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요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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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現 프로 포커 플레이어 및 T1 소속 방송인.
2. 상세
''''스타크래프트는 몰라도 임요환은 안다.''''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10] 2000년대 e스포츠를 상징하던 선수. 테란이 약소 종족이었던 시절 특유의 바이오닉 컨트롤과 참신한 전략으로 '테란의 황제'라는 칭호를 얻으며 온게임넷 스타리그 2연속 우승 및 양대리그 3회 우승, 최고령 개인리그 결승 진출 등 화려한 기록을 세웠다.
게이머 생활 도중 각종 지상파 프로그램에 출연, e스포츠를 널리 알리는 홍보 대사 역할도 했다. 2003년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 게임 중독자로 오인을 받은 에피소드도 있지만 2006년 파워 인터뷰에 나서면서 업그레이드된 e스포츠의 이미지를 세상에 알렸다. 이 밖에도 출발 드림팀, 브레인 서바이버 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섰고 영화 '도둑맞곤 못살아', KBS 드라마 '사랑은 이런거야' 등에 출연하면서 e스포츠를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또한 팀 단위 대회에서도 임요환의 SKT T1, 이에 대립하던 당시 KTF 매직엔스는 反 임요환의 상징 인물인 박정석, 홍진호, 강민을 영입함으로서 팬덤 간 경쟁 구도를 심화하며 프로리그 홍보 효과로 이득을 얻었다.
전성기 시절에는 팬 클럽 회원이 '''60만'''을 기록했었고, 이후 팬 클럽 회원 수가 40만 명까지 줄어든 모습을 보면서 계속해서 자신을 쇄신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하기도 했으며 실제로 보여주었다. 다만 20만 명에 달하는 회원들이 "임요환이 싫어서 나가겠다" 하고 나간 건 아니고, 다음 측에서 휴면 아이디, 중복 아이디 등을 대거 정리한 등의 이유가 컸다. 물론 이 경우 또한 '팬'으로 의미를 크게 둘 순 없으므로 마음가짐을 새로 할 동기는 될 수 있다. 스타판에서 은퇴하기 직전 팬 클럽의 회원 수는 약 45만 명.
김가연과 혼인 신고를 2011년 2월에 이미 마쳤고, 2016년 5월 8일 결혼식을 치렀다.
올드 게이머들에게는 부득이하게 벌어지는 현상인 '정리되지 않는 과거 전적'과 더불어 본인의 30대 게이머를 향한 의지로 '''떨어지는 승률'''과 '''손상되는 개인 기록''' 등의 현상을 모두 겪었는데, 요환 단물을 빨고 싶었던 양대 개인 리그 주최 측은 '''골든 마우스''' 제작이나 '''32강''' 체제, '''KPGA의 MSL 편입''' 등 자신들의 전당에 임요환의 이름을 올려 경력을 유지하기 위해 갖은 선전을 한 바 있다.
예를 들어 골든 마우스는 임요환의 후에 그의 마지막 결승 진출이 될, So1 스타리그 2005 결승 진출로 다시금 우승을 노릴 수 있게 되자 '''급히''' 만들어졌고, 신한은행배에서 임요환이 차기 리그 진출권을 확보하지 못하고 듀얼로 떨어지자, '''이번 리그부터 24강으로 확대'''라며 '''노골적인 임요환 특별법'''을 만든 바 있다.[11] MBC GAME 역시 2007년 임요환에게 MSL 우승자 배지를 전달하며 그를 MSL 우승자 전당에 올린다. 이러한 노력에도 2006 이후 임요환의 성적 하락은 두드러져, 특례로 얻은 전적은 개인 실력 하락으로 없다시피 하다.
2001년, 2002년, 2004년, 2005년 4년간 결승에 진출하였고, 2005년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에 다시 한 번 진출하였다. 한동욱은 2006년 우승 이후 2007년에 마지막으로 개인 리그에 진출한 이후로 본선에 올라간 적이 없다. 모 승부조작범도 2007년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2008년 이후 스타리그 36강 진출조차 없었다. 실제로 올드 게이머들 중에 연단위까지 시간 차이를 내면서 결승에 진출한 선수는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의 이윤열, 2004년, 2005년, 2008년의 박성준 정도밖에 없다.
콩라인 개념이 생겨나고 준우승을 반복하는 선수들이 생겨나자 준우승을 깔보는 경향이 강해졌으나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준우승자는 16명 중 2위이고 임요환 시대의 (KPGA) MSL에서도 16명 중 2위이다. 결승 진출이라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려운 것으로, 진출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임요환보다 케스파 양대 개인 리그 결승 진출을 더 많이 해 본 선수는 이윤열, 이제동, 이영호뿐이다.'''[12] MSL에서는 얼굴도 못 비췄다는 평판이 있으나 임요환의 최전성기인 2001년엔 '''MSL이 없었다.''' KPGA Tour 1차부터 MSL의 전신으로 보아 MSL에 편입시키는데, KPGA Tour 1차 리그도 2002년 2월에 시작. 그리고 2002년부터 열린 MSL의 전신인 KPGA Tour에서부터도 임요환은 우승 1회, 4강 1회로 온게임넷 스타리그에 비해 적다는 것뿐이지 MSL에서도 톡톡히 활약[13] 하고 있던 셈. 결코 전적이 적은 선수가 아니다. 거기에다가 2002년 경부터 집중해 열린 각종 이벤트전이나 iTV 랭킹전,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결승에 진출한 경험이 있다. 특히 프리미어 리그는 일반 이벤트 대회와 달리 지명도와 실력에서 상위권 선수들만을 모아 진행한 리그이며 상금 규모, 팬들의 주목 또한 남달랐던 대회이기 때문에 이 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했다는 점은 특히 고무적이다.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연속 출전은 9회이다. 최고 기록은 송병구, 타이 기록은 박성준, 그리고 dlqudals & 김택용, 이영호.
2006년 1월 온게임넷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16강에서 온게임넷 개인 리그 본선 사상 최초로 100승을 달성.# 상대가 바로 송병구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송병구는 토스로서 유일하게 브루드 워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100승을 달성했다.
현재 e스포츠계의 정확한 출발점을 잡을 수는 없으나, 방송 리그가 시작된 것부터가 1999년부터인 데다가, 스타크래프트가 1998년 나왔다는 점, 임요환이 1.5세대 프로게이머로 분류되는 점을 생각하면 1999년경이 활동의 시작이었다고 봐도 무리는 없다. 무엇보다 본인이 말했던 대로 2009년 당시 기준으로 30대 프로게이머가 되었다. 사실 공식 나이에는 언제나 만 나이를 써야 하므로 실제로 30대 프로게이머가 된 것은 2010년이긴 하다. 나머지 한 명은 임재덕. 임재덕 선수는 브루드 워, 스타2 통합으로 봤을 때 30대 프로게이머 최초의 메이저 대회 우승자다.
2012년 10월부터는 슬레이어스의 해체로 '선수'로 활동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후로는 아예 종목을 전환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면서 의미를 되새겼다.
시청률에서는 역대 온게임넷 스타리그, MSL, 프로리그를 통틀어 1, 2위를 마크했는데, So1 스타리그 결승전과 4강전이 그것. 최고 시청률인 So1 스타리그 4강전의 기록은 1.73%이다.
브루드 워 개인 리그 10-10 클럽 달성 기록을 가지고 있다(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14회 진출, MSL 본선 10회 진출).
3. 주요 경력
'''브루드 워 오프라인 개인 리그 우승, 준우승 상금 총합''': '''6,100만 원 + $ 40,000'''
3.1.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3.1.1. 주요 우승, 준우승, 4강 경력
3.1.2. 개인 리그 기록
- 1999년 제1회 SBS 멀티 게임 챔피언쉽 우승(VS 김일재 2:1)
- 2000년 M.police배 게임 대회 우승
- 2000년 제1회 Game-Q 스타리그 준우승(VS 임성춘 1:3)
- 2000년 제2회 크레지오 대회-서바이벌 프로 대전 우승
- 2000년 제1회 Korea.Cnet 게임 대회 우승
- 2000년 삼성 디지탈배 KIGL 추계 리그 프로게이머 랭킹 우승
- 2000년 삼성 디지탈배 2000 KIGL 왕중왕전 우승
- 2000년 CCGF 2000 16강
- 2001년 2001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VS 장진남 3:0)( 우승 상금: 1,000만 원 )
- 2001년 제3차 Game Q 스타리그 우승(VS 최인규 3:0)
- 2001년 온게임넷 라이벌전(VS 김정민 0:2)
- 2001년 온게임넷 Last 1.07 우승(VS 기욤 패트리 3:0)
- 2001년 iTV 제2차 랭킹전 3위
- 2001년 온게임넷 라이벌전(VS 최인규 1:3)
- 2001년 200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VS 홍진호 3:2)( 우승 상금: 1,000만 원 )
- 2001년 천안 사이버 게임 체전 4강(VS 강도경 1:2)
- 2001년 WCG 2001 3차 예선 우승(VS 조정현 2:0)
- 2001년 WCG 2001 브루드 워 부문 우승( VS 베르트랑 3:0)[14] ( 우승 상금: $ 20,000 )
- 2001년 iTV 아듀! 2001 최고수전(VS 주진철 3:2)
- 2001년 2001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준우승(VS 김동수 2:3)( 준우승 상금: 500만 원 )
- 2002년 2002 KT배 온게임넷 왕중왕전
- 2002년 iTV 3차 랭킹전 준우승(VS 이윤열 1:3)
- 2002년 KPGA 투어 1차 리그 우승(VS 홍진호 3:1)( 우승 상금: 600만 원 )
- 2002년 2002 NAT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16강
- 2002년 KPGA 투어 2차 리그 8강(VS 홍진호 0:2)
- 2002년 무한 종족 최강전(VS 강도경 3:1)
- 2002년 무한 종족 최강전(VS 임성춘 0:3)
- 2002년 KPGA 투어 3차 리그 3위(VS 최인규 3:2)[15]
- 2002년 2002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준우승(VS 박정석 1:3)(준우승 상금: 1,000만 원)
- 2002년 '도둑맞고 못살아' 이벤트(VS 박성훈 2:1)
- 2002년 WCG 2002 브루드 워 부문 우승( VS 홍진호 2:0)(우승 상금: $ 20,000)
- 2002년 겜TV 고수 초청전(VS 홍진호 0:2)
- 2002년 KPGA 투어 4차 리그 Mega Match 준PO(VS 조용호 1:3)
- 2002년 2002 Panasonic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
- 2003년 KTF Bigi배 4대 천왕전 우승( VS 이윤열 2:1 )
- 2003년 KTEC KPGA Winners 준우승( VS 홍진호 1:3)[16]
- 2003년 핫 브레이크배 마스터즈 4위(VS 변길섭 1:3)[17]
- 2003년 KBC 파워 게임 쇼 Ting배 준우승(VS 변길섭 1:2)
- 2003년 Stout MSL 패자 4강 4차(VS 이윤열 1:2)
- 2003년 2003 Olympus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3위(VS 박경락 3:1)[18]
- 2003년 Toona배 Big4 Special 우승(VS 박정석 2:0)
- 2003년 2003 Mycub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
- 2003년 2003 KBK 제주 페스티벌 3위(VS 윤종민 2:1)
- 2004년 KT Megapass 프리미어 리그 2003 챔피언( VS 변길섭 2:0)
- 2004년 KT-KTF 프리미어 리그 2003 통합 2위( VS 이윤열 1:3)
- 2004년 NHN 한게임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03~04 16강
- 2004년 WCG 2004 1차 예선 최종전(VS 이병민 0:2)
- 2004년 EVER 스타리그 2004 준우승(VS 최연성 2:3)(준우승 상금: 1,000만 원)
- 2004년 IOPS 스타리그 04~05 16강
- 2005년 스니커즈 올스타리그 1라운드 8강(VS 박성준 0:2)
- 2005년 우주닷컴 MSL 패자조 2R(VS 이재훈 0:2)
- 2005년 스니커즈 올스타리그 2라운드 3위(VS 박성준 2:1)[19]
- 2005년 CKCG 2005 8강(VS 이윤열 0:2)
- 2005년 WCG 2005 2차 예선( VS 안기효 1:2)
- 2005년 So1 스타리그 2005 준우승(VS 오영종 2:3)(준우승 상금: 1,000만 원)
- 2005년 CYON MSL 패자 8강 2차전(VS 박정석 0:2)
- 2005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8강(VS 최연성 1:2)
-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 16강(VS 죄가람 1:2)
- 2006년 프링글스 MSL 시즌1 8강 최종 진출전(VS 박용욱 1:2)[20]
- 2006년 WCG 2006 한국 예선 H조 4강(VS 김준영 0:2)
- 2006년 프링글스 MSL 시즌2 8강[21]
- 2006년 제1회 CJ 슈퍼파이트( VS 홍진호 3:2, VS 0:3.)[22]
- 2007년 제4회 CJ 슈퍼 파이트[23]
- 2007년 도너스 캠프 드림 매치(VS 0:2)
- 2007년 곰TV MSL 시즌2 32강
- 2007년 서울 국제 e스포츠 페스티벌 256강(VS 박재영 1:2)
- 2008년 곰TV 스타 인비테이셔널 16강
- 2008년 곰TV클래식 시즌 2 64강(VS 조일장 0:2)
- 2009년 e스타즈 헤리티지 2009 4강(VS 이윤열 1:2)
- 2009년 IeSF 스타 인비테이셔널 클래식 4강(VS 홍진호 0:2)
3.1.3. 팀 단위 리그
- 2003년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우승
- 2003년 LG IBM MBC GAME 팀리그 우승
- 2004년 SKY 프로리그 2004 1라운드 준우승
- 2004년 Tucson MBC GAME 팀리그 우승
- 2005년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우승
- 2006년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우승
- 2006년 SKY 프로리그 2005 그랜드파이널 우승
- 2006년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우승
- 2009년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8-09 4위
- 2009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우승
- 2010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준우승
3.1.4. 브루드 워 케스파 비 공식전 포함 총 전적
3.1.5. 브루드 워 양대 개인리그 총 전적
3.2. 스타크래프트 2
- 2010년 소니 에릭슨 스타크래프트 II OPEN Season 2 4강
- 2010년 G-Star 2010 스타크래프트 II 올스타전 8강
- 2010년 소니 에릭슨 스타크래프트 II OPEN Season 3 32강
- 2011년 소니 에릭슨 글로벌 스타크래프트 II 리그 시즌 Jan. - Code S 16강
- 2011년 인텔 글로벌 스타크래프트 II 리그 시즌 Mar. - Code S 32강(코드 A로 강등)
- 2011년 LG 시네마 3D 글로벌 스타크래프트 II 리그 시즌 May. - Code A 16강
- 2011년 펩시 글로벌 스타크래프트 II 리그 시즌 July. - Code A 32강(코드 B로 강등)
- 2011년 소니 에릭슨 글로벌 스타크래프트 II 리그 시즌 Nov. - Code A 24강(코드 S로 승격)
- 2011년 MLG Anaheim 3위
- 2012 핫식스 2012 글로벌 스타크래프트 II 리그 시즌 1 Code S 32강
- 2012 핫식스 2012 글로벌 스타크래프트 II 리그 시즌 2 Code A 48강
4. 주요 활동
4.1.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4.1.1. 데뷔와 전성기(1999~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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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아이디는 SLayerS_'BoxeR'인데 길드를 만들려다가 무산되어서 길드원 같은 아이디가 되었다고 한다. 유난히 사칭 아이디가 많이 돌았던 프로게이머이기도 하다.
그가 데뷔할 때 테란은 하수와 고수의 격차가 극명한 시절이었다. 리플레이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테란은 암울하다는 이야기가 일반 유저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히 떠돌았고, 실제 배틀넷 종족 비율에서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다. 특히 브루드 워 1.07 패치 초중반까지는 테란이 완전 죽을 쑤던 시기였는데, 저그에게는 9드론 6저글링 이후 패스트 러커를 못 막아서 GG, 프로토스에게는 패스트 다크템플러를 못 막아서 GG 치던 동네북 신세였다. 이때 임요환은 프로토스 유저였으며, 셔틀, '''리버 아케이드'''가 리버가 셔틀에서 내린 후 바로 스캐럽을 발사하던 것이 딜레이 후 발사되는 너프를 받고 테란이 대상향을 받자 테란으로 종족을 갈아타고 SLayerS_'BoxeR'라는 아이디로 프로 데뷔하게 된다.
임요환의 전성기는 게임큐 스타리그 우승(2001),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200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2001), 2001 WCG 우승, KPGA 투어 1차리그 우승(2002) 시절이라고 볼 수 있다. 저테전에 있어서 임요환은 김정민류의 '한방 병력 괴멸 → 순회공연' 방식 대신 드랍십을 이용한 자원줄 타격과 빠른 압박으로 경이로운 저그 학살자로 등극했으며, 테테전에서는 골리앗과 드랍십을 주력으로 동시대 테란 게이머들에게 우위를 점했다. 코카콜라 스타리그 당시에 그 유명한 스타크래프트/1.08 패치가 이루어졌는데 드랍십 이동 속도가 상향되었다. 즉 '호랑이에게 날개를 단 격'이 되어버렸다. 테프전에서 그가 약점을 보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전성기의 그는 프로토스전에서 대단히 강력했다. 김대건의 메카닉, 임요환의 바이오닉 같은 이야기가 팬들 사이에서 떠돌아서 그렇지 임요환은 메카닉도 강했는데 이는 원팩 더블커맨드 빌드에 기인한 것이었다. 앞마당 확장으로 패러다임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제시된 원팩 더블을 임요환은 기가 막히게 활용했고, 한때 프로토스전에서도 강력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직후 임요환은 각종 행사에 참석했다. 이 시절의 팀은 단순히 '연습 상대 구하기 쉬우라고 만든 클랜' 정도의 개념이었으며, 감독은 매니저 정도의 개념이었다. 임요환은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이전에도 게임계에서 어느 정도 유명 인사였지만, 대중들에게 본격으로 알려진 것은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이후다. 인지도가 급격히 오른 임요환은 PC방 행사를 포함해 여러 행사를 돌았다.
이후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홍진호를 3:2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코카콜라배와 같은 시기 진행된 WCG 스타크래프트 국가대표 선발전을 10승 무패로 통과하여 2001 WCG를 10승 무패로 전승 우승하게 된다. 그후 2002 KPGA 투어 1차리그 우승을 달성하면서 최초의 양대 리그 우승자 기록을 세우고 이후 2002 WCG도 우승하며 WCG 스타크래프트 부문 유일한 2연속 우승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다.
2001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온게임넷 스타리그 3연속 결승 진출에 성공하지만 김동수에게 2:3으로 분패하고, 준우승을 기록한다.
최강의 자리는 이윤열에게 물려주며 내려온다. 이 시점에서 임요환은 이미 올드, 좋게 봐줘도 중견급 게이머였다. 라이벌이 홍진호라는 것 때문에 다들 잊고 있는 사실이지만, 임요환은 홍진호, 이윤열보다 한 세대에서 반 세대 선배급으로, 오히려 강도경, 김동수와 더 가까운 세대이다. 하지만 임요환은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니었으며, 어느 정도 기량을 회복한 임요환은 적어도 2003년까지는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상위권 테란으로 군림했었다. 저그전, 테란전은 여전히 극강이어서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이윤열을 KTEC KPGA 위너스 챔피언십 4강에서 3:1로 꺾은 적도 있다. 하지만 토스전에서 약점을 보였는데, 이는 임요환의 토스전 전술적 능력이 시대에 점점 뒤쳐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기 자주 양대리그에서 만났던 강민은 거의 천적 수준으로 중요한 고비마다 임요환을 이겨서 임요환에게는 거의 저승 사자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결국 시간이 흐르며 올림푸스 스타리그 4강 테테전에서 서지훈에게 0:3으로 패하고 스타우트 MSL 패자 4강 2차 테테전에서 이윤열에게 1:2로 패하며 빠른 APM을 앞세운 신세대 테란들에게 한 수 아래로 뒤쳐지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한빛소프트배 스타리그부터 마이큐브 스타리그가 시작되기 전까지 약 2년 8개월 동안 저그전 '''34승 9패''', 승률 '''79.1%'''라는 독보적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최종 온게임넷 저그전 성적이 '''55승 21패(승률 72.4%)'''였다. 온게임넷 108승 중 절반에 가까운 55승 가량을 저그전으로 쌓은 것. 전성기 시절만 해도 박성준과 마재윤 이전까지는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저그 플레이어는 홍진호뿐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그를 학살하고 다녔었다.
