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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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약성경에 기록된 고대 이스라엘의 12개 부족.
2. 설명
창세기에서 야곱은 레아, 라헬 및 레아의 하녀 실바(질파), 라헬의 하녀 빌하를 통해 열두 아들과 딸 하나(디나)를 뒀고 라헬 소생의 아들인 요셉도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낳았다. 요셉의 도움으로 가족과 함께[1] 이집트에 온 야곱은 창세기 49장에서 죽으며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포함한 자손들에게 유언과 함께 축복 또는 저주를 남겼다. 성경에 따르면 이들의 후손이 바로 12지파다. 맏아들이었던 르우벤은 원래 다른 아들들의 두 배의 상속을 받을 자격이 있었으나 서모 빌하와 간통하는 죄를 저질러 장자권을 빼앗겼고, 유다가 이를 받았다. 또 야곱은 요셉을 총애하여,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자기 아들로 간주하고 야곱의 다른 아들들과 동등한 몫을 차지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요셉의 몫이 두 배가 되게 만들었다. 레위 지파는 제사장 지파로서 야훼(또는 여호와)의 것으로 간주되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재산 분배에서 제외되었다.
출애굽기(탈출기)에서 모세를 따라 이집트를 떠난 히브리인들은 예리코의 전투 후 가나안(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했고,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는 12지파에게 땅을 분배했다.[2]
민수기 2장에 따르면 이집트를 떠날 때 12지파의 장막 및 행렬 배치도는 아래 표와 같다.
- 장막 배치도: 방위는 시계방향으로 북→동→남→서 순이다.
- 행렬 배치도(→방향으로 진행)
신약 시대에 예수는 수제자 12명을 12사도로 임명했고, 요한묵시록(요한계시록) 7장에서는 단 지파를 제외한 모든 지파가 12,000명씩 야훼에게 표를 받아 십사만 사천 명이 유대인 대표로 뽑혔다. 단 지파 대신 레위 지파가 포함되었으며, 에브라임 지파는 '요셉 지파'라는 이름으로 나와서 열두 지파로 유지되었다.[3][4] 그 뒤로 온 세상에서 모인 무수한 사람들이 야훼를 경배한다.
3. 목록
지파의 순서는 야곱의 아들들 및 요셉의 손자들이 태어난 순서, 괄호는 가톨릭 성서의 표기다. 역대기 상권(역대상) 초반부에도 12지파를 언급한다.
3.1. 르우벤 지파
야곱과 레아의 아들이며 야곱의 자녀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르우벤의 후손.
요르단 강 및 사해 북동쪽 길르앗 지역에 정착했고 역대기에 따르면[5] 다윗이 왕위에 올랐을 때 갓 지파, 므낫세 반지파와 함께 다윗을 지지했다. 열왕기하 15장 29절에서 아시리아의 침략으로 납달리 지파의 영토와 함께 주민들이 아시리아로 끌려갔다. 르우벤이 야곱의 첩이랑 불륜을 저질렀다가 장자권을 박탈되었기에 구약에서의 비중은 거의 없고 이름만 가끔 언급되는 지파.
3.2. 시므온(시메온) 지파
야곱과 레아의 아들인 시므온의 후손.
민수기에서 이집트 탈출 전까지 장정 수가 59,300명이었으나 가나안에 진입할 때는 22,000명으로 줄어들었다. 유다 지파의 영토 한가운데에 정착했고 역대상 4장 41절에서 히스기야 시대에 시므온 지파의 후손 일부가 마온(므운) 지방에 정착했다는 기록이 있다. 인구가 적었던 탓에 이웃인 유다 지파에 묻힌 지파.
3.3. 레위 지파 (제사장 지파)
야곱과 레아의 아들인 레위의 후손.
제사장 지파로 분류되어 따로 영토를 받지 않았으나 이스라엘 곳곳에 세워진 성소를 지켰다. 성경에서는 12지파로 분류하지 않았지만 편의상 같이 분류했다.
