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와 켄지
1. 개요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작가, 사회운동가. 별명은 '''시부야계의 왕자님'''.
2. 상세
1968년, 카나가와현 사가미하라 시에서 독문학자 오자와 토시오와, 임상생리학자 오자와 마키코의 차남으로 태어나, 곧 독일로 이주한다. 참고로 세계적인 명지휘자인 오자와 세이지의 조카이자 세이지의 아들이자 배우인 오자와 유키요시에게는 삼촌 관계.
어렸을 때부터 음악이나 문학에 열중해, 특히 당시에 방영되던 가요 채널 『더 베스트 텐』은 하위 20위까지 체크하는 열정이 있었다. 형이 다녔다는 이유로 사립 와코중학교에 진학해서, 오야마다 케이고와 만난다. 지금이나 그 당시나 오야마다의 인성은 상당히 좋지 않았는데[2] 중학교 3학년 당시 쵸후역의 쇼핑센터에서 약 '''100만엔'''의 절도를 하다 발각되어 전교생 앞에서 사과를 하기를 오자와가 권하고 오야마다가 받아들인 것.[3]중고일관교인 와코고등학교에 가지 않고, 가나가와현립 타마고등학교에 수험해서 진학. 부활동은 밴드를 했다. 당시 가정의 규율이 엄격해 용돈을 받지 못했지만, 다니고 있던 예비교[4] 에서는 좋은 성적을 받으면 용돈 비슷한 게 나와서, 공부는 열심히 했다. 현역으로 합격한 와세다대학에 입학하지 않고, 재수해서 도쿄대학 문과3류(문학부)에 입학. 1989년, 대학 재학중부터 아마츄어 밴드 「롤리팝 소닉」으로 활동. 프로로 데뷔하자마자 바로 플리퍼즈 기타로 개명했다. 아마츄어 시절부터 5인구성이었지만, 데뷔하고 곧바로 오자와와 오야마다의 2인구성이 된다. 오리지널 앨범 3장과 몇 개의 재편집반을 남기고 1991년 해산.
플리퍼즈 기타 해산 후, 솔로로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1993년, 싱글 「날씨 읽기」로 데뷔, 1st 앨범 「개는 짖지만 캐러반은 간다」를 발표. 1994년, 힙합 그룹인 스챠다라바와 공연한 싱글 「오늘밤은 부기백」을 발표하고, 50만 장을 넘어 히트한다. 이로 인해 오자와의 이름이 한층 널리 알려지게 됨과 동시에, 일본에서 랩뮤직이나 힙합의 인지도가 급상승하게 된다.
1994년, 소울 뮤직의 어랜지, 많은 인용이 되는 2nd 앨범 『LIFE』[5] 대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이를 전후해서, 미디어에서의 경쾌한 한편으로 지적으로 여유가 있는 안무나 패션이 지지를 얻어, 「시부야계의 왕자님」이라 불리는 정도까지 인기를 얻게 된다. 1995년과 96년에는 연속해서 『NHK 홍백가합전』에도 출장. 1996년, 재즈 풍의 3rd 앨범 『구체가 연주하는 음악』을 발표. 시부야 타케시가 피아노, 카와바타 타미오가 우드 베이스를 맡았다.
1998년, 싱글 『봄이 되어 그대를 생각한다』를 발표한 후 오랫동안 활동을 중지.
2002년, 뉴욕에서 지금의 소리로 해서(전부 현지 녹음) R&B나 AOR에 경도한 4th 앨범 『Eclectic』을 발표. 이전에 미국의 레이블 모타운과 계약해, 1999년에 마빈 게이의 탄생 60주년을 기념한 트리뷰트 앨범 『Marvin is 60』에 『Got To Give It Up』의 일본어 가사 커버로 일본반에만 참가한다.
2006년 3월 8일, 『Eclectic』 이래 약 4년만에 오리지널 앨범으로, 전곡 보컬 없이 『매일의 환경학: Ecology Of Everyday Life』를 발표. 일렉트로니카, 클럽 재즈, 라운지 뮤직, 인스트루멘털 R&B, 앰비엔트라고 하는 재즈로 분류되는 작풍. 참가하는 뮤지션은, Vincent Chancey、Marty Ehrich、Erik Friedlander、Arron Heick、Steve Kahn、Steve Nelson、Adam Rogers、Benjamin Love、Kenny Seymour 등의 재즈 뮤지션 이외, Mike Hampton(Funkadelic) 등의 멤버가 이름을 더한다.
