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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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모토 성 천수각.
1. 개요
일본에서 쌓은 성. 일본 및 한국 각지에 있다.
한국에 있는 일본식 성은 왜성 문서 참조.
2. 역사
일본 성의 시초는 농경 시대 경작물을 외부 침입에서 보호하기 위해 만든 시설로 본다. 야요이 시대 고지대에 해자를 두른 후 주거지를 만든 것이 이러한 예. 이러한 주거 유적을 일컬어 환호집락(環濠集落)이라고 부른다. 사가현의 요시노가리(吉野ヶ里)[1] 유적이 일본 100명성의 하나로 선정된 것도 성의 개념이 생겨날 때의 모습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치체의 수가 적어지고 규모는 커진 고분 시대에는 주거, 정치와 제례의 장으로서 평지에 커다란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나라와 아스카 시대에는 백제에서 축성술이 전래되어 이른바 조선식 산성이 축조되었다.
가마쿠라 시대에서 남북조 시대 사이에는 지배자의 거처를 중심으로 한 관성(館城)이 나타난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성의 방어적 성격이 더욱 강조되었으며, 이 시대에는 완만한 구릉에 평성이 많이 축조되었다. 전국시대에 이르면 경제력을 가진 각지의 다이묘들이 영국의 방어를 위해 경쟁적으로 성을 쌓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평산성과 산성이 많이 축조되었으며, 전국에 걸쳐 3000여 채에 이를 정도로 성의 전성시기를 맞았다. 그 중 천하통일을 앞둔 오다 노부나가가 쌓은 아즈치 성은 이후 성곽 축조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그때까지 누구도 생각지 못한 5층 7계짜리 천수각은 물론이거니와 성 안에 유력한 다이묘의 저택도 있었다.
이후 노부나가의 자리를 물려받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이어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여러 성이 세워지거나 사라졌다. 도요토미 씨가 멸망한 이후 큰 전쟁이 사라지자 성의 역할은 통치의 중심으로 변화하였다. 이 때에는 에도 성과 오사카 성을 비롯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거대한 평성이 세워졌으며, 번주(지방 다이묘)들의 권력을 억제하기 위해 통치에 필요한 성을 제외한 성을 철거하는 일국일성령(一国一城令)을 시행해[2] 170여 채를 제외한 성들을 철거해버린다.
3. 문화재적 가치
일본 각지에 수백 곳이 존재하고 일본의 전통 문화 관련 비주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취급이 항상 그리 좋지만은 않은 편이었다. 일단 에도 시대에 들어서면서 상기한 '일국일성령'으로 많은 성을 철거했고,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면서 다시 '폐성령'으로 전국의 성들을 일제히 철거한 데다가, 그 후로도 이런저런 전쟁 통에 피해를 입은 성들이 많아서[3] 현재 원래의 천수가 남아 있는 성은 12개뿐이다.[4] 한국에도 알려진 주요 성곽들 대부분은 20세기 들어서 현대 건축 공법으로 다시 지은 것들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3대 성이라고 하는 오사카 성, 구마모토 성, 나고야 성 등은 모두 화재, 폭격, 철거 등으로 소실된 것을 다시 지은 것이다. 일부는 성곽이나 천수각 내부에 엘리베이터까지 있다. 현재 천수가 남아 있는 12개 성 중 다섯 곳은 국보(그중 한 곳인 히메지 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일곱 곳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문화재적 가치가 없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하나 논지에 무리가 있다. 상당수의 성이 옛 모습을 잃은 것은 사실이나 그것으로 가치를 상실했다고 평할 수는 없다. 천수각과 고텐 등의 목조 건축은 소실되었지만 흙과 돌로 쌓은 성역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천수각은 성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구성 요소이지만 '''천수각이 곧 성'''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천수각 외에도 여러 곳의 성 전역과 성문, 망루 등이 개별적으로 중요문화재에 등록되어 있으며 건물이 사라지고 없는 195곳의 성터가 사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리고 오사카 성, 구마모토 성, 나고야 성이 3대 성이 된 것은 현대의 가치를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다. 에도 시대 학자인 오규 소라이(荻生徂徠)가 축성의 명수로 불린 가토 기요마사와 도도 다카토라의 솜씨가 잘 드러난 성을 꼽은 것이다. 전통 건축법을 무시하고 천수각을 복원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애초 3대 성의 기준은 천수각이 아니었다.
4. 분류
일본의 성은 성역의 형태에 따라 산성, 평산성, 평성과 수성/해성으로 구분한다.
