寺顕如
(1543년 2월 20일 ~ 1592년 12월 27일)
전국시대의 승려. 일본 전국시대 일향종의 승려로 혼간지(본원사) 11대 법주. 쇼뇨의 아들이다. 롯가쿠 사다요리의 양녀이자 구게 산죠 긴요리의 딸인 뇨슌니와 결혼하였다. 이 노슌니는 다케다 신겐의 정실 산죠부인의 동생이다. 잇코잇키의 지도자이기도 하다.
오다 노부나가와 적대했던 사람들 중 '''가장 끈질기게 노부나가를 괴롭혔던 남자'''. 노부나가와 10여 년간 긴 전쟁을 벌였던 인물인데, 이 행적으로 인해 '''노부나가의 천하평정을 10년 늦춘 사내'''라는 평가도 받는다.[1]
이시야마 혼간지를 중심으로 기나이 일대에 세력을 확장하였다. 때문에 오다 노부나가와 충돌하게 되었고 1568년 노부나가가 상경하면서 대립은 더욱 심해졌다. 마침내 1570년 켄뇨는 노부나가를 불적(佛敵)으로 규정하고 이때부터 약 10여 년간 이시야마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중심으로 미요시 3인중, 마츠나가 히사히데, 아자이 나가마사, 아사쿠라 요시카게, 다케다 신겐의 노부나가 포위망이 결성되자 포위망의 한 축을 담당했다. 켄뇨는 기이의 호족인 스즈키 사다유, 스즈키 시게히데 부자와 함께 각지에서 잇코잇키를 일으켜 노부나가를 괴롭혔다. 그러나 장기간의 전쟁으로 영지가 피폐해졌으며, 아자이 가와 아사쿠라 가가 멸망한데다가, 신겐이 상경 도중 급사하면서 혼간지의 세력도 위태로워지기 시작한다. 이후에는 모리 데루모토를 비롯한 오다의 적들이나 다른 승단과 손잡으면서 저항했다.
켄뇨는 엔랴쿠지 승단이 백성들에게 온갖 착취를 일삼았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인심을 잃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 당시 승려들은 신도들로부터 시주를 받아서 그 돈으로 고리대금업을 했으니 민심을 잃을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엔랴쿠지 승단이 오다 가에 의해서 싸그리 학살당할 때 백성들이 통쾌해했으니, 켄뇨는 이것을 반면교사로 삼는다. 혼간지에서는 흉년이 들면 백성들에게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나눠주었고, 병자들를 무상으로 돌보면서 민심을 휘어잡는다. 덕분에 다른 승단과는 달리 민심을 기반으로 한 혼간지 세력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오다 가도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혼간지와 적대하는 승단을 지원하고, 혼간지 소속의 승병이 벌인 범죄를 백성들에게 크게 알리고, 혼간지 세력의 돈줄을 끊고 등등, 각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결국 9년을 버티던 혼간지는 막심한 피해를 입었으며, 모리 가의 무라카미 수군이 오다 가의 구키 수군에게 패하면서 해상을 통한 지원도 끊겨버린다.
아들 코뇨는 끝까지 저항할 것은 주장했으나, 켄뇨는 혼간지를 엔랴쿠지처럼 불바다로 만들 수는 없다면서 저항을 포기했다. 1580년 천황에게 중개를 맡겨 화친을 청했고, 소유하던 땅의 많은 부분을 천황[2] 와 오다에게 바쳐 화친을 맺었다. 이후 켄뇨는 측근 간부진을 데리고 사기노모리 별원으로 이동했으며, 이때 불상을 비롯한 각종 재물, 그리고 상당수의 신도들이 함께했다.
오다 가는 혼간지라는 노른자위 땅을 얻었기 때문에 켄뇨를 끝까지 추적하지는 않았다. 오다 가도 피해를 제법 받았지만 화친을 했고 다른 적들도 남겨둔 상황이었으니 힘을 아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켄뇨가 떠난 다음에 혼간지에 불이 나서 수많은 집과 땅이 잿더미가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노부나가는 켄뇨가 약속을 저버리고 고의적으로 불을 질렀다고 분노했는데, 켄뇨 쪽에서 급히 사신을 보내서 모든 것은 오해라고 설명했다. 혼간지에서 벌어진 화재와는 무관하며, 이제는 오다에 맞설 수준의 세력도 아니고 화친까지 맺었는데 왜 굳이 불을 지르면서 뒤끝을 부리겠느냐는 말이었다. 이에 노부나가는 화재 현장을 엄밀히 조사할 것을 명했는데, 1년 동안 대대적으로 조사한 끝에 정말 자연적으로 발생한 화재였다고 결론이 난다. 결과를 보고받은 노부나가는 착잡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잿더미가 된 도시를 다시 재건하고 그 동안 백성들을 돌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지출이 소모되는지는 구태여 말할 것도 없었다.
