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지사

 



<colcolor=#ffffff>
'''경상남도지사
慶尙南道知事
Governor of Gyeongsangnam Province'''
'''현직'''
김경수 / 제37대 (민선 7기)
'''취임일'''
2018년 7월 1일
'''정당'''

1. 개요
1.1. 대권 출마
2. 명단
2.1. 일제강점기
3. 역대 경남지사 선거 결과
4. 도정 지표
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경상남도지사는 경상남도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의 장이다. 1910년까지는 관찰사(觀察使)라고 불렀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경상남도 관찰사는 1908년에 부임한 황철(黃銕)이다.
경남도립거창대학경남도립남해대학의 이사장을 당연직으로 맡는다.
동부경남은 인접한 부산광역시울산광역시와 비슷한 정치성향을 보이지만 농어촌지역이 많은 서부경남의 영향으로 전체적으로는 부산이나 울산보다 다소 보수성향이 강해 부울경 권역 안에서는 민주당의 사지로 불린다. 하지만 민주당계 후보인 김두관, 김경수가 당선되기도 하는 등 대구/경북처럼 완전한 보수 텃밭은 아니고 경상남도 역시 전체적으로는 격전지이다.
2010년 이래로 3명의 도지사[1] 모두 행정부지사 권한대행 체제를 갖춘 독특한 이력이 있다.
2018년 김해시 을이 지역구였던 김경수 후보가 19대 총선에서 자신을 꺾었던 김태호 후보를 상대로 10% 격차로 승리했다. 참고로 서부 경남에서도 일부 지역은 승리했다.[2]
참고로 역대 민선 도지사들은 모두 고향이 서부 경남으로,[3] 아직까지 동부쪽 태생 도지사들은 없는게 특징이다. 다만 정치적 본거지가 동부인 경우는 종종 있는 편.[4][5]

1.1. 대권 출마


현직 김경수 지사를 제외하고, 특이하게 역대 민선 도지사들이 '''모두''' 대권 출마를 선언한 적이 있다. 인구수가 비슷한 옆동네 부산광역시장이 민선 이후 20년 가까이 관료 출신이나 중앙정계와 관련이 별로 없는 지역 밀착 정치인들이었기 때문에 대권주자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과 대조되는 부분. 경남도지사직은 옆동네 부산광역시장 자리와는 달리 관료들보다는 주로 야망있는 정치인들이 출사표를 던져왔기 때문에[6] 사실상 부울경 정치권에서는 부산광역시장직을 대신해, 서울특별시장, 경기도지사, 비교적 최근에 떠오른 충청남도지사 직과 함께,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주자로 발돋움하는 전국 4대 교두보와 같은 상태다. 때문인지 유독 재보궐선거가 잦고 행정부지사의 권한대행이 여러 차례 있었다.[7]
이는 접경 지역과 인지도의 확장성 문제 때문이다. 잠재적 대선 주자로 분류되는 서울시장이나, 경기도지사는 자체적으로 엄청난 인구를 보유하고 있고, 인접 지역(+강원도, 충청도)으로의 확장성이 크다. 또 다른, 잠재적 대권 주자로 분류되는 충청남도지사는 정부 기관이 많은 세종특별자치시, 대전광역시와 인접해 있다. 접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당연히 인접 지역에 큰 영향을 받고,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기도민은 서울시장 투표권이 없어도, 서울시장이 누가 되느냐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반면에 부산은 경남권의 동쪽 모서리에 있어서 바닷길 항로상으로는 요충지지만 한반도에 한정해 보면 지역적으로 너무 치우쳐 있기 때문에, 인지도와 득표의 확장성이 경상남도지사보다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경상남도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대구광역시 등의 대도시, 그리고 경상북도, 전라북도, 전라남도와도 접하고 있어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내륙인 충청북도 다음으로 인접한 광역자치단체가 많은 지역이다.
첫 민선 도지사인 김혁규는 도지사 사퇴 이후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에 들어가 비례대표 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열린우리당에서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하였으나 대통합민주신당과의 합당에 불복한 이후 불출마로 선회하고 이회창 지지선언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김혁규를 대신해 권한대행을 맡은 장인태 행정부지사가 도지사 보궐선거에 나가기 위해 사퇴하여 권한대행이 바뀌는 상황도 벌어졌다. 장 부지사는 2위로 낙선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전임 도지사 김태호와 당시 현직 도지사 김두관이 각각 한나라당민주통합당 경선에 참여하였으나 똑같이 경선 3위로 탈락했다. 김태호는 임기 마치고 출마한 거라 이걸로 끝이지만 특히 김두관의 경우 역임하던 도지사직을 도중에 버리고 경선에 뛰어든 터라 당시 논란이 많았다. 민주당계 정당에서 얻은 귀한 경남도지사직을 버렸고 이 때문에 새누리당의 홍준표가 보궐선거를 통해 도지사로 올라서면서 김두관에 대한 비난이 잇달았다. 김두관은 다음 선거에서도 패배하는 등 휴유증이 컸다. 이 때문에 김두관 이후로는 경선 출마를 이유로 도지사직을 사퇴하는 사례는 없어졌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홍준표가 역시 도지사직을 내려놓고 본선에 뛰어들었다. 경선 과정에서 도지사직을 버리지 않아 공식적인 선거 활동이 불가능했었다. 선거 활동 과정에서 "홍준표 정부를 만드는 게 박근혜를 살리는 길"이라고 발언하는 등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일부 위반이 있었다고 판단되어 선거법 준수 촉구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이후 홍준표는 보궐선거 비용이 300억이 든다면서 사퇴 시한인 자정을 '''3분'''여 앞두고 사퇴서를 경상남도의회에 제출했다. 꼼수 사퇴라는 비판이 잇달았고, 다음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아 보궐선거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선에서는 본선 2위로 탈락했다.
현재 대권 잠룡으로 부류되는 이들중 한때 퇴물로 부류되었으나 21대 총선에서 당선후 되살아난 김두관과 선거의 제왕으로 불리며 역시 21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김태호가 차후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있는데 과연 이들중 최소 한명이라도 당선돼서 이 징크스가 깨질것인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2. 명단



