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식
市民意識 / Civic Awareness
시민의식이란, 현대에 존재하고 있어 사회 구성원 개개의 정신적 태도와 양상을 이르는 개념이다.
'정신적 태도'라는 말은 실상은 그야말로 막대히 총체적인 말이어서 합리적 사상, 불의 부정, 여타 시비에 비판하기, 준법성, 그 밖의 범사 도덕성 등에서 시민으로서의 향상적 태도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경계가 엄숙하게 존재한다고는 할 수 없다. 시민의식이 향상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나쁜 구습 같은 사회적 폐해를 탈피하기도 하고, 지각적인 공론이 되어 삶의 권리가 자라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정확한 기준은 존재하지 않으나, 흔히 그 나라 사람들의 에티켓이나 도덕성 등을 보고 시민의식이 나쁘다, 좋다고 판단한다. 대개 그 나라의 국민성과 개인적인 도덕 관념이 시민의식 수준에 많은 영향을 주는 편이며, 이런 시민의식이 부족한 사람들은 자기 나라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 민폐를 끼침으로써 나라 망신을 주기도 한다.
시민의식 수준의 기준은 주로 선진국의 관점에서 결정된다고는 하나, 정작 다른 선진국 내에서도 우리의 시선으로 봤을때 시민의식이 뒤떨어지는 것 같은 일이 상당히 발생하기에 이것을 무조건 선진국의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애초에 시민의식이란 뜬구름 잡는 것이 선진국 분류의 기준과 무관한 것이기도 하고. 대략적으로 말하면 '''그 나라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개념'''을 이르는 용어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국가에 정당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무개념짓을 저지르는 국민들을 비판하는 개념으로 쓰이기도 한다. 물론 나라 상황에 따라 시민의식의 기준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어디에나 공통으로 적용되는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가 선진국의 판단 기준이 될 때도 있고, 경제력이 부강해도 시민의식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하면 선진국이 아니라고 보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 시민의식은 주관적이기도 하고, 계량화가 어려운 점이 있어, 뜬구름잡는 것처럼 명확하지 못한 면도 있다. 애시당초 '선진국' 개념은 일부 비뚤어진 자국혐오자들의 생각과 달리 유토피아같은 이상국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자국혐오자들은 미국, 일본 등은 선진국이니 시민의식이 매우 뛰어나다고 여기며 한국을 후진국으로 여긴다. 무엇보다도 도덕적 잣대는 문화, 시기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소위 인권이나 환경 등 '보편 타당한것'이 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UN에서조차도 그 개념이 명확히 합의된 바가 없으며, 예를 들어 각 나라마다 '인권'이란 개념조차도 달리 해석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시민의식은 절대 한두가지 요소로 측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나라나 우수한 점이 있다면 미흡한 점도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군인에 대한 대우가 정부, 시민 할 것 없이 매우 좋지만 선진국 치고 범죄율이 높다.
'시민의식' 말고 '민도(民度)'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들의 비율이 아직 높은데[1] , 국립국어원에서는 일본어투 표현은 아니라는 의견이지만[2] 문화 수준으로 순화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 '민도'란 표현은 일본에서는 흔한 표현이지만 한국에는 사어가 되었으나 이시하라 신타로가 차별 용어로 쓰면서 다시 유행한 게 한국으로 들어온 것이라 상당히 부적절한 표현이다.
많은 한국인은 대한민국 사회의 시민의식을 대체로 고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볼 때 대한민국의 시민의식은 상당히 선진적인 축에 속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일상에서 외국인의 생활상을 접할 기회가 없기에,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일부 사례들의 단편적 비교만 놓고서 한국인의 시민의식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사실상의 섬나라인 한국 사회의 현실 속에서 주변국과의 비교군이 크게 제한되는 것도 이유로 작용한다. 그렇기에 일부 잘못된 시민의식의 사례에 대하여, 실제로는 그것이 범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임에도 그것을 한국 사회만의 문제로 일반화하기도 한다.
2019년 말. 중국을 시작으로 전세계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확산된 전례없는 팬데믹 사태 이후. 미국이나 서유럽 등 기존의 전통적 선진국에서 국민이 정부의 방역에 협조하지 않고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적으로 행동함으로써 방역에 차질을 빚게 함은 물론, 그에 따라 무고한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가 비화하는 등 시민의식의 결점이 부각되는 불명예를 얻었다. 이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방역이 성공적이었던 대한민국 사회의 시민의식이 다시금 주목받기도 했다.[3]
하지만 여전히 한국인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사회로의 갈 길이 먼 것은 사실이다. 대한민국에서 시민의식이 부각된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1980년대까지는 민주주의와 산업화의 달성이라는 두 가지 국가적 과제가 있었고, 때문에 시민의식에 대한 고찰은 전무했다. 정확히 정의짓자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사회 전체에 대한 의식은 있어도 그 밖에 예절이나 행동습관같은 개인의 문제에 대한 것은 큰 의식이 없었다.