2년 뒤 혼노지의 변 이후 하시바 히데요시와 화친하여 덴만 혼간지를 건립하였으나 교토 주라쿠다이에 히데요시를 비웃는 낙서를 한 사건이 터진다. 낙서를 한 범인이 바로 덴만 혼간지 세력으로 달아났다는 정보와 같이 히데요시가 추방한 호소카와 아키모토를 덴만 혼간지에서 숨겨줬다는 의혹을 받자 히데요시는 병력을 보냈고 낙서를 한 범인을 숨겨준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었고 이에 대한 책임으로 켄뇨도 영주 권력을 잃고 만다. 그러나 1591년 히데요시로부터 교토에 사원 부지를 받아 혼간지를 건립하였고 1592년 49살로 사망한다.
이시야마 전쟁 때 노부나가에 대한 의견을 놓고 아들들인 쿄뇨와 쥰뇨가 서로 대립을 벌여왔는데 켄뇨의 사후 강경파였던 쿄뇨 대신 화평파인 쥰뇨가 12대 법주가 되었다. 때문에 쿄뇨는 이에 반발하여 히가시혼간지(동 본원사)를 새로 세웠고 이 때부터 혼간지는 쿄뇨의 히가시혼간지와 쥰뇨의 니시혼간지(서 본원사)로 분열되고 말았다. 이 때 쿄뇨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접근하였고, 도쿠가와는 혼간지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히가시혼간지의 건설을 지원해주었다.
노부나가와 기나긴 전쟁을 벌였던 행적 때문에 노부나가가 주인공인 창작물에서는 주요 적대 포지션으로 등장하는 인물. 전국시대 기반 창작물에서 종종 거물급 무장으로 등장하는 다케다 신겐이나 우에스기 겐신 같은 인물 이상의 은근한 흑막 포스를 보여주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승려 신분 때문인지 종교적 이미지가 가해져서 뭔가 요승 같은 이미지로 등장하기도 한다.
전국 바사라 2에서 NPC로 첫 등장. 전국 바사라 2 영웅외전에서부터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되었다. 성우는 츠지 신파치. 속성은 번개 → 빛. 일인칭은 셋소(拙僧).[3]
호칭은 신재성황(信財成皇). 후덕한 체구를 지닌 스님. 절 올라가는 길에 금이 깔려있으며 혼간사도 금으로 도배하고 요새 병기로 황금 인왕차(...)까지 구비하고 있는 굉장한 스님. 사루토비 사스케를 이 맵에 데려가면 천장 위, 마루 밑까지 금으로 깔려있다고 감동(?)한다.
말이나 행동거지를 보면 영낙없는 파계승으로 대사 중에도 염불조차도 모른다는 둥 스님 맞나 싶을 정도의 발언이 종종 튀어나온다. 이렇다보니 그 자비조차도 대놓고 땡중이라고 평하는 지경. 그래도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건 이상이 아니라 먹을 것이다'라는 등 꽤나 현실주의적인 일면도 갖고 있고 어린아이들에게는 관용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고유기인 필살 근육옥을 먹으면 몸에서 금빛 광채가나며 근육이 순간적으로 팽창한다. 바사라기도 금화 뿌리기이며, 적으로 만나 싸울 때는 체력이 어느 정도 떨어지면 돈을 뿌려서 아군 병사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여러 모로 땀나는 스님이다. 전국 바사라 배틀 히어로즈에 추가된 스토리 모드도 결국 근육 덕후 이야기이다.
도발은 땅을 파서 돌 또는 금화가 나오며, 금화가 나오면 실제 입수 금액에 +1.
적으로 나올 때 딱히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예외로 자비의 고유 아이템을 얻으려고 할 때는 매우 짜증나는 적으로 돌변한다. 자비의 전용 아이템을 얻기 위한 조건은 이 맵에서 혼간지 켄뇨 격파 전까지 5000냥 이상을 획득하는 것인데, 이게 말이 쉬워 보이지만 평범한 플레이로는 5000냥이 아닌 2500냥도 어렵다. 게다가 자비가 콤보를 올려서 돈을 벌기에 좋은 캐릭터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검은 돈의 지갑(획득하는 돈 5배)을 차고 하자니 기껏 모아둔 돈을 이 놈 때문에 다 털려버리기 일쑤이다. 자비의 아이템 획득을 위해 이 맵을 반복 플레이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미지가 비호감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인기는 별로 없는 캐릭터이다. 영웅외전 캐릭터 인기 투표에서는 당당하게 꼴찌를 차지하고 말았다. 게다가 유저들 뿐 아니라 제작진에게도 별로 관심을 못 받은 캐릭터인듯 하다. 한 번이라도 맵의 총대장으로 등장하는 대부분의 다른 캐릭터들은 2편에서 새로 작곡된 자신의 테마곡이 있거나 최소한 전작에 있었던 자신의 테마곡을 가져오지만[4] , 유일하게 이 혼간지 켄뇨는 혼간지 황금전설 맵의 총대장으로 나옴에도 불구하고 테마곡이 새로 작곡되지 않고 전작에서 누구의 테마곡도 아니었던 Get Mad라는 음악을 쓰고 있다. 그리고 영웅외전에서 테마곡이 새로 생기거나 바뀐 일부 캐릭터들과 달리 영웅외전에서도 새로 작곡된 테마는 없다.