2.1.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도지사라는 직함은 1919년 8월에 기존의 경상남도 장관을 도지사로 개칭한 것이 최초이다. 여기서는 편의상 도장관을 포함했다.
대수
이름
임기
비고
장관
가가와 데루(香川輝)
1910년 10월 1일 ~ 1913년 2월 14일
[8]
초대
사사키 도타로(佐々木藤太郎)
1913년 2월 14일 ~ 1921년 12월 26일
[9]
2대
사와다 호죠(沢田豊丈)
1921년 12월 26일 ~ 1923년 2월 24일

3대
와다 쥰(和田純)
1923년 2월 24일 ~ 1928년 1월 31일
[10]
4대
미즈구치 류조(水口隆三)
1928년 1월 31일 ~ 1929년 1월 21일

5대
스토 모토이(須藤基)
1929년 1월 21일 ~ 1929년 11월 28일

6대
다니 다키마(谷多喜磨)
1929년 11월 28일 ~ 1930년 12월 24일

7대
와타나베 도요히코(渡辺豊日子)[11]
1930년 12월 24일 ~ 1933년 8월 4일

8대
세키스이 다케시(関水武)
1933년 8월 4일 ~ 1935년 4월 1일

9대
하지 모리사다(土師盛貞)
1935년 4월 1일 ~ 1937년 5월 26일

10대
아베 센이치(阿部千一)
1937년 5월 26일 ~ 1938년 9월 10일

11대
야마자와 와자부로(山沢和三郎)
1938년 9월 10일 ~ 1941년 11월 19일

12대
니시오카 요시지로(西岡芳次郎)
1941년 11월 19일 ~ 1943년 3월 27일

13대
오노 스에오(大野季夫)
1943년 3월 27일 ~ 1945년 3월 28일

14대
노부하라 사토루(信原聖)
1945년 3월 28일 ~ 1945년 8월 15일


2.2. 대한민국


대수
이름
임기
당적[12]
비고
'''관선 (임명직)'''
초대[13]
김병규 (金秉圭)
1946년 01월 23일 ~ 1946년 12월 20일


2대
김철수 (金喆壽)
1947년 01월 07일 ~ 1948년 10월 17일


3대
문시환 (文時煥)
1948년 10월 18일 ~ 1949년 11월 14일


4대
양성봉 (梁聖奉)
1949년 11월 15일 ~ 1953년 10월 07일


5대
이상룡 (李相龍)
1953년 10월 21일 ~ 1957년 02월 14일


6대
김규진 (金奎鎭)
1957년 03월 01일 ~ 1959년 11월 23일


7대
신도성 (愼道晟)
1959년 11월 24일 ~ 1960년 04월 30일


8대
이기주 (李基周)
1960년 05월 02일 ~ 1960년 10월 06일


9대
정종철 (鄭鍾哲)
1960년 10월 07일 ~ 1960년 12월 28일


'''민선 (선출직)'''
10대
이기주 (李基周)
1960년 12월 29일 ~ 1961년 05월 23일


'''관선 (임명직)'''
11대
최갑중 (崔甲中)
1961년 05월 24일 ~ 1961년 08월 24일


12대
