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일본의 분게이슌주(
문예춘추)에서 제정한 문학상.
1927년 사망한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업적을 기려 만들어졌다. 정식 명칭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상(芥川龍之介賞)이다. 문예춘추를 창간한 기쿠치 간이
나오키 산주고의 사망을 계기로
1935년 나오키상과 함께 제정하였다.
1938년부터는 일본문학진흥회에서 이어받아 주최하고 있다.
태평양 전쟁 종전 무렵 몇 년간 시상이 중단되기도 하였으나,
1949년 부활하였다.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누어 1월과 7월에 두 차례 시상한다.
순수문학 부문, 신인 및 무명 작가에게 주로 시상되며 신인상으로는 일본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 간혹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이라는 말만 듣고 왜 요즘에는 신인 작가들에게만 수여되는지 의아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쿠타가와상은 처음부터 신인상이었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100만 엔, 그리고 부상으로
회중시계가 수여되며 수상작은 매년 문예춘추 3월 호와 9월 호에 실린다. 신인의 등용문으로써 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다. 아쿠타가와를 한국 독음으로 읽어 개천상이라고도 부른다.
일본 순수문학계 최고 권위의 신인상인 만큼 수상자들 중에는 일본 문학계의 쟁쟁한 작가들이 많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이노우에 야스시,
마쓰모토 세이초,
엔도 슈사쿠,
아베 코보,
오에 겐자부로, 마루야마 겐지,
무라카미 류 등이 이 상의 수상자이다. 그리고
다른 의미(...)로 유명한 극우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도 수상자이다. 어릴 때부터 그 쪽에 재능이 있던 건지 수상작 <태양의 계절>도 당시 논란이었다. 불건전한 묘사와 비도덕적인 행위 때문이라고. 찬성 측은 "패기 있는 묘사가 좋다"고 평하고, 반대 측은 "풍속 소설에 지나지 않는 흥행용 B급 소설"이라 평가 절하한다. 다만 이것은 언제나 있는 문단계 보수성의 문제에 의한 부분도 포함하고 있어 맥락이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이것도 재능은 재능일 거다(?).
이시하라 신타로는 수상 당시인 1955년 24세로 당시의 최연소 수상자였다. 이 기록은 1958년
오에 겐자부로가 23세의 나이로 수상하면서 깨졌고, 1999년 수상자인 히라노 게이치로가 오에 겐자부로와 같은 23세였지만 생일이 더 빨라서 다시 한 번 깨지게 된다. 그리고 2003년 하반기에 20세의 가네하라 히토미, 19세의
와타야 리사가 공동 수상을 하면서 최연소 기록을 대폭 낮췄다. 참고로 가네하라 히토미는 수상작이 데뷔작이었고,
와타야 리사는 17세에 발표한 데뷔작이 상당한 호평을 받으면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한편 이시하라 신타로는 심사위원으로 있을 때, 146회 후보작들이 형편없어서 상을 받을 만한 작품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적이 있다. 결국 심사위원들의 투표로 다나카 신야, 엔조 도로 수상자가 결정되었는데, 다나카 신야는 '사양하는 게 예의지만 나는 예의가 없으니 받겠다', '할아버지는 신당 창당에나 신경쓰세요'라는 말로 이시하라 신타로를 비꼬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모 인터뷰의 제목은 "도지사 각하님과 의원 나리들을 위해, 받겠습니다"이다.
153회에는 개그맨인 마타요시 나오키가 수상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개그맨이라는 특수성 등이 작용해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중 일본 내에서 최다 부수인 229만 부 이상을 판매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수상자는 대부분
일본인이지만, 현재까지
재일교포 4명과
중국 작가 1명이 수상자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66회 수상자 이회성, 100회 수상자 이양지, 116회 수상자인 유미리, 122회 수상자인 현월은
재일교포이고, 139회 수상자 양이
[1] 본명은 리우 웨이(일본식 독법을 따를 시 류초우)로, 2012년에는 일본 국적을 획득해 이중국적인 상태이다.
는 재일 중국인이다. 특히 양이는 일본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최초의 수상자이다.
한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매우 존경하던
다자이 오사무는 아쿠타가와의 이름을 딴 이 상에 욕심을 냈지만 두 번 후보로 올랐을 뿐 수상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심사위원이던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다자이 오사무 항목 참조.