전국 바사라 3에서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으나 사이카 마고이치의 언급을 보면 정황상 오다 노부나가 혹은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살해된 듯하다. 당연히 전국 바사라 3 연에서도 출연은 없다. 그렇지만 시리즈 전 캐릭터를 대상으로 한 인기 투표에서 사타케 요시시게에 1표 차이로 꼴찌에 벗어났다.
전국 바사라 4의 발매와 함께 DLC로 추가된 바사라 시리즈 명곡집에서 Get Mad가 1편의 명곡 10곡에 들어갔다는 것. 즉, 4편에서 유희서를 이용하면 BGM을 Get Mad로 변경한 상태로 플레이하는 것도 가능하다.
애니판에선 1화에서 아케치한테 사망하는 장면으로 지나간다(…). 물론 대사도 없다. 2기에서는 마에다 케이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과거 회상에서 혼간지의 승병들이 등장하여 잠깐 언급되기도 한다.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전통적으로 만능형 다이묘로 나온다.
초대작부터 패왕전 즈음까지는 실제 이름인 코우사(光佐)라 나온다. 그리고 당시 맵 구성의 한계상 이시야마 혼간지는 패왕전까지는 별도의 땅으로 취급되지 않고 미요시 땅으로 묘사된다. 비슷한 이유로 혼간지 영역인 이세 나가시마에 자리잡던 간죠지(願証寺)도 패왕전까진 별도의 땅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영토는 특이하게도. 오야마 쿠보(현 카나자와) 그리고. 이시야마 쿠보(현 오사카)로 나온다. 다케다 신겐과도 이벤트 쪽에 연관되어 있다.
가독상속 부터는 미요시와 대립을 이루는 각으로 잡히기 시작한다. 일향종이 있을경우. 충성도와 관계없이 배반하기도 한다. 당연하게도. 남만을 엄청 혐오한다.
노부나가 포위망 부터는 멸망 1순위로 굳혀졌기에.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데. 버텨봤자 한 두번이면 병사가 금방 고갈되므로 의미없다. 그리고 오야마 고보도. 겐신에게 넘어가 버린 상황이라. 더 암울하다.
천하창세에서는 기이의 호족인 스즈키를 종속한 상태로 시작한다. 때문에. 빠른 단야촌 생산이 가능하고. 초반에 미요시를 갈아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낭인인 상태로 혼간사 건물이 성에 들어서는 경우. 이벤트가 발생하는데. 혼간사 재흥 이벤트랍시고. 성을 비워줄 것을 요구하는데. 응락하면. 성에 있는 무장들이 본국으로 귀환하는 대신. 주인공과 험악인 다이묘 출신의 무장들을 모조리 영입해준다. 문제는. 합병확률이 0% 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 거부시에는 성에 있던 무장들이 모두 혼간사의 부하로 강제전향되며. 충성도가 낮은 상황에서 적대화 되어버린다는 단점이 생긴다. 혼간사 일족은 총 4명인데. 겐뇨의 경우 평균 8~90대를 누르는 전투력이 주력이다 보니. 놔두면 화근이 발생한다. 종속을 파기하는 경우. 전 무장의 충성도가 일제히 떨어지고. 포상 먹이느라 바쁜데. 플레이어가 미쳐 손 쓰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전쟁터지는 상황에서 뒤치기 당하면 답이 안 나온다.
혼간사 세력이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오사카성 개명 이벤트가 안 나타나니 참고 할 것.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는 이후부터는 오사카성으로 자동으로 개명된다.
이 설정은 창조 PK에 와서야 고쳐졌고. 오다는 나가시마성을 거치지 않으면. 이세로 진출이 불가능하다.
통솔 91 무력 65 지력 87 정치 94에 치료를 들고 있다. 여기에 족경 S에 철포 A라 전투에서 굴리기도 좋다. 치료 소유자들 중 유일하게 족경S를 들고 있어서 족경대의 최대의 존재의의인 고기방패 역할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게 해 주는 중요인물. 다른 사람들은 병과적성이 형편없거나 원거리 병과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정말 빛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사람의 족경대랑 조우한 상태에서 직접 컨트롤 안 해주고 다른 곳의 상황보면서 전법이나 눌러주고 있다가는 그야말로 좀비처럼 계속 부활해서 끈질기게 버텨버리는 혼간지군에 역관광당해있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하자.[5]
문제는 이시야마 쿠보 외의 지성 건설은 사실상 꿈도 못 꾼다. 노부나가가 창조 성향인데 비해. 겐뇨일족은 전부 극 보수 주의자라. 성향이 완전히 다르고. 상성도 완전반대. 그래서 부하로 부릴수도 없다.
