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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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에현 이세시에 있는 아즈치모모야마문화촌에 재현된 아즈치 성 천수각.(모형천수일 뿐 실제와는 전혀 다르다)
1. 개요
2. 역사
3. 구조
4. 찾아가는 길
5. 대중문화 속의 아즈치 성
6. 관련 문서


1. 개요


安土城
시가현 오미하치만시 아즈치 초에 있었던 성. 해발 199m의 아즈치 산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쌓은 희대의 명성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폐허가 되어 석축 외에 당시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은 상태.
아즈치 성은 이전까지의 성과는 달리 매우 화려한 천수각이 특징이었으며, 당시 천주교같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심취해 있던 노부나가에 의해 '천주각'이라고 표기되었다. 재현된 천수각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상층부는 금빛과 붉은빛이 어우러진 보기 드문 자태를 자랑한다. 당대에도 이런 건축은 유일무이하여 이것을 본 여러 사람들이 기록으로 남겼는데, 노부나가와 함께 머무르던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아즈치 성을 그린 그림을 바티칸 교황청에 보냈다는 기록도 있으나, 그림 실물을 확인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렇게 화려한 천수는 과시적인 목적이 강했는데, 중세 동양치곤 이례적이게도 오다 노부나가는 일반인 대상으로 화려한 아즈치 성 내부를 견학시켜주는 등 프로파간다로 써먹었다.[1]
그러나 1582년 혼노지의 변 이후 폐성되었는데, 루이스 프로이스의 기록에 의하면 아케치 미츠히데야마자키 전투에서 변사하자 그걸 알고 겁을 집어먹은 아케치측의 무장이 아즈치 성을 적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태울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지 급히 버리고 도망쳤고, 성을 접수한 노부나가의 2남 오다 노부카츠가 별 이유 없이 불을 질러버렸다고 한다. 그 뒤에도 한두번 사용된 기록은 있으나 복구되지 못한 채 그대로 잊혀져 버렸다.

2. 역사


노부나가의 가신 니와 나가히데의 주도로 3년의 공사 끝에 1579년 완공되었다. 그러나 성의 주인 노부나가는 얼마 못 가 혼노지의 변 때 사망. 이후 아츠지 성은 얼마 못 가 폐허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1989년부터는 20년 동안 조사 정비 사업이 진행되었다. 일본 100명성 중 51번째로 선정되기도 했다.

3. 구조


  • 혼마루 (本丸)
혼마루에는 오다 노부나가와 그 일가가 머물렀다. 정상부의 천수각은 지하 1층, 지상 6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즈치 성의 천수각은 처음으로 높다란 돌기단 위에 세워진 것으로, 이후에 만들어지는 천수각의 본보기가 된다. 혼마루는 야마자키 전투[2] 이후 어느 시점에선가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 니노마루 (二の丸)
혼마루 부분이 사라진 후 성의 주요 업무는 니노마루에서 진행되었다. 키요스 회의 이후 노부나가의 손자이자 가문의 적법한 계승자였던 오다 히데노부가 들어와 머무르기도 했다. 지금은 노부나가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진짜 무덤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 외곽
아즈치 산의 중턱 아래로는 가신들의 저택과 사찰 등이 자리잡았다. 발굴 조사를 통해 하시바 히데요시마에다 토시이에의 저택 터 등이 드러났다. 특히 이 둘의 저택은 진입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저택 터에는 나중에 소켄지가 들어왔다. 성 내의 유일한 사찰인 소켄지의 인왕문과 삼층탑은 당시의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4. 찾아가는 길


JR 아즈치역에서 논밭을 지나 30분 정도 걸으면 아즈치야마 입구에 도착한다. 입장료는 500엔. 산 전체를 훑고 내려오는 데는 1시간 30분 가량 소요된다. 아즈치에는 아즈치성곽자료관과 고고박물관, 아즈치성 천주 노부나가의 관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5. 대중문화 속의 아즈치 성



6. 관련 문서



[1] 중근세 서양에서는 궁성 일반인 견학 같은 일이 종종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베르사유 궁전은 국왕의 쇼맨쉽을 위해 민간인에게 개방되었던 구간이 좀 있었다. 다만 상명하복이 더 엄격했던 동양에선 별로 사례가 없는 편이다.[2] 혼노지의 변 이후 하시바 히데요시와 아케치 미츠히데가 벌인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