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용 공금횡령 누명 사건
1. 요약
1996년 11월 '''뽀빠이 아저씨'''와 군대 위문 프로그램 우정의 무대로 널리 알려진 코미디언 겸 MC 이상용이 심장병 어린이 수술기금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누명'''을 쓴 사건이다. 이상용 본인은 '''정치보복'''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했다.
2. 사건 개요
당시 이상용은 군인 위문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인 《우정의 무대》로 전국민적 인기를 얻으면서 그와 동시에 사회봉사와 모금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으로 유명한 연예인이었다. 아마 2000년대로 치면 김장훈 정도는 될 것이다. 이미 이상용은 1973년 (사)한국어린이보호회(현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를 세운 이래 심장병 어린이 치료를 위한 기금을 모금받으면서 방송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96년 11월 《우정의 무대》 녹화 도중 웬 정체불명의 남자들이 들이닥치면서 갑자기 "'''불 꺼'''"라고 외쳤다고 한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일단 녹화가 중단되었는데, 자신들은 경찰이라고 신분을 밝히면서 심장병 어린이 기금 횡령 혐의로 수사를 한다는 것이었다.[1] 이 사건은 KBS 최철호 PD에 의해 제작된 1996년 11월 3일 추적 60분에 방영되어 전국을 뒤흔들었고 나중에는 방송을 비롯한 모든 언론이 "뽀빠이 아저씨 횡령"을 주제로 뉴스가 나오고 기사를 쓰고 불이 붙을 지경이었다.[2] 당시 KBS측 최초 보도내용에 의하면 이상용은 개인 이벤트회사 '뽀빠이훼미리'[3] 를 통해 <가슴속의 작은 소망> 등 심장병 어린이 수기집 6권을 내면서 책 판매 수익금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쓰기로 했으나, 매출액 40억 원 중 3억을 이상용에게 초상권 명목으로 건넸고 이 중 2천여만 원을 치료비로 썼다는 식이었다. [4]
사실 그가 주로 하던 공연 행사때 저질개그[5] 를 하는 일이 좀 있어서 저 사건이 나자 그런 일화까지 들먹이면서 사회적으로 매장한 것이다. 지금 같으면 당장 인터넷 논객들이 벌떼처럼 몰려들만큼의 일이긴 했다.
결국 이 사건의 여파로 《우정의 무대》 진행자를 김병조로 교체하여 근근히 유지되다가 이듬해인 1997년 3월을 끝으로 종영됐고, 그가 줄곧 맡던 한국어린이보호회 회장직도 박영관 부천 세종병원장이 맡게 되었다. 이상용은 기자회견에서 모든 방송활동 및 사회활동을 중단하고 자취를 감췄다. 이후에는 몇 년 정도를 방송에도 못 나오고 관광버스 가이드 등 일을 하며 살아왔다. 이때 크나큰 상심으로 시력을 잠시 상실한 적도 있었고 이때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스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3. 밝혀진 진실
[image]
이상용은 이후 체포되긴 했으나, 1997년 2월에 바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 단 3달 만에 검찰에서 범죄 혐의점을 찾을 수가 없어서 기소도 하지 않고 무혐의로 불기소처분하였다. 그러나 언론들은 횡령 관련 기사는 수도 없이 썼으면서 무혐의 처분 기사는 별로 쓰질 않았고, 어처구니없게도 누명의 원인인 추적 60분은 후술할 이상용이 자신의 누명은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에 명예훼손 소송을 걸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상용이 소송을 건 것이 아니라 '''추적 60분이 명예훼손 소송을 걸었다.'''
거기에 제작진은 "이씨의 주장은 최근의 정치사회적 상황[6] 을 교묘히 이용해 재기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망언을 퍼부었고, 미디어오늘에도 기고문을 냈다. 반면 시청자들 중엔 추적 60분 보도가 왜곡이라며 방송사에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훗날 이를 제작한 최철호 PD는 취재를 위해 검사를 사칭하여 처벌받은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이상용은 아무 죄도 없이 평판이 생명인 방송계에서 방송 활동이 사실상 금지되었다.
