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리 ST

 


1. 소개
2. 역사
2.2. 아타리 코퍼레이션
2.3. 개발
2.4. 발매 후
2.5. 몰락
3. 특징
4. 모델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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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ari ST'''
아타리 8비트 컴퓨터의 후속작으로, 아타리에서 1985년에서 1993년 사이에 만든 개인용 컴퓨터이다.
아타리 ST를 통해 아타리는 게임 회사에서 컴퓨터 회사로 이미지를 바꾸게 되었다. 이름의 'ST'는 'sixteen', 'thirty two'. 즉, 16비트/32비트 CPU란 뜻이다. 메인 프로세서인 모토로라 68000이 외부 데이터 버스는 16비트 CPU이면서 내부적으로는 32비트 구조를 일부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

2. 역사



2.1. 아타리 쇼크 이후


1983년부터 아타리에서는 비디오 게임 시장의 축소로 손실을 엄청 입으며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도중에 1982년부터 그래픽, 사운드를 담당하는 특수 칩셋인 로레인(Lorraine)을 개발하고 있던 아미가 코퍼레이션에서 개발 자금이 모자라게 되자, 아타리와 접촉한 뒤에 자금 지원을 받아서 칩셋 개발을 이어서 했다. 당시에 아타리에서는 로레인 칩셋으로 게임기를 만드려 했으나 1984년에 게임기 대신에 컴퓨터로 개발하기로 방향을 바꾸었다. 당시에 아타리에서는 이 컴퓨터를 '아타리 1840XLD'로 지었다. 그 밖에도 아타리 내에서는 모토로라 68000 CPU를 사용한 컴퓨터(아타리 ST와 관련은 전혀 없는 컴퓨터이다.), 새로운 사운드칩 개발 등 여러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었다.

2.2. 아타리 코퍼레이션


코모도어 64를 만든 코모도어 회장 잭 트라미엘은 1984년에 코모도어에서 경영권 분쟁 문제로 회사에서 사퇴했다. 몇몇 핵심 직원들을 데리고 나가면서 자신의 두 아들과 함께 트라미엘 테크놀러지를 설립했다. 그리고 얼마 뒤에 워너 브라더스에서 아타리를 매각하려고 한다는 것을 잭 트라미엘이 알게 되었고, 아타리의 생산 시설과 유통망에 관심이 있던 그는 아타리의 소비자 사업부(게임기, 컴퓨터 사업 부문)를 2억 4천만 달러에 인수했다. 그 뒤 아타리 내에서는 아타리 직원들을 대부분 해고한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이는 곧 사실이 되었다. 캘리포니아 서니베일에 있는 아타리 본사에 도착한 잭 트라미엘은 아타리 내부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모두 취소했고, 아타리 직원들와 면접을 한 뒤 900명의 직원 가운데 100명만 남기고 모두 해고했다. 그리고 트라미엘 테크놀러지에 있던 전 코모도어 직원들이 합류하여 개인용 게임기, 컴퓨터를 담당하는 아타리 코퍼레이션이 되었다

2.3. 개발


아타리의 회장이 된 잭 트라미엘은 아타리에서 진행하던 개발 프로젝트들을 모두 취소하고 1984년 8월부터 1985년 1월까지 5개월 동안 라스베이거스의 1985년 1월 CES를 목표로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갔다.
초기 기획안은 16/32비트 CPU에 램은 256 KB, 롬은 128 KB를 사용하고, 마우스를 사용하는 GUI 운영 체제가 있는 컴퓨터였다. CPU는 내셔널 세미컨덕터의 NS32000[1]를 고려했지만, 비싼 가격에 생산량도 충분하지 않았고, 프로그래밍이 다른 CPU보다 까다롭고 성능도 불만족스러워서 모토로라 68000 CPU를 채택했다. 그리고 사운드 칩은 아타리 내에서 새로 개발하려고 했지만 시간과 가격 문제로 그때 아케이드 게임기와 컴퓨터에서 자주 쓰는 칩인 General Instruments AY-3-8910 칩을 야마하에서 조금 고친 YM2149F SSG칩을 사용했다. 운영 체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윈도를 아타리 ST로 이식하려고 했으나 목표 개발 기간이었던 1985년이 아닌 1986년까지 넘어가는 바람에 포기하고 대신에 디지털 리서치와 협력하여 GEM(Graphic Environment Manager) GUI 셸 프로그램[2]CP/M-68K 운영 체제를 사용하기로 하고 개발을 시작했다. 그리고 하드웨어를 만든 동안에 운영 체제와 소프트웨어를 만들고자 아타리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디지털 리서치 본사로 가서 일하게 됐다. 개발 과정 내내 기한을 맞추기 위해 직원들은 매일 야근을 하면서 개발에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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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당시에 디지털 리서치에서 일한 아타리 직원들.
개발이 이어지면서 계획도 조금씩 바뀌었다. 롬은 당시에 개인용 컴퓨터에서 많이 쓴 BASIC 인터프리터를 내장해야 했기 때문[3]에 128KB를 넘어섰다. 또한 1974년에 나온 CP/M은 1984년에는 이미 낡은 운영 체제였고, 아타리 ST가 목표로 하는 멀티태스킹에 필요한 기능이 부족해서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 디지털 리서치에서 CP/M-68K 대신 따로 개발하고 있었던 GEMDOS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CES에서 선보이기로 한 시제품의 운영 체제는 개발 진행이 느려서 CP/M-68K을 실행하는 것으로 하였다. 운영 체제도 'Atari TOS(The Operating System)'라는 이름을 붙였다.
1985년 1월에 CES에서 아타리측은 기존 아타리 8비트 컴퓨터 시리즈를 새롭게 디자인한 아타리 65XE, 아타리 130XE와 새로운 16비트 컴퓨터인 아타리 130ST[4], 520ST를 이에 대응하는 주변 기기들과 함께 발표했다. 발표 당시에 여러 의견이 있었는데, 빠른 기간 안에 이 정도의 컴퓨터를 싼 가격에 내놓은 것에 호의적인 의견과, 가난한 사람의 매킨토시라며 부정적 의견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매킨토시와 유사한 점[5]들 때문에 아타리 ST는 얼마 뒤에 '재킨토시(Jackintosh)'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때 전시된 아타리 ST는 미완성 단계이기 때문에 만지지 못하게 하고 대신에 LOGO로 작성된 데모들만 보여줬다. 그리고 여기에서 아타리에서는 4월에 아타리 520ST를 599 달러로 전용 소프트웨어와 발매할 예정이라고 홍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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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사진들.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이 잭 트라미엘이다.

