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버그 펭귄스
1. 소개
NHL 동부지구 메트로폴리탄 디비전 소속의 팀. 굴곡진 역사를 가진 확장 프랜차이즈 중 하나.
2. 역사
오리지널 식스만으로 운영해오던 60년대 NHL이 한계를 느끼고 67년 대거 6개의 신생팀을 받아들여 12개 팀의 양대 리그를 구성한다. 이때 펜실베이니아 주 상원의원 잭 맥그레거와 투자자 피터 블록의 주도로 피츠버그 향토 식품업체 하인즈,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구단주 루니 일가, 지역은행인 멜론 컴퍼니 등의 돈을 끌어모아 창단했다. 신생팀 이름은 펭귄스로 결정했다.
하지만 피츠버그의 팀 역사는 험난했다. 첫해 드래프트 1위로 지명한 미첼 브리에르는 신인왕에 오르는 맹활약을 했지만 그 다음해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쳐서 선수로써 뛸 수 없었고, 팀은 약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거기다 빈약한 자금력 때문에 대주주 피터 블록이 파산을 선언하고 리그 사무국 관리체제에 들어간 채 해체위기까지 갔다. 1975년에 부동산업자 앨 사빌 등 사업가 3명이 인수해 어렵사리 팀의 해체만은 막았고, 1978년에 오하이오의 향토 부동산업자 에드워드 J. 디바톨로 시니어(1909~1994)[1] 에게 팀을 팔기도 했다. 한동안 최하위를 전전하면서 얻은 1984년 드래프트 전체 1위 지명권으로 키 큰 센터 한명을 지명한다.
그 선수의 이름은 바로 '''마리오 르뮤'''(Mario Lemieux). 마리오 르뮤는 4년 전 웨인 그레츠키가 그랬듯 19세의 나이에 데뷔하자마자 73경기 43골 57어시의 대활약으로 리그를 평정했고, 순식간에 웨인 그레츠키를 위협할 강력한 후발주자로 떠올랐다. 그레츠키가 마크 메시어, 야리 쿠리 등 동년배 레전드 선수들과 함께 리그를 지배했다면, 르뮤는 약체팀 피츠버그를 홀로 지탱하면서 젊은 인재들을 모으는 버팀목이 되었다. 그 결실은 라이트윙 마크 레키, 레프트윙 키스 스티븐스, 센터 존 쿨렌, 골리 톰 바라소, 그리고 NHL의 90년대를 대표하는 체코의 천재 공격수 '''야로미르 야거'''(Jaromir Jagr) 등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고 있듯 한국계 캐나다인 수비수 백지선(Jim Paek)이 이때 펭귄스 멤버로 스탠리컵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르뮤의 어시스트를 받아 득점을 하는 백지선[2]
80년대 후반 마리오 르뮤가 홀로 팀을 지탱하면서 모인 젊은 재능은 1990년 결실을 맺어 90~91시즌 팀 창단 최초로 스탠리컵 파이널에 올라 미네소타 노스 스타즈를 꺾고, 다음해에는 시카고 블랙호크스를 꺾으며 2년 연속 스탠리컵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의 성공도 잠시, 팀을 홀로 이끌던 마리오 르뮤는 호지킨씨병 진단을 받아 스탠리컵 2연패를 이룬 뒤에는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 정도로 큰 고통때문에 경기를 뛸 수 없었고 팀은 재정적 위기에 직면했다. 다행히 팀은 야로미르 야거라는 에이스가 르뮤의 자리를 이어받았지만 야거를 받쳐줄 동료들을 재정문제로 하나 둘 잃어가며 스탠리컵 2연패팀의 위용은 점차 추락했고 결국 르뮤의 은퇴와 함께 팀은 두번째 파산에 직면한다.
1997년에 은퇴한 르뮤는 팀의 해체를 막기 위해, 자신의 잔여연봉 전부를 유예하고 자신이 직접 팀의 재건에 나선다는 제의를 한 후, 1999년에 대주주 하워드 볼드윈으로부터 지분을 사서 구단주가 됐다. 그런 각고의 노력과 펭귄스의 레전드 르뮤의 호소가 통했는지 투자자가 나타나 펭귄스는 간신히 해체를 면하고, 건강을 회복한 2000년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돕기 위해 구단주 마리오 르뮤가 선수로써 깜짝 복귀해 팀을 플레이오프에 이끄는 등 팀을 겨우겨우 지켜낸다.
그러나 2003-04 시즌에는 NHL 역사상 단일시즌 최다 연패인 18연패를 당하면서 절망적인 시즌을 보냈고, 이 시즌에 향후 팀의 10년을 책임질 마크-앙그레 플러리가 골리로서 데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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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레인저스항목에서 2004년 파업이 팀의 악성계약을 덜어내는데 의도치않게 기여했다면, 피츠버그 펭귄스의 경우 파업을 통해 팀의 재정적 숨통을 트고, 새롭게 팀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 시작은 바로 2005년 전체 1번으로 지명한 현 NHL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시드니 크로스비(위 사진 좌측)와 한해 먼저 전체 2순위로 지명했던 러시아 출신 센터 예브게니 말킨(위 사진 우측). 이 두 명의 천재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팀을 정비한 피츠버그는 과거의 안습한 시절은 뒤로 한채 NHL에서도 가장 인기좋고 잘나가는 팀으로 체질개선에 성공하여, 2008~09시즌 팀 역사상 3번째 스탠리컵 우승을 차지하는 등 오랫만에 성적과 수익 등 두마리의 토끼를 잡는 황금기를 맛보고 있다.