무라카미 하루키도 후보에 두 번 올랐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일본 내에서는 이 상을 받으면 수상 작품 이후로 변변한 작품이 나오지 못한다는 징크스가 있다고 여겨진다.
2. 역대 수상자 일람
회수
| 연도
| 작가
| 작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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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1935년 상반기
| 이시카와 다쓰조(石川達三)
| 창맹(蒼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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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1935년 하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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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1936년 상반기
| 오다 다케오(小田嶽夫)
| 성외(城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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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루타 도모야(鶴田知也)
| 고샤마인 기[2] '고샤마인'은 1457년 홋카이도 지역의 아이누인들이 화인(일본 본토인)의 홋카이도 진출에 반발하며 일으켰던 봉기 중 하나인 '고샤마인의 난'의 주역이다. (コシャマイン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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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1936년 하반기
| 이시카와 준(石川淳)
| 보현(普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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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자와 우이오(冨澤有爲男)
| 지중해(地中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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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1937년 상반기
| 오자키 가즈오(尾崎一雄)
| 여가 안경(暢気眼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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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1937년 하반기
| 히노 아시헤이(火野葦平)
| 분뇨담(糞尿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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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1938년 상반기
| 나카야마 기슈(中山義秀)
| 국화[3] '厚物(あつもの, 아쓰모노)'는 꽃잎이 많은 국화의 일종이며, '咲'에는 '피다'라는 뜻이 있다. (厚物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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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1938년 하반기
| 나카자토 쓰네코(中里恒子)
| 합승마차(乗合馬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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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1939년 상반기
| 한다 요시유키(半田義之)
| 닭 소동(鶏騒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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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세 겐(長谷健)
| 아사쿠사의 꼬마(あさくさの子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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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1939년 하반기
| 사무카와 소타로(寒川光太郎)
| 밀렵꾼(密獵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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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1940년 상반기
| 다카기 다쿠(高木卓)
| 노래와 문의 방패(歌と門の盾)[4] 수상 거부함. 키쿠치 칸은 이에 대해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격분했다. 정확한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만약 타카기 자신이 수상을 거부한다면 "작가정신"의 사쿠라다 츠네히사가 앞당겨 대신 수상할 것이라고 잘못 알았다는 설도 있다. 이 설에 따르면 이후 자신의 수상 거부가 사쿠라다의 수상을 앞당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자신의 수상 포기가 되려 "작가정신"의 동인들이 아쿠타가와상 수상 후보가 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두려워해 키쿠치에게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이상 카와구치 노리히로 "아쿠타가와 이야기"에서 언급되는 설) 다행히 사쿠라다는 1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자가 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원인은 불명이다.
|
12
| 1940년 하반기
| 사쿠라다 쓰네히사(櫻田常久)
| 히라가 겐나이(平賀源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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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1941년 상반기
| 다다 유케이(多田裕計)
| 장강 삼각주(長江デル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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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1941년 하반기
| 시바키 요시코(芝木好子)
| 정원도시(青果の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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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1942년 상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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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1942년 하반기
| 구라미쓰 도시오(倉光俊夫)
| 연락원(連絡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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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1943년 상반기
| 이시즈카 기쿠조(石塚喜久三)
| 전족을 하던 시절(纏足の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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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1943년 하반기
| 도노베 가오루(東野邊薫)
| 화지[5](和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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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1944년 상반기
| 야기 요시노리(八木義徳)
| 유광복(劉廣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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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 주조(小尾十三)
| 등반(登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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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1944년 하반기
| 시미즈 모토요시(清水基吉)
| 야생 기러기(雁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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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5년~1948년
| 수상 중단
| 수상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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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 1949년 상반기
| 유키 시게코(由起しげ子)
| 책 이야기(本の話)
|
고타니 쓰요시(小谷剛)
| 확증(確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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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 1949년 하반기
| 이노우에 야스시
| 투우(闘牛)
|
23
| 1950년 상반기
| 쓰지 류이치(辻亮一)
| 이방인(異邦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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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1950년 하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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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1951년 상반기
| 아베 코보
| 벽 S. 카르마 씨의 범죄(壁S・カルマ氏の犯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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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카와 도시미쓰(石川利光)
| 봄풀(春の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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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 1951년 하반기
| 홋타 요시에(堀田善衛)
| 광장의 고독(広場の孤独), 매국노(漢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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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 1952년 상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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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1952년 하반기
| 고미 야스스케(五味康祐)
| 상신(喪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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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세이초(松本清張)
