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주

 



'''司馬伷
사마주
'''
'''시호'''
낭야무왕(琅邪武王)
'''작위'''
남안정후(南安亭侯) → 동무향후(東武鄕侯)
→ 남피현백(南皮縣伯) → 동완군왕(東莞郡王)
→ 낭야군왕(琅邪郡王)
'''최종직위'''
대장군(大將軍) 겸 개부의동삼사(開府義同三司)
'''성씨'''
사마(司馬)
''''''
(伷)
''''''
자장(子將)
'''가족'''
부친: 사마의(司馬懿)
'''생몰기간'''
227년 ~ 283년
'''하간왕 재위기간'''
277년 ~ 283년
1. 개요
2. 정사
3. 가족 관계
4.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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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서진의 황족. 자는 자장(子將). 사마의의 4남.[1] 어머니는 복부인, 아내는 제갈탄의 딸인 제갈태비이다. 사마사, 사마소와는 이복형제이다. 친 동생으로는 사마경, 사마준, 이복 동생으로는 사마간, 사마륜 등이 있으며, 나라중시조이다.

2. 정사


위나라 조방(애제)의 정시(240~249) 연간에 남안정후에 봉해졌고 영삭장군이 되어 업군(鄴郡)을 지켰으며 산기상시, 동무향후, 우장군 등을 역임했다. 이 후 연주제군사와 연주자사를 감독했으며 오등작이 부활하고서는 남피, 정로장군이 되어 가절을 받았다.
정사 삼국지》 〈위서〉 삼소제기(三小帝記)의 주석으로 인용된 《한진춘추》에 따르면, 260년 고귀향공 조모가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자 당시 둔기교위로 있던 사마주는 거문에서 저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모의 측근들이 꾸짖자 거느린 무리가 모조리 달아나자 물러섰다. 그러나 당시 조모가 거느렸던 군사의 수준을 보면 사마주의 병사와 급이 거의 다르다. 조모는 실권이 없는 황제라서 급조한 환관들과 노복들이었지만 사마주가 이끄는 병사는 정예병이었다. 그래서 사마주가 조모의 친위 쿠데타를 묵인해서 물러난 게 아니냐는 설도 존재한다. 특히 사마주의 공로와 그가 받은 봉지의 괴리감를 보면 더욱 더 흥미로운 점이기도 하다. 사마주는 문자 그대로 겁을 먹고 도망갔다기보단 차마 황제를 해칠 수 없어서 스스로 물러난 것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그나마 사마씨 성을 가지고도 조위에 거역하지 않은 최후의 양심이라고 하겠다.
265년에 조카 무제무제 사마염선양을 받아 서진이 세워지자 동관군왕에 봉해져 1만 6백 호를 식읍으로 받아 동안왕이 되면서 중앙으로 들어가 상서우복야, 무군장군이 되었으며, 외직으로 나가 진동대장군, 가절, 서주도독제군사가 되어 위관을 대신해 하비를 수비했다. 또한 277년에 낭야왕(瑯揶王)이 되어 개부의동삼사가 더해지고 280년 사마염의 오나라 정벌에서 수만 군대를 이끌고 참전해 도중으로 나아갈 것을 명령받았으며, 오나라 손호의 항복을 받았다.
이 공로로 아들 두 명이 정후가 되었다가 독청주제군사, 대장군이 되었으며, 지위와 공이 높았지만 공손하고 검약했다. 수하 관리들도 힘을 다하여 백성들을 교화시켰으며, 283년 여름 5월 1일 사망했다. 향년 57세. 시호는 무왕(武王).
유언으로 어머니 무덤 곁에 묻히는 것과 아들 넷에게 봉국을 나누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의 유언은 모두 시행되고 그의 뒤는 장남 사마근이 이었다. 팔왕의 난 이후에 서진이 전조의 유총에게 망하자 사마근의 장남이자 사마주의 장손 낭야원왕 사마예동진을 세운다. 즉, 사마주는 진나라의 중시조로 볼 수 있는 인물이다.[2]
다만 사마근을 빼고는 자식 복은 좋지만은 않았다. 차남과 삼남인 사마담, 사마요는 다퉈서 사마요가 결국 봉작을 잃었는데, 사마담은 극악의 잔인한 술 주정에 찬탈자 사마륜에게 가담한 놈이었고, 사마요는 문앙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다. 근데 사마요는 자기 팔자도 그닥 좋지는 못해서 팔왕의 난에 휩쓸려 끔살당했다. 그나마 사마륜의 부하 손수를 공격해 죽이고 왕의 지위를 받은뒤, 추가로 벼슬을 받고 죽은 사마최만 좀 나았을 정도.

