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

 

終末論
1. 기독교적 종말
2. 성경에서의 언급
2.1. 복음서
2.2. 그밖의 성경에서
3. 재림과 해피엔딩
4. 시한부 종말론 배격
5. 부활
6. 관련 문서


1. 기독교적 종말


종말론(終末論)이라고 하면 포괄적으로는 세상의 마지막에 대한 모든 담론으로 포함한다. 단어 자체는 기독교, 또는 음모론자나 염세주의성 사람들이 가끔 쓰는걸 제외하면 흔히 쓰이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에, 해당 문서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말론만을 다룬다. 기독교 외의 종말론에 대한 내용은 말세 문서 참조.

2. 성경에서의 언급


기독교 조직신학의 종말론은 신약성경의 복음서, 테살로니카 전후서와 베드로 전후서 등의 서간문, 예언서인 요한 묵시록에 매우 많이 적혀있다.
신약성경의 정경에 포함된 책들 중에서도 종말론에 대한 입장은 상당히 다른 경우가 많은데, 데살로니카 전서와 후서만 하더라도 전서의 경우 '빠른 재림', 후서는 '연기된 재림'에 가까운 논조를 보이는 등 차이가 뚜렷하다고 알려져 있다. 바울로의 초기 서간 등 기독교 극초기 문헌일수록 종말이 가까이 왔다고 주장하지만 베드로후서와 같은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의 문헌들은 종말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식으로 서술이 애매해지는 경향이 존재한다. 역사적 예수 해석에 있어서는 예수가 종말론적 예언자, 유대적 묵시사상가였다는 설이 학계 다수의 지지를 받으며, 바울로 또한 최소한 그의 경력 초기에는 살아 있는 동안 예수의 재림과 종말이 올 것으로 믿었을 정도로 종말론자였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알고 보면, 여기에 씐 기독교다운 말세 기믹이 여러 매체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사실 잘 몰랐지만, 알고 보니 기독교다운 내용이었다' 라는 예가 많은 편. 창세기의 내용이 매체에 쓰이는 것과 거의 비슷한 맥락이다. 큰 전쟁이 발발한다거나 불의 비가 내린다거나 이상한 괴물이 출현하는 등의 내용은 후일 많은 문학에 영향을 끼쳤다.

2.1. 복음서


15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마르코복음 1:15 (공동번역)

13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라."

마태오복음 25:13 (공동번역)

위 성경 구절들은 예수께서 직접 하신 말씀으로, 모두 종말에 대한 경고를 하고있다. 예수께서 전하신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은 세계의 질서가 금방이라도 끝나버릴 것 같은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약 2000년 전에 종말을 경고하셨는데, 아직도 종말이 오지 않았다는 것을 현재를 사는 기독교인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가 기독교 종말론을 풀어가는 첫번째 열쇠가 될 수 있겠다.

2.2. 그밖의 성경에서


3 마지막 시대에 자기들의 욕정을 따라 사는 자들이 나타나서 여러분을 조롱하며 "그리스도가 다시 온다는 약속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 약속을 기다리던 선배들도 죽었고 모든 것이 창조 이래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지 않으냐?" 하고 말할 것입니다.

(중략)

8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9 어떤 이들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미루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러분을 위해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게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10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올 것입니다. 그 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천체는 타서 녹아버리고 땅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11 이렇게 모든 것이 다 파괴될 것이니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십시오.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의 심판날을 기다릴 뿐 아니라

