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모도어 64

 


[image]
'''코모도어의 컴퓨터'''
'''CPU'''
'''모델명'''
KIM-1
PET
VIC-20
'''64'''
Plus/4
128
CBM-2
SX-64
MAX
Machine
Educator
64
16
모토로라
68000

(1985~1996)
[image]

'''코모도어 64 광고 영상'''
'''Commodore 64'''
1. 개요
2. 상세
3. 한국에서의 코모도어 64
4. 복각
5. 기타


1. 개요


1982년에 코모도어 인터내셔널에서 발표한 8비트 가정용 컴퓨터이며, 코모도어의 전작인 VIC-20의 발전형이다. 이름에 '64'가 붙어 있는데, CPU64비트라는 뜻이 아니라 메모리 용량이 '''64KB'''라는 뜻이다. 약자는 'C64'이다.

2. 상세


'''초기 가격은 $595'''로써, 같은 시대에 발매된 다른 컴퓨터들보다 아주 싼 편이었다. 실제로 CES에서 처음 공개된 때에 다른 곳에 부스를 열고 있던 아타리 컴퓨터의 개발진이 찾아와서 '''"어떻게 그 가격이 가능하냐"'''라고 물어봤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 컴퓨터가 기획 및 발매된 1981~1982년엔 메모리가 진짜 끝장나게 비싼 부품이었기 때문이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시기에는 64kbit(8KB) 메모리 칩 한 개에 $100가 넘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 당시는 메모리 가격이 비싸긴 해도 기술 발전으로 가격 하락 속도 또한 굉장히 빨랐던 시기라 이런 가격이 오래가진 않았지만, 당시 잡지 광고 등을 살펴보면 1981년 전반기에도 64Kbit 메모리는 $50 정도에 팔렸던 것을 볼 수 있으니 아무리 가격이 떨어져도 여전히 비싼 부품이었다. 이거야 소매가니까 도매가와는 또 다르겠지만, 어쨌든 그 시점에서는 이런 거 8개 박아서 64KB로 구성하면 원가가 비쌀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집어넣고 어떻게 그 가격이 나오냐고 다른 회사가 경악할 만도 했던 셈이다. 코모도어 64가 발표된 1982년 1월 경에 다른 컴퓨터들의 메모리와 가격은 추가 카드를 꽂아 메모리를 64KB로 확장한 애플 II+가 $1200 남짓, 아타리 800을 위한 32KB 확장 메모리 보드가 $150~200선에 팔렸고, 코모도어 64가 출시되기 2년 전에 자사가 출시했던 VIC-20은 5KB의 메모리를 넣어서 $300에 판매되었다.
이렇게 가격을 내릴 수 있었던 건 코모도어의 CEO였던 잭 트라미엘[1][2]이 DRAM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을 내다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예측은 놀랍게도 적중해서 같은 해 8월에 실제 생산해서 발매한 무렵에는 그럭저럭 수지를 맞출 정도까지는 떨어졌다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후에도 가격은 계속 떨어져서 이듬해인 1983년에는 일본 메모리 반도체 치킨 게임이 시작되었고, 64Kbit 메모리 칩은 소매가로도 $10 아래까지 내려간다. 그에 더해서 수직 계열화[3]와 대량 생산 및 대량 납품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에 의뢰한 부품의 대량 구매를 통한 원가 절감, 저가 부품의 사용 등으로 싸게 생산해 파는 박리다매 전략을 펼쳤다. 출시 가격은 $595였지만, 출시 이후에 공격적인 가격 인하를 계속하여 1983년에는 이미 딜러가를 $200까지 내려서 소매가는 $300선, '''1984년에는 본체 소매가 $200선에 컬러 모니터와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까지 갖춰도 한 $600 정도면 살 수 있었다.'''[4] 당시 다른 기종 갖고 이렇게 갖추려면 일단 천 달러는 기본으로 넘기고 시작했다. 오늘날에도 가성비의 전설로 남아 있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이게 얼마나 싼 것이냐 하면, 십여 년 뒤에 IBM PC[5] 호환 기종의 본체 가격이 $500로 내려가는 것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었다. 그래서 1980년대의 한국에 MSX나 애플이 아니라 코모도어 64가 들어와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겠지만, 애플 IIMSX가 인기가 있었고 그 이유는 하술한다.
하지만 저가라서 이윤이 적게 남았다고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 당시 투자 분석가들의 원가 분석에 따르면, '''코모도어 64의 가격을 $99까지 낮춰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계산했다. 그야말로 거대한 이윤의 덩어리였다.