4.1.2. 하락세와 재기(2004~2006)
2003년 말~2004년 여름 사이 본인의 성적이 정체기에 들어섰다. 이 무렵 듀얼 토너먼트에서 박성준에게 패해 Gillette 스타리그 2004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그의 온게임넷 스타리그 연속 진출 기록은 9연속 진출로 종료되었다. 또한 그전 해에는 심소명에게 TG삼보 MSL 예선에서 패하면서 2001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진출을 기점으로 최초로 메이저 대회 본선 무대 진출에 실패하고 이후 MSL에서는 당신은 골프왕 MSL까지 총 4시즌 연속 본선 무대에 진출하지 못했다. 게다가 Gillette 스타리그 2004-Spris MSL 시기는 양대리그 모두 본선 무대에 진출하지 못한 시기여서 임요환의 '''양대백수''' 시절이었다. 본격 시작된 프로리그 및 팀리그에서는 에버배 프로리그와 투싼배 팀리그에서는 우승을 이끌고 스카이 프로리그 2004 1라운드에서 연승을 달리면서 준우승을 이끄는 등 활약도 많았으나, 네오위즈 피망배 프로리그와 스카이 프로리그 2004 2라운드에서 전패를 기록, 스카이 프로리그 2004 3라운드와 MBC무비스배 팀리그에서도 부진한 성적을 내는 등 리그에 따른 기복이 심했다. 그래도 제1차 KT-KTF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통합 준우승을 달성한다. 2003년 말 후원사였던 오리온이 후원을 포기하면서 은퇴설이 돌았지만, 정작 본인은 오히려 본인보다 팀을 살려내기 위해 가장 힘 쓰던 시기였다. 오리온이 개인 스폰 연장을 제의했으나 팀 전체를 스폰해줄 것을 원한 임요환이 거절한 것. 한동안 4U라는 스폰서 없는 팀을 본인의 상금으로 운영하며 활동하던 임요환은 마침내 SK 텔레콤이라는 스폰서를 잡아냈다. 이 시기까지는 이전의 인기와 팀을 이끈 리더십이 인정받으면서 호감형 게이머로 자리잡고 있었다. 단, 이전의 얼라이마인 사건 등으로 안티도 있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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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EVER 스타리그 결승전.
그러던 중 챌린지 리그 우승을 해 시드를 따내 진출한 EVER 스타리그 2004에서 화려하게 부활해 4강까지 진출 임진록에 임했고, 팬들은 기대를 만발했으나 보여준 것은 '''삼연벙'''. 때문에 양 선수 모두 여론상으로 큰 타격을 받았고, 4강에서 홍진호를 3연속 초반 벙러 러시로 이기고 올라간 결승에서 최연성에게 패한 뒤, 임요환이 우는 모습을 보이자 정작 명경기를 치렀음에도 임까들의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 결승전은 2004년 센게임 MSL의 머머전과 같이 '사제 대결'이라 하여 테테전 명승부로 회자되고 있으며 특히 결승 4경기는 역대 테테전 명경기 중 하나이다.
"별로.. 별로 안좋아요"라는 명언을 남긴 최연성은 '요환이 형이 울었던 모습은 처음 봤다'며 자기는 '그 눈물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며 임빠다운 모습을 보였다. 이후 최연성의 설명에 따르면 5세트에서 임요환이 진 이유는 실수로 탱크 하나를 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은 실수 때문에 우승을 놓쳤다는 사실이 얼마나 뼈아프게 다가올지 프로인 최연성도 직감했던 것이다. 또한 최연성은 '내 우승을 축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마지막 결승전일지도 모르는 경기에서 모든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부분이 아쉬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유종의 미를 제대로 거두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이렇게 2004년에도 온게임넷에서는 결승까지 진출하는 등 건재함을 과시한 임요환이었으나 반대쪽 리그였던 MSL에서는 한동안 본선은 커녕 마이너리그(前 서바이버리그)에만 머물렀는데 그 과정이 참 눈물겹다. 1차 마이너리그는 심소명에게 0:2로 탈락하며 예선행, 2차 마이너리그는 예선을 뚫지도 못했으며 3차 마이너리그는 본선에 진출해서 조별 리그에서는 재경기 끝에 한동욱과 안석열을 꺾고 조 1위를 차지했지만 토너먼트에서 전태규에게 0:2로 패배해서 또 예선으로 강등되었다. 4차 마이너리그는 예선 결승전인 마이너 결정전에서 정영주에게 0:2로 패배, 또 예선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5차 마이너리그에서 마재윤에게 패배했지만 장진수를 상대로 승리하면서 조 2위로 진출했고 토너먼트에서 박경수를 2:1로 이기고 상위 라운드 진출, 거기서 안기효를 2:1로 이기고 또 상위 라운드 진출, 그리고 마지막 최종 라운드 상대인 전상욱을 2:1로 이기고 스타우트 MSL 이후 5시즌만에 MSL 복귀에 성공했다.
유난히 역전 승이 많았다. 815 패러독스 대첩이나, 2002년 WCG, 2005년 So1 4강전 등. 이는 임요환의 집요한 승부욕과도 관련이 있다. 본인이 회고하길 딱 스타리그 3회 우승만 달성하고 은퇴하려 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3번째 시도가 계속 막힌 게 이스포츠 흥행에 크게 기여했다. 이 때문에 명경기도 많이 낳았지만 그의 GG 타이밍이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라는 이름으로 승부에 세계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은 절대로 놀림받을 일이 아니다!''' 그가 만든 명경기 중에는 이러한 승부욕으로 역전에 성공한 경우가 많다. 도진광의 프로토스를 상대로 기적과 같은 역전승을 거둬 지금도 회자되는 명경기를 만들기도 했다. 이후에 다시 성적이 떨어지면서 빠와 까 개념이 옅어지고 '올드 게이머'로만 기억되었으나 So1 스타리그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특히 4강전 임요환 vs 박지호 전은 지금까지 회자되는 E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역전승 중 하나다. 2006년 제1회 대한민국 e스포츠대상 최고 역전승 수상.리마스터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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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1 스타리그 2005 4강(임요환 vs 박지호)
허나 오영종에게 2:3으로 아쉽게 패배하여 준우승한다. 그렇게 그의 인기 요소 중 하나였던 '끊임없는 부활'은 여기서 마무리된다. 이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에선 8강에서 최연성에게 1:2로 패해 탈락, 24강으로 확대된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에선 16강에서 에게 1:2로 패해 탈락했으며 공군 에이스 입대 직전인 프링글스 MSL 시즌 2에서는 8강까지 갔지만 공군 에이스 입대로 하차했다.당시 주요 4대 스타크래프트 포털(파이터포럼, 우주, 스갤, PGR)이 과다한 접속량으로 동시 마비되어, 길게는 몇 시간에 걸쳐 이어졌으며 네이버 검색 순위에는 10위권 내에 임요환, 온게임넷, 박지호, So1, 파이터포럼 등이 동시에 이름을 올렸다.
임요환의 팬 카페에는 3000여 개의 글이 새로 올라왔으며 360여 명의 신규 가입자, 그리고 3만 이상의 회원이 방문하여 왕의 귀환을 축하했다.
2003 MYCUBE 스타리그 16강(임요환 vs 도진광) 하이라이트.
'''모든 스포츠가 다 그렇습니다. 포기하면 거기서 끝이고...'''
'''뭔가, 감동의 도가니탕을 만들려면 그 백 번 중에 한 번이 나올 때가 그때인 거니까'''
한편 성적이 떨어진 이후에도 임요환은 팀에서 중요한 무게 추 역할을 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가 입대한 이후 오버 트리플 크라운을 찍고 있던 팀이 순식간에 몰락해버린 것은 임요환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제대 이후 팀의 부활에도 임요환의 역할의 이야기는 꾸준히 나왔다.해서, 그 진광이랑 경기했을 때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거의, 저도 연습 때, 아비터를 써준 사람이 한 명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다 캐리어전만 연습하고 아니면 셔틀 뭉탱이로 가서 막 드랍해가지구 골리앗... 드랍십하고 이제 막 대등하게(비등하게?) 싸우거나 막 그래서 했던 건데, 아비터는 처음 당해봤어요. 그래서 아주 안 좋은 상황까지 갔었는데 그것도 끝까지 이 악물고 포기 안 하고 하다 보니까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된 거거든요. 그런 게 있어요. 저도 약간...상대가 엄청 강할 때, 아 이만 하면 내가 이겨야 되는데, 아 이 정도면 얘가 포기할 만한데, 포기를 이상하게 안 해. 잘하는 애가. 그러면은 되게 질려요. 막 질려가지고 내가 해야 할 플레이도 잘 못하게 되고.
아마 도진광이나 지호도 아마 그랬을 거예요.
아, 이 정도 했으면 당연히 이 정도 포기해야 하는데, 의외로 막... 더 이를 악물고 댐비는 거지.
그러면 자기가 하는 플레이가 주눅들어서 못해요. 그럴 때가 있어요. 그런 데서 역전이 천천히 나오는 건데…
임요환, 아프리카 방송 중
'프로게이머는 몰라도 임요환은 안다'라는 말처럼 이 시기는 파워 인터뷰, 공군 사관 학교 강연 등 게임 외 방송 활동이 활발했던 때였으며, '팬 클럽 60만 기록' 등의 언급과 함께 한때 수많은 프로게이머를 대체하는 대명사로도 자주 쓰였었다.
4.1.3. 전성기 시절의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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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한 경기[25]
에만 써먹고 그 이상은 절대 쓸 수 없는 빌드, 임요환 선수는 굉장히 중요한 경기에서도 과감하게 쓰죠!'''- 엄재경 해설(2005 신한은행 스타리그 16강 박성준과의 신 815 경기 中)
방송에서 많은 전략을 선보였고, 스타크래프트 2로 전환할 당시까지도 허를 찌르는 전략을 주력으로 많이 들고 나왔다. 아래에도 후술되어 있지만, 200이 꽉 찬 상태에서 건설 로봇을 버리고 지게 로봇으로 땜빵하는 전술과 바이킹 뭉치기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바이킹 뭉치기는 블리자드의 빠른 패치(...)로 없어졌지만 지게 로봇은 그 이후 테란들의 장기전 기본 스킬이 된 정도로 영향을 끼쳤다. 그야말로 날빌의 선구자. 다만 임요환의 빌드는 이후 '날림 빌드'을 넘어서 '정석 초반 러시'로 편입되는 경우나, 기존에 버림받던 유닛들이 테란의 빛으로 대두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이러한 예로는 그의 마이크로 컨트롤을 통한 견제에 활용되었던 벌처(이건 임요환만의 공은 아니지만), 드랍십 등이 잘 알려져 있지만, 골리앗 등의 유닛도 그의 공을 입었다. 임요환이 골리앗을 활용하기 전까지 골리앗은 그저 걸어다니는 터렛이었다. 임요환이 골리앗을 사용한 후에 바로 패치된 탓도 있긴 하지만, 그는 골리앗의 아버지라 불릴 만한 존재이다.- The Pimpest Plays(Gamers Extreme and SCLegacy.com(2002~2007)) 링크
또 빌드나 가격, 제대로 활약할 수 있는 타이밍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유닛이나 유닛 스펠도 고집스럽게 사용하여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도 했다. 가장 대표되는 것이 고스트의 락다운과 사이언스 베슬의 디펜시브 매트릭스. 고스트는 생산 조건이 몹시 까다롭고, 그런 까다로움을 감수하고 생산을 하더라도 크게 위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유닛이다. 그러나 이를 고집스럽게 뽑아 락다운의 긴 사거리를 이용해 적의 시즈 탱크를 무력화하거나, 리콜하러 오는 아비터에 대한 방어, 캐리어나 리버 등의 고급 기계 유닛을 묶어놓는 등. 스스로 고집스럽게 고스트를 잘 써먹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핵을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사이언스 베슬의 EMP의 지원을 받고 넥서스를 한방에 깨버리는 임요환의 플레이는 단연 인상적 장면 중 하나였다.
베슬의 디펜시브 매트릭스는 대 프로토스 전에서는 EMP의 중요성, 대 저그전에서는 이레디에잇이 가지는 저그 고급 유닛의 저격의 위상으로 인해 그렇게까지 선호되는 유닛 스펠은 아니었으나 임요환은 이것도 꽤 유용하게 써먹었다. 디펜시브 매트릭스를 사용한 마린 한 마리가 러커들의 어그로를 끄는 사이 다른 마린들이 러커를 처리한다든가, 드랍가는 드랍십에 따라붙어 적진에 상륙한 병력에 디펜시브를 걸어 오랫동안 귀찮게 한다든지. 이레디에잇을 안 쓴 것도 아니었고 본인 역시 성동격서 식으로 베슬의 지우개를 밀어넣는 전략도 선호했으나, 디펜시브 매트릭스는 그의 미세한 단일 유닛 컨트롤과 맞물려 다른 프로게이머들보다 화려하게 사용되었다. 이는 이후 후대 게이머들이 한방 전투에서 집중 공격을 받는 탱크에 디펜시브를 걸어 화력 지원을 해주는 식으로 응용해서 제법 유용하게 써먹는 계기가 됐다.
또한 소수 유닛에 대한 마이크로 컨트롤이 2006년 이후의 택뱅리쌍 시대 이전까지 스타크래프트 역사상 최고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매우 뛰어났었다. 드랍십 컨트롤은 '''임요환의 드랍십'''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심지어 팬 카페의 이름도 '임요환님의 드랍십이닷-_-'이며 임요환이 운영하는 PC방 이름 역시 '임요환의 드랍십'이다. 이른바 '드랍동', 초기 게이머들의 팬 카페를 ~동으로 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진호동', '정석동' 같이 이름이 아닌 별명으로 불린 팬 카페는 그의 것이 유일하다. 다만 이 컨트롤 조차도 독보적보다는 창의적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린다고 볼 수 있는데, 컨트롤 자체가 타인은 노력해도 흉내조차 못 낼 수준이었다기보단, 당대 관점에서 상상도 하지 못할 컨트롤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임요환식 컨트롤을 한번 보여주면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않아 임요환만큼, 오히려 임요환 이상으로 다듬어진 컨트롤 실력을 지닌 게이머가 나오곤했지만 '그런 컨트롤이 가능하다'라는 점을 가장 먼저 알아냈다는 점이 임요환만이 가지고 있는 의의라 볼 수 있겠다.
한때 배틀넷에는 '임요환 마린 컨트롤'이라는 유즈맵도 많이 돌았다. 물량보다 컨트롤 승부로 대표되는 게이머. 대신 '임즈모드'로 불리는 시즈탱크 컨트롤은 그의 토막 성향을 대변하는 유력한 근거다.
그의 또다른 무기로는 타이밍 러시가 있었다. 과거 임요환이 테란의 신성으로 발돋움하던 시절, 수비 위주로 휘둘리던 다른 테란과는 다르게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병력으로 적의 약점을 기막힌 타이밍에 찔러 승리하는 경기가 많았다. 주훈과 초시계를 들고 연습했다고 하며 2마린 1메딕 1파이어벳 타이밍에 뛰쳐나간 바이오닉 병력이 성큰이 채 지어지지 않은 저그를 우주로 보내는 경기가 자주 나왔다. 그가 그 나이에도 5할 승률을 유지하는 것은 전략과 이 기막힌 타이밍 감각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단, 정전 배럭이라 불릴 정도로 후반 운영이나 생산 능력이 불안하다는 약점이 있다. 컨트롤을 얻는 대신 물량을 포기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실 임요환의 전성기로 평가받는 2001년까지는 물량에 대한 개념이 크게 없던 시기였기 때문에 전성기 당시에는 물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별로 받지 않았다. 정확히는 물량의 폭발이라는 개념이 종족을 불문하고 도입된 시기는 임요환의 뒷세대라고 볼 수 있는 박정석, 이윤열 등의 전성기 이후 이들의 플레이가 보급화 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 전까지 물량은 오직 저그의 것이었으며, 테란은 수비와 병력의 조합의 김정민식 플레이나 컨트롤 위주의 임요환 플레이가, 프로토스는 소수 정예의 하드코어식 러시 아니면 병력의 비율을 맞춘 뒤 스톰을 가미한 올-인 한타식 임성춘의 플레이가 근원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박정석의 데뷔 리그인 코카콜라배에서 사람들이 본 시선[26] 이나 이윤열의 등장에 대한 시선[27] 을 보면 그 당시 테란이 물량이 달린다는 소리는 황당한 말에 가까웠다. 되려 그것을 두고 제2의 타이밍 ━컨트롤에 집중하느라 쌓인 자원으로 한타가 벌어진 이후 생각보다 빨리 병력이 다시 공격을 온다거나 자원줄이 거의 끊긴 상황에도 어느 정도 병력이 꾸역꾸역 나오는 것 등━ 이 존재한다는 말까지 듣기도 했다. 이는 그의 집요한 승부욕과 연관되어 기이한 역전승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임요환의 물량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게 되는 것은 임요환이 압박과 타이밍을 지향하는 게이머이기 때문이다. 이 압박이 잘 먹혀들면 경기가 수월하게 풀리지만, 실패하면 기회 비용 면에서 커다란 손해를 보게 된다. 임요환은 초반 압박의 대가로 SCV 생산을 지불했고, 이것이 중후반 물량에서 약점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임요환도 잘 째고, 별다른 난전 유도 없이 멀티태스킹이 없이 진행하는 상황에서는 200 빠르게 채우고 진출한다. 사실 밥만 먹고 게임만 하는 프로게이머가 물량을 정말 그렇게 못 뽑아내겠는가? 토스전 약점으로 물량이 거론되는 경우가 많은데, 스1에서 임요환의 토스전의 문제는 일제시즈로 대표되는 전술 문제가 크다. 토스전은 저그전과는 달리 하나하나의 유닛의 체력이 아주 높기 때문에[28] 손 빠르기나 컨트롤보다도 자리 잡기가 훨씬 중요하다. 이영호나 최연성이 토스전에서 강력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
임요환의 멀티 태스킹 부족으로 생산력의 약점을 드러내는 별명으로 '저축 테란'이 있다. 임요환의 전술적 우선 순위가 자원배분 및 생산의 매크로 컨트롤보다 교전시 병력 관리 등의 마이크로 컨트롤에 맞춰져 있기에, 중후반 난전 상황에서 정교한 컨트롤과 창의적 공격으로 승점을 따는 데에는 능하지만 반대 급부로 공방에 치중하는 순간 물량 확보에 약점을 보이는 특성을 지니며, 중후반 자원 관리가 되지 않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임과 콩을 모두 까며 진행했던 tving 스타리그 2012 마지막 이벤트전 임진록 당시에도 불리한 전황 가운데 자원이 쌓이는 임요환을 두고 전용준 캐스터가 "임요환의 장점은 저축이에요! 항상 잔고가 빵빵해요 임요환은요!"라 외치며 스덕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다만 임요환을 '특이한 거 많이 했던 전략형 게이머'만으로 보는 것은 그가 클래식 테란의 발전에 기여한 것을 고려하지 못한 주장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임요환은 테테전에서의 골리앗, 드랍십을 통한 저그의 멀티 견제, 토스전의 원팩 더블커맨드, 러커에 대응하는 마이크로 컨트롤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고전 테란을 완성시켰다. 물론 이 중의 일부는 다른 게이머들에게서 시작되었지만 임요환이 이 모든 것을 전반으로 종합해 완성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당연하지만, 전성기의 임요환은 특이한 것도 했지만 동시에 정석으로도 잘 이기는 게이머였다. 오히려 이후로 알려진 '전략가 임요환'은 임요환의 피지컬이 다른 게이머들을 압도하지 못하는 시점부터 더욱 부각된 측면이 있다.