양찬우 (楊燦宇)
1961년 08월 25일 ~ 1963년 12월 16일


13대
이계순 (李啓純)
1963년 12월 19일 ~ 1968년 05월 20일


14대
이기수 (李基洙)
1968년 05월 21일 ~ 1969년 05월 12일


15대
김효영 (金孝榮)
1969년 05월 13일 ~ 1971년 06월 11일


16대
정해식 (丁海植)
1971년 06월 12일 ~ 1974년 02월 04일


17대
강영수 (姜泳琇)
1974년 02월 05일 ~ 1976년 10월 11일


18대
조병규 (趙炳奎)
1976년 10월 12일 ~ 1978년 12월 23일


19대
김성주 (金聖柱)
1978년 12월 26일 ~ 1980년 07월 09일


직무대리
이남두 (李南斗)
1980년 07월 10일 ~ 1980년 07월 17일


20대
최종호 (崔鍾鎬)
1980년 07월 18일 ~ 1982년 05월 24일


21대
이규효 (李圭孝)
1982년 05월 25일 ~ 1985년 02월 20일


22대
김주호 (金周浩)
1985년 02월 21일 ~ 1986년 08월 28일


23대
조익래 (趙益來)
1986년 08월 29일 ~ 1988년 12월 12일


24대
최일홍 (崔一鴻)
1988년 12월 13일 ~ 1990년 12월 27일


25대
김원석 (金原奭)
1990년 12월 28일 ~ 1993년 03월 03일


26대
윤한도 (尹漢道)
1993년 03월 04일 ~ 1993년 12월 27일


27대
김혁규 (金爀珪)
1993년 12월 28일 ~ 1995년 03월 29일


28대
안명필 (安明弼)
1995년 03월 30일 ~ 1995년 06월 30일


'''민선 (선출직)'''
29대
김혁규 (金爀珪)
1995년 07월 01일 ~ 1998년 6월 30일

[14]
30대
1998년 07월 01일 ~ 2002년 06월 30일


31대
2002년 07월 01일 ~ 2003년 12월 14일
[15]
권한대행
장인태 (張仁太)
2003년 12월 15일 ~ 2004년 05월 03일
''행정부지사''
[16]
김채용 (金采溶)
2004년 05월 04일 ~ 2004년 06월 05일

32대
김태호 (金台鎬)
2004년 06월 06일 ~ 2006년 06월 30일


33대
2006년 07월 01일 ~ 2010년 06월 30일

34대
김두관 (金斗官)
2010년 07월 01일 ~ 2012년 07월 06일

[17]
권한대행
임채호 (林采虎)
2012년 07월 07일 ~ 2012년 12월 19일
''행정부지사''

35대
홍준표 (洪准杓)
2012년 12월 20일 ~ 2014년 06월 30일


36대
2014년 07월 01일 ~ 2017년 04월 09일
[18]
권한대행
류순현 (柳淳鉉)
2017년 04월 10일 ~ 2017년 08월 16일
''행정부지사''
[19]
한경호 (韓經浩)
2017년 08월 17일 ~ 2018년 06월 30일

