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벌찬
1. 개요
伊伐湌
신라 때에 둔 17관등 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 이찬의 위 등급이고, 비상설직인 대각간의 아래이다. 다른 이름으로
- 각간(角干): 삼국 통일 전쟁 시기에 여기에 클 대(大)자와 클 태(太) 자를 붙여서 대각간, 태대각간이 만들어졌다.
- 각찬(角粲)
- 이벌간(伊罰干)
- 일벌간(一伐干)
- 우벌찬(于伐飡): 정덕본에 간(干)으로 쓰여있다. 간(干)을 우(于)의 오기로 본다.
- 서발한(舒發翰)
- 서불한(舒弗邯)
- 자분한지(子賁旱支)
- 조부리지간(助富利智干): 비슷한 형식의 호칭으로 이사지우(爾師知于)[1] , 기부리지가(己富利知加)가 있다.
- 벌한(伐旱): 미질허지벌한(微叱許智伐旱) 미질기지파진간기(微叱己知波珍干岐)라고도 하는데 벌한은 미사흔이 죽고 추증된 관등인 이벌찬을 적은듯하다. 일본서기에서 이사부는 이질부례지나말(伊叱夫禮知奈末)로 나와있지만 최고 관직인 상신(上臣)[2] 을 맡고 있다고 적혀있다. 후에 오른 관직을 같이 적은듯 하다.
- 주다(酒多): 수블(酒)+하(多). 다만 이쪽은 시기상 맞지 않아서 민간어원일 가능성이 높다.
삼국사기에는 유리 이사금 시대에 이벌찬이 처음 제정됐다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2~3세기 정도로 추정된다. 17관등으로 정립된 건 법흥왕 때로 보는 편이다.
자색 관복을 입었으며 신라에서는 오직 진골 이상이어야 오를 수 있었다. 골품제 참조.
초창기 신라에서 각간에 오른 사람들이 하나같이 병부령을 겸했다는 점 때문에 원래는 병부령과 같은 업무를 하지 않았는가 추측된다.
2. 나무위키에 문서가 있는 이벌찬에 오른 사람들
[1] 우(于)는 간(干)의 오기로 보인다.[2] 만가리타로(萬加利陁魯)[3] '서발, 서불'이 뿔 '각(角)'에 대응되는 것에 착안하여, '서발, 서불'이 '뿔'의 중세 국어 'ᄲᅳᆯ'의 고형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한다. 이렇게 볼 경우 'ㅽ'의 앞 'ㅅ'은 단순한 된소리 기호가 아니라 실제로 발음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4] 김지형 등의 주장. '[t\]->ㄹ'의 예로 삼국시대 지명 가지나(加知奈)를 가을내(加乙乃)라고도 하는 것, 인명 구례(久禮)를 구지(久遲)라고도 하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