1960년대~1970년대. 주한미군은 한국인이 시간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을 두고 '코리안 타임'이라는 멸칭으로 부르던 시기가 있었다.[4] 그것 외에도 당시 한국인은 교통질서를 어기거나, 쓰레기를 함부로 길거리에 버리는 등 시민의식에 결점이 많았다.[5] 그러나 1988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시민의식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의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한 상황이었고, 그러한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외국에 알릴 절호의 기회라는 인식이 더해지면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민의식이 중요시됐다.[6]
2010년대에 접어들어 대한민국 내에서는 시민의식이 결여된 각종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시각이 크게 증가했으며, 그에 따라 개선의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후진적으로 남아있는 사회풍토가 많은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시민의식에 대한 반성적인 여론이 점차 확산된다는 것은 고무적인 점이며, 실제로도 국민 다수가 자국의 시민의식을 비판하기 시작하는 것은 진정한 시민의식 개선의 첫 걸음이라 볼 수 있다.
어느 세대에나 시민의식이 결여된 사람은 존재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경우 전후 개발도상국으로 진입하던 시대에 출생했던 세대에게서 특히 시민의식의 결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회 현상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 사이에 출생한 세대를 중심으로 강하게 나타난다. 그들 중 상당수는 어렸을 적에 극빈층이었고, 이후 1970년대 중반-1980년대 대한민국이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룩하며 공업국으로 변신하고 사회적 대변혁을 이루던 시기에 사회에 진출하여 젊은 시절을 보냈다.
국민들의 교육 수준이 떨어졌던 후진국-개발도상국 시절에 유년기-청년기를 보낸 만큼, 이들은 시간이 지나 사회의 기성세대로 자리잡고서도, 길거리 침뱉기, 길거리 흡연, 무단횡단, 난폭운전, 인도에서의 통행방해, 고성방가, 처음보는 젊은 사람에게 반말, 상점이나 직장에서의 갑질, 새치기 등의 잘못된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즉 그들이 어리거나 젊었던 시절에 사회에 만연했던 올바르지 못한 생활습관과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어린 시절에 보냈던 어려운 삶에 대한 보상심리 탓에, 선진국의 국민으로서 시민의식의 옳고 그름에 대한 타당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이다. 또한 한 세대가 넘어가기 이전에 후진국-개발도상국-선진국으로 급격하게 사회가 발전한 대한민국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사회적 진통이기도 하다. 즉 국가의 수준은 선진국으로 도약했으나 정작 그 선진사회를 구성하는 특정 세대의 평균 시민의식은 사회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여 과거에 머무르는 기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관련사항은 개저씨, 틀딱, 아줌마, 맘충 문서 참고.
일단 여기 적힌 항목들이 이전 문서의 특성상 한국 단락으로 따로 분리되어있긴 하나, '''절대로''' 비단 '''한국에만 있는 장점 혹은 단점들은 아니다.''' 부정적인 부분만 해도 당장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다른 선진국 내에서도 상당히 자주, 그리고 일상적으로 보여지는 것들이 많다. 애초에 100번의 시민의식 존중보단 1번의 시민의식 저해 사례가 기억에 더 오래 남기도 하고 말이다. 반성해야 한다는 것은 기억하되 이것들을 한국만의, 그리고 모든 한국인들의 문제점이라며 무조건적으로 비하하거나 일반화하는 행위는 없어야 할 것이다.
1. 개요
시민의식이란, 현대에 존재하고 있어 사회 구성원 개개의 정신적 태도와 양상을 이르는 개념이다.
2. 상세
'정신적 태도'라는 말은 실상은 그야말로 막대히 총체적인 말이어서 합리적 사상, 불의 부정, 여타 시비에 비판하기, 준법성, 그 밖의 범사 도덕성 등에서 시민으로서의 향상적 태도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경계가 엄숙하게 존재한다고는 할 수 없다. 시민의식이 향상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나쁜 구습 같은 사회적 폐해를 탈피하기도 하고, 지각적인 공론이 되어 삶의 권리가 자라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정확한 기준은 존재하지 않으나, 흔히 그 나라 사람들의 에티켓이나 도덕성 등을 보고 시민의식이 나쁘다, 좋다고 판단한다. 대개 그 나라의 국민성과 개인적인 도덕 관념이 시민의식 수준에 많은 영향을 주는 편이며, 이런 시민의식이 부족한 사람들은 자기 나라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 민폐를 끼침으로써 나라 망신을 주기도 한다.