2.4. 발매 후


1985년 6월에 판매를 시작한 아타리 520ST는 본체, 마우스, 외장 3.5 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기본으로 한 799 달러의 아주 저렴한 가격과 빠른 CPU 성능, 512색 팔레트, GUI 운영 체제 등을 장점으로 내세웠다.[6] 코모도어에서 개발한 아미가는 아타리 ST와 성능은 비슷하지만 해상도, 음향 면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타리는 아미가가 발매된 뒤에는 주로 아미가와 경쟁하면서 교육 소프트웨어나 게임을 하려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업무용 컴퓨터보다 그래픽이 좋고 아미가보다 저렴한 개인용 컴퓨터로 광고하고, 동시에 업무용으로 많이 사용한 매킨토시, IBM PC와는 저렴한 가격과 여러 업무용 소프트웨어로 경쟁 했다. 특히 MIDI 포트 내장으로 작곡가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2.5. 몰락


1990년대 초까지는 아미가와 대결 구도 속에서 나름 세력을 유지했지만 1990년대부터 그때까지 사무용이었던 IBM PC 호환 기종이 VGA사운드 카드로 무장하면서부터 판도가 바뀌었다. 원래 연산 능력은 가장 뛰어난 IBM PC 호환 기종이었는데, 거기다 그래픽과 사운드 기능까지 갖추게 되자 아타리 ST와 아미가의 멀티미디어 및 게임 성능을 앞지른 것. 그래픽, 사운드 도구 및 게임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판매 대수에서 넘사벽인 IBM PC 호환 기종 시장으로 돌아섰고, 아타리 ST와 아미가는 둘 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게다가 모토로라 68000의 후속 프로세서인 1988년에 개발한 모토로라 88100 프로세서가 크게 실패한 것 역시 타격이었다. 모토로라 88100 프로세서는 모토로라 68030 프로세서에 비해 성능 면에서나 가격 면에서 나은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토로라 88100 프로세서는 느렸을 뿐만 아니라 메모리 관리 유닛이 없어 모토로라 88200 프로세서와 쌍을 이뤄 채용해야 했는데 이미 메모리 관리 유닛을 내장한 모토로라 68030 프로세서에 비해 장점이 없었다. 또한 모토로라 88100 프로세서는 널리 보급되어 있었던 모토로라 68000과 호환성이 없었던 것도 큰 단점이었다. 1991년에 대폭 개선한 모토로라 88110 프로세서 역시 애플NeXT,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마저 외면했을 정도로 인기가 없었으며, 이 시기에 모토로라마저 IBMPowerPC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타리는 IBM PC 호환 기종 및 애플 매킨토시와 경쟁하기 위해 아타리 520STE부터는 팔레트 4096색까지 확장했고, 거기서 메모리를 1MB까지 늘린 아타리 MEGA STE를 내놓았고, 워크스테이션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모토로라 68030 32비트 CPU를 채용한 아타리 TT, 아타리 팰컨 같은 컴퓨터를 발매했지만 소프트웨어 부족으로 실패했다. 아타리는 계속 노력하였지만 벌어진 격차를 좁힐 수는 없었고, 아타리에서는 1993년 '''아타리 재규어에 집중하고자''' 아타리 ST 생산을 중단하고 개인용 컴퓨터 시장은 포기했다. 그렇게 해서 한동안 컴퓨터 회사이던 아타리에서는 다시 게임기 회사로 복귀를 시도했다. 그 이후 자세한 것은 아타리 재규어 문서 참조.

