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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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는 Apple의 설립자 중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제멋대로 하고 다녀서 이사회의 감시를 받고 있었고 심지어 CEO인 존 스컬리와의 마찰도 심각했다. 마찰 끝에 잡스는 존 스컬리를 쫓아내려고 이사회에서 투표를 걸었으나 깔끔하게 졌고, 1985년 그는 Apple을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Apple에서 쫓겨난 잡스는 마찬가지로 Apple을 나온 일부 엔지니어들과 함께 NeXT를 설립했다.
잡스가 그 본성을 발휘해 완벽을 기하다 보니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NeXT에 영입된 IBM 출신 세일즈맨의 경험에 의하면, 잡스가 3년 걸려 만든 작품을 보여주겠다면서 무언가를 덮고 있는 천을 치우니 콘크리트 블럭이 나타나 경악했는데, 그 순간 잡스가 모니터 받침대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바람에 어이가 없었음에도 잡스의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굉장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실제 모니터가 준비되지 않아 받침대 위에 모니터 대신 콘크리트 블럭을 올려놓고 받침대의 예술적인 라인을 설명했다는 것이다.
공장 역시 잡스의 이상이 완전히 실현되어, 완전 자동화가 이루어져 단 세 명의 인력으로 생산 라인을 가동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라인이 설치된 작업장은 한 면이 유리로 되어있어 바깥에서 투어가 가능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 기계들이 주로 일제로 생산 방향이 NeXT 사옥 투어 루트와 반대로 흘러간다는 점. 결국 비싼 값에 특수 주문한 기계들을 들여왔다고 한다.
1984년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실리콘 밸리에 방문했을 때 그 오찬에 참석한 스티브 잡스는 DNA 재조합 기술로 1980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은 과학자 폴 버그 박사를 만났다. 당시 버그 박사는 자신의 DNA 재조합 기술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싶었지만, 이를 위한 습식 실험실의 건설 비용은 굉장히 비쌌다. 게다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위한 적당한 성능의 컴퓨터는 너무 비싸거나 저렴한 컴퓨터는 너무 느려 시뮬레이션을 하기에 부적합했다. 버그 박사는 잡스에게 대학 교육을 위해 합리적인 가격의 3M 컴퓨터[1] 가 필요하다며 이를 Apple에서 만들 것을 제안했다. 잡스는 그 제안에 흥미를 느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잡스는 Apple을 떠났고, Apple의 직원을 데리고 나와 세운 NeXT에서 그의 제안을 구체화해 만들고자 했다. 출시한 제품군은 NeXT 컴퓨터와 큐브 디자인을 사용한 컴퓨터인 NeXTcube와 NeXTcube 터보, 그리고 NeXTstation, NeXTstation 컬러, NeXTstation 터보가 있었다.
워크스테이션답게 화려한 사양으로 무장했다. 특유의 검정색 케이스 속에 모토로라 68030 또는 68040 CPU를 장착하였다. 게다가 부동 소수점 연산 장치였던 FPU 모토로라 68882를 탑재했고, 추가 연산 장치로 DSP 모토로라 56001도 탑재했다. 동작 클럭도 25~33MHz로 당시에는 고속이었다. 메인 메모리도 NeXT 컴퓨터는 16MB, NeXTcube는 64MB, NeXTstation은 최대 128MB까지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모니터 역시 그 당시 일반 모니터들은 세로 주사율이 60Hz가 일반적이고 해상도가 320×200에서 640×400이었던데 비해, NeXT의 모니터였던 NeXT MegaPixel Display는 68Hz인데다 해상도도 1120×832로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비록 흑백 계조 4색 모니터였음에도 불구하고 화면 품질은 정지한 듯 차분해 당대 최고이기도 했다. 모니터에는 오디오, 키보드, 마우스가 같이 연결되며, NeXT와는 여기에 전원까지 같이 추가된 전용 케이블 한 가닥으로 연결되었다. 현대의 Thunderbolt 디스플레이의 조상인 격. 전용 레이저 프린터도 번들로 추가할 수 있었는데 당시 레이저 프린터의 해상도가 300dpi였던 것에 비해 이쪽은 400dpi라는 이례적인 고성능이었다.
