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신비

 

'''도서명'''
The Feminine Mystique
'''발행일'''
1963.2.19.
'''저자'''
베티 프리댄
(Betty Friedan)
'''출판사'''
W. W. Norton and Co.
'''ISBN'''
0-393-32257-2
#Amazon
1. 개요
2. 배경
3. 내용
3.1. 챕터별 중심내용
3.2. 에필로그
4. 기타
5. 둘러보기

'''"이 책은 1963년 현대 여성운동에 봉화를 올림으로써 전 세계 사회조직을 영구히 바꿔 버렸다."'''

-

뉴욕 타임즈

'''"역사의 방아쇠를 당긴 책."'''

-

앨빈 토플러


1. 개요


여성 운동가 베티 프리댄의 대표작으로, 21세기 현재까지도 페미니즘 고전 도서로 꼽히고 있는 책.
미국 여성운동에 한 획을 그은 책으로 평가되며,[1] 이 책을 계기로 하여 저자 베티 프리댄은 3년 후 전미여성기구(NOW; 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라는 성 평등 단체를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1세대의 운동으로 인하여 사회제도적 차원에서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많이 보장되어 왔지만, 그에 합당한 사회 분위기와 풍조의 변화를 이끌고자 했던 2세대의 촉진제가 되었다. 1950년대~1960년대 초엽까지의 미국 사회의 시대상이나 학계의 동향을 살펴보기에도 유용하다.
본서는 국내에는 1978년에 김행자 역으로 출간되었으나,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번역 상태를 자랑(?)한다. 종종 폰트 자체가 깨지기도 하는 걸 보면 출판사 측에서도 뭔가 문제가 있었던 모양. 이후 2002년에 김현우 역으로 출간되었으며, 2018년에 갈라파고스 출판사에서 여성성의 신화라는 제하에 재판되었다. 참고로 이건 정희진이 해제를 달았다.

2. 배경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 여성들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거대한 퇴행을 경험하게 되었다. 분명히 그들의 부모 세대에 비하면 제도적으로 길도 많이 열리고, 많은 대학교들이 여대생들을 수용하고, 여성들의 지역사회 참여가 적극 장려되고, 여성들의 평생교육 및 자기개발을 위한 프로그램이 도처에 널려 있는데, 이 무렵 20-30대를 보내는 젊은 여성들은 그만큼의 야망이나 사회참여 의지가 없어 보였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극심하게 보수화되었고, 오히려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찬미하고 동경했다. 저자 베티 프리댄은 이를 두고 '''여성의 신비'''라는 이름의 신화라고 불렀다.
베티 프리댄이 고발하는 것을 살펴보면 21세기의 관점에서는 심지어 실소가 나올 정도인데, 오히려 20세기 초엽을 살아가던 그들의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들이 인권의식이 더욱 깨어있었으며, 50년대의 트렌디한 여성들 사이에서는 여성들의 사회 참여나 국제정세 담론 등에 관심을 가질 것을 독려하는 것은 심지어 '''꼰대 취급받기 딱 좋은 짓이었다.''' 이들이 바라는 최고의 삶이란, 18-20세 사이에 잽싸게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도시 근교의 하얀 울타리가 쳐진 예쁜 집에서 아이를 5-6명씩 순풍순풍 낳고,[2] 아침마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행복하게 키스하며 배웅해 주는 전업주부의 삶이었다. 직업을 구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남편을 구하기 전까지 최소한의 자산을 만드는 일시적인 과정에 불과했으며, 전문성을 길러 남성들과 경쟁하는 삶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비웃음을 당했고(…)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어머니가 시키니까 억지로 배우는 것뿐,[3] 전문적 전공지식은 여대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여성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두려운 것으로 여겨졌다.
일차적으로 이상한 것은 이들의 부모 세대가 그렇게 힘들게 제도적 평등을 열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 자유와 인권을 누릴 마음이 없어 보이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이상적인 전업주부로서의 역할을 동경하여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은, 언제부터인가 '''자신도 알 수 없고 남들도 알 수 없는 "이름붙일 수 없는 문제" 로 인해 고통 받고 있었다.''' 극단적인 짜증, 권태감, 우울증, 불면증, 불륜에 대한 환상 등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에 괴로워하던 여성들은 그럴수록 더욱 철두철미한 어머니가 되기 위해 애썼지만 문제는 더욱 악화되었다. 자녀에 대해 더욱 헌신하고 희생하면, 남편을 더욱 정성껏 내조하고 위로해 주면 나아질 것이라 여겼지만, 나아질 턱이 없었다. 이 문제를 안고 정신과를 찾아가도, 정신분석학의 세례를 받은 치료사들은 그것을 "전업주부 신경증" 이라고 치부하고는 "요즘 남편과의 성 생활이 불만이신가 보군요, 잠자리 테크닉을 개발하시면 성욕이 충족되어 치료될 겁니다" 라고만 할 뿐이었다. 일부 논객들은 심지어 "요즘 여자들이 대학 교육을 너도나도 받아서 문제다, 대학교들이 여대생을 그만 받아야 한다"(…) 같은 주장까지 진지하게 제안하기도 했을 정도였다고.
이러한 상황에서 심리학자가 되고 싶었던 베티 프리댄은[4] 전액 장학금을 약속받고 박사과정을 다닐 기회가 있었으나, 그것이 정말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인가에 대해 문득 회의를 느낀 끝에 그 길을 그냥 때려치웠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것과 자기 주변의 여러 주부들과 교류하면서 프리댄은 뭔가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게 되었고, 마침내 온 미국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전업주부들을 면담한 결과를 바탕으로 《여성의 신비》 를 저술하게 되었다.
출판연도가 1963년인 만큼, 이 책에서 "최근에", "요즘에" 같은 표현들이 나오는 건 전부 1950년대~1960년대 초엽의 시대상이라고 걸러 들어야 한다. 당장 킨제이 보고서가 최신의 문헌으로 자주 인용되며, 욕구계층이론과 에릭 에릭슨(E.Erikson)의 발달단계 이론이 최신의 학문적 제안으로서 소개되는 걸 볼 수 있다. 실제로 저자는 에이브러햄 매슬로(A.Maslow)의 욕구계층이론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후반부의 논의를 전개하고 있으며,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해지게 된 정체성(identity)이라는 개념도 사실은 에릭슨이나 로키치 등의 연구자들이 그 시절에 이르러서야 주창했었던 것이다. 또한 직접 언급되지 않지만 시절이 시절인지라 동성애를 방종한 성생활의 예시로서 드는 듯한 단락도 존재한다.