3. 특징


당대의 경쟁 상대로는 코모도어 아미가와 애플 매킨토시, 애플 IIGS, IBM PC 호환 기종 등이 있었다. 이중에 IBM PC 호환 기종은 사무용 컴퓨터로, 매킨토시는 출판 또는 그래픽 작업용 컴퓨터로 분류되어 아타리 ST와는 시장이 달랐고, 애플 IIGS는 나오고 나서 곧 도태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피 터지게 싸운 라이벌은 아미가이다.
아타리 ST는 제품 기획부터 매장에 실제 물건이 깔리기까지 기간이 겨우 1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짧은 기간에 만들어졌음에도 허접하지 않은 물건이었다. 1985년 6월에 처음 나온 '''아타리 520ST'''는 CPU에 모토로라 68000 8 MHz, 512 KB의 메인 메모리[7]로 구성했다. 320×200의 해상도에 512색 가운데 16색과 640×200의 해상도에 4색, 그리고 640×400의 해상도에 단색을 표현할 수 있었고, 처음으로 풀 컬러 GUI 운영 체제[8]를 장착한 컴퓨터였다.
가격이 저렴했을 뿐 아니라 320×200 해상도가 주류인 아미가에 비해 아타리 ST는 비록 단색일 뿐이었지만 640×400의 고해상도를 지원했고, CPU 클럭이 더 빠르기 때문에 특히 독일 등에서는 CAD용 컴퓨터로 많이 쓰였다. 또한 처음으로 MIDI 포트를 기본으로 내장한 개인용 컴퓨터이기도 하다. 아타리 ST가 가장 각광을 받은 것은 음악 분야로 MIDI 포트가 기본으로 있었던 덕분에 작곡가들이 작곡 작업을 할 때 아타리 ST를 많이 사용했다. 현재도 사용되고 있는 음악 소프트웨어인 큐베이스로직 역시 아타리 ST용으로 처음 발매되었다.
게임으로는 아미가에게 좀 뒤진다고 해도 당대의 다른 컴퓨터들에 비하면 최상급의 성능을 자랑했으므로 한동안 아미가와 함께 최고의 게임 머신으로 이름을 날렸고, 둘은 CPU와 그래픽 해상도가 같아서 게임 소프트웨어를 서로 용이하게 이식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미가와 아타리 ST로 이식되어 나온 게임 가운데 어느 정도는 그래픽이 거의 똑같이 이식되었다.
몇몇 모델은 마우스나 조이스틱을 연결하는 포트가 컴퓨터 키보드 밑에 있어서 매우 불편하다.
아타리 ST로 처음 나온 게임 MIDI Maze는 MIDI 포트를 연결해 여러 명이 동시에 대전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이걸 현재 온라인 멀티 플레이의 시초로 보기도 한다.

4. 모델


모델명의 'F'는 플로피 드라이브 내장모델, 'E'는 그래픽 향상 모델, 'M'은 RF 모듈 내장모델이다.
  • 아타리 520ST/520STM/520STFM
  • 아타리 1040STF/1040STFM
  • 아타리 MEGA ST 2/4
  • 아타리 520/1040 STE
  • 아타리 MEGA STE
  • 아타리 STacy[9]
  • 아타리 ST BOOK[10]
  • 아타리 TT030
  • 아타리 Falcon030

[1] 세계 최초의 32비트 CPU이지만 인텔 8086과 모토로라 68000에 밀렸다.[2] 그 당시에 IBM PC 호환 기종용으로 개발하고 있었다.[3] 디지털 리서치 사의 GEM BASIC을 채택하려 했지만 성능이 좋지 않아 포기했다.[4] 실제로는 발매되지 않았다.[5] 같은 CPU, 유사한 GUI 운영 체제, 개발 당시 잭 트라미엘의 주도로 개발한 것[6] 이것은 16비트 컴퓨터이다. 3년 뒤에 한국에서 출시된 8비트 MSX2인 대우 X-II가 대략 저 가격이었음을 생각하자.[7] 원래 128 KB로 하려고 했는데 운영 체제를 로드하고 나니 메모리가 꽉 차버려서 용량을 늘렸다고 한다.[8] 더 일찍 나온 매킨토시도 GUI 운영 체제였지만 그 당시엔 흑백이었다.[9] 휴대용 모델이다. 다만 무게와 크기 때문에 휴대성이 매킨토시 포터블 급으로 나쁘다고.[10] 아타리 STacy의 후속작. STacy에 비해 일반적인 노트북 수준으로 경량화에 성공했지만, 전세계적으로 500여 대 정도밖에 안 팔려서 현재는 수집가들 사이에서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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