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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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면에서 크며 시기적으로도 전쟁기간과 평화기간이 나누어지는 4차례의 전쟁을 말한다. 단, 평화기간이라고 해도 국경선에서의 교전 같은 작은 전투는 항시 있었다. 각각 문서 참고.
카연갤에 올라온 1~4차 중동전쟁 만화
이스라엘은 1957년 3월까지 수에즈를 강점했다.
War of Attrition. '소모전' 이란 뜻으로 1968년부터 1970년까지 이집트와 PLO가 함께 이스라엘을 상대로 제한 전투를 벌였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조.
사실상 거의 매일 포탄과 미사일을 쏴대는 게 현실인지라 이후 중동전쟁사는 1~4차 중동전쟁처럼 딱딱 끊어서 정리하기란 매우 애매함을 염두에 두자.
Second Lebanon War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이라고도 한다.
2006년 레바논 국경에서 이스라엘 군인 2명이 헤즈볼라에게 납치되자 이스라엘은 자국군인 구출이란 명분으로 레바논에 침공을 개시했다. 하지만 헤즈볼라의 게릴라전에 휘말려 고전했고 이에 대한 분풀이로 백린탄을 비롯한 마구잡이 포격을 감행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적어도 레바논 전체의 분노 어린 반격을 우려하여 시아파 구역만 공습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 덕분에 수니파 및 마론 기독교도 같은 다른 레바논 종교 구역이 전쟁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쟁은 소모전으로 변했다. 이스라엘은 목적이던 군인 2명을 구출하지도 못했고 국제적으로 비난을 들어야 했으며 알 자지라를 비롯한 언론에서 레바논 민간인들 피해 상황이 보도되면서 이스라엘은 알 자지라 중계팀을 공습하였고 이에 대한 분노 어린 알 자지라의 비난 보도로 미디어에서 완패했다. 열심히 미국 방송들이 실드를 쳐줬지만 결국 중립을 지키던 레바논 다른 종파 구역들도 이스라엘의 백린탄 및 여러 무기를 문제삼으면서 나설 움직임을 보이면서 이스라엘은 장기전에 염증이나 결국 150명이 넘는 전사자 및 다수의 피해를 입으며 굴욕적으로 철수해야 했다. 헤즈볼라에게 이렇게 두들겨 맞고 물러선 전쟁이라 이스라엘에겐 패배나 다를 바 없는 굴욕으로 남게 된다.
되려 헤즈볼라는 이 전쟁으로 일약 영웅이 되었으며 선거에서 승리하여 레바논 집권여당이 되었다. 덕분에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선거 승리에 기여한 공로자라는 비아냥을 들었고 납치된 군인 2명도 모두 사망한 상태라 협상 끝에 시체만 겨우 돌려받는데 그쳤다. 결국 자국 군인 사망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아미르 페레츠 이스라엘 국방장관과 단 할루츠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옷을 벗어야 했다.
2011년 11월, 이스라엘은 이란의 원자력발전소 공습 계획을 밝혔으나 실제로 실행되지는 않았고 이란을 정치적으로 압박하려는 엄포 등으로 분석되었다. 이스라엘 안에서도 이건 어렵다고 하여 경제적인 압박을 가하자는 의견도 많았다.
이스라엘은 1981년 이라크 핵개발 의혹이 있던 오시라크 발전소를 공습해 성공한 적이 있지만 발전소를 완전히 파괴하진 못했다. 사담 후세인이 이 발전소를 재건한다 뭐다 이스라엘은 노심초사했는데 결국 오시라크 발전소는 걸프 전쟁 때 미군이 스텔스 전투기와 여러 폭격기, 호위기를 엄청나게 동원한 끝에 비로소 아주 박살을 내버렸다.