3. 내용


결과적으로 먼저 말하자면 이 이름붙일 수 없는 문제의 원인은 전업주부로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내가 누구인가", 즉 '''정체성'''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리고 또한 "내가 무엇이 될 것인가" 와 같은 '''자기실현'''(self-actualization)을 하지 못하고 생리적 만족수준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막상 제도적으로 여성의 사회참여의 길을 열어주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선뜻 쓰지 못하고 도리어 공포를 느낀다는 것이다. 지금 와서 보면 페미니즘의 맥락에서 두말하면 잔소리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그저 뭣하면 억압된 성욕이니 뭐니 주워섬기던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정말이지 '''생소하고 획기적인 진단'''이었다.
1950년대~1960년대 여성들이 전업주부로서의 삶에 만족하고 그것을 동경하는 원인이 자기실현의 결핍과 정체성의 위기에 있다면, 어째서 이런 결핍이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되어야 한다. 저자 베티 프리댄은 이에 대해 세 가지의 원인을 들고 있다. '''1)''' 정신분석학자들이 사회적인 담론의 장을 장악했기 때문에, '''2)''' 사회과학계가 기능주의에 입각하여 여성의 성 역할을 규범화했기 때문에, 그리고 '''3)''' 여성들을 위한 고등교육을 제공하는 교육자들이 전문성을 길러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사실상 이들 이유로 인해서 심지어 여대생들일수록 더욱 여성인권에 대해서는 보수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21세기의 관점으로 보면 여성들이 고등교육을 받을수록 생각이 깨이게 되고 전문성이 길러져서 페미니즘에 호의적이게 되어야 할 텐데, 막상 그 당시에는 대학교에 가 보니 자기들을 가르칠 교육자들과 모든 공론장이 전부 전업주부로서의 여성상을 주입시키고 있으니 오히려 거꾸로 인권의식이 퇴보한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여성이 자기실현을 하지 못해 불만이 생기면 그걸 성적인 욕구불만으로 엉뚱하게 진단하게 되고, 성 역할에서 벗어나는 장래희망을 가지면 뭔가 규범에서 일탈한 것처럼 여겨져 죄책감을 느끼고, 대학교에서 배우는 것이라고 해 봐야 전부 뜨개질이나 십자수 같은 것들뿐이라 남성들과 일터에서 경쟁할 수가 없게 되는 것.
베티 프리댄은 이처럼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동경하여 주부가 된 여성들이 결코 행복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그 말로만 듣던 "완벽한 어머니이자 완벽한 아내" 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을 만나보고 싶어서 물어물어 찾아갔더니, 누구는 약물중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신경안정제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었고, 누구는 남편 몰래 혼외정사를 즐기는 섹스 파트너가 하나 둘이 아니었으며, 누구는 어느 날 밤에 발가벗은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동네를 휘젓고 다녀서(…) 급히 정신과 의사가 왕진해야 했을 정도였다. '''그 누구도 완벽한 전업주부로서 살아가면서 그와 동시에 행복하고 바람직한 삶을 영위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던 여러 통념들을 반론하는데 몇 가지만 들면 다음과 같다.
  • 전업주부들은 집안일의 전문가가 결코 아니었으며, 직업여성들이 오히려 집안일을 더욱 능률적으로 잘 했다. 전업주부들은 하루 온종일 땀흘려 가사노동을 하느라 고생하면서도 정작 그 노동의 효율은 처참할 정도였다. 전업주부들이 하루 종일 해치우는 집안일의 양은 직업여성들이 출근 직전 & 퇴근 직후에 1~2시간 가량 부랴부랴 해치우는 집안일의 양과 동일했다. 그러나 전업주부들은 결코 게으르지 않았으며 누가 봐도 분명 근면하게 살고 있었다.
  • 전업주부들은 결코 고상하고 정숙한 아내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직업여성들에 비해 더욱 성적 만족도가 낮았다. 이들은 남편과의 섹스를 일종의 의무방어전으로 여겼으며, 아무리 관계를 갖더라도 오르가즘은 둘째치고 최소한의 만족감조차 얻을 수가 없었다. 대신에 이들은 혼외정사를 통해서 그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환상에 자주 빠졌으며, 실제로 적지 않은 이들이 남편 몰래 섹스 파트너들을 두고 있었다.
  • 직업여성들의 자녀들은 충분한 보살핌과 돌봄을 받지 못해 쉽게 탈선할 거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도리어 전업주부들의 자녀들은 부모에게서 위험한 "심리적 공생관계" 와도 같은 과잉보호를 경험하게 되었고, 일부는 마마보이가 되거나 일부는 오히려 삐딱선을 타는 비행청소년이 되었다. 가정에 충실한 어머니일수록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녀에게 강요하고 자녀의 삶을 억지로 이끌려고 한다는 것.[5]
