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소설가 마거릿 미첼이 쓴 유일한 장편소설이자 대표작이다. 이 한 편으로 마거릿 미첼은 세계 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 작가로 등극했다. 1936년 출판되었고 이듬해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또한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 된다.
2. 특징
소설은 1929년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으나 마가릿 미첼은 이 소설을 출판할 생각이 없었다.[1] 그러던 것이 1935년 맥밀란 출판사의 편집자 해롤드 랜섬이 신인 작가를 찾기위해서 애틀란타에 찾아왔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찾아다니던 중 전직 기자출신의 여성이 소설을 썼다는 이야기에 흥미를 가져 마가릿 미첼을 찾아와 원고를 보여주기를 청했다. 마가릿 미첼은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그녀의 친구가 "마가릿은 책을 쓸만큼 진지한 사람이 아니에요"라며 도발하자 그 도발에 넘어가 자신의 소설을 바로 해롤드 랜섬에게 넘겨주었다.
이 소설은 초판 출간 당시 '''1037쪽'''에 달하는 양이었고, 그게 원고가 되다 보니 분량은 트렁크 하나에 가득 찰 지경이어서 해롤드 랜섬은 트렁크를 추가로 하나더 구입했다고 하며 애틀란타에서 출발해서 뉴욕에 도착할 때까지 그 어마어마한 원고를 '''다''' 읽고 당장 출판계약을 신청했다고 한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애틀랜타에서 뉴욕까지의 거리는 약 900마일 내외로, km로 따지면 1400~1500 km 내외다. 현대에도 자동차를 몰고 달리면 '''중간에 멈추지 않고 달리기만 해도''' 거의 12~13시간은 잡아야 하는데, 1900년대 초반 증기 기관차가 끄는 열차는 현대의 자동차보다 느렸다. 거기다 열차 특성상 중간역에 멈추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거의 하루가 걸리기 때문이다. 이 정도 시간이면 다 읽는 것은 별로 무리는 아니다. 물론, '''재미있었으니까''' 더욱 그랬을 것이다. 재미있고 몰입도가 강하면 술술 읽히니까. 재미없는 책을 꾸역꾸역 읽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걸리는 일이 허다하다.
유명한 대사는 마지막에 나오는 대사인 ‘'''내일은 또 다른 내일'''(Tomorrow is another day)’이었다. 한국에서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는 번역으로 유명한 대사이다. 초월번역의 유명한 예이지만 사실 일본어판의 번역인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분다'''(明日は明日の風が吹く)’를 참고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처음 이 소설의 제목 또한 이 대사였다고 하는데, 이 담당자가 제목을 바꿔보길 권해서 19세기 싯구에서 따온 지금의 제목이 되었다고 한다. 이유는 당시 내일이라는 제목이 들어간 책이 워낙에 많아서 이 제목으로는 주목받지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단한 호평을 들으며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작품으로 마거릿 미첼은 퓰리처상을 받았으며[2] ,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스칼렛 오하라가 마셨던 음료가 그녀의 이름을 딴 칵테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스칼렛 오하라(칵테일) 문서 참고.
미국을 대표하는 국민 소설 중 하나다. 2008년 해리스폴에서 조사한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책 2위#, 2014년 역시 이 조사에서 2위를 기록했다.# 1위는 성경. 2018년 PBS 선정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 6위[3] 로 뽑혔을 정도로 현대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 중의 하나다.