| 어느 '고쿠라일기'전(或る『小倉日記』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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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 1953년 상반기
| 야스오카 쇼타로(安岡章太郎)
| 나쁜 친구들(悪い仲間), 음산한 즐거움(陰気な愉し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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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 1953년 하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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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 1954년 상반기
| 요시유키 준노스케(吉行淳之介)
| 소나기(驟雨)
|
32
| 1954년 하반기
| 고지마 노부오(小島信夫)
| 아메리칸 스쿨(アメリカン・スクー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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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노 준조(庄野潤三)
| 풀사이드 소경(プールサイド小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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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 1955년 상반기
| 엔도 슈사쿠
| 백색인(白い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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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 1955년 하반기
|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
| 태양의 계절(太陽の季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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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 1956년 상반기
| 곤도 게이타로(近藤啓太郎)
| 바닷사람의 배(海人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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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 1956년 하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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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 1957년 상반기
| 기쿠무라 이타루(菊村到)
| 이오지마(硫黄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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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 1957년 하반기
| 가이코 다케시(開高健)
| 벌거벗은 임금님(裸の王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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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 1958년 상반기
| 오에 겐자부로
| 사육(飼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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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 1958년 하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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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 1959년 상반기
| 시바 시로(斯波四郎)
| 산탑(山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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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 1959년 하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
43
| 1960년 상반기
| 기타 모리오(北杜夫)
| 밤과 안개의 구석에서(夜と霧の隅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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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 1960년 하반기
| 미우라 데쓰오(三浦哲郎)
| 시노부가와(忍ぶ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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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 1961년 상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
46
| 1961년 하반기
| 우노 고이치로(宇能鴻一郎)
| 고래신(鯨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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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 1962년 상반기
| 가와무라 아키라(川村晃)
| 미담의 출발(美談の出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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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 1962년 하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
49
| 1963년 상반기
| 고토 기이치(後藤紀一)
| 소년의 다리(少年の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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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 다에코(河野多惠子)
| 게(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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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 1963년 하반기
| 다나베 세이코
| 감상여행(感傷旅行 センチメンタル・ジャーニ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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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 1964년 상반기
| 시바타 쇼(柴田翔)
| 그래도 우리 젊은 날(されどわれらが日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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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 1964년 하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
53
| 1965년 상반기
| 쓰무라 세쓰코(津村節子)
| 장난감(玩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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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 1965년 하반기
| 다카이 유이치(高井有一)
| 북쪽 강(北の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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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 1966년 상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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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 1966년 하반기
|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
| 여름의 흐름(夏の流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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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 1967년 상반기
| 오시로 다쓰히로(大城立裕)
| 칵테일 파티(カクテル・パーティ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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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 1967년 하반기
| 가시와바라 효조(柏原兵三)
| 도쿠야마 귀향(徳山道助の帰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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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 1968년 상반기
| 마루야 사이이치(丸谷才一)
| 남은 해(年の残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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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 1968년 상반기
| 오바 미나코(大庭みな子)
| 세 마리의 게(三匹の蟹)
|
60
| 1968년 하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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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 1969년 상반기
| 쇼지 가오루(庄司薫)
| 빨간모자야, 조심해(赤頭巾ちゃん気をつけ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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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 1969년 상반기
| 다쿠보 히데오(田久保英夫)
| 깊은 강(深い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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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 1969년 하반기
| 기요오카 다카유키(清岡卓行)
| 아카시아 다롄(アカシヤの大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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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 1970년 상반기
| 요시다 도모코(吉田知子)
| 무명장야(無明長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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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야마 고마오(古山高麗雄)
