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훈

 



'''이름'''
이대훈(李大勳, Lee Daehoon)
'''국적'''
대한민국[image]
'''출생'''
1992년 2월 5일[1](32세), 강원도 화천군[2]
'''학력'''
성산초등학교 (전학)[3]
중계초등학교 (졸업)
한성중학교 (졸업)
한성고등학교 (졸업)
용인대학교 (태권도경기지도학 / 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스포츠레저학 / 석사)
'''종목'''
태권도
'''체급'''
플라이급(-58kg)[4],밴텀급(-63kg)[5],
페더급(68kg)[6]
'''소속'''
한국가스공사 태권도단(2014년~2017년)
대전광역시 체육회(2018년~현재)
'''신체'''
183cm, 70kg, AB형
'''별명'''
천재[7]
'''가족'''
배우자 안유신(1992년생)[8], 아들 이예찬
'''링크'''



1. 개요


'''태권도계의 박지성이 되고 싶어요.'''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당시 인터뷰-

'''처음에는 이대훈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저 라저스트 전자호구에 특화된 선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수촌에서 미트를 잡아보고 알았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똑같은 스피드로, 똑같은 힘으로, 똑같은 자세로 모든 훈련을 소화하는 선수는 이대훈이 유일했다. 오죽하면 훈련량으로 이대훈을 한번쯤 쓰러지게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정도였다. 이대훈의 사각미트를 잡은 날이면 가슴팍에 멍이 박혔다. 이대훈의 노력과 성실함에 팬이 될 수밖에 없었다.'''

前 국가대표 강화훈련단 박정우 코치(現 국가대표 후보선수단 감독)

대한민국의 남자 태권도 선수로 대전광역시 체육회에 소속되어 있다.

2. 선수 경력



2.1. 어린 시절


5세 때부터 태권도장 관장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형과 함께 태권도를 배웠고, 한성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2.2. 2010년


같은 재단의 한성고등학교 재학 시절, 만 18세의 나이에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2010년 11월 19일, 광저우 아시안게임 -63kg급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 병역 혜택 대상자가 되었다.[9]

2.3. 2011년


2011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2.4. 2012년


2012 아시아선수권 금메달을 획득하여 2012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할 경우 최연소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상황을 눈 앞에 두게 되었다.

2.4.1. 2012 런던 올림픽


2012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다면 태권도 최연소 그랜드 슬램을 목전에 둔 상황이었다. 문제는 올림픽에 이대훈의 주 체급인 -63kg급이 없고, 남자부 기준으로 -58kg, -68kg, -80kg, +80kg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고민 끝에 이대훈은 -58kg급을 선택했지만 운동선수의 체중이 5kg 전후로 변하기만 해도 본인이 기량에 큰 지장이 오는 경우가 많은 점을 보았을 때, 이대훈이 런던 올림픽에서 겪을 고난의 행군은 예견 되어 있었다.[10] 원래도 키에 비해 마른 체형이었는데 거기서 극도로 체중을 줄여버리면 몸은 가벼워지지 않고 오히려 몸이 무거워진다. 근 손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최악의 몸상태로 출전한 런던올림픽에서, 16강부터 4강까지 내리 연장전을 치르며 겨우겨우 올라와 체력적으로 이미 한계에 도달한 이대훈은 스페인의 호엘 곤잘레스 보니야와의 결승에서 17:8로 완패했다.

2.5. 2013년


2013 세계선수권에서 본인의 주 체급인 -63kg급에 출전해 8강에서 다시 만난 호엘 곤잘레스 보니야에게 21:8로 압승을 거두었는데 스스로도 통쾌해했던 듯하다. 이 대회에서 설욕전을 펼치길 원하는 주위 분위기에, '안 그래도 되는데..' 하며 다시 마주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듯 했다. 결승을 앞두고 대기 중인 이대훈에게 준결승에서 보니야가 이겼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승리했고 설욕에 제대로 성공했다.[11]

2.6. 2014년


이후 꾸준히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던 이대훈은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대중에게 다시 모습을 보였다. 역시 본인의 주 체급인 -63kg급에 출전해 전 경기 점수차 승 [12]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런던 때 보였던 악플러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리우에서는 -68kg급으로 체급을 올릴 것이라 공언하며 런던 때 비판받았던 근력적인 요소를 중점으로 준비를 착실히 해 나갔다.

2.7. 2015년


WTF 태권도에서 랭킹제를 도입하면서 월드 그랑프리를 통해 출전 체급 세계랭킹 6위 이상선수는 올림픽 예선 프리패스권을 얻도록 바뀌었는데 당시 이대훈은 -68kg급 1위였다.[13]

2.8. 2016년


세계 랭킹이 2위로 떨어졌으나 올림픽을 앞두고 가진 <레드불레틴> 2016년 5월호 인터뷰에서 "리우올림픽이 자신의 태권도 경력에서 마지막 대회는 아니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다."고 성숙되고 여유로운 자세를 내비쳤다.

2.8.1.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리우 올림픽에서는 16강에서 1회전 종료 후 상대에게 기권을 받는 등 압도적인 기량으로 4년 전과는 비교가 안되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대훈 본인이 경쟁상대로 뽑았던 아흐마드 아부가우시(요르단)를 8강에서 만나 8:11로 패배해 준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그러나 패자부활전을 통해 동메달결정전에 나선 이대훈은 세계 1위 자우아드 아찹(벨기에)을 꺾고 값진 동메달을 획득했다.[14][15] 태권도의 재미 논란에 대해서도 "올림픽(뿐만 아니라 다른 메이저급 대회에서도)에서는 실력 좋은 선수들끼리 대결하다보니 조심스러운 플레이를 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적극적인 플레이를 통해 태권도도 재미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인기 스타로 등극했다.

2.8.2.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이후


올림픽의 활약에 힘입어 2016년 9월 4일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이핑크윤보미와 함께 공동 호스트로 출연하였다. 방송 출연, 특히 대형 예능이 처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윤보미와 꽤 괜찮은 케미를 보여주었으며 전반 막바지 무렵에는 방송에 어느 정도 적응했는지 채팅창의 글도 간간이 읽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전·후반 모두 1위를 수성하며 최종 우승을 거머쥐게 되었다. TV 방송은 9월 10일, 9월 17일 두 차례에 걸쳐 방영되었다.
올림픽 출전 당시 -68kg급 2위였으나 올림픽 이후 순위가 갱신되면서 다시 랭킹1위에 올랐다.[16]

2.9. 2017년


2017 세계선수권에서 1위를 하여, 이 대회 4회 출전, 3회 우승(2011, 2013, 2017)이라는 기록을 갖게 됐다. 국내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이니만큼 응원의 힘이 컸다고 한다. 대폭 개정 된 규칙에도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같은 해, 코트디부아르에서 열린 아비장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1위를 했다.

