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익

 



'''이영익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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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익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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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FW
윤상철
FW
조긍연
FW
노수진
MF
이흥실
MF
조덕제
MF
강재순
DF
임종헌
DF
조윤환
DF
최윤겸
DF
'''이영익'''
GK
차상광




'''성남 FC '''
'''Seongnam FC'''
''' 이름 '''
'''이영익'''
'''李榮益 | Lee Yeong-Ik'''
''' 출생 '''
1966년 8월 30일 (58세)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국적 '''
대한민국
''' 신체 '''
180cm
''' 직업 '''
축구선수(수비수 / 은퇴)
축구코치
''' 학력 '''
동북중학교(1979~1982)
동북고등학교(1982~1985)
고려대학교(1985~1989)
''' 소속 '''
''' 선수 '''
'''럭키금성/안양 LG 치타스(1989~1997)'''
''' 지도자 '''
울산 현대미포조선(1998~2002 / 수석 코치)
대전 시티즌(2003~2007 / 수석 코치)
동북고등학교(2007~2009 / 코치)
동북고등학교(2010~2012)
상주 상무(2013~2015 / 수석 코치)
경남 FC(2016 / 수석 코치)
대전 시티즌(2017)
경남 FC(2018~2019 / 수석 코치)
성남 FC(2020~ / 유소년 강화실장)
''' 국가대표 '''
4경기(대한민국)
1. 개요
2. 선수 시절
2.1. 프로 입단 전
2.2. 안양 LG 치타스
2.3. 국가 대표
4. 기타


1. 개요


대한민국축구선수 출신 감독.
2003년 대전 시티즌의 수석 코치로 팀의 전성기를 이끌며 지도자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2017년 대전 시티즌의 감독을 맡았으며, 2018년부터 경남 FC 수석코치를 다시 맡았으며, 현재는 성남 FC의 유소년 강화실장이다.

2. 선수 시절



2.1. 프로 입단 전


초등학교 5학년 무렵에 축구를 처음 시작하였으며, 당시 그는 간이 좋지 않아 2주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퇴원 이후 학교에서 청소를 하고 있던 중 당시 광의초등학교 감독으로 있던 한은집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축구인생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당시 몸이 아픈 상황이었고 몸이 튼튼해지고 싶었기 때문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으며 그의 부모님도 반대보다는 열심히 한 번 해보라고 권유를 하셨다고 한다. 이후 동북중학교동북고등학교를 거쳐 동북고 재학 시절에는 주장도 맡았지만 당시 동북고등학교의 성적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비록 동북고가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이영익의 실력은 절대 뒤처지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교 진학도 큰 어려움 없이 고려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2.2. 안양 LG 치타스


[image]
고려대 졸업 후 1989년 FC 서울의 전신인 럭키금성 황소에 입단하였으며 비록 팀이 K리그 준우승에 머무르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데뷔 첫 해 인상적인 활약으로 럭키금성 수비진의 한 축을 이루었고, 데뷔 첫 해에 K리그 베스트 11에 수상하였다. 활약을 인정받아 국가대표에도 승선했지만 부상으로 월드컵 진출이 좌절되었고, 국가대표 대신에 지난 시즌 준우승의 한을 품기 위해 꾸준한 재활훈련을 거쳤던 덕분에 한 달만에 럭키금성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당시 럭키금성은 1990년 시즌을 앞두고 많은 축구 전문가들은 럭키금성의 위치를 하위권으로 분류했으나 그것은 예측일 뿐이었다. 90년 당시 럭키금성은 돌풍을 일으키며 1위 자리를 어느 팀에게도 허용하지 않았고, 동대문운동장에서 2위였던 대우 로얄즈를 꺾고 통합우승을 차지하였으며 이영익은 K리그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팀명이 LG 치타스로 변경된 이후에도 여전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승승장구 하나 싶었지만, 허리 부상이 그의 선수생활에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1991년 7월 전지훈련 도중 허리 부상으로 1년 동안 재활에 매진하여 1992년 9월에 소속 팀에 복귀하였고 1993년에도 변함없는 기량과 체력을 보여주었으나, 1994년 허리디스크의 악령이 재발한 바람에 1년 동안 재활훈련에 다시 매진해야 했다. 94년 조영증 감독이 부임한 이후 LG는 이미 세대교체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데다 부상으로 인해 기량은 예전만큼 나오지 못하게 되자 그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져 갔다. 결국 1997년 5월 10일 전북 현대 다이노스와의 경기를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은퇴를 선언하였다.

2.3. 국가 대표


1990년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이 되었으며, 상당히 투지가 넘쳤던 플레이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국가대표 전지훈련 도중 스페인과의 연습경기에서 오른쪽 발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결국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출전은 포기해야 했다.

3. 지도자 경력



4. 기타


  • 과거 폭행사건에 휘말렸던 최윤겸과는 어느정도 오해를 풀고 화해했다고 대전 시티즌 감독 취임식 때 말했었다.
  • 얼굴 사진만 보고 이영익이 굉장히 뚱뚱한 사람일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꽤 있는데, 실제로 보면 뚱뚱해 보이는 얼굴(?)을 가진 반면에 뚱뚱하기는 커녕 굉장히 근육으로 다부진 몸매의 소유자이다.
  • 의외로 축구 감독으로서 최상위 자격증인 P급 라이선스를 취득한 사람이다. [1]
  • 안경이 안 어울리는 편인데, 특히 대전 시티즌 감독 시절 착용했던 안경이 더더욱 안 어울린다.
  • 대전 시티즌 감독 시절 원정 경기 이동 시 선수들과 같이 선수단 버스를 안타고 개인적으로 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평소 화장실을 자주 가는 편이여서 장거리 이동시 휴게소에 자주 들르는데, 그렇게 하면 다른 선수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피해를 주지 않고자 따로 이동을 했다고 한다.
  • 상당히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고 한다.#
  • 상주와 경남 수석 코치를 하면서 감독의 잦은 출장 정지 징계로 감독을 대신해 경기를 지휘한 적이 20경기씩이나 된다.[2]


[1] 이영익의 전임 감독이였던 최문식 역시 P급 라이선스를 취득한 사람인 것을 보면, 정말 자격증 취득 여부가 다가 아님을 알 수 있다.[2] 상주 시절 14경기, 경남 시절 6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