1998년 2월 8일 방송한 프로그램 『알고 있을 작정?!』(시부야 노리코 특집)에 코멘터로 출연한 이후, TV 출연은 일절 하고 있지 않다. 한번은 재개한 걸로 보이는 뮤지션으로서의 활동도 사실상 은퇴한 상태로 되어, 현재는 미국을 생활의 거점으로 해서 남미 등에 환경문제에 기초한 필드 워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 예를 들면 아버지 오자와 토시오가 책임편집(편집장)하는 계간지 『아이들과 옛날이야기』에 소설 『우사기!』를 집필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현대의 자본주의 말기의 기만에 차 있는 사회를 풍자하는 것으로,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있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나 플라스틱의 재사용 등의, 무거운 테마가 소재로 선택되고 있다. 25호(2005년 10월 발매)부터 연재를 시작해서, 1화 분량만 공식 사이트에서 공개되고 있었지만, 2007년에 사이트가 폐쇄되었다.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무반성을 비판하는 아버지 토시오의 교육을 받아온 만큼(#) , 아들도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에서 '우사키!'의 모음집인 "기업적인 사회, 테라피적인 사회"라는 책이 출판되었는데, 일본에서는 콘서트장에서만 판매하는 책이기에 일반판매되는 것은 한국판이 유일하다. 한국어판 서문을 본인이 직접 작성하였다.
2007년에는 『「아주머니들이 안내하는 미래의 세계」를 보는 모임』을 일본 각지에서 개최하고 있지만, 오자와 본인의 의향에 따라 넷에서는 거의 정보가 밝혀지고 있지 않다. 또한, 2008년의 시점에 EMI뮤직 재팬과의 계약은 끊긴 것으로 보도되었지만, 정식 발표는 아니며, 동사의 사이트에서는 지금도 소속 아티스트로 다뤄지고 있다.
2010년 5월에, 13년만에 콘서트 투어를 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또한, 자신의 투어 직전에 개최되었던 스챠다라파의 20주년 기념 라이브에 게스트 출연해 팬들을 놀라게 했다. 7월 6일에는 오피셜 사이트에서 「싯카쇼절」의 라이브 음원 다운로드 판매가 시작되었다. 이 곡은 악곡을 다운로드한 뒤, 리스너가 자유롭게 구입금액을 설정해, 지정된 은행구좌에 입금하는 “적선식”이 채용되고 있다.
2011년 11월 29일에는 유스트림의 채널에 등장해 콘서트 활동을 발표, 2012년 3월부터 4월을 거쳐 도쿄 오페라시티를 회장으로 해서 「도쿄의 거리가 연주한다」를 전12회 행했다.
그리고 2017년 2월경에 복귀 선언을 하고 「유동체에 대해」 라는 곡으로 19년만에 신곡을 발표 했다.
2월 24일에는 뮤직 스테이션에 출연 그리고 신곡 「유동체에 대해」는 오리콘 2위를 기록하면서 성공적인 복귀를 알렸다.
헬터 스켈터 등을 쓴 여성만화가 오카자키 쿄코와 친분이 깊다. 그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리버스 엣지'에는 직접 엔딩곡을 담당하기도 했다.
3. 디스코그래피
3.1. 싱글
3.2. 앨범
[1] 국내 발간된 그의 저서에 따르면 그가 프로필에 학력을 직접 언급하기를 꺼려한다. 학벌주의 사회를 경계하고 있기 때문.[2] 대표적으로 중학교 1학년 당시 이지메 집단의 브레인이자 리더로 활동한 적이 있다.[3] 오야마다의 말에 의하면 오자와도 신주쿠역 키노쿠니야에서 틈만 나면 책을 훔쳐서 읽었다고 하는데 발각이 안되었다고 한다.[4] 일본에서 각종 시험에 응시하는 자에게 미리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상업적 교육 시설. 일반적인 고등학교와는 다르며, 한국에서 학원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국내에서 번역하거나 로컬라이징 할 때는 주로 '재수학원'이라고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5] 대표적으로 이 앨범의 수록곡이자 5번째 싱글인 'ラブリー'는 미국 R&B 소울 싱어송라이터인 베티 라이트(betty wright)의 clean up wonman(1971)의 기타 리프를 차용하였다.[6] 영화 써니의 일본 리메이크작의 부제로 쓰였다.[7] 앨범버전은 오자와의 보컬로만 재녹음[8] 오카자키 쿄코 원작의 영화 리버스 엣지의 엔딩곡[9] 그의 아들 사진을 앨범 커버로 사용하였다. 타이틀곡인 '彗星(혜성)'의 뮤직비디오에 오자와와 그의 아들이 같이 출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