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노부카츠

 



1. 개요
2. 생애
3. 평가
4. 창작물에서
5. 기타


1. 개요


1558~1630
織田信雄. 오다 노부나가의 2남. 어머니는 이코마 키츠노로, 형 오다 노부타다와 어머니가 같다. 아명은 차센마루.

2. 생애


1569년 차센마루는 아버지 노부나가가 이세 지역을 정복하고 키타바타케 가문을 굴복시킨뒤 자신을 키타바타케 가문의 당주 키타바타케 토모후사의 양자 보내버린다. 당시 키타바타케 가문은 이세의 고쿠시[1]를 세습하는 가문으로 이세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고[2] 거기에다 무라카미 겐지의 후예이자 쿠게(公家)중 한 가문이라는 점 때문에 오다 노부나가는 키타바타케 가문의 혈통과 명성을 흡수하기 위해 차센마루를 키타바타케 가문으로 입적한 것이다.
그 뒤 당주 자리는 은퇴했으나 키타바타케 가문의 실권을 쥐고 있는 양할아버지 토모노리[3]의 데릴사위가 됐다.
그리고 1572년 원복(성인식)후 키타바타케 토모토요라 개명했고, 가독을 상속받은 후에는 키타바타케 노부오키[4]라고 다시 개명한 뒤 오다 가문의 장수로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친아버지 오다의 명령을 받아 장인이자 양조부 키타바타케 토모노리를 포함해 기타바타케 가문의 유력자들을 모략을 써 몰살시켰다. 이후 키타바타케 노부오키는 이가 정벌을 감행했는데(이가의 난), 닌자들의 고장으로 이름난 이가 호족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처참한 실패를 맛보아서 친아버지인 노부나가가 격노한 나머지 '또 지면 연을 끊어버리겠다'라고 쓴 서찰을 보내기도 했다(...)

今回伊賀の地で大敗したそうだが、これは天の道理に反することで正に天罰と言えよう。その理由は、信雄が遠国へ遠征すれば兵達は疲れ果てるというので、つまり、隣国で合戦となれば遠国へ出兵せずに済むという考えに引きずられ、もっと厳しく言えば、若気の至りでこうなったということであろうか。

まことに残念なことだ。上方へ出陣すれば、それは天下のためになり、父への孝行、兄・信忠への思いやりともなるのだ。そして巡り巡って自分の功績になるではないか。

当然だが、今回、柘植保重およびその他の武将を討ち死にさせたのは言語道断、けしからぬことである。 いつまでもそのような考えなら、親子の縁を切ることになると思うがよい。 なお、詳細はこの書状を持参する使者が伝えるであろう。

信長 織田信雄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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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이번에 이가 땅에서 대패했다는데, 이는 하늘의 도리에 반하는 것으로 천벌이라 하겠다. 그 이유는 노부카츠가 먼 구니로 원정을 나가게 되면 병사들은 지칠 대로 지쳐버리기 때문이라고 하니, 이웃 구니에서 전투를 벌이면 먼 나라로 출병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생각에 치우쳐서, 엄밀하게 말하면 젊은 혈기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냐.

참으로 딱하도다. 보다 높은 곳까지 뻗어 나아간다면 그것이 천하에 보탬이 되는 길이고 아비에 대한 효도, 형 노부타다에 대한 우애도 되는 것이다. 그리고 돌고 돌아 네 자신의 공적이 되지 않겠느냐.

당연하겠지만 이번에 츠게 야스시게(柘植保重) 및 다른 무장들을 전사로 내몬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断)[5]

, 괘씸한 일이다. 언제까지나 그 따위로 생각한다면 부모와 자식의 연을 끊는 줄로 알아라. 또한 자세한 내용은 이 서한을 가지고 온 사자가 전할 것이다.