사건은 무혐의로 종결되었지만 이상용이 출연하던 우정의 무대는 무혐의로 풀려날 즈음에 마지막 방송이 예정돼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상용의 억울함과 무고함을 알리려고 무죄 판결문을 돌리다가 세상을 떠났고 이상용 본인도 방송 출연을 못해서 미국에서 가이드로 일하다가 일시적으로 실명까지 겪고 자살 시도도 하는 등 누명의 피해는 실로 막대했다. 지상파 방송의 메인 MC까지 했던 연예인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처절하게 몰락한 것이다. 그 후 10년이 지난 2008년에 지상파에 복귀했지만 '''현재까지도''' 이상용이 횡령 사건을 일으켜서 방송에 못 나오는 줄 아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이상용은 이것 때문에 여전히 무혐의 불기소 증명원을 항상 주머니에 소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사건의 누명을 씌운 사람이 누군지 논란이 되었는데 일단 추적 60분은 부산에 사는 K씨의 제보로 방송을 내보냈다고 주장했지만 검찰도 뚜렷한 의혹이 없어서 3개월 만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는데 고작 한 사람의 제보만 가지고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애먼 사람을 범죄자로 취급할 정도의 방송을 내보냈는지가 논란이 되었다.
이상용은 이를 두고 정치보복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상용은 무혐의 결론 직후인 1997년 3월 24일, 대전 지역의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당시 대통령 김영삼의 아들인 김현철측에서[7] 이상용에게 대전 지역 국회의원으로 출마해달라고 권유했는데 원래 이상용은 정치에 관심없었고, 독실한 천주교 신자[8] 인 그가 1980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알현할 때 "어린이를 도우며 어린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라. 단, 정치에는 절대 관심을 두지 말라"는 교황에게서 받은 조언에 따르기 위해 출마 제안을 거절했다.
그런데 김현철이 자신의 말을 무시한 것에 화가 났는지 마침 이상용이 심장병 어린이 기금도 모으고 있겠다해서 추적 60분에 공금횡령 누명을 담은 영상을 제작하게 하고 방송 3일 전에는 김현철의 최측근인 박태중[9] 이가 협박전화까지 했다는 것이다.[10] 실제로 김현철이 개입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김현철 본인은 이 사건에 대해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저 침묵하고 있다.
그나마 2010년 8월 24일 KBS에 나와서 이야기를 한 덕분에 이후로는 이상용의 억울한 이야기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2012년 3월 30일 TV 조선에서 방영된 토크쇼 노코멘트에 게스트로 등장해 방송 후반 부분에 해당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567명의 심장병 어린이를 치료하는데 든 비용이 총 74억여 원으로 그 중 상당 금액을 이상용이 부담했다. 당시 수술비용은 1,800만 원이었는데, 이상용의 집값은 그 1/3밖에 안 되는 600만 원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중 현재까지 연락되는 이는 단 2명 뿐이라고 했는데 이상용 본인도 서운해하며 연락을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4. 관련 자료
[1] 이후 당시 이상용은 전 재산을 재단에 기부해서 남은 재산은 42만 원뿐이었다고 밝혔다.[2] 비슷한 시기에 MBC에서도 보도된 바 있었으며 한 달 후 어느 사이비 종교단체의 만행이 보도되면서 MBC에서는 약간 정도의 수준으로 보도했다.[3] 구 뽀빠이디엠.[4] 일단 이 주장이 신빙성이 없는 것이, 책 한 권에 5000~6000원이던 90년대 중반이면 10만부 가까이 팔려야 한다. 고료가 아닌 초상권 명목이라는 것도 의문이다. 이상용의 수기집은 당시 나온 것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정도였다.[5] 후술할 때 나오지만 관광버스 가이드나 군 관련 행사 때 어르신을 위한 19금 개그는 필수적인 일이다. 사실 저질 개그는 이상용만 행사 때하는게 아니지만 평소 이미지와 다른 모습이라서 말이 많았다. 사실 이상용뿐 아니라 대부분 방송인들이 소위 행사뛸 때는 분위기 띄우기 위해서 이런 비 방송용 19금 개그를 많이 한다. 동 시대에 주병진도 방송에선 개그계의 신사라는 이미지였지만 행사 무대에선 19금 개그의 달인이었다.[6] 당시 한보사태를 두고 여기에 개입한 김현철에 대한 비판과 조사가 이루어지던 상황이다.[7] 인터뷰상에서는 청와대 측근이었다.[8] 세례명은 '헨리코'이다.[9] 김현철과는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고 훗날 김현철과 엮여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10] 출처: 동아일보 1997년 3월 26일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