12 날이 속히 오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2서 3:3~12 중

위 베드로의 말대로 초대교회의 많은 신자들은 주께서 하신 약속을 기다리다 죽었다. 이를 조롱하는 자들의 말대로 세상에 변한 것은 없어보였다.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도래한다고 하셨지만, 이 땅에 생겨난 것은 교회였다. 따라서 초대교회는 곧 온다고 하셨던 하느님 나라에 대해 재해석이 필요하게 되었고, 종말을 어떻게 다뤄야 할 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신학은 이런 종말에 대한 물음 가운데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약 2000년 동안 지연되고 있는 종말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는 기독교 교파에 따라, 개인적인 신앙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서 여기서 어떤 한 가지를 정답으로 제시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상황을 쉽게 풀어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TV 드라마에 비유해서 설명을 하면, 12부작 드라마의 최종회는 12회이다. 그 드라마의 정말 끝은 12회가 한 시간 가량 진행된 뒤, 모든 내용이 끝나고 엔딩 테마곡이 울릴 때겠지만, 12회를 최종회라 부르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이 세상의 최종회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 세상의 정말 마지막을 알리는 엔딩곡은 울리지 않았다. ''''이미, 그러나 아직''''(already, but not yet)이라는 것. '최종회를 2000년동안이나 하다니, 너무 긴 것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으나, 우주의 나이가 약 138억년이고 예수께서 오신 지 2000년이 지났으니, 이 세상의 역사를 1년이라 생각했 때 예수께서 오신 것은 12월 31일 밤이다. 지금 당장 종말이 온다면, 1년간의 드라마치고는 오히려 최종회가 매우 짧은 편인 것.[1]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시기로 작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1데살로니카 5:9 (공동번역)

다만 의외로 기독교 신자들이 다단히 오해하는 교리 중 하나이다. 이를테면 말세의 두려움[2]을 과도히 강조하는 때가 있는데 이것은 교리와는 오히려 반대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말세론은 '인류 멸망' 같은 느낌이라기보다는, '인류의 해피엔딩'이라는 개념에 가깝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세상의 각종 모순[3]들을 쳐부수고 지상낙원[4]을 강림하게 하여 믿는 기독교도를 구원하고 불신도[5]와 모든 악인을 단죄하여 인류사가 해피엔딩을 이룬다는 게 기독교 말세론의 핵심이다. 실제로 초기 교회의 신도들은 말세를 두려워한 게 아니라 말세가 오랫동안 오지 않아서 자신들의 믿음이 흔들릴까 봐 두려워하였다.

3. 재림과 해피엔딩


이 모든 계시를 보증해 주시는 분이 "그렇다. 내가 곧 가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오소서, 주 예수여! 주 예수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요한묵시록 22장 20~21절, 공동번역성서)
위의 구절은 요한묵시록의 마지막 구절이고 성경의 마지막 구절이기도 하고 성경은 종말에의 두려움이 아닌 이러한 해피엔딩에의 기다림과 간청으로 끝난다.
물론 기독교의 말세론에 의하면 이러한 해피엔딩은 열심히 믿는 기독교인과 자기 탓 없이 예수를 모르면서도 신의 은총을 간직한 사람들, 즉, 타 종교나 비신자라 하더라도 은총을 간직한 선행으로 공을 인정받아 사심판에서 세례받은 사람들의 몫이며, 불신자들과 악인과 타락한 세상은 마지막에 영원히 징벌받으므로, 평범한 사람이 말세를 두려워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린 자녀들이여, 마지막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적이 오리라는 말을 들어왔는데 벌써 기독의 적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때가 왔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1요한 2장 18절, 공동번역성서)
또한 말세는 교리상 차원에서 보면, '''예수 초림 때부터 시작된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기독의 재림은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날 일로 믿어지고 기독이 약속한 것이다. 즉 기독교다운 시각에서 본 세상은 '서서히 해피엔딩으로 다가가는 것' 이다.

