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브게니 말킨
1. 소개
NHL의 피츠버그 펭귄스 소속의 프로 아이스하키 선수겸 부주장이다.
2. 생애
1986년 7월 31일 러시아의 마그니토고르스크에서 출생했다. 블라디미르와 나탈리아 말킨[1]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살 차이나는 형 데니스가 있다. 아버지인 블라디미르는 러시아 최대 철강회사 중 하나인 마그니토고로스크 제철소에 다녔다고 한다. 마그니토고로스크가 소유하고 있는 메탈루르크 마그니토고르스크 유소년팀에서도 뛰었다. 3살 때부터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고 2년 뒤 첫 하키팀에 입단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스포츠에 소질을 보였다. 두 아들 중 하나는 프로선수로 뛸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부모님이 키가 작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래서 아무도 말킨이 세계 최고의 운동선수가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2004년 드래프트 당시에 찍힌 사진만 봐도 키만 컸지 하키선수치곤 말랐었다.
3. 선수 경력
17세 때 러시아 프로아이스하키 리그 중 하나인 러시안 슈퍼리그 소속 메탈루르크 마그니토고르스크에 입단,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 해 U-18 월드챔피언십 러시아 국가대표로 발탁되었고 알렉산더 오베츠킨과 1라인에서 뛰게 되고 동메달을 땄다.
그리고 '''이적 분쟁'''이 일어나게 되는데 발암 러시아 리그에서의 첫시즌을 무사히 마친 말킨은 2004년 NHL 드래프트에서 피츠버그 펭귄스에게 1라운드 2순위로 지명 받게 된다. 하지만 IIHF와 NHL 사이의 이적 분쟁으로 인해 그의 피츠버그 펭귄스 데뷔는 미뤄지게 된다. 20세의 말킨은 메탈루르크와 2007년 5월까지 러시아리그에서 뛰어야 한다는 1년짜리 계약을 하게 되는데 이게 알고 봤더니 타협된게 아닌데다가 엄청난 심리적 압력을 가했다고. 거기다가 메탈루르크는 2005-06 시즌이 끝나고 떠나게 된다면 자유롭게 보내줄 것이라고 약속까지 했었다. 자유를 보장해준다더니 똥을 투척했다. 말킨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치게 된다. 그리고 계약에 사인하지 않을 경우 NHL에서도 못 뛰고 군대에 가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어딜가나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걸 보여주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트레이닝 캠프가 시작하기 전 말킨은 떠나기로 결심했다. 팀에서 말킨이 떠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는지 이것을 막기 위해 말킨의 여권을 압수했으나 세관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시 돌려줬다고 한다. 당시 그의 에이전트인 J.P 베리는 미국 대사관에서 말킨의 비자승인 때문에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킨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에이전트는 신변보호차 입을 다물고 있었다.
2006년 10월 말킨의 첫 NHL 경기를 앞두고 메탈루르크에서 NHL과 피츠버그 펭귄스를 상대로 미국 가정법원을 통해 소송을 걸게 된다. 소송을 한 이유는 말킨이 아직 러시아와 계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NHL에서 뛰는 건 옳지 못한 관행이라고 했다. 2006년 11월 법원의 명령으로 말킨은 2006년 시즌을 계속 뛸 수 있었고 2007년 2월을 끝으로 소송은 끝나게 된다.
2006년 9월 20일 자신의 첫 프리시즌 경기에서 팀메이트인 존 르클레어와 부딪혀서 어깨가 탈골이 되었다. 그래서 시즌 초반을 놓치게 되고 데뷔는 10월 18일로 미뤄지게 된다. 뉴저지 데블스를 상대로 NHL 첫 데뷔골을 기록한다. 그리고 6경기 연속 득점하게 되는데 이 기록은 아이스 하키 리그가 생기게 된 1917-18 조 말론의 14경기 연속 득점 이후 최근 기록이다. 하지만 조 말론의 기록은 NHL 이전의 NHA(내셔널 하키 협회)의 기록이다.
시드니 크로스비와 함께 말킨은 2006-07 루키시즌을 33골에 85 공격 포인트로 마치게 되고 정규 시즌 신인상인 칼더 메모리얼 트로피를 받게 된다. 피츠버그 펭귄스로서는 마리오 르뮤 다음으로 2번째 수상이다.
두번째 시즌을 맞이한 말킨은 토론토 메이플 리프스를 상대로 자신의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게 된다. 시즌 중반에 크로스비가 발목 부상으로 경기를 나올 수 없게 된다. 크로스비의 부재에도 말킨은 28경기동안 44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다. NHL에서 2번째 시즌을 마친 말킨은 106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는데 알렉산더 오베츠킨에게 6포인트가 뒤쳐지는 바람에 아트 로스 트로피를 놓치게 된다. 하트 트로피에 후보로 올랐으나 이 상 역시 오베츠킨이 받게 된다.
2008-09 시드니 크로스비의 NHL 통산 100번째 골을 어시스트하면서 본인의 NHL 200 공격 포인트를 달성하게 된다.
2009년 NHL 올스타전 스킬 컨페티션에서 우승한다.
러시아인으로서는 두번째[2] 피츠버그 펭귄스 선수로서는 네번째[3] 아트 로스 트로피를 수상하게 된다.