사양은 MOS 테크놀로지 6510[6] 1.023 MHz(NTSC 버전)/0.985 MHz(PAL 버전) CPU, 64KB RAM+20KB ROM, VIC-II 320×200 해상도 단색 그래픽, 운영 체제로는 코모도어 커널과 개발 환경으로는 코모도어 BASIC 2.0을 갖추고 었다. 확장 단자도 많고 주변 기기도 풍부한 게 장점으로서 조이스틱, 카드리지 애드온, 컴포지트 출력 단자, 데이터세트(Datasette)라고 불린 카세트테이프 데이터 레코더 애드온, RS-232 직렬 포트 등이 있다.
첫 등장 이후로 1986년도까지 북미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컴퓨터로, '''최대 시장 점유율은 무려 40%'''나 되었고, 이후에도 꾸준히 30%대를 유지했다. 가히 1980년대의 대세라고 할 수 있겠다. IBM은 대기업 사무용 컴퓨터 납품을 전문으로 했기 때문에 IBM PC는 업무용이라는 이미지와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으로 인해 가정용으로는 잘 안 팔렸다. 실질적인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애플 II의 경우에는 애플 II+에 비하면 나중에 나온 코모도어 64쪽이 약간의 성능적 우위를 가지고 있었고[7] 그보다 상급 기종의 경우에는 지나치게 높은 가격 정책 때문에 외면받았다.[8] 아타리에서는 같은 시기 코모도어와 거의 비슷한 사양의 컴퓨터를 냈지만 가격이 899$로 더 비쌌고, 아타리 쇼크의 여파로 신뢰받기 힘든 상황이었으니 코모도어가 잘 팔린 건 시대를 잘 타고난 덕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전자제품 전문점이 아닌 일반 소매점에서 판매한 것도 세일즈 포인트였다. 코모도어 64의 모양은 본체와 키보드가 일체화 되어 있는 형태로, 모니터가 없는 대신에 텔레비전에 연결하여 TV를 출력 장치로 쓰기 때문에 타 기종들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있었다.[9] 생김새 때문에 별명은 'Breadbox'(빵상자)(...)였다.
보조 기억 장치로는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와 카세트 테이프를 사용하고, '''1만 개 이상의 상용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져서 팔렸으며, 개중에는 당연히 코모도어 64의 그래픽/사운드 성능을 살린 게임도 아주 많다. 애플 II판으로 발매되어 국내에 알려진 대부분의 게임들이 코모도어 64판으로도 나와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정도이다. 그리고 애플판과 코모도어 64판이 함께 있는 게임은 십중팔구 코모도어 64판 쪽이 퀄리티가 낫다. 그래서인지 '출력장치는 TV'라는 특성과 함께 어우러져 과거에 한국에서 MSX를 게임기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처럼, 미국에서는 코모도어 64를 게임기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좀 있다. 이런 이유인지 PC 게임을 다루지 않는다는[10] AVGN도 코모도어 64 게임은 가끔 다룬다.[11] 한국 내의 팬이라면 AVGN을 통해서 코모도어 64를 처음 접한 사람도 많을 듯하다. 실제로 2008년부터 닌텐도에서는 버추얼 콘솔로 코모도어 64용 게임을 에뮬레이트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하고, 애플에서는 앱스토어로 코모도어 64 클래식 게임들을 판매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코모도어 64 게임으로 심즈의 원조격인 리틀 컴퓨터 피플이 있다.
성공에 힘입어 많은 파생 기종이 나왔고, 개중에는 아예 게임만 할 수 있는 '코모도어 64 게임 시스템'[12] 과 운반하기 쉽도록 설계된 '코모도어 SX-64', 제대로(?) 생산비를 절감하기 위해 디자인을 변경한 '코모도어 64C' 등이 나왔다. 1986년에는 GUI 운영 체제인 GEOS가 등장했다.
후속 컴퓨터 기종은 코모도어 128을 거쳐 아미가로 발전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많이 팔리고 있었던 덕분에 코모도어 64는 다른 코모도어 8비트 컴퓨터들에 비해 파산하는 그 순간까지 생산됐다. 또한 이 때문에 아직도 코모도어 64를 이용하는 애호가들이 상당히 많다. 케이스나 PCB의 복각판이 아직도 판매되고 있어서 구매하지 못하는 부품 몇 개만 제외하면 완전한 코모도어 64를 만들 수도 있다.
현재도 '이상적인 컴퓨터'를 구상하라면 유닉스 워크스테이션의 성능(UNIX Workstation Power), IBM PC의 확장성(IBM PC Compatibility), 애플의 그래픽(Apple Graphics), '''코모도어의 가격(Commodore Price)'''이라는 4가지를 꼽을 정도로 역사에 남은 컴퓨터이다.