4.1.4. 공군 ACE(2006~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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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9일 전산 특기병으로 공군에 입대하여 연예병사와 같은 홍보 목적의 공군 게임단인 공군 ACE에서 활동하다 2008년 12월 21일 전역하였다. 임요환공군전산소입단공군에이스창단식 임요환의 군 입대를 앞두고 해외 사이트인 팀 리퀴드에서 응원과 귀환을 원하는 글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공군 에이스 입대 반응
사실 임요환의 입대로 공군 ACE가 탄생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29] 고참이 송병석과 아이들 사건을 비롯하여 딱히 사이가 좋다고는 말 못하는 강도경이라 임요환이 까일 것을 염려한 임빠들이 선물 드랍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는지 여러 매체의 인터뷰로 미루어 보았을 때 강도경에게 임요환이 많이 까인 것 같다.
예전에 김정민이 했던 프로게이머 토크쇼 스타7224 5회 1부 후반부와 2부 초반부를 보면 평소에는 비교적 차분하시던 그분께서 강도경 이야기만 나오면 분노에 사무친 어휘를 구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공군 시절 강도경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평소 미디어 앞에 나왔을 때와 같은 인자한 모습이 아니라, 분노를 매우 솔직하게 드러냈다. 강도경이 임요환의 생일날에 생일빵을 했는데 임요환을 모포로 덮어 놓고 단순히 한 발로 밟는 것이 아닌, 점프 후에 두 발로 임요환을 내리찍는 아주 격렬한 생일빵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생일날에는 생일빵을 없애버리는 주도면밀함을 보였고, 생일빵이 폐지된 강도경의 생일날이 공군 에이스의 분위기가 최고로 안 좋았던 날이라고 한다. 이로써 임요환은 강도경 생각만 하면 뒷골이 땡긴다는 말까지 하게 됐다.
그 상황 속에서 2007 프로리그 전기 리그에서 3.3혁명으로 급부상한 김택용에게 승리하여 팀을 승리로 이끌고,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마재윤을 이기고, 천적이라고 여겼던 강민과 슈퍼 루키 이영호에게 하루에 2승을 챙기며 팀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심지어 병장이었던 2008 시즌에도 한빛 스타즈와의 에이스 결정전에 출전하여 윤용태를 압도적으로 관광태웠다. 초반부터 유리한 분위기를 잡더니 윤용태의 모든 노림수를 별 어려움없이 막아내며 자신은 윤용태의 본진을 제외한 온 맵을 점령한 뒤 윤용태를 본진에 가두고 GG를 받아냈다. 포인트는 윤용태의 최후의 노림수였던 본진 리콜을 고스트의 락다운 한 발로 막아낸 것. 고스트는 단 한 기만 생산되어 락다운을 장착한 후 무려 10분 동안 본진에서 대기하다가 리콜 온 아비터를 잡아내며 1킬을 기록, 임요환의 명장면 역사에 새로이 기록되었다. 당연하지만 공격력이 바닥인 데다 진동형인 고스트가 대형 유닛인 아비터를 잡으려면 한 세월이 걸린다. 미사일 터렛 2기와 같이 때린 결과 잡아낸 것. 하지만 막타는 고스트가 그 저열한 공격력으로 먹어 명장면을 더욱 명장면답게 만들었다. 이 시즌은 공군 에이스의 존폐 위기가 해결되었던 시기로 전용준 캐스터의 "대한민국 공군 에이스가 왜 필요한지, 임요환이 공군 에이스에서 어떤 인물인지, e스포츠에 어떠한 인물인지 제대로 보여줬어요"라는 포장 해설과 임요환의 세리머니가 유명하다. 또 이 경기를 통해 공군은 잠시나마 10위를 기록했다. 최종 순위는 11위로 '''공군 에이스 팀 역사상 유일하게 꼴등을 하지 않은 시즌이기도 하다.'''
4.1.5. 전역 후 스타크래프트 1 복귀(2009~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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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 후 SKT T1으로 복귀하였으며, 코칭 스태프로 활동했다. SKT T1의 주훈 전 감독은 임요환이 제대해서 친정 팀에 복귀했을 때 선수로서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코칭 스태프를 거쳐 끝내는 감독직을 물려줄 생각이었다고 한다. 이는 감독이 박용운으로 바뀐 뒤에도 계속된 안이었지만, 결국 본인이 이를 포기해서 없던 일이 되었다.
2009년 01월 17일 제대 후 프로리그 첫 번째 출전에서 패배하였으며, 2009년 07월 12일의 두 번째 출전에서도 정ㅋ벅ㅋ자 박지수를 만나 패했다. 초반부터 중반까지 나쁘지 않게 운영하며 정ㅋ벅ㅋ자를 몰아세웠지만 후반에 나온 정ㅋ벅ㅋ자의 드랍십에 털리며 GG. 경기 후에 인터뷰에서도 9까지는 잘했는데 마지막 1에서 털렸다며 스스로도 '욕먹을 경기'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굴욕인 것은 자막의 이름이 임요'한'이라고 쓰여 있었던 것. 자막 담당 PD의 안위가 걱정된다.
2009년 07월 13일 e - 스타즈 헤리티지 매치 박정석과의 경기에서 물량전 끝에 제대 후 첫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로써 박정석과의 전적은 15:15가 되었다. 그칠 줄 모르는 5할 본능. 7월 14일에는 오영종을 격침시키며 '''토스전 2연승'''을 달리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저 둘은 군인 신분이고, 현역 프로 선수와의 승리는 아직 미지수인 상황.
대 박정석전에서는 '''얼굴이 붉어지고 이마에는 핏줄이 섰으며 땀까지 뻘뻘 흘리는''', 한 마디로 긴장한 상태에서 아슬아슬하게 이겼기 때문에 과연 이것을 부활의 신호탄으로 보아야 할지는 미지수. 심지어 입도 닫았다! 시합에 집중해 만족스러운 플레이가 나올 때는 눈이 풀리고 입이 벌어지지만, 긴장하거나 경기가 불리하다고 생각할 경우에는 눈이 또랑또랑해지고 입이 닫힌다...
오영종 전에서는 그냥 아무런 재미도 감동도 없이 완만하게 승리. 7월 24일에는 몸 담았던 팀 공군 ACE 홍진호와의 경기를 펼쳐 핵 2연발을 날려버렸다.
14일 '09-10 프로리그 맵 테스트'에서 임요환이 박명수를 잡아내고, 압도했다. 더군다나 사용된 '로드 러너'는 오프라인 맵 테스트에서 저그가 테란에게 15승 1패를 기록한 저그 맵이었다.
9월 26일 이벤트전 '돌아온 임진록'에서 승리하였다. 하지만 스타리그와 MSL에서 각각 열린 예선전에서는 탈락했다.
10월 25일, 신한 은행 프로리그 1라운드 SKT T1과 화승 OZ의 경기에서 임요환은 박준오를 상대로 2세트 경기에 출전한다. 상대가 아직 많은 경험을 쌓지 못한 신인 선수였고 워낙 T1의 엔트리가 팬심을 자극하도록 짜여 있었던 만큼 이벤트성 출전일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고, 일부 팬들은 퇴물 선수가 얼굴마담, 코치 노릇이나 하지 뭣 하러 출전했느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당일 양 팀의 엔트리는 1세트 박재혁 vs 이제동, 2세트 임요환 vs 박준오, 3세트 김택용 vs 김태균, 4세트 정명훈 vs 손주흥의 순서로 짜여 있었다. 초반 1·2세트를 내주더라도 후반 3·4세트에 포진한 에이스'급 선수들을 통해 차후를 도모하려는 의도였던 듯.
그러나 예상했던 것보다 임요환의 경기력은 중간 이상이었고, 임요환이 따로 준비해온 듯한 독특한 빌드와 파이어 뱃 위주의 특이한 병력 구성, 입구에 홀드 상태의 메딕을 배치한 메딕 장판파 등 여러 볼거리가 많아 경기 내용은 상당히 재미있었다는 평가가 다수를 이루었다. 무엇보다도 '''핵ㅋ관ㅋ광ㅋ'''. 경기 도중, 제2 멀티에서 뜬금없이 뉴클리어 사일로가 건설되기 시작하자 현장에서도 TV 앞에서도 스갤에서도 환호성이 들려왔다. 테란이 아직 완전한 승기를 잡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만약 다른 선수가 그랬다면 이기든 지든 비판을 면치 못했겠으나 이번엔 임요환이 했기에 달랐던 듯. 실제로 그 핵은 아직 여력이 남아 있던 박준오를 정신상으로도, 자원상으로도 안드로메다에 보내버렸다.
'앞으로는 핵을 전략적으로 사용하겠다'라는 경기 후 인터뷰를 한 걸로 보아 뭔가 또다시 새로운 걸 준비하는 듯. 그리고 이것은 정명훈이 2연핵을 씀으로써 증명되었다. 관광용이긴 했지만.
10월 31일 IEF 2009 조별 리그에서 취미로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우크라이나 32세 직장인 등 외국 게이머들에게 패하고 광탈[30] , 팬들은 임토 히로부미라는 별명을 지었다. 하지만 그 직전 김택용과 매정우가 중국 게이머들에 패하고 광탈했다는 충격적 소식 때문에 크게 까이지는 않았다. 애초에 반쯤은 얼굴 마담인 임요환과 코/매는 기대치가 달랐기 때문. 이런 난장판에서 살아남은 건 송순신과 의병장 이철민이었다. 11월 24일날 프로리그 경기에서 홍진호와 경기함으로써 '''임진록'''이 이루어졌는데 프로리그 공식 무대에선 첫 대결이다(이전 포스트시즌에서 한 번 있었긴 했다).
11월 24일 적절하게 병력을 모아서 한방 병력을 보내는 전형적 테저전을 보여줬지만, 하이브를 늦게 타면서 저글링과 러커를 모은 홍진호의 한방 ''''포... 포풍''''으로 임요환의 병력이 잡아먹히면서 전세가 기울고, 핵을 홍진호의 멀티에 쐈지만 져버렸다. 경기 직전까지는 웃다가 지고 난 이후에는 울먹이는 표정이라 까였다.
사실 까이는 축으로 보이지만 은근히 까면서 옹호도 한다. 이래저래 임요환, 홍진호 등의 인물은 이미 스타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들이기도 하고...
2010년 2월 4일-5일 벌어진 양대 PSL에 참가했는데 특이하게도 경기에 집중하고 싶다며 자신의 경기가 방송되는 것을 거부했다. 하지만 결국 탈락. 그래도 양대 예선에서 모두 조 4강까지 찍었다.
그리고 2010년 설이 지난후 자신의 거취를 다시 생각해보겠다는 인터뷰를 했다.
일단 위치는 선수라기 보다는 최연성과 같은 플레잉 코치라고 하는 게 더 맞을 정도. 이에 여러 사람들이 벤치나 달구면서 억대 연봉 가로챈다고 말이 많지만 그건 섣부른 판단이다. 임요환이 T1에 있으면서 가지는 존재 가치와 그가 가지고 있는 올드 팬 숫자, 그리고 팀 내에서 임요환이 맡은 후배들의 멘토 역할 때문에 확실히 그는 적어도 돈 받은 것 만큼 착실히 일하는 존재이다. 물론 거기에 MSL이든 스타리그든 진출하여 16강에 들어주고, 더 나아가 우승까지 해서 SKT T1 최초 골든 마우스까지 타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임요환이 나와주길 바라나 티원이 팀 사정이 막장이라 나올 기회가 없는 실정. 하지만 만약 그가 자기를 그나마 써줄 팀을 찾아 간다면서 다른 팀으로 가버린다면, 일단 T1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올드 팬 감소의 위험이 있다. 임빠가 많이 줄었다곤 하나 아직 많다.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아 앞에서 날뛰질 못하는 것뿐. 또 팀 내 멘토를 잃는 일을 동시에 겪게 된 것이, 임요환이 공군 갔을 때의 티원이 어떻게 됐는지 보면 대강 짐작이 될 것이다. 물론 복합된 이유도 있었지만 당장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스캔들이 존경할 만한 멘토를 가지지 못한 팀에서 발생했다는 걸 생각해보자.
그러던 와중에 2010년 4월 13일, 뜬금없이 배우 김가연과 결혼설이 났다.(일단 '열애는 사실'이라고 했다.) 이전에도 김가연과의 열애설이 나긴 했지만 발표 타이밍이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스캔들'''이 터져 퍼져나가기 시작했던 시기인지라 승부조작 사건을 덮기 위한 방패막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 실정. 덕분에 스타판의'''임'''벙커, '''임'''논개, 살신성'''임''', 황제의 타이밍, e스포츠의 수호자 등으로 불리며 반 농담으로 칭송 받기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임빠와 임까들은 모두 한입을 모아서 '아무리 지금 그분 나이 30세라 하더라도 8살 차이 + 중3 딸내미를 가진 이혼녀와 결혼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 하다'며 팬들은 반발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 토를 다는 사람도 거의 없는 데다가 그의 활동에 물심 양면으로 지원해주고 있는 점이 높이 사면서 둘의 관계에 매우 긍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추세이다. 프로리그 경기 때도 그렇고 광안리 결승전에서도 커피와 과자, 빵등을 싸오는 등 임요환 개인만이 아니라 SK팀 전원에게 여러모로 보살펴 주는 모습이 보인다. 최연성과도 친분 관계가 두터우며 그를 매우 편하게 '연생'이라고 부르기도....
실제로 조작 관련 논란이 한동안 확실히 잠잠해졌다. 폭풍우와 같은 떡밥이 많이 차분해졌던 느낌. 그리고 그분의 유일한 라이벌도 연이어 '강민의 올드 보이'에서 떡밥을 터트려 처음 터졌을 때보단 희석된 분위기였다. 물론 5월 16일 승부 조작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는 논란이 눈덩이처럼 커졌으나, 이건 임요환 홍진호 할아버지가 와도 못막으니...
2010년 5월 8일에는 프랜차이즈 카페인 카페 베네의 성대 지점을 개업해 카페 점장이 됐다. 일단은 이름만 내건 점장이 될 것 같긴 하지만 은퇴 뒤를 준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스덕들은 '카페에서 커피'''콩'''을 볶는다'며 카페 개업은 운명이 아니냐는 드립을 치기도...
컨디션 난조 및 실력 저하로 양대리그 예선에 불참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스덕들은 드디어 은퇴인가라는 추측을 내놓았다. 하지만 2010년에 승부 조작 사건 중에 터진 열애설에 따른 후폭풍과 프로리그에 집중하여 다시금 재기를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왔다. 그러나 스갤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임요환의 출전은 기대하긴 글렀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고, 나오지 않으니 기대하지도 까지도 못하겠다며 떨어져나가는 팬들도 많다. 팀을 탈퇴하는 한이 있더라도 빨리 스타 2로 전향하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
한때 09-10 신한 은행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나올지 나오지 않을지 꽤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2010년 8월 7일 광안리 결승전, 팀원이라서 나오기는 나왔으나 정작 경기에는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더구나 이번 결승전에는 애인인 김가연 그리고 자신의 부모까지 몸소 찾아왔었는데도 나가지 않았다. 그의 경기 출전을 기대하던 팬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고, 앞으로의 그의 프로게이머 생활에도 비관적 전망이 많았다. 이후 인터뷰를 통해 30대 프로게이머 선언이 빈말에 그쳐 팬들이 상심하게 만든 데에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4.2. 스타크래프트 2 진출(201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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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에 열린 프로게이머 정기 소양 교육에 장염을 이유로 불참했고, T1의 일본 워크샵에도 불참했다. 이미 9월부터 스타크래프트 2로 전향한다는 설이 파다했고, 그로 추정되는 배틀넷 ID까지 거론되는 등 상당히 신빙성이 높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거취를 밝히지 않아 속을 태우다가, 공식으로 10월 9일에, 진행 중인 GSL 시즌 2 예선에 참가한다는 공식발표가 나왔다. 10일, 예선전 2일차부터 참가.
사실 APM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올드 게이머들에게 스타 1보다는 스타 2가 유리한 면이 있었다. 인터페이스가 간단하고 일꾼 컨트롤이나 유닛생산 같은 것들이 획기적으로 편리해졌으며 부대 유닛 지정수는 '12 → 무제한'라 전략에만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게 되면서 외국 유저 참여 수도 늘었다. 임요환 본인도 온게임넷 드리머 인터뷰에서 자신의 초반 전략이 다 막혀버리고 손이 부대 지정 1~3 정도에 익숙해져 있는 자신에게 200 vs 200 싸움은 익숙하지 않아 조급해지면서 승률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자신의 선택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동안 이윤열, 박성준 등을 비롯해 먼저 스타크래프트에서 스타크래프트 2로 전향하며 개척자를 자처한 후배들에게로 팬들의 응원을 정중하게 요청했을 뿐만 아니라, 전향한 프로게이머들을 함부로 은퇴 처리하고 기록을 삭제하는 것도 모자라 '상금 사냥꾼', '후배와 e스포츠의 배신자' 등으로 모욕한 KeSPA와 UNN들까지 점잖게 꼬집는 뉘앙스의 발언이었다. 게다가 이 바닥에서 임요환이 가지는 무게감이라는 걸 생각하면 전향했다고 협회나 UNN들이 까는 건 부적절한 행위."이번 GSL 시즌2를 통해 새로운 분야에 발을 내딛게 되는데 무궁 무진하게 발전될 '스타2'의 새로운 역사에 개척자 중의 한 명으로 남고 싶습니다.
또, 앞으로 '스타2'를 통해 팬들에게 좋은 경기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 뿐이지만 때로는 '''성적이 좋지 않거나 실망스럽더라도 승패를 떠나 노력하는 마음을 봐줬으면 합니다. 저를 비롯해 전향 선언 후 새로운 출발선에 선 모든 이들을 응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 '새로운'이라는 단어는 제게 항상 열정을 불어넣어 줬습니다.
이 열정이 그대로 팬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이것이 제가 20대 프로게이머일 때의 모습과 다른 30대 프로게이머로서의 나아가야 할 방향일 것입니다. 저는''' '스타1'을 그만두고 '스타2'로 전향하는 것이지 결코 프로게이머에서 은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데일리e스포츠 등은 '''이벤트 리그 참여'''라고 임요환에게 디스를 했다. 이후 임요환을 비평하는 활동이 시작되었다. "'''국내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스타 1 e스포츠 대회와 프로 게임단을 버리고 이제 막 출시된 '''스타 2의 이벤트 대회'''를 선택했다", "공군 에이스 게임'단에서 병역 특례로 군 생활을 하는 등, 기존 브루드 워 e스포츠계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대우와 혜택을 받았으면서 '''위기에 직면한 현 브루드 워 e스포츠계를 외면하고 스타 2로 가버린 건 배신이다'''", "이영호, 이제동 같은 후배 선수들은 브루드 워 e스포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대선배는 자신의 욕심 때문에 스타 2로 옮겨가는 모습이 씁쓸하다''' 등등의 구설수가 나왔다.
SKT T1 프런트 측에서는 '''임요환에게 지도자의 길을 권유하기도 했다'''고 한다. 감독 자리라는 편한 길이 있음에도 선수 생활을 계속해 나가길 원한 것이니 기득권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 되고, 엄연히 계약 만료 후 다른 선택을 한 것인데 배신 운운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건 회사로 치면 계약 끝난 사원이 "관리직으로 올려줄게, 몇 년만 더 있어라"라는 제안 거절하고 더 장래성 있는 회사에 취직했더니 배신했다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거다.
2010년 11월 3일. 더 이상 한국e스포츠협회 소속 프로게이머가 아닌, 아마추어로서 자격이 전향되었고, 케스파는 당연히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반면 임요환은 그러거나 말거나, 발표 직후 인텔의 후원으로 개인 후원 2억 원을 포함한 5억 원 후원으로 새로운 게임단을 창단하기로 결정했다. #.
그리고 11월 9일. '슬레이어스' 클랜을 결성했다.카페 주소 초기 가입 조건은 다이아몬드 리그 1800점 이상이었으며, 타 팀과 클랜에 가입된 경우엔 가입이 제한되었다. 넷카마 방지를 위해 여성 신청자는 직접 전화한다고 한다. Play XP에도 클랜 만든다고 글을 올렸으나, 이 글에 찌질이가 달라붙어 인증 드립을 치다가... 성지가 되어버렸다. #성지
선수로서 자세한 활동 기록은 임요환/스타크래프트 2 문서로.