2009년 피츠버그 펭귄스의 스탠리 컵 우승으로 1992년 마리오 르뮤 이후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 득점 선두에 오른 첫 선수가 된다. 말킨의 36 공격 포인트는 웨인 그레츠키가 득점한 40포인트 다음으로 높은 기록이다. 같은 해 아트 로스 트로피와 콘 스마이스 트로피를 받게 되는데 이 기록은 피츠버그 펭귄스 역사상 두번째이다.[4]
2010-11 시즌 전방십자인대로 고생하다가 결국 무릎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피츠버그 펭귄스의 총괄 매니저였던 레이 세로[5] 에게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자주 언급되는 오베츠킨이 포스트시즌만 되면 고배를 마시는 경우가 많은데 그에 비해 말킨 는 스탠리 컵을 2번 들었고 스탠리컵 결승에서 내슈빌 프레데터스를 4-2로 이기고 3번째 스탠리컵을 들게 되었다. 경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3.1. 국가대표
'''올림픽에서는 햄보칼수 업다'''
2003년 IIHF U-18 세계선수권 러시아 국가대표로 처음 발탁되었다. 2004년 IIHF U-18 세계선수권에서는 러시아 대표팀 주장을 맡았다. 2004년에 이어 2005년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알렉산더 오베츠킨과 함께 뛰게 되는데 오베츠킨-말킨 듀오를 앞세워 러시아는 은메달을 따게 된다. 1년 뒤 말킨은 세계선수권 러시아 대표팀에 합류하게 되었고 대회에서 득점엔 실패했으나 4 어시스트를 기록한다. 그리고 동메달을 딴다. 2006년 말킨은 세번째 주니어 세계선수권, 첫 동계올림픽, 세계선수권 이렇게 총 세개의 대회를 러시아 대표팀으로 뛰게 된다.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2년 연속 은메달을 따게 된다. 2달 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4위를 하게 된다. 2007 세계선수권에서 개인 최고 성적을 기록하게 된다. 일리야 코발척과 알렉산더 프롤로프와 선발로 뛰게 되고 세계선수권에서 두 번째 동메달을 따게 된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러시아 국가대표로 발탁되는데 4경기동안 3득점, 6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준준결승에서 에게 지고 6위로 마무리했는데, 러시아 아이스하키 대표팀 최악의 올림픽 성적이라고 한다. 2012년 IIHF 월드챔피언십에서 베스트 포워드와 MVP로 선정되고 올스타전에도 선발된다. 러시아 대표팀은 금메달을 획득하게 된다. 11득점에 8 어시스트를 기록. 나오는 경기마다 적어도 1 공격포인트는 기록했다고 한다. 2개의 해트트릭도 세웠는데 하나는 스웨덴과의 예선전이었고 또 하나는 핀란드와의 준결승전이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6경기를 뛰었고 핀란드에게 져서 5위로 마감했다.
4. 플레이 스타일
'''Elite veteran playmaker'''
공간활용도가 높아 패스를 잘한다. 주로 센터를 맡고 있는데 수비와 공격도 준수한 편이다. 포워드[6] 포지션에서 다 플레이 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잘했을때나 못했을 때나 감정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페이스 오프에서 약간 밀리는 경향이 있다.
5. 수상 기록
'''NHL'''
- 스탠리 컵(플레이오프): 2009년, 2016년, 2017년
- 아트 로스 트로피(정규 시즌 최다 득점 포인트): 2009년, 2012년
- 칼더 메모리얼 트로피(정규 시즌 신인상): 2007년
- 콘 스마이스 트로피(스탠리 컵 포함 플레이오프 MVP): 2009년
- 하트 트로피(정규 시즌 MVP): 2012년
- 테드 린제이상(선수협회 선정 우수 선수상): 2012년
- NHL 올스타전: 2008년, 2009년, 2012년
6. 기타
- 2004년 드래프트 당시
- 러시아인 최초로 콘 스마이스 트로피를 받았다.
-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말킨은 영어를 정말 조금 밖에 못했다고 한다. 그런 그를 러시아 국대 동료이자 펭귄스 동료인 세르게이 곤차가 옆에서 많이 도와줬다고. 그가 아니였으면 자신은 반쪽짜리 선수밖에 안 되었을 거라고 말킨은 말한다. 2년동안 같이 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알게 되었다고 한다.
- 2009년 NHL 올스타전에서 오베츠킨과 함께 선보인 브레이크어웨이[9] 챌린지가 볼 만하다.
- 마그니토고르스크에 레스토랑을 가지고 있는데 내부 디자인이 감옥 같다고 한다.
- 프렌치 마스티프인 제프리라는 대형견을 키우고 있다.
[1]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을 했다.[2] 첫번째는 오베츠킨[3] 르뮤, 야거, 크로스비 순[4] 첫번째는 1992년의 마리오 르뮤[5] 지금은 뉴저지 데블스의 총괄 매니저이다[6] 라이트 윙, 센터 포워드, 레프트 윙[7] 20세 미만[8] 18세 미만[9] 퍽을 가진 공격수와 상대 골텐더 사이 수비선수가 없을 때 발생하는 득점 기회 상황[10] 왼쪽 갈비뼈 부근에 아들 니키타를 위한 문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