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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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ffffff> '''기본 정보'''
'''저자'''
대부분 여호수아 추정. 부족한 부분들은 후대에 보충
'''기록 연대'''
B.C. 1400년경
'''분량'''
24장
'''주요인물'''
여호수아
1. 개요
2. 눈의 아들 여호수아
2.1. 줄거리
2.2. 주요 구절
2.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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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힘을 내고 용기를 가져라. 내가 이 백성의 선조들에게 주겠다고 맹세한 땅을 차지하여 이 백성에게 나누어줄 사람은 바로 너다.

여호수아 1:6 (공동번역)

구약성경의 6번째 책. 모세의 사후, 그의 후계자로 임명된 '눈의 아들 여호수아(יְהוֹשֻׁעַ בִּן נוּן, Yehoshua Ben-Nun)'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얻기 위해 전쟁하는 얘기로, 성경 가운데 가장 호전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난공불락의 성으로 유명한 예리코 성은 여기서 나온다.
침공→ 전쟁→ 승리라는 간단한 패턴이 여러 번 반복되며 야전, 공성전, 기습 등의 다양한 전쟁 양상이 나오기 때문에 비기독교인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구약의 몇 안 되는 부분. 하지만 15장부터는 땅분배 등 부동산? 얘기가 나오므로...
여호수아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상당한 논란이 있으나 여호수아기의 서술을 완전 거짓 취급할 수는 없는데, 그 이유는 '라기스, 하솔, 베델, 에글론 등' 팔레스티나 고원 지역의 일부 성읍들은 실제로 이 시기에 파괴되었고 군사적으로 점령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기 때문이다.
이건 여호수아 외 판관기 등의 서술에서 뒷받침해줄 수 있다.

19 야훼께서 함께 하시어 유다 지파는 산악 지대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평지에 자리잡은 사람들은 아직 몰아내지 못했는데, 그들에게 철병거가 있기 때문이었다.

-판관기 1:19 (공동번역)

이런 여호수아 외의 기록들과 고고학적 증거들을 받아들인다면, '가나안 정복'은 일부 산악 지대에서 일어난 군사적 충돌로써 볼 수 있다. 사실, 여호수아에서 워낙 전쟁 부분이 강조되어서 그렇지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니다. 기브온인들과 맺은 평화 협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여호수아에서도 이스라엘 민족들이 토착 민족들과 공존 혹은 협정을 맺는 장면이 나온다.
한마디로, 성경의 여러 서술들과 고고학적 증거들로 종합적인 판단을 내린다면, 이집트를 탈출한 몇천명 정도의 이스라엘인들은 전투와 협정, 공존 등을 통해 고원지대를 중심으로 가나안 땅에 정착했다는 이야기.