| 플레오 8의 새벽(プレオー8の夜明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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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 1970년 하반기
| 후루이 요시키치(古井由吉)
| 요코(杳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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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 1971년 상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
66
| 1971년 하반기
| 이회성(李恢成)
| 다듬이질하는 여인(砧をうつ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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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 미네오(東峰夫)
| 오키나와 소년(オキナワの少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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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 1972년 상반기
| 하타야마 히로시(畑山博)
| 언젠가 기적을 울리어(いつか汽笛を鳴らし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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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하라 아키오(宮原昭夫)
| 누군가 닿았다(誰かが触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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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 1972년 하반기
| 야마모토 미치코(山本道子)
| 베티 씨의 정원(ベティさんの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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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시즈코(郷静子)
| 레퀴엠(れくいえ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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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 1973년 상반기
| 미키 다쿠(三木卓)
| 검은방울새(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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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 1973년 하반기
| 노로 구니노부(野呂邦暢)
| 풀의 검(草のつる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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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아쓰시(森敦)
| 월산(月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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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 1974년 상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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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 1974년 하반기
| 히노 게이조(日野啓三)
| 저 석양(あの夕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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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타 히로오(阪田寛夫)
| 질그릇(土の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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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 1975년 상반기
| 하야시 교코(林京子)
| 축제 마당(祭りの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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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 1975년 하반기
| 나카가미 겐지(中上健次)
| 곶(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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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마쓰 가즈오(岡松和夫)
| 시카노 섬(志賀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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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 1976년 상반기
| 무라카미 류
|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限りなく透明に近いブル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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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 1976년 하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
77
| 1977년 상반기
| 미타 마사히로(三田誠広)
| 나란 무엇인가(僕って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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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마스오(池田満寿夫)
| 에게 해에 바친다(エーゲ海に捧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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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 1977년 하반기
| 미야모토 데루( 宮本輝)
| 반딧불강(螢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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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키 슈조(高城修三)
| 비자나무 축제(榧の木祭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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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 1978년 상반기
| 다카하시 기이치로(高橋揆一郎)
| 신여(伸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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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시 미치쓰나(高橋三千綱)
| 9월 하늘(九月の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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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 1978년 하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
81
| 1979년 상반기
| 시게카네 요시코(重兼芳子)
| 산골짜기의 연기(やまあいの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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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노 소(青野聰)
| 바보의 밤(愚者の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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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 1979년 하반기
| 모리 레이코(森禮子)
| 흉내지빠귀가 사는 동네(モッキングバードのいる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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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 1980년 상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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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 1980년 하반기
| 오쓰지 가쓰히코(尾辻克彦)
| 아버지가 사라졌다(父が消え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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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 1981년 상반기
| 요시유키 리에(吉行理恵)
| 작은 귀부인(小さな貴婦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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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 1981년 하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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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 1982년 상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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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 1982년 하반기
| 가토 유키코(加藤幸子)
| 꿈의 벽(夢の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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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주로(唐十郎)
| 사카와 군이 보낸 편지(佐川君からの手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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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 1983년 상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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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 1983년 하반기
| 가사하라 준(笠原淳)
| 목공의 세계(杢二の世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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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기 노부코(高樹のぶ子)
| 빛을 품은 친구여(光抱く友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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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 1984년 상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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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 1984년 하반기