3. 줄거리
소설의 내용은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여주인공 스칼렛의 인생 역정이다. 스칼렛 오하라는 조지아주 클레이턴 카운티 존스보로 근처에 있는 타라 농장을 소유한 대농장주인 제럴드 오하라의 장녀로, 예쁜 얼굴과 매력을 능수능란하게 휘둘러 남자들의 관심과 인기를 한몸에 모으는 16살 소녀이다. 그러나 그녀가 진심으로 사랑한 남자는 따로 있었으니, 이웃 윌크스 집안의 애슐리 윌크스였다. 그러다 애슐리가 자기 사촌 멜라니와 정식으로 약혼한다는 소식을 접한 스칼렛은 그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자 애슐리는 스칼렛을 사랑하지만 결혼은 자신과 성격이 비슷한 멜라니와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고백한다. 화가 난 스칼렛은 애슐리의 뺨을 때린다. 그런데 이 광경을 레트 버틀러가 본의 아니게 모두 훔쳐보게 된다. 레트 버틀러는 애슐리에게 차인 스칼렛을 놀리고, 스칼렛은 화가 나서 뛰쳐나가고 만다.조지아 주 타라 농장의 스칼렛 오하라는 빼어난 미모와 활달한 성격으로 청년들의 애를 태우지만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애슐리 윌크스뿐이다. 하지만 레트 버틀러가 나타나자 스칼렛은 그를 미워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자신도 모르게 이끌린다. 그러나 애슐리가 멜라니와 결혼하자 스칼렛은 홧김에 동생 인디아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던 멜라니의 남동생 찰스와 결혼한다. 그리고 남북 전쟁이 일어나는데 찰스는 입대하자마자 전사한다. 상복을 입고도 스칼렛은 애슐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데, 급기야 조지아 주 애틀랜타까지 북군이 쳐들어오고 멜라니의 출산이 임박하자 스칼렛은 계속 머물게 된다. 하지만 스칼렛은 전쟁의 불길이 거세지자 멜라니와 그녀가 낳은 아이와 함께 레트의 마차를 타고 고향 타라로 피신한다. 멜라니와 함께 타라에 도착하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어머니의 죽음과 실성한 아버지, 그리고 혹독한 가난뿐인데….
스칼렛은 애슐리와 멜라니에 대한 질투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멜라니의 오빠인 찰스의 구혼을 받아들인다. 얼마 안 가 남북전쟁이 터지고 애슐리와 찰스도 의용군에 입대하게 되는데, 찰스는 전장에 가보지도 못하고 병으로 죽어버려 스칼렛은 졸지에 딱 6주 동안 결혼 생활을 한 뒤 애까지 딸린 미망인이 된다. 그 후 스칼렛은 애틀랜타에 있는 죽은 찰스와 멜라니의 고모인 피티팻의 집에 가서 지낸다.
전쟁은 계속되고 남부는 갈수록 피폐해져가며, 일찍이 소녀시절 스칼렛에게 구애하며 친하게 지냈던 동네 청년들 대부분이 전사한다. 그리고 북군이 아틀랜타까지 밀어닥친다.[4] 북군이 애틀랜타를 포위공격해서 애틀랜타가 불타는 지경에 이르자[5] 스칼렛은 갓 출산한 멜라니를 데리고 고향인 타라 농장으로 도망친다. 이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준 것이 바로 레트 버틀러였다. 그는 찰스턴 출신의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젊은 시절 일으킨 모종의 사건 때문에 집안에서 쫓겨난 후 도박으로 연명하다가 남북전쟁을 기회로 삼아 밀수무역 및 필수품의 매점매석으로 부를 축적한 인물이었다. 스칼렛은 그를 싫어하는 한편 자신과 비슷한 현실주의적 성격에 은근히 끌리게 된다. 이미 한참 전부터 스칼렛 일가를 보살펴주던 그는 애틀랜타를 탈출하여 타라로 도망치는 중에도 스칼렛과 멜라니를 위해 온갖 일을 다 해주며, 스칼렛과 멜라니를 타라 근교까지 데려다준 뒤 스칼렛에게 작별의 키스를 남기고는 그가 그토록 증오했던 남부 정부군에 입대하러 떠난다.