시민의식 수준의 기준은 주로 선진국의 관점에서 결정된다고는 하나, 정작 다른 선진국 내에서도 우리의 시선으로 봤을때 시민의식이 뒤떨어지는 것 같은 일이 상당히 발생하기에 이것을 무조건 선진국의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애초에 시민의식이란 뜬구름 잡는 것이 선진국 분류의 기준과 무관한 것이기도 하고. 대략적으로 말하면 '''그 나라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개념'''을 이르는 용어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국가에 정당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무개념짓을 저지르는 국민들을 비판하는 개념으로 쓰이기도 한다. 물론 나라 상황에 따라 시민의식의 기준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어디에나 공통으로 적용되는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가 선진국의 판단 기준이 될 때도 있고, 경제력이 부강해도 시민의식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하면 선진국이 아니라고 보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 시민의식은 주관적이기도 하고, 계량화가 어려운 점이 있어, 뜬구름잡는 것처럼 명확하지 못한 면도 있다. 애시당초 '선진국' 개념은 일부 비뚤어진 자국혐오자들의 생각과 달리 유토피아같은 이상국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자국혐오자들은 미국, 일본 등은 선진국이니 시민의식이 매우 뛰어나다고 여기며 한국을 후진국으로 여긴다. 무엇보다도 도덕적 잣대는 문화, 시기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소위 인권이나 환경 등 '보편 타당한것'이 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UN에서조차도 그 개념이 명확히 합의된 바가 없으며, 예를 들어 각 나라마다 '인권'이란 개념조차도 달리 해석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시민의식은 절대 한두가지 요소로 측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나라나 우수한 점이 있다면 미흡한 점도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군인에 대한 대우가 정부, 시민 할 것 없이 매우 좋지만 선진국 치고 범죄율이 높다.
'시민의식' 말고 '민도(民度)'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들의 비율이 아직 높은데[1] , 국립국어원에서는 일본어투 표현은 아니라는 의견이지만[2] 문화 수준으로 순화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 '민도'란 표현은 일본에서는 흔한 표현이지만 한국에는 사어가 되었으나 이시하라 신타로가 차별 용어로 쓰면서 다시 유행한 게 한국으로 들어온 것이라 상당히 부적절한 표현이다.
3. 대한민국의 시민의식
많은 한국인은 대한민국 사회의 시민의식을 대체로 고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볼 때 대한민국의 시민의식은 상당히 선진적인 축에 속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일상에서 외국인의 생활상을 접할 기회가 없기에,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일부 사례들의 단편적 비교만 놓고서 한국인의 시민의식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사실상의 섬나라인 한국 사회의 현실 속에서 주변국과의 비교군이 크게 제한되는 것도 이유로 작용한다. 그렇기에 일부 잘못된 시민의식의 사례에 대하여, 실제로는 그것이 범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임에도 그것을 한국 사회만의 문제로 일반화하기도 한다.
2019년 말. 중국을 시작으로 전세계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확산된 전례없는 팬데믹 사태 이후. 미국이나 서유럽 등 기존의 전통적 선진국에서 국민이 정부의 방역에 협조하지 않고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적으로 행동함으로써 방역에 차질을 빚게 함은 물론, 그에 따라 무고한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가 비화하는 등 시민의식의 결점이 부각되는 불명예를 얻었다. 이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방역이 성공적이었던 대한민국 사회의 시민의식이 다시금 주목받기도 했다.[3]
하지만 여전히 한국인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사회로의 갈 길이 먼 것은 사실이다. 대한민국에서 시민의식이 부각된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1980년대까지는 민주주의와 산업화의 달성이라는 두 가지 국가적 과제가 있었고, 때문에 시민의식에 대한 고찰은 전무했다. 정확히 정의짓자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사회 전체에 대한 의식은 있어도 그 밖에 예절이나 행동습관같은 개인의 문제에 대한 것은 큰 의식이 없었다.
1960년대~1970년대. 주한미군은 한국인이 시간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을 두고 '코리안 타임'이라는 멸칭으로 부르던 시기가 있었다.[4] 그것 외에도 당시 한국인은 교통질서를 어기거나, 쓰레기를 함부로 길거리에 버리는 등 시민의식에 결점이 많았다.[5] 그러나 1988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시민의식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의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한 상황이었고, 그러한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외국에 알릴 절호의 기회라는 인식이 더해지면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민의식이 중요시됐다.[6]
2010년대에 접어들어 대한민국 내에서는 시민의식이 결여된 각종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시각이 크게 증가했으며, 그에 따라 개선의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후진적으로 남아있는 사회풍토가 많은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시민의식에 대한 반성적인 여론이 점차 확산된다는 것은 고무적인 점이며, 실제로도 국민 다수가 자국의 시민의식을 비판하기 시작하는 것은 진정한 시민의식 개선의 첫 걸음이라 볼 수 있다.