| 기자키 사토코(木崎さと子)
| 벽오동(青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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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 1985년 상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
94
| 1985년 하반기
| 고메타니 후미코(米谷ふみ子)
| 유월제(過越しの祭)
|
95
| 1986년 상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
96
| 1986년 하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
97
| 1987년 상반기
| 무라타 기요코(村田喜代子)
| 냄비 안(鍋の中)
|
98
| 1987년 하반기
| 이케자와 나쓰키
| 스틸 라이프(スティル・ライ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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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기요히로(三浦清宏)
| 장남의 출가(長男の出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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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 1988년 상반기
| 아라이 만(新井満)
| 심인의 시간(尋ね人の時間)
|
100
| 1988년 하반기
| 나기 게이시(南木佳士)
| 다이아몬드 더스트(ダイヤモンドダス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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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지(李良枝)
| 유희(由煕)
|
101
| 1989년 상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
102
| 1989년 하반기
| 오오카 아키라(大岡玲)
| 표층생활(表層生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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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키자와 미에코(瀧澤美恵子)
| 네코바바가 사는 거리에서(ネコババのいる町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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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 1990년 상반기
| 쓰지하라 노보루(辻原登)
| 마을의 이름(村の名前)
|
104
| 1990년 하반기
| 오가와 요코(小川洋子)
| 임신 캘린더(妊娠カレンダー)
|
105
| 1991년 상반기
| 헨미 요(辺見庸)
| 자동기상장치(自動起床装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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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노 안나(荻野アンナ)
| 짊어진 물(背負い水)
|
106
| 1991년 하반기
| 마쓰무라 에이코(松村栄子)
| 지성소 아바톤(至高聖所アバトーン)
|
107
| 1992년 상반기
| 후지와라 도모미(藤原智美)
| 운전수(運転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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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 1992년 하반기
| 다와다 요코(多和田葉子)
| 개 데릴사위(犬婿入り)
|
109
| 1993년 상반기
| 요시메키 하루히코(吉目木晴彦)
| 고요한 교외의 들판(寂寥郊野)
|
110
| 1993년 하반기
| 오쿠이즈미 야스히로( 奥泉光 )
| 돌의 내력(石の来歴)
|
111
| 1994년 상반기
| 무로이 미쓰히로(室井光広)
| 춤추는 나무인형(おどるでく)
|
쇼노 요리코(笙野頼子)
| 타임 슬립 콤비나트(タイムスリップ・コンビナート)
|
112
| 1994년 하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
113
| 1995년 상반기
| 호사카 가즈시(保坂和志 )
| 이 사람의 문턱(この人の閾)
|
114
| 1995년 하반기
| 마타요시 에이키(又吉栄喜)
| 돼지의 보답(豚の報い)
|
115
| 1996년 상반기
| 가와카미 히로미(川上弘美)
| 뱀을 밟다(蛇を踏む)
|
116
| 1996년 하반기
| 쓰지 히토나리(辻仁成)
| 해협의 빛(海峡の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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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리(柳美里)
| 가족시네마(家族シネ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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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 1997년 상반기
| 메도루마 슌(目取真俊)
| 스이테키(水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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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 1997년 하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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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 1998년 상반기
| 하나무라 만게쓰(花村萬月)
| 게르마늄 라디오(ゲルマニウムの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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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사와 슈(藤沢周)
| 부에노스아이레스 오전 0시(ブエノスアイレス午前零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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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 1998년 하반기
| 히라노 게이치로(平野啓一郎)
| 일식(日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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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 1999년 상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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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 1999년 하반기
| 현월(玄月)[6]
| 그늘의 집(蔭の棲み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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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치노 지야(藤野千夜)
| 여름의 약속(夏の約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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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 2000년 상반기
| 마치다 고 (町田康)
| 조각조각(きれぎ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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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우라 히사키(松浦寿輝)
| 하나쿠타시(花腐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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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 2000년 하반기
| 세이라이 유이치(青来有一)
| 성수(聖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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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에 도시유키(堀江敏幸)
| 곰의 포석(熊の敷石)
|
125
| 2001년 상반기
| 겐유 소큐(玄侑宗久)
| 중음의 꽃(中陰の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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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 2001년 하반기
| 나가시마 유(長嶋有)
| 맹스피드 엄마(猛スピードで母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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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 2002년 상반기
| 요시다 슈이치(吉田修一)
| 파크 라이프(パーク・ライ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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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 2002년 하반기
| 다이도 다마키(大道珠貴)
| 이렇게 쩨쩨한 로맨스(しょっぱいドライ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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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 2003년 상반기
| 요시무라 만이치(吉村萬壱)
| 철사벌레(ハリガネム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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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 2003년 하반기
| 가네하라 히토미(金原ひとみ)
| 뱀에게 피어싱(蛇にピアス)
|
와타야 리사
|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蹴りたい背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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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 2004년 상반기
| 모부 노리오(モブ・ノリオ)[7] 본명은 불명이며 필명의 유래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대중(mob, モブ)이다"는 생각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기혼자로, 아이가 하나 있다. 소설 이외로는 음악 활동 등에도 참여하고 있으나 2009년 "JOHNNY TOO BAD 우치다 유야"를 마지막으로 2018년 현재까지 새로운 단행본 작품을 내지 않고 있으며, 단행본 미수록 작품도 2006년 사자(死者)의 날을 마지막으로 후속작이 없다. 다만 2017년 7월에 "스바루" 8월호부터 <노려진 뇌>라는 작품을 내는 걸 보면 작품 활동 자체는 하고 있다. 개인 블로그를 하나 운영하고 있는데, 이름이 비범하게도 "세뇌부(MINISTRY OF BRAINWASH)"이다. 블로그 중간에 "그들의 세뇌에 맞서는 우리의 세뇌"라는 문구 등이 있으며, 일례라 할 수 있는 건지 아베 정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7월에 쓴 블로그 글 내용 중 "왜 저 새끼가 아직도 수상이죠? 아베 응원하는 종놈들은 하나같이 돌았나요?"라는 내용이 있다.