사무엘, 엘리, 예레미야가 레위 지파 출신이다.
3.4. 유다 지파
야곱과 레아의 아들인 유다의 후손.
예루살렘이 포함된 가나안 남부에 정착했고 훗날 유대인이 되었다. 다윗, 솔로몬을 포함한 다윗 왕조의 역대 왕, 갈렙,[6] 예수가 유다 지파 출신이다.
3.5. 단 지파
야곱과 라헬의 몸종 빌하의 아들인 단의 후손.
여호수아에게 가자 주변을 분배받았으나 사사기 시대 초기에 납달리 지파의 영토 북쪽로 옮겼고 모세의 손자인 요나단[7] 을 제사장으로 추대한 뒤 집에서 이방신의 신상을 모시던 미카(미가)가 만든 신상을 야훼라고 모시는 우상숭배를 저질렀다. 그 후 북왕국 시대에 벧엘과 단[8] 에 여로보암 1세가 금송아지 신상을 세웠다. 모든 지파 중에서 가장 북쪽에 정착해서 구약성경에서 '단에서 브엘세바[9] 까지'라는 말이 생겼다.
삼손이 단 지파 출신이며 계시록 7장에서 단 지파만 표를 받지 못했다.
한국의 기독교 근본주의 사이비 역사학에서 단 지파가 바로 ''단군'''이라며 동방 및 한민족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례가 많다.
3.6. 납달리(납탈리) 지파
야곱과 빌하의 아들인 납달리의 후손.
여호수아를 필두로 한 가나안 정복 전쟁을 거쳐 갈릴리 호수 및 요르단 강 서쪽을 포괄하는 11지파[10] 중 가장 넓은 영역에 정착했으며 다윗이 왕위에 올랐을 때 장수 100명과 전사 37,000명을 파견했다. 사사기 시대에 가나안 부족 일부를 예속시켰고 드보라와 기드온을 도와 가나안, 미디안과 싸웠다. 북왕국 시대에 아람과 아시리아의 침략으로 주민들이 포로로 끌려갔다.
사사기에서 드보라를 도운 발락이 납달리 출신이며, 토빗기에서는 등장인물 전원이 이 지파 소속이다.
3.7. 갓(가드) 지파
야곱과 실바의 아들인 갓의 후손.
요르단 강 동쪽 길르앗 지방, 므낫세 반지파와 르우벤 지파의 영토 사이에 정착했다. 역대기에서 다윗을 지지한 지파 중 하나로 르우벤 지파 및 므낫세 반 지파의 인원과 합친 12만 명을 지원했다.
3.8. 아셀(아세르) 지파
야곱과 실바의 아들인 아셀의 후손.
납달리 지파의 영토 서쪽인 지중해 연안에 정착했다. 사사기 시대에 기드온을 도와 미디안과 싸웠고 그 후 성경에서 비중은 거의 없으나 신약 시대에 아기 예수를 만난 여성 예언자인 한나가 아셀 지파 출신이다.
3.9. 잇사갈(이사카르) 지파
야곱과 레아의 아들인 잇사갈의 후손.
갈릴리 호수 근처에 정착했다. 데보라와 함께 가나안 왕 야빈과 싸웠고 사사(판관) 돌라가 잇사갈 지파 출신이다. 역대기에 따르면 용맹한 전사가 많이 배출된 지파로[11] 다윗이 왕위에 올랐을 때 우두머리 200명이 휘하 전사들과 함께 합류했다.
북왕국의 3대 국왕인 바아사가 잇사갈 출신이다.
3.10. 스불론(즈불룬) 지파
야곱과 레아의 아들인 스불론의 후손.
아셀 지파와 납달리 지파의 영토 남쪽에 정착했고 드보라와 기드온, 다윗을 도운 지파다. 신약 시대에 예수가 기적을 행한 가버나움(카파르나움)이 옛 스불론 지파의 영토에 있었다.
판관(사사) 엘론이 스불론 지파 출신이다.