  • 전업주부들은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을 위로하고 보듬어주기는커녕 오히려 짜증나게 만들기 일쑤였다. 오히려 직업을 통해 자기실현을 경험하는 여성들이 남편에게 더욱 든든한 동료가 되어주었으며, 전업주부들은 지쳐버리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남편을 맞아준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직업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된 가정에서의 면담 결과, 아내가 직업을 갖고 있을 때에 비해서 남편의 결혼 만족도는 오히려 급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어느 모로 보더라도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산다는 것은, 적어도 그 여성이 자신이 정말로 되고 싶었던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한, 자신에게도 괴롭고 가족도 망치는 불행의 지름길인 것으로 보였다. 심지어 이는 이 여성이 어머니와 아내로서 충실하고자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욱 심각해지는 것으로 보였다. 수많은 전업주부들과의 면접을 통해서 이런 부분들을 파악한 베티 프리댄은 이것이 마치 '''포로 수용소에서 모든 자기성장의 희망을 포기해 버린 포로의 심리상태와도 같다'''고 묘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전업주부들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자기실현이라고 부를 만한) 그 어떤 이름붙일 수 없는 문제를 결코 "포기" 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랄까.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저자는 개인적인 차원의 변화, 특히 마음가짐의 변화를 주문했다. 사실 사회구조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저자가 그 필요성을 폄하한 것은 아니었다. 당장 저자부터가 활발한 입법 압력을 가하면서 정계에도 발을 담갔던 적이 있는 인물이고, NOW와 같은 단체를 설립하는 것도 비슷한 연장선상에 있었기 때문. 그러나 개인적인 노력이 요청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당시의 시대상 자체가 "막상 여성들에게 자유를 줘도 그 자유를 쓰질 않는 여성들" 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깨우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 저자는 구체적으로 세 가지의 생각의 변화를 요청한다. '''1)''' 가사노동은 무슨 숭고한 직업도 아니고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수단도 아니며, 그냥 후딱 해치워야 할 허드렛일처럼 치부해야 한다. '''2)''' 모성은 여성의 삶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며, 아내로서의 삶 역시 그렇다. 이런 것들은 삶의 일부일 뿐이며 모든 것을 쏟아부을 대상이 못 된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3)''' 자신이 배운 고등교육의 지식을 계획적으로 활용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즉, 자신의 남은 삶 전체를 인생설계한다는 마음으로 지식을 투자해서, 당장이라도 남성들과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때까지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 이 세 가지를 도저히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여성은 현재의 불행에서 벗어날 일이 요원할 것이라는 것.
책의 전체 내용을 세줄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1950-60년대 여성들의 가정주부로서의 천착은 그들이 자기실현에 관심을 갖지 않은 탓에 자유에 대한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며, 이는 정신분석학자, 기능주의적 사회과학자, 전통적 교육자들에게 책임이 있다.
  • 자기실현을 박탈당한 가정주부들은 근면하지만 효율적이지 못한 가사노동, 방종한 성생활과 낮은 성적 만족도, 자녀와의 위험한 심리적 공생을 야기하여 가족도 망치고 스스로도 수용소의 포로와 같은 심리로 만들어 버린다.
  • 자기실현에 성공한 직업여성들이 누리는 충족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사가 직업이 아니며 모성이 최종적 의무가 아님을 인식하고, 고등교육을 통해 획득한 지성을 계획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3.1. 챕터별 중심내용