독특하게 기본 저장 매체로 광자기 디스크라는 것을 사용했다. 캐논의 것을 사용했는데, 하드디스크 보다 저렴한 무려 256MB의 휴대용 저장 매체였다. 하지만 다른 휴대용 자기 저장 매체처럼 느린 데다가 컴퓨터를 꺼야만 저장 매체 교환이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 덕에 캐논과 좋은 관계를 맺었으며, 1억 달러의 투자금을 받기도 하고, 캐논이 NeXT 워크스테이션의 아시아 판매를 담당하기도 했다. 또한 캐논이 자신들의 PC 사업을 위해 운영 체제 NeXTSTEP을 사 주기도 했다.
문제는 NeXT 컴퓨터의 출시 당시 가격은 $6,500, NeXTcube는 $10,000 정도였다. NeXTstation은 $4,995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었다.[2] Apple을 나온 스티브 잡스의 행보가 궁금했던 일반인들은 저 가격을 보고 실망했지만, 이 컴퓨터는 가정용 컴퓨터가 아닌 워크스테이션이었기 때문에 성능에 비해 가격대 자체는 저렴한 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스매티카가 기본 내장되어 있었다.''' 매스매티카는 그 가격이 어마어마했는데, 스티브 잡스가 이 소프트를 모든 NeXT 컴퓨터에 탑재할 권리를 샀다. 덕분에 매스매티카 하나만 보고 워크스테이션으로 NeXT 컴퓨터를 대량으로 도입한 연구기관이 나왔고, '''이중 한곳이 CERN이었다.''' 덕분에 '''월드 와이드 웹 역시 NeXT 컴퓨터에서 최초로 돌아갔다.'''
그러나 당시 워크스테이션의 대세는 유닉스 워크스테이션이었고, 그 시장의 특성상 하드웨어만 구입하는 것이 아닌 솔루션[3] 단위로 구매하기 때문에, 당시 강자였던 HP와 실리콘 그래픽스,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와 경쟁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기존의 가정용 컴퓨터들이 빠른 속도로 고성능화되기 시작해 HP나 컴팩, DELL 같은 곳에서는 80486DX2를 탑재한 고성능 컴퓨터들을 내놓기 시작했고, Apple마저도 Macintosh Quadra 시리즈를 내놓기 시작해 저가형 워크스테이션-고성능 컴퓨터 시장을 서서히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월 1만 대 이상 생산 가능한 설비는 갖춰 놨으나, 6년간 5만 대만 팔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차세대 NeXT 컴퓨터의 CPU로 내정한 32비트 RISC CPU, 모토로라 88110 CPU는 모토로라에게도 원하는 성능이 나오지 않자 포기했다. 결국 여러 이유로 NeXT는 1993년 하드웨어 사업을 접기에 이른다.
NeXTstation은 국내에는 인천 가톨릭 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 마리스텔라 지하 북카페에 전시했는데, 20주년 기념 Macintosh, Power Mac G4 Cube, 1997년에 최초로 나온 iMac 등이 같이 있다. 국내에서는 환상의 머신이라 여겼는데, 백화점 매장에도 들어와 있긴 했다. 이는 캐논 코리아가 한국에 정식으로 유통했기 때문이며, 운용 가능한 실물이 용산 전자랜드 본관 1층에 전시했던 적이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Apple에 복귀한 뒤에도 Macintosh를 사용하지 않고 한동안 NeXT의 데스크톱을 사용했다고 한다. Apple에서도 NeXT의 하드웨어 DNA는 이어져서, 정육면체 모양의 NeXTcube는 나중에 Apple에서 만든 Power Mac G4 Cube에 영향을 주었다.
NeXT는 NeXTSTEP이라는 자체 운영 체제를 썼는데, 하드웨어 시장을 포기한 후 이 운영 체제를 상술한 캐논을 비롯해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등의 다른 회사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현재 macOS와 iOS, iPadOS, watchOS, tvOS의 조상쯤 되는 물건이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를 참조하자.
