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사회대중당

 



'''일본의 진보정당'''
''창당''

'''오키나와 사회대중당'''

''현재''
[image]
'''沖縄社会大衆党 | 오키나와 사회대중당'''
(おきなわしゃかいたいしゅうとう)
<colcolor=#009140><colbgcolor=#f5f5f5> '''영문 명칭'''
Okinawa Social Mass Party
약칭 : '''Social Mass Party'''
'''한글 명칭'''
오키나와사회대중당
'''창당일'''
1950년 10월 31일
'''이념'''
오키나와 지역주의
좌익 민족주의
반미주의
사회민주주의
대중 정당
'''스펙트럼'''
중도좌파 ~ 좌익
'''주소'''
오키나와현 나하시 이즈미자키1-17-19
(沖縄県那覇市泉崎1-17-19)
'''위원장'''
다카라 데츠미
'''부위원장'''
토야마 카츠토시
'''서기장'''
다이라 사토코
'''참의원'''
1석[1] / 245석 (0.4%)
'''중의원'''
0석 / 465석 (0.0%)
'''오키나와현의회'''
2석 / 48석 (4.2%)
'''시구정촌의회'''[2]
6석 / 29,762석 (0.1%)
'''당원 수'''
75명
'''기관지'''
사회 대중
'''공식 사이트'''
, [3]
1. 개요
2. 상세
2.1. 역사
2.2. 이념
2.3. 의석
3. 소속 의원
4. 관련 문서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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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키나와 사회대중당'''은 일본오키나와현 지역 정당이다.
약칭은 사대당(社大党)이다.

2. 상세



2.1. 역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미군오키나와에 진주하여 일대를 통치했다. 이후 1950년, 당시 오키나와 주지사였던 타이라 타츠오(平良辰雄)가 주도로 오키나와 사회대중당이 창당되었다.
초창기엔 상당수 보수파들도 사회대중당에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보수파들은 오키나와 민주당(후에 오키나와 자유민주당으로 개칭)으로 떨어져나갔다. 이후 입법원 선거에서 자민당에 밀렸으나, 1968년 행정주석 선거에서 혁신계 후보가 승리하면서 여당의 자리를 차지했다.
1972년 일본으로 오키나와 복귀가 결정되었을 때, 오키나와 사회대중당은 노선이 비슷했던 일본사회당으로의 합병을 검토했으나, 다른 정당들과는 달리[4] 합병이 무산되어 현재까지 오키나와의 지역 정당으로 남아 있다.

2.2. 이념


중도 좌파 정도의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때문에 오키나와 지역 선거에서 '''올 오키나와'''라는 이름으로 사회민주당, 공산당, 신사회당과 선거 연대를 맺고 있으며, 간간히 입헌민주당과 연합하기도 한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 이후 예상보다 일본 본토의 오키나와에 대한 취급이 영 좋지 않자, 오키나와 사회대중당 내에서도 서서히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 1950~60년대 오키나와 주민들은 당시 평화헌법이 정착되어가던 일본 본토로 복귀하면 오키나와 내의 심각한 미군 기지 폐해도 해결할 수 있고, 덤으로 당시 경제 순항 중이던 일본의 부와 민주주의, 인권 같은 혜택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복귀를 희망했다.[5]
그러나 복귀 후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오키나와 문서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군 기지 문제는 전혀 해결이 안 되고 있으며''', 일본 정부는 현내(縣內) 이전을 강요하여 사실상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오키나와는 청년 실업률과 소득 수준에서도 일본 지자체 가운데 최저 수준을 계속 유지하고 있으며, 형식적인 의회민주주의는 얻었지만 21세기 들어선 오키나와 전쟁의 참상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극우 교과서 채택을 강요받기도 한다. 이러니 일본 정부에 뭘 더 기대하느니 차라리 독립하고 딴 살림 차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목소리도 슬슬 나오고 있는 것.
하지만 21세기 이후 중국 위협론 등이 겹치며 오키나와의 독립 찬성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0년대 중반에 와서는 사실상 찬성률이 한자리수로 독립이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수준. 이에 해외 언론에서 오키나와의 독립 열기를 과장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오키나와인 차별 문제나 미군 기지 문제 등 불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이미 일본에 귀속된 지 오래 됐고 이주민들도 늘어 굳이 무리하게 독립하려는 움직임은 없다는 것. 그러나 일본 언론들이 알아서 자가 검열을 하고 있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독립까지는 원하지 않아도 이 정당 역시 '''상당한 강도의 오키나와 자치권'''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의 제주특별자치도를 본딴 오키나와 특별자치현 제안도 한 적이 있다. 사대당의 제1당론은 '''오키나와 미군기지 철폐'''이며 제2당론이 '''오키나와에 대한 특별자치권 부여'''이다.

