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제우
1. 개요
'''ORP Orzel'''
2차 대전 당시 폴란드 해군의 잠수함. 함생이 참으로 드라마틱하기로 유명하다. 이름인 오제우는 폴란드어로 독수리를 의미한다.
2. 함생
2.1. 2차대전 이전-탈린 입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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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반도의 항구로 입항하는 오제우. 찍힌 연도는 불명이다.
1936년 네덜란드에서 건조되었다.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는 열심히 폴란드 해군에서 종군하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개시될 당시 초계 임무를 맡아 폴란드 해안으로 출항해 있던 오제우는 독일군의 공격으로 인해 모항이었던 헬(Hel) 반도의 폴란드 해군 기지로 돌아올 수 없게 되었고[1] 결국 가까운 국가인 에스토니아로 이동하였다. 오제우는 9월 14일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 무사히 입항하였다.
2.2. 필사의 탈출, 활약
9월 8일부터 중병을 앓던 함장 헨리크 크워츠코프스키(Henryk Kłoczkowski) 소령은 다음날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받았으며, 오제우의 선원들은 독일의 압력을 받은 에스토니아 측에 억류되었다. 하지만 17일과 18일 사이의 안개 낀 야음을 틈타 1등 항해사였던 얀 그루진스키(Jan Grudziński) 중위가 함장으로 선출되었고, 그의 지휘 하에 선원들이 2명의 에스토니아 경비대원을 인질로 붙잡고 에스토니아군의 포화가 쏟아지는 와중에 '''오제우를 탈취, 필사의 탈출을 감행해 바닷속으로 재빨리 사라져 버렸으며'''[2] '''핀란드 만과 스웨덴-덴마크 연안을 거쳐 영국으로 성공적으로 탈출'''했다.
이후 오제우가 전쟁중에 공격을 시도한 건 딱 세 번이다. 첫 번째는 소련의 발트 국가들 침공 당시 소련군 소속 유조선이였던 메타리스트 호를 격침시켰던 것이었고,[3] 둘째는 독일의 노르웨이 침공 직전인 1940년 4월 8일 독일의 병력 수송선 리우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를 어뢰로 공격하여 격침, 수백여 명의 독일 병사들을 물귀신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조국의 복수를 한 것이었다. 오제우의 마지막 공격은 그로부터 이틀 후였는데, 독일군의 기뢰부설함이었던 V 705를 공격하였으나 근처에 진을 치고 있던 다른 독일군 함선들 때문에 오제우는 어뢰가 명중한 것을 확인할 새도 없이 급히 잠수해야 했었고, 결국 공격에 실패하고 만다.
2.3. 사라지다
그리고 오제우는 통산 일곱번째 출격이었던 5월 23일, 항구를 나선 뒤 1940년 6월 8일, 흔적도 없이 실종되었다.[4] 그중에는 위에서 설명한 그루진스키 중위도 포함되어 있었고, 공산 정권 붕괴 이후 폴란드 정부에서도 함선의 잔해, 아니 파편이나마 찾으려고 실종 지점 근방에서 애타게 찾았으나 역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현재도 꾸준히 여러가지 추측이 나오는 중. 이중에서 오제우가 영국군/독일군의 기뢰밭에 들어갔다가 기뢰에 접촉하여 격침당했다는 것과 영국군 항공기에게 유보트로 오인받고 공격당해서 격침당했다는 설이 제일 유력하게 평가되고 있다.
[1] 이 와중에 오제우의 헬 항구에 정박해 있던 그리핀급 기뢰부설함은 독일 공군의 Ju87에 의해 격침당하고 말았다.[2] 인질로 잡혔던 에스토니아 경비대원 2명은 중립국인 스웨덴 해안에서 옷가지와 음식물, 미국 달러를 받고 풀려났다.[3] 이후 이 사건을 구실로 소련은 폴란드를 맹비난했다. 하지만 소련은 그런 말 자격이 없던 것이 이미 저 시점에서 소련은 폴란드의 동부 지역을 침공해서 먹어치운 후였다...[4] 정확히 말하자면 오제우의 실종 자체는 6월 1일에서 6월 2일 사이에 발생했다. 그 뒤로 오제우의 교신이 완전히 끊겼는데, 이를 불안하게 여긴 상부가 6월 5일에 오제우에게 귀환 명령을 내렸으나 역시 아무런 답신이 없었고, 결국 6월 8일 오제우의 실종이 공식적으로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