3.1. 20세기 중반 출생 세대의 시민의식
어느 세대에나 시민의식이 결여된 사람은 존재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경우 전후 개발도상국으로 진입하던 시대에 출생했던 세대에게서 특히 시민의식의 결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회 현상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 사이에 출생한 세대를 중심으로 강하게 나타난다. 그들 중 상당수는 어렸을 적에 극빈층이었고, 이후 1970년대 중반-1980년대 대한민국이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룩하며 공업국으로 변신하고 사회적 대변혁을 이루던 시기에 사회에 진출하여 젊은 시절을 보냈다.
국민들의 교육 수준이 떨어졌던 후진국-개발도상국 시절에 유년기-청년기를 보낸 만큼, 이들은 시간이 지나 사회의 기성세대로 자리잡고서도, 길거리 침뱉기, 길거리 흡연, 무단횡단, 난폭운전, 인도에서의 통행방해, 고성방가, 처음보는 젊은 사람에게 반말, 상점이나 직장에서의 갑질, 새치기 등의 잘못된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즉 그들이 어리거나 젊었던 시절에 사회에 만연했던 올바르지 못한 생활습관과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어린 시절에 보냈던 어려운 삶에 대한 보상심리 탓에, 선진국의 국민으로서 시민의식의 옳고 그름에 대한 타당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이다. 또한 한 세대가 넘어가기 이전에 후진국-개발도상국-선진국으로 급격하게 사회가 발전한 대한민국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사회적 진통이기도 하다. 즉 국가의 수준은 선진국으로 도약했으나 정작 그 선진사회를 구성하는 특정 세대의 평균 시민의식은 사회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여 과거에 머무르는 기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관련사항은 개저씨, 틀딱, 아줌마, 맘충 문서 참고.
4. 예시
4.1. 한국
일단 여기 적힌 항목들이 이전 문서의 특성상 한국 단락으로 따로 분리되어있긴 하나, '''절대로''' 비단 '''한국에만 있는 장점 혹은 단점들은 아니다.''' 부정적인 부분만 해도 당장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다른 선진국 내에서도 상당히 자주, 그리고 일상적으로 보여지는 것들이 많다. 애초에 100번의 시민의식 존중보단 1번의 시민의식 저해 사례가 기억에 더 오래 남기도 하고 말이다. 반성해야 한다는 것은 기억하되 이것들을 한국만의, 그리고 모든 한국인들의 문제점이라며 무조건적으로 비하하거나 일반화하는 행위는 없어야 할 것이다.
4.1.1. 긍정적인 면
50년 전만 해도 세계 최빈국이었던 국가가 완전한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자리잡은 사례는 전세계적으로 보면 한국과 같은 배경에서 성공한 사례는 거의 유일무이하다.[7] 게다가 1950년대~1980년대까지 독재정권을 겪은 국가가 2020년대인 현재 '민주주의 지수 아시아 1위'를 달성한 것은 시민의식의 힘이 아니었으면 절대로 못 했다고 단언할 수 있는 부분이다.[8] 특히 서울의 봄 이후로 다시 독재정권이 들어선 것을 몰아낸 것도 그렇다. 아랍의 봄 문서를 봐도 알겠지만 한국과 같이 경제성장과 시민의 힘으로 이룬 민주화를 이뤄낸 국가도 드물다.
- 2016~2017년 경은 이런저런 각종 집회와 퇴진 운동에서 보여준 모습에서 2008년 광우병 집회보다 상당히 발전적 모습을 볼 수 있다. 현대에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유지하면서 스스로 경찰관들과의 충돌을 자제하려는 분위기와 집회가 끝난 다음의 깨끗한 길을 위해 자발적으로 청소에 참여하는 모습에서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에서도 감탄했다. 이런 움직임은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다시 보여졌는데, 사실 긍정이기보다는 당연한 것이나,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현실에서 잘 지켜지지 못하기에 더 놀라운 것이다.
- 기존에는 시민의식이 뒤떨어졌다며 비난되던 부분이지만 근 5년새 상당히 많이 변화한 것으로, 바로 긴급차량에 대한 길터주기 문화의 정착이다. 비단 고속도로뿐더러 도시 내의 일반도로에서도 경찰차나 소방차나 구급차 등 비상차량이 지나가면 길을 터주는 문화가 상당히 정착되었으며,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에서 관련된 영상을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시민의식에 사회 전체적으로 있어 의미 있는 변화가 있음을 상징한다. 영상 위에도 있지만,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관련법이 생겨서 지키는 거라는 사람도 있지만, 애초에 법의 제정은 어느 국가라도 할수 있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시민들의 의식적인 행동과 연결된 또 다른 문제일 수밖에 없다. 관련법과 처벌안을 만드는 것뿐으로 모든 악행이 근절되는 게 당연하다고 믿는 어리석은 이는 전 세계 어느 법조계에도 없다. "법에 점유이탈물횡령죄를 만들면 남의 물건 가져가는 일이 안 일어나고, 강도죄를 만들면 더 이상 강도사건이 안 일어나겠지?" 정도의 일차원적인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법을 제정해서 사람들이 이렇게 하지 않은 거라는 심각한 하자가 있는 논리만 일삼다 보면, 정작 중요한 본질을 놓칠 수 있다. 규범주의와 기술주의도 이와 비슷하다.