각 챕터별 중심내용을 세 문장으로 요약하면 각각 다음과 같다. 챕터명은 김행자판을 따랐다.
  • 1장: 이름붙일 수 없는 문제들
1950-60년대에 여성해방에 무관한 삶을 살아가던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뭔가 이름붙일 수 없는 문제로 인해 고통 받고 있었다. 사회는 이들이 전업주부 신경증을 앓고 있다고 진단했으며 전업주부로서의 삶에 더 충실하게 살 것을 조언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들이 가정과 남편, 자녀 이외에 원하는 것이 더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 2장: 여성잡지들이 만드는 여성상
여성잡지들은 타자화된 여성상을 부각시켰으며, 여성들의 유일한 성취는 자기실현이 아닌 자녀의 출산에 있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여성들에게 더욱 개방된 현 시점에서, 여성들 스스로가 가사노동을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는 단순히 여성잡지의 동향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우며, 여성잡지의 묘사 경향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 3장: 여성 자아의 위기
여성을 신비화하는 작금의 광고들은 저자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이 자아에 대한 의문을 무시하도록 만들었다. 이 문제는 미국 사회에서 각 여성들 개인이 자신만이 품고 있는 여성상을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다. 제도적 기회가 있더라도, 그 길로 나아가는 여성에 대한 이미지가 없기에 여성들이 공포를 느끼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 4장: 열정적인 여행
루시 스톤(Lucy Stone)이나 소조너 트로스(Sojourner Troth) 등의 여러 운동가들은 대부분 스스로 깨어난 중간 계층의 여성들이었다. 이들의 노력으로 여성에 대한 나쁜 인상은 상당 부분 사라졌지만, 여전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차별은 잔존하고 있다. 이들을 어머니로, 할머니로 둔 오늘날의 여성들은 자유를 누리기를 두려워하여 다시 과거로 되돌아갈 것을 고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 5장: 프로이트의 이상적 여인상
프로이트는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여성의 질투와 히스테리를 남근선망과 같은 심리성적 문제로 돌렸다. 저자는 미국 여성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남근선망 이론이 더 이상 유효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아무 비판 없이 미국 사회에 고스란히 접목시킨 정신과 의사들에게 있다.
  • 6장: 여성다워지라고 주장하는 기능주의자들
미국 사회과학자들은 기능주의에 입각하여 여성의 사회 속 기능을 들어 성 역할을 규범적으로 규정했다.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 등의 성공한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에게는 전통적 여성의 세계에 스스로를 국한시킬 것을 요청했다. 특히 그녀는 여성들이 남성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여성만의 매력과 신비를 적극 드러낼 것을 권장했다.
  • 7장: 여성지향적인 교육자들