보기
전국무쌍에서 고유 조형으로 나왔었는데 전국무쌍 2부터는 등장하지 않는다.
코에이 개발자 트윗에 따르면 혼간지 켄뇨 사후 두 아들에 의해 분열되어 지금까지 전래되어 오는 혼간지 파벌 문제와 2차 가공된 컨텐츠가 혹시라도 엮일까 봐 부담스러워 하는 이유도 있는 듯하다.
1편에 등장 했을 때의 행적은 사이카 마고이치 참조.
[image]
온라인 게임 천하제일상 거상에서 일본 장수인 세이쇼오의 2차전직 형태로 등장한다. 인형소환이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는데 소환된 인형은 꽤나 괜찮은 몸빵과 대미지 반사라는 이점 때문에 보스 사냥에서 많이 쓰인다.
여담으로 세이쇼오에 선조의 영혼을 빙의시켜 전직하는 형태인데, 혼간지 켄뇨와 세이쇼오는 거의 비슷한 대에 사람이다(!)
이케가미 료이치가 그린 이 만화에서는 나이가 꽤 든 얼굴이다. 실제로는 오다 노부나가보다 10살 어린 그가 여기선 20살은 더 들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아들 코뇨도 항복당시 10대 후반이었으나 여기선 훨씬 더 나이 들어보인다. 항복하고 물러날 때 가마를 타고 가다가 가마 창문을 열고 말타고 혼간지로 들어가려던 오다와 말없이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 간다. 헌데 아들 코뇨가 혼간지 본사 문을 닫고 고작 수백여 휘하 부하들과 죽고자 싸우려들자 어리석다고 욕하면서도 하나 뿐인 아들이 개죽음당하게 놔둘 수 없다고 충복을 보내 목숨바쳐 코뇨를 지키라고 한다. 오다는 켄뇨가 바본 아니니 코뇨 멋대로 저런것이라고 알아차리며 대대적 공격을 벌여 이들을 전멸시킨다. 하지만. 오다는 켄뇨가 그래도 하나 뿐인 아들을 죽게할리 없으니 죽은 코뇨는 대역일 것이라고 알아차렸다. 켄뇨가 보낸 충복이 스스로 대역으로 나가 죽었고 진짜 코뇨는 여자옷차림을 해서 무사하게 피했는데 켄뇨는 죽은 부하들을 극락에서 보자면서 명복을 빈다.
여기서도 노부나가의 야망처럼 만능형 A급 다이묘. 혼간지 땡중들의 능력치는 돋보이진 않아도 에이스급 장수들은 시나리오마다 꼭 있으며, 사이카슈의 장수들이 수하로 있기 때문에 꽤나 대접이 좋다.[6] 단점이라면 삼국지 시리즈의 황건적과 마찬가지로 영지가 하나로 이어져있지 않고 사이사이에 다른 다이묘가 끼어있다는 것.
머리에 문신하고 괴랄한 패션 센스, 여기에 방정맞은 성격에 오사카 사투리를 사용하는 등 파격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나름 이런 저런 모략을 꾸미며 노부나가를 괴롭힌다. 하지만 아사쿠라, 아자이, 다케다가 멸망하고 모리가의 지원도 끊기자 코노에 사키히사의 중재로 노부나가에게 이시야마 혼간지를 넘기고 항복한다. 아들인 쿄뇨가 항복에 반대하며 저항했으나 결국 4개월만에 쿄뇨마저 노부나가에 항복하고 이시야마 혼간지를 떠난다. 그리고 쿄뇨 일행이 떠날때 강풍이 일어 성안의 화톳불이 넘어져 이시야마 혼간지에 대화재가 일어나 모든 것이 잿더미가 돼버린다. 작중 병사들은 물론 일반 백성들을 상대로 격의 없이 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어린이들을 상당히 좋아해서 오사카를 떠날 때도 어린이들과 함께였다.
작중 얼굴은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를 모델로 묘사했다고 한다.
(1543년 2월 20일 ~ 1592년 12월 27일)
1. 개요
전국시대의 승려. 일본 전국시대 일향종의 승려로 혼간지(본원사) 11대 법주. 쇼뇨의 아들이다. 롯가쿠 사다요리의 양녀이자 구게 산죠 긴요리의 딸인 뇨슌니와 결혼하였다. 이 노슌니는 다케다 신겐의 정실 산죠부인의 동생이다. 잇코잇키의 지도자이기도 하다.
