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쌔신

 




1. 개요
2. 어원과 표기
3. 역사
4. 관련 인물
5. 아사신파가 암살/시도한 주요 인물
6. 창작물의 어쌔신
7. 암살과 무관하게 이름만 어쌔신인 것들
7.1. Diep.io의 탱크 어쌔신
7.2. 유희왕의 카드
7.3. 영화 제목
7.4. 노바2에 나오는 대형 유닛


1. 개요


이슬람 시아파를 원류로 하는 이스마일파 가운데서 특히 "니자리파"라고 불리는 교단. 중세 아랍 지역에서 해당 교파를 위주로 조직되어 활동한 하산 사바흐의 암살자 집단이 유명하다. 아사신들은 본래 파티마 왕조의 이맘-칼리파 알 무스탄시르에 충성했는데, 그가 사망한 후 기존 후계자이던 장남 니자르 대신 차남 알 무스탈리가 집권하자 전자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자립하였다.
4대 지도자 하산 앗 살람부터 이맘을 칭했으며, 순나와 쉬아를 막론하고 여러 지도자들에 대해 암살을 기획하였다. 동시에 학자들을 후원하여 문화적으로 융성하였다. 13세기 들어서는 압바스 왕조와 타협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1257년 몽골군의 공격으로 이란 북부의 본부는 멸망하였고, 시리아 산지의 지부 역시 1273년 맘루크 술탄 바이바르스에게 항복하였다. 다만 조직 자체는 이어져 맘루크 조의 직속 암살단으로 남았으며, 이란에 남아있던 이맘의 후손들은 19세기 인도로 이주하여 현재 아가 칸 세력으로 현존한다.


2. 어원과 표기


마르코 폴로의 '산지 노인' 기록과 아랍인들의 각종 기록에서 '해시시를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아랍어 '하사신(حشّاشين)'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약쟁이'''.
그러나 어쌔신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어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일설에는 파티마 왕조의 한 칼리파가 시리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암살자들을 비하하는 의미로 '쓰레기 같은 놈들'이라는 의미의 '하시시'라고 지칭했다고 한다. 또한 니자리파의 교리에서 신앙의 기초, 근간을 의미하는 ‘아사스(Asas)’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슬람 사회 규범과 어긋난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마약을 먹은 것 같다'는 의미로 흔히 붙여지던 하사신이라는 멸칭이 나중에 고유명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원어인 페르시아어로는 '''아사신(حشیشیان‎)'''이라고 표기하며, 기원인 아랍어에서는 '''하샤신(حشّاشين‎)'''이라 한다. 화려한 암살 행적으로 암살자의 대명사가 되어, 1276년 페르시아 지방을 여행한 마르코 폴로를 통해 이 말이 유럽에 흘러들어가 '''어쌔신'''(Assassin) 을 탄생시켰고 그것이 영어로 유입되어 암살자를 이르는 말이 되었다.
나무위키는 대중성을 고려하기에 이 문서의 제목은 '''어쌔신'''으로 한다. 나무위키에서는 ①정발명 ②범용성 ③외래어 표기법 순으로 우선하는 원칙에 따라 디아블로 2어쎄신(정발명)을 제외한 Assassin의 일반 문서는 '''어쌔신'''으로 문서명을 정했다.[1] 보통명사 assassin은 표기법을 따르면 '''어새슨''' 또는 '''어새신'''이 된다.