37대
김경수 (金慶洙)
2018년 07월 01일 ~ 현재

[20]
권한대행
박성호 (朴性鎬)
2019년 01월 30일 ~ 2019년 04월 17일
''행정부지사''
[21]

3. 역대 경남지사 선거 결과


'''경상남도지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김혁규'''
'''1,177,397'''
'''1위'''

'''63.84%'''
'''당선'''
2
김용균
666,756
2위

36.15%
낙선
'''계'''
선거인 수
2,621,029
투표율
73.05%
투표 수
1,914,773
무효표 수
70,620
'''경상남도지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김혁규'''
'''939,358'''
'''1위'''

'''74.64%'''
<color=#373a3c> '''당선'''
2
강신화
161,703
2위

12.84%
낙선
3
허문도
157,337
3위

12.50%
낙선
'''계'''
선거인 수
2,109,058
투표율
61.08%
투표 수
1,288,171
무효표 수
29,773
''' 경상남도지사'''
기호
후보명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선여부
'''1'''
'''김혁규'''

'''920,706'''
'''74.50%'''
'''1'''
<color=#373a3c> '''당선'''
2
김두관

208,641
16.88%
2

3
임수태

106,367
8.60%
3

'''선거인수'''
2,227,548
'''투표수'''
1,259,142
'''무효표수'''
23,428
'''투표율'''
56.53%
'''경상남도지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김태호'''
'''454,883'''
'''1위'''

'''61.6%'''
'''당선'''
3
장인태
203,272
2위

27.5%
낙선
5
임수태
80,290
3위

10.9%
낙선
'''계'''
선거인 수
2,286,918
투표율
%
투표 수
750,126
무효표 수
11,681
''' 경상남도지사'''
기호
후보명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선여부
1
김두관

343,137
25.4%
2

'''2'''
'''김태호'''

'''852,377'''
'''63.1%'''
'''1'''
'''당선'''
4
문성현

135,823
10.1%
3

5
김재주

18,906
1.4%
4

'''선거인수'''
2,375,265
'''투표수'''
1,373,815
'''무효표수'''
23,572
'''투표율'''
57.8%
''' 경상남도지사'''
기호
후보명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선여부
1
이달곤

705,986
46.49%
2

'''7'''
'''김두관'''

'''812,336'''
'''53.50%'''
'''1'''
'''당선'''
'''선거인수'''
2,506,393
'''투표수'''
1,549,690
'''무효표수'''
31,368
'''투표율'''
61.42%
'''경상남도지사'''
기호
후보명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선여부
'''1'''
'''홍준표'''

'''1,191,904'''
'''62.91%'''
'''1'''
<color=#373a3c> '''당선'''



-
-
-
사퇴
4
권영길

702,689
37.08%
2

'''선거인수'''
2,603,893
'''투표수'''
1,999,770
'''무효표수'''
105,177
'''투표율'''
76.8%
''' 경상남도지사'''
기호
후보명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선여부
'''1'''
'''홍준표'''

'''913,162'''
'''58.85%'''
'''1'''
'''당선'''
2
김경수

559,367
36.05%
2

3
강병기

79,015
5.09%
3

'''선거인수'''
2,658,347
'''투표수'''
1,589,673
'''무효표수'''
38,129
'''투표율'''
59.80%
'''경상남도지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김경수'''
'''941,491'''
'''1위'''

'''52.81%'''
'''당선'''
2
김태호
765,809
2위

42.95%
낙선
3
김유근
75,418
3위

4.24%
낙선
'''계'''
선거인 수
2,765,485
투표율
65.8%
투표 수
1,819,391
무효표 수
36,673

4. 도정 지표


김혁규
도민제일주의 실현 세계일류 경남건설
2만불시대! 도민과 함께 열겠습니다[22]
김태호
세계로 미래로 뉴 경남
김두관
대한민국 번영 1번지 경남
홍준표
당당한 경남시대[23]
김경수
함께 만드는 완전히 새로운 경남