오다 노부나가와 적대했던 사람들 중 '''가장 끈질기게 노부나가를 괴롭혔던 남자'''. 노부나가와 10여 년간 긴 전쟁을 벌였던 인물인데, 이 행적으로 인해 '''노부나가의 천하평정을 10년 늦춘 사내'''라는 평가도 받는다.[1]
2. 생애
이시야마 혼간지를 중심으로 기나이 일대에 세력을 확장하였다. 때문에 오다 노부나가와 충돌하게 되었고 1568년 노부나가가 상경하면서 대립은 더욱 심해졌다. 마침내 1570년 켄뇨는 노부나가를 불적(佛敵)으로 규정하고 이때부터 약 10여 년간 이시야마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중심으로 미요시 3인중, 마츠나가 히사히데, 아자이 나가마사, 아사쿠라 요시카게, 다케다 신겐의 노부나가 포위망이 결성되자 포위망의 한 축을 담당했다. 켄뇨는 기이의 호족인 스즈키 사다유, 스즈키 시게히데 부자와 함께 각지에서 잇코잇키를 일으켜 노부나가를 괴롭혔다. 그러나 장기간의 전쟁으로 영지가 피폐해졌으며, 아자이 가와 아사쿠라 가가 멸망한데다가, 신겐이 상경 도중 급사하면서 혼간지의 세력도 위태로워지기 시작한다. 이후에는 모리 데루모토를 비롯한 오다의 적들이나 다른 승단과 손잡으면서 저항했다.
켄뇨는 엔랴쿠지 승단이 백성들에게 온갖 착취를 일삼았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인심을 잃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 당시 승려들은 신도들로부터 시주를 받아서 그 돈으로 고리대금업을 했으니 민심을 잃을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엔랴쿠지 승단이 오다 가에 의해서 싸그리 학살당할 때 백성들이 통쾌해했으니, 켄뇨는 이것을 반면교사로 삼는다. 혼간지에서는 흉년이 들면 백성들에게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나눠주었고, 병자들를 무상으로 돌보면서 민심을 휘어잡는다. 덕분에 다른 승단과는 달리 민심을 기반으로 한 혼간지 세력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오다 가도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혼간지와 적대하는 승단을 지원하고, 혼간지 소속의 승병이 벌인 범죄를 백성들에게 크게 알리고, 혼간지 세력의 돈줄을 끊고 등등, 각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결국 9년을 버티던 혼간지는 막심한 피해를 입었으며, 모리 가의 무라카미 수군이 오다 가의 구키 수군에게 패하면서 해상을 통한 지원도 끊겨버린다.
아들 코뇨는 끝까지 저항할 것은 주장했으나, 켄뇨는 혼간지를 엔랴쿠지처럼 불바다로 만들 수는 없다면서 저항을 포기했다. 1580년 천황에게 중개를 맡겨 화친을 청했고, 소유하던 땅의 많은 부분을 천황[2] 와 오다에게 바쳐 화친을 맺었다. 이후 켄뇨는 측근 간부진을 데리고 사기노모리 별원으로 이동했으며, 이때 불상을 비롯한 각종 재물, 그리고 상당수의 신도들이 함께했다.
오다 가는 혼간지라는 노른자위 땅을 얻었기 때문에 켄뇨를 끝까지 추적하지는 않았다. 오다 가도 피해를 제법 받았지만 화친을 했고 다른 적들도 남겨둔 상황이었으니 힘을 아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켄뇨가 떠난 다음에 혼간지에 불이 나서 수많은 집과 땅이 잿더미가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노부나가는 켄뇨가 약속을 저버리고 고의적으로 불을 질렀다고 분노했는데, 켄뇨 쪽에서 급히 사신을 보내서 모든 것은 오해라고 설명했다. 혼간지에서 벌어진 화재와는 무관하며, 이제는 오다에 맞설 수준의 세력도 아니고 화친까지 맺었는데 왜 굳이 불을 지르면서 뒤끝을 부리겠느냐는 말이었다. 이에 노부나가는 화재 현장을 엄밀히 조사할 것을 명했는데, 1년 동안 대대적으로 조사한 끝에 정말 자연적으로 발생한 화재였다고 결론이 난다. 결과를 보고받은 노부나가는 착잡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잿더미가 된 도시를 다시 재건하고 그 동안 백성들을 돌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지출이 소모되는지는 구태여 말할 것도 없었다.
2년 뒤 혼노지의 변 이후 하시바 히데요시와 화친하여 덴만 혼간지를 건립하였으나 교토 주라쿠다이에 히데요시를 비웃는 낙서를 한 사건이 터진다. 낙서를 한 범인이 바로 덴만 혼간지 세력으로 달아났다는 정보와 같이 히데요시가 추방한 호소카와 아키모토를 덴만 혼간지에서 숨겨줬다는 의혹을 받자 히데요시는 병력을 보냈고 낙서를 한 범인을 숨겨준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었고 이에 대한 책임으로 켄뇨도 영주 권력을 잃고 만다. 그러나 1591년 히데요시로부터 교토에 사원 부지를 받아 혼간지를 건립하였고 1592년 49살로 사망한다.
