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프라이

 

''' 스위스의 前 축구선수 '''
'''이름'''
'''알렉산더 프라이
Alexander Frei'''
'''출생'''
1979년 7월 15일 (44세)
스위스 바젤슈타트바젤
'''국적'''
스위스 [image]
'''신체'''
179cm, 74kg
'''직업'''
축구선수(스트라이커 / 은퇴)
''' 소속 '''
''' 선수 '''
FC 벤닝 (1987~1988 / 유스)
FC 아슈 (1988~1995 / 유스)
FC 바젤 (1995~1997 / 유스)
FC 바젤 (1997~1998)
FC 툰 (1998~1999)
FC 루체른 (1999~2001)
세르베트 FC (2001~2003)
스타드 렌 FC (2003~2006)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06~2009)
FC 바젤 (2009~2013)
'''국가대표'''
86경기 42골[1](스위스 / 2001~2011)


1. 개요


스위스 국적의 전 축구 선수.
스위스 올타임 탑 스코어러.

2. 클럽


1997년 FC 바젤에서 데뷔한 뒤, FC 툰, FC 루체른 등으로 팀을 옮겼다. 그러다 2001년 세르베트 FC에 입단한 이후 활약이 두드러졌고, 2003년 프랑스 리그 1스타드 렌 FC으로 이적해 자신의 첫 해외 이적을 이뤄냈다. 이후 2004-05 시즌 20골을 넣어 득점왕에 올랐으며, 2006년 월드컵이 끝난 뒤 독일 분데스리가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했다. 이적 첫 시즌인 2006-07 시즌엔 32경기에서 16골을 넣으며 성공적으로 안착했으나, 이후 부상으로 하향세를 탔다.
2009-10 시즌엔 자신의 친정팀인 FC 바젤로 이적이 합의됐고, 국가대표팀 동료인 마르코 슈트렐러 등과 한께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2010-11 시즌에 27골을 득점해 득점왕을 차지했고, 2011-12 시즌엔 팀을 9년 만에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으로 이끌었다.
바젤 시절 2011년 맨유와의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에서 1골씩 집어넣으며 1승 1무를 이끌어서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여줘, 당시 박지성 출전을 기다리던 수많은 국내 맨유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또한 16강에선 바이에른 뮌헨을 만나 1,2차전 모두 출전하였으나 1차전 1-0 신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2] 원정에서 프랑크 리베리에게 왼쪽 측면이 완전히 뚫리면서 0-7로 대패해 탈락했다.
UEFA 유로파 리그/2015-16 시즌 홍보대사였다. 그의 손에서 엄청난 매치업들이 많이 나왔다.

3. 국가대표



3.1. UEFA 유로 2004


국가대표팀에선 UEFA 유로 2004에 출전했으며,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스티븐 제라드에게 침을 뱉어 유럽 축구 연맹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3.2. 2006 FIFA 월드컵 독일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선 총 2골을 넣어 팀의 16강 진출에 크게 공헌했는데, 그 중 첫 골은 토고와의 경기에서 넣었다. 문제는 두 번째 골이었는데, 한국과의 경기에서 오프사이드 논란이 있었던 골을 넣어 당시 주심이었던 오라시오 엘리손도와 더불어 당시 한국 사람들에게 욕을 많이 얻어먹었다.

3.3. UEFA 유로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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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유로 2008 개막전인 체코와의 경기에서 즈데넥 그리게라와의 볼 경합 도중 무릎 부상을 당했는데, 잔여 경기에서 못 뛸 걸 직감했는지 서럽게 울며 교체돼 나가는 바람에 울보로 통했다. 이에 국내 팬들은 '월드컵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골 넣더니 꼴 좋다', '더 쳐 짜버려라', '아예 부상당하고 은퇴해라' 며 조롱했다.

3.4.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도 나왔지만 그닥 활약하지 못했고, 팀도 부진한 경기력을 보이며 조별 라운드에서 탈락했다.

[1] 스위스 올타임 탑 스코어러.[2] 뮌헨입장에서 이 패배는 슈바인슈타이거의 부상으로 인해서 팀 전체의 경기력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의 패배였다. 지금은 월드 클래스인 토니 크로스도 있긴했지만 젊었기 때문에 당시엔 기량이 지금같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