5. 관련 문서


  • 경상남도
  • 경상남도/정치
  • 도지사
  • 경상남도 부지사
  • 경남 FC[24]

[1] 김두관, 홍준표, 김경수[2] 여기에는 김경수가 서남부 지역인 고성 출신에 서부 경남의 중심도시 진주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지역적 배경이 한몫했다. 민주당이 초선에 50대 초반인 김경수를 국회의원 당선 2년만에 과감히 차출한 것은 바로 서부경남 표심을 조금이라도 더 끌고올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성공한 셈.[3] 김혁규-합천, 김태호-거창, 김두관-남해, 홍준표-창녕, 김경수-고성[4] 김혁규 전 지사는 부산에서 고교, 대학을 졸업했고, 김경수 지사는 김해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바 있다. 김태호 전 지사도 김해에서 재선을 했는데, 이 경우는 도지사 역임 이후의 사례라 좀 애매하고 2020년 총선에서는 고향인 거창으로 출마해 3선에 성공했다.[5] 가장 복잡한게 홍준표 전 지사인데, 서울에서만 4선을 했다가 19대 총선에서 떨어지며 정계은퇴 선언까지 했다가 김두관이 지사직을 난데없이 사퇴하면서 냉큼 그 자리를 가져오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그 이후에는 대구에서 당선되어 국회에 복귀했는데, 본인 자체가 경남보다는 대구에서 성장한 기간이 훨씬 더 길고 고향인 창녕도 부산,창원,진주보다 대구의 영향을 크게 받는 곳이라... 그래서 홍준표의 지역 기반은 사실상 TK로 보는게 더 정확하다.[6] 김혁규 전 지사는 도지사 이전에 김영삼 진영에서 활동한 바 있고 김태호 전 지사와 김두관 전 지사는 당선 이전부터 떠오르고 있던 정치인이었다. 도지사 재임 이전부터 쟁쟁한 중앙정치 경력을 가진 홍준표 전 지사는 말할것도 없다. 김경수 현 지사 또한 정치 경력은 그리 길지 않지만 최초의 민주당 소속 경남도지사 당선이라는 이력과 친노, 친문 세력의 적자 격인 위치를 생각할 때 20대 대선 출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7] 김혁규 전 지사는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에서 총선 출마를 위해 지사직을 사퇴하였고 김두관 전 지사는 민주통합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기 위해 경선 과정에서 지사직을 사퇴하였다. 또 홍준표 전 지사는 19대 대선 출마를 위해 자유한국당 후보로 확정된 이후 사퇴하였다. 그리고 7대 지선에서 당선된 김경수 지사는 드루킹 여론조작 사태에 휘말리며 실형을 선고받아 본인의 법정구속으로 권한대행 체제가 출범하였다.[8] 초대 장관[9] 2대 장관. 1919년 8월부터 도지사[10] 경상남도청을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하였다.[11] 이름보고 착각하기 쉬운데 남자다.[12] 선거당시 당적[13] 경상남도 홈페이지 근거. 경상북도지사의 경우와 달리 미군정시기의 도지사를 포함했다.[14] 신한국당으로 당명 변경 후, 한나라당으로 재변경.[15]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의원 출마를 위해서 자진사퇴. 사퇴 직후 열린우리당 입당.[16]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사퇴하였다.[17] 무소속으로 당선 이후 민주통합당에 입당하였음. 제18대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 경선에 나가기 위해 이후 자진사퇴.[18] 새누리당에서 2017년 2월 자유한국당으로 당명 변경. 제19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자진사퇴.[19] 세종특별자치시 행정부시장 한경호와 직을 맞교환.[20] 2019년 1월 30일 법정구속되었으나 4월 17일 보석되어 직무을 재개했다.[21] 김경수 지사가 1심에서 법정구속된 때부터 보석이 인용될 때까지 권한대행을 맡음.[22] 2003년 4월 15일에 교체하였다. # [23] 홍준표 사퇴 이후, 권한대행들도 이 도정지표를 계속 써야하는냐는 논쟁이 있었으나, 권한대행들은 직전 도지사의 도정지표를 계속 써왔던 관례에 따라 그냥 두기로 했다고 # [24] 구단주 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