4.2.1. SKT T1 코치 복귀와 감독 승격(2012~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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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되고 나서 인벤에서 진행한 인터뷰
2012년 8월 16일 SlayerS를 떠나 친정 팀 SKT T1의 테란 전담 코치로 영입되었다. 디스이즈게임 등의 매체에서는 은퇴라고 표현했으나 김가연 슬레이어즈 구단주의 트위터에 따르면 은퇴는 아니며, 향후 선수 복귀 가능성도 있다는 듯. 자세한 사항은 8월 17일 SK 텔레콤 본사에서 있을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1월 26일, 6연패를 달성하며 험난한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4라운드 시작 직전인 4월 3일, SK텔레콤의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12-13 프로리그 종료 후 얼마 되지 않아 2013년 9월 26일, 건강 등의 일신상의 이유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스타2 프로게이머 크리스 로랑줴는 임요환이 사퇴를 발표한 날 트위터를 통해 '''"From what conversations I remember with boxer. He was initially suppose to only be the Terran coach for SKT. After some time he was suppose to coach all members, which he said was really hard for him; too much. He said it was a big burden on him."'''[번역] 라는 말을 남겼다.
은퇴한 김택용의 인터뷰를 보면 "내가 은퇴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요환 감독님이 팀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라며 "마치 나 때문에 그만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고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나를 위해 모험을 서슴지 않았던 임요환 감독님께 항상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라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던 좋은 결과만 있었으면 좋겠다" 등등 임에게 미안한 마음과 감사함을 밝혔다.
또 정윤종은 "임요환 감독님이 정말 유명하다 보니까 관심을 많이 받았잖아요. 경기 하나에 팬들의 반응이 도가 지나치다 보니까 고생을 많이 하셨죠. 관심으로 포장을 한 거지 너무 심하게 비난을 했어요"라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고 원이삭은 "당시에 (김)택용이 형을 경기에 내지 않는다고 욕먹었잖아요. 실제로 군단의 심장을 연습하라고 지시하셨었어요. 저희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데, 감독님이 비난을 받고 있으니 정말 안타까웠어요. (정)명훈이 형도 연패를 하면서 계속 출전했던 이유가 정말 단순했어요. 팀에 테란이 없었으니까요"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말했다.
임요환의 빈자리는 얼마 전에 상근으로 군 복무를 마친 최연성이 수석 코치로 승격되어 대신하게 된다. 임요환이 감독이었을 때 티원을 방문했던 최연성은 임요환이 16시간 동안 회의하는 것을 보고 충격받았다고 한다.
4.3. 프로 포커 플레이어로 전향(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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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포커 플레이어로 전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베르트랑과 같은 길을 걷게 된 셈이다. 전향 선언 후 가진 인터뷰.
그리고, 2014년 1월에 첫 출전한 마카오 포커 컵에서 $1500 Turbo(1350+150)라는 '노 리미트 홀덤' 종목의 사이드 이벤트에 참가하여, 235명 중 8위라는 괜찮은 데뷔 성적을 기록하였다. 상금은 약 126만 원 정도. 해당 이벤트 결과 표 임요환이 참가한 종목은 메인 이벤트(Red Dragon)는 아니고, 수많은 사이드 이벤트 중 하나이다.[31] 이런 사이드 이벤트에서 TOP 10에 든 일반인은 디시인사이드에도 몇몇 있는데 언론이 과대포장한 감이 크다. 실제로 이 대회만 보더라도 다른 사이드 이벤트에서 우승한 한국인이 2명이나 있다. 한국인 김모 씨는 우승 상금으로 1억 원을 받았고, 다른 한국인 최모 씨 역시 우승하여 1600만 원을 챙겼다. 2014년 2월 세부 APT 대회에서 10,000+1,000 홀덤 종목에서 2위를 하며 상금 $4,600를 획득하였다. 2014년 6월 마닐라 APT 대회에서 3종목에 참가하여 합계 $5,600를 획득하였다. 대회 최고 성적은 280+20 종목의 4위. 2014년 8월 마카오 포커 컵 대회에서 1500 노 리미트 홀덤 터보 종목에서 3위를 하며 $3,800를 획득하였다. 비록 사이드 종목이긴 하나, 몇 번씩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보면 아직 시작한 지도 얼마 안되었기에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딸이 태어난 2015년은 조용히 넘기더니, 2016년 1월 마닐라 APT에서 메인 이벤트를 비롯해 각종 사이드 이벤트에 참여했다. 가장 높은 성적은 20,000 + 2,000 홀덤에서 27명 중 1위를 하면서 상금 ₱225,200($4,717)를 획득하였다. 또한, 다른 사이드 이벤트에서도 상위권에 오르며, 이 대회에서만 상금으로 ₱413,200($8,646), 한화로 약 1000만 원을 획득했다. 2016년 7월 27일 APT 메인이벤트에서 준우승을 기록하였고, 상금으로 $33,100(한화로 환산하면 약 3600만 원)을 획득했다. 관련기사 그리고 8월 10일 APT Poker Weekend Series의 50,000+5,000 홀덤 종목에서 다시 2위를 하며 상금으로 ₱480,000($10,218), 한화로 약 1100만 원을 획득하였고, 10월에는 APT 메인 이벤트에서 4위(상금 HK$157,000, US$20,237), 이벤트 #1에서 1위(상금 HK$76,800, US$9,898)를 하며 상금 3만 달러(한화 3,300만 원)를 획득하였다.
2017년 4월 APT에서는 노 리미트 홀덤 이벤트 #2에서 1위, 상금은 $2,050(한화 230만 원). 그리고 11월 APT에서 역시 노 리미트 홀덤 이벤트 #2에서 1위, 상금 HK$63,500, US$8,134(한화 860만 원)를 획득하였다.
2018년 7월 APT에서 노 리미트 홀덤 Deep Stack Turbo 이벤트에서 1위, 상금은 ₫ 93,480,000($4,060, 한화 460만 원). 그리고 2018년 9월 마닐라에서 열린 APT에 참가, 19일 노 리미트 홀덤 이벤트 #10에서 1위(상금 ₱ 1,127,200, $20,847, 한화 2300만 원)에 이어 20일에는 '''챔피언십 이벤트에서 우승'''해 상금 5만 달러, 우리 돈 6천만 원을 획득했다. 지금까지 참가 기록 중 가장 좋은 성적. 뒤이어 28일에도 메인 이벤트에서 2위, 상금 3만 6천 달러를 추가했다.
2019년 1월 베트남에서 열린 APT의 메인 이벤트에서는 50위에 머물렀으나, 같은 대회 챔피언십 이벤트에서 이번에도 '''우승'''하였다. 대회에서 얻은 총 상금은 약 ₫ 21억(한화 약 1억 원). 승부의 흐름을 바꾼 올인, 우승 순간 영상. 4개월 만에 역대 개인 통산 최고 상금 기록을 다시 갱신하였다. 같은 해 9월 역시 베트남에서 열린 월드 포커 투어 World Poker Tour 이벤트#12에서 다시 한번 '''우승''', 상금 ₫ 313,492,000($13,553, 한화 1600만 원)을 추가하였다.
2019년에는 베트남, 대만, 미국, 필리핀 등 여러 나라를 돌아 다녔다.
2020년 1월에도 베트남 대회에 참가하여 2승을 적립했다.
2020년 3월 17일 현재 총 상금은 $555,951이다. 임요환 기록 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서 프로 포커 플레이어의 이야기를 했다.
5. IS에서 SKT T1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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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환이 PC방에서 배틀넷 신화로 군림하던 어느날 IS 감독 김양중이 프로게이머 제의를 청해왔고 그때부터 정식으로 프로게이머가 되었다. IS 소속으로 스타리그를 2연속 우승하면서 임요환은 스타가 되었고 송호창이 이끄는 게임아이와 조정웅이 이끄는 팀이 IS와 합병을 하게 되는데 불행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합병된 IS는 임요환, 홍진호, 이윤열로 최고의 전력을 자랑했지만 송호창은 돈 벌어먹을 생각만 하며 임요환이 마시는 음료수에도 값을 매기고 돈을 내라 했고, 박정석과 치른 스카이 2002 결승전 전날에서도 주방 용품 이벤트를 돌리는 등 여러 문제로 어려운 찰나에 임요환은 IS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건 바로 임요환을 발견하고 키운 김양중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다.프로게이머로 활동한 지 2년 만인 2001년 나는 드디어 ‘테란의 황제’라는 별명을 얻으며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다른 종족에 비해 암울[32]
하다는 ‘테란’이라는 종족으로 거둔 주요 리그에서의 두 차례 우승은 나를 스타 게이머로 만들었다. 하지만 게임계는 여전히 암울했다. 게이머들이 속한 팀들은 대부분 작은 스폰서조차 없었다. 프로게임팀이지만, 에이전시와 같은 의미였다.2002년 나는 3년 넘게 속해 있던 팀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스폰서 없이 대회 상금만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데 많은 한계가 느껴졌고, 진정한 프로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홀로 서서 스폰서를 찾으며, 나는 WCG에서 우승했다. '''그래서 나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시키고 ‘동양 오리온’이라는 회사로부터 후원을 받는 프로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개인 스폰서를 받으며 1년 동안 활동하는 동안 나는 팀원들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스타크래프트는 대전 게임이기 때문에 실제 대회에서의 경기처럼 철저한 연습이 뒷받침돼야 리그에서 성적을 거둘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팀원들과 실전 같은 연습이 필요했다.
'''지금처럼 개인 스폰서링을 받는 풍토는 게임판을 오히려 축소시키고, 프로게이머의 수명을 단축시킨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20대 초반에 프로게이머의 수명이 다하는 것은 바로 안정적인 생활과 연습환경이 뒷받침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프로게이머로 오래 활동하고 싶었고, 후배들 또한 안정된 직업으로써 프로게이머 활동을 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한동안은 스폰서 없이 팀 활동에 주력했다. '''감독님께서는 팀을 창단할 기업을 열심히 찾아다녔고, 드디어 우리는 2004년 4월 SK텔레콤과 함께 ‘프로게임단 T1’을 창단했다.
'''만약 내가 홀로서기를 감행하지 않았다면, 우리 팀이 ‘4U’라는 이름으로 스폰서 없는 기간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지금 SK텔레콤 T1 팀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SK 텔레콤 소속 프로게이머 ‘임요환’ 또한 없었을 것이다.'''
'''나는 동양의 스폰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나와 팀원들이 SK텔레콤의 프로게임팀을 창단할 것이 라는 확신도 없었다. 다만 내가 그리고 우리 팀원들이 홀로 섰을 때 우리는 프로라는 이름을 달고 우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러한 결단이 지금의 나를 만들 수 있었다.'''
임요환 월간중앙 2005년 8월호 '내 인생의 결단의 순간' 링크
빈털터리로 임요환이 주훈과 나가면서 프로게이머로서 생명이 끝날 수도 있던 김성제마저 나가게 도와줬으니 열받은 송호창은 다른 팀 감독들한테 임요환 연습 시켜주지 말라고 압박했다. 임요환은 고립되었지만 임요환을 탐내는 KTF, 소울 팀에서 연습을 도와줬다고 한다.
'''임요환은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WCG 2002를 우승하고 KTF, 동양에서 제의가 왔는데 게임판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 동양 창단을 택한다.''' 하지만 동양은 오직 '''임요환만 바라보고 1억'''을 제시했기 때문에 연봉이야 있었지만 그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고 숙소는 완전 오피스텔 한구석 좁은 숙소였다.
거기서 임요환, 김성제, 이창훈, 당시 아마추어 최연성, 감독 주훈 등이 다 함께 생활했고 임요환의 연봉과 동양에서 주는 얼마 안되는 운영비, 그리고 주훈이 빌려온 돈으로 동양 팀은 힘들게 팀 생활을 꾸려나갔다. 당시 주훈 감독의 자차인 빨간색 프라이드에 8명(최연성, 이창훈이라는 190대 거구 2명과 180의 임요환 포함)이 타고 다닌 일화는 유명하다. 링크 특히 2번이나 차가 퍼졌는데 하필이면 임요환이 방송촬영할 때만 퍼졌다고 한다. 방송을 보면 임요환이 꺼진 차를 능숙하게 밀고 늦은 일정에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링크 '''동양시절에도 임요환의 개인 스폰으로 팀을 운영해야 했기에 상황이 많이 열악했던 것이다. 같은 시기 GO 팀과 비교해도 정말 눈물나는 환경이다.'''링크 이때만 해도 동양은 임요환의 원맨팀이나 다름 없었고 그 와중에 임요환도 점점 하락세가 오게 된다. 그렇게 힘들게 동양은 첫 프로리그 우승을 했지만 보상은커녕 팀의 사정은 점점 어려워졌고 '''동양은 여전히 '임요환만' 계약하길 원했고 임요환은 팀과의 계약을 원했기에 계약을 파기한다.'''
그러면서 비 스폰 팀인 4U 시절이 시작된다. 이 이름 안에는 '팀을 사라(사유)'라는 뜻이 담겨있기도 하다. '''이때의 임요환, 주훈은 상금과 사비를 다 털면서 팀을 운영하며 힘들게 살아가야 했다.''' 4U팀 숙소 공개 영상을 보면 두유와 과자로 한끼를 때우기도 하고, 좁은 방에서 여러 명이 발도 제대로 못 뻗고 잤다고 한다.이 때 한 벌에 50만 원 정도 하는 유니폼을 팀원 모두에게 해줄 수가 없어서 이창훈, 최연성용으로 한 벌, 임요환, 김현진용으로 한 벌, 김성제, 박용욱용으로 한 벌 이렇게 3벌만 만든 덕분에 팀리그 때 출전 선수 한 명만 유니폼을 입고, 나머지는 모두 사복이었던 것을 볼 수 있다. 또 먹을 게 없어서 팬 카페에서 반찬을 보내주기도 했고, 차가 고장 났는데 돈이 없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경기장까지 간 적도 있다. 팀리그 결승 때는 동대문에서 츄리닝 디자인으로 상의만 해 입을 정도였으며 '''임요환'''이라는 스타가 있기에 스폰서 제의는 많이 들어왔지만 SKT를 잡으려고 작정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던 시절을 견딘 것이다.
이런 정말 열악한 상황에서 '''동양 오리온 시절 KTF EVER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 우승, 임요환의 2003 Olympus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3위, 박용욱의 2003 Mycub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최연성의 TG삼보 MSL 우승, 4U 시절 LG IBM MBC GAME 팀리그 우승, 임요환의 KT-KTF 프리미어 리그 2003 준우승을 달성한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드디어 2004년 4월 SK텔레콤과 함께 ‘T1’을 창단했다.''' 이는 대기업을 이스포츠에 끌어들이면서 프로리그가 활성화되고 이스포츠가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33]
SK텔레콤이 임요환을 중심으로 한 4U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SK텔레콤의 고위 관계자가 프로게임단을 만든다는 보고서를 받으면서 실무자에게 물었다. "가장 잘하고 유명한 선수가 임요환인 것 같은데 농구로 치면 허재 정도 되나?"라고 물었더니 실무자가 상관의 마음을 사로잡는 한 마디를 했다. "허재는 발에도 못 미치고요. '''NBA의 마이클 조던입니다'''" 이 한 마디에 SK텔레콤 T1의 창단 결재 서류에 사인이 곧바로 됐다고 한다.[34]
5.1. 공군 에이스 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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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환이 군 입대를 앞두고 사석에서 지인에게 밝힌 얘기다. 지난 해부터 국회에 월 2~3회 다녀왔다. 그 날 마지막 대회에도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팬으로 참석할 정도였다. 2013년 12월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원희룡 의원님이 많은 힘을 써준 것 같아 본의 아니게 혜택을 받았다"라고 밝힌 바 있다. 기사“제가 군대를 (공군 에이스로 병역 특례를 받는 것을) 안 가면 오히려 후배들이 병역 특례를 받기 힘들어집니다.”
공군 에이스는 실적 부진 외에도 연예병사와 같은 문제로 추후에 해체되었다. 공군 에이스가 내세운 공군 소속 프로 게임단의 창단 조건은 ''''게임단 창단 시 임요환이 입대할 것''''이었다고 한다.
5.2. 팀에서의 임요환
동양 시절부터 4U, SKT T1 창단과 우승, 오버 트리플 크라운까지 그 중심에는 임요환이 있었다. 그가 입대한 뒤 T1이 귀신처럼 몰락하고, 그가 제대하니 T1이 기적처럼 우승했다는 것만 보아도 팀에 임요환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거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T1 소속 선수들이 입을 모아 말하길, '''임요환이 열심히 게임을 하는 것 자체가 팀의 버팀목이자 멘토,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임요환은 전략적인 부분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는 선수였다.'''
최연성의 말에 따르면 "프로리그 08-09 시즌 광안리 결승전에서 요환이 형이 명훈이가 쓸 전략을 짜준 적이 있는데 해당 맵을 완전히 분석했고 정찰 시간, 빌드 시간까지 다 정했다. 그러고 나서 명훈이는 경기 전에 일부러 내 옆에서 얘기를 나눴고, 그건 곧 저그전 메카닉을 쓴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회심의 전략이 통하면서 명훈이가 이제동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요환이형은 우리가 의식하는 모든 부분을 전략화시켰고, 존경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었다"라고 한다.
또한 김택용은 "요환이형도 제대한 뒤에 감각을 찾으려고 정말 열심히 연습하더라고요. 오전 10시부터 새벽까지, 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연습만 하세요. 후배들도 요환이형이 팀에 합류한 이후 자발적으로 추가 연습을 시작했죠. 요환이형이 SK텔레콤에 복귀한 이후 팀도 상승 곡선을 그렸고 우승까지 했죠. 요환이형 덕이 커요", "요환이형이 합류하고 나서 달라진 점이 또 있네요. 새로운 전략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요즘 테란이 저그를 상대할 때 기계 유닛을 많이 쓰잖아요. 임요환 선배와 최연성 코치가 함께 연구하니까 특이한 플레이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정말 놀랐어요"라고 말했다.
이처럼 그가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비교적 큰 편이었다. 단순히 경기에 나가서 이기는 것만이 아닌, 팀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팀원들을 독려해주는 역할을 맡은 것. 혹자들은 후기의 임요환은 그저 얼굴마담이라며 벤치나 데우며 후배들 앞길을 막지 말고 은퇴나 하라는 식으로 매도하지만, 몇몇 유명한 일화들만 살펴봐도 임요환이 팀 구성원들에게 어떤 존재인지는 잘 알 수 있다. 온게임넷 돌아온 뒷담화 24회에서, 임요환과 같은 팀인 SKT의 일원이었던 박용욱은 "임요환이 새벽 3-4시까지 안 자고 코피 흘리면서 연습하면, 어디서 그 밑에 있는 선수들이 일찍 들어가서 자겠는가, 그런 것처럼 팀에서 임요환 같은 최고참의 역할이 연습 분위기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전략 부분뿐 아니라 최연성의 데뷔를 앞두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 선수''''가 있다며 기를 살려주고, 데뷔전에서 패드 밖으로 마우스가 나갈 정도로 긴장했던 최연성에게 '''"너 누구랑 연습해? 랭킹 1위랑 연습하는데 뭘 그렇게 긴장하냐"'''라며 자신감을 심어주고 자체 랭킹전에선 거의 1등을 하던 고인규가 스타리그에서는 그만큼 실력을 내지 못하자 임요환이 고인규를 불러서 '''"넌 고인규다"'''라며 고인규를 격려했고 그 후 고인규가 듀얼에 진출한 일화 역시 유명하며, 또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현장에서 공개된 엔트리에서 강민을 보고 긴장해 떨던 박용욱은 '''"박용욱이 항상 이기던 강민을 또 만났네"'''라는 임요환의 말 한 마디에 긴장감이 자신감으로 변했다고 한다.
이처럼 임요환이 팀을 이끄는 방식은, 최연성이 스무도에서 말한 것처럼 "이거 하지마. 이건 아니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한다면 이렇게 될 거야. 선택은 네가 해"'''라는 식이고, '''조언은 적극적으로 해주지만 선택은 본인에게 맡기는 것이라고 한다.''' 주장으로서 말보다는 모범으로 묵묵히 연습하는 모습을 보며 존재 자체만으로 힘이 되는 스타일이다.
