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쿠웨이트 관계
1. 개요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2. 상세
쿠웨이트의 독립이 영국의 식민통치로 인한 분쟁이라는 것은 쿠웨이트인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다. 왜냐하면 위에서 보다시피 쿠웨이트인 스스로가 이라크를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라크의 지배를 받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쿠웨이트인은 이라크 내의 소수민족이 되기 때문에 민족분쟁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1] 이 같은 사실은 이웃 중동국가들도 잘 알고 있었고 때문에 식민지배에 우호적인 시각을 지니지 않은 아랍연맹조차 쿠웨이트의 독립을 공인해 주었다.
때문에 '''쿠웨이트가 이라크의 영토라는 주장은 국제법이고 민족적, 역사적 동질성이고 상관없이 800년 전에 우리땅이었으니, 무조건 내놓으라는 말과 같다.''' 이런 논리라면 몽골과 터키도 쿠웨이트를 자기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다. 이들도 이 땅을 지배한 적이 있으니까.
이라크란 나라는 현대에 탄생한 국가로 고유영토란 게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라크 민족이 역사없는 민족이란 것은 아니라 수 많은 고대 제국들의 일원이었고, 이슬람 도래 이후에는 이슬람 제국의 일원으로 그 중엔 압바스 왕조처럼 이라크 민족이 주도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라크는 1932년 영국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시켜 주면서 오스만 제국의 모술령, 바그다드령, 바스라령을 하나로 묶어서 만들어진 국가다. 이라크가 쿠웨이트의 영토로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쿠웨이트가 19세기 바스라 빌라예트에 속했다는 것인데, 이는 그저 오스만 제국이 편의상 나눠둔 행정구역중 하나일뿐, 그것도 1800년대 중반이후 부터이지 이라크 민족의 고유영토가 아니다. 게다가 '''영국은 제맘대로 쿠웨이트의 국경선을 책정해 독립시켜준게 아니라 오스만과의 회담을 통해 결정된 구획선을 기준으로 국경선을 삼았다.'''
언급되었다시피 쿠웨이트는 비록 영국의 보호국이었지만 1913년부터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했으며, 영토도 먼저 확정되었다. 이라크는 1차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함에 따라 뒤늦게 독립했는데, 이미 독립해서 잘 살고 있는 쿠웨이트의 영토를 강제로 빼앗아 뒤늦게 독립한 이라크에 넘겨준다는게 가능하지도 않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이미 독립한 쿠웨이트의 영토를 빼앗아 이제 독립하려는 이라크에게 준다면 그거야말로 약소국을 괴롭히는 영국의 횡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2] 무엇보다 쿠웨이트 북쪽은 모두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지대라[3] 이라크인 거주민이 있던 것도 아니라서, 원래 이라크 민족의 땅이라고 할 수도 없다. 때문에 이라크가 쿠웨이트 북쪽 해안가를 영토로 주장할 수 있는 권원은 조약상으로도 국제관습법으로도 전무하다. 그저 이라크의 인구가 많으니 해안선이 넓었으면 좋겠다뿐인데 이런건 국제법상 당연히 통하지 않는다.
오스만 제국이 1차 세계 대전에 패함에 따라 1920년 연합국과 오스만 제국 간에는 '세브르 조약'이 체결된다. 이 조약에 의해서 오스만 제국은 연합국의 위임통치를 받게 되었으며, 아랍 지역의 영토 대부분을 상실하였고 아랍은 영국과 프랑스의 통치하에 놓여진다. 이 때 레바논과 시리아는 프랑스가, 이라크와 쿠웨이트, 팔레스타인 등의 지역은 영국이 통치하게 되었고 영국이 통치한 이라크 지역을 '영국 위임통치령 메소포타미아(The British Mandate of Mesopotamia)'라 불렀다. 참고로 이 조약에 반발해 무스타파 케말이 이끄는 터키군이 터키 독립 전쟁을 벌여 그리스를 물리쳤고, 연합국에 세브르 조약의 개정을 요구해 1923년 새로 '로잔 조약'이 체결되었는데 이 조약에서 터키의 독립성을 인정받고, 현재 터키의 영토를 확립하게 되었지만 오스만 제국의 아랍 지역 상실에 관한 조약은 개정되지 않았으므로 세브르 조약과 변함없다.
