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
1. 留意
마음에 새겨서 조심하면서 관심을 가짐.
일반적으로 주의보다 약한 뜻으로 쓰인다. 비슷한 낱말로는 유심(留心)이 있다.
2. 儒醫
직역하면 유학자인 의사. 보통 조선시대의 양반 신분의 의사를 뜻한다.
조선시대의 의사인 의관은 보통 중인 계층이 맡았지만, 사대부인 양반 계층이 이 의관 일을 맡기도 했다. 의관을 뽑는 과거시험인 잡과의 의과 시험에는 양반도 응시할 수 있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지역 사회에서 의사가 없을 때는 양반 지식인이 독자적으로 의학서를 공부해서 의사 일을 하기도 했다.
3. 삼국시대 위나라와 서진의 인물
劉毅
(216년 ~ 285년)
삼국시대 위나라와 서진의 인물. 자는 중옹(仲雄).
동래 액 사람으로 한고제 유방의 장자 제도혜왕 유비[1] 의 2남인 성양경왕 유장의 후손이며, 유돈의 아버지.
성품이 정직하고 청렴해 옳지 못한 일이 있는 것을 보면 반드시 비판했으며, 왕공대인들이 그의 풍격을 우러러 보면서 경외했다. 양평에 있을 때 두서가 그를 초청해 공조로 삼았으며, 군의 관리 300여 명을 사직시켰다. 위군, 평양, 광양 지방에서 유의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두서의 이름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위나라 말기에는 군애서 효렴으로 선발되고 사례교위부의 도관종사로 벽소되어 장안에서는 삼가고 두려워했으며. 태상 정무가 박사로 천거했고 사마소가 상국연으로 벽소했다. 265년에 진나라가 건국되자 상서랑, 부마도위를 지내다가 산기상시, 국자제주로 옮겼으며, 성문교위, 태복 등을 역임하다가 상서에 임명되었다가 사건에 연루되어 면직되었다. 함녕 초에 산기상시가 되었다가 박사제주, 사례교위를 역임했다.
사례교위를 지낼 때 호족과 귀족을 감찰해 바로 잡으면서도 거리낄 것이 없었으며, 사마충이 예에 따르면 신하는 동액문에 이르면 수레에서 내려서 들어와야 했지만 고취를 연주하면서 동액문으로 들어오자 이를 탄핵하는 상주문을 올렸다. 또한 외척인 양수가 자주 법을 어기자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탄핵했는데, 사마염이 사마주를 파견해 관용을 요청하자 이를 들어줬는데, 도관종사 정위를 통해 지름길로 가게 해 양수에게 소속된 관리들을 잡아들였다가 양수의 죄상을 기록해 상주문을 올려 면직시키도록 했다.
282년 정월 초하루 정축일에 남교에 나아가서 사마염이 성대한 제사를 마치고 기분이 좋아 유의에게 한나라로 치면 어느 임금에 해당하냐고 묻자 유의는 한나라를 망하게 한 환제와 영제라고 대답했으며, 사마염이 너무 심하다고 하자 유의는 환제와 영제는 관직을 팔아 그 돈을 나라 창고에 넣었지만 폐하께서는 개인 주머니에 넣으시니 오히려 그만도 못하다고 했다.
사마염이 크게 웃으면서 환제, 영제는 이런 말을 듣지 못했지만 짐에게는 직언하는 신하가 있어 그들보다 낫다고 하면서 넘겼다.
사례교위를 6년간 지내다가 상서좌복야로 옮기고 284년에는 두 마리의 청룡이 무기 창고의 우물 가운데에 나타나 백관들이 축하를 드리려고 하자 옛날에 용이 하나라 때 용이 내려와 용의 거품을 간수했다가 주나라 때 그 거품이 들어있는 함을 열었다가 주나라에 화를 입힌 포사를 나오게 만든 전설을 언급하면서 축하하면 안된다고 상소해 사마염이 이를 받아들였다. 또한 구품중정제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폐지할 것을 상소했다.
또한 하증의 사치스러움을 탄핵하기도 했으며, 285년에 사직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었다.
세설신어에서는 왕융과 화교가 모친상을 당하면서 사마염이 화교를 걱정하자 사마염에게 충고해서 화교보다 왕융을 걱정하라고 했다.
4. 후한 말의 인물
柳毅
(? ~ 205년?)
후한 말의 인물. 유하혜의 후손.
요동에서 관리를 지냈고 양의와 함께 공손도와 친했는데, 190년에 공손도가 중원 지역을 혼란스러운 것을 알고 한 왕조의 운명이 끝나려 하므로 왕을 칭하겠다는 야망을 듣는다.
이후 공손도는 바다를 건너 청주 동래군의 여러 현을 정복해서 영주자사를 두었는데, 훗날 조조가 하북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요동의 도적이 되어 장료에게 격파된 것으로 볼 때 유의는 이 곳에 주둔한 것으로 보인다.
204년에 장료가 업을 공격해 청주를 평정하고 조국, 상산 등을 돌면서 흑산적을 항복시켰는데, 205년에 원담을 격파하고 별도로 군사를 거느려 해안 지대를 공략하자 유의는 장료에게 격파되었고 이 때의 생사 여부는 알 수 없다.
4.1. 미디어 믹스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13 PK에서 추가되었다.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62/54/18/50. 특기는 훈련 1, 순찰 3, 견수 3, 수영 1. 전수특기는 순찰로 전법도 주군인 공손도와 마찬가지로 창공강화다. 주군보다 능력치가 낮고 구리지만 공손도군은 '''인재의 수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귀중한 인재로서 쓸 수 밖에 없다. 아무래도 인재가 너무 부족한 공손도 세력에게 부하 장수 하나 추가하기 위한 모양이다. 일러스트는 검을 들고 무릎을 꿇은 상태로 손을 바닥에 짚은 채 조조군과 맞서려는 모습을 하고 있다. 생몰년도가 160~205년으로 설정되어 있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63, 무력 55, 지력 21, 정치 48, 매력 45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과 무력이 각각 1, 지력이 3 상승한 대신 정치력이 2 하락했다. 개성은 조타, 주의는 할거, 정책은 수군육성 Lv 2, 진형은 어린, 전법은 돌격, 구축, 친애무장과 혐오무장은 모두 없다.
소설 비열한 성자 조조에서는 조조군이 청주의 해안 지대에서 요동군과 싸우는데, 누군가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유도독이 죽었다면서 그의 죽음을 암시한다. 전투가 끝나자 장료에게 죽었음이 드러나고 그의 목은 천에 싸지도 않은 채 장료가 그대로 보여주면서 조조에게 보고했다.
소설 삼국지 금왕 진오에서 진오의 군사와 맞서 싸우기 위해 유의는 공손도에게 별동대를 투입해 야습을 하는 것을 제안하자 공손도가 용병 부대를 투입하게 했으며, 유의는 용병 부대에게 돈으로 꾀어내 야습하게 했다. 용병들이 야습에 실패하자 술이나 한 잔 하라면서 돈이 든 주머니를 바닥에 던졌으며, 그 행동에 용병들이 분노했지만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삼국지: 한말패업에서 등장해 군사 78, 무용 79, 지모 70, 정무 67, 인사 53, 외교 59의 능력치로 165년생으로 나온다.
[1] 서장자라 황제 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