3.11. 베냐민(벤야민) 지파
야곱과 라헬의 아들 베냐민의 후손.
유다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의 영토 사이에 정착했다. 사사기 시대에 드보라를 도와 야빈과 싸웠고, 이후 다른 지파들과의 분쟁에 휘말려 1대 11로 싸운 끝에 남자 600명만 남았다가 베냐민이 멸망하는 것만은 막기로 합의한 나머지 11지파가 야베스 길르앗 지역에서 약탈한 여자 400명 및 정해진 날에 임의로 납치한 여자 200명을 모아서 멸망을 피할 수 있었다.
분열왕국 시대에는 남유다 왕국을 지지했고 사울, 사도 파울로스, 요나단, 왼손잡이 판관 에훗이 베냐민 지파 출신이다.
3.12. 므낫세(므나쎄) 지파
요셉의 아들 므낫세의 후손.
요르단 강 동쪽과 서쪽에 나뉘어 정착했으며 유다, 에브라임에 못지않게 강성했다. 다윗을 도울 때 요르단 서쪽의 므낫세 반지파는 18,000명을 지원했고 요르단 동쪽의 므낫세 반지파는 르우벤, 갓을 합쳐 12만 명을 지원했다. 기드온, 입다, 엘리야가 므낫세 지파 출신이다. 요르단강 동쪽 길르앗 지역에 정착한 므낫세 반지파는 입다 항목에서 보듯이 다른 지파에게 차별을 받았다.
3.13. 에브라임(에프라임) 지파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의 후손.
사마리아, 실로[12] 근처에 정착했다. 유다, 므낫세에 못지않게 강성한 지파였고 요셉의 장자권을 근거로 다른 지파에게 패권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사사기 시대에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울 때 빠졌다가 뒤늦게 끼어들어서 권리를 요구했을 때는 기드온이 달래서 무마했다. 에브라임은 입다가 암몬족과 싸울 때도 간섭했다가 십볼렛 사건으로 전사 42,000명이 죽었다. 여로보암 1세가 북이스라엘 왕국을 세우면서 이사야와 호세아[13] 는 이사야 7장 2절, 호세아 4장 17절에서 북왕국을 에브라임이라고 불렀다.
여호수아와 여로보암 1세가 에브라임 출신이고 계시록 7장 8절에서 요셉 지파란 이름으로 표를 받았다.
4. 잃어버린 10지파 한민족설
북이스라엘이 망하고 12지파 중에 10지파가 이곳 저곳으로 이동하게 되다가 잃어버린 10지파 중 하나[14] 가 '''한반도에 정착해 한민족'''의 국가인 진한을 세웠다는 설이다. 근거가 매우 빈약하고 실질적인 증거가 없어 지금은 유사역사학으로 치부되는 설이다.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연군 분묘 도굴사건을 일으킨 오페르트가 1860년대에 처음 주장했다.[15] 또한 이스라엘 정부가 잃어버린 10지파가 어디로 향했는지에 비교적 유망한 장소들을 뽑았을 때 고조선이 그중에 하나로 지목된 적이 있다.
'잃어버린 10지파' 설은 미국, 영국 등 유럽, 이스라엘의 미스터리 역사학으로 해외에서 잘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도 '일유동조론'이라고 하는 학설이 있는데 이 학설은 일본인과 유대인은 같은 조상에서 나왔다는 설로 북이스라엘이 망하고 12지파 중에 10지파가 이곳 저곳으로 이동하게 되다가 잃어버린 10지파 중 하나가 일본 열도에 정착했다는 설이다. 위의 '잃어버린 10지파 한민족설'과 마찬가지로 근거가 매우 빈약하고 실질적인 증거가 없어서 지금은 유사역사학으로 치부되는 설이다. 실제로 이 일유동조론을 만든 일본인은 죽기 전에 유언으로 "'혹시 그렇게 하면 유대 자본이 일본에 투자를 해줄까봐 거짓말을 했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16] 하지만 일본에서는 여전히 이 '일유동조론'을 믿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이런 만화책도 있을 정도이다. 붉은비둘기야 인류의 미래를 구하라!