2.10. 2018년


처음으로 출전한 것이자 대전시체육회로의 이적 이후 첫 대회였던 [17] 세계태권도연맹 주관 '월드 태권도 그랜드슬램 챔피언스'[18]에서 우승해 상금 7만불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뤘다. 이 대회 결승에서, 한국의 김석배를 이기고 올라온 중국의 자오슈아이(리우 올림픽 -58kg급 금메달리스트)를 53:14로 물리쳤다. 이 덕분에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뿐만 아니라 2017년 월드 그랑프리 1차 대회(모스크바)[19], 월드 그랜드슬램 챔피언스(2018, 중국 우시)에서 리우 올림픽 -68kg 금메달리스트 아부가우시를 눌렀다.
2018년 2월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해 아시안 게임 3연패 도전에 나설 기회를 얻었다.

2.10.1.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2018년 8월 23일에 결승에 오르기 전까지 다채로운 공격을 선보였고 20점 이상의 점수 차로 여유있게 승리했다. 상대방이 맞다가 지쳐 버리는 상황이 나올 정도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였다. 결승전에서는 신예인 이란의 바크시칼호리[20]를 만났는데 예상 외로 상대의 힘에 밀리며 2라운드 중반까지 끌려갔다. 그러나 2라운드 중반 이후 침착하게 주먹 공격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데 성공했고, 지친 상대에게 압도적인 체력을 과시하며 맹공을 퍼부은 끝에 얼굴 공격으로 3점을 따내며 역전승을 거뒀다. 결과는 12:10. 경기 여담으로 경기가 끝난 후 역전패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헤드기어를 벗어던지고 주저앉아 있는 바크시칼호리에게 먼저 다가가 잘했다며 토닥여주는 이대훈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21] 이에 리우에서의 이대훈을 기억하는 이들은 '이기나 지나 상대 선수를 존중하는 모습이 멋지다.'며 경기 운영 뿐 아니라 선수 개인의 소양이나 품행을 비롯, 모든 것들에 대해 칭찬 일색이었다.
이로써 -68kg급 금메달을 획득하며 3연패에 성공했다. 이는 '''태권도 역사상 최초의 아시안게임 3연패'''이다. 동시에 두 체급 석권에도 성공했다. 2010년, 2014년에는 -63kg급으로, 2018년에는 -68kg급에서 금메달을 땄기 때문.
메달 획득 이후 8월 24일 오전에 코리아하우스에서 진행 된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서 "경기 규칙이 점점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에게 유리해지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우리나라 선수들도 그런 경향이 짙은데, 경기를 하다보면 적극적인 플레이가 오히려 독이 되는 타입의 상대 선수를 만나게 되는 때도 분명히 있다. 그런 경기를 보는 입장에서 충분히 재미 없어 할 수 있지만, 이기기 위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경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며 비판은 겸허히 받아들이는 동시에 선수 입장에서 계속되는 규칙 개정을 바라보는 견해, 그리고 본인이 목표로 하는 '재미있는 태권도'를 위한 소신을 밝히는 등 오랜 선수생활에서 나오는 관록을 볼 수 있었다.

