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민주당(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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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회민주당'''은 일본의 진보 성향의 정당이다.
1996년 일본사회당이 일본 사회민주당으로 당명이 개칭되면서 탄생하였다.[7] 사민주의 정당 모임인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 참가하고 있는 정당이다.
입헌민주당, 일본 공산당과 함께 호헌을 지키는 정당 중 하나이고 선거 연대도 같이 이뤄지고 있다.
2. 본부
3. 성향
주된 정책 노선은 평화와 복지이며, 고용 창출 및 고용 안정, 충실한 복지를 근간으로 한 경제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원래는 일본사회당 말기의 노선을 계승해 '사민자유주의'를 내걸었지만, 1998년 자민당과 연립이 깨진 이후로는 상대적으로 사회민주주의 색채가 강해졌다.
평화헌법의 수호와 헌법 이념의 실현을 호소하며, 자위대가 평화헌법에 위반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06년의 '사회민주당 선언'이 대표적인데 '자위대의 축소를 도모하며 비무장의 일본을 목표로 한다'는 강령이었다. 그외 국제 분쟁을 외교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주장한다.[8] 다만 안티들에겐 미국에는 반대하면서, 한국이나 중국에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선동당하기도 한다. 북한에 대한 대응이 충분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받는다.[9] 물론 현재는 영향력 자체가 미미한 실정이지만.
다른 정당들과 비교해 여성의 비율이 높은 것도 특징인데, 성평등 의지와 여성의 권리 확립을 지향한다.
4. 지지 기반
1996년 이후, 일본 혁신 진영에서 리더 지위를 민주당계 정당에게 내준 상황이라 예전에 비하면 기반이 매우 미비한 편이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지역적 기반은 다음과 같다.
- 큐슈쪽에선 지역구는 아니지만 오이타 2구에서 석패율을 통해 큐슈 지역 비례대표로 중의원이 당선되기도 한다. 사실 예전 사회당 시절에는 홋카이도, 주부 뿐만 아니라 큐슈 지역도 꽤나 사회당 세가 강한 편이었다.[10] 그러나 현재는 사회당 · 사민당의 세가 많이 약화된 상태.
- 도야마현의회 선거에서 자민당 초강세이지만 전라남도의회처럼 민주당 계열 정당 대신 공산당과 같이 1석 이상 당선되고 있다.
5. 역사
5.1. 분열 이전
- 일본사회당(1945년) 참고
그럼에도 2009년에 민주당 정권 설립 이후 민주당, 국민신당과 일명 민사국연립정권이라는 연립정부를 만들기도 했다. 일본 미래당 등과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가 2012년 12월 16일 선거에서 그나마 있던 것도 3석을 잃으며 대패했다. 일본 공산당이 거의 유지한데 비하면 그저 안습. 그나마 이것도 출구조사에서는 '''한 석도 못 얻는 것'''으로 나왔었다(...). 소선거구제 지역구 1석, 비례대표 1석을 가까스로 얻어 원내 진입 유지. 2013년 참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의 부진과 극우정당의 지리멸렬에도 진보성향 표가 공산당으로 몰릴것으로 예측되면서 잘해봐야 1~2석 정도 확보할걸로 보이고 최악의 경우 1석도 차지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결국 참의원 선거에서 단 '''한 석'''을 확보하는데 그치면서 패배했다.
당의 진로에 대해서 원로인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는 호헌을 기치로 야권 재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사민당이 발전적 해체를 할수도 있을것이라고도 언급. 그러나 개헌에 반대하는 민주당-사민당-공산당 등의 성향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호헌만으로 야권이 재편될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2013년 8월 말, 후쿠시마 미즈호 대표가 사퇴하고, 2013년 10월 14일 사민당 개칭후 첫 당수 선거에서 이시카와 타이가 구의원을 꺾고 요시다 다다토모 참의원이 당수로 선출되었다. 취임은 10월 29일 했다.