임요환은 티원의 분위기 메이커였다고 한다. 장난을 치는 이유는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도 있고, 팀워크를 다지는 의미도 있다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 어쩔 수 없이 서먹해지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후배가 선배를 너무 어려워하면 연습을 하기도 힘들어 진다. 의견 교환도 힘들고. 이를 막기 위해 재미나게, 즐겁게 게임과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분위기를 풀어주는 것이다. 또 팀에서 다소 동떨어진 선수들에게는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5.3. e스포츠를 알리다
5.3.1. 아침마당 & 출발 드림팀
2003년 임요환이 게임 중독에 대한 주제를 다룬 아침마당에 출연했던 적이 있다. 사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게임 중독이라는 게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사회적 이슈로서 방송에서 다루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니고, 임요환도 게임 관련 전문가 패널로서 출연했던 것이었다. 문제는 이상벽, 이금희 등 엠씨진의 임요환에 대한 질문이 너무 수준이 낮았던 것이다. "사이버 머니 1억은 임요환에게 새발의 피냐?", "PK를 하면 살의가 느껴지느냐?" 등의 임요환을 폐인 취급하는 질문이 나오는 등....
프로게이머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대에는 프로게이머를 당당한 스포츠 플레이어가 아니라 그저 돈 받고 게임만 하는 폐인 취급했었고, 진행자들의 인격 문제와는 관련없이 방송 대본도 결국 그렇게 나와버려서 진행자들이 그대로 질문한 것이다. PD가 미리 주제와 대본을 알려줬더라면 임요환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지도 모른다.
이 어처구니 없는 질문 내용의 방송 이후로 임요환은 인터뷰에서 “방송 후 한동안 전화를 받지 않았다”라고 털어놓았다. 인터넷과 신문에서는 연일 난리였지만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후 자신의 자서전인 나만큼 미쳐봐에서도 그 당시의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네티즌들의 활발한 반론 덕분에 이번 일이 '''“사회적으로 게임 문화의 이해를 넓히는 긍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라는 말도 덧붙였다.'''[35]
또 2001년 출발 드림팀에 출연해서 프로게이머 팀이 활약했으나 이창명이 '''이름 없는 애들이 이겨버리면 재미가 없다'''며 이들을 무시하면서 재경기를 한 적이 있다. 심지어 '''스태프 장비와 쓰레기까지 치우게 했다'''고 한다.
5.3.2. 청와대, 공군사관학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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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과 악수하는 임요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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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청와대에서 열리는 ‘참여 정부 문화 산업 정책 비전 보고’에 프로게이머 대표로 초청을 받아 프로게이머로서는 최초로 대통령과 만나게 된다. 총 초청 인원 180명 중에 10명이 맨앞에 앉게 됐는데, 그 중 하나가 임요환의 자리였다고 한다. 특히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홍보하기 위해 유니폼을 입고 간 모습이 눈에 띈다. 이후 임요환은 '''"유니폼이 그 어떤 정장보다 나를 훨씬 더 잘 표현해 줄 것 같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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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공군사관학교에 인성 교육 강사로 초청되었다. MBC뉴스데스크
5.4. 영화, CF, 방송 기타 활동
동양 오리온 시절 핫브레이크 광고에 출연했다. 광고 찍을 때 너무 많이 먹어서 핫브레이크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핫브레이크 광고
LG텔레콤 광고에 당대 최고의 스타 전지현과 함께 출연했다. LG텔레콤 광고
생각대로 T 임요환편에 출연했다. SK텔레콤 광고
당시 Gee의 대폭발 이후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소녀시대와 함께 인텔 광고에 출연하여 '''"너의 CPU를 믿어봐"'''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링크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CF들의 공통점은 '''프로게이머 임요환'''이란 점이 강조되어 있다.
2001년 KBS 사랑은 이런거야에 PC방에 게임하러 오는 프로게이머 역으로 출연했다.
2002년 소지섭이 주연한 망작 영화 '도둑맞곤 못살아'에 출연한 적도 있다. 본격적 연기 데뷔는 아니고 카메오 출연인데, 역할이 '''게임 죽도록 못하는 테스터 요환 역'''. 97전 1무 96패. 그것도 1무는 전원이 꺼져서 무승부 처리된 것이라서 일 때려치우려는 역할이다.
2003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브레인 서바이버'에도 출연한 적 있다.
2001년 SBS 김동완의 텐텐클럽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연예인들의 연예인으로 사인을 받았다고 한다.
2001년 KBS 표인봉, 이동우의 '라디오가 좋아요'에 '''8개월간 고정''' 출연하였다가 하차하였다. 하차 이유는 바쁜 일정에 따른 연습 시간 부족과 성적 부진, WCG 준비였다고 한다. 특히 이 시기에는 해설진조차 '''임요환 선수가 다시 연습 시간을 확보하고 연습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임요환의 게임 외 일정이 살인적이었다고 한다.
그의 전성기로 평가받는 2001년 한편에서 그의 살인적 이스포츠 홍보 일정도 함께 있었다.
또 프로게이머 개인의 명경기를 모은 DVD가 발매됐다. 장진남, 홍진호와의 결승전, '''"자 동원합니다 프로브까지 동원합니다. 탱크 일부는 시즈모드 됐고 일부는 퉁퉁퉁퉁퉁퉁!"'''으로 유명한, MC용준을 탄생시킨 이재훈과의 기요틴 경기 등이 담겨 있다.
프로게이머들이 만든 GG 앨범(Game Generation - Progamer Project Album)에 참여하였으며 가수 파인애플의 앨범에도 참여(내레이션과 더불어 노래까지 불렀다)했다. 찾아서 듣는 것은 상관 없지만 양쪽 다 손발이 오그라들 위험이 있다.
2005년 팀복을 입고 시구를 했다. 2005 시구
제대후 2009년 흑역사를 뒤로 하고 시구에 성공했다. 2009 시구
YTN STAR에 프로게이머 임요환으로 출연하여 스타크래프트를 홍보했다.링크
2004년 SBS 가요 대상에 시상자로 나온다. 링크
2009년 12월 16일 멜론 뮤직 어워드에 김택용과 함께 시상자 자격으로 출연했다.[36] 정말 손발이 오그라드니 호기심에라도 보지 않기를 권한다. 다만 저런 손발이 오그라들 멘트를 직접 날릴 만큼 스타판에 강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광경이긴 하다.
2019년 12월 8일, 15일 JTBC 뭉쳐야 찬다 친구 특집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형택의 인맥으로 등장했는데, 김가연을 통해 알게 됐다고 한다. 안정환 팀 vs 신태용 팀 족구에서 신태용을 제외하면 신태용 팀에서 가장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운동신경을 뽐냈다.
"프로게이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노력이다"
"프로게이머는 게임 외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뿌리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프로게이머란 직업은 좋아하는 일인 게임을 직업 삼아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직업 특성상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
-- MBC FM4U '꿈꾸는 라디오, 윤건입니다'
세계적 인기를 누리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페이커가 2016년도 The Daily Dot 선정 e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선정되면서 2위로 내려왔다. 나름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순위 변동이다. 원글번역글"게임의 세계에서는 속임수나 공짜가 없습니다. 게임을 하는 그 순간 만큼은 프로게이머란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게 정정당당하게 게임을 하거든요. 이번 선거도 깨끗한 선거가 되길 바라구요. 저도 투표를 하니까 어리다고 관심없어 하지 마시고 꼭 투표합시다"
-- 2006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투표 참여 캠페인
5.5. 특이 기록
- 비공식전 포함 테란 다승 2위이자, 역대 다승 2위[37]
- 온게임넷과 MBC 게임, 양대 개인 리그를 통틀어 테란 1대 우승자.[38][39]
- 스타크래프트 유일 WCG 2회 우승.[40]
- 최장 기간 연속 케스파 랭킹 1위(17개월; 2001년 11월~2003년 4월).
- 온게임넷 스타리그 최초 2연속 우승자
- 온게임넷 스타리그 최초 3연속 결승 진출
- 온게임넷 스타리그 최초 전승준
- 온게임넷 스타리그 최초 100승#
- 온게임넷 스타리그 최다 승(듀얼과 챌린지 기록 포함)[41]
- 온게임넷 스타리그 최다 결승 진출(6회)[42]
- 온게임넷 스타리그 최다 준우승(4회)[43]
- 온게임넷 스타리그 최고령 결승 진출(26세)
-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에 진출한 해가 가장 많은 선수[44][45]
5.6. 임요환/상대전적
임요환과 주요 선수들의 상대 전적은 임요환/상대전적 문서로.
6. 평가
한때 임요환은 맵과 유닛을 연구하고 분석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서 이기는 전략형 게이머였고, 이는 빌드 오더와 테크 트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는 재미'''로써의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만들게 되었다. 이 때문에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겜덕과 매니아 중심으로 돌아가던 당대의 해외 리그와는 전혀 다른, 차별화된 방향으로 진화하기 시작한다. 방송사에서는 매 주 정기적인 '경기'가 열리고, 임요환은 시청자들을 놀라게 만드는 '전략'을 준비해온다. 이 차이는 거대했다. 헤일로, 콜 오브 듀티 등의 FPS 게임 리그가 주력인 MLG를 보면 3일 만에 수백여개의 경기가 치러지고 대회가 끝이 난다. 임요환처럼 초단위로, 한 경기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전략을 만들어오는 게이머들을 낳을 수 없는 구조이다.[46] 임요환의 다양한 전략과 화려한 쇼맨십은 심지어 스타크래프트를 잘 모르는 문외한들조차도 스타리그에 입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온게임넷 스타리그 WCG 브루드 워 부문 2연속 우승 등의 기록을 세웠으며, 여러 방송 출연으로 게임 경기 밖의 다채로운 활동을 했다.
당대 브루드 워 초기 프로게이머들 중에서는 보기 드문, '연예인'과 비슷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다. 이슈를 만들 줄 알았고 그것이 대중들에게 어떤 반응을 불러올지 잘 알고 있었다. 이를 두고 최연성은 "임요환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떤 반응을 가져올지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승부욕이라든가, 플레이 중에 사장된 유닛이나 빌드 오더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재탄생 시킨다든가 하는 점은 그를 '자유스럽고 독특한 캐릭터'로 기억하게끔 했다. 쇼맨쉽이나 입담이 탁월한 편이라 게임 밖으로도 여러번 이슈를 낳았다.
안티들에게 외모로는 머리가 크다고 놀림받지만, 그 시절 일반인들이 칙칙한 게임 폐인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프로게이머 중에서 나름 핸섬하고 말끔하게 생긴 선수가 있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외모란 것이 절대 기준이 없다지만, 임요환이 갓 등장할 무렵 기성세대의 '게임하는 아이'를 보는 인식은 '어두컴컴한 오락실에서 담배나 찍찍 피우면서 애들 동전이나 뜯는 양아치'였기 때문에(...). 당시 기준으로 임요환의 외모와 기럭지는 그 인식을 송두리째 뒤집을 만큼의 충격이었다. 그리고 브루드 워판에 여성 팬덤의 비중이 어느 정도 늘게 된다. 한때, 오프라인에서 송병구나 박성준처럼 남성 팬의 환호성이 크다는 것이 오히려 화젯 거리가 될 정도. 대부분은 여성들 소리밖에 안 들리니까. 임요환 이후로 프로게이머에게서 아이돌의 가능성을 찾게 된 방송가들은 게이머들을 분장시켰고,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따로 외모를 관리하는 선수들이 생기며 칙칙한 게임 폐인이 아닌 '게임하는 멋진 오빠들'의 이미지를 만들게 되었다. 이 가능성을 본 게임 구단과 스폰서 차원에서 게임 훈련 외에 헬스장 가는 시간 또한 공식 편성했을 정도, 그렇게 몸을 만들어 게임 외적으로 또 다른 캐릭터를 만든 게 박정석이다. 이것은 '한 플레이어가 플레이어로서 그 선수를 존경하는' 경우가 많은 다른 게임계에서는 보기 어려운 일이다. WCS 예선전에서 이제동이 출전하자 목동을 가득 매운 여성 관중을 보며 곰TV 해설진이 여성이 많이 왔다며 주목하기도 하였다.
당시 전 소속 팀이었던 오리온이 해체되고, 스폰서가 없이 4U라는 팀으로 꾸릴 때, 임요환에게 억대 연봉의 스카웃 제의가 왔지만 "E스포츠의 판을 키우기 위해서는 팀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라며 거절했고 그 결과 SKT T1이 창단 되었다. 그리고 SKT T1에서 임요환은 국내 프로게이머 최초로 억대 연봉을 체결했다. 물론 이전에도 스폰서를 받는 게임단은 있었으며, 스타리그를 발전시키는 데 공헌한 것은 임요환만의 공은 아니며 다른 훌륭한 게이머들의 노력이 있음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억대 연봉 계약을 게이머 최초로 체결한 것은 의미가 크다. 당시까지만 해도 프로게이머란 상금 사냥꾼이었고, 워 3나 스타 2에서 스폰서 계약을 체결한 게이머들도 있지만 이는 네이밍 스폰서로서 전면 지원보다는 조금 더 느슨한 계약 관계이며, 선수들 역시 연봉보다는 대부분 상금에 의존해 생활을 한다. 그러나 기업들이 들어오면서 스타 1은 조금은 다른 양상이 되었다. 개인리그 우승 경험이 없는 신상문이 프로리그의 성적으로 억대 연봉을 받는 것은 해외에서는 드문 일이다. 즉, 그는 프로게이머를 상금 사냥꾼에서 직업으로 변화시키는 데 선봉 역할을 했다.
물론 바둑이나 테니스처럼 개인전 단위의 상금 헌팅 중심으로 돌아가는 스포츠도 얼마든지 있긴 하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상금 헌팅은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PC방 행사 돌고 그걸로 방값, 라면값 채워서 합숙소 연명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개인 스트리밍 방송도 없었고, 심지어 방송사도 유료 티켓 하나 팔지 못하는 구조였다. 그런 와중에 씬의 발전을 위해 기대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대기업의 투자밖에 없었던 것이다. 임요환은 이 투자를 개인이 아닌 팀 단위로 돌렸다. 이유로 임빠는 후배 게이머들을 위한 임요환의 각별한 희생이라 할 것이고, 임까는 그냥 개인 성적을 위해서도 합숙이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간에, 임요환이 정말로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지속하고 발전시켜야할 프로씬'''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은 명백하다. 만일 임요환이 이때 그냥 개인 스폰서를 받았다면? 다른 건 몰라도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2012년, 나아가 아프리카 방송 시대를 포함하면 현재까지도 이어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임요환이 e스포츠의 영원한 아이콘으로 평가 받는 이유는 그가 초대 슈퍼 스타인것도 있지만, 이렇게 e스포츠를 하나의 프로 스포츠로 인정받게 한 데 혁혁한 공이 있는 것도 한 몫한다.[47]
스타판의 역사를 농담 삼아 임빠와 임까의 빅뱅(...)으로 표현하는데, 이후 프로리그의 발전 방향을 보면 정말로 그랬다. SKT가 팀을 창단하고 투자하기 시작하자 경쟁 통신사였던 kt는 'e스포츠판 갈락티코' 정책을 표방하며 그동안 명목 수준으로 유지했던 당시 KTF 매직엔스를 개편해 박정석, 홍진호, 조용호 등을 대거 영입하며 수많은 억대 연봉 프로게이머를 탄생시켰고, 팬택이 투나SG를 인수해 팬택 앤 큐리텔 큐리어스를 창단하며 이윤열에게 3년 6억 의 계약을 맺으며 "프로게이머 최고액 계약을 맺었다!"라고 언플을 때리는 등 기업들은 경쟁해 투자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스타 게이머를 중심으로 스폰서를 받아 팀을 창단하는 구조는 박성준의 POS, 오영종의 Plus 등 다른 팀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2007년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공군 ACE(물론 이 또한 임요환의 입대로 만들어진 것이다)를 포함해 12개 구단이 경쟁하는 주 5일 프로리그의 체계를 갖추게 된다.
임요환은 국내 스타 팬덤 문화와 방송을 만들어낸 간판임이 분명하다. 물론 그의 공로를 주목한 엄재경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포장도 포장지 안에 들어갈 내용물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임요환이 없었다면 엄재경이 아무리 애를 썼어도 팬덤 문화를 지금의 위치로 올려놓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후 e-스포츠판의 저변이 스타크래프트 단일 종목에서 여러 다른 게임들까지 넓어지면서 스타 2에는 정종현/어윤수/조성주, 카트라이더에는 문호준/유영혁, 리그 오브 레전드에는 페이커/앰비션/스코어, 오버워치에는 류제홍/쪼낙/카르페 등의 여러 스타 선수들이 생겨났지만, 그 스타 선수들이 활약할 수 있는 게임판과 무대를 깔아준 시초는 임요환이었음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이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으로 임요환을 높이고 김슬기나 김대건처럼 임요환과 동시기, 혹은 약간 이전의 시기에 이름을 날렸던 테란 게이머들은 베틀넷 1.07 버전 업데이트 후, 임요환 이후 세대에게는 업적을 인정받지 못하게 되기도 했다. 임요환 개인의 창발이 아니었던 것들이 임요환의 창발로 여겨지는 등. 또한 그의 뒤를 이어 시대의 지배자로 등장한 이윤열은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구세주이자 가장 큰 흥행카드였던 임요환의 자리를 위협한다는 이유만으로 악성 팬덤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악성 팬덤은 어느 게이머에게나 존재했다. 스타판은 임빠와 임까로 나뉜다는 말처럼 많은 팬 수만큼 악질 안티에게 시달린 것이 임요환이다. 재밌게도 이와는 별개로 이윤열과 사석에서의 사이는 좋다. 결승전에 마우스를 빌려주는 등 이윤열의 임요환 군 입대 고별사를 보면 존경의 마음이 거짓이 아님이 느껴진다. 그냥 방송에서 대놓고 '''요환이 형이 닦아 놓은 길을 따라가겠다'''고 말하는 게 이윤열.
그리고 임요환이 병역의 의무로 입대할 시기가 되자 공군에서 그를 영입하기 위해 연예병사 같은 홍보 병과로 공군 ACE를 창단해서 후배 프로게이머들의 병역 특례를 시켜 주었으며, 프로게이머로서 청와대에 초청받았을 때에 임요환은 정장 대신 SKT T1 유니폼을 입고 갔다.
7. 관련 사건
7.1. 김민구 ppp 사건
임요환이 승부를 하면서 가장 크게 논란이 된 사건 중에 하나가 2007년 4월 21일의 MSL 서바이버토너먼트 최종전 경기였다. 상대는 김민구 였는데, 김민구의 입장에서 해당 경기는 데뷔 이후 MSL 본선으로 첫 진출할 수 있던 일생의 기회였다. 임요환은 '''초반 벙커 러시를 시도했다가 막히고, 마지막 올인성 러시를 갔다가 그 것마저도 막히자, 경기 종반 '마린 총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며 PPP(퍼즈요청)'''해 버렸고, 결국 '''창석준 심판의 재경기 선언''' 끝에, 김민구는 임요환에게 재경기에서 패배하고 탈락한다. 문제는 임요환이 초반 벙커 러시를 시도했다가 막힌 시점에 PPP를 쳤기 때문에 발생했다. 맵이 리버스 템플이라서 테란에 이점이 있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김민구로 승부의 무게추가 옮겨갔던 시점이다. 경기가 끝난 후 김민구는 표정 관리가 안 되는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었고, 이후로 커뮤니티는 다시 한번 임요환을 비판하는 여론으로 불타올랐다.