| 간병입문(介護入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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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 2004년 하반기
| 아베 가즈시게(阿部和重)
| 그랜드 피날레(グランド・フィナー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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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 2005년 상반기
| 나카무라 후미노리(中村文則)
| 흙 속의 아이(土の中の子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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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 2005년 하반기
| 이토야마 아키코(絲山秋子)
| 바다에서 기다리다(沖で待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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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 2006년 상반기
| 이토 다카미(伊藤たかみ)
| 팔월의 길 위에 버리다(八月の路上に捨て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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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 2006년 하반기
| 아오야마 나나에(青山七恵)
| 혼자 있기 좋은 날(ひとり日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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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 2007년 상반기
| 스와 데쓰시(諏訪哲史)
| 안드로메다 남자(アサッテの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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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 2007년 하반기
| 가와카미 미에코(川上未映子)
| 젖과 알(乳と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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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 2008년 상반기
| 양이(楊逸)
| 시간이 스며드는 아침(時が滲む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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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 2008년 하반기
| 쓰무라 기쿠코(津村記久子)
| 포트슬라임의 배(ポトスライムの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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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 2009년 상반기
| 이소자키 겐이치로(磯崎 憲一郞)
| 최후의 거처(終の住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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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 2009년 하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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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 2010년 상반기
| 아카조메 아키코(赤染晶子)
| 아가씨의 밀고(乙女の密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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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 2010년 하반기
| 아사부키 마리코(朝吹真理子)
| 기코토와(きこと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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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무라 겐타(西村賢太)
| 고역열차(苦役列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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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 2011년 상반기
| 수상자 없음
| 수상작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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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 2011년 하반기
| 엔조 도(円城 塔)
| 어릿광대의 나비(道化師の蝶)[8] 실험적인 문체로 당시 문단계의 보수성 문제도 있겠지만 수상 자체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작가의 이력이 한몫하는데 도후쿠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후 도쿄대 종합 문화 연구과 박사 과정을 수료한 꽤나 괴상한 이력이다. 전위적인 방식으로 단편들을 이어나가는 형식인데, 찬성하는 쪽에서는 다양한 장르에의 가능성을 내포한 작품이라고 평하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치기 어린 기교에 불과하다고 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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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신야(田中慎弥)
| 도모구이(共喰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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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 2012년 상반기
| 가시마다 마키(鹿島田真希)
| 저승길 여행(冥土めぐ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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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 2012년 하반기
| 구로다 나쓰코(黒田夏子)
| ab산고(abさん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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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 2013년 상반기
| 후지노 가오리(藤野可織)
| 손톱과 눈(爪と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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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 2013년 하반기
| 오야마다 히로코(小山田浩子)
| 구멍(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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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 2014년 상반기
| 시바사키 도모카(柴崎友香)
| 봄의 정원(春の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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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 2014년 하반기
| 오노 마사쓰구(小野正嗣)
| 9년 전의 기도(九年前の祈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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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 2015년 상반기
| 하다 게이스케(羽田圭介)
| 스크랩 앤 빌드(スクラップ・アンド・ビル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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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요시 나오키(又吉直樹)
| 불꽃(火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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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 2015년 하반기
| 다키구치 유키(滝口悠生)
| 죽지 않는 사람(死んでいない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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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야 유키코(本谷有希子)
| 이류혼란담(異類婚姻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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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 2016년 상반기
| 무라타 사야카(村田沙耶香)
| 편의점 인간(コンビニ人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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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 2016년 하반기
| 야마시타 스미토(山下澄人)
| 신세계 (しんせか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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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 2017년 상반기
| 누마타 신스케(沼田真佑)
| 그림자의 뒷면(影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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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 2017년 하반기
| 이시이 유카 (石井遊佳)
| 백년의 진흙(百年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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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타케 지사코 (若竹千佐子)
| 나는 나 혼자서 갈 테니 (おらおらでひとりいぐ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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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 2018년 상반기
| 다카하시 히로키 (高橋弘希)
| 배웅불 (送り火)[9] 정확한 뜻은 마지막 날 저승에 돌아가는 선조의 혼백을 보내기 위해 피우는 불, 내지는 죽은 사람을 집에서 내보낼 때 문에서 피우는 불이다. 전자의 경우 한국에도 '우란분'이라는 말이 있긴 하나 불교 용어이며 거의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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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 2018년 하반기
| 우에다 다카히로(上田岳弘)
| 니므롯(ニムロッ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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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야 료헤이(町屋良平)
| 1R 1분 34초(1R1分34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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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 2019년 상반기
| 이마무라 나츠코(今村夏子)
|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むらさきのスカートの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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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 2019년 하반기
| 후루카와 마코토(古川真人)
| 양미역취(背高泡立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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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 2020년 상반기
| 도노 하루카(遠野遙)[10] 수상 당시 1991년생으로 헤이세이 세대 첫 수상자
| 파국(破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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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야마 하네코(高山羽根子)
| 슈리의 말(首里の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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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 2020년 하반기
| 우사미 린(宇佐見りん)
| 최애, 논란(推し、燃ゆ[11] 여기서 推し는 밀어주는, 즉 팬이라는 뜻이고 燃ゆ란 우리나라 말로는 '논란'이라고 흔히 번역되는 炎上이라는 말을 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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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국내에 번역된 작품 목록
- 25회 아베 코보 《벽 S·카르마씨의 범죄》[12]
번역 전력 자체는 있으나 현재 구할 수 있는 온라인 서점 등은 없다.