타라에 돌아왔으나 그곳은 더 이상 스칼렛이 알던 안락한 장소가 아니었다. 농장은 황폐해지고, 가축은 모조리 도둑맞고, 노예들은 죄다 도망치고, 3년 동안 수확해서 쌓아둔 15만 달러 어치에 달하는 목화는 모조리 불타버렸다. 아틀랜타 포위전 동안 이 근처에서 북군과 남군의 주력이 맞붙는 전투(Battle of Jonesborough)가 벌어졌는데, 그동안 북군이 타라 저택을 사령부로 사용했던 것이다. 셔먼의 원래 방침대로라면 불태워버렸겠지만 스칼렛의 어머니 엘렌과 여동생들이 병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에 불태우는 대신 사령부로 징발해버린 것.
집이 불타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집에는 옥수수 한 톨 남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 엘렌은 장티푸스로 죽었으며, 아버지인 제럴드는 그 충격으로 정신이상을 일으킨다. 스칼렛은 여동생 둘과 의지가 되지 못하는 아버지, 거기에 멜라니와 멜라니의 아들, 주인집에 대한 의리로 끝까지 남아있던 흑인 노예 몇 명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가련한 처지가 된다. 이 과정에서 힘겹게 따두었던 얼마 안 되는 목화와 이웃들이 나눠준 가축같이 조금 남은 재산마저 북군에게 약탈당하는 등 스칼렛은 갖은 시련을 겪는다. 이 부분에서 스칼렛은 단독으로 빈집털이를 하러 가택침입한 북군 탈영병을 직접 쏴죽이기도 한다.
결국 전쟁은 남부의 패배로 끝나고 전쟁터에 나갔던 인물들도 하나둘씩 돌아오기 시작한다. 스칼렛은 전쟁이 끝났으니 모든 고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이른바 '재건 시대'로 불리는 북군에 의한 군정시기가 도래했던 것이다. 노예제가 폐지되고 남부의 농장주들은 과거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완전히 잃고 만다. 타라 농장도 과중한 세금으로 인해 빼앗길 위기에 처하는데, 스칼렛은 레트 버틀러가 막대한 재산가가 됐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몸을 팔아서라도 돈을 구해올 의향으로 애틀랜타로 향한다. 그러나 레트 버틀러는 공교롭게도 북군에 의해 수감되어 있는 상태여서 돈을 줄 수가 없었다. 실망하고 나오던 스칼렛은 마침 여동생 수엘렌의 애인인 프랑크 케네디를 마주치고 대신 그를 꼬여낼 결심을 한다. 스칼렛은 수엘렌이 새 애인을 사귀었단 거짓말로 프랑크 케네디를 속여 NTR한 뒤 그의 재산으로 타라를 지켜낸다. 스칼렛은 남편 프랑크 케네디가 잡화점을 경영하는 방식이 영 못마땅하자 프랭크가 인수할 예정이던 제재소를 자신이 가로채서 인수한 뒤 직접 경영에 나서고, 찰스가 유산으로 남긴 땅에 술집을 지어 임대하는 등 상당한 사업 수완을 발휘한다. 그러나 경영일에 바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홀몸으로 나다니던 스칼렛은 흑인 슬럼가에서 성추행을 당한다. 마침 과거에 타라 농장에서 일하던 빅 샘이 도와줘서 무사히 빠져나온다. KKK단에 관계하고 있던 프랑크 케네디는 스칼렛이 성추행당한 것을 보복하러 갔다가 살해당하고 만다. 그 뒤 스칼렛은 레트 버틀러의 청혼을 받아들여 다시 재혼하게 된다.
레트 버틀러는 스칼렛을 처음 본 순간부터 반해 있었고, 스칼렛을 진심으로 사랑했으나 스칼렛은 그때까지도 애슐리의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레트 버틀러에게 안길 때도 스칼렛은 그것이 애슐리였으면 하고 생각하는 지경이었으니 결혼 생활은 점차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그들의 첫딸인 보니 버틀러가 다섯 살의 나이로 낙마해 죽은 사건이 파국에 이르는 계기가 되었다. 뒤이어 애슐리의 부인 멜라니가 사망하는데, 스칼렛은 멜라니의 죽음으로 비로소 멜라니의 선의를 깨닫고 애슐리에 대한 환상을 버린다. 동시에 자신이 레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이미 스칼렛에게 정이 떨어져버린 레트 버틀러는 별거를 요구하고 그녀의 곁을 떠나간다. 스칼렛은 절망에 빠지지만, 여태껏 절망적인 일에 맞닥뜨렸을 때마다 생각했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다'를 마지막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6]
3.1. 시간의 흐름
4. 등장인물
5. 작품과 관련된 말들
'''미국 작가가 쓴 가장 놀라운 첫 번째 소설이라는 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한 그녀의 최고작이다.'''