사실 너무나도 좋은 쪽으로 일상화되어있어서 인식도 잘 못해 짚고 넘어가지도 않는 부분이긴 하다. 카페에서 공부를 하다 노트북이나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그냥 두고 화장실을 갔다 와도 그대로 있고, 가방 등 소지품을 지하철 등에 잊고 가도 누가 역 관리실이나 분실물 보관소에 가져다주어 찾을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 등 극히 소수의 국가들뿐이고, 이런 세계 최고수준의 치안은 애초에 대한민국의 시민의식이 발달되어 있지 않았으면 이뤄지기도, 오랜 기간에 유지할 수도 없다. 실험 영상, 미국인 유튜버. '자타공인 선진국'으로 불리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 공공장소에 개인 소지품 등을 그냥 놓아두면 순식간에 도둑맞기 일쑤이다. 실제로 너무 오랜 기간에 한국이나 일본의 치안에 익숙해진 동아시아계 여행객들이 이런 일들을 종종 겪기도 한다.
- 2020년 코로나19 확산 사태 때 영국 BBC 방송과 프랑스 AFP 통신은 대한민국에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에 잘 참여하고 있으며, 거의 모든 건물에 열화상 카메라와 손소독제가 별다른 지시가 없어도 비치될만큼 위생 관리에도 철저하다며 한국의 시민의식을 호평했다. # 특히 기사가 써진 2020년 3월에는 미국과 유럽에서 확진자가 급증하였기에, 로이터, 이코노미스트, 슈피겔, CNN을 비롯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방 선진국들의 다른 주요언론들 또한 동년 3월 11일자 기사에서 대한민국 시민들이 정부의 권고에 잘 따르고 보건기관을 존중하며, 개인위생수칙을 지키는 데에 철저한 시민의식을 보인 점을 우수한 사례로 들었다. # # 특히 프랑스의 양대 일간지 가운데 한 곳인 르 피가로는 3월 13일자 기사#에서 "한국에선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곳에서 주민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는 것도 이웃과 가족을 전염병 위험에 노출하지 않으려는 것."이라며 한국의 시민의식을 칭찬했다. 그리고 자국에서는 같은 달 7일자 프랑스 랑데스노에서 열린 스머프 페스티벌의 예를 들며, "이 장면은 이탈리아 다음으로 프랑스를 호시탐탐 노리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어처구니없는 경솔함을 놀리는 풍자 거리가 됐다."라며 질타하기도 했다. 또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6일 오후 8시의 긴급성명 발표 도중, 이미 경고를 했음에도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채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참여하지 않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을 꼬집기까지 했다.[10]자료 화면
- 이탈리아 전국지 '일 솔레 24 오레'도 3월 20일자 '동선 추적과 시민의식이 바이러스를 이기는 비장의 카드'라는 기사에서 "한국이 중국처럼 극단적이고 공격적인 봉쇄 정책을 쓰지 않고도 바이러스를 통제하는 데 성공해 국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로 썼다. 신문은 한국 정부가 한때 중국을 오가는 항공편을 폐쇄하지 않았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국가 시스템의 효율적인 운영과 첨단기술 활용, 깨어있는 시민의식 등을 통해 바이러스 확산세를 저지했다고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전했다. 특히 정부 정책을 믿고 협조하는 한국인들의 태도를 높이 평가하기도 했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법 규정을 어기는 사람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탈리아보다 강하다."를 덧붙이기도 했다.#
- 프랑스의 유력 주간지인 '르뿌앙(Le Point)'또한 자사 기자가 한국에서 자가격리를 체험한 것을 "대한민국에서 자가격리중인 한 프랑스인의 편지"라는 제목의 4월 1일자 기사로 내보내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실었다. "한국의 방역 관리를 보며 처음에 '히스테릭한 파시스트 보건국가'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시스템을 그리 말하는 건 서구 관념론자들의 어설픈 지적일 뿐이다.", "우리(프랑스)는 감염 위험이 높은 사람들을 격리하는데 주저하다, 마치 전쟁중처럼 길거리에 검문소를 설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의 조치는) 인권, 사생활, 자유로운 이동권 등을 침해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격리 조치를 따르고 이동금지를 (자발적으로) 준수하는 것은 시민 정신(시민의식)의 실현일 뿐이다.". 또한 기자는 프랑스 과학위원회의 한 의사가 말하듯 한국이 '극도로 강압적인 사회'라서 바이러스 확산을 통제한 것이 아니라, 견고한 민주주의 사회 안에서 '극도의 투명성'과 국민들의 자발적 호응을 바탕으로 바이러스 확산을 효과적으로 저지했다고 평가했다. #1#2
- 또한 국민들의 코로나19 관련 규범 준수 또한 타국에 비해 상당히 우수하였다. 위 사진에서 오른쪽에 있는 프랑스의 경우는 7월 13일 파리 생제르맹 FC와 르 아브르 간 유관중 경기의 모습인데, 이 시기 프랑스의 일일 신규확진자는 1,625명에 육박하였음에도 관중들은 좌석간 거리도 두지 않고 마스크조차 제대로 쓰지 않은 채로 경기를 관람하던 것에 반해,[9] 8월 1일에 치뤄진 전북 현대 모터스와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간의 K리그1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당일 확진자 수 31명 (지역발생은 8명, 나머지는 해외유입) 정도만을 기록하고 있었음에도 전 관중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두 칸 이상의 좌석간 거리두기를 실천하였다. 이는 인천 유나이티드 나 성남 FC, FC 서울 등 한국 내 다른 축구단이나 KBO 리그 참가 야구단에서의 유관중 경기 때도 동일하게 나타난 모습이다.