3. 역사


파티마 왕조시아파의 분파인 이스마일파에서 분화한 세력으로, 1094년에 파티마의 칼리프인 알 무스탄시르 사후 카이로에서 칼리프가 된 그의 아들을 지지하는 파와 왕좌에서 밀려난 이후 알렉산드리아에서 피살된 전 칼리프의 동생의 큰아들을 지지하는 그룹으로 분화되었는데, 페르시아에 존재하던 이스마일파가 새로운 파티마 칼리프를 부정하고 나머지 세력과 손을 잡은 것에서 근거한다. 셀주크의 지배에 저항하던 이스마일파들이었기에 이들은 투쟁의 형태를 더 급진적인 유혈 투쟁으로 노선을 바꾼다.
유발 하라리의 책 '대담한 작전'에 따르면 니자리파는 하람인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물론 신앙을 숨기는 것을 정당화하고 심지어 때로는 이를 권장하는 등[2] 일반 이슬람 규범과 매우 이질적인 교리를 가졌는데, 이것이 하사신이라는 멸칭이 붙은 원인이라고. 이런 은밀함은 니자리파가 암살로 유명해진 이유기도 하다. 블라디미르 바르톨의 '알라무트'라는 소설은 아예 하산 사바흐와 하사신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대중매체에서는 어쌔신이 보통 엄청난 암살 기술을 가진 전투집단으로 묘사되지만, 사실 이들이 사용한 방식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었다. 니자리파는 교단 차원에서 어릴 때부터 정예 요원들을 길러냈으며, 이들이 사용한 무기는 종교적 광신, 어학능력과 교양, 그리고 용의주도한 인내심이었다고 한다. 수많은 민족이 뒤섞여 때로는 교류하고 때로는 갈등하던 중세 중동에서 어학능력이 출중하고 타 민족의 관습에 박식한 이들이 유력 인사의 하인으로 고용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이렇게 잠재적 표적인 유력 인사들의 곁에서 잠복하고 있던 니자리파 요원들은, 지령이 떨어지면 오랜 시간을 들여 때를 엿보다 기회가 왔을 때 암살을 수행했다. 대단한 암살 기술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는데, 암살자의 생환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교단을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희생하는 종교적 광신성이 그 자리를 메웠다. 자살폭탄테러가 테러리스트의 탈출을 전제로 한 일반적인 폭탄 테러보다 훨씬 단순하고 성공확률이 높은 것을 떠올리면 쉽다. 특이하게도 니자리파 암살자들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단검으로 표적을 살해하는 것을 매우 선호했다. 이는 니자리파의 암살에서 정치적 과시가 주요한 목적 중 하나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오늘날의 테러리즘와 흡사한 양상이다.
11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이란, 이라크 등지에서 활동했으며 니자리 이스마일파라고도 부르며, 아사신은 페르시아의 아사신과 시리아의 아사신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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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시리아 아사신의 근거지였던 마시아프(Masyaf) 성은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어쌔신 크리드의 배경으로 사용되면서 매우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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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이슬람 시아파 중 이스마일파에서 갈라져 나온 니자리파의 신도들이었다. 그러나 셀주크 왕조가 중동을 제압하면서 밀려나게 되자 1090년 하산 사바흐의 인도 아래 現이란의 다이람산에 알라무트 요새를 건설하고 암살자 집단(Al Assas)을 만들었다. 이들은 종교적, 정치적 이유로 셀주크 왕조의 주요 인사들에 대해 무차별적인 암살전을 펼쳤는데, 이는 사실 시아파와 수니파를 가리지 않았다. 그 후 알라무트 아사신 군주 무함마드 3세 때 시리아 아사신의 지도자 라시드 앗 딘 시난이 분리 독립하게 된다.