'''지금까지 남부를 다룬 소설 중 최고다. …… 미국인이 쓴 글을 통틀어 이를 능가할 순 없다.'''
'''황홀하고 잊을 수 없다! 주목할 만한 책, 멋진 책, 잊히지 않을 책!.'''
― 시카고 트리뷴#
'''지난 50년간 탄생한 소설의 주인공들 가운데 스칼렛 오하라는 셜록 홈즈, 조지 배빗, 피터 팬의 수준에 포함될 만하다.'''
'''마거릿 미첼은 폐허가 된 남부, 토지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녀만의 노래를 부른다. 그 음성은 오페라, 성경, 서사시와 같다.'''
― 팻 콘로이 (미국 작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는 우리가 결코 잊지 못하는 희귀한 책들 중 하나이다. (중략) 이 책은 읽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독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문학 경험 중 하나를 놓쳤다.'''
― 제임스 리 버크 (미국 작가)#
6. 비판
19세기 중반 당시 남부의 생활상을 잘 버무려 묘사해낸 작품이지만, 작중에서 '''남부를 미화하고 당시 노예제도에 대한 비판이 없는 시각'''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7] 전체적으로 비춰지는 내용만 봐도 북부의 횡포에 힘들어지는 남부의 상황이 자세히 묘사되고, 자유인이 된 흑인들이 백인 여성들을 상대로 수많은 성폭력을 저지른다는 내용이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기술되는 등, 철저히 남부의 시각으로 작품이 그려지고 있다.
인종차별이나 노예제도를 옹호하거나, 남부를 정당화시키려는 주장이 직접적으로 들어간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작품 자체가 남부의 시점으로 진행되다보니 위의 요소가 큰 비판점 없이 그대로 작품 내에 녹아든 것이다. 북부측을 지지한 흑인 노예들을 게으르고 멍청해서 밭일이나 하던 하급 검둥이로 묘사하고, 성실하고 똑똑한 고급 검둥이는 노예제도가 사라진 뒤에도 주인에게 충성을 다했다는 식으로 묘사되는 부분이 많고, 전반적으로 흑인 노예들을 '아이 같아서' 현명한 백인들이 돌봐줘야 할 대상으로 묘사하며, 옛 노예 소유주이던 남부 백인들 중 일부가 자신들이 소유한 노예가 다치거나 병에 걸리면 돌봐준 것을 내세워 남부인들은 흑인 노예들을 잘 돌봐주는 인물로, 북부인들은 흑인들을 선동해서 바람을 불어넣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무책임한 인물로 묘사하는 경우 역시 아주 많다. 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주의 범죄집단인 KKK를 자기보호를 위한 자경단 쯤으로 묘사하는 등 요즘 시각으로 보면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많다.
그리고 (20세기 미국의 가장 첨예한 갈등요소였던)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비판에 가려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인종 외에도 다른 계층간의 차별 문제 전반에 대해 차별적인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힘든 작품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백인 캐릭터에 대한 묘사에서도 남부의 백인 농장주 계층이 대체로 긍정적으로 묘사되는데 비해 재산이 없는 백인 쓰레기(화이트 트레시) 계층이나 농장주에게 고용되어 임금을 받고 일하는 백인(남자라면 농장을 관리하는 사무직, 여자라면 가정교사 등), 백인 소농 계층(노예를 거느리지 않고 직접 농사를 짓거나, 노예를 소유하더라도 한두명 정도만 소유한 계층), 북부 출신의 양키 등에 대한 묘사는 몹시 부정적인 경우가 많고, 명문가 출신의 인물과 그렇지 못한 인물 사이에서 혈통과 족보를 근거로 하는 차별적 경향도 상당히 강하게 드러난다.