다만 3차 대유행 시기가 나타난 지금은 이전보다 많이 무뎌져서 초기 대유행 시기 보였던 성숙한 시민의식이 무력화될 위기에 처했다.
4.1.2. 부정적인 면
- 사기 범죄 등의 경제사범이 적지 않다던 기사가 눈길을 끌었으나, jtbc [팩트체크] "한국인은 숨 쉬듯 거짓말"…정말 그럴까?에서 보듯이 과장 및 왜곡된 면이 상당부분 있는 기사로 관련 팩트체크는 사기죄 문서로. 국내 현황에서는 총 범죄 집계 가운데에서 사기 등의 경제사범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문제이나 이것은 한국의 치안이 좋기에 대면범죄가 자주 없어 사기가 부각되는 문제로 볼 수 있고, 실제로 팩트체크에서도 이것이 수의 문제가 아니고 비율 문제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 과태료, 범칙금 수준의 경범죄에 다소 관대하게 대한다. 대표적으로 불법주차, 길거리 침뱉기. 이 부분은 공무원이나 경찰관이나 소방관 등이 단속을 안 하는 문제가 굉장히 크게 작용한다. 그러면서도 인터넷 커뮤니티나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창을 중심으로는 엄벌주의가 만연해 있다.
- 스포츠 선수가 잘하다가 조금 부진하면 있는대로 비하하다가 또 잘하면 빨고, 못하면 깐다면서 냄비근성이 심하다는 식의 서술이 있었다. 다만 냄비근성 자체는 전세계적 현상이다! 냄비근성 문서로.
- 권위주의적 문화
- 배려 부족
- 음식점에서의 맘충행위. 아이 똥기저귀 버리고 가기, 아이가 조금만 먹으니 아이를 위할 메뉴를 요구하기, 아이가 시끄럽게 돌아다니는데 터치 안 하기 등.
- 길빵. 사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양권 선진국들에서 한국보다 더 흔한 현상이긴 하다. 길을 걸어가며 피는 건 남녀노소 할것없이 다 하고, 근처에 아이가 있어도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어쨌든 흡연자들 입장을 들어보면 내 세금 내서 내가 피는데 뭐가 문제냐 하는 식이다. 하지만 그 연기가 다른 사람의 건강을 해칠 뿐더러 본인 옷과 체모에 붙어있는 담배연기 모두 다른 사람에게 민폐임을 명심해자. 다른 사람의 차에 타거나 집, 또는 장소에 가면 예의상은 몸이라도 털어주자.
- 영화관 같은 공공장소에서 연인들이 시끄럽게 떠들거나, 냄새나는 음식을 쩝쩝거리며 먹거나, 아이들 데리고 와서 다른 사람의 영화 관람을 가로막거나, 두자리가 하나로 공유하는 팔거치대에 일방적으로 팔을 크게 올려 불쾌감을 주거나 하는 행동.
- 온라인 게임에서 비매너 행위로 눈총을 받는 경우가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비판, osu!/비판 등 항목으로. 시민의식의 변화가 결국 시간이 필요한 변화이다 보니 아직 일부 젊은층에서도 개선할 점이 있을 것을 보여준다.
