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1963)
1. 소개
한국의 시인, 각본가, 영화 감독. 본명은 김영준.
1963년 2월 9일생. 전라북도 고창군 출생. 상문고등학교(6회)[1] , 세종대학교 영문과와 동국대학교 대학원 영화학과 출신으로 영화와 문학 양쪽에 조예가 있었다. 1988년에 시인으로 등단했다. '21세기 전망'의 동인으로 활동하던 도중 무협지와 풍자를 섞은 첫 시집 '무림일기'와 소비자본주의의 총화인 압구정동에서 살아가는 1990년대 한국인들을 그려 낸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시단에 파란을 일으켰으며, 장정일과 함께 1990년대 대한민국 젊은 시를 대표하는 총아로 자리잡게 됐다. 2003년 천일마화 이후로는 영화에 집중해서 시작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2]
1993년에 자신의 시를 바탕으로 한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에서 각본과 감독으로 첫 장편 영화 데뷔를 했다. 하지만 반응은 시원찮았고 흥행도 실패(서울관객 24,000여 명)하면서 잊혀졌다가 2002년에 엄정화, 감우성 주연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컴백하면서 약간의 화제를 일으켰다[3]
2004년 자신의 모교인 상문고등학교 출신 선후배들을 끌어모아[4] 모교를 디스하는 말죽거리 잔혹사를 연출해 전국 311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흥행 및 비평에도 성공을 거두고, 2006년에는 배신으로 점철된 조직폭력배와 폭력 조직의 생리를 상당히 사실적으로 묘사한 비열한 거리를 만들었고 전국 204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서 2연타로 성공했다.[5]
2008년 말에는 쌍화점으로 뭇 여인들을 설레게했고 전국 379만 관객을 동원하며 그의 감독작에서 가장 흥행 성공했다. 뱀발로 이 영화는 조인성과 비열한 거리에 이어서 두 번째로 작업을 같이 한 작품이며 조인성의 연기 경력에서 최초의 시대극 작품이기도 하다.
2012년에는 송강호, 이나영 주연의 스릴러 영화 하울링을 연출했으나 이전 작품들에 비해 평가가 떨어졌고 전국관객 161만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을 거뒀다.
2015년, 이민호, 김래원 주연의 강남1970를 연출하였고, 2015년 1월 21일 개봉했으나, 난해한 완성도로 기대 이하의 평가를 받으며 아쉬운 흥행을 보였다.[6]
2019년에는 서인국, 이수혁 주연의 파이프라인의 감독을 맡게 되었다.
2. 작품 목록(영화, 연도순)
- 1993년: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7]
- 2002년: 《결혼은, 미친 짓이다》[8]
- 2004년: 《말죽거리 잔혹사》
- 2006년: 《비열한 거리》
- 2008년: 《쌍화점》
- 2012년: 《하울링》
- 2015년: 《강남1970》
3. 작품 목록(시집, 연도순)
- 1989년: 《武林일기》
- 1991년: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 1993년: 《세상의 모든 저녁》
- 1995년: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9]
- 1999년: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 2000년: 《천일마화》
4. 기타
아이러니하게도 유하의 경우 본래 시인, 그것도 소비사회를 비판하는 경향이 강한 시인이었는데 뜬금없이(...) 상업 영화감독이 되어 성공한 케이스이다. 영화가 자본주의 사회의 상징으로 심심찮게 비춰진다는 것을 보면 꽤나 아이러니한 셈.
여담으로 키가 엄청 크고 체격도 크다. 190cm라고 하는데 자신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 중에서도 키가 크기로 유명한 조인성이나 이민호보다도 더 크다.
그의 영화에 음악감독을 맡았던 신해철이 사석에서 그의 어린시절에 대해 물어봤더니 '''"깡패였습니다."'''라고 말해 놀랐던적이 있다고 한다.
[1] 이석수와 동기동창이다. 그래서 모교를 베이스로 한 영화였던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반장 배역명을 이석수라고 붙였다.[2] 소설가로 등단해서 문단의 유망주로 주목 받다가 영화 감독으로 전업한 이창동과 비슷한 케이스다.[3] 서울 관객 42만, 전국 관객 110만대로 그럭저럭 흥행도 성공. 참고로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전국 관객 60만 명이었다고 한다. 제작비의 2배 가까이 되는 수익을 올리고 사회적으로도 신드롬을 일으켰기에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4] 선도부장으로 나오는 배우 이종혁(18회), 영화 OST 타이틀곡을 불렀던 김진표(21회), 영화 제작자인 싸이더스 노종윤 이사(7회) 등이 모두 상문고등학교 출신 인물들이다.[5] 상업적으로 따지자면 비열한 거리가 흥행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손익분기점이 전국 관객 230만 명이었는데 실제 동원 관객수는 204만 명이었으니. 그래도 월드컵 기간에 개봉하고 여러 쟁쟁한 할리우드 영화에 맞서서 상당히 선방한 셈이다.[6] 그래도 해외 판권 및 2차 시장에서 선방해 손익분기점은 넘겼다.[7] 이 영화의 의의는 엄정화의 첫 영화 주연작이라는 것. 그리고 신해철의 첫 영화음악 작업이었다는 것. 이 음반에 실린 Komerican Blues는 이후 N.EX.T의 앨범에서 리메이크된다[8] 당시 엄정화의 노출 연기가 화제가 되었다.[9] 제15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