2.10.2.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이후


아시안 게임 3연패로부터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9월 19일, 대만 타오위안에서 열린 2018 월드 그랑프리 3차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 하였다. 브라질 선수 에디발 폰테스를 준결승 상대로 만났는데, 요르단의 아흐마드 아부가우쉬, 이란의 아볼파즐 야고비조위바리를 기세 좋게 꺾고 올라온 터라 만만히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대훈은 이에 개의치 않고 평소와 같이 공격을 퍼부으며 상대를 압박하였고 29:8, 큰 점수 차로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는 2018 아시안게임 남자 –63kg급 금메달리스트 미르하셈 호세이니(이란)를 13:9로 꺾었다. 2회전까지는 4:4 동점, 팽팽한 접전이 펼쳐졌지만 3회전에서의 몸통 공격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재미있는 것은 괸중들의 반응. 결승 이전부터 이대훈의 입장에 환호와 박수를 보내던 대만의 어린 학생들은, 결승에 다다라서도 이대훈에게 응원을 표했다. 호세이니의 감점으로 이대훈의 점수가 올라가거나 이대훈의 공격이 적중할 때는 박수와 환호가 쏟아지는 한편, 경고로 인한 이대훈의 실점, 호세이니의 득점 상황에서는 장내가 쥐 죽은 듯 조용해지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대훈은 경기가 끝난 후 열린 시상식에서 열 손가락 모두를 펴보였는데, 타오위안 대회로 그랑프리에서 열 번째 우승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대회에서만 개인 통산 열 번째 금메달을 거머쥐게 된 그는 '열 번째 그랑프리 우승이라는 큰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그랑프리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내년에는 세계선수권대회 선발전도 있다. 한 대회, 한 대회 소중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임하겠다.'는 말로 대회 첫째 날을 화려하게 마감했다.
2018년 10월 13일, 전북 무주 태권도원 경기장에서 열린 제 99회 전국체육대회 남자 태권도 일반부 -68kg급 경기에, 대전 대표로 출전[22]하였으나 울산 대표로 나선 신동윤(삼성에스원)을 8강에서 만나, 결승 진출에 실패하였다. 3회전에서 역전을 허용으나 종료 직전, 주심이 소극적 행위를 이유로 상대에게 감점을 선언해 5대 5, 동점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상대 측에서 감점 부분에 대해 영상판독을 신청하였고 판독 결과, 경기 시간이 초과된 상황에서 감점이 부과된 것으로 인정되어 최종 5대 4의 점수로 석패 하였고, 그를 꺾고 결승에 오른 신동윤이 대회 최종 우승자가 되었다. 앞서 열린 전국체육대회에서 연달아 금메달[23]을 거머쥐었던 그였던만큼 2018년 전국체육대회 결과는 아쉬움을 낳았다. 그러나 본인은 이날의 패배에 대해 담담한 반응을 보였고 연장전으로 이어지지 않은 판독 결과에 대해서도 오히려 자신에게도 더 잘 된 결과라는 소회를 밝혔다.
10월 15일, 체육의 날을 기념하여 열린 제56회 대한민국체육상 시상식 및 2018년 체육발전유공자 포장 전수식에서 체육훈장 청룡장을 수여받았다.
10월 19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월드 태권도 그랑프리 4차 대회에 출전하여 우승하여 그랑프리 연승 가도를 이어갔다. 점수차 승으로 올라온 준결승에서 헤드 기어 센서 문제로 경기 중 여러 차례 점검 및 정비를 받아야 했는데 이 때문에 불편을 겪었다. 앞선 경기에서는 보이지 않던 문제가 유독 준결승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는데 -68kg급 경기 직후 이어진 다른 체급의 경기에서도 선수들이 여러 번 센서 점검을 다시 받아야 했다. 센서로 인해 흐름이 과도하게 끊기기도 했지만 무난히 결승에 진출. 결승 상대는 3차 대회 결승에서도 만난 바 있는, 이란의 호세이니. 시작부터 계속 우세한 상황에 놓여 있던 이대훈은 2회전에서 무릎 부상을 입었다. 웬만해선 내놓고 고통을 호소하지 않는 이대훈이지만 통증이 심한지 아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경기가 속행된 것도 잠시, 이대훈에 이어 호세이니까지 무릎 부상을 입었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에 의료진이 등장, 호세이니 무릎에 파스를 뿌렸다. 이때 이대훈은 선 상태로 허리를 숙여 자신의 무릎을 매만지며 호세이니의 처치가 끝나길 기다렸다. 그런데 이쪽도 무릎이 성치 않긴 마찬가지. 코치에게로 걸음을 옮길 때 절뚝이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잡혔는데 그 그림이 2016년 리우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의 부상 상황과 무척 흡사했다. 그렇게 경기는 3회전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3회전에서 또다시 상대가 주저 앉는 상황이 발생. 2회전에서의 무릎 부상이 심해졌는지 이번엔 의료진이 부위 근처에 손을 가져다대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 했다. 누워 처치를 받던 호세이니는 심한 통증에 얼굴을 감싼 채 소리쳤고 상황이 그쯤에 이르자 경기는 그대로 끝이 났다. 기권승이 선언된 직후, 이대훈은 상대 진영으로 가서 한쪽에 놓인 헤드기어를 집어 들었고 의료진의 부축을 받아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호세이니를 뒤에서 다독였다. 상대 코치와 인사를 나누고도 호세이니가 빠져 나갈 때까지 지켜 보았으며,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놀란 관중석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를 몇 번 하며 자신도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이때 관중들은 이대훈을 향해 박수쳤다. 경기 종료 직후 치뤄진 시상식에서 호세이니는 관계자의 부축을 받고 입장하였는데 이때 이대훈은, 시상대에 오르는 호세이니를 유심히 살폈다. 곁눈질로 그의 상태를 꾸준히 살피는 것은 물론, 시상대에서 내려온 후 이동할 때에도 호세이니가 잘 오고 있는지 고개를 뒤로 돌리고 계속 확인했다.[24]
경기 이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빡빡하게 이어지고 있는 대회 일정에 대해 '걱정해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선수로써 이렇게 많은 시합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복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한 시합, 한 시합 최선을 다할 뿐이고 지든 이기든 많이 배우고 있고 많은 응원을 해주시기에 더 힘내서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어질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줄 것을 다짐했다.
11월 24일, 아랍에미레이트(UAE) 푸자이라에서 열린 2018 월드태권도그랑프리 파이널 결승에서 승리하여 4년 연속 대회 우승의 역사를 썼다.[25] 이로써 그랑프리 통산 금메달은 12개로 늘어났다. 결승전에서는 한국 선수 김석배를 상대로 맞이하여 '''65:20'''의 큰 점수로 눌렀다. 뿐만 아니라 세계태권도 연맹에서 시상하는 올해의 선수 남자부문에도 뽑혀 선수로써 더할 나위 없이 큰 영예를 안았다.[26]
2018년 12월 15일, 중국 우시에서 열린 그랜드슬램 챔피언스 준결승에서 경기 종료 직전, 역전을 허용하였다. 이튿날인 16일, 동메달을 획득하며 2018년 시즌을 마무리 지었다. 2018년에 출전한 모든 국제 경기에서 입상하였으며 그랜드슬램 챔피언스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우승, 열리는 대회마다 기록을 달성하였다는 점에서 선수로써 그 어떤 해보다 의미 있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2.11. 2019년


2019년 1월 2일, 라디오 스타 598회 레츠 氣릿 편에 출연하였다. 박세리, 이종범, 이봉주와 함께한 자리에서 그는 유일한 현역 선수였으며 승패나 연승 자체에 연연하지 않는 듯한 태도로 멘탈왕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올림픽 금메달을 보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연유에 대해, '(특별한 사유 때문이라기 보다) 그냥 지는 것 같다'고 덤덤히 말하였고 '리빙 레전드'라는 평가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세계 2위와 랭킹 점수 차가 많이 나는 세계 1위라는 사실을 덧붙여 강조해 웃음을 더했다.[27] 이날 방송에서 연금점수를 이미 다 채워 최근 우승했던 경기들에 대한 포상은 일시불로 받았다는 것과 오는 5월 결혼 예정이라는 입장 등을 밝히었다.
5월 25일, 결혼식을 올려 품절남 대열에 합류하였다. 10월 8일에는 전국체전 남자 일반부 -68kg급에서 우승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지난해 우승자였던 울산의 신동윤을 예선에서 꺾었고 더욱이 해당 대회가 100회를 맞는 해에 정상을 탈환한 것이기 때문에 의미를 갖기 충분했다. 이는 도쿄올림픽 관련, 이대훈에 대한 언론의 기대감이 상승하는 계기가 되었다.[28]

3. 플레이 스타일


이대훈의 경기 스타일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딜과 탱이 모두 준수한 만능캐릭이다.[29] 초등부 시절에는 전형적인 오른발잡이 스타일이었으나 중등부로 오면서 양발을 고루 능하게 쓸 수 있어야 함을 자각해 후천적 양발잡이가 된다. 주로 왼발잡이 자세인 사우스포로 서서 오른발로 견제하고 왼발로 받아차는 식이다.[30] 주특기는 오른발의 다채로운 컨트롤을 이용한 견제.[31] 타고난 고관절 유연성을 이용해 예측하기 힘든 변칙적인 발차기로 차분히 점수를 쌓아간다. 몸통 회전발차기 득점이 3점으로 개정 된 2015년 이후로 왼발 연습에 중점을 둔 것인지 왼발 돌려차기와 뒤차기를 자주 볼 수 있다.
압도적인 실력 탓에 이대훈이 엄청난 체력의 소유자라는 점이 잘 부각 되지 않는 면이 있다. 2분 3회전 내내 발차기와 풋워크 리듬이 깨지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증명할 수 있는데[32], 상대 선수가 맞다가 지치는 흠좀무한 상황이 되어도 본인은 끝까지 마이페이스로 공격한다. 또한 초반에 말리더라도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역전하는 경기가 매우 많아서 본인도 체력의 중요함을 알기에 더 열심히 훈련한다고 한다.