한편 Apple은 Microsoft가 출시한 Windows 95의 등장으로 운영 체제 기술력 면으로도 경쟁 기업인 Microsoft에게 뒤쳐지게 되자, 낡은 Mac OS를 대체할 목적으로 코플랜드 OS를 개발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을 참고할 것. 그러나 시원하게 망하면서 Apple은 대체 수단을 찾기 시작했다. 한때 Macintosh의 책임자였던 장 루이 가세의 BeOS와 스티브 잡스의 NeXTSTEP이 경쟁하게 되었는데, BeOS의 인수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NeXT를 인수하기로 결정되어, 결국 1997년 2월 7일, Apple은 '''BeOS 인수 가격보다 훨씬 비싼 4억 2900만 달러에 NeXT를 통째로 사들이면서 흡수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Apple로 복귀하게 되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한 거부 로스 페로의 투자를 받았다. 로스 페로는 키가 크고 잘 생긴 것이 로스 페로 자신의 젊은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고 하며 스티브 잡스에게 호감을 가졌다고 한다(…).[4]
로고는 미국의 유명한 디자이너인 폴 랜드의 작품이다. 폴 랜드는 IBM, UPS, ABC, 엔론 등 수많은 기업의 로고를 디자인한 업계의 레전드. 잡스는 폴 랜드에게 몇 가지 제안을 해도 되냐고 묻자, 폴 랜드는 자신의 것을 굳이 써도 되지 않으니 다른 사람에게 알아보라며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e에는 education(교육), excellence(탁월함), e=mc^2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로고의 기울어진 각도는 28도.
이 인연 때문인지 나중에 폴 랜드는 애플의 Think Different 광고 포스터에도 출연한다.
1. 상세
스티브 잡스는 Apple의 설립자 중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제멋대로 하고 다녀서 이사회의 감시를 받고 있었고 심지어 CEO인 존 스컬리와의 마찰도 심각했다. 마찰 끝에 잡스는 존 스컬리를 쫓아내려고 이사회에서 투표를 걸었으나 깔끔하게 졌고, 1985년 그는 Apple을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Apple에서 쫓겨난 잡스는 마찬가지로 Apple을 나온 일부 엔지니어들과 함께 NeXT를 설립했다.
잡스가 그 본성을 발휘해 완벽을 기하다 보니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NeXT에 영입된 IBM 출신 세일즈맨의 경험에 의하면, 잡스가 3년 걸려 만든 작품을 보여주겠다면서 무언가를 덮고 있는 천을 치우니 콘크리트 블럭이 나타나 경악했는데, 그 순간 잡스가 모니터 받침대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바람에 어이가 없었음에도 잡스의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굉장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실제 모니터가 준비되지 않아 받침대 위에 모니터 대신 콘크리트 블럭을 올려놓고 받침대의 예술적인 라인을 설명했다는 것이다.
공장 역시 잡스의 이상이 완전히 실현되어, 완전 자동화가 이루어져 단 세 명의 인력으로 생산 라인을 가동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라인이 설치된 작업장은 한 면이 유리로 되어있어 바깥에서 투어가 가능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 기계들이 주로 일제로 생산 방향이 NeXT 사옥 투어 루트와 반대로 흘러간다는 점. 결국 비싼 값에 특수 주문한 기계들을 들여왔다고 한다.
2. 초기(1987~1993): 워크스테이션
1984년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실리콘 밸리에 방문했을 때 그 오찬에 참석한 스티브 잡스는 DNA 재조합 기술로 1980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은 과학자 폴 버그 박사를 만났다. 당시 버그 박사는 자신의 DNA 재조합 기술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싶었지만, 이를 위한 습식 실험실의 건설 비용은 굉장히 비쌌다. 게다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위한 적당한 성능의 컴퓨터는 너무 비싸거나 저렴한 컴퓨터는 너무 느려 시뮬레이션을 하기에 부적합했다. 버그 박사는 잡스에게 대학 교육을 위해 합리적인 가격의 3M 컴퓨터[1] 가 필요하다며 이를 Apple에서 만들 것을 제안했다. 잡스는 그 제안에 흥미를 느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잡스는 Apple을 떠났고, Apple의 직원을 데리고 나와 세운 NeXT에서 그의 제안을 구체화해 만들고자 했다. 출시한 제품군은 NeXT 컴퓨터와 큐브 디자인을 사용한 컴퓨터인 NeXTcube와 NeXTcube 터보, 그리고 NeXTstation, NeXTstation 컬러, NeXTstation 터보가 있었다.