PPP 사건은 하도 논란이 커서인지 MBC게임의 리그인 MSL 서바이버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온게임넷의 스타 뒷담화에서 해당 사건의 정황을 설명한 적이 있다. 임요환이 당시 ppp를 요청했던 것은 단순히 게임 소리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니라 '공격' 소리에 이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벙커링이 해당 게임의 '''첫 번째 공격'''이었기 때문에 그 이전까지는 공격 사운드가 이상했던 것을 몰랐고, 벙커링을 시도하면서야 공격 사운드 이상을 알아챈 것이다. 물론 김민구의 입장에서야 승기를 잡은 경기를 상대선수의 사운드 이상 주장으로 재경기 판정이 내려졌기 대문에 억울한 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임요환의 입장에서는 "사운드 이상으로 공격에 실패했다!"라는 주장도 가능할 것이다. 사실 엄밀하게 따지자면 심판진이 임요환의 '공격 사운드 오류가 있다' 라는 주장을 확인한 이후에 임요환의 주장을 기각하지 않고 수용한 것이므로[48] 규정적 절차에 따르면 임요환이 문제될 것은 없다. 사실 당시에도 심판진의'우세승'제도라는 것이 있었고, 설령 김민구에 대한 우세승 판정을 하지 않더라도 '재경기' 판정이 아닌 '음향 오류를 해결한 상태에서 세이브 파일을 이용한 경기 재진행' 과 같은 판정이 나왔을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경우에도 "임요환이 사운드 이상에도 불구하고 벙커링을 성공했을 때도 사운드 이상이 있다며 굳이 PPP를 쳤겠느냐?"는 식의 비꼬는 뒷말이 나올 수는 있을 것이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뒷말은 실제로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고서야 의미가 없는 말이다.
7.2. 전적과 본좌 논쟁
임이최 라인의 필두이지만 이것이 정설화되기까지는 많은 논쟁이 있었는데, 이것은 많은 스타 팬들이 그의 최전성기를 코카콜라'배 스타리그에서 1차 KPGA(MSL의 전신)까지의 짧은 기간으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최전성기는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1패 우승 + 동 시즌에 진행된 게임 큐 전승 우승'을 이뤄냈던 1.08 직전의 1.07시대, 즉 2000년~2001년 중반에 해당하는 기간이고, 한빛소프트'배 스타리그 이전부터 배틀넷이나 각종 대회에서 명성을 쌓았다. 이 시기는 테란이 세 종족 중 최약체로 꼽히며 테란 유저 또한 많지 않던 시절이고 수많은 대회가 만들어지고 사라졌다. 그러한 와중에 '''양대리그가 정립되며 이전에 그가 우승했던 당시의 메이저 대회들은 모두 묻혔고, 그런 이유로 그의 데뷔전 및 총전적, 승률 등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기록이 이루어지기도 전이 그의 전성기인 탓에 관계자들조차도 정확한 전적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비단 일부 임빠들만의 주장이 아닌 여러 매체에서 공식으로 언급되었던 부분. 이것이 그의 전적과 승률이 확실치 않은 이유이고, 이것이 우승 횟수와 그에 따라 본좌라인의 네 명 중 가장 전적이 적은 것이 아니냐는 본좌 논쟁이 일어났다. 또 2001년 후기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11승 4패로 우승하고 동시에 당시 스타리그보다 더 중요한 대회었던 WCG 국가대표 선발전을 10승 무패로 우승, 2001 WCG에서 전승 우승을 하였다. 다음 해인 2002 WCG에서도 홍진호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스타크래프트에서는 유일하게 2연패를 차지한 프로게이머가 되었는데 2013 WCG를 마지막으로 폐지되면서 이 기록은 영원히 깨지지 않게 됐다. 이처럼 2001년 최고의 선수가 누구냐는 말에 임요환이라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
4대 본좌의 첫 번째 기준인 MSL 3회 우승, 온게임넷 스타리그 1회 우승을 들어 '본좌 기준에 미달되는 것이 아니냐'라는 주장을 내세우는데, 사실 '''처음엔 그런 거 없었다.''' 이 기준도 초기에는 브루드 워 양대 개인 리그 3회 우승이었으며 후에 덧씌워진 것.
처음 본좌론이 대두될 무렵 본좌의 요건은 대략 ''''시대를 이끌었는가, 정상의 자리에 흔들림 없이 오래 머물렀는가, 그리고 대다수의 스타 팬이 본좌라 할 만큼의 포스가 있었는가''''의 세가지 정도로 스타 팬들 사이에서 '재미로' 일컬어지던 것이었을 뿐이다. 지금의 조건은 4대 본좌론이 굳어진 후 스타 팬들이 덧붙이고 덧붙여 만들어낸 기준이므로 그걸 다시 임요환에게 되돌려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임요환이 걸어온 시대 영상[49]
본좌론은 스타 팬들이 서서히 인정해 가며 굳어진 것이지 철저히 우승 횟수나 경력을 토대로 하여 하루아침에 누가 떡하니 내민 것이 아니다. 최전성기 시작점이 1.08이 아닌 1.07 시대였음에도 그가 쌓은 경력이 나머지 본좌들에 뒤지지 않고, 최전성기 이후에도 WCG 우승, 스타리그 준우승 등 꾸준한 전적을 쌓으며 지금까지 게이머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에서 그를 둘러싼 본좌 논쟁은 무의미한 일로 보아야 맞을 것이다. 애초에 재미로 시작한 일에 죽자고 달려드는 빠와 까 때문에 문제시되는 것뿐.
또한 선수 생활을 엄청나게 오래했고 이미 나이를 많이 먹고 나서도 많은 게임을 했기 때문에 총 승률이 낮아지는 올드 게이머의 전형성을 그대로 받았다.
7.3. 승부욕
경기가 기울면 쉽게 GG를 선언하는 후배 게이머들과는 다르게 최후까지 집요하게 버티는 편으로 그것으로 무수한 관광을 당했지만, 마이큐브 스타리그에서 펼쳐진 도진광과의 경기에서와 같은 집요한 버티기로 역전승을 거두는 경우도 간혹 존재한다. 특히 위의 도진광과의 경기는 이른바 '패러독스 대첩'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자세한 것은 경기 영상으로).
게다가 승부욕과 더불어 스탑 러커 혹은 드랍십 이동 경로의 귀맵 논란이라든지 얼라이마인, 문준희 전에서의 채팅, 벙커링 실패 후의 ppp 사건 등 이슈도 많았다. 사건의 유무에 논란이 있는 사건이 아닌 실제로 드러났던 사건만 해도 얼라이 마인, 채팅 러시, 삼연벙, 감동의 골마, 김민구와의 경기에서의 사건 등 논쟁을 일으킬 만한 사건이 '''5'''번이나 된다. 이 중 실제로 얼라이마인 사건(해당 문서로)도 위키에 관련 내용이 적시되어있고, 김민구 사건도 위에 나와있다.
이처럼 방송 경기의 규정 중 상당수가 이로써 만들어진 것도 사실이라고 하나 '''저 사건들은 규정을 알면서도 악용했다는 것은 임까들의 주장이다.''' 많은 프로게이머가 아마추어의 마음으로 어뷰징(승부조작)은 했지만 나만 한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로 규정을 악용했다.
또 지금은 은퇴한 올드 게이머 송병석은 "귀로 러커를 확인했다 해도 마린은 전진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지만...다른 게이머가 귀맵을 의심받을 때는 프로게이머로서의 자질을 칭찬했다.
사실 귀맵은 지금도 논란이 되는 중요한 떡밥이고, 이에 따라 MBC GAME의 경기장(코엑스 시절의 세중게임월드와 히어로센터)에는 방음벽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양대 방송사에서 사용 중인 타임머신이 생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여하튼 임요환의 이런 성향의 영향이 과거에는 금기시돼 왔던 저그의 4드론을 비롯한 도박 전략을 정규 리그로 끌어 올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전에도 종종 4드론을 시도하는 사람은 있었고, 임요환 말고도 날빌을 쓴 사람은 많았다는 점에서 저 주장은 무리가 있다. 올드 게이머중 변성철이라는 게이머가 4드론으로 유명했고, 최초로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5드론을 시도하기도 했다. 다만 그만큼 날빌을 자주 사용했기에 날빌로 이겼을 때 상대적으로 덜 까이게 되는 계기 정도는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임요환 특유의 전략적 승부수를 자주 띄우는 스타일에서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수비적 중후반 싸움 타파를 원하는 팬들에게는 환영받지만 중후반 운영 싸움을 선호하는 팬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임요환은 반칙을 한 것도 아닌 데다가 '''스타크래프트는 뻔한 전략만을 가지고 싸우는 게임이 아니다.''' 애시당초 스타크래프트가 인기 있었던 근본 원인이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게임'''이라는 데 있고, 사실상 이 점 때문에 스타크래프트를 보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툭 까놓고 말해서, 맨날 하던 대로 무난하게 앞마당 가져간 후에 배럭이나 팩토리 쫙 늘리고 병력 뽑아서 밀면 이기고 밀리면 지는 평범한 게임들로 점철되었다면 이스포츠 역사에서 스타가 15년에 달하는 역사를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중후반 운영전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선호받지 않을 수 있지만, 이는 취향의 문제이지 비난할 만한 사항까지는 아니다. 또한 임요환이 초중반 전략을 잘 구사하긴 하지만, 그렇지 않고 무난하게 운영을 한 경기도 상당히 많았다. 사실 전성기 시절에는 중후반 운영에도 능수능란했던 게 임요환이다. 그 근거로 SO1배 스타리그에서 박지호를 상대로 운영으로 이긴 판이 그 증거다. 전성기 시절엔 저그로 홍진호, 조용호, 박경락, 박성준 이런선수들을 운영으로 이긴적이 많다. 테테전에서도 이윤열과는 호각이었고, 최연성과의 사제대결에서도 운영으로도 이긴적이 있다. 워낙 동시대에 이윤열, 최연성이 임요환보다 상대적으로 잘해서 그렇고, 프로토스전에서 특히 박정석, 강민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줘서 그럴 측면이 있다. 오히려 올드세대 쇠퇴이후 드래프트 세대에서는 중후반전에만 치중해서 노잼이라는 평가가 많다.
스타크래프트 2에서도 초반 날빌에 치중하다 패배하며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4월을 기점으로 다시 부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적극적으로 200 대 200 운영 싸움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중. 특히 날빌로 인식되던 전진 병영을 운영으로 끌고 들어와 이후 테란 게이머들이 '''전진 병영 운영'''이라는 괴이한 빌드를 자주 보여주고 있다. 이 빌드의 장점이라면 해병의 동선이 짧아져서 초반 빠른 압박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상대방이 전진 병영을 보고 부담을 느껴 병력을 뽑아 막을 채비를 하느라 초반 잠시나마 소극적 운영을 하게 된다는 것. 그 동안 임요환은 병영을 뒤로 돌리고 일꾼을 생산하며 운영을 준비한다. 또 다전제에서는 계속 전진 병영을 하다가 갑자기 한 판 뒤에 틀어박히며 더블이나 의료선 드랍을 준비하는 등 그분 답게 심리전의 수단으로도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다.
간혹 저기에 희생된(?) 게이머들의 인생을 망치게 했다면서 저 경기 중에 하나가 언급되는 날엔 가루가 되도록 까인다. 심지어 EVER 2004 이후에는 삼연벙의 여파로 한동안 스갤 대부분의 게시글이 임요환을 까거나 저주하는 내용뿐이었을 정도. 사실 삼연벙은 홍진호의 어이없는 붕괴라고 불러도 무방했지만 그냥 임요환만 까였다.
8차 서바이버 때 인터뷰를 예로 들어 승부욕으로 후배마저 희생시켰다고 말하는 까들도 있다. 8차 서바이버 때 윤종민은 김택용과 시합이 있었고 이 시합의 승자가 다시 한 번 임요환과 맞붙어 여기서 이긴 사람이 9차 MSL에 진출할 수 있었다. 문제는 임요환이 김택용을 이기고 올라온 윤종민을 이긴 뒤, 인터뷰에서 '윤종민에게 프로토스전 연습만 시켰고, 그래서 이긴 거 같다'라고 이야기 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상식상으로 개인 리그에서 팀 선배가 테란전 연습을 하지 말라고 한다 해서 따른다는 것도 믿기 어렵고, 인터뷰에서 저런 막장스러운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농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식상으로 임요환이 프로토스전 연습만 시켰다면 왜 자기 입으로 인터뷰에서 떠들겠나(...). 거기에 윤종민은 팀플을 주력으로 하던 게이머여서 누구보다 개인리그 전적에 갈망이 큰 상황이었다.
훗날 MLG에서 같은 팀원인 문성원과 코드 S 진출 티켓을 놓고 경기를 펼칠 때 '문성원이 임요환을 위해 져줄 게 분명하다'라는 루머가 돌자 문성원을 따로 불러 "루머 따위 신경쓰지 마라. 우린 프로게이머니까 게임에만 집중하면 된다"라는 충고를 하거나 패배할 때 "꼭 우승해라"라는 말을 쓴 것, 그 경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문성원과 결승전 상대인 정종현 상대 대책 회의를 가지기도 했던 멘탈을 보면 윤종민의 인터뷰 일화를 '정말 임요환이 후배의 앞길을 망쳤다'라고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후에는 오히려 임요환이 문성원에게 져줬다는 소문도 잠깐 돌았다. 마지막 3경기가 워낙 보기 드문 역전승이라. 그런데 문성원은 이런 극적 역전승이 워낙 많은 게이머다.
이 승부욕 때문인지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당시 거의 모든 선수들[50] 이 팬들에게 의혹을 받고 있는 와중에도 임요환은 농담으로조차 의심받지 않았다. 악착같은 집요함과 승부 근성을 보인 임요환에게 고의적 승부 조작이라는 그림자가 스며들 틈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그 믿음의 이유인데 한 마디로, ''''임요환은 워낙에 승부욕이 강해서 억만금을 주더라도 상대방에게 고의로 져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본인이 고의로 져주는 것을 절대로 받아들일 리가 없다.''''라는 것이다. 당시 '결승에서 자신의 제자인 최연성에게 지고 울면서 결승전 시상식 분위기를 망칠 정도로 승부욕이 엄청난 사람에게 그깟 돈 몇 푼 따위가 유혹의 수단이 될 수가 없다'라는 주장이다.
그의 승부욕을 평가하자면, 어느 프로게이머가 승리를 마다할 것이며 어떤 사내가 최강자를 꿈꾸는 야심이 없겠는가? 그저 임요환의 재능이 이쪽이라 그런 것이다.
임요환의 승부욕에 있어서 다른 점이라면 그 승부욕을 철저히 게임 내적으로만 한다는 것이다. 절대로 승부욕이랍시고 신경질을 일절 내진 않았다. 흔히 말하는 식빵도 안하는 선수다. 게임졌다고 울지언정 최소한 팬들 앞에서 키보드나 마우스 파괴하는 소위 샷건은 하질 않았다. 다른 종목을 보면 레전드급 선수들이 신경질 내고 화를 못참아서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불쾌감을 표시하고 타팀 선수에게 도발, 성질을 내는데 임요환은 다른건 몰라도 '''인간성'''하나 만큼은 정말 보살이라고 할 만큼 게임 외적으로는 깨끗한 선수다. 군대에서 자기 괴롭힌 강도경도 용서한 사람이다.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고, 팬서비스, 쇼맨십도 훌륭한 선수다. 허재, 서장훈, 김연경, 오재원, 기성용, 이천수처럼 승부욕이랍시고 성질내는 이런선수들은 흔히 말해서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물론 허재, 서장훈은 소위 피해자인게 많긴 해도 성질 더러운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거기에 임요환은 최소한 도발이나 인터뷰 실수같은 그런 행위도 하질 않는다.
7.4. 슬레이어스 해체 사건
8. 개인 방송
임요환 유튜브
T1 공식 트위치 계정에서 매주 화요일 금요일에 방송을 한다. 임요환의 유튜브 채널에서는 T1 트위치에서 방송한 내용 등이 편집되어 올라온다.
2017년 8월 15일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출시 기념으로 카카오TV에서 방송을 시작했다. 카카오TV와 1년 독점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타 플랫폼으로의 동시 송출은 불가능하며, 생방송 후에 녹화본 및 편집본이 유튜브 채널에 올라오고 있다. 임요환의 유튜브 채널 Boxer TV는 개국 2주 만에 구독자 4만 명을 끌어모았다. 이윤열, 박정석, 이영호, 이제동 등 타 게이머들의 유튜브 채널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 속도이다. 이윤열은 2년이 다 돼가는 채널임에도 구독자 2.5만이고 개인 방송을 시작할 때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이영호도 1년 반이 지났지만 현재 8만 명이다. 단순 비교로도 과연 한때 60만 팬 카페를 보유했던 임요환이라 할 만한 수치이다. 한편 해외에도 많은 팬이 있는 임요환이라면 트위치 등의 플랫폼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고 보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카카오TV와 계약한 것에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임요환 옆에서 인실 퀸이 메모장을 들고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무난하게 방송 초보 아재 임요환이 추억을 파는 방송이 되었다. 방송 시간은 매주 토요일 오후 10시, 격주로 화요일 10시이다. 방송에서 화토토 화토토라고 강조했다. 방송 종목은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포커, 배틀그라운드 등이 있다.
한편 임요환에게 배틀넷 도중 패드립을 시전한 유저는 바로 김가연이 아이디를 적어서 인실좆을 시전해버렸다. 그리고 채팅창은 클린해졌다고... 참고로 김가연은 최란과 더불어 연예계에서도 알아주는 고소왕이며 경중을 안 따지고 조금이라도 악플이 나오면 절대로 봐주지 않는다. 더군다나 집안이 집안인지라 동원할 변호사도 높은 수준이고, 임요환이 T1 소속 크리에이터가 되면서 우군이 더 생겨서 임요환에게 농담 식으로 말 잘못 했다 재판에 끌려나오는 게 현실화될 수 있다. 더군다나 김가연은 배용준에게 재판에서 승소한 적이 있다.[51] 이 때문에 임요환의 공식 트위치 채널은 인터넷 방송 중에선 유례 없이 채팅창이 상당히 클린한 편이다. 비슷한 예가 트위치 스패너(관리자) 맹솔지가 배우자인 강찬용. 물론 이날 고소만 시전한 것은 아니고, 채팅창을 보다가 재미있는 드립을 시전한 사람에게는 상품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8월 22일에는 도진광을 게스트로 초대해서 패러독스에서 벌어진 8.15 대첩 VOD를 감상했다. 그 다음 게스트로는 오현민, 홍진호, 호우티비를 초대하여 배틀그라운드를 진행하였다. 홍진호를 초대한 이유에는 '''2'''번째 게스트에는 당연히 홍진호를 불러야 한다고.
9월 17일에는 카카오TV에서 주관하는 배틀그라운드 카카오 PD 마스터즈 시즌 2 듀오 부문에 출전했다.
9월 30일에는 김정민해설, 홍진호를 초대해 임진록을 진행했는데 종목은 스타, 배그, 포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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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 컨텐츠는 배틀그라운드와 스타크래프트 래더 게임 방송으로 여기에 비정기로 옛 동료 프로게이머 등을 방송에 섭외하여 유즈맵이나 팀 플레이 등을 함께 하기도 한다.
한 달에 한번 홍진호, 박정석, 이윤열과 함께 천왕전 컨텐츠(지금은 천왕전이라기 보다는 '''임콩등벼'''라는 별칭이 더 많이 불린다)를 하기도 한다.
2019년 3월 31일 오후 8시경 트위치에서 투컴 세팅으로 방송을 시작했고, 바로 파트너 스트리머가 되었다.[52] 스타크래프트를 하였으며, 스팀에서 포커 게임을 하려 했으나 사운드 문제로 잡담을 하다 방종하였다. 트위치 방송이 처음이라 트수들의 드립을 이해 못 하거나, 고액 도네이션을 패싱해버리는 등의 경우가 있었는데, 방송 세팅을 해 주던 호우티비가 알려 주는 모습이 보였다. 첫방인데도 불구하고 시청자 수는 7천 명을 넘겼으며, 방종 시에는 방송 중이던 김정민에게 호스팅을 했다. 배우자 김가연이 방송에 등장하고, 채팅도 간간히 함으로써 채팅방은 유례 없이 클린하였다. 앞으로도 트위치 방송을 계속 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와 프로미넌스 포커 등과 같은 게임을 제하고도 Apex 레전드나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게임에도 관심을 보였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도네이션으로 초보자 가이드 읽고 오라거나 박정석 감독에게 배우고 오라는 훈수가 들어왔고 실제로 박정석을 스승으로 초빙했다. 그리고 롤 닉네임은 3연벙이다. 이것을 본 홍진호의 반응은 "응~ 차단."이었다. #
SKT T1 소속 후배인 Clid와 롤을 같이 하기도 했다. # 티모로 0킬 9데스를 기록했는데 이 광경을 후배들이 지켜봤다. #
2019년 스타크래프트 카봇 모드를 직접 플레이해 보기도 했다. 상대가 터지는 맛이 안 느껴진다고.