4. 수상 기록


올림픽
은메달
2012 런던
-58kg
동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
-68kg
세계선수권
금메달
2011 경주
-63kg
금메달
2013 푸에블라
-63kg
금메달
2017 무주
-68kg
동메달
2019 맨체스터
-68kg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10 광저우
-63kg
금메달
2014 인천
-63kg
금메달
2018 자카르타·팔렘방
-68kg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2012 호치민
-58kg
금메달
2014 타슈켄트
-63kg
그랑프리 파이널
금메달
2015 멕시코시티
-68kg
금메달
2016 바쿠
-68kg
금메달
2017 아비장[33]
-68kg
금메달
2018 푸자이라
-68kg
금메달
2019 모스크바
-68kg
그랜드슬램 챔피언스[34]
금메달
2017 우시[35]
-68kg
동메달
2018 우시
-68kg

5. 기타


  • 태권도 선수 최초로 팬카페가 개설되어 있는 선수며 다음과 네이버로 대표되는 양대 검색엔진 모두에 팬카페가 개설되어 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이루어진 선수단 결단식에서 아나운서 배성재가 팬카페 두 곳의 이름을 나열하자 쑥스러워 했다.[36] 태권도 선수 최초이자 유일의 팬카페 보유자였으나 리우 올림픽 이후 김태훈 선수 팬카페가 개설되어 현재, 유일은 아니다.
  • 런던 올림픽에 대한 질문에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는 답변이 화제였다. "최선을 다했고, 그리고 졌다. 체중 감량 때문도 아니고, 부러진 코뼈 때문도 아니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았다. 이유도 대고 싶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최선을 다해 경기를 뛰었고, 곤잘레스에게 졌을 뿐이다. 리우에서도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고,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다."
  • 본 문서에 상술되어 있는 내용들과 인터뷰들을 통해서 알 수 있듯, 차분하고 반듯하며 단단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 본인에 따르면 어렸을 때는 장난도 치고 밝았지만 크면서 내성적인 아이로 자랐다고 하며 자신 또한 본인의 성격을 차분하다고 표현한다. 선수의 사고관이나 내적 단단함에 있어서는 다음의 인터뷰를 참고하면 가장 좋다. 모든 인터뷰에서 그의 기초성향을 느낄 수 있지만, 아래의 것에서 가장 잘 응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이것은 리우올림픽 8강 탈락 후에 이뤄진 인터뷰이다.
  • 태권도 후원발전기금 전달 콘텐츠로 태권도 신문에서 <미션 임파서블 위드 본 브릿지>를 진행 중이다. 이대훈이 중ㆍ고등학교 태권도부를 찾아가 미션에 성공하면 발전기금을 전달하는 형식[37]. 해당 콘텐츠는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대훈을 동경하는 유소년들, 미션 성공에 열을 쏟는 아이들을 귀엽게 여기는 이대훈의 모습 등 의외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SBS 영재발굴단에 2017년, 2018년에 걸쳐 두 번 출연했다. 방송의 주인공은 영재들이므로 출연 분량 자체는 3~4분 남짓이지만 매번 강한 인상을 남겼다. 103회에서는 강원도 태권도 유망주 손효리 양의 학교로 찾아가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38] 141회에는 태권 소년 오만재 군을 진천선수촌에서 만났다.[39] 이때 전한 말들은 상당한 울림을 남겼다.
  • 세계태권도연맹 갈라어워즈에서 2014년, 2015년 연달아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으나 2016년에는 아흐마드 아부가우쉬가 받으면서 3연속 수상은 놓치게 되었다. 그리고 2017년에 올해의 선수상을 받으며 이례적으로 3번이나 올해의 선수상을 받게 되었는데[40],시상식에서 영어로 수상 소감을 얘기해 화제가 되었다. 외국선수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이유에서 틈틈이 공부한 영어가 빛을 발한 셈이다.
  • 상술했듯이 화천군에서 태어나 유치원 때 서울로 이사갔음에도 네이버 인물정보에는 출생지가 서울이라고 기재되어 있다.[41] 그러나 리우 올림픽 이후 열린 전국체전에는 강원도 대표로 출전한 것으로 보아 출생지는 화천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 인터뷰에서 자랑스럽게 얘기할만큼, 보기와 다르게 턱걸이를 잘한다. 본인 말에 따르면 대개 사람들은, 운동선수라고 하면 턱걸이를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격투 종목 선수는 더욱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원래 자신은 턱걸이를 하나도 못 했다고 한다. 그런데다가 태권도 종목은 상체 단련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시각들이 많아서 그런 편견들을 깨기 위해 턱걸이를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무작정 매달리기만 하다가 2분을 버틸 수 있게 되었을 때 조금씩 시간을 늘려나갔다고. 웨이트 트레이닝 시간마다 턱걸이를 하는 이대훈에게 코치들이 오늘도 턱걸이냐고 매일같이 얘기할 정도였다고 한다. 삼 개월 쯤 되었을 때 정확한 자세로 5개가 가능해졌고 이제는 10개씩 5세트가 거뜬하다 밝히었다.
  • 평소 대표팀에서 근력운동을 할 때 상체의 경우 머신을 쓰기보다 맨몸운동을 선호하지만 턱걸이딥스 같은 경우 자기 체중만으로는 근성장에 필요한만큼 부하가 걸리지 않아[42] 20~30kg 원판을 매고 한다고 한다.
  • 선수 생활에 지장이 갈만큼의 큰 부상과는 거리가 먼 이대훈이지만 코 부위 부상 전력이 있다. 2012 런던 올림픽 결승 1회전에서 코 뼈 부상을 입어 경기 중 치료하였으며, 2013년 세계선수권 결승에서 멘도자 선수의 발차기에 코피가 났다.[43] 2016년, 리우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 3회전에서 무릎 부상을 입었으며 2018년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발목 부위 부상이 있었으나 정작 본인은 이 부상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운동선수에게 자연히 뒤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부상이기에 이대훈 역시 부상을 여러 차례 경험했지만, 단기에 극복 가능한 부상들이었고 이대훈 역시도 자신의 오랜 선수 생활의 비결로 큰 부상이 없었던 것을 꼽았다.
  • 2010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국가대표 일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태권도 선수가 많은 한국에서 이처럼 오랜 기간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한국 태권도 남자부 사상 최초로 고교생 신분으로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44] 그때, 각종 언론들은 신예 이대훈의 출현을 두고 돌풍이라 표현하였는데, 태권도계 내부에서도 이후 행보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깔끔하게 불식시킨 것은 물론 매 시즌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해내고 있다.
  • 2013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국가대표로 활동중인 -54kg급 김태훈 선수와는 룸메이트 사이로, 닮은 점이 많은 친한 형 동생 사이라고 -74kg급 김훈 선수와 셋이 사석에서도 자주 만나는 사이로 유명하다. 세 명 다 이름에 '훈'이 들어가 '트리플 훈', '훈 형제' 등으로 불린다.
  • -74kg~-68kg에서 활동했던 김훈과 ~63kg~-58kg에서 활동했던 이대훈이 공교롭게도 둘 다 -68kg으로 참가한 2015 모스크바 그랑프리에서 결승전 상대로 붙었던 적이 있다.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았던 경기였다고. 결과적으로 연장전에서 김훈에게 패하였는데 김훈의 경우, 이 대회가 생애 첫 우승이었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열린 영국 맨체스터 그랑프리 파이널 준결승에서 김훈을 꺾고 결승에 올라 우승을 차지했다. 이대훈의 경우 영국에서 있었던 시합 때마다 우승과는 거리가 있었으나 이때 그 징크스를 떨쳐냈다.[45] 이때를 기준으로 김훈과는 총 네 번 맞붙어 두 번 승리했고, 진 것과 이긴 것 모두 연장전에서의 1점 차였다. 그만큼 그에게 김훈은 어려운 상대라 이길 지, 질 지 스스로도 예측하기 힘들다고 한다.
  • 2017년 아비장 월드 그랑프리 출전 시 본인 띠를 미지참하여 함께 출전한 -58kg급 김태훈 선수의 띠를 매고 참가했다.