이시야마 전쟁 때 노부나가에 대한 의견을 놓고 아들들인 쿄뇨와 쥰뇨가 서로 대립을 벌여왔는데 켄뇨의 사후 강경파였던 쿄뇨 대신 화평파인 쥰뇨가 12대 법주가 되었다. 때문에 쿄뇨는 이에 반발하여 히가시혼간지(동 본원사)를 새로 세웠고 이 때부터 혼간지는 쿄뇨의 히가시혼간지와 쥰뇨의 니시혼간지(서 본원사)로 분열되고 말았다. 이 때 쿄뇨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접근하였고, 도쿠가와는 혼간지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히가시혼간지의 건설을 지원해주었다.
3. 대중매체에서의 모습
노부나가와 기나긴 전쟁을 벌였던 행적 때문에 노부나가가 주인공인 창작물에서는 주요 적대 포지션으로 등장하는 인물. 전국시대 기반 창작물에서 종종 거물급 무장으로 등장하는 다케다 신겐이나 우에스기 겐신 같은 인물 이상의 은근한 흑막 포스를 보여주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승려 신분 때문인지 종교적 이미지가 가해져서 뭔가 요승 같은 이미지로 등장하기도 한다.
3.1. 전국 바사라 시리즈
전국 바사라 2에서 NPC로 첫 등장. 전국 바사라 2 영웅외전에서부터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되었다. 성우는 츠지 신파치. 속성은 번개 → 빛. 일인칭은 셋소(拙僧).[3]
호칭은 신재성황(信財成皇). 후덕한 체구를 지닌 스님. 절 올라가는 길에 금이 깔려있으며 혼간사도 금으로 도배하고 요새 병기로 황금 인왕차(...)까지 구비하고 있는 굉장한 스님. 사루토비 사스케를 이 맵에 데려가면 천장 위, 마루 밑까지 금으로 깔려있다고 감동(?)한다.
말이나 행동거지를 보면 영낙없는 파계승으로 대사 중에도 염불조차도 모른다는 둥 스님 맞나 싶을 정도의 발언이 종종 튀어나온다. 이렇다보니 그 자비조차도 대놓고 땡중이라고 평하는 지경. 그래도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건 이상이 아니라 먹을 것이다'라는 등 꽤나 현실주의적인 일면도 갖고 있고 어린아이들에게는 관용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고유기인 필살 근육옥을 먹으면 몸에서 금빛 광채가나며 근육이 순간적으로 팽창한다. 바사라기도 금화 뿌리기이며, 적으로 만나 싸울 때는 체력이 어느 정도 떨어지면 돈을 뿌려서 아군 병사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여러 모로 땀나는 스님이다. 전국 바사라 배틀 히어로즈에 추가된 스토리 모드도 결국 근육 덕후 이야기이다.
도발은 땅을 파서 돌 또는 금화가 나오며, 금화가 나오면 실제 입수 금액에 +1.
적으로 나올 때 딱히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예외로 자비의 고유 아이템을 얻으려고 할 때는 매우 짜증나는 적으로 돌변한다. 자비의 전용 아이템을 얻기 위한 조건은 이 맵에서 혼간지 켄뇨 격파 전까지 5000냥 이상을 획득하는 것인데, 이게 말이 쉬워 보이지만 평범한 플레이로는 5000냥이 아닌 2500냥도 어렵다. 게다가 자비가 콤보를 올려서 돈을 벌기에 좋은 캐릭터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검은 돈의 지갑(획득하는 돈 5배)을 차고 하자니 기껏 모아둔 돈을 이 놈 때문에 다 털려버리기 일쑤이다. 자비의 아이템 획득을 위해 이 맵을 반복 플레이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미지가 비호감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인기는 별로 없는 캐릭터이다. 영웅외전 캐릭터 인기 투표에서는 당당하게 꼴찌를 차지하고 말았다. 게다가 유저들 뿐 아니라 제작진에게도 별로 관심을 못 받은 캐릭터인듯 하다. 한 번이라도 맵의 총대장으로 등장하는 대부분의 다른 캐릭터들은 2편에서 새로 작곡된 자신의 테마곡이 있거나 최소한 전작에 있었던 자신의 테마곡을 가져오지만[4] , 유일하게 이 혼간지 켄뇨는 혼간지 황금전설 맵의 총대장으로 나옴에도 불구하고 테마곡이 새로 작곡되지 않고 전작에서 누구의 테마곡도 아니었던 Get Mad라는 음악을 쓰고 있다. 그리고 영웅외전에서 테마곡이 새로 생기거나 바뀐 일부 캐릭터들과 달리 영웅외전에서도 새로 작곡된 테마는 없다.