2. 눈의 아들 여호수아


[image]
본서의 주된 인물은 '눈의 아들 여호수아(יְהוֹשֻׁעַ בִּן נוּן, Yehoshua Ben-Nun)'이다. 본명은 "구원"을 의미하는 '호세아(הושע, Hoshea)'이며, 모세에 의해 새롭게 붙여진 이름인 '여호수아'는 "주님은 구원이시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곧 '''예수'''(ישו)란 인명의 원형이기도 하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12세기 경의 인물로 추정되며 110세에 생을 마쳤다. 성인으로서의 축일은 가톨릭정교회 모두 9월 1일이다.
성경의 첫 등장은 출애굽기로 아말렉군의 습격을 모세의 응원 하에 대응한 지휘자이며 조운처럼 상승장군이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탐군 12인 중에 하나이며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함께 이집트를 탈출한 세대 중에서 가나안에 들어간 두 생존자 중 하나이기도 하다. 모세는 신관, 정치가, 예언자, 군인 등 여러가지 성향의 인물인 데 반해 여호수아는 그냥 정치가 및 군인으로만 나오는 흥미로운 차이점이 있다. 이는 제사에 관련된 것이 체계화되면서 신관의 역할은 레위 지파, 제사장 가문에 국한되었기 때문.
민수기에서는 12지파 중 에브라임 지파 대표로 가나안(현 팔레스타인)의 정찰병으로 활동, 12명의 정찰병 중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더불어 긍정적인 보고를 하였고, 이에 당시 성인들 중 갈렙과 함께 유일하게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모세 사후에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가나안 점령 전쟁과 땅의 분할을 지휘했다. 모세의 후계자 겸 수종자로, 여호수아 1장 1절에서는 야훼의 종 모세의 수종자 여호수아로 기록되나, 마지막 장인 24장 29절에서는 야훼의 종 여호수아로 묘사된다. 모세 이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유대 민족을 이끈 여호수아의 고뇌와 성장에 초점을 맞춰 읽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그의 전임자인 모세는 40년간 대제국 이집트의 왕자였으며, 40년간은 유목민의 주요 생계를 책임지는 목자로서 활동했고, 이후에는 이집트의 지배자 파라오와의 항쟁을 통해 히브리인을 해방시켰고, 그 거대한 민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했다. 그 와중에도 "이집트로 돌아가자"는 자기 백성의 원성과 불평을 수도 없이 들으며 40년간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직접적으로 인도하며 자기 민족의 세대교체기가 다할 때까지 홀로 지도자로서 활동했던 외로운 투사였다. 때문에 당시 여호수아가 아무리 야심가였다고 해도, 모세 생전에는 감히 그의 카리스마를 넘어서지 못한 채 1인자의 그늘에 가린 2인자였다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1. 줄거리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곧바로 요르단 강을 건너 가나안 지방의 관문인 예리고 성[2]을 침공한다. 난공불락의 성으로 명성이 높은 예리고 성이었지만 여호수아는 야훼의 명령에 따라 높은 성벽 둘레를 엄숙하게 행진하여 7일이 되던 날 일제히 나팔을 불며 고함을 지르자 예리고의 강한 성벽은 무너져내렸다.[3] 예리코의 전투 항목 참조. ( 예리고 성에 대한 기사(상) · (하))
예리고 성벽을 돌파하여 주민들을 몰살시키고 도시를 철저히 파괴한 후 득의양양한 여호수아는 가나안 고원의 베델 인근 도시이자 요충지인 작은 성 '아이'를 공격하지만 방심한 탓에 패하고 만다. 성경 기록에 따르면 7장에서 수하 중 하나였던 유다 지파의 아간이 '전리품을 취하지 말라'라는 신명을 어긴 탓에 생긴 일이다. 원흉인 아간은 야훼의 계시인 제비뽑기를 통해 색출되고, 본인 및 자녀들과 우양, 재산은 돌을 맞아 죽는다.[4] 괴로움의 골짜기라는 뜻의 아골이라는 지명의 유래. 대신 다음번 전투에서는 유인책을 써서 아이성의 군대를 이끌어내고 그 사이에 성을 점령한다.
갑툭튀한 이스라엘 군대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자 당황한 가나안의 여러 왕들은 동맹을 맺고 대군을 동원하여 맞서지만, 주님의 가호를 받는 이스라엘 앞에서 차례대로 개발살 나고 결국 멸망하고 만다. 최종적으로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고 예루살렘에 개선하여 이스라엘 12지파에게 영토를 갈라주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듯 싶었으나...
가나안 민족들을 철저히 소멸시키지 못했기 때문에[5] 바로 다음장인 판관기(사사기)에서 이스라엘 12지파는 다른 민족들에게 역관광당해 피지배민족으로 전락해버렸다.
아무래도 여호수아 다음의 후계자 문제 때문에 이렇게 되어버린 것 같다. 신정국가를 지향한 당시 유대인들은 왕을 모시지 않고 각 지파별 자치제를 택했기 때문에 가나안 족속이 반격하면 지도자가 나올 때까지는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후 뛰어난 지도자[6]가 통치→ 강해짐→ 뛰어난 지도자 사망→ 몰락→ 다시 뛰어난 지도자가 통치를 반복하는 루프식 역사가 시작된다.

2.2. 주요 구절


9 "너는 내 명령을 듣지 않았느냐? 힘을 내고 용기를 가져라. 무서워 떨지 마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느님 야훼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수아 1:9 (공동번역)[7]

33 그리고 나서 온 이스라엘은 장로들과 장교들과 법관들 그리고 외국인 본토인 구별 없이 모두가 야훼의 계약궤를 멘 레위인 사제들 앞에서 법궤를 향하여 양쪽으로 갈라섰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빌어주기 위하여 야훼의 종 모세가 처음 지시했던 대로 반은 그리짐 산 앞쪽에, 반은 에발 산 앞쪽에 섰던 것이다.

34 그 뒤 여호수아는 법의 축복 조항과 저주 조항을 법전에 기록된 대로 낭독하였다.

35 여호수아는 여자와 아이들 또 그들 가운데 끼여 사는 실향민들까지 참석한 이스라엘 대회에서 모세에게 지시받은 말을 한마디도 빼지 않고 낭독하였다.

여호수아 8:33~35 (공동번역)[8]

23 여호수아는 야훼께서 모세에게 약속해 주신 대로 전 지역을 정복하고는 그 땅을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하여 지파마다 제 몫을 받게 되었다. 이로써 전국에서 전란이 멎었다.

여호수아 11:23 (공동번역)

25 만일 야훼를 섬기고 싶지 않거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여러분이 오늘 택하시오.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에서 여러분의 조상들이 섬기던 신을 택하든지, 여러분이 들어와서 살고 있는 이 땅 아모리인의 신을 택하든지 결정하시오. 그러나 나와 내 집은 야훼를 섬기겠소."