- 29회 야스오카 쇼타로 《해변의 광경》
- 33회 엔도 슈사쿠 《백색인》
- 34회 이시하라 신타로 《태양의 계절》
- 39회 오에 겐자부로 《사육》
- 50회 다나베 세이코 《감상 여행》
- 51회 시바타 쇼 《청춘》
- 56회 마루야마 겐지 《여름의 흐름》
- 75회 무라카미 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 77회 이케다 마스오 《에게해에 바친다》
- 78회 미야모토 테루 《반딧불강》
- 100회 이양지 《유희》
- 104회 오가와 요코 《임신 캘린더》
- 110회 오쿠이즈미 히카루 《돌의 내력》
- 115회 가와카미 히로미 《뱀을 밟다》
- 116회 유미리 《가족시네마》
- 116회 쓰지 히토나리 《해협의 빛》
- 117회 메도루마 슌 《물방울》
- 119회 후지사와 슈 《부에노스아이레스 오전 0시》
- 119회 하나무라 만게쓰 《게르마늄 라디오》[13]
특유의 성적인 묘사와 폭력성으로 인해 한때 청소년유해간행물로 지정되어 논란이 있었으나 출판사 이상북스 측에서 재심을 청구, 문학성을 인정받아 청소년유해간행물 지정이 취소된 에피소드가 있다. 다만 취소된 것은 청소년 유해 간행물 지정 자체로, 위에서 언급한 문제로 인해 네이버 등에 검색해 책의 정보를 찾을 경우 성인인증을 필요로 한다.
- 120회 히라노 게이치로 《일식》
- 122회 현월 《그늘의 집》
- 124회 호리에 도시유키 《곰의 포석》
- 125회 겐유 소큐 《중음의 꽃》
- 126회 나가시마 유 《맹스피드 엄마》
- 127회 요시다 슈이치 《파크 라이프》
- 128회 다이도 다마키 《이렇게 째째한 로맨스》
- 130회 와타야 리사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 130회 가네하라 히토미 《뱀에게 피어싱》
- 131회 모브 노리오 《간병입문》
- 132회 아베 가즈시게 《그랜드 피날레》
- 133회 나카무라 후미노리 《흙 속의 아이》
- 134회 이토야마 아키코 《바다에서 기다리다》
- 135회 이토 다카미 《8월의 길 위에 버리다》
- 136회 아오야마 나나에 《혼자있기 좋은날》
- 137회 스와 데쓰시 《안드로메다 남자》
- 138회 가와카미 미에코 《젖과 알》
- 139회 양 이 《시간이 스며드는 아침》
- 140회 쓰무라 기쿠코 《라임포토스의 배》 (원제 : ポトスライムの舟)
- 144회 니시무라 겐타 《고역열차》
- 146회 엔조 도 《어릿광대의 나비》
- 150회 오야마다 히로코 《구멍》
- 151회 시바사키 도모카 《봄의 정원》
- 153회 마타요시 나오키 《불꽃》
- 155회 무라타 사야카 《편의점 인간》
- 157회 누마타 신스케 《영리》
- 159회 타카하시 히로키《배웅불》
- 161회 이마무라 나츠코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3. 작품 선발 과정과 선발 기준
아쿠타가와 상에서 규정하는 '신인'은 우리가 흔히 아는 '무명, 내지는 신인 작가'라는 개념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 개념은 너무 두루뭉술해서 '이 작가도 신인인가?'라는 말이 나와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전후 수상이 중단된 4년여간 동안 이른바 '전후파'라는 문학 사조가 등장하고, 이후 신인에게 준다는 개념에 미묘해져 결국 오에 겐자부로가 수상하던 당시 수상 위원이던 사토 하루오도 "아쿠타가와 상은 일본 신인의 등용문이 아닌, 신진 작가의 지위를 안정시키는 상이라 생각한다"고 비꼬는 일도 있었다. 이후에는 어떻게 논의가 잘 이루어졌는지 현대에는 데뷔 후 수년이 지나 다른 문학상을 다수 탄 작가가 아쿠타가와 상을 타는 일은 없다시피 하다.