  • 수려한 외모로 유명해진 케이스인데 본인은 TV를 통해 알려지기 전까지 잘생겼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방송에서 외모 칭찬에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태권도 선수로 주목받지 않았더라면 평범한 외모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잘생겼다는 말을 메달의 후광효과 쯤으로 여기는 듯 하다. 어떤 자리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메달리스트라 소개하면, 사람들이 그제서야 갑자기 '어우 너무 잘 생기셨어요~'하고 반응하기 때문. 심지어 여자에게 호감 표시를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순진무구한 반응을 보인 적도 있었는데, 현재까지도 외모 칭찬에 대해서는 적응이 안 되는 듯 하다. 그때마다 겸손한 태도를 보이지만 내심 싫지는 않은 듯. 여담으로 이상형은 배울 점이 많은 여자라고 한다. 이국주의 영스트리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아름답고 예쁘면 좋지만 외적인 것보다는 성격이 자신과 잘 맞고 배울 점이 많으며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를 원한다고. 연예인 중에서는 이상형이 누구냐는 질문에, 연예인은 외적인 것 외에 내적으로 자신이 알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이유로 이상형으로 꼽기 어려워 했다.[46]
  •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직후 인터뷰에서 말하길 태권도 외에 여가시간에는 주로 영화를 보러가곤 했는데 고등학교 때까진 친구들과 다니다가 어른이 되고부터는 친구들로부터 남자들끼리 무슨 영화냐는 소리에 점점 횟수가 줄었다며 여가 시간에는 영어 공부[47]를 하거나 기타를 친다고 한다. 태릉 선수촌 그룹 교습 지도를 했다고 밝힌 기타 선생님이 계신데 태권도 종목에서는 이대훈이 유일했다. 2017년 3월 23일 방영된 KBS 자랑방 손님 2회에서, 기타 실력을 보여주려 했으나 마음같이 잘 되지 않아 당황했다. 독학으로 한 것이다, 오랜만에 하는 거라는 식의 부연이 있는 걸로 봐서 실력은 초보자급이며 기타를 오래 다루어 본 것은 아닌 것 같다.
  • 만약 태권도 선수가 아닌 삶을 산다면 무슨 직업이 하고 싶냐는 질문에 축구 선수를 하고 싶다고 답했다. '슛포러브'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된 영상 하나에 출연하였는데 '태권도 국가대표가 축구를 하면 생기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라와 화제를 모았으며, 축구왕 슛돌이의 재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참고로 태권도를 할 줄 안다고 해서 모두의 슛이 이렇게 날렵한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선수 본인이 축구를 좋아하고, 잘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2018년 10월 6일, 대전 월드컵 경기장을 찾아 대전시티즌과 아산 경기의 시축을 맡았고, 팬사인회를 열어 구장을 찾은 대전 축구팬들과 만났다.
  • 목소리가 하이톤인 편인데, 유명 BJ 양띵 크루와 태릉선수촌에서 진행된 유튜브 촬영에서 단점이 없어보인다는 질문에 "목소리를 들으면 깬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 특히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데, 먹었다 하면 보통 두 세 개, 여름에는 하루에 5개까지 먹기도 한다고 한다. 그의 아이스크림 사랑이 뉴스 영상으로 송출되기도 했다.
  • 중학생 시절, 여름 훈련이 너무 고된 나머지 어린마음에 코치님께 "오늘 하루만 훈련 쉬고 다 같이 축구나 하면 안되나요?"라고 했다가 된통 혼났었다고 한다. 그 뒤로 훈련일정은 묵묵히 지킨다고 하는데 후배들 말에 의하면, 훈련 전에는 하기 싫다고 엄청 투덜대다가도 막상 시작하면 제일 열심히 한다고 한다.[48]
  • 기상 시간은 선수촌 일정상 9시 25분에 알람을 맞춰놓고 생활한다고 한다. 취침 시간은 주로 밤 12시에서 1시 사이인데 피곤하면 그보다 일찍 자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습관이 들어서인지 늦게 자는 일이 잦다고 한다.
  • 소스에 찍어먹는 음식을 좋아하는데, 음식을 짜게 먹을 때가 많아 최근에는 샐러드, 육류를 많이 먹으려고 한다고. 그 외에 좋아하는 음식은 아이스크림과 닭발인데, 몸에 좋다는 음식은 가리지 않고 먹는다고 한다. 다만 특정 음식에 꽂히면 한동안 그것만 먹는다고. 국제대회 차, 아제르바이잔에 갔었는데 양갈비가 굉장히 맛있었다고 한다. 현지 음식에 적응을 못하는 선수들이 한국에서부터 캐리어에 각종 가공품을 가득 담아 가고, 가서도 고생하는 것에 반해 자신은 그런 고충이 전혀 없다고 한다.
  • 훈련 중 힘들 때 버티는 자신만의 비법이 있냐는 질문에 "한계다 싶을 때 속으로 '한 발만 더', '5초만 더'를 무한반복한다고 답했다. 그러다가 정말 못 버틸만큼 한계가 찾아오면 "아!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크게 내뱉고 다시 훈련을 한다고. 스스로는 ‘부정의 힘’이라고 하는데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말로 고통을 다시 이겨내고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 한다.
  • 태릉에서 진천선수촌으로 옮겼을 때 외출 시 어떻게 시간을 보내냐는 질문에 "외박을 할 때면 서울로 갔을 때 미용실부터 치과까지 하루에 다 끝내고 복귀한다. 선수촌 내 휴식시간에는 게임(피파온라인, 배틀 그라운드)을 하곤 하는데 피파 온라인은 대표팀 내 상위권이었으나 최근에는 태훈이(김태훈)에게 많이 진다"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 2018년 8월 아시안 게임 3연패 달성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이후, 한 경기도 진 적이 없다는 사실을 밝히었다. 실제로 이대훈은 2018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기 전인 2018년 6월, 월드 태권도 그랑프리 1차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대회 9연속 우승의 대기록을 세운 바 있다.
  • 2018 그랜드슬램 우승 후 "최근 실적이 너무 좋아 이렇게 좋을 수 있나 싶다. 그래서인지 불안감도 있다. 언젠가는 추락할 때도 있을테니 최선을 다할 뿐이다."라며 겸손하면서도 진솔한 심정을 밝혔다.[49]
  • 2018년 3월 31일, 한화 이글스의 홈 경기 시구자로 내정되어 깔끔한 시구를 선보였고 같은 해 8월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선수단 출국에서 '출국 본진 기수' 라는 중책을 맡았다.
  • 선수촌 내에서도 소문난 노력파로 알려졌다. 아래는 강함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정해진 100번의 발차기를 다 차고, 다시 101개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성장이다. 몸이 안 좋은 날에도 그 몸에 맞춰 훈련 중 극한을 끌어내고, 넘어서야 한다. 몸이 안좋다고 해서 경기를 뛰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키가 크고, 누군가는 탄력이 좋다. 나는 그 어떤 것도 갖고 있지 않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은 오로지 노력뿐이다. 노력이 없으면, 매일 사점을 넘어 성장하지 못하면 바로 그때가 나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성장은 무한하다. 정말 힘들 때 바로 그때 거기서부터 성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기회다. 그 기회를 손에서 놓지 않으면 더 나은 나를 만들 수 있다."
  • 2018년 10월 22일, 동갑내기와 2019년 봄에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2019년 해 5월, 비공개 약혼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9년 5월 25일, 화촉을 밝혀 유부남이 되었다.
  • 위에 언급된것 처럼 축구를 좋아하늣 만큼 굉장히 잘한다. 2020년 6월 28일, 뭉쳐야 찬다 - 전설들의 조기축구에서 신진식과 함께 용병으로 출연했으며, 어쩌다FC의 플레이메이커로서 완전히 다른 팀으로 만들어내주었다. 그 결과, 사실상 1회성 출연으로 그친 신진식과 달리 53화에서 정식으로 입단했으며, 이대훈이 합류한 이후부터 어쩌다FC는 승률이 대폭 증가하였다. 현재도 어쩌다FC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선수다. 또 막내 멤버인 만큼 뭉찬 멤버들의 예쁨도 받고있는 건 덤이다.