5.1.1. 2016년
2016년에는 존폐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지난 2013년 참의원 때 고작 1명만 당선되었고 일본에서는 진보가 제 맥을 못 추고 있기 때문에,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진보 표는 민진당, 공산당으로 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시다 다다토모 대표는 민진당과의 합당을 고려하고 있었고 무라야마 도미이치 사민당 명예당수(81대 총리)도 사민당이 점진적 해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미즈호 부당수는 사민당의 정책, 공약, 역사가 묻힐 수 있기 때문에 반대했다. 만일 민진당과의 합당이 실현될 경우, 가타야마 데쓰, 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을 일으켰고, 도이 다카코의 마돈나 열풍을 일으킨 71년 역사의(사회당+사회민주당 역사)/20년 역사와 전통의 사회민주당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1996년 사회당 해산 후 따로 갈라져 나온 신사회당만 남게 되는 형국이었다.[14] 그러나 민진당 내에서도 민진당이 좌익의 이미지가 날 수 있다며 반대하는 당원과 나쁘지 않다는 당원들과 의견이 갈렸으며, 오카다 가쓰야 민진당 대표는 여건이 된다면 한 번 진지하게 상담하고 싶다고도 했다.
공산당, 민진당과는 다르게 선거에서도 살아남기 힘든 모양이다. 지난 2013년 참의원 선거에서도 1석밖에 못 얻었고, 당 내 입장이 위에서 보듯 갈리고 있기 때문에 이번 선거가 요시다 다다토모, 후쿠시마 미즈호에게는 단두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2016년 참의원 선거에서 전국 비례대표 후쿠시마 미즈호가 당선되면서 1석을 겨우 얻었다. 사회민주주의자 등 고정 지지세력들이 뽑아준 듯하다. 후쿠시마 미즈호가 당선이 확실해지면서 요시다 다다토모 당수는 낙선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고, 결국 낙선했다.
그래도 가고시마현지사 선거에서 현직 보수계열 이토 유이치로 지사를 물리치고 민진당과 공동으로 후보 추천을 한 TV 아사히 기자, 해설위원 출신의 '''미타조노 사토시'''가 당선되는 등 어느 정도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써 유지를 할 수 있는 발판만 남겨둔 상태다.[15]
2016년 7월 26일, 생활당과 통일회파 희망의 회(希望の会)를 결성하였다.
그래도 중의원 쪽은 오키나와 2구, 전국 큐슈 비례대표 2명이다. 그러지만 일본 정당법에 따르면 중의원, 참의원 합산 5석 이상의 의원을 보유해야 정당으로 인정하는 규정에 의거하여 정당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는 점이다.
5.1.2. 2017년
2017년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최근 선거마다 이어져온 민진-공산-자유-사민 야4당 연대가 깨졌다. 민진당 내에서 희망의 당과의 관계 정립을 어떻게 할 지를 두고 갈등을 빚어 오다 해체 수순을 밟게 된 것. 사민당은 진보 성향이 강해 고이케 세력(보수주의)과 연대 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사민당은 입헌민주당-공산당과 연대하기로 했다.
선거 결과 2석을 확보, 현상 유지에 성공했다. 당선자 역시 오키나와 2구의 데루야 간토쿠, 큐슈 블럭 비례대표 요시카와 하지메로 전과 같다.
5.1.3. 2018년
정당구성 요건에 필요한 양원 의원 수 6명을 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정당 교부금을 포함한 여러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어, 통일 지방선거와 내년 참의원 선거를 전후로 입헌민주당에 합류를 타진하고 있다.
2월에는 요시다 다다토모 당수가 사퇴하고 마타이치 세이지 간사장이 당수가 되었다.
5.1.4. 2019년
1월에 참의원에서 입헌민주당과 통일회파 '입헌민주당・민우회・희망의 모임'(立憲民主党・民友会・希望の会)을 결성했다.
4월에 실시된 통일지방선거에서는 도도부현의회에서 22석, 시정촌의회에서 53석을 얻어, 당초의 47석, 72석에 비해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7월에 실시되는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는 지역구 3명, 비례대표 4명을 공천했다. 3년 전의 24회 선거에 비해 4명 줄었는데, 입헌민주당이 일부 사민당 지방의원을 자기 정당 후보로 옹립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마타이치 당수는 "매우 불쾌하다. 양당공조 균열을 불러올 수 있다."고 비난했으며, 입헌 내에서도 이건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사(일본어))
참의원 선거 결과 전국 2.1%의 득표율로 정당법상 정당 요건을 유지했고, 비례구에 출마한 前 당수 요시다 타다토모 후보가 당선되어 참의원 의석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에 성공했다. 동시에 과거 사회당이 강세를 보였던 오이타 선거구에서 자당 추천을 받은 아다치 키요시 후보를 당선시키고, 오키나와와 함께 유일하게 두 자릿수의 비례 득표율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 내에서는 사민당의 당세가 축소되는 가운데에서 거둔 유의미한 세력 확장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와중에 마타이치 세이지 당수가 불출마 선언과 정계 은퇴를 선택하였다.(다만 당수는 임기가 만료되는 2020년 2월까지 맡는다고 한다.)# 안 그래도 입헌민주당, 일본 공산당이 좌파 성향 인재풀을 가져가면서 더 암울한 상황이다.