- 산성 (山城): 말 그대로 산의 일부나 전체를 둘러싼 성이다. 기본적으로 100m 이상의 산지에 쌓은 것을 산성으로 분류한다. 산성은 한반도에서 전래된 기술로 쌓은 조선식 산성에서 유래할 정도로 역사가 오래되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평소에는 평지의 처소에서 머무르다가 전시에는 산성에 들어가는 방식을 사용했다. 물론 당시에도 처소나 창고를 토루와 성벽으로 보호하는 사례가 있었다. 이후 호족과 무사가 대두하면서 성을 더욱 높은 곳에 쌓기 시작했으며, 돌 기단의 높이도 높아져 쿠루와(曲輪)가 생겨났다. 산성의 구조를 혁신한 것은 노부나가의 아즈치 성이었다. 높고 화려한 천수각은 물론, 성내에 가신의 저택을 조성하고 혼마루 어전(本丸御殿), 혼마루(本丸), 니노마루(ニノ丸) 등을 마련한 것은 새로운 스타일의 성곽이었다. 이외 대표적인 산성으로 기후 현의 이와무라 성, 나라 현의 다카토리 성, 오카야마 현의 빗츄마쓰야마 성이 있다.
- 평산성 (平山城): 산록의 약간 높은 평지에 쌓은 성. 높은 부분에는 성을, 평지 부분에는 거주 공간을 만들었다. 산성과 비교하면 통제가 쉽지만 방어에는 불리하다. 평산성에는 유명한 성들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미야기현의 센다이 성, 가나가와현의 오다와라 성, 이시카와현의 가나자와 성, 아이치현의 오카자키 성과 이누야마 성, 시가현의 히코네 성, 효고현 히메지시의 히메지 성,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의 구마모토 성 등이 있다.
- 평성 (平城): 평평한 곳에 쌓은 성. 산성이나 평산성은 축성할 때 천혜의 요새를 이용한 데 반해 평성은 대규모 토목 공사가 필수적이다. 산지에 기대어 방어할 수 없는 만큼 해자와 망루, 성문 등의 방어 시설도 튼튼하게 갖추어야 했다. 조카마치(城下町)[5] 와 밀접하게 교류할 수 있었으며, 통치에 용이하고 바깥으로 출병하기에도 쉬운 장점이 있다. 근세에는 거대한 평성이 많이 세워졌는데, 도쿄도의 에도 성, 나가노현의 마츠모토 성, 아이치현의 나고야 성, 오사카부의 오사카 성, 히로시마현의 히로시마 성 등이 있다.
- 수성/해성 (水城/海城): 바다와 하천, 호수를 끼고 항만 부분을 포함하여 세워진 성. 특히 해성은 반도나 섬의 지형을 이용하여 바다와 면하게 쌓았다. 자연스럽게 바다와 강, 호수의 물을 끌어다 해자로 이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반도나 섬에서 수군 기지로 이용되었던 곳은 수군성(水軍城)이라고 부른다. 수군성은 섬이 많은 세토나이카이에 많이 나타난다. 수성 중에는 카가와현 타카마츠시의 타카마츠성, 에히메현 이마바리시의 이마바리 성, 오이타현 나카츠시의 나카츠 성이 유명하다.
5. 구조
- 고텐 (御殿): 고텐은 기본적으로 성주의 주거를 위한 것이었다. 이외에도 번의 관청, 가신들의 대면의식 장소로도 활용되었다. 성곽 내에 고텐을 짓기 시작한 것은 근세 이후이다. 혼마루에 세워진 것은 혼마루고텐, 니노마루에 있는 것은 니노마루고텐 등으로 불렸다. 그 외에도 대면 의례를 위한 오모테무키(表向), 성주가 주거 공간이나 집무실로 쓰였던 나카오쿠(中奥), 성주가 휴식을 취하던 오쿠무키(奥向) 등이 있었다. 대규모 성곽에는 100동 이상의 건물이 들어서기도 했다.
- 덴슈가쿠 (天守閣): 성의 중심인 혼마루에서 가장 높은 누각이자 성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 폐성령, 전쟁 등으로 파괴된 성을 복원할 때면 당연히 1순위. 번정 당시에는 훨씬 중요했던 고텐은 주춧돌만 표시해 두고 이쪽만 복원한 경우가 많다. 오랜 중심지였던 교토와 도쿄에는 덴슈가쿠가 남아 있지 않은데, 교토의 니조 성과 도쿄의 에도 성에 있던 덴슈가쿠 모두 일찍이 소실된 후 복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야구라 (櫓): 발음이 같은 단어인 矢倉, 矢蔵로도 쓴다. 이름처럼 원래는 활과 화살을 보관하던 공간. 보관 장소에 그치지 않고 활을 든 보초가 지키는 망루로 기능이 변화했다. 당연히 성을 보호하는데 중요한 방어 시설. 야요이 시대의 요시노가리 유적에서도 야구라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당시에는 적의 동향을 감시하는 전망대로 사용되었다. 중세에는 사격대로, 근세에는 성곽 방어로 기능이 바뀌었다. 야구라는 단층부터 3층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3층짜리 야구라 중에는 천수각 대용으로 사용될 정도의 규모인 것도 있다. 단층 야구라가 양옆으로 길쭉해진 것은 다몬야구라라고 부른다. 야구라도 천수와 같이 망루형과 층탑형으로 나뉘며, 형태와 목적, 위치와 지명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구마모토 성의 우토야구라는 특이한 경우인데, 3층 5계에 높이가 19m로 어지간한 천수각에는 맞먹을 정도다.