노부나가 오다 노부카츠 도노(殿)

1582년 혼노지의 변으로 친아버지 오다 노부나가가 전사하자, 오다 가문의 후계자 자리를 정하기 위해 키요스 회의가 열린다. 이때 키타바타케 노부오키도 하시바 히데요시의 후원으로 후보에 올라, 동생 오다 노부타카[6]와 경쟁했고, 형 오다 노부타다의 아들이자 자기 조카 산보시[7]를 대신 후보로 올려 오다가문 후계자 경쟁에서 승리한다. 한편 자신은 아버지가 노부나가 생전에 받은 이세·이가 외에 오와리를 상속받아 약 100만석 규모의 영지를 할당받고 이름도 키타바타케 토모토요에서 오다 노부카츠로 고쳐 오다 가문임을 내세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연합해 히데요시에 대항하는 전선을 구축했다. 그러나 1584년의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에서는 유리한 전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단으로 히데요시측과 강화를 맺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전투를 방해하는 실책을 저지른다. 이에야스 측은 히데요시와 싸울 유일한 명분이 오다 가문의 후계자를 자칭하는 노부카츠였기 때문에 그 노부카츠가 무단으로 강화를 선언하자 싸워볼만한 상황에서 싸울 수가 없어진 것이다. 히데요시가 이에야스에게 진 후 정면대결 대신 노부카츠만을 집중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 이런 실책들로 인해 결국 반 히데요시 세력은 히데요시를 막을 방법이 없어졌고, 노부카츠는 히데요시의 반 부하 상태로 전락해버렸다.
이후 1590년 히데요시에게 개긴 호조 우지마사와 호조 가문을 정벌한 오다와라 전투 후에는 구 호조 가문의 영지로 전봉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130만 석의 구 영지로 전봉할 것을 명령받았지만 노부카츠는 고향인 오와리가 좋다고 거절했고, 이것이 구실이 되어 모든 영지를 몰수당해 완전히 몰락하고 유배되어버렸다.[8] 이후로는 출가해서 오다 조신(常信)이라는 이름으로 개명. 유배지를 전전한다.

1592년 히데요시의 오토기슈[9]가 되어 야마토 국의 만 7천석을 받는다. 가 특기였고, 다도에도 일가견이 있는 문화인이었다.
히데요시 사망 후 벌어진 세키가하라 전투에는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서군 편을 들었다고 오해받고 모든 영지를 몰수당한다. 오사카 전투에서는 오다 노부나가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도요토미 측의 총대장으로 추대를 받았는데 거절하고 도쿠가와 측에 붙었다. 일설에 의하면 오사카 성의 정보를 제공했다고 한다. 그 공을 인정받아서 우다 마츠야마 5만 석의 영지를 수여받고 다이묘로 복귀했다. 오다 가문에서 유일하게 다이묘로 살아남은 인물이다.
이후 교토에서 은거하다가 1630년 73살의 나이로 영면했다.
오다 노부카츠의 자손들은 메이지 유신 때까지 다이묘 자리를 대대로 이어나가고, 이후 화족에까지 이른다.

3. 평가


아직 충분히 불씨를 되살릴 만 했던 아버지의 위업[10]을 1대에 고스란히 말아먹었기 때문에 호부견자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을 정도로 평가가 극히 나쁘다. 조카, 동생을 질투해서 상속권을 다투는가 하면 힘이 막강한 중신을 셋이나 처형해버리거나 나가쿠테 전투에서는 이길 수 있는 싸움을 갑자기 포기하고 무단으로 단독강화를 맺어버리는 등 거의 트롤링에 가까운 하드쓰로잉의 기록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다.
아버지 노부나가의 위업 중 가장 찬란한 것이라고 평가받았던 아즈치 성아케치 미츠히데측이 접수했었는데, 야마자키 전투후 미츠히데군이 괴멸하자 성을 지키던 아케치 히데미츠가 불태우지 않고 조용히 철군하여 남아있었다. 문제는 노부카츠가 '''이걸 거저 접수해 놓고도''' 아무 이유도 없이 불태워버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는 것. 이 사건을 기록한 루이스 프로이스는 아예 매우 한심하다는 어조로 그가 '''"지능이 정상인보다 딸린다"'''라고 기록했다(...)
다만 이렇게 무능해서 그런지 몰라도, 히데요시나 이에야스도 위험분자로 여기진 않았기에 목숨만큼은 뺏기지 않았고 막판에 줄을 잘서서 다이묘로 복권하였고 천수를 누렸다. 그리고 그의 자손들은 훗날 메이지 유신 이후 화족까지 되어 나름 성공적인 가문을 이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노부카츠는 최후의 승자가 된 셈이다. 여담으로 형, 동생, 조카 3명이 모두 25세에 단명했기에, 73세 장수한 노부카츠는 3명의 수명을 합친 것만큼 오래 살았다.