2019년 11월부터 T1 소속 스트리머, 크리에이터로 가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유일하게 T1 브랜드를 합법적, 공식적으로 쓸 수 있는 스타크래프트1 전프로가 되었다.[53]
2020년 3월 T1 채리티 스트림의 일환으로 커즈, 테디 선수와 일반 게임 접대롤을 같이 하기도 했는데 졌다(...). #
2020년 4월 18일 T1 공식 트위치 계정에서 수요일, 토요일 밤 고정 방송을 할 것이라 밝혔다. 그리고 아내 김가연의 인스타로 'BOXER'가 마킹된 나이키 T1 유니폼 실착사진이 올라왔는데 앞 문구가 '내꿈은 T1 연습생'. #
트위치 방송으로도 롤 선생님을 초빙해 리그 오브 레전드 솔로랭크를 돌리고, 롤토체스도 스승을 초빙해 하는 등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9. 그 외
박정석의 재발견이 이루어지고 나도현에서 민찬기까지 이어지는 잘생긴 선수들의 등장 덕분에 지금은 많이 잊혔지만, 초창기 임요환은 '''미남 선수'''로 유명했다. 사실 한빛배나 코카콜라배를 전후하여 화면에 담긴 임요환의 모습은 곱상하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미청년으로 특별히 꾸미지 않아도 기본은 넘는 외모와 무시무시한 실력, 그리고 과묵 컨셉이 겹쳐졌기 때문에 인기가 더 많았다. 이때 임요환은 당시 기준으로 세련된 스타일이었던 가르마 머리를 고수했고, 좋은 피부를 타고나서 곱상하다는 이미지와 외모가 더 돋보였었다.
이후 머리 크기의 재발견(…)과 본인의 노화, 성적 하락, 성격과 승부욕 논쟁 등이 이어지며 이런 이미지는 서서히 줄어들게 되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나이를 고려해봐도 꽤 잘생긴 편이기는 하다. 방송에 출연할 때도 종종 그런 소리를 듣곤 한다. 남자들만 보는 스포츠로 여겨졌던 이스포츠에 여성들을 끌어들인 최대 공로자 중 한 명이다.
8시 뉴스에 예비군 훈련 장면이 우연히 포착됐다.
한국 e스포츠에 사실상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로, 지금껏 많은 일에 관여해 왔고 또 그 인기로 많은 안티와 선입견을 낳기도 했지만 출발 드림팀, 아침마당, 파워인터뷰 등 많은 공중파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e스포츠의 인지도 향상에 기여해 온 것이 사실이다.(임까들이 아무리 부정한들) 아무튼 그가 e스포츠의 아이콘이자 역사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듯.
과거에 프로게이머 5명이 중국 원정을 떠난 일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중국 스타크래프트가 지금보다 훨씬 더 듣보잡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5: 0을 예상했지만 스코어는 4: 1. 장밍루(T)에게 (당시에는 실력도 출중했던, 거기에 해외에는 세계 최강으로 인식되었던) 임요환이 패배했다는 사실에 인터넷에서는 '''만리장성 테란을 영입하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또한 시합에서 타자를 많이 치는 편이며, 대표되는 것은 군대 가기 전 고별 시합 때의 ''''골리앗들이 합체를 하던데?''''. 그의 채팅 중 유명한 것은 문준희와의 듀얼 토너먼트 포르테 맵 경기의 '쫍아...ㅠㅠ'. 이 채팅에 혹한 문준희는 떡밥을 물어버린 물고기처럼 문준희는 입구를 계속 조여대면서 임요환의 유닛이 몰멀이나 진출을 못하게끔 대치 하였으나 역으로 임요환은 이렇게 쳐 놓고서는 이미 타 스타팅에 몰래 멀티를 해놓은 뒤 채팅에 제대로 낚여버린 문준희를 완전히 개발살냈다. 사실 포르테 맵이 좁은 것은 사실이고 '쫍아...ㅠㅠ'가 몰래 멀티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니 그분이 거짓말한 것은 아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선수들의 채팅은 자유로웠고 사건 당사자가 까와 빠를 몰고 다니는 그분이라서 화제가 되었다는 것도 크다. 애초에, 상대방을 조여놓고 몰래 멀티를 체크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고, 문준희는 이 기본중 기본인 일조차 수행하지 않아 게임을 말아먹었을 뿐이다. 이 사건 뒤, 게임 내 채팅 행위에의 격한 논쟁이 스타 커뮤니티에서 벌어졌다. 결국 얼마 후 경기 중 자유롭게 채팅을 하는 행위에 제재를 가하게 된다. 이후 비슷한 사례로 손찬웅이라는 GG 대신 zizi yO를 사용하기로 이름이 높은 게이머가 있었는데, 다 이긴 경기에서 '상대의 GG가 나오기 전에' zizi yO를 쳐 버린다. 이 경기는 우여곡절 끝에 손찬웅이 이기지만, KeSPA 공식 경기에서 GG와 PPP 이외의 채팅을 할 경우 벌금을 물게 하는 규칙이 만들어졌다.[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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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60000번 탁탁, 15분씩 20번, 영어로도 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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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호의 콩간지와 더불어 합성 소스로 잘 사용되는 이 짤방이 있다. 흔히 말하는 '''임간지''' 짤방. 하도 합성이 많이 되어서 원본마저 합성으로 보일 정도이지만 어쨌든 정말 많이 쓰이긴 쓰였다. '''인간의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표정들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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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유명했던 소위 '드랍킥' 짤방. 위의 임간지 짤방과 함께 한때 필수요소였던 짤방이었다. 그의 팬 카페 이름과 합쳐져 '임요환님의 드랍킥이다'라는 말도 따라 유행. 임요환 드랍킥의 비밀
10월 27일 기사도 연승전에서는 3초간 출현했다 나갔다(...). 하지만 그 포스만으로도 대기실은 술렁술렁에 채팅방은 폭주했다.
협회와 UNN들이 그분을 까는 기사를 쓰긴 했으나 이윤열과는 달리 아직 그분은 협회가 은퇴 처리를 안 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10-11 프로리그 개막전 홍보 전단물에서는 이미 스타 2로 전향한 그분이 실려 있을 정도. 아직도 요환 단물을 빨아먹으려는 협회의 검은 속내가 보인다.
그리고 GSL 시즌 2 8강전 이윤열과의 경기 후 협회는 전격적으로 임요환을 은퇴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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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L에서 이윤열에게 승리한 후 포모스의 모습.
9.1. 임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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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 코카콜라 스타리그 결승 제5경기(임요환 vs 홍진호)
임요환과의 라이벌로 여겨지는 홍진호와의 경기를 일컫는 말. 대체로 4강전 이상에서 임요환과 홍진호의 경기를 말하지만 둘 다 몰락한 이후부터는 그냥 만나기만 해도 임진록이라고 한다. 자세한 사항은 임진록 항목의 4번으로. 임진록을 시초로 머머전, 택마록 등 많은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었으며 임요환이 입대하기 직전까지 수많은 떡밥을 제공했다. 물론 임요환의 입대 후 둘 다 제대로 몰락하는 바람에 더 이상 리턴 매치를 구경하기는 힘들게 되었다. 임요환이 입대하기 직전 열린 슈퍼파이트의 마지막 임진록에서는 '내가 져도 전적은 내가 더 앞선다'며 임요환이 홍진호를 대놓고 약올리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한빛소프트,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으로부터 2002 WCG 우승까지의 기간을 임요환의 전성기로 생각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사실 뉴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딱히 케이블을 타지도 않았으며 그나마 기록도 대부분 소실된 진짜 전성기보다 기록 및 영상 자료가 남아 있으며 임진록이라는 이슈도 있는 이 시대가 더욱 임요환의 전성기 같은 느낌일지도 모른다.
2009년 7월 24일, 또 한번 임진록이 찾아왔는데 결국 3연벙에 이은 2연핵으로 승리. 그리고 임정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9년 9월 26일 올스타전에서 홍진호를 메카닉으로 제압하며 상대 전적 63전 35승 28패를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 "꼼수 대마왕"이라며 매도를 하는 홍진호, "메카 사기" 라며 투덜대는 홍진호, "조... 좋은 헌납이다" 라는 명대사를 남긴 임요환 등 여러 채팅을 주고받는 모습이 있었다. 메카 사기라며 홍진호가 투덜댈 때 엄재경은 벙커링도 사기라는 벙커링 드립을 했고, 이전에도 지속된 벙커링 드립을 시전했다.
2009년 11월 24일에 열린 또 한 번의 임진록에서, 임요환은 89'''2'''일 만에 홍진호에게 패한다. 이번에도 핵을 '''두''' 번이나 날렸지만, 홍진호의 전력엔 큰 타격을 주지 못했고, 첫 번째 핵 시도에선 오히려 홍진호가 이레디에잇이 걸린 울트라로 고스트를 죽이려고 하는 기지를 발휘했기 때문에 오히려 홍진호가 더 돋보였다. 단 두 번째 핵 발사시 고스트의 레이저 포인트를 드론 머리 위로 지정하여 어디에 쏘려고 하는지 모르게 한 것은 역시 임요환다운 센스였다.
2010년 8월 14일에 프로리그 올스타전이 열렸는데 이때 다시 한번 임진록이 개막, 임요환은 다시 한 번 6개월만에 홍진호에서 패한다. 이때 마지막에 핵을 준비했지만 홍진호에게 커맨드 센터를 먹히면서 그대로 임요환이 참패. 그리고 홍진호는 이 때 안드로메다를 정말로 보여줬다. 하지만 세리머니로 애인하고 악수하다가 목졸림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큰 웃음을 선사. 그리고 그분은 백스테이지에서 홍진호에게 복수를 했다. 다만 황신의 행운 러커의 활약과 자신이 보여주고 싶어한 플레이가 나오지 못해 대단히 아쉬워했다.
2012년 8월 4일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마지막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이벤트 매치로 임진록이 성사되었다. 마린 산개로 홍진호의 러커 여러 마리를 잡아내는 컨트롤을 보여줬지만 소떼에 커맨드 센터를 '''두''' 개 먹히고 마지막 임진록에서 패배, 경기가 끝난 후 홍진호와 함께 콩댄스를 추었다.
2016년 2월 20일 KT GlGA 레전드 매치에 홍진호, 이윤열, 기욤 패트리와 함께 출전했으며 4강에서는 홍진호와 함께 A조에서 경기를 했으나 홍진호한테 0:2로 패배해 콩댄스를 췄다. 경기 이후에 콩댄스를 춰서 홍진호를 끌어들이려고 했으나 홍진호가 눈치채고 도망갔다. 그 후 3.4위전에서 B조 패자 기욤 패트리에게 2:0으로 승리해 3위로 마감했다.
2017년 7월 30일 광안리에서 열린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런칭 이벤트 'GG 투게더'의 이벤트전 2경기에서 임진록이 열렸다. 여유 있는 표정의 임요환과 약간 긴장한 표정의 홍진호가 맞붙었는데 1세트 투혼에서는 홍진호가 난타전 끝에 울트라리스크를 앞세워 승리했고, 2세트 신 개마고원에서는 임요환이 빠른 타이밍 러시로 승리를 거두며 스타크래프트에서 나온 약 5년 만의 임진록은 무승부로 사이 좋게 끝났다. 이건 리마스터 버전이다.
2018년 2월 22일 모지티비에서 장동민, 홍진호와 함께 촬영한 홀덤 임진록 포커페이스가 첫 방송이 되었다. MC는 장동민. 방송은 네이버tv에서 볼 수 있으며 원래는 화, 수, 목에 업데이트되었으나 16회부터는 월, 화, 수, 목에 업데이트되었다.[55] 팀원은 이재원, 뮤지, 최성준. 첫 번째 대결에서는 1:1 역량 대결 전패에 2:2 대결 1라운드까지 지고 홍진호에게 팀장 자질을 디스당했으나 역전하며 승리했다. 뮤지가 2:2 대결 도중 카드를 섞은 게 역전승의 계기였다.
하지만 두 번째 1:1 토너먼트 대결에서 팀원인 최성준과 뮤지의 활약에도 마지막에 최현우에게 이재원이 지면서 홍진호 팀에게 지고 만다. 세 번째는 개인전으로 진행되어 8명(본인, 홍진호 포함)이 A, B조로 나뉘어 대결을 해 각조의 승자 1인이 결승전을 치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시작전 홍진호가 박빙이라고 하니까 장동민과 같이 홍진호를 디스하는 것은 덤. 최성준, 홍진호, 로빈 데이아나와 함께 B조에 속했으며[56] 세 번의 경기 끝에 J원페어로 Q원페어를 든 최성준에게 패하며B조의 첫 번째 탈락자가 된다. 그 이후 홍진호가 최성준에게 패하며 B조 두 번째 탈락자가 되자 장동민이 두 사람을 동시에 깠다. 최종 우승은 로빈 데이아나가 차지했다.
9.2. 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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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 SKY 스타리그 준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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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EVER 스타리그 준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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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 So1 스타리그 준우승
지금까지 온게임넷 스타리그에 진출하여 2개 대회에서 우승하고 4개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 준우승을 차지한 4개 대회가 하필이면 모두 가을 시즌과 겹치고 있는 상황. 본래 3개 대회째 준우승할 때까지만 해도 그의 대 프로토스 승률과 연관되어 초대 토막에 올랐지만, 그의 밑에 있는 토본 선생이나 그 뒤를 잇는 토막들에 비한다면 그다지 토막이라 불릴 선수는 아닌 듯.
하지만 2004 '에버 스타리그'에서 최연성에게 3:2로 진 것을 보면, 비단 프로토스를 상대로 한 가을의 전설 피해자로만 볼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GSL에서도 이어져 결승 진출을 눈앞에 놓고 4:0 완패를 당했다. 이제는 정말 굿이라도 해야 할지도...
2011 WCG 해설에서 프로토스가 선전하고 전용준 캐스터가 가을을 언급하자 "지금 제 앞에서 가을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라고 반응했다.
질레트배까지는 '''임요환을 이기면 우승한다'''는 징크스도 있었다. 사실 이는 임요환이 얼마나 오랫동안 스타리그에 잔존했었는가를 증명하는 것이었을 뿐. 실제 질레트배 우승자도 듀얼에서 임요환을 이긴 기록이 있었으니... 가을의 전설 또한 토막인 임요환을 결승에서 이긴 것뿐이라는 평가절하가 있었다. 이는 이후 택뱅리쌍세대에서 임요환과 무관하게 승리를 거둔 가을의 프로토스가 등장하며 불식. 홍진호 왈 '''테란을 일으킨 자 홍진호''', '''프로토스를 일으킨 자 임요환''', '''저그를 일으킨 자 박정석'''이라고...
홍진호의 저 멘트는 2005 Ever배 스타리그 결승에 걸렸었던 임요환 응원 현수막의 패러디로 추정된다. 원전은 '''테란을 일으킨 자'''이고 임요환의 응원구였으나, 아이콘적 존재이면서도 토막으로 유명한 임요환과 그 결승의 결과 탓에, "테란을 일으킨 게 임요환을 그 자리에 올려준 홍진호지 왜 임요환이냐"라는 이유로 희화화 된 드립. 사실 이 3인의 전성기 승률을 보면 절대 막장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셋 모두 해당 종족전의 본좌라고까지 불렸다. 다만 조금씩 전성기가 지나가며 임팩트 있는 사건(승률 절대 불균형인 맵에서 유일하게 1패한 기록을 가지고 있거나 주요 경기에서 꼭 졌다거나 우승한 리그에서 특정 종족을 한 번도 안 만나고 올라갔다거나)들이 늘어나면서 그런 이미지가 생긴 것뿐, 전성기 시절 임요환이 토막이라면 토막 아닌 게이머가 별로 없고, 홍진호와 박정석도 마찬가지이다.[57] 오히려 2005년 so1 스타리그에서는 결승에서 오영종에게 우승을 내줘서 그렇지 토스 상대로 많이 이겼다. 16강 안기효를 비롯해 천적이었던 박정석을 8강에서 연속으로 잡아내고, 4강에서도 박지호랑 접전 끝에 역전승을 거두었으며 오영종과의 결승전에서도 3:0으로 패한 것도 아니었고 5경기까지 이끌어낸 걸 보면 프막이라고 보긴 어렵다.
2007년 후반에 테프전에서 고스트의 적극적 활용을 시도했으나, 별로 효과가 없었던 듯하다. 게다가 그 승률마저 5할 본능. 2007년 5월 22일 강민과 프로리그에서 맞붙었ㅡ을 당시 캐리어 8기를 동시에 락다운으로 묶고 골리앗으로 그 중 7기를 잡아냈지만 정작 경기에서는 패배한 것이 대표되는 예.
2008년 프로리그에서 윤용태와의 경기 때에 사용한 '고스트의 아비터 락다운'으로 대세가 되는 듯했지만... 2009년 봄부터 2010년 프로리그까지 고스트가 나오는 경기는 거의 없다. 그냥 그랬던 수준. 나중엔 임요환도 잘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다 2009년 후반 들어서면서부터 저그전에서 관광을 때릴 때 핵을 자주 쓰고 있다. 홍진호, 박준오 등이 주요 희생자. 정명훈도 매치포인트에서 핵을 선보였는데 핵을 쏜 매치포인트라는 맵이 테란이 7시인 경우 6시 지역이 핵 공격에 상당히 취약하다는 게 밝혀지면서 이 맵에서는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리마스터가 공개된 2017년 8월 15일 플레이 한 공방 랭킹전에서도 유일하게 토스전에서 패배하며 '역시 토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9.3. 게임 외의 활동
스타 무한도전에 특별 출연한 적이 있다. 한 판만 더 하자고 떼쓰고, PD 유혹(?)하고(게다가 성공), MC들을 갈구고, 작전 짜자고 포즈를 거는 등 다른 게스트로서는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e스포츠계에서 인기나 짬이 되다 보니 게임 밖의 일로 게임 방송에 나오면 무척이나 편한 듯하다. 게임 예능에 나오면 그날 특집 잔치를 벌이는 것은 당연하고 프링글스 MSL 조 지명식에서 임요환의 자세나 태도의 평은 '조금 지나면 드러눕겠다'였다. 게임 예능에서도 무척 편한 모습이었으나 점차 예능 MC진들이 임요환 아래 세대의 게이머나 신임 캐스터들로 채워지면서 다소 서먹해진 모습.
2012년 3월 29일 김가연과 해피투게더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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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7일부터 방영 중인 더 지니어스:룰 브레이커에 출연하였다. 전 시즌 우승자 홍진호와의 라이벌 구도를 노린 제작진의 의도로 보이며, 본인도 ''''진호보다 잘하는 것, 그리고 진호는 준우승''''을 목표로 삼으며 참가하였으나, 메인 매치 전패를 기록하며 결승전에 진출했으며 결승전에서도 이상민에게 패배함으로써 '''전패준'''을 달성하였다.[58] 즉 위 짤방과 정반대로 본인이 준우승했다. 자세한 내용은 임요환/더 지니어스 문서로.
10. 기타
10.1. 시각 장애인과의 대결
2004년 블리자드가 주최한 행사에서 한 시각 장애인 이민석[59] 과 프로게이머 임요환 선수와 승부를 벌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경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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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에 사용된 맵은 1:1 전용 맵인 챌린저#s-2[60] 였다. 맵이 작고 단순하기 때문에 충분히 외울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어지간한 열정으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물론 자원 채취 가능한 곳이 몇 군데 없긴 하다. 아마 맵의 이러한 특성과 그 이름 때문에 선정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는 3판 2선승제로 펼쳐졌다. 정상 게임이 진행된다면 프로게이머인 임요환이 무난히 이길 것이 자명하므로, 임요환에겐 상당한 핸디캡이 주어졌다. 1경기에서는 게임을 하는 내내 안대를 끼고, 두 번째 경기는 3분간 안대를 착용하고 게임하는 내내 미니맵을 가리고 플레이했고, 3경기만 아무 핸디캡 없이 치르게 되었다. 당연히 첫 경기는 임요환이 무난히 졌고, 세 번째 경기는 임요환이 무난히 이겼다. 해당 경기 당시 채팅을 몇 번 쳤는데, 내용은 '당황스럽네', '이 친구 너무 잘한다' '(미니맵을 못 보니) 답답하다'[61] 같은 내용이었다. 그 당시 해설에 앉아 있던 김동수가 왜 시각 장애인 상대로 채팅을 하는지 의문스러워했다가 채팅으로 소리를 방해하는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고, 이 멘션 때문에 해당 경기를 두고 임요환이 시각 장애인의 약점을 활용하여 이긴 것 아니냐는 논란이 생겼다.