그러나 이란은 이라크와 차원이 다른 넓은 땅을 가지고 있다. 당장 면적만 이라크의 5배에 달한다. 이라크(34만 제곱킬로미터)와 아프가니스탄(52만 제곱킬로미터) 전 면적을 합쳐도 이란은 164만 제곱킬로미터로 그 2배를 웃돈다. 덤으로 평야지대가 아닌 산악지대가 많다. 여기에 더해서 오시라크 공습을 교훈삼아서 전역에 위장용 가짜 원자력발전소를 만들어(예를 들면 일반 화력발전소라던가... 그냥 창고라든가...) 인공위성으로 봐도 잘 알 수 없게 만들었고 지하 곳곳에 시설을 장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러시아로부터 지대공 미사일을 사와서 대공망을 갖춰 대비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이 많은 시설을 한 번에 폭격하자면 공중급유기도 엄청 필요하며 엄청난 장비와 여러 인력이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게다가,그렇게 엄청난 돈과 준비를 하여 공습을 했다고 해도 위장용 가짜 시설을 구별하지 못한 상황에 헛수고만 할지 모를 일이다.
공습계획과 때를 같이하여 이란에서 핵관련 과학자 몇몇이 의문사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란에선 이스라엘 모사드나 반이란 세력이 손 잡고 배후공작을 꾸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죽은 과학자들은 대다수가 30대 초반 과학자들이고 핵심 두뇌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작전(?)이 실패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사실 이란 핵연구의 핵심 과학자들에 대하여 자세한 정보도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고 한다.
1. 80년대 이전
규모면에서 크며 시기적으로도 전쟁기간과 평화기간이 나누어지는 4차례의 전쟁을 말한다. 단, 평화기간이라고 해도 국경선에서의 교전 같은 작은 전투는 항시 있었다. 각각 문서 참고.
카연갤에 올라온 1~4차 중동전쟁 만화
1.1. 제1차 중동전쟁(1948년 5월 14일~1949년 3월, '''이스라엘 독립전쟁''')
1.2. 제2차 중동전쟁(1956년 10월 29일 ~ 1956년 11월 7일, '''수에즈 전쟁''', 수에즈 위기)
이스라엘은 1957년 3월까지 수에즈를 강점했다.
1.3. 제3차 중동전쟁(1967년 6월 5일 ~ 1967년 6월 10일, '''6일 전쟁''')
1.4. 막간: 아랍/이스라엘 분쟁 (1970년)
War of Attrition. '소모전' 이란 뜻으로 1968년부터 1970년까지 이집트와 PLO가 함께 이스라엘을 상대로 제한 전투를 벌였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조.
1.5. 제4차 중동전쟁(1973년 10월 6일 ~ 1973년 10월 26일, '''욤 키푸르 전쟁''', 라마단 전쟁, 10월 전쟁)
2. 1980년대 이후
사실상 거의 매일 포탄과 미사일을 쏴대는 게 현실인지라 이후 중동전쟁사는 1~4차 중동전쟁처럼 딱딱 끊어서 정리하기란 매우 애매함을 염두에 두자.
- 1980년 : 1차 이스라엘-레바논 분쟁(South Lebanon conflict)
- 1982년: 레바논 내전(Lebanon War) 개입
- 1987년-1993년: 1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First Intifada)
- 1982년 이래 2000년까지 : 2차 이스라엘-레바논 분쟁(South Lebanon conflict)
- 2000년~2007년: 2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Second Intifada, al-Aqsa Intifada)
- 2006년: 2차 레바논 전쟁(Second Lebanon War)
- 2008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Gaza war)
2.1. 1차 이스라엘-레바논 분쟁(South Lebanon conflict)(1978)
2.2. 레바논 내전(Lebanon War) 개입(1982)
2.3. 1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First Intifada)(1987~1993)
2.4. 2차 이스라엘-레바논 분쟁(South Lebanon conflict) (1982~2000)
2.5. 2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Second Intifada)(2000~2007)
2.6. 2차 레바논 전쟁(Second Lebanon War 2006)
Second Lebanon War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이라고도 한다.