전국 바사라 3에서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으나 사이카 마고이치의 언급을 보면 정황상 오다 노부나가 혹은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살해된 듯하다. 당연히 전국 바사라 3 연에서도 출연은 없다. 그렇지만 시리즈 전 캐릭터를 대상으로 한 인기 투표에서 사타케 요시시게에 1표 차이로 꼴찌에 벗어났다.
전국 바사라 4의 발매와 함께 DLC로 추가된 바사라 시리즈 명곡집에서 Get Mad가 1편의 명곡 10곡에 들어갔다는 것. 즉, 4편에서 유희서를 이용하면 BGM을 Get Mad로 변경한 상태로 플레이하는 것도 가능하다.
애니판에선 1화에서 아케치한테 사망하는 장면으로 지나간다(…). 물론 대사도 없다. 2기에서는 마에다 케이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과거 회상에서 혼간지의 승병들이 등장하여 잠깐 언급되기도 한다.
3.2.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전통적으로 만능형 다이묘로 나온다.
초대작부터 패왕전 즈음까지는 실제 이름인 코우사(光佐)라 나온다. 그리고 당시 맵 구성의 한계상 이시야마 혼간지는 패왕전까지는 별도의 땅으로 취급되지 않고 미요시 땅으로 묘사된다. 비슷한 이유로 혼간지 영역인 이세 나가시마에 자리잡던 간죠지(願証寺)도 패왕전까진 별도의 땅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영토는 특이하게도. 오야마 쿠보(현 카나자와) 그리고. 이시야마 쿠보(현 오사카)로 나온다. 다케다 신겐과도 이벤트 쪽에 연관되어 있다.
가독상속 부터는 미요시와 대립을 이루는 각으로 잡히기 시작한다. 일향종이 있을경우. 충성도와 관계없이 배반하기도 한다. 당연하게도. 남만을 엄청 혐오한다.
노부나가 포위망 부터는 멸망 1순위로 굳혀졌기에.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데. 버텨봤자 한 두번이면 병사가 금방 고갈되므로 의미없다. 그리고 오야마 고보도. 겐신에게 넘어가 버린 상황이라. 더 암울하다.
천하창세에서는 기이의 호족인 스즈키를 종속한 상태로 시작한다. 때문에. 빠른 단야촌 생산이 가능하고. 초반에 미요시를 갈아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낭인인 상태로 혼간사 건물이 성에 들어서는 경우. 이벤트가 발생하는데. 혼간사 재흥 이벤트랍시고. 성을 비워줄 것을 요구하는데. 응락하면. 성에 있는 무장들이 본국으로 귀환하는 대신. 주인공과 험악인 다이묘 출신의 무장들을 모조리 영입해준다. 문제는. 합병확률이 0% 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 거부시에는 성에 있던 무장들이 모두 혼간사의 부하로 강제전향되며. 충성도가 낮은 상황에서 적대화 되어버린다는 단점이 생긴다. 혼간사 일족은 총 4명인데. 겐뇨의 경우 평균 8~90대를 누르는 전투력이 주력이다 보니. 놔두면 화근이 발생한다. 종속을 파기하는 경우. 전 무장의 충성도가 일제히 떨어지고. 포상 먹이느라 바쁜데. 플레이어가 미쳐 손 쓰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전쟁터지는 상황에서 뒤치기 당하면 답이 안 나온다.
혼간사 세력이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오사카성 개명 이벤트가 안 나타나니 참고 할 것.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는 이후부터는 오사카성으로 자동으로 개명된다.
이 설정은 창조 PK에 와서야 고쳐졌고. 오다는 나가시마성을 거치지 않으면. 이세로 진출이 불가능하다.
통솔 91 무력 65 지력 87 정치 94에 치료를 들고 있다. 여기에 족경 S에 철포 A라 전투에서 굴리기도 좋다. 치료 소유자들 중 유일하게 족경S를 들고 있어서 족경대의 최대의 존재의의인 고기방패 역할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게 해 주는 중요인물. 다른 사람들은 병과적성이 형편없거나 원거리 병과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정말 빛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사람의 족경대랑 조우한 상태에서 직접 컨트롤 안 해주고 다른 곳의 상황보면서 전법이나 눌러주고 있다가는 그야말로 좀비처럼 계속 부활해서 끈질기게 버텨버리는 혼간지군에 역관광당해있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하자.[5]
문제는 이시야마 쿠보 외의 지성 건설은 사실상 꿈도 못 꾼다. 노부나가가 창조 성향인데 비해. 겐뇨일족은 전부 극 보수 주의자라. 성향이 완전히 다르고. 상성도 완전반대. 그래서 부하로 부릴수도 없다.