결국 작품의 이런 차별주의적 면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작품이 (제목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북부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바람과 함께 사라진''' 남부의 문명과 사회상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 아련함을 주제로 하고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작품 내에서도 남부 사회가 가지고 있던 모순과 문제점들에 대한 비판은 분명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러한 비판들의 초점은 당시 남부 사회의 '''악함''' 보다는 '''약함'''에 맞춰져 있는 것. 위에서는 작품 내에서 kkk단이 자기보호를 위한 자경단쯤으로 묘사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KKK단은 실제로 남부의 전통과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초법적으로) 일어선 자경단이 맞다. 다만 현대인의 관점에서 그 전통과 가치관들이 인권 탄압, 노예제, 반민주주의적인 귀족정 행보들을 보이며 몰락했기에 오히려 당장이라도 청산해 버려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KKK단이 범죄단체로 여겨지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남부에 대한 추억을 기리는' 부분은 남북전쟁 자체에 대한 해석에도 영향을 끼쳐서 남북전쟁 당시 남부의 명분을 어느 정도 정당화하고, 전쟁이 발생한 요인으로 당시 노예 문제 및 인종 차별의 심각성을 희석시키고 경제적 요인과 같은 부수적인 요인들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면모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는 이 소설 및 영화 뿐만 아니라, 남북전쟁을 전후한 남부를 배경으로 한 창작물 중 적지 않은 작품들이 나타내는 부분이다.
이 점에서 본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가 받고있는 비판은 영화 ,<국가의 탄생>에 대한 비판과 유사한 면이 많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탄생>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보다 인종차별 문제에서 훨씬 심한 비판을 받고 있는 작품이지만, 사실 감독인 그리피스 자신은 당대 기준으로는 딱히 인종차별적 성향이 두드러지는 인물도 아니었고, 오히려 어떤 측면에서는 역시 당대 기준에서 오히려 탈 인종차별주의적인 면모까지 보여준 인물인 것. 이는 결국 두 작품 모두 '사라져가는 미국 남부의 문명, 남부 사회에 대한 향수'를 주제로 하고 있고, 따라서 '미국 남부 사회의 가치관과 전통을 위협하는 것' 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8] 그런데 문제는, 남북전쟁 이전의 미국 남부 사회는 영화의 오프닝에서 직접 언급되는 것처럼 '기사도가 살아있는 마지막 땅' 이고 '용감하고 신사적인 기사들과 아름다운 귀부인, 주인과 노예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던 땅', 즉 전근대적 귀족주의가 최후의 맹위를 떨치던 땅이라는 점에 있다. 작가 자신은 남부의 문명을 귀족적이고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이를 파괴하는 북부와 흑인들의 영향력은 야만적이고 천박하게 묘사했지만 정작 현대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남부의 전근대적 낭만주의와 귀족주의보다 북부의 근대적 합리주의와 평등주의를 훨씬 정당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마거릿 미첼은 당시 미국 남부의 악덕 자체를 옹호한 인물은 아니지만, 미국 남부의 가치관을 옹호함으로써 그 가치관의 일부이던 인종, 계급척 차별주의와 같은 악덕'''까지''' 옹호하였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 것.
그나마 영화에서는 각색 과정에서 이런 노골적인 묘사나 차별요소를 거의 다 쳐내서 [9]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원작보다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우울증에 시달린 어느 흑인 청년은 후일 자신의 성을 버리고 스스로 말콤 X라 칭하게 된다(...).