- 오픈채팅이나 온라인 커뮤니티같은 인터넷 개방 공간에서도 배려가 부족한 사례로 익명을 믿고 혐오를 비롯한 각종 비판을 받을 여지가 다분한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 대중교통에서의 시민의식 부재[13]
-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 운전자들. 버스의 경우는 사람이 앉기도 전에 출발해서 항상 사람들끼리 부딪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택시는 한국어를 못하는 외국인들에게 바가지 요금을 씌우는 경우가 있어 크게 문제가 되었다.[11]
- 출근시간대에 지하철에서 내리지도 않았는데 1초가 급하다고 먼저 타는 행위, 지하철 내에서 뒤에서 안 보인다고 미는 행위. 사실 밀어도 빨리 못 간다. 다만 이것 역시 일본같이 푸쉬맨을 둬서 충분히 밀어 넣고 닫거나 미국처럼 커트맨을 둬서 중간에 줄을 자르는 통제요원을 두거나 하면 되는데, 서울교통공사와 코레일 탓에 기관사가 "닫힘" 버튼만 연타하면서 승객 내리자 마자 혹은 아예 다 내리기도 전에 어거지로 닫아버리는 무리한 출입문 취급도 한몫한다. '빨리빨리' 문서에도 관련 원인 내용이 있다.
- 반례로 서울 지하철 9호선을 타 보면 안다. 4줄 서기를 유도하는 라인이 명확하고, 커트맨 직원이 배치되어 내리기 전에는 승차하지 못하게 통제하고, 적당히 승차한 다음 승차줄을 끊고 더이상의 승차를 못 하게끔 통제하며 안전 확인을 한 다음에 출입문을 취급한다. 또한 배차 간격도 3분 정도로 매우 조밀하게 편성되어 있어 여유롭게 다음 차량을 기다리게 유도하는 것이 가능하다. 1호선의 일부 구간이나 경의중앙선 등에서는 여전히 무작정 밀며 내리고 타기도 지켜지지 않는 등 좀 심한 노선들이 있는 데, 이는 통제요원의 부재와 함께 놓치면 그냥 그날 지각이나 다름없는 15분을 넘어가는 배차 시간도 한몫 한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이렇게 배차가 길어 필연적으로 승차 전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노선의 경우 푸시맨을 들여 태울 수 있을 때까지 밀어 넣고, 열차 시간표 자체를 애초부터 승하차 지연을 고려하여 정차 시간을 길게 잡기에 질서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칼같은 JR의 정시성에도 여유로운 시간표라는 바탕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전철역의 정차시간은 20~30초에 불과하다. NH면 모를까 RH 시간대에는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시간표를 던져주고 그렇다고 몇분이고 몇십분이고 지연되게 놔둘수는 없으니 사람이 끼든 말든 내리고 타든 말든 출입문 닫힘 버튼만 주구장창 연타하니 승객 입장에서도 별 수 없다. 그렇다고 제 시간에 플랫폼에 왔으나 수용용량 초과로 인해 탑승 불가하였다고 해도 일본처럼 그에 대한 증명서를 끊어주는 것도 아니기에[12] 지각해도 별달리 소명할 방법이 없고. 그렇다고 무작정 일찍 나오기엔 아예 한 시간 일찍 나올 게 아니면 일찍 나와도 확실히 이런 승하차 지연에 영향받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 도로교통, 자동차 관련.[14] 보배드림, 테스트드라이브, 디시인사이드 자동차 갤러리, 클리앙 굴러간당, 뽐뿌 자동차 포럼 등 자동차 관련 커뮤니티 및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로 삼는 점들을 서술함.
- 서울 경찰 지정 3대 교통 무질서 행위
- 지정차로제의 미정착. 고속도로 1차로에서 저속으로 지속주행하는 승용차들, 상위차로에 무분별하게 진입하는 화물차와 대형 승합차들. 지정차로제는 물론 저속차량이 우측으로 빠져야 하는 keep right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좌측의 1차로가 아닌 가장 우측 차로가 교통흐름이 가장 빠른 경우가 많다.
- 교차로가 정체 시 꼬리물기. 신호가 녹색이어도 앞에 공간이 없으면 진입해서는 안되나, 꼬리물기로 반대편의 교통까지 막는다. 심지어 꼬리물기를 방지하기 위해 교차로에 진입하지 않으면 꼬리물기 한 옆차로 차들이 새치기해서 들어와서 진행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 얌체 끼어들기. 정체로 인해 진출입로가 막혀서 길게 줄을 서고 있으면 100%에 가까운 확률로 가장 앞에서 얌체 끼어들기 하는 차들을 볼 수 있고, 이들은 본선의 정상적인 통행까지 방해한다.
- 보편화된 짙은 윈도우 틴팅. 인지 저하가 일어나지 않는 과학적인 한계, 그리고 그것에 기반한 유리창 가시광선 투과율의 법적 제한인 전면 70%, 측면 40%는 무시되고, 프라이버시, 햇볕 차단이라는 이유로 90% 이상의 운전자가 투과율을 위반하고 있고, 업계에서는 이보다 한참 낮은 전면 35%, 측후면 15%의 투과율을 가지는 틴팅 필름이 국민농도인 나라다.
