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사
1. 應射
적의 사격에 맞서서 대응해 쏘는 것. 흔히 화살이나 총과 같이 사격하는 무기로 맞서는 것으로 사용하는 용례가 많지만 초음파에도 이 단어를 사용할 수 있으며, 이 단어가 합쳐진 단어로는 응사원, 응사단자 등이 있다.
조선의 업무 규정 지침서인 은대조례에는 응사(應射)에 관한 조항이 있다.
당연히 현대에도 사용된다. 멀리갈 것도 없이 한국군의 GOP, GP에도 이에 대한 지침이 다 내려온다. 어찌됐건 주적인 북한군과 대치 중인 휴전국가인데 이런 지침이 없을 리도 없다. 서해에서는 중국 어선들이 이러한 응사지침을 악용해서, 한국 해군이나 해양경찰이 사격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근접전을 벌이기도 한다.
반대로 연평도 포격 사태는 북한군이 일부러 응사지침을 곡해해 일어난 사태이다. 남한 '''훈련군'''이 '''훈련탄'''을 '''남쪽'''을 향해 포격했지만, 북한군은 이를 응사한답시고 실탄을 연평도에 포격해버린 것. 물론 연평도 주둔군도 지침에 따라 응사했다.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특기로 나와서 삼국지 5에서는 궁시, 화시 등의 공격을 당하면 반격하는 특기로 하후연, 황충, 여포 등이 이를 소유하고 있다. 삼국지 11에서는 기교표에서 노병의 제2단계로 나오고 관여 능력은 통솔이며, 효과는 노병이 화살 공격을 받을 때 반격하는 것이고 응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1단계에 해당하는 노병단련이 연구된 상태이면서 기교 포인트 2천이 있어야 한다.
2. 鷹士
매를 부려 사냥하는 사냥꾼. 한국의 무형문화재다. 신라 26대 진평왕, 54대 경명왕도 매사냥을 즐겼다고 하며, 9세기 일본 승려의 여행기인 입당구법순례행기에서도 지금의 전라남도인 무주 태수의 집에서 매를 기르는 사람이 등장할 정도로 최소한 수백 년은 계속된 전통인 셈이다.
매를 길들여서 사냥에 쓰기도 한다.(매사냥) 팔에 토시가 없으면 매가 팔에 올라갈때 그 발톱에 피부가 상하니 도구가 필수. 본래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많이 발달한 문화로, 우리나라도 많이 성행하였고 매의 품질도 좋았다고. 이걸로 유명해진 것이 해동청. 중국에서도 이 해동청의 인기가 대단해서 조공 품목에 단골로 올라갔다.[1] 조선시대에도 왕들 중에는 매사냥을 좋아하는 왕도 있었다.
그러나 광복 이후 규제 때문에 일반적으로 기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워 전통 복원 및 유지를 위해 하는 인간문화재 외에는 매사냥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국내에 존재하는 응사(鷹士)는 고작 2명뿐이다. 옆나라 일본은 매 관련 법규가 관대해서 응사만 300여명 가까이 된다. 다만, 응사 자격증 따기가 꽤 어려운 편이다. 박용순 응사가 자기 자식에게 전수하는 다큐 EBS 다큐 참매와 나를 보면 알겠지만 개처럼 복종시킨다기 보다는 서로 적응해가는 느낌.
2017년 현재 한국의 매들은 전부 천연기념물 제323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냥 및 사육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로지 인증된 응사들이 제한적으로 가능하다고 한다. 문화재청[2]
외국에서는 애완용으로도 이용되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아주 넓다란 사육장이 필요하다. 중동의 아랍 국가에서는 이 매사냥이 부호들이나 왕족들의 아주 값비싼 취미여서 매사냥에 들이는 돈도 엄청나다고 한다.
매와 응사를 소재로 한 소설로 이청준의 중편 소설인 '매잡이', 이송현의 성장 소설 '내 청춘, 시속 370km'가 있다.
2.1. 대중 문화 속의 응사
- 트리 오브 세이비어 - 응사
3. 응답하라 1994의 줄임말
응답하라 1994 참고.
[1] 한참 활발하게 바쳐질 때는 아얘 응사들에게 벼슬도 주고 그마저도 모자라서 응사의 규모를 확대하기도 했다. 다만 국가적으로는 썩 달가운 일이 아니었는데 야생 매를 잡아다가 바치는 것이라서 잡기도 힘들고 또 잡으려고 다니는데 드는 피해 등 어쩄든 하등 도움될게 없었다.[2] 한국식 매사냥은 그 특성상 매사육이 불가능한데, 매를 계속 잡아두기보다는 같이 지내면서 공생하는 개념에 가깝기 때문에 어느 시점이 되면 매를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매가 떠나게 되면 응사는 새로운 매를 찾는 것을 지속적으로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