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시 단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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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정치인, 55대 총리. 도쿄 출신.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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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일본의 불교 종파인 일련종 승려라는 특이 경력이 있다. 와세다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하여 동양경제신보사 주필, 사장으로 일하였다.[2] 이시바시는 주필일 당시 다이쇼 데모크라시, 조선의 3.1운동에 자극받아 일본제국이 아닌 현재의 일본과 같은 가공무역 국가로서의 소일본으로 회귀할것을 주장, 만주, 조선, 대만의 독립을 적극 지지하였다.
태평양 전쟁 후 요시다 시게루 내각에서 대장대신에 임명되어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에 일관되게 반대한 양심적 지식인으로 전전과 전후를 막론하고 존경받았으나 온건 보수에 가까운 스탠스로 정치 입문은 자민당의 전신인 자유당에서 시작했다.
1954년 하토야마 이치로 내각에서는 통상산업대신을 역임하였으며, 중국(중일 국교수립 이전)과의 무역개시를 지휘하였다. 1956년 12월 보수합동 이후 자민당 전당대회에서 승리하여 55대 수상이 되었으나 취임 2개월여 만에 지병이었던 뇌병색으로 인해 사퇴하고 기시 노부스케 당시 외무대신을 자민당의 새 총재로 지명하였다.
지병으로 갑자기 사임한 것이니,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본의 내각제 사상 세 번째로 짧은 재임기간(65일)을 기록하였다. 하타 쓰토무가 64일로 간발의 차로 최단 2위,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가 54일로 가장 단명했다.
퇴임 이후에는 중국통으로 1959년과 1963년 중국을 방문하여 저우언라이와 회담을 하는 등 중일 국교정상화에 기여하였다.
1973년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1] 1957년 1월 31일부터 퇴임일까지는 기시 노부스케 당시 외무대신이 총리 임시 대리를 했다. 총리의 제반 권한까지 승계하는 권한대행과 달리 임시 대리는 현임 총리가 자리를 지키는 상태에서 현상 유지만 하는 직책이다. 고로 연혁에도 반영되지 않는다.[2] 동양경제신보는 당시 일본에서도 흔치 않은 강경한 자유주의 신문이었는데,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좌우익을 가리지 않고 일본의 내로라하는 언론들이 주전 논리를 펴고 있을 때에 유일하게 참전반대론을 외친 곳이 바로 여기였다. 2차대전 이후 '주간 동양경제'란 이름의 잡지로 바뀌었다.(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