많은 순진한 교육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여대생들 중 상당수는 자기실현에는 관심 없이 전업주부로서의 미래에 만족한다. 이는 여성에게 고등교육을 가르친다고는 하더라도 여성의 전통적 역할에 비추어 교육하고 있는 현실을 드러낸다. 실상, 교육자들은 전문성 있는 교육이나 직업을 갖는 것이 여성들의 전통적 역할을 위협하고 남성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 8장: 잘못 선택된 삶
프로이트의 예측과는 달리, 정신적 문제를 겪는 남성들의 어머니들은 몹시 전통적이고 자기희생적이었다. 많은 이들이 직장 여성을 어머니로 둔 자녀가 비행과 탈선의 가능성이 높을 거라 여겼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 이 통념은 모자간 관계에서는 일찍 드러났지만 모녀간 관계에서는 서로의 편안함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잘 주목되지 않았다.
  • 9장: 상업광고에 의해 추구된 여성의 성취감
전직 직업여성들은 가전제품 구입에 적극적이면서도 가정주부로서 성취감과 긍지를 가질 수 있기에 이상적 소비계층이다. 광고업자들은 이들의 죄책감을 줄여 주고, 기술 발전을 통해 어머니와 아내로서의 본분에 충실할 수 있다는 기쁨을 제공한다. 광고업자들은 여성들이 가정적이라고 간주하며, 이들이 직업적으로서가 아니라 가정 내에서 창조적인 주부가 되도록 한다.
  • 10장: 가사노동의 증가
완벽한 가정주부들은 똑같은 양의 가사노동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붓고, 근면하지만 효율적이지 못하고 권태로운 생활을 한다. 저자는 여성이 사회적 역할을 박탈당하고 다른 관심사를 차단당할수록 사소한 집안일을 더욱 중시한다고 추정하였다. 집안일이 끝나면 가정주부들은 공허감을 느끼기 때문에, 파킨슨의 법칙에 따라 일을 마치면 일을 더 만드는 지적 낭비를 한다.
  • 11장: 성(性)을 추구하는 사람들
여성의 자기실현의 좌절은 성적 탐닉을 유도하지만 그 결과 남성의 소유물이 되고 자기 스스로도 성적으로 대상화할 뿐이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성적 문란을 야기한다는 통념과는 반대로, 가정주부를 찬미하는 시대에 최초 성경험 연령이 감소했다. 알맹이 없는 문란한 성 생활에 탐닉하는 여성들은 성적 만족도도 더 낮았으며 결여된 주체성으로부터 끊임없이 도피하려 했다.
  • 12장: 진보되는 인간성의 상실: 편안한 포로 수용소
여성들이 그들의 자녀들에게 심리적 공생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도피를 시도할 때 자녀들의 의존성과 무기력, 탈선은 증가한다. 어머니와 자녀가 심리적으로 분리될 때 자녀의 문제가 개선된다는 것은 어머니의 성장 회피가 자녀에게 영향을 끼침을 보여준다. 여성의 신비라는 신화는 가정주부로서의 허무감을 감추어 여성들의 성장의 기회를 박탈하고, 마침내 수용소 속 포로처럼 만든다.
  • 13장: 박탈당한 자아
우리 사회는 여성들이 자신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을 정상적인 적응의 과정이라고 간주해 왔다. 그러나 매슬로 교수에 따르면, 남성들이 상위 수준의 욕구를 충족할 동안 여성들은 하위 수준의 욕구에만 머무른다. 상위 욕구에 따르는 여성들은 더 자유롭고 자율적이며, 성적으로도 더 자유분방한 삶을 향유하고 있다.
  • 14장: 새로운 삶을 위한 계획
새로운 삶을 위해서, 여성들은 가사노동이 직업이 아니며, 모성이 최종적 임무가 아니고, 계획적인 지성의 활용이 필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여성을 위한 고등교육은 체계적 생애계획이 있는 여성들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사회를 위협하는 위험요소처럼 보인다. 생애계획을 갖춘 지적인 여성들은 어머니와 아내로서 더 훌륭한 삶을 살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혁신과 변화를 가져온다.