6. 둘러보기


[image]
'''마이 리틀 텔레비전''' '''역대 우승자'''
'''MLT-33'''

'''MLT-34'''

'''MLT-35'''
No. 074
헌터.강

No. 078
아라치
'''No. 079
마루치'''

No. 084
인실.KIM
No. 085
콩까남
No. 086
콩진호
강형욱

보미
'''이대훈'''

김가연
임요환#s-10.4
홍진호
[1] 출생연도에 맞게 그냥 1992년생들과 같이 학교를 다녔으며 1999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2] 유치원 시절에 서울로 이사갔다.[3] 초등학교 5학년 때, 태권도부가 있는 중계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참고로,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로부터 태권도 선수의 길을 권유 받았다. 그 무렵 또래 중에선 가장 잘했다. 이미 초등학교 2학년 때 대회에 나가 6학년과 상대했고 중학교 1학년때, 중학교 3학년 선배를 꺾고 대회에서 우승했다. 말 그대로 타고난 셈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한성중학교로 가서 조기 훈련을 받았다. 선수를 생각한 것은 3학년 때지만 실질적으로 본인이 결심을 굳힌 건 5학년부터라고 한다. 태권도 선수를 해보겠다고 했더니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아버지의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5학년 때 전학을 하게 된 것은 이러한 배경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4] 2012 아시아 선수권, 2012 런던 올림픽 한정[5] 2014년까지 해당 체급에 적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이후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대비하기 위해 -68kg급으로 전향한다[6] 현재까지 해당 체급을 유지 중이다.[7] 태권도 신문에서 인기 선수 기사를 쓰거나 경기 영상을 올릴 때 쓰는 별명으로, -58kg급의 장준은 '슈퍼 루키', -80kg급의 남궁환은 '들소', +80kg의 인교돈은 '헤비급 간판' 같은 식이다.[8] 승무원 출신이다.[9] 해당 대회에 출전하기 전, 이미 체육특기자 특별전형으로 용인대에 합격한 상태였지만 그 해 수능 시험과 -63kg급 시합의 일자가 겹치게 되어 본인에게는 아시안 게임이 수능이라고 말하였는데 이 때문인지 결승전 이후 언론에서는 수능 만점이나 다름 없다고 치켜 세웠다. 이후 인터뷰에 의하면 국가대표 선발전 때는 아시안 게임이 4년에 한 번 열리는 대규모 대회인지 몰랐다고 한다. 매년 열리는 아시아 선수권과 혼동이 된 것이 원인이었다고. 또다른 인터뷰에서는, 혼동한 것이라 부연하지 않고, 그렇게 큰 시합인지 몰랐다고만 했는데 이 말을 들은 진행자들이 크게 놀랐다. 상식이기도 하거니와 더욱이 운동선수가 이것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 그러나 아시안 게임의 위상이나 주기를 몰랐던 게 아니라 워낙 비슷한 대회가 많아서 그냥 국제 대회 선발전인가보다 했다는 얘기. 이는 국제대회 경험이 거의 없었던 고교생의 순수함이 엿보이는 일화로, 2009년 이란에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선수권 이후 두 번째로 출전하는 국제대회였다. 같은 해 열린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냈기에 기대를 모았으나 경험 부족, 긴장 심화로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운명의 장난인지 그 대회에서 성적을 얻지 못한 사람은 이대훈 뿐이었다. '네가 더 큰 선수가 되려나보다.' 사람들이 해준 말이 맞았는지 다음 해, 고교생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된 것도 모자라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까지 땄다. 그야말로 초대박. 첫 번째 국제 대회에서 태국 선수에게 져, 예선 탈락한 것과 달리 두 번째에는 태국 선수를 이기고 최종 승자가 됐다.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에선 초반에 탈락했지만, 광저우에선 체육관에 애국가를 울리도록 하겠다. 성적은 나이순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겠다.'고 했었는데 정말로 약속을 지켜냈다.[10] 이대훈의 당시 주 체급이 -63kg급이었다는 말은 평상시 체중이 63kg이하라는 말이 아니다. 체급이 있는 투기 종목 선수들의 특성상 대회 시즌에는 평소 체중의 3~5kg쯤은 가볍게 내려간다. -63kg 시절의 평소 몸무게는 65kg로 전후로, 런던올림픽 출전 체급을 맞추려면 8kg 가량을 감량해야 했다. 1년 전부터 어느 정도 체중을 맞춰두고 나머지를 빼나갔다곤 하지만 올림픽에 임박해서는 그야말로 감량과의 전쟁이 따로 없었다. 땀복을 입고 훈련을 소화했으며 물이나 음료도 마시지 못 하였다. 그 무렵,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음료라고 답하였으며 메신저 개인 프로필 또한 판매용 음료로 가득찬 대형 냉장고 사진이었던 걸 보면,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던 듯하다. 실제로 올림픽 출전 전날까지는 기준에서 1.2kg이 초과된 체중이었으나 다행히 계체가 다음날 오전에 이루어져 출전이 가능했다. 2016년에 와서, '다이어트 한 것 밖에는 기억나지 않는다. 시합 때도 눈앞이 핑 돌고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정신도 없었다.'는 식의 내용으로 그때를 회고했다.[11] [12] 2회전 종료를 기점으로 점수 차이가 12점 이상일 경우 경기를 중단하고 점수가 높은 쪽의 선수가 승리하는 방식이다.