그런데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를 계기로 인종차별과 연관된 역사적 상징물들이 퇴출당하고 있는 가운데 이 영화 역시 이러한 인종차별적인 편견이 문제가 되어 청산 대상이 되었다. 2020년 6월 10일 다음-연합뉴스 미국시위 여파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청산대상 전락-HBO맥스 삭제 결정..'당시 만연한 인종적 편견 묘사' 다만 HBO 맥스는 삭제를 취소하고 경고 영상을 달기로 결정했다. 역사적 한계를 다루는 부록 영상과 함께 서비스를 재개했다.
HBO에서 삭제된다는 소식에 오히려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7. 후속편(?)
소설이 열린 결말로 끝나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이 뒷이야기를 궁금해했고, 마침내 공모 끝에 마거릿 미첼의 유족에 의해 공식인정된 알렉산드라 리플리(1934~2004)라는 작가에 의해 1992년에 후속작인 '스칼렛'이 쓰여졌다. 이 공모 당시 유명작가들이 참여했는데 시드니 셸던같은 작가도 공모에 도전했었다고 한다.
[image]
책은 잠깐 화제를 모으며 1994년에 미국 드라마 제작사 CBS에서 007로 활동했던 티모시 달튼이 레트 버틀러로 나오고 조앤 윌리 킬머가 스칼렛 오하라로 나온 4부작 시리즈로 나와 같은해 KBS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더빙 방영되었다. KBS는 12년동안 공중파, 케이블TV, 비디오 등에 무제한 방영을 조건으로 85만 달러(약 6억8천만원)이라는 거액을 주고 사왔는데, 본전을 뽑기위해 외화인데도 황금 시간대인 수목 드라마 대신에 꽂고 영화, 드라마 제작 비하인드 다큐까지 방영해가며 엄청나게 홍보했다. 그 결과 당시 시청률 27%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타사 드라마를 위협할만큼 꽤 성공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마가릿 미첼 사후 저작재산권 소멸 전에 유족들이 수입을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10] 나름 문체가 비슷한 애정소설 작가를 초빙한 건데 결론적으로 이 소설에서 스칼렛은 결국 레트와 다시 재결합하게 된다.[11] 그러나 원작에 비해 조금은 억지스러운 전개와 안드로메다로 확대되는 스케일(스칼렛이 제럴드의 고향인 아일랜드로 건너가고, 영국-아일랜드 분쟁까지 배경 요소로 추가된다)등으로 이를 후속편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image]
'스칼렛' 이외에 다시 마거릿 미첼 위원회에 의해 공식 인정된 속편으로 도널드 맥케이그(Donald McCaig,1940~ )가 2007년에 발표한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 이 있다. 이는 원작을 레트 버틀러의 시점에서 재해석하였고, 프리퀄도 넣었다. 역시 결말 부분에는 스칼렛과 레트가 재결합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지나치게 레트의 시각으로 그린 나머지 원작의 시니컬한 레트 대신에 정의의 사도로 그려낸 게 흠. 결국 미국에서도 그리 팔리지 못하며 소리 소문 없이 잊혀졌다.
이들 두 소설은 모두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스칼렛"의 경우는 위에 서술한 본작의 번역자 장왕록 교수가 미국에서 해당 소설이 발간된 것과 같은 시기인 1992년에 딸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와 함께 번역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전설적인 본작에 비할 정도는 못되었지만. 후자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스칼렛과 레트로 분장한 홍보모델(다만 한국인이었다)을 내세워 책을 홍보하기도 했다. 다만 재미는 못 봤는지, 빠르게 출판계에서 사라졌다.
1992년에는 이가출판사라는 곳에서 '''속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라는 1권짜리 책을 낸 적이 있다. 그러나 한국인 작가가 무단으로 낸 괴작. 요즘 중국에서 나오는 해적판 후속편들과 똑같은 물건이다.