3. 한국에서의 코모도어 64


코모도어 64의 전성기 때, 한국에서는 대체로 애플 II 복제품과 MSX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고, 코모도어 64는 정식 발매는커녕 호환 기종도 없었던 탓에 매우 보기 힘들었다. 1980년대 당시에 한국은 개발도상국이어서 한국인들의 가계 경제력으로는 가정용 컴퓨터 장만 자체가 매우 큰 부담이었고, 미국제, 일본제 등의 오리지널 컴퓨터를 수입해 오는 것은 엄청난 부자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국산 컴퓨터도 30~50만 원이었는데, 이는 당시 사립대학 한 학기 등록금에 육박한 금액이었다. 이런 주머니 사정이 애플 II 복제품이 인기를 끈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 중소 기업에서 '''복제품'''[13]을 만들어 대략 30만 원 정도로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공급했기 때문에 복제품의 대량 보급이 가능하였다. 관련 소프트웨어 역시 복제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은 정품 패키지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던 흑역사가 존재한다. MSX는 아예 규격 자체가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대우전자를 비롯한 국내 대기업들이 직접 뛰어들 수 있어서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코모도어 64의 특징인 싼 가격은 애플 II 복제품이, 간이 게임기를 겸하는 가정용 컴퓨터 역할은 MSX가 완벽히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는 코모도어 64가 보급될 여지가 딱히 없었던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코모도어 64의 제품 특성도 한몫을 한다. 애플 II는 애초에 개방형 아키텍처 규격이었던데다가, 전용 칩 따위는 발주해서 생산할 주제가 못 되었던 영세 벤처 기업 제품답게 흔한 범용 TTL(Transistor-Transistor Logic: 트랜지스터-트랜지스터 논리) IC 회로를 이리저리 짜맞춰서 구성한 물건이라 복제도 쉬웠다. MSX는 복제품이 아닌 라이선스 생산품이긴 했는데, 이것도 '범용 부품들을 모아서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이 가능한 공통 규격 컴퓨터를 만들어보자'는 기본 이념으로 만들어진 규격이라서 생산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코모도어 64는 MOS 테크놀로지를 계열사로 갖고 있는 회사 물건답게 '''CPU, 그래픽, 사운드에 모두 전용 칩을 사용하고 있어서 복제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나름대로 커스텀 칩으로 구성되어있었던 닌텐도 패미컴도 수많은 복제품이 만들어졌듯이, 돈만 된다면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복제품을 만들지 못할 리가 없었지만... 코모도어 64는 정품 자체가 워낙 심하게 싸다 보니까 그보다 싼 값에 복제품을 만들 수 없었다(...). 코모도어 64의 저렴한 가격은 상술한 대로 저렴한 원가에 있는 것인데, 이는 복제품 제조업자에게는 가능한 수준이 아니다. 게다가 코모도어는 다른 곳에 제조 라이선스를 주지도 않았다. 이렇다보니 한국은 물론이고 대만 등에도 애플 II 복제품이 흔하게 널려있던 시절이 있었지만 코모도어 64는 그런 것이 없었다.