- 나와바리 (縄張): 성의 구성을 결정하는 설계도. 성을 지을 때에는 적이 쉽게 공략할 수 없고 많은 가신을 수용할 수 있으며 주변 통치에 용이한 곳을 선택하는 것이 첫째다. 다음에는 산성, 평산성 등의 형태를 결정한다. 지형을 살펴 어느 부분을 이용해서 성을 쌓을지 정하고 나면 성의 설계도인 나와바리를 그릴 수 있게 된다.
- 쿠루와 (曲輪):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의 공간 배치 방식. 대표적인 형식으로 윤곽식, 연곽식, 제곽식이 있다.
- 이시가키 (石垣): 성의 기저인 이시가키는 아스카 시대의 한국식 산성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토루와 쿠루와를 보강하기 위해서 이시가키를 만들었다. 근세에는 천수각이나 고텐 등의 중층 건물을 떠받치기 위한 목적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 시대 성의 특징은 높고 견고한 이시가키를 둘렀다는 점인데, 이것 역시 아즈치 성에서 처음 나타난다. 노부나가 이후에는 높은 이시가키가 권위의 상징이 되었다. 도쿠가와 막부의 천하보청 시기의 이시가키는 중후한 느낌을 준다. 이 이시가키를 전문적으로 만들었던 기술자 집단인 아노슈(穴太衆)의 맥이 오늘날까지 이어져내려온다.
- 도루이 (土塁): 쿠루와 주변에 흙으로 쌓은 방어 시설. 전국 시대까지의 산성에서 많이 발견된다. 아즈치 성 이후로는 이시가키가 보편화되었고 전국 시대가 마감된 이후에는 이시가키와 함께 도루이가 널리 쓰였다. 도루이에는 점토나 자갈을 채워 보강하거나 식물을 심어 붕괴를 방지했다.
- 호리 (堀): 해자. 성곽 주변의 땅을 파 적의 침입을 방어하는 시설이다. 파낸 곳에는 물을 채우거나 나무를 심었다. 아예 비워 두거나 좁은 흙길을 만들어 적을 격퇴하기 쉽게 한 것도 있다.
- 하시 (橋): 성의 안팎을 이어주는 다리. 나무로 만든 사례가 많았지만 도루이나 이시가키를 연장해서 다리로 쓰기도 했다. 다리 위에 지붕을 얹거나 들어올릴 수 있게 만든 것도 있다.
6. 나무위키에 등재된 일본의 성 목록
- 구마모토 성
- 나고야 성
- 니조 성
- 다케다 성
- 마루가메 성
- 마츠야마 성
- 마츠에 성
- 아즈치 성
- 에도 성
- 오다와라 성
- 오사카 성
- 유즈키 성
- 이마바리 성
- 다카마쓰 성
- 토쿠시마 성
- 히메지 성
- 히코네 성
- 고쿄 - 옛 에도 성. 현재 일본 황거.
7. 같이 보기
- 일본 100명성
- 성 프로젝트:RE ~CASTLE DEFENSE~ - 일본의 성들을 모에화한 게임
[1] 아요이 시대 최대 규모의 환호집락 유적. 지배층의 거주지와 신전, 제사용품 작업장과 무덤떼가 발굴되었다.[2] 일국일성이라는 표어가 엄밀히 지켜진 것은 아니고, 동군 출신 다이묘들에게는 약간 여유를 두어 가신 소유의 일부 성채를 남기기도 했다. 물론 서군 출신은 얄짤없이 시행했고.[3] 서남전쟁, 제2차 세계대전 등... 미군의 폭격을 맞아 없어진 것도 있지만, 일본 군부에서 철거해서 자재로 사용한 경우도 꽤 있었다.[4] 하도 남은 성이 적은지라 한국에 있는 왜성을 연구하기도 한다. 갯수도 30여개 정도로 일본보단 많기 때문, 사실 일본보다는 한국이 왜성이 보존되기에 조건이 용이하기는 했다.[5] 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 오다 노부나가가 거성이 있는 아즈치에 무사와 상공업자를 모아 조성한 것이 시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