십자군 전쟁과 함께 이들의 암살 대상에는 유럽인들도 포함되었고, '''살라흐 앗 딘''' 또한 주요 암살 대상이었다. 당시 시리아 하샤신의 지도자였던 라시드 앗 딘 시난은 또한 최초로 '산중 노인'의 이름으로 언급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라틴어로는 Vetulus de Montanis, 아랍어로는 Shaykh al Jabal로 기록되어 있다). 수차례 암살 위협을 당한 살라딘은 분노하여 여러 번 그들의 시리아 거점을 공격하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살라딘이 잠자는 막사에 어떤 남자가 홀연히 나타나 독이 든 과자와 '당신은 우리 손 안에 있다'라는 메모를 두고 사라졌다는 일화도 있는데, 이는 '''하샤신들 스스로 남긴''' 몇 안 되는 기록 중 하나라서 신빙성이 낮다.[3] 실제 몇 차례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모두 경비병들에게 저지, 살해당했다.[4]
무슬림이었지만 때로는 이익을 위해 침략자인 유럽인들과 연합하기도 했다. 애초 누르 앗 딘과 살라흐 앗 딘 이래 중동의 이슬람 세계는 수니파가 대세를 이뤘기 때문에 같은 무슬림이라 해봤자 별 의미가 없다. 이들은 서로를 '''프랑크인들보다 더 싫어했다'''. 심지어 먹고살기 힘들어지니까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고려하기까지 했었다. 다만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십자군이 하샤신파의 물품을 약탈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개종이 아니라 보복으로 바뀌어버렸다.
이런 과거가 있어서인지 이슬람 테러 당시 어느 기자가 이들을 어쌔신에 비유하자, '''그런 놈들과 비교하지 말라며 역성을 냈다'''는 일화도 있다.
이렇게 한때는 엄청난 위세를 자랑했으나 이미 살라흐 앗 딘 시대쯤에는 상당히 약해진 상태였다. 왜냐하면 '''하도 막장짓을 많이 저지르고 다녀서''' 기독교와 유대교는 물론 같은 이슬람인 수니파, 시아파 할 것 없이 만인의 증오와 분노를 샀기 때문이다.[5] 이들도 사람이니 왕성한 활동을 위해서는 , , 사람 등이 필요한데 이것들을 구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알라무트에서 자기네들끼리 조용히 살게 되었다.
수백년에 걸쳐 행한 암살과 수많은 어그로로 인해 많은 적들을 만들었지만 견고한 천연요새를 방패로 농성해 버티고, 장기인 암살로 적군의 사령관등 지휘관들만 죽여 반격을 가해 침입자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중세의 군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중세 군대는 오늘날의 군대처럼 지휘관 유고 상황이 돼도 차상급자가 지휘권을 인수해 계속 작전을 수행하는 견고한 관료제적 조직이 아니라 혈통, 가문과 주종관계, 카리스마 같은 개인적 특질로 하급자들의 충성과 복종을 이끌어내야 통제할 수 있는 집단이었기 때문에, 그 중핵인 최고 지휘관을 살해하는 게 원정을 흐지부지시키는 특효약이었던 것이다. 얼마나 잘 먹혔는지 심지어 세말리크샤 1세의 아사신 정벌군도 막아내고 후에는 수 차례에 걸쳐 칼리파술탄의 군대도 막아내는 위세를 떨쳤을 정도다. 결국 아시아유럽을 무대로 최강대국의 길을 걷는 몽골 제국에게는 짓밟히고 말았지만.
1200년훌라구[6]가 이끄는 중동 원정군이 당도해 아사신파를 공격했으며 아사신파 역시 암살을 시도해 반격했으나 이전처럼 잘 되지 않았다. 실제로 몽골군의 천호장과 백호장 몇명이 습격당해 암살되는 경우가 있었으나 아사신파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였고 오히려 암살자들이 빠른 기동력과 엄청난 실전경험, 은밀하고 교묘한 추적술을 사용해 '''저승의 귀신들'''(타르타로스)이라는 이명까지 가진 몽골의 척후대에게 뒤를 잡혀 본거지를 들켜버린 것이다.