당시 국내에서 어떻게든 복제품을 만들었다고 쳐도 한국에서 수십만, 수백만 대씩 팔렸을리는 없으니 코모도어처럼 싸게 만들 수도 없었을테고, 정품이 아무리 싼 물건이라지만 그게 바다를 건너와 한반도까지 수입되는 과정을 거치면 쌀 리가 없었을 테니 직수입도 그렇게 경쟁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연히 1980년대는 지금처럼 미국에서 디자인하면 대만 기업이 중국에서 생산해서 세계에 판매하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다.[14] 또한 당시 국내에 판매되던 가정용 컴퓨터들은 비록 외국산의 복제품이라도 어떤 식으로든 한글을 표시할 수 있도록 개조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1980년대에 한글 지원이 되는 8비트 기기의 한글 구현 능력은 지금 보면 뭐 조악하기 짝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예 한글 지원이 안되는 물건하고 비교가 되겠는가. 그리고 당시 정부 정책을 생각해보면, 보따리 수준으로 소량 들여다 파는거면 모를까 과연 '한글도 안 나오는 가정용 컴퓨터'에 대해 대규모의 수입 허가가 나왔을지부터가 의문스런 일이기도 하다. 1980년대의 한국은 국산 제품 보호라는 미명하에 외국에서 가전 제품을 수입해서 판매하는 것에 대한 규제가 상당히 빡쎘다.
물론 미국에서 개인이 직접 사다 쓰는 정도는 가능한 일이었겠고, 아마 실제로 쓰던 사람도 있기는 했겠지만, 사용자가 많지는 않은 기종이다보니 소프트웨어 수급은 스스로 알아서 다 하는 수밖에 없었을테고, 특히 그 시절에는 꽤나 막막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게 그런 대단한 노력을 들여가면서까지 쓸 만큼 대단한 물건이냐 하면 그게 참 애매하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코모도어 64는 미국 현지에서의 대성공에 비해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매우 낮은 기종이었다. 복제품덕분에 한국에 널린 라이벌 제품 애플 II나 여전히 많은 수의 올드팬을 자랑하는 MSX와 비교하면 한없이 후달리는 인지도를 갖고 있다. AVGN 유튜브 영상에서 처음 보았다는 사람도 꽤나 많다. 사실 이는 그 역도 성립하는데, 코모도어 64가 활발히 보급된 지역에서는 MSX가 상대적으로 마이너이다. AVGN에서도 MSX 얘기가 간혹 나올 때면 '일본의 가정용 컴퓨터'라는 부가 설명을 붙여서 시청자들의 이해를 도울 정도이다.
만일 그 시절에 누군가가 이 물건의 복제품을 만들거나, 정품을 수입 및 개조해서 한글 롬(ROM)을 장착하고, 소프트웨어를 들여다가 배포하고, 일부라도 한국어화해서 발매할 수 있었다 쳐도 과연 그것이 경쟁 기종들보다 매력이 있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가격면에서의 장점이 아니라면 남는 건 풍부한 소프트웨어뿐인데, 당연하게도 코모도어 64는 소프트웨어가 기본적으로 다 영어판이고, 이 분야에서 애플 II가 코모도어에 결코 밀리는 기종이 아니다. 게다가 여기까지 오는 것은 세운상가의 영세 업체나 오퍼상 레벨에서는 도저히 하기 힘든 규모의 일이기도 하고...
코모도어의 기종이 한국에 정식 발매된 건 한참 뒤인 1990년, 코모도어 아미가를 통해서였다. 아미가 500과 2000을 한국에 발매하기는 했지만 보급 시점 자체가 늦은데다 소프트웨어 한국어 번역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 때는 이미 1989년 한국에서 교육용 PC 기종으로 IBM PC 호환기종을 선정하여 IBM PC 및 호환기종이 급격히 시장의 대세로 떠오른 이후인데다가 가격도 상대적으로 고가였던 탓에 일반 개인 유저들 상대로는 거의 팔리지 않았다. 다만 아미가의 경우 방송 및 영상 분야에서는 1990년대 중반까지[15] 널리 쓰일 정도로 인지도가 있었다.