4. 시한부 종말론 배격


우리는 성서가 증언하는 심판, 천당, 지옥에 관한 교회의 도그마를 다 믿으면서도 그 도그마의 우주론다운, 인간학다운 표현에서는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우리가 그런 것을 안다고 착각하였던 것보다 훨씬 적게 안다는 것을 시인해야 한다.''' 고딕 시대나 바로크 시대의 의인화(擬人化, anthropomorphic)한 묘사들은 신학상으로 별반 가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종말에 관한 계시는 깊은 신비의 장막으로 싸여 있고 종말론은 신학의 분야 중에서 가장 덜 천착된 분야이다.(가톨릭 대사전, <종말론> 항목 中)
물론 이 해피엔딩이 수십 년 후에 올지, 수십만 년 후에 올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마가복음 제13장에서 예수가 직접 말하기를, 재림의 때와 시기는 아버지만 알고 천사아들인 자신조차 모른다고 성경에 대놓고 기록되어 있다.[6] 재림의 장소나 날짜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면 사이비 종교이거나 이단이다. 기독교 말세론의 본질은 인류사의 슈퍼 해피엔딩인데 이 교리를 왜곡해 사람들을 착취하려 든다면 모순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자신이 따르는 종파의 지도자가 말세를 이야기하면서 이나 성관계나 무조건 봉사를 요구하면 꼭 의심해야 이롭다! 단언컨대 그런자는 해로운 자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 기독교에서는 시한부 종말론이 1990년대만 해도 굉장히 판을 쳤다. 한 예로 1991년 미국이 다국적군과 함께 이라크를 공격한 걸프 전쟁이 일어나자, 당시 한국의 기독교 신자들 사이에서는 "걸프 전쟁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제 곧 세상을 끝장낼 대전쟁인 아마게돈이 일어나고 종말이 온다!"라는 공포스러운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또한 걸프 전쟁이 막 벌어졌을 무렵에는 아직 소련이 존속하고 있던 터라[7] 한국 사회에서는 "소련이 결코 미국의 걸프 전쟁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소련이 무슨 수를 쓰든지 간에 반드시 미국에 맞서려 들 것이다. 그러면 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다!"는 불길한 예측이 꽤나 강했다. 한 예로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발행하는 신문인 국민일보에 칼럼을 연재하던 김성일 장로[8]는 그의 칼럼을 모은 책인 <비느하스여, 일어서라>에서 이렇게 예측했다.

"소련은 중동에서의 소외를 만회하기 위해 리비아 이란 등과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리비아와 이란은 그들과 손을 잡는 조건으로 이스라엘 침공을 제안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바로 에스겔 38장에 나오는 '''종말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미 이란 리비아 에티오피아를 제외한 중동의 모든 산유국들은 걸프전쟁 이후 미국편이 되어 있다. 결국 이 산유국들의 지지를 받으려면 소련은 이들 세나라와 함께 아랍 국가들의 공적으로 되어 있는 이스라엘을 치는 수밖에 없다. 이미 이 전쟁의 참패가 성경에 예언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소련은 이 자살적 공격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비느하스여 일어서라/ 김성일 지음/ 신앙계/ 260~281쪽#

그러나 걸프 전쟁 당시 소련은 국가 사회 전반이 만신창이 상태여서 도저히 걸프 전쟁에 끼어들어 미국과 싸워볼 처지가 되지 못했으며, 오히려 1991년 막바지에 그만 15개의 나라들로 분열되어 소멸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른 중동 나라들이 소련과 연합군을 결성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한다든가 하는 일도 결코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걸프 전쟁이 불러온 세기말의 불안감은 걸프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한동안 한국 사회에 계속 남았고, 그러한 공포심이 불러온 집단 패닉 현상이 바로 1992년의 이른바 휴거 소동이었다. 물론 휴거 당일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1990년대가 완전히 끝나는 1999년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는 시한부 종말론의 파동이 상당히 오랫동안 존속했다.[9]

