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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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나는 대한민국의 탈동성애 운동을 하는 목사 이다. 본인이 동성애자에서 '이탈'한 사람이기에 다른 이들도 동성애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래 링크된 1985년 기사에서 37세라고 나와있으니 1948년생(76세)으로 추정된다.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깨달은 뒤, 그로 인해 대학교생활과 사업에 실패하고 어머니가 자살했다고 한다. 이후 게이바(실제로는 트랜스바)[1] 를 차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으나, 30대에 교회에 나가면서 동성애 성향을 유지한 채 게이바를 계속 운영하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요나 자신이 동성애자이며 아주 유명한 여장남자[2] 였으며, 80년대 초반 열애[3] 라는 한국 최초의 트랜스젠더바를 운영하였다.
이 당시 그는 이태원 여장남자들에게 '리애 마마'라고 불리우며 '대모' 취급을 받았고, 그를 비롯한 수많은 여장남자나 트랜스젠더들이 가십거리가 필요한 각종 여성 월간지 등에 기사가 실리면서 꽤 유명세를 타게 된다.
하지만 언론에 노출된 부작용으로 불과 1~2년 후 곤란한 일을 겪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날부터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해 갈등하다 43세에 '동성애 성향'을 버렸다고 한다. 혹은 어머니가 자살한 여파로 마음고생을 하다가 동성애 성향을 버렸다고 한다. 목사로 활동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동성애 성향을 버리는 것이 가능하며 그러므로 모두 동성애 성향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유복이라고 하는 한국 최초 트랜스젠더를 탈동성애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요나는 그가 집필한 책 '리애마마 동성애탈출', 'Coming Out Again', '진리 그리고 자유' 등에서 '게이는 대부분 항문성교를 하며 육체적인 관계를 탐한다'거나 하는 등의 간증적 증거를 하고 있다.[4]
하지만 앞에도 서술하였듯 그가 실제 여장남자로 활동하던 시기에는 여장을 하고 접대하는 곳을 게이바라고 불렀다. 즉 (남성)동성애자와 여장남자의 용어가 혼용되어 쓰이던 시기였다.
90년대 중후반 게이 커뮤니티에서 용어정리가 끝난 이후의 세대들에겐 그의 논리가 앞뒤가 안맞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살아왔던 70~80년대 기준으로는 여장남자였던 그가 곧 게이였다는걸 생각하면 이 부분은 이해가 가기도 한다. 위에서 말한 이태원동의 트랜스젠더바 마담들 중의 하나가 바로 그였으니까. #, ##
이 사실에 비추어보면 이요나는 사전적 의미의 동성애자(Homosexual)[6] 가 아니고 정체화 과정에서 혼란을 겪은 다른 형태의 퀴어일 가능성도 있다. 이성 결혼을 했다고 모두가 이성애자가 아니듯 어떤 사람이 동성애적 행동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동성애자인 것은 아니다. 당시 대한민국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이성애 트랜스여성은 물론이고 크로스드레서 스펙트럼의 해당하는 생물학적 남성 모두가 사춘기나 성인기 초기에 스스로를 게이 남성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양성애자일 수도 있고, 오토가이네필릭 남성(Autogynephilic Biological Male)일 가능성[7] 또한 존재한다.
2015년 6월 28일 진중권은 보수 개신교가 동성애 혐오운동을 하는 것을 비판했다. 이에 이요나는 진중권의 발언을 '교회 비하'라고 항의하여 분쟁이 있었다. 개신교측 기사
1. 개요
이요나는 대한민국의 탈동성애 운동을 하는 목사 이다. 본인이 동성애자에서 '이탈'한 사람이기에 다른 이들도 동성애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래 링크된 1985년 기사에서 37세라고 나와있으니 1948년생(76세)으로 추정된다.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깨달은 뒤, 그로 인해 대학교생활과 사업에 실패하고 어머니가 자살했다고 한다. 이후 게이바(실제로는 트랜스바)[1] 를 차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으나, 30대에 교회에 나가면서 동성애 성향을 유지한 채 게이바를 계속 운영하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요나 자신이 동성애자이며 아주 유명한 여장남자[2] 였으며, 80년대 초반 열애[3] 라는 한국 최초의 트랜스젠더바를 운영하였다.
이 당시 그는 이태원 여장남자들에게 '리애 마마'라고 불리우며 '대모' 취급을 받았고, 그를 비롯한 수많은 여장남자나 트랜스젠더들이 가십거리가 필요한 각종 여성 월간지 등에 기사가 실리면서 꽤 유명세를 타게 된다.