워크스테이션답게 화려한 사양으로 무장했다. 특유의 검정색 케이스 속에 모토로라 68030 또는 68040 CPU를 장착하였다. 게다가 부동 소수점 연산 장치였던 FPU 모토로라 68882를 탑재했고, 추가 연산 장치로 DSP 모토로라 56001도 탑재했다. 동작 클럭도 25~33MHz로 당시에는 고속이었다. 메인 메모리도 NeXT 컴퓨터는 16MB, NeXTcube는 64MB, NeXTstation은 최대 128MB까지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모니터 역시 그 당시 일반 모니터들은 세로 주사율이 60Hz가 일반적이고 해상도가 320×200에서 640×400이었던데 비해, NeXT의 모니터였던 NeXT MegaPixel Display는 68Hz인데다 해상도도 1120×832로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비록 흑백 계조 4색 모니터였음에도 불구하고 화면 품질은 정지한 듯 차분해 당대 최고이기도 했다. 모니터에는 오디오, 키보드, 마우스가 같이 연결되며, NeXT와는 여기에 전원까지 같이 추가된 전용 케이블 한 가닥으로 연결되었다. 현대의 Thunderbolt 디스플레이의 조상인 격. 전용 레이저 프린터도 번들로 추가할 수 있었는데 당시 레이저 프린터의 해상도가 300dpi였던 것에 비해 이쪽은 400dpi라는 이례적인 고성능이었다.
독특하게 기본 저장 매체로 광자기 디스크라는 것을 사용했다. 캐논의 것을 사용했는데, 하드디스크 보다 저렴한 무려 256MB의 휴대용 저장 매체였다. 하지만 다른 휴대용 자기 저장 매체처럼 느린 데다가 컴퓨터를 꺼야만 저장 매체 교환이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 덕에 캐논과 좋은 관계를 맺었으며, 1억 달러의 투자금을 받기도 하고, 캐논이 NeXT 워크스테이션의 아시아 판매를 담당하기도 했다. 또한 캐논이 자신들의 PC 사업을 위해 운영 체제 NeXTSTEP을 사 주기도 했다.
문제는 NeXT 컴퓨터의 출시 당시 가격은 $6,500, NeXTcube는 $10,000 정도였다. NeXTstation은 $4,995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었다.[2] Apple을 나온 스티브 잡스의 행보가 궁금했던 일반인들은 저 가격을 보고 실망했지만, 이 컴퓨터는 가정용 컴퓨터가 아닌 워크스테이션이었기 때문에 성능에 비해 가격대 자체는 저렴한 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스매티카가 기본 내장되어 있었다.''' 매스매티카는 그 가격이 어마어마했는데, 스티브 잡스가 이 소프트를 모든 NeXT 컴퓨터에 탑재할 권리를 샀다. 덕분에 매스매티카 하나만 보고 워크스테이션으로 NeXT 컴퓨터를 대량으로 도입한 연구기관이 나왔고, '''이중 한곳이 CERN이었다.''' 덕분에 '''월드 와이드 웹 역시 NeXT 컴퓨터에서 최초로 돌아갔다.'''
그러나 당시 워크스테이션의 대세는 유닉스 워크스테이션이었고, 그 시장의 특성상 하드웨어만 구입하는 것이 아닌 솔루션[3] 단위로 구매하기 때문에, 당시 강자였던 HP와 실리콘 그래픽스,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와 경쟁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기존의 가정용 컴퓨터들이 빠른 속도로 고성능화되기 시작해 HP나 컴팩, DELL 같은 곳에서는 80486DX2를 탑재한 고성능 컴퓨터들을 내놓기 시작했고, Apple마저도 Macintosh Quadra 시리즈를 내놓기 시작해 저가형 워크스테이션-고성능 컴퓨터 시장을 서서히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월 1만 대 이상 생산 가능한 설비는 갖춰 놨으나, 6년간 5만 대만 팔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차세대 NeXT 컴퓨터의 CPU로 내정한 32비트 RISC CPU, 모토로라 88110 CPU는 모토로라에게도 원하는 성능이 나오지 않자 포기했다. 결국 여러 이유로 NeXT는 1993년 하드웨어 사업을 접기에 이른다.