2.3. 의석


중의원에는 1972년 당선자를 낸 이후 한 명도 당선되지 못하여 의석이 없고, 참의원에는 1992년 처음 오키나와 선거구에서 당선되고 이후 계속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하였다.[6] 이후 이토카즈 게이코(糸数慶子)가 2013년 제23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오키나와사회대중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21년만에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그러나 2016년 제24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는 후보를 내지 않고 무소속 이하 요이치(伊波洋一)를 지원하여 당선시켰다.
2019년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는 당초 이토카즈 게이코 의원이 출마를 희망했으나 당 내에서는 이토카즈 의원의 국회 내 활동 미진과 세대교체를 이유로 용퇴를 주문했다. 결국 사대당은 다카라 데쓰미(高良鉄美) 후보를 지원하기로 결정했으며, 이토카즈 의원은 이에 반발하여 사대당을 탈당하고 참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다만 아직 중의원 선거에 입후보할 생각은 있는 듯. 그러면서도 "오키나와 연합(올 오키나와)의 분열을 반기는 것은 아베 정권"이라며 다카라 후보를 지지하면서 불화 불식을 도모했다.(기사(일어)) 다카라 후보가 당선 후 사대당에 입당하면서 참의원 1석을 유지하게 되었다.
오키나와 내에서는 현의회의 집권여당이다. 사민당과는 통합회파를 이루고 있으며, 무소속연대, 일본 공산당과도 연정을 이루고 있다. 나하 시의회에서도 사민당과 같이 '''미라이(ミライ)''', 무소속으로 구성된 '''나하의 날개(那覇の翼・f協働)''', 일본 공산당이 현의회처럼 연정하고 있다.
의석 수는 현의회에서 1석 이상을 꾸준히 차지하며, 2010년대 들어서 후텐마 기지를 둘러싼 갈등과 주일미군의 사건사고 등이 불거지면서 득표율이 늘어나고 있다.

3. 소속 의원


'''오키나와 사회대중당 소속 참의원 의원'''
2025년 개선
다카라 데츠미
(오키나와, 초선)

4. 관련 문서


  • 가리유시 클럽: 오키나와현을 주요 활동 무대로 한 다른 지역 정당. 이 당은 류큐 독립 운동을 전개하는 정당이다.
  • 정당 소조: 오키나와현에서 활동하는 또다른 지역 정당이지만 현지의 다른 지역 정당들과 딜리 미일관계 유지를 지지하는 중도우파 정당이다.

5. 둘러보기





[1] 지역구 1석[2] 한국의 기초의회에 해당한다.[3] 2017년 이후로 쓰이지 않고 있다.[4] 오키나와 사회당은 일본사회당, 오키나와 인민당은 일본 공산당, 오키나와 자민당은 자민당으로 합병되었다.[5] 당시 한국, 대만 등에선 결과적으로 대부분이 독립하자마자 혼란과 독재로 치달았기 때문에, 오키나와 일부 사람들은 섣부른 독립이 독재자를 부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 듯 하다.[6] 도중에 사대당 시절부터 당선된 시마부쿠 소코가 이토카즈 게이코에게 선거구를 넘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