하지만 언론에 노출된 부작용으로 불과 1~2년 후 곤란한 일을 겪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날부터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해 갈등하다 43세에 '동성애 성향'을 버렸다고 한다. 혹은 어머니가 자살한 여파로 마음고생을 하다가 동성애 성향을 버렸다고 한다. 목사로 활동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동성애 성향을 버리는 것이 가능하며 그러므로 모두 동성애 성향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유복이라고 하는 한국 최초 트랜스젠더를 탈동성애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요나는 그가 집필한 책 '리애마마 동성애탈출', 'Coming Out Again', '진리 그리고 자유' 등에서 '게이는 대부분 항문성교를 하며 육체적인 관계를 탐한다'거나 하는 등의 간증적 증거를 하고 있다.[4]
하지만 앞에도 서술하였듯 그가 실제 여장남자로 활동하던 시기에는 여장을 하고 접대하는 곳을 게이바라고 불렀다. 즉 (남성)동성애자와 여장남자의 용어가 혼용되어 쓰이던 시기였다.
1992년에 들어와서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2회에서 방영한 '게이 성의 두 얼굴' 에서도 트랜스젠더를 '게이'라고 부르는 걸 볼 수 있다.이정도면 진짜트랜스젠더(성전환,호르몬치료를 받은사람 말고)인지 의심이된다.[5]"<선데이서울>은 성정체성에 관한 용어도 혼동하고 있었는데,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들을 “게이”라 칭하고, 남성 동성애자들을 “호모”라고 칭했다. “호모”들이 에이즈 전염의 주범으로 찍히자 일반 남성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이태원동의 트랜스젠더바 마담들이 “우린 호모가 아니라 게이”라고 변명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이렇다보니 성정체성으로 혼란을 겪는 이들이 제대로 된 성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리 만무했다."
─ 나무위키 게이 항목
90년대 중후반 게이 커뮤니티에서 용어정리가 끝난 이후의 세대들에겐 그의 논리가 앞뒤가 안맞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살아왔던 70~80년대 기준으로는 여장남자였던 그가 곧 게이였다는걸 생각하면 이 부분은 이해가 가기도 한다. 위에서 말한 이태원동의 트랜스젠더바 마담들 중의 하나가 바로 그였으니까. #, ##
이 사실에 비추어보면 이요나는 사전적 의미의 동성애자(Homosexual)[6] 가 아니고 정체화 과정에서 혼란을 겪은 다른 형태의 퀴어일 가능성도 있다. 이성 결혼을 했다고 모두가 이성애자가 아니듯 어떤 사람이 동성애적 행동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동성애자인 것은 아니다. 당시 대한민국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이성애 트랜스여성은 물론이고 크로스드레서 스펙트럼의 해당하는 생물학적 남성 모두가 사춘기나 성인기 초기에 스스로를 게이 남성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양성애자일 수도 있고, 오토가이네필릭 남성(Autogynephilic Biological Male)일 가능성[7] 또한 존재한다.
2015년 6월 28일 진중권은 보수 개신교가 동성애 혐오운동을 하는 것을 비판했다. 이에 이요나는 진중권의 발언을 '교회 비하'라고 항의하여 분쟁이 있었다. 개신교측 기사
2. 같이보기
[1] 여기서 이요나가 얘기하는 게이바란 지금의 이태원이나 종로에 있는 게이바가 아닌 여장남자가 나오는 현재의 트랜스젠더바라고 생각하면 된다. 실제 90년대 초반 트랜스젠더란 용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여장남자를 '게이'라고 불렀으며, 게이바는 여장남자가 나오는 곳으로 인식되었다.[2] 동성애자였다는 얘기는 많이 언급되지만, 여장남자였다는 사실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 당시의 그를 트랜스젠더로 기억하는 이도 있다.[3] 현재도 같은 이름의 트랜스젠더 클럽이 이태원동에 있다[4] 게이/오해 항목에서도 이 책을 인용하여 그러한 편견을 비판한 내용이 있다. 진중권과의 논쟁에서도 " 항문성교가 좋으면, 논문이라도 쓰라""라는 논리를 밀어붙이기도 했다. 사실 이요나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러한 편견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5] 그냥 성전환수술을 한 사람,호르몬치료를 한 사람을 트랜스젠더라고 하는 단순한 편견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많다.트랜스젠더는 난 남자가 좋고 치마가 좋으니 여자가 될래 난 운동을 좋아하고 여자가 좋고 치마가 싫으니 남자가 될래 그런게 아니다.호르몬치료 성전환수술을 했다고 트랜스젠더가 아니다. 자신이느끼는 성별을 목숨을걸고 선택하는게 트랜스젠더다. 엄연히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은 다르다.[6] 과학 분야가 다 그렇듯 성과학계에서도 이런 구분에 매우 엄격하다. 성과학계에서 말하는 동성애자란 '사춘기 이전의 아동기 혹은 성 지향성이 발현하기 시작하는 유소년기부터 오로지 동성에게만 독점적으로 성적 끌림을 느끼는 개인'만을 의미한다. 이성애자가 동성과 성적 관계를 맺는다는 상상을 할 때 본능적이고 격렬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성애자 역시 이성과 성적 관계를 맺는다는 상상 자체만으로 본능적이고 격렬한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7] 이 경우 2차 성전환증을 가진 트랜스여성, 크로스드레서 스펙트럼에 해당하는 남성 도착자 혹은 유사양성애자(Pseudobisexual) 남성일 수 있다. 이에 해당하는 성정체성, 성지향성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비전문가가 콕 집어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