3.3. 전국무쌍 시리즈
보기
전국무쌍에서 고유 조형으로 나왔었는데 전국무쌍 2부터는 등장하지 않는다.
코에이 개발자 트윗에 따르면 혼간지 켄뇨 사후 두 아들에 의해 분열되어 지금까지 전래되어 오는 혼간지 파벌 문제와 2차 가공된 컨텐츠가 혹시라도 엮일까 봐 부담스러워 하는 이유도 있는 듯하다.
1편에 등장 했을 때의 행적은 사이카 마고이치 참조.
3.4. 천하제일상 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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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 천하제일상 거상에서 일본 장수인 세이쇼오의 2차전직 형태로 등장한다. 인형소환이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는데 소환된 인형은 꽤나 괜찮은 몸빵과 대미지 반사라는 이점 때문에 보스 사냥에서 많이 쓰인다.
여담으로 세이쇼오에 선조의 영혼을 빙의시켜 전직하는 형태인데, 혼간지 켄뇨와 세이쇼오는 거의 비슷한 대에 사람이다(!)
3.5. 만화 오다 노부나가
이케가미 료이치가 그린 이 만화에서는 나이가 꽤 든 얼굴이다. 실제로는 오다 노부나가보다 10살 어린 그가 여기선 20살은 더 들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아들 코뇨도 항복당시 10대 후반이었으나 여기선 훨씬 더 나이 들어보인다. 항복하고 물러날 때 가마를 타고 가다가 가마 창문을 열고 말타고 혼간지로 들어가려던 오다와 말없이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 간다. 헌데 아들 코뇨가 혼간지 본사 문을 닫고 고작 수백여 휘하 부하들과 죽고자 싸우려들자 어리석다고 욕하면서도 하나 뿐인 아들이 개죽음당하게 놔둘 수 없다고 충복을 보내 목숨바쳐 코뇨를 지키라고 한다. 오다는 켄뇨가 바본 아니니 코뇨 멋대로 저런것이라고 알아차리며 대대적 공격을 벌여 이들을 전멸시킨다. 하지만. 오다는 켄뇨가 그래도 하나 뿐인 아들을 죽게할리 없으니 죽은 코뇨는 대역일 것이라고 알아차렸다. 켄뇨가 보낸 충복이 스스로 대역으로 나가 죽었고 진짜 코뇨는 여자옷차림을 해서 무사하게 피했는데 켄뇨는 죽은 부하들을 극락에서 보자면서 명복을 빈다.
3.6. 태합입지전 시리즈
여기서도 노부나가의 야망처럼 만능형 A급 다이묘. 혼간지 땡중들의 능력치는 돋보이진 않아도 에이스급 장수들은 시나리오마다 꼭 있으며, 사이카슈의 장수들이 수하로 있기 때문에 꽤나 대접이 좋다.[6] 단점이라면 삼국지 시리즈의 황건적과 마찬가지로 영지가 하나로 이어져있지 않고 사이사이에 다른 다이묘가 끼어있다는 것.
3.7. 센고쿠(만화)
머리에 문신하고 괴랄한 패션 센스, 여기에 방정맞은 성격에 오사카 사투리를 사용하는 등 파격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나름 이런 저런 모략을 꾸미며 노부나가를 괴롭힌다. 하지만 아사쿠라, 아자이, 다케다가 멸망하고 모리가의 지원도 끊기자 코노에 사키히사의 중재로 노부나가에게 이시야마 혼간지를 넘기고 항복한다. 아들인 쿄뇨가 항복에 반대하며 저항했으나 결국 4개월만에 쿄뇨마저 노부나가에 항복하고 이시야마 혼간지를 떠난다. 그리고 쿄뇨 일행이 떠날때 강풍이 일어 성안의 화톳불이 넘어져 이시야마 혼간지에 대화재가 일어나 모든 것이 잿더미가 돼버린다. 작중 병사들은 물론 일반 백성들을 상대로 격의 없이 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어린이들을 상당히 좋아해서 오사카를 떠날 때도 어린이들과 함께였다.
작중 얼굴은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를 모델로 묘사했다고 한다.
[1] 노부나가의 시노비가 대표적.[2] 이것은 중개를 해준 천황에게 제공하는 상징적인 선물이라고 볼 수 있다.[3] 승려의 겸칭. 한국어로는 '소승' 정도로 번역된다.[4] 물론 카타쿠라 코쥬로나 오이치처럼 NPC이면서 총대장으로서 단독으로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는 테마곡이 굳이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2편에서는 테마곡이 없고, 2 영웅외전에 가서야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되면서 테마곡이 새로 생겼다.[5] 뒤에선 시모쓰마 라이렌이 총을 쏘고 있을 확률도 높으니 그 땐 정말 뜨거운 맛을 볼 것이다.[6] 시마 사콘이 들어가 있는 경우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