이에 임요환 갤러리에서 반박글을 올리기도 했다.
10.2. 여담
- 그의 경기를 모은 DVD를 온게임넷에서 발매한 적이 있다.[62]
- 초창기 E스포츠 시절, 이지혜와 같이 각기 남녀 프로게이머를 대표했다. MANUL 2001.10이란 책에 인터뷰가 실려 있다. #
- SKT T1의 전신이었던 동양 오리온 소속 시절에 핫브레이크 초코바 CF를 찍은 적이 있다. 오리온 핫브레이크 - 임요환(2003년)
- SKT T1에서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 마재윤과의 합동 인터뷰에서 선수협을 대신 만들어 달라고 언급했는데, 이창훈이 은퇴할 때의 인터뷰에 따르면 2005년경에 강도경, 홍진호 등과 힘을 합쳐 임요환이 선수협을 만들려고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감독들의 눈초리와 타 팀의 협조를 얻지 못하여 무산되었다고 한다.
- 생각해보면 프로 구단들이 안정화되어야 선수들도 협회를 만들 명분이 생긴다. 그리고 한국에 기업팀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2004년이고, 몇 년 지나 체계화되며 안정화되었을 때 임요환은 전성기도 지나갔을 때였고, 무엇보다 군 문제가 있었다. 즉 e-스포츠 선수들을 위한 협회를 만들 수 있었던 골든 타임 때 임요환은 활동할 수가 없었다. 문제는 임요환이 군에 있었을 때 임요환의 영향력을 대체할 프로게이머가 없었다. 임요환은 제대하고 얼마 안 되어 한 인터뷰에서도 선수 협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했고[63] , 몇 달 뒤에 마재윤과 합동 인터뷰 당시에 한 말의 뉘앙스를 보면 "지금은 제대로 된 현역 선수들중에는 너(마재윤)의 영향력이 가장 크니 네가 선수들의 구심점이 되어라. 나는 원로(?)로서 절대 지지해주겠다."이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스타판에 거대한 흑역사가 들이닥치고 말았다.
- 유튜브 Teamliquid 공식 계정에서 Hall of Fame이라는 플레이 리스트로 임요환의 온게임넷 개인 리그 첫 승리 경기(한빛소프트배 16강 vs 정완수)부터 마지막 승리 경기(신한은행배 시즌 1 vs 최가람)까지를 모아놓았다. 그리고 명예의 전당 헌액식 영상도 있으니 팬이라면 필견.
- 2019년에도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RTS 선수 최초로 퀘이커 등 FPS 선수들을 제쳤다.
- 게임 스타일이 해괴하면서도 다채롭다. 의무관 고기방패를 시전하기도 하고 아크라이트 공성 전차 조금에 시체매를 잔뜩 만들어서 앞에다가 거미 지뢰로 아예 떡칠을 하기도 하고 해병 의무관만 주야장천 꼴아박는 척하다가 뜬금포 전투순양함을 내놓아서 충격에 빠뜨리기도 하는 등 임요환의 게임방식은 상상을 초월한다.
- 왠지 소속팀 마스코트에게 까이는 듯. 벙키 자체가 임요환의 단점의 오마주인 이유로 팀 프론트가 임까인 게 아니냐는 설도 있다. 큰 머리 + 벙커, 이쯤 되면 대놓고 임까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임까와 임빠는 구분이 어렵다. 저게 애정일까, 까일까, 둘 다일까?
- '임요한'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 기독교 신자 가운데 요한이라는 이름을 쓰는 이들이 많아서 그런 듯. 그냥 일상에서 잘못 알고 있는 정도면 괜찮은데 방송이나 신문같은 언론 매체에서까지 임요한이라고 대놓고 오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 특히 김가연과의 열애설이 터진 이후로는 더더욱. 임요환은 가톨릭 신도는 맞으나, 세례명은 '고르고니오'다. 이름과는 관계 없다.
- 전역 이후에도 탤런트 김가연과 열애설이 터진 적이 있다. 임요환 자신은 열애설이 터졌을 때 매우 기분이 안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위에 나오다시피 사실이었다.
- 2003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브레인 서바이버'에도 출연한 적 있다. 다 맞는 분위기에서 혼자 틀리질 않나, 말 몇 마디 한 후로는 이래저래 병풍 역할만 하고 버로우했다.
- 2007년 5월 5일 어린이날 기념으로 마재윤과 이벤트 경기를 한 적이 있는데, 우측하단에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창에 한 사람이 '임요환 귀두세키'라고 쓴 것이 그대로 나간 적이 있다(...). 관련 링크
- MBC의 개그 프로에서도 박준형과 함께 공중파를 탔다. 난입한 박준형에게 스타 실력이 떨어진다는 말에다 미네랄에 일꾼 3마리씩 붙이라는 잔소리를 들었다. 덤으로 벙커링에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한다.
- 2009 NATE MSL 결승 리쌍록에서 이영호가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유는 이영호의 원 배럭 더블을 깰 만한 빌드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본인은 이제동이 승리하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알고도 못막는 전략은 있어서는 안 된다. 과연 콩 까는 데는 도가 텄다. 하지만 그분이 강림하실 줄 누가 알았겠는가...
- 리얼 스토리 프로게이머 SKT T1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프로토스를 못하는 듯하다. 오죽하면 동료들이 입을 모아 "프로토스를 못한다"라고까지 했다. 간식배 발끈 프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65] 동료들이 박용욱에게 "프로토스 임요환에게 지면 이름을 입용욱으로 개명해야 한다"라고 했을 정도.
- SS501김형준 프로게이머되다 4화에 출연... 그분과 옆에 같이 있던 괴수 코치에게 아임 유어 맨 안무를 가르쳐주고 같이 안무를 맞춰서 춤까지 췄다. 보고 있으면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웃기기도 웃기면서 동시에 손발이 오그라든다. 6화에서 서경종이 말하기를 이스포츠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4화에서는 임요환을 상대로 벙커링 금지, 메카닉 금지, 공중 유닛 금지, 초반 러시 및 견제 금지 등등 엄청난 제약을 걸고, 오직 배럭스에서 나오는 바이오닉만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하여 게임을 했지만 마린 테크노 댄스, 2연 핵관광, 무한 파이어뱃 물량 등등으로 관광을 당하며 GG. 쵱코치는 핵을 쓰는 걸 보며 반칙패를 주장했지만 배럭스에서 나온 유닛인 관계로 반칙패는 수용되지 않았다. 중반 러시는 벙커를 3개씩이나 건설하는 삼연벙을 선보여주시기까지 했다. 이것 참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 강민의 올드보이 3회에 출연하여 그간 스타리그 예선 통과의 힘들었던 점과 심정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 강민의 올드보이 10화에 EPL 뉴캐슬 유나이티드 저지를 입고 나와서 뉴캐슬의 팬이라는 추측을 받았었다. 국내에서 단순 패션 아이템으로는 잘 쓰이지 않는 유니폼이기 때문. 허나 방송에서 나이지리아 국대 유니폼이나 타 팀의 유니폼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아디다스의 T1 후원 때문에 구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임요환은 게임계에서 잘 알려진 축덕이다. 본격으로 경기복에 전용 스파이크,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경기를 즐기는 게 많이 포착되기도 했다.
- 돌아온 뒷담화 말미에 제자와 함께 출연,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스캔들로 인터뷰를 했다. 자신의 입으로 인정한 본좌 후배가 이 사건의 핵심 인물 중 하나였으니...
- 켠김에 왕까지에 제자인 최연성과 그리고 김가연과 함께 출연했다. 임빠, 임까 스갤러 모두 이윤열은 100승 찍고, 홍진호는 공군에서 분투하고, 박정석은 스타리그까지 진출했는데 프로리그에도 안 나오고 이런 거에나 나온다고 합심해서 까고 있다. 하지만 스타리그는 몰라도 프로리그에는 일단 박용운 감독이 내보내야 타임 머신 들어가서 벙커링을 하든, 핵을 쏘든 뭐든 하는데 내보내질 않을 뿐이다.
- 2010년 들어서는 애인인 김가연이 순위 정하는 여자에 출연해 그의 사생활을 이것저것 공개하고 있다. 피부가 여자 못지 않게 좋다든가, T1의 연습 시간은 새벽 0시까지라든가 등등등(…).
- 임요환의 한 달 용돈은 3만 원이라고 한다. 여친에게는 나이 들어 안 어울리는 날이 오기 전에 입고 싶은 거 마음껏 입어두라며 카드를 만들어주고 본인은 여친에게 3만 원씩 타서 쓴다고...
- 2010년 10월 25일 애인 김가연이 공감토크쇼 놀러와에 '연하남과 연애하는 누님'들로 출연하면서 게스트로 함께 나왔다. 그런데 본래 10월 11일 예정되었던 방송이 프로야구 중계 관계로 결방, 다음주인 18일에는 싸이·성시경 특집이 방송. 그래서 공감토크쇼 놀러와는 스타크래프트 팬들에게 까이다가 가루가 되었다. 공감토크쇼 놀러와에 출연한 임요환의 마무리 멘트는 "여자 꿈에 묻히지 마라"(...)
- GSL 시즌 3를 앞두고 슬레이어스 클랜 창설을 발표하고 한창 인원을 모집 중인데 미오웨라 때문에 까이고 있다. 프로게이머나 방송 경기 출전은 생각도 안 하겠다고 하던 인간이 다시 나와서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과하고 싶었다는 씨알도 안 먹힐 변명을 했으니 욕을 먹는 것은 당연지사. 임요환에게는 '왜 이런 놈을 받아들여서...'라는 의견이 대다수. 더불어 GSL 시즌 3 진출 후의 인터뷰를 보면 미오웨라(전용수)를 슬레이어스 클랜 소속으로 인정하는 발언이 있다. 임빠들은 임요환이 미오웨라의 문제를 몰랐을 거라고 하지만 인터뷰에 임요환이 미오웨라를 언급했을 때마다 기사 덧글에 비난이 있었던 것만 생각해도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상황이고, 임요환도 인터뷰에서 미오웨라를 클랜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발언과, 팀과 클랜의 관계에서 책임을 간과하는 듯한 발언으로 스스로 까일 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중이다.
- 2010년 11월말에 tvN에서 '임요환의 날개'라는 이름으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주 내용은 임요환의 GSL 시즌 2 도전기, 그리고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보고 있으면 임빠로서 눈물나는 장면이 많다. 그 중 요통에 시달리다가 김가연과 함께 병원에 가는데 의사에게 "이런 요통에 시달리는 것은 보통 40~50대인데 이건 직업병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결국 물리치료를 받는데, 왜 이 지경이 될 정도로 계속 게이머 생활을 하느냐는 말에 "이 정도 가지고 투정 부리면 팬들 앞에서 뭐가 되나"라고 밝힌다. 1편, 2편 링크로 가면 다시 보기로 볼 수 있다.
- 2011년 SBS에서 설 특집 스타 커플 최강전에 김가연과 함께 유일한 진짜 커플(...)로 등장했다.
- 김가연이 소녀시대의 Hoot!에 맞춰 춤을 추는 동안 가만히 경호원 역할에만 충실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MC들의 요청에 활을 당기기 시작했다.
- 2011년 설 특집 KBS 연예인 복불복 마라톤 대회에도 김가연과 함께 출전하였다. 그런데 둘이 천천히 걸어다니며 데이트만 해서 분량은 별로였고, 아예 자막에 '출전의 목적은 데이트?'라고 나올 정도. 몇 등 했으며 뭐뭐에 걸렸는지는 아예 방송이 안 되었다.
- 2011년 6월 25일 홍진호의 은퇴식에 참석하여 선물로 스타 2 패키지 CD를 주었다. 박스 내용은 비어 있었는데 트위터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언제든지 스타 2를 하고 싶으면 오라'라는 메시지였다고 발언했다. #
- 2012년 4월 이후론 게임에 임하지 않고 병원을 다니며 재활 치료에 집중하고 있던 상황. 아직 창창한 30대 나이이지만 목과 허리 디스크, 어깨 통증, 요통 등등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종합 병원 수준. 이전에도 계속 통원 치료는 해왔지만 결국 의사 조언대로 게임을 쉬고 재활 치료에만 집중하는 중이라고 한다.
- 신사의 품격 10화 오프닝에 보면, 4인방이 PC방에 가서 스타 2를 하다가 전지현이 가게 왔다는 소리에는 쿠폰 주라는 말밖에 안 하지만 임요환이 왔다는 소리에는 하던 게임을 그만두고 5분 거리를 택시 타고 갈 정도의 인기를 가진 걸로 표현되었다.
- 누나가 3명 있는데, 그 중 둘째 누나의 남편 즉 둘째 매형이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에서 코치를 맡고 있는 전 배구 선수(고려증권과 삼성화재에서 활약) 손재홍이다. 둘째 매형도 누나보다 연하라고 한다(...)
- SNL에서 2013년 11월 23일 카스 2: 임진왜란 편에서 일본 사무라이로 출현했다! 그리고 작중 대사 중에서 "역시 콩은 까야 제맛이지!"등 아는 사람은 모두 실컷 웃을 수 있는 드립을 날렸다!
- 2014년 3월 SNL 게임즈에서 또 한 번 더 카스 2: 병자호란 편에 출연하여, 김민교와 같이 홍진호를 사살하는데, 이때 '콩은 같이 까도 제맛(...)'이라고 외치며, 보상으로 궁녀를 구하러 갔는데 궁녀가 부인 김가연이라, 사살했다. 그리고 그 뒤에 PC방에 찾아온 김가연은 임요환의 귀를 붙잡으며 게임만 하니까 머리가 큰 거라며 디스하면서 끝난다.
- 컴맹으로 유명하다. 예전부터 인터넷 게시판에 글 같은 걸 올리는 데 쩔쩔맸다고 하며, 그 때문에 대부분이 가지고 있던 미니홈피조차도 늦게 개설했을 정도였다. 김가연의 증언에 따르면 인터넷 뱅킹도 못 한다고 한다.
- 네네치킨 배 블레이드 앤 소울 비무전(PvP 리그)에서 홍진호와 이벤트전으로 임진록을 펼쳤고 압도적으로 이겼다. 또한 임데이날은 소환사 선수인 이상준을 상대로 3판 중 첫 판을 가져가기도 했다. 이날 이상준 선수의 유일한 패배였다. 다만 이상준 선수와의 둘째 판에선 압도적으로 밀렸고[66] 셋째 판에선 콤보 한 번이 제대로 들어가긴 했지만 결국 진 걸로 봐선 상대 선수인 이상준의 방심도 컸던 것 같다. 참고로 이상준 선수가 이전 무왕 선수의 홍진호 농락을 보고 자신도 임요환을 농락해보려고 1경기 때 스킬 트리를 비무 트리가 아닌 다른 트리로 가져갔다. 그 상태에서도 충분히 유리하게 가져가긴 했지만, 순간을 캐치한 임요환이 한 방 콤보로 이상준 선수를 잡아냈다. 이후 경기에서도 홍진호와 무왕 선수의 대결처럼 일방적인 농락은 나오지 않았고 서로 합을 주고받는 치열한 경기였다. 하지만 져줄 생각은 결코 없었다고 한다. 임요환의 게이머로서 마음가짐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경기로 블소 팬들의 엄청난 극찬을 받았다. 전용준 캐스터 말처럼 스타리그 분위기가 날 정도로 임요환을 외치는 함성이 엄청났다. 링크
- 2014년 8월 3일 출발 드림팀 2기 244화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의 22살 시절 사진을 공개하고 언론에 기사화됐다. 또한 부인인 김가연과의 깨알(?)같은 내조 개그를 연출했다.
- 공감토크쇼 놀러와에서 한 발언에 따르면 요벙, 대갈, 임대가르시아 등 별명은 자신도 알고 있는 수준을 넘어서 김가연이 임요환을 임요, 요벙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고 말했다. 스덕이 아닌 작가는 여보의 애칭이라 생각했나 보다.
- 2015년 8월 1일 득녀했다.
-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발표 영상에 임요환이 옛 소속팀의 우승 당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장면이 나왔다. 또한, 발표회장에도 참석, 무대에 올라 스타크래프트의 발매 19주년을 축하한다며 소감을 전했다.
- 일꾼 비비기로 미네랄 벽을 넘어가는 플레이를 방송 경기에서 최초로 보여줬다. 불칸스 포지라는 맵에서 미네랄로 막힌 섬을 드론 비비기를 통해 넘어가 해처리를 짓고 히드라 러시를 해 승리. 이는 얼라이 마인 이전부터 크게 논란을 낳았고, 엄재경에게 버그로 규정받고 강하게 비판을 받은 흔적이 웹상 여기저기에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이 플레이는 정식으로 인정받아 레퀴엠, 철의 장막을 위시한 맵들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게 되었으니, 사용될 수 있는 맵의 저변을 넓히는 데도 크게 기여한 셈. 이 게임큐 경기는 임요환의 처음이자 마지막 정규 경기에서의 저그 플레이였다. 이 경기 외에 박정석 상대로 저그로 이긴 적이 있으나 프로리그 올스타전이라 정규전은 아니었다.
- 평소 화를 잘 안 내고 착한 임요환인데, 공군에서 성학승을 구타한 적이 있다고 홍진호가 아프리카TV에서 썰을 풀었다. 그 밖에도 OGN 웹예능인 스타로드에서 홍진호와 김성제의 증언으로 딱히 주변 사람을 잘 챙기거나 배려하는 식의 리더쉽이 있는 성격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 타입은 홍진호 쪽이었으며 그 최연성조차 임요환에게 불만이 많았다고. 그럼에도 누구보다 앞장서서 솔선수범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에 모두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 1.08 버전 이전에 레이스 벌처로 저그를 잡은 적이 있다.
10.3. 머리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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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크기 또한 독보적인데, 자신을 포함한 팬들은 그저 어깨가 좁을 뿐이라고 항변하지만[67] 2010년 9월에 방영한 온게임넷의 드리머에서는 본인 스스로 '얼굴이 큰 것'이라고 말한다. 공군 에이스에 병역 특례로 입대할 당시에 전투모 사이즈가 58호. 직접 보면 실제로 그렇게 머리가 크다는 느낌은 없다. 게다가 군모 크기로 따져보았을 때 강도경이 임요환보다 더 머리가 크다(임요환 58호, 강도경 60호).
선수 시절 임요환만큼이나 머리가 컸던 모 후배가 임요환에게 장난친다고 "그래도 형보다는 머리가 작잖아요 ㅎㅎ"라고 했다가 빡친 임요환이 최연성을 소환해 애들 관리를 어떻게 하냐고 갈굼을 시전한 적이 있었다. 전상욱도 머리 크기로 디스했다가 최연성을 통해 내리갈굼당했다는 기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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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23일에는 난데없이 예비군 A로 SBS 8시 뉴스에 출연했는데, 스덕들의 반응은 "그 머리에 맞는 철모가 있긴 있구나(...)." 군 부대에서 머리가 컸던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과 철모를 착용한 방식이 차이가 있다. 일단 철모가 뒷머리 부분을 덮지 않았고 귀가 나와 있다. 이 말은 철모가 귀 위쪽 부분에서 걸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군 부대에서 머리가 큰 사람은 부유대와 가죽 끈을 제외하고서야 철모를 착용할 수 있다.
- 2019년 페이커와 직접 만났다.# 이에 게임 커뮤니티 내에서는 창조주와 구단주의 만남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해당 영상은 2019년에 여름에 찍고 2020년에 올렸다. 그 와중에도 머리 크기가 눈에 띌 정도로 차이나는 게 압권. 사실 처음 만난 건 여름 이전에 2019년 4월 13일 SKT 15주년과 동시에 롤챔스 결승전인 날 처음 만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