[13] 런던 올림픽에서 패배를 안겨준 호엘 곤잘레스 보니야는 5위, 회전 발차기의 달인으로 키보드 워리어들이 태권도 1위라 믿고 있는 서베트 타제굴은 6위로 아슬아슬했다. [14] 이 당시 세계랭킹 1, 2위의 경기라는 이유로 동메달결정전이 진짜 결승전이라는 등 실제 결승전보다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 전에 이미 태권도계에서 이대훈의 인기는 말할 필요가 없기에...[15] 여담으로 이 당시 이대훈은 판정 논란이 있었음에도 경기 종료 직후 아흐마드 아부가우시에게 박수를 쳐 주고 손을 들어올려주며 승리를 축하해줬고, 이후 이대훈에게 승리했던 아흐마드 아부가우시는 결국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것은 요르단 역사상 최초의 메달이기도 해서 아부가우시 본인과 요르단 모두에게 겹경사가 된 셈이며 더불어 태권도 저변 확대에도 도움이 된다. 이 경기 이후 이대훈 본인은 인터뷰에서 '''"이기면 기쁨보다는 상대 슬픔을 더 달래주고, 또 진다면 제 슬픔보다 상대의 기쁨을 더 높게 만들어주기로 저 스스로와 약속했었다"'''라고 상대 선수를 축하해준 이유를 밝혔다.[16] 2016년 11월 랭킹에서 3위로 떨어졌으나 1위는 알렉세이 데니센코, 2위는 아흐마드 아부가우시, 4위가 서베트 타제굴로 모두 쟁쟁한 실력자에 서로 대회마다 승패를 주고받는 레벨인지라 사실상 6위 이상 선수들에게 랭킹은 이제 큰 의미가 없다. [17] 도복 상의에 KOR이 써진 국가대표 도복이 아닌 DAEJEON CITY라고 써진 대전시체육회 도복을 입고 참가했다. 띠 역시 이대훈/한국 국가대표 라고 써진 띠가 아닌 DAE HOON LEE/DAEJEON CITY라고 써진 대전시체육회 소속 띠를 매고 참가했다.[18] 쉽게 말하자면 태권도 왕중왕전[19] 같은 해 6월 있었던 무주세계선수권에서는 아부가우시가 4강에서 패배해 맞대결이 성사되지 못하였으나 8월,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대회 준결승에서 설욕했고[20] 이대훈의 강적으로 예상 되었던 황위런과 아흐마드 아부가우쉬를 이기고 올라왔다.[21] '나도 졌던 기억이 있다' 라는 말로 행동의 이유를 설명하였으며 이란 선수가 워낙 아쉬워 해서 우승 세레머니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경기 종료 직후 눈물을 떨굴 정도로 슬퍼했다. 금메달 그리고 3연패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다른 이의 슬픔을 생각하여 행동한 것에서 성품이 느껴진다. 역시 대인배답다.[22] 과거 이대훈은 서울, 강원 대표로 출전하였으나 2018년, 대전시 체육회로 이적한 것을 계기로 대전 대표로 경기에 임하였다.[23] 2015년 -63kg급, 2016, 2017 -68kg급[24] 이는 2016년 전국체육대회 때와 비슷하다. 결승 경기 도중, 상대 선수가 부상을 입어 기권승을 거뒀는데 경기 종료가 되고난 이후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한참을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결승 상대가 당시 소속팀이던 한국가스공사 동료라 더 마음이 쓰였던 듯.[25] 이는 대회 최초의 기록으로, 그랑프리 파이널은 2013년에 와서 시작되었는데 이대훈이 파이널 우승자의 자리를 15년부터 놓치지 않은 것이다.[26] 올해의 선수로는 네 번째 선정된 것인데, 올해의 선수상이 제정된 이후 2016년을 제외하고는 이대훈이 매번 독식 중이다. 올해의 선수는 2017-2018 월드 그랜드슬램과 파이널 대회를 포함, 5번의 월드그랑프리 시리즈에서 2회 이상 우승한 선수를 후보로 하여 그랑프리 파이널에 참가한 선수, 코치, 심판이 현장에서 투표하며 그 결과에 따라 갈라어워즈에서 시상한다. 여자 선수의 경우, 올해의 선수로 꼽히는 여자 선수가 매해 다르다는 점에서 세계 남자 태권도 계에서 이대훈의 장악력이 실로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27] 방송에 익숙해진 것 같다는 평. 그런데 웃기려 덧붙인 것은 아니어 보인단 것이 함정.[28] 그는 전국체전 전후로 열린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입상 중이다. 2019년 10월 기준, 세계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1,2위간 랭킹포인트 총점 격차가 200점 가량 나는 상황이며 세계 태권도 연맹이 체급별 세계랭킹 6위 이내 순위권자 모두에게 올림픽 자동출전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사실상 2020 도쿄올림픽 출전을 확정지은 것이나 다름없다.[29] 본인의 스타일을 "빠르고 강하진 않지만 느리더라도 정확하게 하나씩 쌓아가는 플레이"라고 인터뷰한 적 있다. 실제로 근력적인 성장이 눈에 띄게 발달하기 시작한 2014년 이전에는 다리가 길고 키에 비해 마른 체격 탓에 동 체급의 다른 선수들 보다 발차기가 느림을 알 수 있다.[30] 실제로 이대훈의 경기 영상을 보면 부상을 안고 참가했을 때를 제외하고 모두 왼발잡이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여담으로 부상을 무릅쓰고 결승전에 임한 그 대회는 오른손 주먹 득점만으로 승리해 금메달을 딴 이례적인 시합이 되었다.[31] 이제는 겨루기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앞발 견제는 사실상 이대훈 선수를 통해 시작되었다.- 손태진 해설위원 해설 중-.[32] 1회전에 2분이기 때문에 격투기 종목 치고 짧은 진행시간이지만 발차기 위주로 진행되는 겨루기의 특성상 2분 3회전 동안 발차기 속도와 풋워크를 유지한다는 건 타 종목과 비교해도 손색없을만큼 체력소모가 상당하다.[33] 이로써 그랑프리 파이널 3연패를 달성했다. 2017년 기준, 이 대회 3연패 달성자는 이대훈이 유일하다.[34] 태권도 왕중왕을 가리는 자리로, 2018년 1월에 신설 개최된 대회이다. 우승 상금은 7만 달러로 그랑프리 상금과는 열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대훈은 이 대회 초대 우승자이다.[35] 2018년 1월[36] 해당 내용은 34분 4초부터 1분 여 간 나오며, 그로부터 수 분 뒤에는 차례가 다시 돌아와 또다른 질문에 대해 답하는 내용이 이어진다.