- 승하차시 잦은 문콕 테러. 2011년부터 5년간 발생회수가 2배 증가했다. 주차 칸이 좁은 환경적인 요인도 있지만, 문콕 테러를 포함한 물피도주는 아예 법적으로 처벌이 불가능했고, 처벌 이후에도 솜방망이 수준이며, 주차 칸이 좁더라도 성숙한 시민의식이 있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 서울 경찰 지정 3대 교통 무질서 행위
5. 관련 문서
[1] 몇몇 사전에는 표준어로 등록되어 있기도 하다.[2] 이렇게 오해된 것은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조선인과 일본인의 공식적인 차별을 두는 근거로 '민도'를 써먹던 것에서 온 듯하다.[3] 여기서 핵심은 코로나 사태 속에 두드러진 대한민국의 성공적인 방역 성과는 의료진의 자발적인 헌신과, 국민들의 자발적인 협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세계가 극찬했던 대한민국 사회의 방역 성과에서 실질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공로보다는 시민사회의 선진적인 대처가 더욱 큰 역할을 했기에 이것을 정치적 관점에서 정부의 공로로만 돌리는 것은 경계해야 할 점이다. 실제로 코로나 사태 속에 대한민국 정부는 오히려 대만이나 뉴질랜드와 비교해서 안일한 외교적 조치를 취해 초기 방역에 있어 큰 난항을 겪도록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으며, 이후 시간이 지나 2021년 초에 G20, OECD, BRICS 등의 주요국들이 모두 백신접종을 시작하던 시기에도 기존의 방역성과에만 도취되어 코로나 백신 확보 문제를 안일하게 여겼다가 세계에서 102번째 차례가 되어서야 백신접종을 시작한 국가라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4] 반면 현대 대한민국은 오히려 '빨리빨리' 문화의 대명사로 비판된다.[5] 80~90년대 시민의식의 실태를 조사해보면 당시의 길거리에 창궐한 쓰레기나 공공질서 무시(가령 올림픽대로를 무단횡단 했듯이) 등의 실태가 쏟아져 나오곤 하는데, 이는 당대 시민의식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었기에 생겨난 현상이다.[6] 이는 체면을 중요시하는 동아시아 사회의 특수성도 크게 작용했다.[7] 대한제국이 망하고 일제강점기를 거의 반세기 동안에 겪으며 온갖 자원을 수탈당한 데다 그게 끝나고 5년 만에 전쟁까지 겪어 국토가 완전히 초토화되어 세계 최빈국이 되었다. 비슷한 상황이던 여러 아프리카 대륙내 국가들이 현재 어떤 모습인가 상상해보면, 이런 상황의 국가가 반백 년이 좀 지나면 아시아 최고 민주주의 국가가 된다는 말을 하면 누가 믿기야 했겠는가?[8] 2018년 기준은 민주주의 지수 8.00점으로 세계 21위에 자리했으며, '완전한 민주주의'로 분류되는 8.01점에 단 0.01점 못미쳐 '결함있는 민주주의'로 분류되었다.[9] 결국 이러한 마스크 미착용에 힘입어 10월 기준 프랑스의 일일확진자는 다시 2만명까지 증가하였다.[10] 재밌는 것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인들의 이런 행동을 꼬집을때 한 말이 "당신이 감염자라면, 증상이 있든 없든 당신도 모르는 사이 가족과 친구를 감염시킬수 있으니 조심하자."라는 투이던 것이다. 위에서 르 피가로가 작성한 기사내용과 비교되는 부분.[11] 다만 이건 대중교통 분담률을 높이면서도 도로교통에 몰빵하다시피 한 우리나라 정책의 탓도 있다. 아예 자가용에 몰빵하고 대중교통을 버려버린 미국이나, 무리한 운전을 하지 않아도 정시성 등 대중교통에 필수적인 요소들만이라도 충분히 지킬 수 있게끔 철도교통 몰빵 정책을 펴는 일본이나, 10층 넘는 건물들의 건축허가를 잘 내주지 않아 도시 자체의 인구밀도가 떨어지는 유럽과는 버스 서비스 환경이 좀 달라서 발생하는 태생적인 문제가 있다.[12] 일본에서는 정차시간 문제로 승객이 커트맨 등의 역무직원에 의해 탑승을 제지당할 경우 제지당한 사람은 그에 대한 지연 증명서를 요구할 수 있다.[13] 다만 이 부분은 구조적 측면의 문제도 있다.[14] 허술한 운전면허, 도로교통법 위반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등이 이유로 꼽힌다. 블랙박스의 보급으로 위반자들에 대한 신고가 늘어나고 있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