4. 창작물에서


대망과 만화판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는 역시 명불허전 하드쓰로잉을 보여준다. 아즈치 성을 불태워버리고 충성스런 중신들을 어이없이 의심해서 몰살하는가 하면,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에서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곳을 버리고 뒤로 물러나버려서 명목상 동등한 위치에서 작전을 논의하는 동맹군인 이에야스가 사사건건 뒷목을 쥐게 만든다. 이길진역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는 雄가 일반적으로 인명에 쓰일 때의 발음이 '오'이기 때문에 착각했는지 이름이 오다 노부'오'로 표기되었다.[11]
효게모노에서는 여드름투성이로 등장. 특별히 저능아로 나오지는 않는다. 앞서 언급된 아즈치 성 소각 사건은 센노 리큐가 미츠히데가 성에 들어온 후 흰색으로 성을 칠한 것이 노부나가의 정신을 모독했다고 말한 데 설득당한 것으로 각색되었지만, 실제로는 극 설정상 히데요시와 결탁한 리큐가 노부나가의 취향대로 화려하게 지어진 아즈치 성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그리 한 것이었다.
노부나가의 야망에서는 이 게임의 제목인 주인공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능력치가 폐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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もう来やがったのか?キレるぜこらっ!

are they already arrived?

벌써 온 거야? 열받네 이거!

슈팅게임 바사라 2에서는 키타바타케 노부카츠라는 이름으로 등장. 보스 직전에 등장하는 중간보스로 거대 철갑선을 몰고 나온다. 원래도 무능했던걸 풍자하는건지 보라색 탄을 3개씩 쏘기는 하는데 속도도 매우 느리고 도망치기 전까지의 시간도 전 스테이지의 중간보스중 가장 길기 때문에 적당히 상대해줘도 '''알아서 죽어있다.''' 보스전으로 돌입하면 함미의 격납고가 열리면서 보스 타키가와 카즈마스(의 기체 주인)가 튀어나오고, 이때서야 철갑선이 도망가게 된다.
전국무쌍 4에서는 클론 무장으로 나와 무.가.치 등 아버지의 말을 따라하지만, 찌질한 톤으로 말을 해서 웃기면서도 한심한 모습을 모여주었다.
태합입지전 5에서도 나오며 능력치는 당연히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 1582년 시작시 국주로 시작하며 혼노지의 변으로 노부나가가 사망할 시 오다가문의 문장을 이어받으며 독립한다. 플레이시 혼노지의 변을 선택지 하나로 막을 수 있는데 아케치 미츠히데가 다케다 정벌 후 두들겨 맞았다는 이벤트 이후 편지를 써서 두 사람의 사이를 풀게하는 선택지가 있는데 작성하면 혼노지의 변이 일어나지 않는다. 안하면 다른 변수가 없는 한[12] 일어나게 된다.
노부나가의 시노비에서는 키타바타케 가문에 양자로 보내졌다는 것으로 짤막하게 등장[13]하지만 이후 '''치도리의 인생을 크게 좌우하게 되지만 그것은 10년도 뒤의 일이다.'''라는 의미심장한 해설이 나왔다.
키요스 회의(영화)에서는 2% 모자란 바보로 묘사된다. 달리기를 하는데 더 빨리 달리기는 했지만 결승선인 깃발을 뽑지않고 그냥 지나쳐서 패배하는 등 나사빠진 모습만 보여서 히데요시가 산보시로 후계자 후보를 바꿀수 밖에 없게 된다. 이때 히데요시의 비서실장이나 다름 없게 묘사되는 쿠로다 칸베가 노부카츠를 뒤에서 '''저놈의 멍청함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군요'''라며 씹는 장면이 나오는데 정말 그 정도로 답이 없는 모습을 보인다. 띨띨한 것은 둘째치고 눈치도 없으며 극중에서 묘사되는 취미생활만 봐도 참 한심하다(...) 그런 주제에 자신은 '''세상을 속이는 바보의 가면'''을 쓰고 있다며 히데요시에게 똥폼잡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
닌자의 나라에서는 철부지 영주의 모습으로 나온다.뭐든지 만능인 아버지 오다 노부나가에게 열폭 하여 아버지를 넘어서기 위해 노부나가가 금지한 이가 정벌에 나섰다가 퇴패한다.[14]
Fate/Grand Order의 오다 노부카츠는 이 노부카츠가 아니라 위의 또다른 오다 가의 형제인 오다 노부유키다. 오다 노부카츠(Fate 시리즈) 항목 참조.

