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현(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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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1년 1월 26일, 야마노테선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추락한 취객 사카모토 세이코(坂本成晃)를 세키네 시로와 구하려다 사망한 의인.
2. 생애
울산광역시 출신으로, 부산광역시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1993년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3] 무역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재학 중에 1년 6개월 간의 일본어 공부를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올바르게 이해하여 한일 교역에 이바지하고 싶은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 후,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를 휴학하고 아카몬카이 일본어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일본을 좋아했는데, 일본인의 친절함과 상냥함이 마음에 꼭 들었고, '나 같은 사람에게 일본은 파라다이스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일본의 시민의식에 감동을 받아서 자신도 등학교길에 길에 종이나 빈 캔 같은 쓰레기가 보이면 줍기 시작해서, 기숙사에 도착할 때쯤이면 자전거 짐칸이 쓰레기로 가득해질 정도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친구들이 어이없어하건 말건 그만두지 않았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3시간씩은 공부를 하고, 지나가다가도 싸움이 붙은 걸 보면 누구건 말리고 볼 정도로 성실했다. 친구들은 그런 그를 '위대한 괴짜'라고 불렀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지뢰찾기 이스터 에그가 기록되어 있었다.
17주기 영상. 고인이 다녔던 아카몬카이 학교, JR신오쿠보역, 이수현의 부모와 선배들의 인터뷰가 담겨있다. 그리고 사진과 생전에 남겼던 말이 담긴 홈페이지가 있다.
유학 이전에도 집안이 일본과 인연이 있었다. 징용 때문이니 좋은 인연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나온 다큐멘터리 영화 <가교(かけはし)>에서 밝히길, 이수현의 할아버지가 오사카에 탄광 징용으로 끌려가면서 이수현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태어나 6살 때까지 재일 조선인으로 자라다가 1944년에 겨우 귀국했다고 한다.[4] 이수현의 증조할아버지는 결국 일본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3. 신오쿠보역 승객 추락사고
4. 관련자료
그를 기리는 의미에서 JR 히가시니혼에서는 이수현 가족에게 감사패를 수여하였으며, 현재 신오쿠보역에는 위령비가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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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에 있는 추모비. 과학기술2관과 미래관 사이 주차장 옆에 위치해 있다.
그 외에도 부산어린이대공원 내 학생교육문화회관 앞뜰과 고인의 모교인 낙민초등학교, 동래중학교, 내성고등학교에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2019년 3월 21일 이수현의 아버지가 사망했다.
5. 기타
- 살신성인 의인 이수현 떠난지 20년..그를 기억하는 사람들기사
6. 관련 문서
[1] 전주 이씨 효령대군 21세손, 시조 44세손 '秀'자 항렬이다.[2] 2006학번부터 무역학과와 경영학과가 통합되어 경영학부로 바뀌었고 17학번부터 경영학부는 글로벌경영전공과 디지털경영전공으로 다시 나뉘었다.[3] 2008년에 세종캠퍼스로 이름을 바꾸었다.[4] 전쟁으로 설탕이 귀해져 배급제가 되자, 설탕을 보관해놓은 곳에 몰래 숨어들어가서 훔쳐먹던(...) 추억을 해당 다큐멘터리에서 이야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