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양(사이비 종교)

 

'''주식회사 오대양
株式會社 五大洋
O DAE YANG Trading Co., Ltd.'''

<colbgcolor=#5A5752> [image][1]
설립년도
1984년
해산일
1987년 8월 29일
분류
사이비 종교
민속공예품제조업체
교세
약 80여명 / 관련 피해자 270여명
교주
박순자
1. 소개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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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이것은 축복받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이것은 평화 깃든 땅 바로 오 대 양'''

실제 오대양 방송 홍보자료 중 (한 아이가 부른 노래)

대한민국에 과거에 존재했던 민속공예품제조업체 이자 '''사이비 종교'''.

2. 상세


1987년 발생한 '''오대양 집단 자살사건'''의 오대양이 바로 이곳으로 이때 교주 박순자를 포함해서 다수가 시체로 발견되었고 그 후로 회사 자체가 영원히 사라졌다.
한국판 인민사원 집단자살사건.
교주인 박순자는 1984년경기도 용인군 남사면[2]에 민속공예품제조업체인 주식회사 오대양[3]을 세웠지만, 그 실체는 단순한 회사를 넘어서 종말론을 내세운 사이비 종교였다.
박순자는 과거에 여호와의 증인에 다녔고 그 뒤 기독교복음침례회, 일명 구원파에도 몸담았으며 그 후에 이탈하여 독자적으로 기업을 가장한 종교 '오대양'을 만들었는데, 일부는 '이탈은 위장일 뿐 실제로는 구원파가 외부의 돈을 끌어모으고자 만든 산하 계열사였고, 박순자는 구원파 대전지역 자금조달 책임자였다.'고 주장한다.
이후 2014년 4월 16일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터지고 유병언 회장이 운영하는 청해진해운이 오대양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나와, 오대양 및 구원파, 오대양 집단 자살사건이 다시 조명받았으며 언론에서 청해진해운의 모태가 되는 (주)세모의 막대한 자금이 오대양과 연관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즉 시대가 흘러가면서 오대양 → 세모 → 청해진해운으로 자금이 흘러갔고, 이 모든 것의 뒤에는 구원파와 유병언 회장 일가가 존재한다는 것이라는 내용들이 언급되었다.
하지만, 오대양 자금 내역에 대해서는 박순자가 오대양 설립 이전에 물품 대금을 구원파 교인에게 사업관계로 송금한 사실이 있으나 오대양 설립 이전이며 그후 한차례 오대양에서 인형을 구입한 점 정도의 정상적인 거래가 확대 해석되어, 그러한 오해를 만든 것으로 밝혀졌고
유병언 회장 역시 오대양 관련해서 전부 무혐의였으며 오대양사건은 1987년과 1988년 그리고 1991년 세 번의 수사 및 조사 결과에서 외부 세력과 관련 없는 집단자살로 결론이 났다.
구원파에서는 당시 오대양과의 연결 누명이 억울했었는지 시간이 꽤나 지난 2014년임에도 당시 금수원으로 진입하려는 검찰에게 오대양 사건과의 무관함을 다시 한번 밝혀달라는 내용을 주장하기도 했고, 실제로 검찰은 2014년 5월 21일 인천 지방검찰청이 공문을 통해 오대양 사건이 "당시 수사기록 검토 결과 집단자살이 구원파 측이나 유병언 회장과 관계 있다거나 5공 정권의 비호가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된 바 없다."고 다시 한번 확인 해준 바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관련기사: [정정보도] 검찰확인 결과, ‘구원파’ 오대양 사건과 무관
    고 유병언 전 회장 및 기독교복음침례회 관련 정정보도문
이후 기존의 기사들이 삭제되거나 정정 반론 내용들이 기사 하단에 실렸다.
세월호 당시 구원파에 대한 무분별한 보도 사례와 16,000여건에 해당하는 정정 및 반론 청구는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 행태들을 꼬집어 볼 수 있는 사례로 뽑히기도 한다.
[1] 해당 로고는 설립 초기부터 사건이 발생하던 1987년까지 사용되었다.[2]용인시 처인구 남사읍[3] 당시 오대양 주식회사는 충청남도 대전시 중구(現 대전광역시 서구) 가수원동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