3. 가족 관계



4. 미디어 믹스


[image]
삼국지 8[3], 9, 10, 11
[image]
삼국지 13
코에이삼국지 시리즈에서도 등장하는데, 정사에선 나름대로 공로가 많은 것에 비해서 연의에선 존재감이 별로 없기에 일러스트도 평범하고, 능력치도 평범한 편이다. 대부분 무난하게 낮으면 60대, 높으면 70대인 상황. 이런 평범함 때문인지 삼국지 11에선 특기마저도 없다. 그러나 극후반부에 갈수록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인재난에 시달리는 삼국지 시리즈 특성상 이런 무난하고, 어느 하나 떨어짐이 없는 능력치는 도리어 장점이 돼서 먼치킨들이 난무하는 군웅할거 같은 초반부에선 꿈도 못꾸는 능력치로도 올라운더로써 활약할 수 있다.
특히 오나라가 멸망하는 280년대에도 살아 있는데, 이 시점에 가면 재야인물들은 하나도 없고, 인재가 많아봐야 20명 내외밖에 안되므로 초특급 인재로 활약할 수 있다. 사실상 양호, 문앙, 두예, 왕준 같은 드문 인재들과 대면하지 않는 한 고전할 일이 없을 정도로 인물이 부족한 시대이기 때문. 게다가 위에 기재된 인재들이 모조리 다 사마주와 같은 세력에 있기에 대면할 일도 없다. 쉽게 말해서 좋은 시대에 태어나서 유용하게 쓰이는 인물. 극후반 시나리오는 삼국지를 플레이하는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셀렉율이 가장 떨어지는 만큼 인지도는 매우 낮다. 삼국지 8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3/무력 45/지력 55/정치력 62라 별 볼일 없는 무장이다. 제사, 누선, 투석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3/무력 53/지력 62/정치력 65/매력 69에 명사 특기 포함 특기가 4개.(농업, 화시, 반목, 명사) 하지만 70넘는 능력치가 없는 걸 보듯이 특기가 있어도 별 도움은 안된다. 극후반에나 나오는데 명사 특기는 본인이 직접 플레이해서 도적들을 설전으로 바를 것이 아닌 이상, 등장하는 모든 세력이 모두 황제이기 때문에 효용도가 초반에 비해 많이 낮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1/무력 52/지력 61/정치력 66/매력 62인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무특기다. 사마씨 중 유일하게 수군 병종 적성이 무려 A다.
삼국지 12에서는 결국 나오지 않았다. 안습.
삼국지 13에서 복귀했는데 능력치는 매력만 빠진 상태에서 전작과 같으며 특기는 연전 1 단 하나. 전수특기도 당연히 연전이고 전법은 기공약화. 다만 수군을 이끌었다는 기록이 있건만 동백 따위도 있는 수영 특기가 없다. PK로 한다면 수영특기를 추가해주자. 일러스트는 검을 들고 소리치고 있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63, 무력 52, 지력 62, 정치 65, 매력 61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2, 지력이 1 상승한 대신 정치력이 1 하락했다. 개성은 신중, 주의는 명리, 정책은 수군육성 Lv 2, 진형은 안행, 전법은 혼란, 강습, 시람, 친애무장과 혐오무장은 모두 없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전투외편 8-5에서 얼굴만 비춘다. 검은 더벅머리. 아마도 루인 라이트인듯.

[1] 사실 3남 ~ 6남일 수 있는데, 보통 생몰년도가 있고 친형제 사마량을 형으로 보기에 4남으로 보는 편.[2] 진나라의 시조라고 볼 수 있는 사마사-사마소-사마염 계열의 황족들은 팔왕의 난, 영가의 난 때 죄다 몰살당했다.[3] 8은 색조만 조금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