[37] 실패하면 발전기금 100만원은 다음 차례의 다른 학교로 이월된다.[38] 초등학교 4학년 때 태권도부에 들어갔고 시작한지 2년 만에 전국 대회를 휩쓸었다. 그러나 코앞으로 다가온 대회에 큰 부담을 느꼈고 시합 전 불안할 때 어떻게 하느냐고 질문했다. 이때 이대훈은 언제든 질 수 있다고 일러준다. 져도 툭툭 털어버리고 부족함을 인정하고 다시 욕심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뿐만 아니라 도복과 도화를 건네고 테이핑된 발도 봐주며 신발을 직접 신겨준다. 적은 분량이었음에도 그의 오빠미를 느끼기에 충분했던 회차. 더욱이 패배에 익숙하지 않은 효리에게 그의 조언은 상당히 의미 있는 것이었다. 이대훈 선수와의 만남으로 기력을 회복한 손효리 양은 며칠 후 열린 전국 소년체전 도대표 출전을 확정짓는다.[39] 만재 군은 아시아권 경기에 한국 대표로 출전해 우승했을 정도로, 6학년 나이대에서는 '이대훈'급이라 칭해지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이전에 출연했던 효리 양과 마찬가지로 시합을 앞두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다. 소년체전 대표 선발을 앞두고 있는 만재를 위해 제작진은 이대훈과의 만남을 주선하였는데, 이때 이대훈은 조금 더 힘을 실어 발차기를 하는 방법을 몸소 보여준다. 큰 시합에서 지고 나면 어떻게 다음을 준비하냐는 물음에 '앞으로 있을 많은 시합에서 네가 다 이길 수는 없다. 나는 장기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많은 경기에서 1등을 했지만 아직 올림픽 금메달은 없잖아. 하지만 올림픽 금메달을 따든 안 따든 열심히 하고 있고 현재 최선을 다하고 있어서 올림픽 금메달을 못 따고 은퇴를 하더라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해. 네가 진짜 힘들 때 한 번 더 뛰어넘을 수 있는 정신만 가지고 있다면 걱정할 게 하나도 없어. 악조건이면 악조건에 맞춰서 지금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라고 조언하며 만재 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효리 양과의 만남에서 오빠미를 느낄 수 있었다면 만재 군과의 만남에서는 형아미가 눈에 띄었다. 두 번의 만남에서 모두 다정하면서도 든든했다는 게 특징이다. 만재 군 역시 효리 양처럼 기운을 내어 최선을 다해 경기했고 소년체전 출전 자격을 얻었다. 여담으로, 만재 군의 경우 어머니께서는 청력 이상 상태셨는데 만재 군 뒷바라지에 조금이나마 보태고자 수술을 나중으로 기약하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심각한 상태셨고 분명 수술을 하면 좋아질 수 있었다. 이를 안타까이 여긴 개그맨 정찬우씨가 수술비 전액을 대었다는 사실이 한참이 지나서야 알려졌다.[40] 참고로 올해의 선수상은 2014년부터 시상되었다.[41] 중국 검색엔진 '바이두' 에도 서울 출생이라 기재되어 있는 상태이다. 여담이지만 바이두를 통해 검색하면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세계대회 영상이나 인터뷰 영상들을 볼 수 있는데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처음 보는 영상이라 새로운 건 사실이다. 인물 정보의 경우, 수상 내역은 최근 것까지 등록되어 있는 반면 의외로 신장이나 체중, 학력 사항들은 업데이트 되지 않은 채 20대 초반 시절의 정보에 머물러 있다.[42] 즉, 이미 너무 많은 횟수를 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주먹공격에 필요한 순간근력을 키우기에 부적합하다는 것이다.[43] 해당 경기는 16:4 점수차 승으로 이대훈이 승리했다.[44] 성인 국가대표 최연소 선발 기록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임수정이 가지고 있다(중학교 3학년, 2001). 올림픽 3회 출전 및 2연패를 달성한 황경선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이대훈(고등학교 3학년, 2010)은 남자부 최초이다.[45] 김훈의 경우 이전 대회에서 이대훈을 꺾고 우승을 차지해, 맨체스터에서 우승할 경우 세계랭킹 6위에 진입, 올림픽 자동 출전권을 딸 수 있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될 경우 이미 자동 출전권을 확보한 이대훈과 국내 선발전에서 다퉈야만 했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김훈은 동메달을 획득하는데 그쳤다.[46] [47] 선수촌 교습(자율 선택)+개인 과외[48] 중학교 때 들은 꾸지람의 영향으로 보인다. 그리고 본인 성격 때문도 있지만, 태권도 지도자 분들 중에 자신의 아버지와 과거 함께 운동한 선후배들이 많아 그런 것 때문이라도 게을리 할 수 없었다고 하며, 이제는 성실한 훈련이 아예 습관으로 굳어진 듯하다.[49] '질 때가 됐는데, 이러다 또 올림픽에서 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단다. 본인은 올림픽 금메달에 초연한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 같이 아주 큰 시합에서의 모습이라는 걸 아주 잘 알기에 거기에 따른 불안감이 어쩔 수 없이 뒤따르는 듯 하다. 아름다운 패자보다 승자로 남고 싶다고 이전부터 말하여 왔으며, 자신의 최근 경기력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또다시 지고 상대의 손을 들어주는' 선수로 기억되기는 상상하기도 싫어 아시안 게임에서 지지 않으려 노력하였다고 한다. 3연패의 기쁨 보다는 승리의 기쁨이 더 컸고 사실 3연패가 엄청 기쁘기 보다는 한시름 놓았다 정도라고 한다. 국제적으로 중계되는 큰 경기에서의 모습들로, 이대훈을 패자 혹은 약한 선수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어왔는데, 이 같은 시선이 선수 개인에게 얼마나 부담이 되어 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