NeXTstation은 국내에는 인천 가톨릭 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 마리스텔라 지하 북카페에 전시했는데, 20주년 기념 Macintosh, Power Mac G4 Cube, 1997년에 최초로 나온 iMac 등이 같이 있다. 국내에서는 환상의 머신이라 여겼는데, 백화점 매장에도 들어와 있긴 했다. 이는 캐논 코리아가 한국에 정식으로 유통했기 때문이며, 운용 가능한 실물이 용산 전자랜드 본관 1층에 전시했던 적이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Apple에 복귀한 뒤에도 Macintosh를 사용하지 않고 한동안 NeXT의 데스크톱을 사용했다고 한다. Apple에서도 NeXT의 하드웨어 DNA는 이어져서, 정육면체 모양의 NeXTcube는 나중에 Apple에서 만든 Power Mac G4 Cube에 영향을 주었다.
3. 후기(1993~1997): NeXTSTEP
NeXT는 NeXTSTEP이라는 자체 운영 체제를 썼는데, 하드웨어 시장을 포기한 후 이 운영 체제를 상술한 캐논을 비롯해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등의 다른 회사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현재 macOS와 iOS, iPadOS, watchOS, tvOS의 조상쯤 되는 물건이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를 참조하자.
4. Apple의 인수
한편 Apple은 Microsoft가 출시한 Windows 95의 등장으로 운영 체제 기술력 면으로도 경쟁 기업인 Microsoft에게 뒤쳐지게 되자, 낡은 Mac OS를 대체할 목적으로 코플랜드 OS를 개발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을 참고할 것. 그러나 시원하게 망하면서 Apple은 대체 수단을 찾기 시작했다. 한때 Macintosh의 책임자였던 장 루이 가세의 BeOS와 스티브 잡스의 NeXTSTEP이 경쟁하게 되었는데, BeOS의 인수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NeXT를 인수하기로 결정되어, 결국 1997년 2월 7일, Apple은 '''BeOS 인수 가격보다 훨씬 비싼 4억 2900만 달러에 NeXT를 통째로 사들이면서 흡수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Apple로 복귀하게 되었다.
5. 기타
미국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한 거부 로스 페로의 투자를 받았다. 로스 페로는 키가 크고 잘 생긴 것이 로스 페로 자신의 젊은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고 하며 스티브 잡스에게 호감을 가졌다고 한다(…).[4]
5.1. 로고
로고는 미국의 유명한 디자이너인 폴 랜드의 작품이다. 폴 랜드는 IBM, UPS, ABC, 엔론 등 수많은 기업의 로고를 디자인한 업계의 레전드. 잡스는 폴 랜드에게 몇 가지 제안을 해도 되냐고 묻자, 폴 랜드는 자신의 것을 굳이 써도 되지 않으니 다른 사람에게 알아보라며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e에는 education(교육), excellence(탁월함), e=mc^2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로고의 기울어진 각도는 28도.
이 인연 때문인지 나중에 폴 랜드는 애플의 Think Different 광고 포스터에도 출연한다.
6. 외부 링크
- http://www.nextcube.org/board/browse/1111: 아직 NeXT 관련 한국 커뮤니티가 살아 있음.
- https://web.archive.org/web/19970412194822/http://www.next.com:80/: Wayback Machine에 아카이브된 당시 홈페이지. 지금도 해당 도메인(next.com)은 살아있는데, 애플 홈페이지로 연결된다.
[1] 1'''M'''B의 RAM, 메가('''M'''ega) 픽셀 디스플레이 및 1'''M'''IPS의 CPU를 탑재한 컴퓨터. 컴퓨터 과학자인 라지 레디 박사가 1980년대에 창안했으며, 그는 대학 교육을 위한 컴퓨터 사양으로 이를 제안했다. 지금의 워크스테이션과 같은 개념의 컴퓨터이다.[2] NeXTstation이 기본 모델이 저렴하다는 소리지 옵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며, 그리고 컬러, 터보 모델은 여전히 비싸다.[3] 하드웨어와 운영 체제, 그리고 고객 또는 고객 회사의 특정 작업을 위한 전용 응용 프로그램, 미들웨어 또는 API.[4] 로스 페로는 실제로 Microsoft에 투자할 기회를 놓쳤던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한다. 그래서 NeXT 투자 기회를 잡았을 때 기회를 두번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판단력이 좀 흐려졌다는 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