결국 입헌민주당에서 사회민주당에 합당을 제안했고, 사회민주당에서는 마타이치 세이지 당수의 임기가 만료되는 시점에 열리는 2020년 2월 당대회 때에 결론을 낼 것으로 정해졌다. 그래서 당수 선거는 취소되었다.#
5.1.5. 2020년
국민민주당의 입헌민주당 합류, 사민당 지방조직 내의 반대 등 여러가지로 얽혀있어 일단은 당수 선거는 치른다.#
2월 22일 당 대회가 개최되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그 규모를 축소해서 진행했다. 당 대표로 후쿠시마 미즈호가 무투표로 당선되어 6년만에 당수 직에 복귀했다. 이로 인해 기존 입헌민주당과의 합류 논의에는 신중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2020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입헌민주당, 일본 공산당과 함께 우쓰노미야 겐지 후보를 지지했다.
연초 무산되었던 입헌민주당 합류를 두고 다시 한번 지방 당조직 간부들의 의견을 모으기로 했다.# 국민, 입헌의 합당 가능성이 높아지자 진행을 보고 검토한다는 말을 했다.#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대비해서 오이타 2구, 오키나와 2구를 공천한다고 발표했다.#
요시다 다다토모 간사장은 8월 20일 기자 회견에서 입헌민주당이 제안한 합류에 대해 신종 코로나의 확산과 호우 재해 등의 영향으로 지방 조직의 의견이 지연되어 결정을 9월 말까지 할 생각을 나타냈다. 또한 찬반을 결정하는 임시 당대회의 개최시기에 대해서 "10월은 어려워졌다"라는 인식을 나타냈다.#
9월 18일, 요시다 간사장이 입헌민주당 에다노 대표와 회담을 가졌다. 중단되었던 양당 합당 협의를 계속해 이어나가기로 했다.#
11월 임시 당대회에서 입헌민주당과의 합류 결정 여부을 가진다.# 앞두고 당 소속 의원과 당원들이 각각의 판단에 합류하는 것을 인정하는 의안을 가졌다.# 허나 후쿠시마 당수는 극렬히 입민당과의 합당을 반대하는데, 나머지 3명의 의원은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사민당이 쪼개질 위기에 처했다.
11월 14일, 임시 당대회에서 입헌민주당 합류를 원하는 당원의 탈당을 인정하는 안을 찬성 다수로 가결했다.# 후쿠시마 미즈호 대표는 "사민당은 해산, (입헌민주당으로의) 합류의 길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사민당을 존속시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야권의 개편은 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 사회민주당 모두 이전과 같이 존재함으로서 각 의원의 개별 합류 외에 아무것도 바뀐게 없게 되었다.
하지만 사민당의 경우 기존의 비례대표 투표에서도 2%를 겨우 채우는 정도였기에 타격이 상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후쿠시마 대표 1인만 남게 되면 일본 정당법상 정당 요건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과 기존의 약 1만 2000명의 지방 당원이 합류 조와 잔류 조로 분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동안 어떻게든 억누르고 있었던 당내 내부 갈등이 당대회에서 폭발하는 추태를 보였다. 사민당의 유일한 지역구 당선자인 오키나와현 제2구의 중의원 데루야 간토쿠 의원이 '''"선대로부터 이어진 유산을 갉아 먹은 건 당신이다"''', '''"당신은 사회민주주의, 사민당 선언을 말할 자격이 없다."''', '''"총선에서 승리하고 싶으면 당신이 중의원으로 전업해 당선되라."''' 이후 기자들에 질문에 "후쿠시마가 지역구 출마를 하면, 비례에 새 인재를 영입할 수 있다. 그게 바로 당세 확장이다. 하지만 그녀는 비례대표에 매달려서 승부를 하지 않았다" 등으로, 사실상 다시는 볼 일 없을 정도의 사이에서나 나올 극언까지 나왔다.
사민당은 사라질 것인가?