즉, '''1920년 시점에 이미 이라크와 쿠웨이트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에서 벗어났다.'''[4] 쿠웨이트는 원래도 영국에 우호적이었는데다가 1914년부터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웠으므로 영국에서 쿠웨이트 정부의 독립성을 인정해 주었다. 여기에 이라크는 1932년 영국령에서 독립했으므로 이라크가 오스만 제국을 바로 승계했다고 볼 수도 없고, 쿠웨이트는 오스만 제국의 조차지(Leased Territories)[5] 가 아니었으므로 이라크는 바스라 빌라예트를 승계했다는 것을 이유로 쿠웨이트의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때문에 어떤 국제법 학자도 쿠웨이트를 이라크의 조차지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당연히 쿠웨이트 사람에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 때문에 쿠웨이트인의 이라크에 대한 국민 감정은 대단히 좋지 못하며 침략자로 보고 있다. 오죽 걸프전 당시 이라크에게 당한게 심했으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시리아, 이집트, 모로코, 요르단, 사우디, 튀니지 등 다른 아랍국가들이 미국,영국의 이라크 전쟁을 비난할때 쿠웨이트만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을 정도다.
미국을 지지하는 친미 아랍어 방송인 알 후드가 미국과 합작으로 세워진 곳도 바로 쿠웨이트였다. 알 자지라와 맞서기위하여 만들어졌지만 뭐 아랍권에선 알 자지라는커녕 아랍 각 방송국 상대도 되지못하고 엄청난 손해를 보면서 결국 문 닫았다. 쿠웨이트에서조차 철저하게 외면당했으니 말 다했다.
그뿐만 아니라 걸프전으로 인한 배상금을 더 내놓으라고 이라크를 압박하는 한편, 2013년에도 쿠웨이트 국경에서 이라크와 총격전이 벌어지는 등 거의 원수로 보는 수준. 이제는 쿠웨이트인들이 이라크 민족을 거지라고 멸시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런 것과 다르게 사담 후세인이 몰락하면서 적어도 외교적으로 예전과 달리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한다. 이미 2004년에 이라크와 수교했으며 침공 당시 사죄 및 피해 보상금도 두둑히 받았다. 2014년 1월까지 '''450억 달러'''가 넘는 피해 보상금을 이라크에서 내줬으며 총보상금은 525억 달러로 매해 석유를 팔면서 그 수익을 이자와 같이 이라크에서 내주고 있다. 사실 쿠웨이트와 이라크가 사이가 나빠진 계기인 걸프 전쟁은 사담 후세인의 명백한 잘못이고, 현 이라크 정권은 아무튼 후세인 정권을 부정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후세인 정권 시절의 앙금은 털어버리고 쿠웨이트와 관계 개선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 솔직히 이라크인들도 걸프 전쟁에 대하여 잘했다느니 잘났다는 반응은 그리 없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 기자가 이라크인들을 만나 취재할때, 오죽하면 같은 이슬람 나라, 그것도 약자를 먼저 쳐들어가 뭉갰으니 개망신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여담인데 걸프전을 배경으로 하는 마스터 키튼 8권 1화에서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쿠웨이트는 원래 영국이 석유전략 때문에 억지로 이라크에서 독립시킨 나라이고, 쿠웨이트의 괴뢰 왕조로 주변과 관계 없는 아라비아 반도의 베두인 족 추장을 앉혔다는 내용의 영국 책임론을 설명한다. 더 어이없는 것은 작중에서 그 해설을 해 주는 사람이 영국 수상 비서라는 것. 작자의 치명적인 고증오류이긴 한데, 정작 걸프전 당시에는 비슷한 시각의 기사도 꽤 있었던 시절이고, 인터넷이 발달한 21세기에야 읽을 능력만 있다면야 웬만한 민간인들도 풍부한 역사자료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지만, 그때는 그럴 수 없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3. 관련 문서
[1] 이를테면 베트남 전쟁의 경우, 남베트남 사람들은 같은 북베트남인과 동질감을 느꼈고, 그 결과 북베트남군의 침공을 환영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쿠웨이트인들은 걸프전에서 이라크의 침공을 환영하기는 커녕 침략자로 보았다.[2] 당시 영국의 국익을 생각하면 이편이 더 유리했다. 아직 쿠웨이트에선 석유가 발견되지 않았고, 약소국인 쿠웨이트보다 인구 많고 영토 넓은 이라크를 한편으로 삼는게 영국에겐 이익이니까.[3] 20세기말부터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쿠웨이트 북쪽 사막인 압달리 지역에 지하수를 끌어올려 농장이 만들어졌고 사람도 산다.[4] 이스라엘도 이 때 영국 통치를 받게 되었으므로 이스라엘은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한게 아니라 영국에게서 독립했다. 이 때문에 중동전쟁 등 수 많은 문제가 생겨나지만 그 책임은 원칙적으로 영국에게 있지, 터키와는 무관하다. 이라크와 쿠웨이트도 마찬가지다.[5] 양국간의 조약에 의하여 타국으로부터 빌린 영토. 홍콩과 마카오가 대표적인 예이다. 참고로 1913년 영국과 오스만 제국과의 조약만을 보았을때는 영국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쿠웨이트를 조차했다고 볼 여지도 있으나 1920년 세브르 조약에 의해 위 조약이 파기되고 쿠웨이트는 영국령이 되었으므로 오스만 제국의 조차지로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