내용은 심히 억지스럽다. 스칼렛이 레트를 되찾으려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긴 하는데 영 생뚱맞고, 아예 상관없는 다른 농장 농장주의 외동딸인 마가렛이라는 아가씨가 등장, 벌칸이라는 흑인 노예와 썸 타다가 잠자리를 치르고 어화둥둥하는 것이 주된 라인이다. 이 농장은 어디 시골에 처박혀 있었는지 남북전쟁이 다 끝난 뒤에도 백인 주인이 노예들을 마구 학대하며 지내다가 노예들의 반란으로 폭망한다.[12]
비슷한 해적판으로 사랑과 영혼이라든지 죽은 시인의 사회 같은 당시 유명한 영화들의 괴작 속편들이 많이 나왔는데 하나같이 원작 팬들을 절망으로 떨어뜨릴 수준이었다. [13]
8. 번역 문제
소설판 원문에서 흑인들의 말투 같은 경우, 한국 번역판에서는 보통 사투리로 번역되는데... 소설에서 사용된 미국 남부의 흑인 말투는 억양이나 발음이 표준어와 다른 사투리라기보다는 문법이 안 맞는 영어에 가깝다. 조사가 탈락하거나, 어순이 도치되거나, 사용되는 형용사와 동사의 수가 부족하다든지. 요즘은 이걸 반영한 번역도 새로 나왔는데, 대신 가독성이 떨어지는게 큰 흠이다[14] . 또한, 다수의 번역 판본에서 존비어 처리를 남자→여자는 예사높임인 하오체, 여자→남자는 아주높임인 합쇼체 정도로 번역함으로써 생각없는 한국 번역계의 고질적인 남녀차별 문제를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다. 당시 미국 남부의 문화적 배경에 따라 신사/숙녀의 말투를 번역한다면, 양쪽 모두 서로에게 최대한의 존칭을 쓰는 것이 더 적절하고, 특히 신사와 숙녀가 대화할 때 남자가 여자보다 예의를 덜 갖추면 절대로 안 된다. 천하의 불쌍놈 취급 받는다.(...)[15]
9. 미디어 믹스
9.1. 영화
9.2. 연극
여러 나라에서 뮤지컬이나 연극으로 개작해서 상연된바 있다. [16] 한국에서도 여러 번 연극무대에 올랐다.
한국에서 처음 무대에 오른 건 1956년이다. 극예술혐의회 창립공연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무대에 올랐다.
78년 판과 80년 판에서는 스칼렛은 유지인, 애슐리는 임동진[17] , 매미는 강부자(...)가 열연했다. 버틀러는.... '''백일섭'''이었다(...) 주조역으로는, 이순재가 제럴드 오하라, 사미자가 벨 와틀링, 김을동이 미드부인, 전원주는 메리웨더 부인 역을 맡았다.
나중에 나온 판은 이혜영이 스칼렛 이덕화가 버틀러였다. 이 공연때 어떤 정신이상자가 나체로 무대에 뛰어든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덕화가 당황하지 않고 "남부에는 정말 미친 사람이 많군!"하고 애드립으로 넘겼다고.
9.3. 뮤지컬
프랑스에서 1956년에 뮤지컬로 제작했다. 대사나 장면 등은 대체로 영화판에 기반하고 있으나, 영화보다도 상영 시간이 절반밖에 안 될 정도로 짧은 데다가 춤과 노래를 선보여야 하다 보니 줄거리가 매우 많이 축약되었다. 게다가 작중 일어나는 사건들이 시간순으로 뒤섞이는 바람에[18] 원작이 변형되는 것을 싫어하는 격렬한 팬들은 줄거리가 다소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또한 프뮤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노예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커튼콜까지 그야말로 엄청난 인기를 모았으나, 원작의 스토리라인과 아무 상관이 없어 당시 남부 백인들을 미화했던 원작 분위기와는 배치되는 톤이기도 하다.
한국 공연은 2015년 1월에 처음 이루어졌다. 바다와 서현이 더블 캐스팅으로 스칼렛을 맡았고, 특히노예장 역할의 박송권의 인기가 폭발하며 '시강 노예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5년 11월에 2차 공연이 있었고, 스칼렛은 바다, 김지우, 김소현. 레트 버틀러는남경주, 김법래, 윤형렬, 신성우가 출연했다. 주목을 받았던 노예장 역할에 당연히 박송권이 돌아왔고 새로운 얼굴로 최수형이 캐스팅.