5. 기타


현재 오다 노부나가의 자손이라고 확실히 확인되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 노부카츠의 자손이다. 그 이유는 다른 분가들도 몇 있었으나 모두 대가 끊겨 노부카츠의 많은 자손들을 데려가 양자로 삼았기 때문이다.
일본 남성 스케이트 선수 오다 노부나리가 이 오다 노부카츠의 후손임을 주장하고 있다.
[1] 덴노의 조정에서 파견하는 구니의 장관.[2] 대부분의 고쿠시가 무로마치 초기에 슈고들에게 밀려나 몰락한 것에 비하면 상당히 특이한 사례다.[3] 토모후사의 친아버지. 츠카하라 보쿠덴의 제자로 뛰어난 검호이기도 했던 사람. 아시카가 요시테루와 함께 보쿠덴의 비기 히토츠노타치를 물려받았다고 전해진다.[4] 토모토요는 키타바타케 가문에서 세습되는 토모(具)가 들어간 이름이지만, 노부오키는 키타바타케 가문과 상관이 없고 오다 가문에서 세습되는 노부(信)를 쓴 이름이다.[5] 말문이 막힌다, 즉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는 뜻.[6] 시바타 카츠이에 측 후보로 오다 노부나가의 3남[7] 이후 이름은 오다 히데노부[8] 이 시기엔 토착화가 매우 중요했던 시기였던지라, 생판 남 영지로 갑자기 전봉되면 반란을 일으키거나 세금 내기를 거부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오다가 중신 카와지리 히데타카는 잇키로 살해당했고, 삿사 나리마사도 잇키를 막지 못한 책임으로 할복. 이에야스 조차 호조 가가의 새 영지로 전봉되었을 때 100만석의 석고 증가가 있었지만 초창기에는 호조 가문을 그리워하는 민중들에게 꽤 고생을 했었다. [9] 이런저런 사항에 상담을 해 주면서 주변에서 주군을 보좌하는 역할이긴 하나 히데요시에겐 그저 잡답이나 나누는 말상대일 뿐. 히데요시는 아라키 무라시게, 아시카가 요시아키, 야마나 토요쿠니, 호소카와 아키모토 등 몰락한 무장 혹은 명문가 출신들을 모아 일종의 콜렉션을 만들어서 심심하면 불러서 차를 마시면서 잡담을 나눴다고(...). 독서가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는 달리 히데요시는 한문을 못읽어서 다도회를 열어 차 마시면서 잡담을 나누는 것을 즐겼다. 오토기슈는 이후 일본 문화에서 화술이 중요한 라쿠고, 강담, 만자이의 기원으로 본다.[10] 가문 내에서 평가가 좋지 않았긴 하지만, 그 때문에 키요스 회의에서 밀려난 상황에서조차도 노부카츠의 영지는 100만석에 육박했다.[11] 위의 오다 노부카츠와의 구별일 수도 있다.[12] 영토 변경.. 예를들어 모리에게 갑자기 확 밀린다던가 하는...[13] 여드름투성이에 코흘리개로 나와서 그다지 똑똑한 느낌은 없다.[14] 사실, 전황만 보면 닌자집단에 불과한 이가는 정규군에게 상대가 되지 못했다.또한, 이가에서 귀순한 닌자의 도움으로 이가측의 전략을 모두 간파하였고, 무엇보다도 돈을받고 제주를 팔던(=용병) 닌자들에게 돈 받을곳 없는 방어전은 흥미가 없어서 닌자들 절반정도가 이탈해 버려 전력차가 심해서 차마 제대로된 전투도 하지 못할정도로 털려서 승리 직전에 있었다. 그런데 주인공이 가진 보물을 이용해 총대장의 목에 어마어마한 현상금을 걸자 닌자들이 노부카츠만 노리고 몰려들자 어쩔수 없이 퇴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