11월 27일, 상임간사회에서 2021년 1월 말에 지방 연합 임시 당대회를 열고 지방 조직의 입헌민주당으로의 합류를 결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지방 조직에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밝혔다.# 이로 인하여 입헌민주당으로의 합류가 내년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데루야 간토쿠 의원은 후계자인 아라가키 구니오가 사민당 잔류를 선언해서 본인 역시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5.2. 분열
12월 24일, 참의원의 요시다 다다토모 간사장과 중의원의 요시카와 하지메 의원이 당을 탈당하고 입헌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진짜로 당이 분열되었다'''.# 잔류를 선언한 데루야 간토쿠 의원은 입헌민주당으로 넘어가지 않았으며 후쿠시마 미즈호 당수도 당에 그대로 남았다. 일본사회당의 당명 변경 해부터인 1996년부터 지난 23년동안 꾸역꾸역 살아남았던 사회민주당은 '''이제 뼈만 남은 상태가 되버린 것이다'''. [16] 그리고 지방의원 마저 16명이 입헌민주당으로 넘어가면서 완전히 망해버렸다.
5.3. 분열 이후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내각총리대신은 고령을 이유로 명예 당수와 고문 직을 사임했다.# 하지만 당적은 계속 유지한다.
5.3.1. 2021년
6. 기타 사항
7. 역대 선거결과
7.1. 중의원 의원 총선거
7.2.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8. 소속 의원
9. 둘러보기
[1] 다른 국가들의 사회민주당과 구별하기 위해 '''SDPJ'''도 사용하고 있다.[2] 법률 상으로는 사회당이 당명을 변경한 것이 사민당이다.[3] 지역구 0석, 비례대표 1석[4] 지역구 1석, 비례대표 0석[5] 한국의 광역의회에 해당한다.[6] 한국의 기초의회에 해당한다.[7] 참고로 사회당의 경우 20세기엔 일본에서 55년 체제를 이루기도 했던 제1야당이었고, 사회민주당으로 바뀌기 직전인 90년대 중반엔 중도우파계 온건파들이 많던 자민당과 잠깐 연정을 하기도 했었다. 무라야마 담화를 낸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이 기간 나온 총리이다.[8] 결국 군사 균형이 중요한데 군비 증강을 통한 군사 균형이냐, 군비 축소를 통한 군사 균형이냐의 문제. 당연히 후자가 지향되어야 할 가치이고 여기서 중요한 것이 상대방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외교력.[9] 과거 사회주의국가 북한에 방북단을 주기적으로 보내는 등 상당히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왔기에 그런 이미지가 강한 측면도 있다. 사실 사회당보다 더 진보적인 일본 공산당이 북한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며, 관련해 강경한 논조의 성명을 발표하는 것과 대조되는 측면은 있다.[10] 악명 높은 아소 다로의 지역구인 후쿠오카현 제8구도 원래는 사회당의 표밭이었다. 치쿠호 탄광 광부 및 노동자의 표가 몰렸기 때문.[11] 단, 간 나오토는 혁신정당에 몸을 담기는 했어도 사회당 소속 인물은 아니었다.[12] #[13] 참가 의견을 철회하게 된 데에는, 하토야마 유키오의 "배제의 논리(排除の論理)"[12] 가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했다. [14] 그러나 이 당은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이 당이 사라지면 일본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없어지게 된다.[15] 그런데 이때 당선된 미타조노 사토시는 원전 재가동 중단 공약을 뒤집는 등 자신을 추천한 야당 세력과 반대되는 모습을 보이다가 4년 뒤인 2020년 현지사 선거 때는 아예 자민당과 공명당의 추천을 받고 재선에 도전했다. 하지만 관료 출신 정치 신인인 시오타 고이치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한편 4년 전에 미타조노에 밀려 낙선한 이토 유이치로 전 지사는 정반대로 '''입헌민주당'''의 추천을 받아 출마했으나 마찬가지로 낙선했다.[16] 일본 정치도 계파 정치가 강하지만 막말했다고 당에서 출당시키면 후쿠시마 미즈호의 지도력에 대한 비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점과, 데루야 간토쿠가 다줘놓은 오키나와현의 사민당 지지 기반을 도로 자민당에게 헌납할 가능성이 높은 점도 한 몫이다. 게다가 데루야 의원이 선거에 계속 나온다고 하면 모를까 어차피 다음 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라 이런 사람까지 마음에 안 든다고 잘라버리면 당의 분열이 더욱 확대될 위험도 있다.[17] 지지율이 보통 6% ~ 10% 나올 때도 있는걸 보면 당세만 놓고 봤을땐 정의당은 일본 공산당이랑 비교하는게 더 맞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