4. 복각


'''결국 2011년에 복각으로 부활했다.''' (#1, #2) 최신 스펙이지만 디자인 부분에서는 1980년대의 코모도어 64와 다른 게 전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콘셉트를 잘 살렸을 뿐이지, 키보드 레이아웃 및 각인된 폰트부터 다르다. 현존 PC의 인터페이스를 넣을 수밖에 없는 뒷면과 옆면은 말할 것도 없고. 가격도 크고 아름답다.[16]
Retro Games라는 회사에서 미니 콘솔 버전인 'The C64 Mini'를 출시했다.(#) 원래는 위의 2011년 버전과는 정반대로 코모도어 64의 성능에 외형을 현대화한 'The 64'를 제작할 예정이었으나, 모종의 사유로 인해 지연되면서 C64 미니를 출시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이 제품의 키보드는 실제로 동작하지 않는다. 크기가 작아서 입력이 쉽지 않기도 하고, 게임 위주인 복각 콘솔이기 때문에 키보드가 거의 필요없기도 하다.[17] 다른 복각형 콘솔과 다른 점으로는 USB 드라이브를 이용해서 수록된 것 이외의 코모도어 게임 롬을 실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The C64 Mini에 장착된 USB단자가 2개밖에 없어서 키보드를 쓰려면 USB허브가 필요하다. 2019년 12월에는 Maxi라는 풀사이즈 버전이 발매되었다.The C64 Maxi 리뷰(The 8-Bit Guy)
현재 Gideon's Logic라는 업체에서 FPGA를 사용하여 Ultimate-64라는 이름으로 코모도어 64의 클론을 제작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이 업체는 이미 코모도어 64의 주변 장치를 개발했다.(#)
레트로 기술들을 주로 다루는 유투버 'The 8-Bit Guy'를 중심으로 코모도어64의 커널과 Basic을 기반으로 완전히 새로운 8비트 컴퓨터인 'Commander X16'을 제작하고 있으며, 비교적 단순한 구조로 인해 컴퓨터 아키텍쳐 교육용으로 적합하지만, 단종된지 오래된 구형기기이기 때문에 한계점(희소성, 가격, 부품및 주변기기수급의 어려움, 장기간 운용으로 인한 불안정성 등)이 존재한다는 8비트 컴퓨터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기획되어 시중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부품들을 사용하도록 설계되었으며, 덕분에 현세대 주변기기사용이 가능해지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출시가 가능해졌다고 한다. FPGA를 통해 구현된 제품이 아니며, 하드웨어 구조도 코모도어 64와 다르기 때문에 코모도어 64와 일부 소프트웨어만 호환된다.# #