2.1. 14-15 시즌
'''이번 시즌 역대급 DTD 팀에 가려져 그렇지 여기도 만만치 않았던 DTD를 보여줬다'''
초반에는 그럭저럭 하다 한 때는 디비전 2위까지 올라오기도 했었다. 그렇게 플레이오프 진출이 가시화되는 듯 싶었으나 문제는 3월 이후 4연패 이상을 두 번 당했다는 것. 특히 두 번째 5연패는 4월에 당했고, 그 중에는 와일드카드 경쟁하던 오타와 세너터스에 3-0으로 이기던 경기를 3-4로 역전패한 것도 있었다. 이렇게 오타와 세너터스가 치고 올라오며 보스턴과 같이 오래도록 지키던 와일드카드 자리도 장담하기 힘들어졌다.
일단 오타와가 81번째 뉴욕 레인저스와의 경기를 3-0으로 이기고 보스턴이 81번째 경기에서 2-4로 플로리다의 고춧가루를 맞게 된 상태에서 이 팀의 상황이 더 중요해졌다.
그러나 현지시간 4월 10일, 뉴욕 아일런더스에게 1-3 으로 패하면서 승점이 96에 묶였고, 결국 보스턴 브루인스와는 여전히 한점 차 싸움이 되었다. 시즌 마지막 경기가 그나마 다행(?) 스럽게도 승점자판기 버펄로 세이버스인 게 다행... 이었고 결국 버팔로에 2-0 완봉승을 거두며 같은 날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를 이긴 오타와와 같이 와일드카드로 플레이오프에 올라갔다. 그리고 이 둘이 이기면서 보스턴은 그대로 광탈. 플레이오프 진출 팀 중 제일 승점이 낮았기 때문에 상대는 컨퍼런스 및 정규리그 승점 1위 뉴욕 레인저스.
1라운드에서는 뉴욕 레인저스와 붙어 5경기 모두를 1점차 접전으로 치르며 분전했으나, 결국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벌어진 5차전에서 연장 끝에 패하며 탈락했다.
2.2. 15~16시즌
펭귄스는 플레이오프에서 숙적 알렉산더 오베츠킨의 워싱턴 캐피탈스를 4-2로 물리쳤고, 탬파베이 라이트닝을 상대로 7차전 혈전끝에 스탠리컵 파이널에 진출했다. 그리고 산호세 샤크스와의 파이널에서 4-2로 우승하여 7년만에 스탠리컵을 다시 들어올렸다. 시드니 크로스비는 커리어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고 커리어 처음으로 스탠리컵 파이널 MVP에 올랐다.[3]
2.3. 16~17시즌
올해 '''창단 50주년'''을 맞이했다. 스탠리컵 결승에 처음으로 진출한 내슈빌 프레더터스를 4-2로 이기고 통산 5번째 스탠리 컵 우승을 달성함으로써 2년 연속 스탠리컵 우승을 맞게 된다. 그리고 시드니 크로스비는 지난 시즌에 이어 또 스탠리컵 파이널 MVP를 획득하셨다.
3. 계약중인 마이너리그 구단
3.1. 아메리칸 하키 리그
3.2. ECHL
4. 기타
가장 치열한 라이벌리는 같은 주의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 일명 '''Battle of Pennsylvania'''. 풋볼은 컨퍼런스가 다르고[4] , 농구는 피츠버그에 팀이 없으며, 야구는 1994년 지구 조정 이후 벅스와 필리스와의 라이벌리[5] 가 다소 약해진 반면 하키의 펜실베이니아 라이벌리는 매우 치열하다.
장 클로드 반담 주연의 영화 서든 데스는 피츠버그 펭귄스의 과거 소유주였던 하워드 볼드윈의 아내가 스토리를 써서 펭귄스가 영화에 등장하고, 경기가 중요한 소재인데 1994~95년 단축 시즌 기간에 촬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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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선수들 2명이 이 팀에서 뛰었다. 상술한 백지선 외에도 박용수(미국명 리처드 박)이 그들이다. 특히 백지선은 스탠리컵 결승전에서 우승컵을 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 두 명은 2015년 현재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남자 대표팀의 코칭스태프를 역임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피츠버그 자체가 한국인이 많은 도시는 아닌데 펭귄스를 뺀 나머지 프로팀 2개도 전부 한국과 인연이 닿아있고 검은색+노란색을 쓰는 것까지 같다. 피츠버그 스틸러스는 하인스 워드가 뛰었던 팀이고, 피츠버그 파이리츠에는 2015년부터 강정호가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