2006년 레바논 국경에서 이스라엘 군인 2명이 헤즈볼라에게 납치되자 이스라엘은 자국군인 구출이란 명분으로 레바논에 침공을 개시했다. 하지만 헤즈볼라의 게릴라전에 휘말려 고전했고 이에 대한 분풀이로 백린탄을 비롯한 마구잡이 포격을 감행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적어도 레바논 전체의 분노 어린 반격을 우려하여 시아파 구역만 공습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 덕분에 수니파 및 마론 기독교도 같은 다른 레바논 종교 구역이 전쟁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쟁은 소모전으로 변했다. 이스라엘은 목적이던 군인 2명을 구출하지도 못했고 국제적으로 비난을 들어야 했으며 알 자지라를 비롯한 언론에서 레바논 민간인들 피해 상황이 보도되면서 이스라엘은 알 자지라 중계팀을 공습하였고 이에 대한 분노 어린 알 자지라의 비난 보도로 미디어에서 완패했다. 열심히 미국 방송들이 실드를 쳐줬지만 결국 중립을 지키던 레바논 다른 종파 구역들도 이스라엘의 백린탄 및 여러 무기를 문제삼으면서 나설 움직임을 보이면서 이스라엘은 장기전에 염증이나 결국 150명이 넘는 전사자 및 다수의 피해를 입으며 굴욕적으로 철수해야 했다. 헤즈볼라에게 이렇게 두들겨 맞고 물러선 전쟁이라 이스라엘에겐 패배나 다를 바 없는 굴욕으로 남게 된다.
되려 헤즈볼라는 이 전쟁으로 일약 영웅이 되었으며 선거에서 승리하여 레바논 집권여당이 되었다. 덕분에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선거 승리에 기여한 공로자라는 비아냥을 들었고 납치된 군인 2명도 모두 사망한 상태라 협상 끝에 시체만 겨우 돌려받는데 그쳤다. 결국 자국 군인 사망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아미르 페레츠 이스라엘 국방장관과 단 할루츠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옷을 벗어야 했다.
2.7. 제1차 가자전쟁
2.8. 이란 원자력발전소 공습 계획
2011년 11월, 이스라엘은 이란의 원자력발전소 공습 계획을 밝혔으나 실제로 실행되지는 않았고 이란을 정치적으로 압박하려는 엄포 등으로 분석되었다. 이스라엘 안에서도 이건 어렵다고 하여 경제적인 압박을 가하자는 의견도 많았다.
이스라엘은 1981년 이라크 핵개발 의혹이 있던 오시라크 발전소를 공습해 성공한 적이 있지만 발전소를 완전히 파괴하진 못했다. 사담 후세인이 이 발전소를 재건한다 뭐다 이스라엘은 노심초사했는데 결국 오시라크 발전소는 걸프 전쟁 때 미군이 스텔스 전투기와 여러 폭격기, 호위기를 엄청나게 동원한 끝에 비로소 아주 박살을 내버렸다.
그러나 이란은 이라크와 차원이 다른 넓은 땅을 가지고 있다. 당장 면적만 이라크의 5배에 달한다. 이라크(34만 제곱킬로미터)와 아프가니스탄(52만 제곱킬로미터) 전 면적을 합쳐도 이란은 164만 제곱킬로미터로 그 2배를 웃돈다. 덤으로 평야지대가 아닌 산악지대가 많다. 여기에 더해서 오시라크 공습을 교훈삼아서 전역에 위장용 가짜 원자력발전소를 만들어(예를 들면 일반 화력발전소라던가... 그냥 창고라든가...) 인공위성으로 봐도 잘 알 수 없게 만들었고 지하 곳곳에 시설을 장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러시아로부터 지대공 미사일을 사와서 대공망을 갖춰 대비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이 많은 시설을 한 번에 폭격하자면 공중급유기도 엄청 필요하며 엄청난 장비와 여러 인력이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게다가,그렇게 엄청난 돈과 준비를 하여 공습을 했다고 해도 위장용 가짜 시설을 구별하지 못한 상황에 헛수고만 할지 모를 일이다.