여호수아 24:15 (공동번역)


2.3. 기타


  • 여호수아가 가나안 다섯 왕과의 연합 전투에서 승리하고 추격할 시간을 벌기 위해 "해야, 기브온 위에 머물러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멈추어라."[9] 명령하자 해와 달이 멈추었다는(!) 일화가 나온다. 이것과 관련해서 'NASA에서 일하고 있는 과학자들이 컴퓨터로 우주선의 탄도궤적을 계산하다가 오류가 났는데 그 이유가 하루에 해당하는 시간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카더라 통신이 한동안 인터넷에 떠돈 적이 있지만 허위인 것으로 밝혀졌다.(NASA는 잃어버린 하루를 찾아냈는가?) 워낙 널리 알려진 얘기라서 그런지 창조과학자들조차 이건 잘못 알려진 사실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애초에 해가 갑자기 멈추는 일이 있을 수가 없다. 지구의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순간적으로 일치했다는 이야기인데, 핵폭탄 수 백만개 정도의 에너지를 투입해도 그 운동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다.
  • 성서고고학들은 혜성이 지구 주위를 꽤나 빈번히 지나다녔는데, 이것이 기상현상에 영향을 주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퉁구스카에 운석이 떨어졌을 때도 지구 반대편의 영국, 스칸디나비아 쪽에서 밤 늦게까지 은은하게 빛이 비추었는데, 이것을 고대인들이 해와 달이 멈추었다고 기록했다는 것이다.
  • 하지만 중세의 몇몇 학자들은[10] 성경에서 여호수아가 멈추라고 한 것은 태양이지 지구가 아니라는 논리로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반대하기도 했다. 다만 당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근거가 지금에 비해 부족했다.[11]
  • 현대에는 이스라엘이 중동 분쟁 도중과 팔레스타인 지역 분쟁과도 비교하는데, 야훼는 여호수아에게만 전쟁을 허락했을 뿐, 지금의 유대인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지역의 주민들은 원래 그 지역의 유대인들의 후손이다.
  • 새찬송가 347장 ‘허락하신 새 땅’에는 여호수아를 기반으로 작사되었다.
  • 성경 등장인물들 중에 영상매체화 되는 빈도가 저조한 편이다. 창세기의 인물들, 모세, 삼손, 다윗 등에 비해 극적인 이야기가 별로 없는데다 주역이 되는 활약이 보기에 따라서 침략전쟁이 되는데다 매국노로 볼 수 있는 라합이나 패전의 책임을 모두 덮어쓴 감이 강한 아간 이야기 등 해석에 따라서 혐오감을 주는 일화들이 존재하고 어떻게 미화를 해도 개운치 않은 느낌을 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에서는 모세를 따르던 젊은시절의 여호수아가 나온다.
[1] 코이네 그리스어로 "눈(나우에)의 아들 여호수아(이에수스)"라는 의미이다. 현대 그리스어로는 'Ιησούς του Ναυή (Iisoús tou Naví)'로 표기하며 정교회권인 러시아나 불가리아에서는 그리스어 발음을 따라 '이이수스 나빈(Иисус Навин)'으로 표기한다.[2] 공동번역 성서상의 표기이다. 개신교 통용표기는 "여리고", 가톨릭 통용표기는 "예리코"이다. 현대 히브리어로는 예리호(יְרִיחוֹ, [jɛʁiˈχo\])로 발음한다. [3] 테크노마트 진동과 같은 공명현상 또는 지진에 의한 붕괴로 보는 해석이 있는데, 가능성은 있어도 증명하긴 어렵다. 사실 그 많은 사람들이 동일 주파수로 소리를 질렀을 확률보다는 그냥 타이밍 맞게 지진이 일어났다는 게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고고학적 발굴로는 저 시대 때 아예 성벽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다.[4] 성경 본문에도 아이성 공략의 패전의 원인은 아이성이 작은것에 방심해 소규모 병력만 올려보낸것으로 나온다. 때문에 신의 개입의 요소를 일단 접어두고 현실적으로 해석하면 근본적인 패전의 책임은 여호수아에게 있기에 아간에게 책임을 돌린건 여호수아 자신의 실책을 감추기 위한 책임전가로 볼 여지가 크다. 이는 중국의 조조가 군 사기를 올리기 위해 군량 담당관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인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5] 일부는 노예로 부려먹었고, 일부는 저쪽에서 필사적으로 저항해서 이스라엘이 정복을 포기했다.[6] 사사 혹은 판관이라고 한다.[7] 모세의 사후 가나안 입성을 앞둔 여호수아에 대한 야훼의 약속. 개역개정에서는 '강하고 담대하라.'로 유명한 구절.[8] 아이 성 점령 이후 여호수아의 설교 대목. 영적 침체기로 평가 받는 판관(사사) 시대를 생각하면 따끔한 대목.[9] 여호수아 10:12[10] 많은 사람들의 착각과는 달리 중세 기독교가 꼭 지동설을 반대했던 것은 아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도 기독교 신앙을 가졌기도 하고.[11] 지동설은 티코 브라헤의 관측을 바탕으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체계화 한 이후 근거를 갖추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