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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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준희(李俊熙)
'''국적'''
대한민국[image]
'''출생'''
1957년 12월 16일, 경상북도 예천군
'''학력'''
의성중학교
한영고등학교
단국대학교
'''종목'''
씨름
'''소속'''
부산공동어시장 씨름단
일양약품 원비 씨름단
'''신체'''
188cm, 115kg
'''데뷔'''
1982년
1. 소개
2. 선수 경력
3. 특징
4. 근황


1. 소개



제 5대, 8대, 13대 천하장사와 백두 장사 7차례를 지낸 전(前) 씨름 선수이며, 80년대 이만기, 이봉걸과 함께 '모래판의 3이(李)'로 빅3를 형성했던 슈퍼스타이다. 현역시절 라면머리로 유명했으며 부상이 잦았던 이봉걸보다 좀 더 이만기와의 라이벌 구도를 강하게 형성했다.

2. 선수 경력


아마추어 시절부터 전국구 씨름 선수로 유명했으며, 10대의 나이로 당시 한국 최고의 씨름꾼이라 불리던 김성률 장사를 꺾어 엄청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프로 씨름이 출범된 이후에도 초대 ~ 4대까지 백두장사를 4연패하며 이만기와 함께 초기 씨름의 폭발적인 인기를 견인했으며, 대부분 20대 중후반이면 은퇴하던 시절에 30대에도 천하장사에 오르는 등 오랫동안 최정상급 기량을 유지하며 씨름판의 한 축을 담당했다.
1회~4회 4연패를 비롯한 백두장사 7회, 천하장사 3회 우승기록과 함께, 천하장사대회 결승에 총 6번 진출했다. 또한 천하장사 대회 1회~13회(은퇴, 1987년)까지 연속 8강 진출에 성공했고, 그 중 3회부터 13회까지 11회 연속 4강 (2회를 제외하곤 모두 4강, 총 12회 4강 진출)이라는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빅3 중에서 정상급 기량을 가장 꾸준하게 유지했던 선수가 이준희다.

3. 특징


180cm를 넘는 선수들이 많지 않던 프로 씨름 초창기에 이봉걸(205cm) 다음 가는 장신으로써, 큰 키를 이용한 밀어치기와 들배지기 외에도 긴 다리를 활용한 덧걸이와 안다리, 바깥다리 등 다리 기술에도 능한 올라운드 선수였다. 덕분에 거인 이봉걸과의 상대 전적에서도 우위를 보였고, 13대 천하장사 결승 대회에서도 이봉걸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다만, 이만기에게는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였는데, 8대 천하장사 결승전에서 승리한 것을 제외하면 백두장사, 천하장사 결승전에서 모두 패했다. 때문에 큰 경기에서 여러 번 이만기에게 쓴 맛을 보인[1] 이봉걸과 물고 물리는 관계가 형성되어[2] 씨름 흥행에 큰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작은 체격의 고경철에게는 빠른 스피드와 다리 기술에 고전하는 경우가 많아 열세를 보였다.
또한 양복을 입으면 씨름선수처럼 안 보이는 기품있는 외모에 더해, 별명인 '모래판의 신사'와 어울리는 샅바 싸움, 신경전 없이 항상 결과에 승복하고 깔끔한 경기 매너를 보여줘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여성 팬들에게 꽃다발을 많이 받기로 유명했다.[3]
식성도 씨름선수치고 꽤나 독특한 편이었는데, 보통 타 씨름 선수들이 한 끼에 불고기, 갈비, 삼겹살고기를 3 ~ 4근 정도 기본으로 해치우는 것과 달리, 이 쪽은 가장 즐겨먹는 음식김치찌개와 인삼차에 밥도 한 끼에 2 ~ 3공기 가량으로 적게 먹는 편으로, 씨름선수 치고는 꽤나 소식#s-2을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1980년대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프로 씨름의 빅3 답게 VS 이만기, VS 이봉걸 전의 화제성은 지금으로서는 상상을 초월할 수준이었으며, 그들의 대결에 9시 뉴스를 뒤로 미루는 일도 있을 정도였다.[4] 이준희와 이만기와의 대전은 50%를 넘는 시청률은 기본이었으며, 60%를 넘은 적도 있다.

4. 근황


은퇴 이후 소속팀이던 일양약품에서 코치를 역임했고, LG투자증권과 신창건설에서 감독도 지냈으며, 현재는 한국씨름연맹의 경기위원장이다.
2012년 '모래판의 신사' 이미지와 높은 인지도를 이용한 노인 대상 대규모 사기에 가담했다가 구속된 바 있다.
[1] 이봉걸 역시 이만기와 상대전적에서 많이 열세에 놓였지만, 이봉걸의 기량이 성장하기 전 당한 패배가 훨씬 많다. 이봉걸이 체격의 우세를 살린 씨름을 완성하여 전성기에 오른 시점에서는, 절대강자 이만기를 위협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로 꼽히고 있었다. 다만, 이준희보다 이봉걸이 상대적으로 더 이만기에게 잘했다는 것일 뿐, 둘 다 이만기에게 압도적으로 밀렸다는 점은 변함 없었다.[2] 이만기와의 천하장사 결승에서 2번, 백두장사 결승에서 2번 승리[3] 물론 이만기의 인기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고 프로야구 스타나 국대 축구선수 못지 않았지만, 승부욕이 강하고 혼자 우승을 독차지하는 이미지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에 실력과 매너가 출중했던 이준희 역시 탄탄한 팬층이 있었다.[4] 특히 천하장사 결승전 같은 경우, 9시 뉴스 진행을 중간에 멈추고 결승전 상황을 생중계하는 경우도 여러 차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