3.2. 에필로그


초판 출간 이후 저자는 이후의 신변의 변화와 경험을 모아서 에필로그를 추가했는데, 여기서는 저자가 어떻게 여성인권을 위해 활동했는지도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설명되어 있다. 종합하자면 저자는 '''여러 의미로 유명해졌다'''(…). 충격적인 것은 저자의 이 책에 대해서 '''남성들은 굉장한 관심과 호응을 보였지만 정작 여성들은 극심한 반감과 적개심을 보였다'''는 사실. 저자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남편들이 너도나도 《여성의 신비》 를 사다가 아내에게 읽으라고 추천해 주었고 아내가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정작 저자는 지역 공동체의 여성 모임에서 내쫓기고, 자녀들의 유치원 및 학교의 어머니회에서 비난을 받다 못해 몇 번이고 도망치듯이 이사를 해야 했으며, 미국 전역에서 분노한 수많은 전업주부들의 협박 편지들을 받았다고 한다. 베티 프리댄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삶의 변화를 도모하는 여성들은 가까운 다른 여성들로부터의 극심한 배척을 받을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 고 경고하였다. 다행히 이러한 배척은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아서, 몇 년 후 베티 프리댄은 미국 여성운동계의 일약 스타가 되었고 그 무렵에는 불행한 주부들로부터의 감사 편지도 많아졌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이 원인이 된 것일 수도 있으나, 베티 프리댄은 에필로그에서 "여성운동은 남녀를 포괄할 수 있어야 하며, 남성에 대한 적개심은 여성운동을 방해할 뿐" 이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저자가 설립한 여성운동 단체인 전미여성기구의 이름 역시 굳이 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이라고 풀어 쓸 수 있는 것을 보더라도, 여성문제에 관심이 있는 남성들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또한 "이제 막 여성문제에 눈을 뜬 여성들은 으레 일시적으로 남성을 미워하는 기간을 거치지만, 남성들이 우리의 운동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는 논지를 펼치기도 했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를 사랑하는 존재이며 남성들도 당연히 함께할 권리가 있다는 것.

4. 기타


이 책이 출간된 이후 같은 해인 1963년에 정부는 평등임금법(The Equal Pay Act)을 통과시키고, 이때 이후로 여성문제가 정치권에서 사회문제로서 진지하게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저자 베티 프리댄은 3년 후 유색인종총연합(NAACP) 회원들을 설득하여 NOW의 창설을 이끌어냈으며, 창설 당시 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하는 데에도 참여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을 쓰는 것을 계기로 저자 본인부터 우선 남편과 이혼했다고 한다. 서로 전혀 맞질 않았는데 그간 현모양처 코스프레를 하느라 너무 힘들었다는 모양. 행간을 보면 몹시 행복한 이혼이었던 듯하다. 그리고 예전에는 비행공포증이 있었는데 책을 쓰고 나서부터는 비행기를 타고 전미를 누빌 정도로 괜찮아졌다고 한다.
이 책이 김행자판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될 때에는 사회정서상 너무 급진적인(…) 주장이라서 제목을 최대한 온건해 보이게 초월번역(?)했다고 한다. 본래 The Feminine Mystique 라는 제목이 갖는 의미는 "여성성이라는 미신" 정도의 뉘앙스에 가깝다.

5. 둘러보기




[1] 이 책이 페미니즘 입문서로 쓰일 경우, 가장 도움이 될 만한 국내 여성 집단이라면 아마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아 온 탓에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도 알지 못하고, 여성의 사회참여에 막연히 거부감을 갖고 있는 구시대적인 아주머니들" 정도가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현대의 트렌디한 페미니스트들에게는 크게 와닿지는 않는 내용일 수 있다.[2] 아이를 넷 가진 전업주부가 옆집의 육남매를 키우는 전업주부를 바라보며 질투심을 느끼고, 자신이 어머니로서 뭔가 실격인 게 아닌가 하고 자괴감을 느낄 정도였다니 설명은 충분할 것이다(…).[3] 이 대목은 실제로 대한민국의 교육시스템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정말로 고등교육에 대한 의지가 있어서 대학교에 가는 게 아니라, 부모의 압력으로 인해 최소한의 "사람 취급" 을 받기 위해 억지로 대학교에 갔다는 것.[4] 이 당시만 해도 심리학이란 정신분석학 + 행동주의 심리학 정도가 전부였음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5] 사실 이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