5. 기타


여담이지만 코모도어에서는 Commodore PET을 먼저 내놓은 바 있다. 이 제품은 1977년에 발표되었는데, 애플 II를 간발의 차로 제치고 역사상 최초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PC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코모도어 64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는 일반적인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와는 다르게 독립적으로도 작동할 수 있는 컴퓨터[18]를 내장하고 있으며, 이 컴퓨터가 플로피 디스크의 데이터를 읽어서 보내주거나, 받아온 데이터를 플로피 디스크에 저장하는 작업을 한다. 원가를 절감하고 작동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이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코모도어 64는 SID 사운드 칩이 한번 바뀌었던 기록이 있다. 전기형에 속하는 SID 6581 칩은 당시 불완전한 설계로 인해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완벽히 분리시키지 못한 탓에 독특한 하드웨어 결함이 있었다. SID 칩은 공식적으로 3채널만 지원하지만 하드웨어 결함으로 인해 볼륨 레지스트를 조정하면 기존 3채널 외에서 들리는 특유의 클릭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이를 이용해 원하는 샘플값에 따라 볼륨 레지스터를 빠른 속도로 조절하면 가상적으로 4번째 채널에서 샘플을 연주하는 것이 된다.[19] 이를 이용해 각종 가상의 4채널 코모도어 64 음악이 만들어 졌다.(#)[20] 이후 후기형인 SID 8580 칩에서는 그 결함이 수정되어서 해당 칩이 달린 코모도어 64에서는 4채널이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AVGN에서 등장한 코모도어 64는 윈도우 기반 PC로 개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PC 화면을 미리 촬영해서 코모도어 64의 모니터(산요 CRT TV)에 합성한 것이다.
[1] (1928~2011) 폴란드 출생. 한국에서는 거의 인지도가 없는 사람이지만, 1980년대에 스티브 잡스의 라이벌로 알려졌던 사람은 빌 게이츠가 아니라 바로 이 사람이다.[2] 유대계이고 나치 독일홀로코스트 생존자이다. 코모도어의 창립자로, 자기가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났다는 점은 스티브 잡스와 같다. 1984년 코모도어를 뛰쳐 나오면서 동시에 쫓겨나기도 했다. 그 이유는 코모도어 경영에 대한 관점이 동업자였던 어빙 굴드와 달라 서로 크게 싸웠기 때문이었다. 하청업체나 거래상들에게는 상당히 악질적인 경영자로 알려져 있지만 개발진인 기술자들과는 굉장히 친했다고 한다. 코모도어에서 쫓겨난 뒤, 기울어져 가던 아타리를 인수해서 재기를 노렸다. 이 사람이 쫓겨난 후 코모도어는 아미가까지는 그럭저럭 버텼지만 아미가의 시장성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코모도어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잭 트라미엘 역시 재기를 노렸던 아타리를 포기하고 매각했다. 심지어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6개월 뒤에 사망했기 때문에 사망 시점까지 비슷하다.[3] 가장 핵심적인 반도체인 CPU를 생산하는 MOS 테크놀로지를 코모도어에서 인수해서 자회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타리 2600, 애플 II, 닌텐도 패미컴의 메인 CPU인 6502 시리즈가 바로 MOS 테크놀로지의 제품이다. 다만 패미컴의 CPU는 라이선스를 받은 리코에서 생산했다.[4] 당시의 판매가가 나와있는 잡지를 보여주는 영상을 보자 [5] 물론 XT나 AT는 아니다.[6] MOS 테크놀로지 6502에서 코모도어 64에는 필요없는 기능을 제거하고 메모리 영역과 관련된 기능을 추가한 커스텀 버전이다. 6502가 사용할 수 있는 최대 메모리 용량은 램과 롬구분없이 모두 합쳐서 64KB라서 64KB의 램을 활용할 수 있게 메모리를 영역별로 나눠서 상황에 맞게 실시간으로 교체할 수 있도록 추가기능을 넣었다고 한다.[7] 그래서 나온 것이 애플 IIe이다.[8] 극단적인 사례로 애플 리사 참고. '''$9995'''라는 미친 가격을 자랑했다.[9] 위의 사진에 있는 코모도어 64용 모니터는 일반적인 모니터가 사용하는 RGB 단자 대신 컴포지트 단자가 달려있는 물건으로서 지금도 이베이에서 검색해보면 중고 매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나름대로 화질도 괜찮고 S단자도 있어서 레트로 게이밍용으로 꽤 각광을 받는 모양이다. 코모도어 64와는 S단자-컴포지트 컨버터 케이블을 통해 연결한다.[10] 빅 릭스가 유일하다.[11] 메탈기어같은 MSX 게임을 다룬 적도 있다.[12] 키보드를 제거하고 카트리지 게임만 할 수 있는데, 코모도어 64의 게임들은 대부분이 카세트 테이프나 플로피 디스크로 나와서 카트리지 게임이 적었고, 발매연도가 1990년이라서 이것보다 나은 게임기가 많았던 이유로 그다지 팔리지 않아서 망했다.[13] 한국은 국제저작권협회에 가입한 1987년이 돼서야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는 '''컴퓨터프로그램 보호법'''이 발효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에는 복제품을 마구 만들어 유통해도 처벌할 근거가 없었다. 프로그램 보호법은 국제 표준을 따르기 위해 2009년에 저작권법과 통폐합되었다.[14] 당시 직수입 컴퓨터를 유통하는 업체가 있긴 했는데 관세와 수입 비용을 포함하여 현지 가격의 2배 정도였다고 한다.[15] 이후에는 코모도어의 아미가 계열 PC에서 애플의 매킨토시 계열 PC로 교체되었다. 현재는 윈도우 PC와 병행 활용하는 중이다.[16] 게다가 이름만 빌린 제품일 뿐이어서 코모도어 64의 후속 모델이라고 하기도 어렵다.[17] 일부 필요한 부분에서는 조이스틱으로 가상 키보드를 입력하거나 USB 키보드를 연결할 수 있다.[18] 코모도어 64에 사용된 MOS 테크놀로지 6510의 원본이면서 패밀리 컴퓨터애플2에 사용된 MOS 테크놀로지 6502를 CPU로 사용한다. [19] 이 '가상의 채널'은 4비트 음원값을 가진다.[20] SID 칩은 파형이 톱니파·삼각파·사각파·노이즈로 이루어져 있다. 채널이 5개지만 채널별로 사용할 수 있는 파형이 정해진 패미컴과는 다르게 가상의 4번째 채널을 제외한 모든 채널에서 실시간으로 파형을 변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