이후, 몽골군은 차례차례 아사신의 요새를 격파하며 마침내 최초로 1256년 12월 5일에 아사신파의 본거지인 알라무트를 점령한다. 이때 몽골의 공격으로 인해 알라무트의 도서관이 불에 타버려 아사신파의 교리가 담긴 경전, 이 때까지의 암살 기록 등 중요문서가 불타 영구 소실되었다. '죽음이 우리를 낙원으로 이끈다'는 믿음 아래 아사신 광신도들이 요새를 되찾기 위해 항전했으나 결국 모두 죽어 한동안 알라무트 요새에 까마귀 소리가 멎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알라무트 요새는 몽골의 영향인지[7]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후 1273년 시리아의 마시아프 지부가 맘루크 왕조의 술탄 바이바르스에게 깡그리 쓸려버렸다. 이때 시리아 아사신들은 맘루크 왕조에게 충성하는 조건으로 살아남았고, 이들이 암살 비용을 술탄과 흥정했다는 기록이 14세기에 있으며, 다른 공식적인 역사 기록 속에서는 사라졌으나 이후에도 한동안 권력자들에게 붙어서 생존했다.
페르시아 아사신들 중에서는 니자리파가 분열해 무함마드 샤히와 카심 샤히의 혈동으로 나뉘다가 무함마드 샤히 계열의 이맘이 19세기 말에 혈통을 남기지 않고 인도에서 사망하면서 이들의 대다수는 카심 샤히 혈통만 남아 현재는 29대 이맘 아가 칸 4세가 아사신파의 이맘 직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아사신파들은 현재도 미미하게 남아 있다. 행여나 아사신파가 남아 있다고 해서 옛날처럼 암살자 양성소 분위기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을까 싶어 명시하지만 아가 칸 4세를 따르는 이들은 이슬람 시파아 산하 이스마엘파 산하의 니자리파이며, 하쉬샤신파 신도들, 즉 옛 아사신들은 1095년에 니자리파와 흡수 합병 식으로 교리를 하나로 뭉친 것이다. 현대의 니자리파는 전 세계적으로 1천 5백만 명이 믿는 종교적 분파이다.
또한 이맘 아가 칸 4세는 이맘이지만 동시에 프랑스에서 최상위급 규모의 경마장을 운영하고 있는 영국 국적의 사업가이다. 지금 와서 "요새도 암살 하십니까" 라고 물으면 어이없어하면서 '''"시리아로 가보쇼"'''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크다.
칸은 세속주의 무슬림으로, 이슬람 세계의 문맹 퇴치와 성평등주의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그는 파키스탄 훈자에 '아가 칸 여학교'를 세워 소녀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덕분에 훈자는 파키스탄에서 가장 교육수준이 높은 지방이며, 30세 이하 남녀의 문자해독률은 100%에 가깝다. 아가 칸 재단은 훈자의 도로 포장, 병원, 상수도 정비, 유적 복원을 지원한다. "아들과 딸이 있다면 딸을 먼저 교육시켜라. 그녀가 나머지 가족들을 가르칠 테니까" 아가 칸의 지론이다. 아가 칸은 시아파 무슬림이지만, 예언자 무함마드를 본받되 맹목적 믿음에 빠지지 말고 이성으로 그의 가르침을 되새길 것을 권한다. 타인의 문화와 종교를 멸시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영토없는 군주로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그들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일 터이다. 오늘날의 아사신은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이슬람 세계에 널리 퍼진 '''기아와 문맹률과 성차별주의와 극단주의를 죽인다'''.출처
프리드리히 니체는 자신의 저서 <도덕의 계보학>에서 기존 사회의 정의에 따르지 않고[8] 자신의 의지로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초인'[9] 대해서 말했는데, 그 중에서도 '''어쌔신을 좋은 예로 지목했다'''.