그렇다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야하지 말아야할 점은 세계 각지에서 숭조사업으로 실제 혈통과는 무관한 옛날 더 발전한 문명국가를 자신의 계보에 끌어다붙이는 사례는 흔했다. 이런 식으로 친다면 유럽 각지의 나라들은 다 그리스, 로마의 후예들일 것이다. 또한 어느 민족이라든지 다른 나라에 이주해서 정착해 살아가 나라 안에서 살아가는 일은 역사적 기록에서도 차고 넘치고 이들이 넘어갔다고 해서 그들이 이스라엘 민족이라든가 그런 것은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시각이 희석되고 문화에 영향을 주었어도 그 나라의 문화에 동화되었을 가능성도 높다.[17] 또한, 어느 나라라든지 살기 위해서 오거나, 권력투쟁에서 패해 들어온 무리들의 이주민들은 있을 수밖에 없고, 거리상으로도 중동에서 동북아시아까지 육로로 갈려면 10년은 넘게 걸려서 고조선까지 올 확률은 0%에 가깝다.[18] 이런 이야기를 실제로 믿거나 자신들이 이스라엘 민족들의 흔한 시각인 똑똑한 머리를 가졌다라고 좋아하면 지금 사이비 역사학에 장단을 맞춰주는 꼴이나 다를 바 없는 이야기니까 그냥 헛소리로 치부하고 넘어가자.
5. 관련 문서
[1] 이집트로 들어가기 전에 죽은 레아와 라헬은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에 묻혔다.[2] 여호수아기 14장~22장.[3] 이 때문에 리옹의 이레네우스 등 초기 교부들은 적그리스도가 단 지파에서 올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4] 예수를 배반한 유다가 단 지파의 후손이라는 썰이 있다.[5] 역대상 11장 42절, 12장 37절.[6] 여호수아의 동료.[7] 모세의 아들 게르솜의 아들.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동명이인이다.[8] 단 지파가 정착한 도시로, 원래 이름은 라이스였다.[9] 네게브 사막 근처에 있던 도시.[10] 레위 지파는 땅을 받지 않고 성소를 지키는 직분을 받았으므로 예외.[11] 역대상 4장 2~7절.[12] 사사기 및 사무엘기 시대에 언약궤가 놓인 곳.[13] 북왕국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와 동명이인인 예언자.[14] 주로 단 지파가 거론된다. [15] 조선인이 중국인, 일본인보다 피부색이 더 밝고 체구가 더 훤칠한 것이 근거란다. 구한말 조선에 온 서양인들의 감상 중 하나가 조선인의 외모가 극동 3국 중 가장 낫다고는 했다.[16] 출처: 황당한 일본[17] 가령 한국 본관의 절반은 중국 출신이라고 말할 정도로 많다. 그렇지만 이미 한국인과 중국인의 차이는 많이 벌어진지 오래다.[18] 북이스라엘 왕국이 망한 시기는 기원전 8세기다. 이 기원전 8세기에 고조선까지 직통으로 갈 방법따윈 없고 설령 고조선까지 간다고 해도 실크로드를 거치던가 해안가를 따라 이리저리 돌아가니다가 우연찮게 고조선에 들러 정착한다...가 유일한 시나리오인데 지중해 쪽으로 가려고 해도 인도양쪽으로 가려고 해도 그 사이에 정착할 땅 정도는 얼마든지 있기에 굳이 다른 곳 다 놔두고 고조선까지 올 이유는 전혀 없다. 설령 온다고 해도 정말 극소수가 올 것이지 '한민족은 12지파의 후손' 이런 소리를 할 정도의 규모로 오지는 못할 것이다. 오려고 해도 오는 도중에 수가 팍 줄어있을 것이고 이들도 오랜 시간 동안 거기서 살다보니 자신들이 그 민족이라는 시각도 차츰 없어져 동화된 사례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