공습계획과 때를 같이하여 이란에서 핵관련 과학자 몇몇이 의문사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란에선 이스라엘 모사드나 반이란 세력이 손 잡고 배후공작을 꾸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죽은 과학자들은 대다수가 30대 초반 과학자들이고 핵심 두뇌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작전(?)이 실패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사실 이란 핵연구의 핵심 과학자들에 대하여 자세한 정보도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고 한다.
2.9. 제2차 가자전쟁
2.10. 제3차 가자전쟁
3. 관련 문서
[1] 교전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이스라엘과 싸우는 교전국에 의용병을 보내거나 물자를 저렴하게 공급하는 등 노골적으로 도움을 주기 때문에 사실상 무늬만 비교전국인 국가가 많다.[2] 1차 중동전 당시에는 이스라엘측의 후원자였으나 팀을 바꾸고는 아랍연맹쪽에 군사고문관 파견 및 다량의 군수물자 제공.[3] 소련의 허가 하에 T-34나 SD-100(SU-100의 라이센스 차량) 같은 차량들을 중동에 판매. 그 중에는 2차대전 노획품인 4호 전차 같은 전차도 있었음.[이집트,시리아] 군사지원을 해줌.[4] 제2차 중동전쟁에만 참전. 게다가 팔레스타인 문제를 일으키면서 중동전쟁 및 중동 지역 분쟁의 원인을 제공했다. 1915년 맥마흔 선언으로 아랍의 독립을 보장한 영국은 단 2년 만에 밸푸어 선언으로 말을 바꾸며 이스라엘의 독립을 지지하는 가 하면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프랑스와 함께 요르단,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쿠웨이트 등 오스만 제국의 속령이었던 아랍 각국들을 위임통치령과 보호령의 지위를 앞세우며 사실상 식민지로 집어삼켰다. 사실상 중동 전쟁을 비롯해 중동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들에 가장 큰 책임을 지니고 있다. 참고로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은 영국의 속령이었다.[5] 1차 중동전에서는 영국에게 한방 먹이려는 계산 하에 이스라엘의 물주를 했고 제2차 중동전쟁에는 직접 참전.[6] 1차 중동전 당시 이스라엘 편을 들었으며 주로 체코 슬로바키아를 통해 2차대전에서 노획했던 장비나 전간기 장비를 이스라엘에게 제공하여 이스라엘이 1차 중동전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줌. 이는 중동에서 영국의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함이었으나 이후 더 강력해보이고 규모도 큰 아랍연맹쪽으로 편을 바꾸게 됨.[7] 소련의 허가를 받고 1차 중동전 당시 이스라엘에 무기를 제공함. 소련의 영향력을 제외하고서도 나치에게 점령된 적이 있었던 국가인지라 독립을 위해 싸운다는 이념에 공조한 것도 있음. 체코슬로바키아제 개량형 메서슈미츠와 Kar98k로 무장한유대인들이 영국제, 미제 장비로 무장한 아랍군과 싸워 이기는 1차 중동전의 이야기는 소련과 체코슬로바키아 때문에 나오게 됨.[8] 직접 군대를 개입시키는 것 빼고 나머지 지원을 모두 해줌. 제4차 중동전쟁만 따져봐도 현용 미군 장비를 포함한 막대한 군수물자 원조를 이스라엘측에 일방적으로 했으며 해당 지원이 승패를 가를 수준이었다.[9] 그러나 미국은 제1,2차 중동전 당시에만 해도 지금처럼 아랍과 이스라엘이 싸우면 이스라엘 편들듯이 처음부터 이스라엘을 지원하지 않았다. 돈 주고 사겠다는 무기도 팔지 않았으며 오히려 영국과 프랑스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이였던지라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전쟁에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2차 중동전때 이집트를 공격한 이스라엘을 비난하기도 했었고 냉전 초기에는 거의 대부분 중립을 고수했다. 그러나 제1,2차 중동전 이후 중동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힘을 잃고 냉전시대때 중동에서 소련이 이스라엘과 적대적 관계에 있던 아랍국가들에 영향력을 키우게 되면서 제3,4차 중동전쟁 이후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