4. 관련 인물




5. 아사신파가 암살/시도한 주요 인물


  • 니잠 알 물크 (1092년) : 셀주크 제국의 와지르(재상). 20년 동안 셀주크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페르시아인이자 문관 출신이라는 한계[10]에도 불구하고 술탄 말리크샤 1세를 능가하는 권세를 누린 인물이다. 니잠 알 물크가 살해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말리크샤 1세도 병으로 죽었고, 이후 셀주크 제국은 후계자 다툼과 내분으로 붕괴되었다. 물론 니잠 알 물크가 죽을 당시 70대의 고령이었으며 이후 제국이 쇠퇴한 원인은 그의 개인적인 권력과는 큰 관련이 없는 문제이지만, 생전 그의 위치를 보면 아사신파가 암살한 인물들 중 가장 거물이라 할 만하다.
  • 이맘 아불 마하신 루야니 (1108년)
  • 알 아프달 샤한샤 (1122년) : 파티마 왕조의 와지르. 아르메니아 출신 맘루크의 아들로, 1차 십자군 당시 실질적으로 이집트를 지배하던 인물이었다. 시아파(그중에서도 이스마일파)의 최대 종주였던 파티마 왕조의 이맘을 실권 없는 허수아비로 만들었기 때문에 아사신파의 분노를 산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가 실제로 아사신파에게 암살당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 아부 하라위 (1123년)
  • 이븐 알 카샤브 (1124년) : 시리아 알레포 출신의 카디(이슬람 율법 재판관)로, 십자군에 맞서 싸우는 지하드를 주창한 최초의 인물들 가운데 하나다. 알레포의 셀주크계 영주가 죽은 뒤 실질적으로 알레포를 다스리면서 아사신파를 탄압해 원한을 샀다.
  • 레몽 2세 (1152년) : 십자군 출신 트리폴리 백작. 아마도 구호기사단을 지원한 것 때문에 원한을 산 것으로 추정된다.
  • 콘라드 1세(몬페라토의 코라도) (1192년) : 이탈리아 몬페라토 출신의 귀족이자 이후 몬페라토 후작. 하틴 전투 이후 아이유브 왕조예루살렘 왕국 전역을 석권하는 동안 주요 도시인 티레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두 차례 물리쳐 명성을 떨쳤다. 이후 명목상의 왕인 기 드 뤼지냥를 디스하며 왕위를 노렸고, 예루살렘의 공주인 이자벨라와 결혼한 뒤 예루살렘 왕 직위에 올랐지만 일주일 뒤 아사신파에 의해 암살되었다.
  • 몽포트의 필리프 1세
  • 고르 왕조의 술탄 무함마드
  • 살라흐 앗 딘도 수차례 아사신의 암살 위협을 넘긴다.
  • 에드워드 1세십자군 전쟁에 참가했다가 아사신의 습격을 받았으나 부상만 입고 목숨을 건젔다.

6. 창작물의 어쌔신


역사 속 어쌔신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 단순한 암살자는 암살자 문서를 참조해 주십시오
워낙에 신비스럽고 매력적인 소재이다보니 영화, 소설, 게임, 만화 등지에서 관련 묘사가 많았다.

6.1. 고르고13


고르고13 30권의 에피소드에서 유서깊은 암살 교단이라는 설정으로 나오지만, 터키 중장 압둘 무하마드 암살을 여섯 차례나 실패하면서 조직 내부에서 위기감을 느낀다. 이에 단원 중 한명이 자신들의 암살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초일류 암살자에게 압둘 무하마드 암살을 의뢰하고 그 방식을 지켜보면서 세계에 통용되는 암살 기술을 익히기로 한다. 그 결과 고르고13에게 의뢰하지만, 고르고13이 이를 거절하자, 의뢰를 하되 자신들이 몰래 고르고13의 암살 방식을 보기로 한다. 하지만 고르고13은 이들의 추적을 따돌리고 압둘 무하마드 암살을 완수한다. 압둘 무하마드는 제거했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암살 방식의 문제점은 알지 못했고, 고르고13에게 의뢰를 건의했던 단원은 자신이 직접 고르고13을 노려 암살 방식을 알아내려 비행기 화장실에서 기습하지만 고르고13은 미리 알아낸 듯 대응하며 실패하고 만다. 자신의 기습을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묻자 고르고13은 '''해시시''' 냄새 때문이라고 답한다. 자신들의 문제점이 전통 무기 재료인 해시시 냄새가 원인이였다는 점에 단원은 놀랐고, 암살 방식의 문제점을 알려준 고르고13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단원은 어쌔신 교단 만세라고 외치며 자결한다.

7. 암살과 무관하게 이름만 어쌔신인 것들



7.1. Diep.io의 탱크 어쌔신




7.2. 유희왕의 카드


암살자의 일본판 명칭. 해당 문서 참고.