5. 부활


참고로 신약성경에는 말세가 오면, 무덤에 묻힌 사람들이 다시 깨어나 그리스도에 의한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된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화장하면 부활 때 시체를 못 찾잖아?" 하는 논리로 화장이나 시체의 과도한 훼손은 성경에 맞지 않다고 두려워하는 신도가 상당히 있었다.[10] 그러나 이건 중세다운 생각이고 근현대 이후로 가톨릭교회와 주류 개신교를 비롯한 기독교 종파 대부분에서는 화장한 신자도 온전한 육체를 얻어서 부활한다고 간주하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가톨릭교회는, 매장을 전통 존중 차원에서 권장하지만, 화장 여부는 온전히 신자 자신에게 맡긴다. 개신교도 빌리 그레이엄을 위시한 주류 목사가 같은 내용을 설명한 바 있다.[11]

6. 관련 문서


[1] 그런데 우주의 나이에 대해 몇몇 복음주의적인 기독교 교파에서는 과학적으로 밝혀낸 사실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젊은 지구 창조설이 바로 그것인데, 창세기의 천지창조 대목의 '날'을 인간의 하루로 생각하여 지구와 우주의 나이를 고작 6000년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 지구 창조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인간이 느끼는 시간과 신이 느끼는 시간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의 입장에서는 2000년도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히려 이점을 가지고 천지창조의 날은 24시간이 아니라 특정 시대를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닌게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시간과 신의 시간은 같을 수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2] 신자인 우리도 휘말려 멸망하면 어쩌지? 등의 생각.[3] 이를테면 무한 경쟁 사회에서 누군가는 굶주려야 한다는 모순이나 핍박받고 고통받는 믿는 사람들의 수난과 사회 부조리.[4] 요한묵시록은 이것을 '''지상에 강림한 새 예루살렘''', 즉 천국이자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으로 묘사한다.[5] 물론 여기에는 기독교의 복음을 의도로 믿지 않은 수많은 사람도 포함된다.[6] 성부와 성자는 그 위격이 다를 뿐 같은 본질에 동일 본체인데 왜 성부만이 아는지는 모른다.[7] 2021년인 지금에 와서는 많이 사라졌으나, 소련이 붕괴되던 1991년 10월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던 한국인들한테 세계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은 그야말로 실존하는 악마의 나라였다(...)[8] 성서무오설을 믿는 정도를 넘어서 "성경 속에 세상의 모든 일들이 다 예언되어 있다!"라는 극단적인 문자주의를 신봉하는 성향을 지닌 인물이다(...)[9] 한국 기독교가 시한부 종말론을 자주 부르짖는 이유는 한국의 근현대 역사가 워낙 험난하고 어수선하여(청일전쟁, 러일전쟁, 일제강점기, 남북분단, 한국전쟁, 군사독재, 민주화 운동,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 및 연평해전 등) 자연히 한국의 기독교 신자들의 심리에 종말이 곧바로 들이닥친다는 공포심이 새겨졌기 때문이라고 도올 김용옥 교수가 그의 저서인 사랑하지 말자에서 주장한 바 있다.[10] 영화 킹덤 오브 헤븐 초반부와 중반부에서도 관련 장면이 나온다. 자살한 발리앙의 아내의 목을 자르고 매장(자살의 대죄를 지었으므로 부활할 때 온전한 육체를 못찾게)하라는 동생 신부의 지시 장면이나 전사자 시체를 방치하면 전염병이 돌기에 화장해야 하는데 여기서 부활 못하면 어떡하느냐고 걱정하는 주교와의 갑론을박(발리앙 왈: 하느님도 그 정도는 이해해 주시겠죠.) 장면 등[11] 다만 기독교가 시체가 훼손되어 부활하지 못할 걱정 때문만으로 화장을 터부시한 것은 아니다. 기독교 교리를 반대하는감정을 표현하고자 화장하는 사람들이나 육체를 '사람의 혼을 붙잡아놓은 감옥' 으로 해석하는 영지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주된 이유였다. 알고 보면, 아무리 전근대 시대의 사람들일지라도, 불타서 시체가 훼손되든 썩어서 훼손되든 똑같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오늘날의 가톨릭에서도 교리에 엿을 날리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전제하에서 화장을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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