그 다음은 작품의 길이인데, 근현대 소설에서 단, 중, 장편을 정확히 가르는 기준은 없기 때문에 아쿠타가와 상도 명시된 기준선 자체는 없으나, 원고지 100장에서 200장 정도의 작품을 주로 선정하게 된다.
[14] 어느 정도냐면, 동아일보의 신춘문예 단편은 원고지 70장 내외, 중편은 원고지 250장~300장 내외(줄거리 10장 포함)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한자 사용이 잦기 때문에 글자수를 줄여 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약간 짧은 정도라 생각하면 된다. 더 정확한 비교로는 모브 노리오의 '간병입문'을 예로 들자면, 한국 번역본은 112페이지, 일본어 원서는 106페이지이다.
제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 위원이었던
이시카와 다쓰조는 "거의 150장 정도까지의 단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1964년 상반기에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들의 젊은 날'은 무려 원고지 280장 분량으로 수상을 하게 되었으며, 1963년 하반기에는 사건이 생기는데 이노우에 미츠하루가 '땅의 무리'로 수상 후보가 된 것이다. 이미 유명 작가였기에
[15] 1956년 발표한 '과달카날전 시집'으로 인지도가 높았고 이후에도 '허구의 크레인', '사자(死者)의 시' 등 전쟁 전후의 일본을 날카롭게 다룬 작가로 당시 대중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수상이 결렬된 점도 있지만 작품의 분량이 당시 기준이던 70페이지를 넘었다는 이유로 불발되었던 것이 문제였다. 이에 대해 당시 수상 위원이던 이시카와 준은 '전혀 납득할 수 없다'고 분노하기도 했다.
정확한 기준은 없지만 현재까지 원고지 기준 300장이 넘어가지 않고, 연작이 아닌 작품 정도로 기준이 된다고 인식되고 있다.
대중문학 신인을 대상으로 하는
나오키상과는 분명 목적 자체는 다르나, 수상 목록을 보면 그 경계가 분명하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게르마늄 라디오>의 하나무라 만게츠의 경우도 대중작가로 인식되고 있었다. 다만
마쓰모토 세이초의 사례를 보면 작가들 간의 룰 같은 기준은 나름 있는 것도 같다.
선발 과정을 살펴보면 '상반기'에는 전년 12월에서 당해 5월, '하반기'에는 당해 6월에서 11월 사이의 작품 중에서 선정한다. 이 때 후보작은 일본문학진흥회에서 위탁하는 형태로 문예춘추의 20명의 스태프로 선발 위원이 구성된다. 5명 씩 4개의 반으로 나뉘어 각 반은 10일에 1번을 기준으로 매번 3,4개의 작품이 탈락하고, 이 과정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각 반의 작품이 선택되어, 이 작품들은 본회위(본선 작품 회의 위원회)로 가게 된다. 이 과정이 6~7번씩 도합 12~14번 반복되어, 후보작은 5~6작품이 되고, 이제 스태프들은 남은 후보 작품에 O, △, X 중 하나를 점수로 주게 된다.
이 때 최종 후보작이 결정된 후 수상 후보자들에게 각자의 수상 의지를 묻고, 이후 수상 의지 여부에 따라 최종 후보작을 발표하게 된다. 상반기에는 7월 중순, 하반기에는 1월 중순에 츠키자의 요정, 신키라쿠 1층의 방에서 진행된다. 이 때에도 O, △, X로 평가를 하게 되어, 이 점수를 바탕으로 수상 작품을 결정한다. 영 점수가 시원치 않은 경우 등에는 수상 작품이 없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