7.3. 영화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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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작 미국 액션 영화. 구니스, 슈퍼맨, 리셀 웨폰시리즈로 유명한 리처드 도너가 감독하고 48시간, 코만도, 리셀 웨폰 시리즈, 매트릭스 시리즈 등 액션 영화 제작자로 유명한 조엘 실버가 제작하면서 실베스터 스탤론, 안토니오 반데라스, 줄리안 무어가 주연하여 화제를 모았으나 5천만 달러 제작비에 훨씬 못미치는 3천만 달러를 버는 데 그쳐 망했다. 배급은 워너 브라더스.
여담으로 각본은 워쇼스키 자매가 공동으로 맡았었다.
영화 자체는 90년대 특유의 담담한 액션씬이 나오는 스릴러로 평범한 수준이다.
안토니오 반데라스 노트북 씬에 나오는 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영상
KBS에서 한가위 특선으로 더빙 방영한 바 있다. 성우진은 역시나 이정구가 스탤론, 반데라스 담당 성우인 홍시호가 맡았으며 그 밖에 강희선, 강구한, 함수정, 문관일 등이 참여했다.
제목이 어쌔신인 이유는 스탤론이나 반데라스가 암살자이기 때문이다.

7.4. 노바2에 나오는 대형 유닛


노바2의 유닛. 대형 계열이라서 상점 구매형 부품 조립은 불가능하고, 퀘스트 보상으로 얻거나 아예 유닛만 통째로 사서 써야 한다.
  • 일반 공격: 한 타에 표창 2개를 날린다(어깨에 붙은). 대상은 지상&공중 양쪽 다.
  • 고속 이동: 아주 빠르게 이동하는 스킬, 이동 속도가 느린 어쌔신에게 있어서 이 스킬은 말 그대로 밥줄이다. 이거 못 쓰면 적진에서 그냥 터진다.
  • 휠 윈드: 빙글빙글 돌면서 주변에 데미지를 준다. 유닛들의 방어력이 높으면 피해량이 격감한다.
  • 일섬: 순간 이동하면서 한 명의 적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며 그 옆으로 갈수록 조금씩 피해가 약해진다. 와트 소비가 적어서 자주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 은신: 투명 스킬. 워치 타워나 가드 타워 있으면 GG이다.
클로즈 베타 시절 이 유닛은 최강의 유닛이었다. 모든 스킬을 중복으로 쓰는 게 가능했기에[11] 적진 한가운데에 고속 이동과 은신 조합으로 숨어들어가 일섬으로 돌격하여 대열을 무너뜨린 뒤 휠윈드로 잔존 유닛들을 섬멸하는 그야말로 일당백의 활약을 보였다. 당시엔 2차 전함 테크에서 뽑을 수 있었고, 테크 시간도 클로즈 베타 시절이라 짧았기 때문에 기지형이 테크를 올리자마자 스킬빨로 보내는 3어쌔신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그리고 2차 전함 때 대형기체를 뽑을 수 있었기 때문에 중형기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고,[12] 때문에 그나마 진행된 소형 유닛 스펙이라고 해봤자 방어력이 낮았기 때문에 이런 전술이 가능했다는 것도 한몫했다. 그런데 오픈베타가 된 이후 3차전함이 추가되지 않아 한동안 나오지 않았고, 3차전함 테크가 등장하며 대전에서 쓸 수 있게 되었는데...
'''망했다.'''
클베 시절과는 달리 3차전함 테크를 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중형유닛에 대한 연구도 많이 되었고, 한 스킬을 사용하는 도중 다른 스킬을 사용하게 되면 다른 스킬들이 모조리 해제되게 되었고[13] 때문에 클베처럼 고속 이동+은신빨로 닥돌하는 전략이 파탄나게 되었다. 유닛을 숨기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고속 이동을 쓴다 한들 집중 포화를 맞기 십상이고, 어떻게 들어가서 휠윈드를 써도 클베와는 다른 중형유닛의 방어력에 그리 큰 대미지를 주기도 힘들고, 이 와중에 고속이동은 풀리기 때문에 그 비싼 대형유닛을 온전히 보전해서 후퇴시키는것이 불가능하였다. 은신을 써봤자 노바2 기준 SP도 안 먹는 스캔으로 잡아내면 망했어요.
그렇게 헤비시즈가 나오고, 그랜드체커가 나오고, 그리핀이 나오면서 완전히 퇴물 취급을 받다 은신+고속 이동은 불가능한 대신 은신이나 고속 이동 하나만 사용한 상태에서 일섬, 휠윈드를 사용해도 버프가 풀리지 않도록 상향이 되긴 했는데... 이미 이때에는 유저들의 유닛 스펙이 극단적으로 상향되었을 시기였으니 별 다른 반향은 없이 잊혀져버렸다.

[1] 2015년 11월 1일 구글 검색에 따르면 "어쌔신" 1,980,000건, "아사신" 722,000건, "어쎄신" 352,000건, "어새신" 292,000건, "어세신" 201,000건, "어새슨" 1,380건 순이다.[2] 니자리파가 활동하던 시기는 신앙을 꺾지 않고 순교하는 것이 기독교 사회에서든 무슬림 사회에서든 매우 명예롭고 고결한 일로 받아들여지던 중세다![3] 상식적으로, 그런 게 가능할 정도로 살라딘에게 가까이 갔으면 그냥 칼침을 놓고 끝냈겠지, 편지만 남기고 마는 찌질한 짓거리로 멈췄을 리가 있을까? 즉, 어쌔신들 스스로가 남긴 자작 소설일 가능성이 높다. 다른 전승으로는 살라딘이 자신의 심복 두 사람만 데리고 산중노인을 만난 자리에서 아사신에 대한 진압을 경고하는 살라딘에게 산중노인이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을 어떻게 할 수도 있다며 살라딘의 심복에게 눈짓을 하자 심복이 "명령을 받들겠습니다."라며 대번에 칼을 빼어 살라딘을 겨누었고 살라딘이 식겁했다는 이야기도 있다.[4] 이후에 누르 앗 딘 계열의 살라흐 앗 딘의 정적들이 차례차례 타이밍 좋게 죽어나가자 개중에서는 살라흐 앗 딘이 어쌔신들과 동맹을 맺고, 예루살렘 정복 후 토사구팽을 했다 라는 설도 존재하기는 하는데,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서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다.[5]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암살조직은 청부살인업을 전문으로 하기 때문에 당연히 증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들의 암살자 선발방식도 굉장히 비인간적이고 무자비한 방식으로 선발하다보니 좋은 인식을 받을 수가 없다.[6] 칭기즈 칸의 손자로 일 칸국의 초대 칸이다.[7] 몽골에 의해 갈려나간 도시들은 상당히 많다. 사마르칸드바그다드, 부하라는 몽골에 함락되고 파괴된 뒤에도 어느 정도 살아남아 이어졌지만 그것은 운이 좋은 희귀한 편에 속했고, 대부분의 도시들은 지금까지도 황량한 사막 벌판으로 남아 있다.[8] 니체는 교회나 사회에서 말하는 정의에 대해서, 스스로 가치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순종만 하면서 따르는 이를 '노예(Slave)'로 묘사했다.[9] 반대로 이들은 노예에 대항하는 의미인 '주인(Master)'으로 묘사를 했는데, 스스로의 인생을 스스로의 의지로 개척할 수 있는 인간이다.[10] 셀주크 제국은 페르시아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페르시아인 학자와 문관들을 매우 중용했으나, 그들의 위상이 실제 칼자루를 쥔 쪽인 튀르크인 군인들과 같을 수는 없었다.[11] 쿨타임을 씹는다는 말이 아니라 고속이동도 쓰고 은신도 쓴 상태로 휠윈드를 쓴다든지... RPG 게임도 아니고...[12] 약간 진행은 되었는데, 바실리스크나 스나이퍼(굉장히 흉악했었다. 당시 대미지 250에 최소 사거리가 29... 오베 이후 한참 지나 레어 파츠로 나왔을 때는 대미지 100에 최소사거리 30이었다)로 저격한다는 대항법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저놈의 고속 이동 대놓고 돌파하는 게 가능한 데다 똑같은 2차 테크인 상황에서는 저런 힘든 플레이를 할 리가... 차라리 맞어쌔신을 뽑는 게 나았다.[13] 은신을 쓰고 고속 이동을 사용하면 은신이 해제되는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