2018년 5월 샤롯데씨어터에서 3연이 예정되어있다. 바다, 김보경, 루나가 스칼렛, 신성우, 김준현, 테이가 레트 버틀러 역으로 참여한다. 더불어, 레트 역과 스칼렛 역은 캐스팅 콜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오디션을 통해 1명 씩 추가될 예정
다카라즈카 가극단에서도 1977년에 창작 뮤지컬로 제작되었다. 70년도에 TV의 보급으로 인해 다카라즈카 붐이 식자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함께 제작, 공연되어 리바이벌을 시킨, 다카라즈카의 또다른 '''상징이자 대표적인 레퍼토리'''가 된 작품이다. 레트 버틀러편과 스칼렛 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남역 중심인 다카라즈카 답게 레트 버틀러 편을 공연하는 비율이 더 많은편. 또한, 신인 공연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역대 톱스타들이 한두번씩은 스칼렛 역할을 맡았다.
원작소설보다는 영화판을 기반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대사와 연출, 의상이 비슷하다.[19] 다만, 원작대로 스토리를 따르되 원작이나 영화에는 없는 몇몇 오리지널 설정과 이를 반영한 대목을 추가하기도 했다. 그 예시를 몇개 들자면 과부가 된 이후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순응하는 스칼렛의 솔직한 속마음을 대변하는 '''또다른 스칼렛'''이 등장하거나 '''가문의 명예를 중시하는 엄격한 아버지로 등장하는 제럴드 오하라'''에, '''잘 놀라고 잘 기절하는 것만 제외하면 나이 운운하며 골골대는 평범한 할머니로 등장하는 피티팻''' 등이 있다.
OST이자 작중내 대표적인 테마곡으로는 레트 버틀러의 테마인 목련꽃같은 그대(君はマグノリアの花の如く)가 있다.
10. 기타
- 한국판은 1953년에 양원달 역으로 처음 출간되었다. 저자 서문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49번째 역본이라고 하며, 그 이전에 나온 일본어판이 이미 시중에 상당히 풀려 있었다고 한다. 위의 명대사가 어떻게 번역되었는지는 해당 대사가 실린 마지막 권이 출간되지 않았기에 영원히 알 수 없다. 다만 동일 역자가 다른 출판사에서 다시 낸 판본을 보면 “결국, 내일이란 또 하나의 날이 아니냐?”로 번역했다.
- 북한에서도 매우 유명한 소설이다. 자유롭게 책이 팔리는데 북한에선 미국 여성이 고달프다는 것으로 이 소설을 이해한다고 한다. 즉 미국을 까는 용도로 쓰이는 셈.[20] 물론 나온 지 80여년이 지난 소설인데다가 배경이 150여년 전 일이기에 현대인들의 인식과 차이가 엄청난 건 당연하다. 한 탈북자의 증언에서는 다른 면으로 여러 모로 충격을 안겨 준 소설이었다고 한다. 스칼렛 오하라라는 여성의 정열적인 면모와 그 정열을 유감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자유로운 모습에 오히려 충격을 받았다나.
- 원작자 미첼은 이 소설 하나로 베스트셀러 작가 목록에 올랐고, 미국 문학 최대 영예인 퓰리처상도 받았으며 영화화로 인한 여러 수익까지 화려한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그 뒤로는 어떤 소설도 문학활동도 하지 않았고, 1949년 뺑소니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21] 몇몇 지인들과 나눈 짧은 수필이나 시 같은 몇몇 간략한 글들 외에는 그 어떤 소설이나 책으로 낼 것들이 없었다고 한다. 출판사들이나 유족들이 혹시 돈벌이가 될까 해서 엄청 꼼꼼하게 찾아봤음에도 찾아낸 게 저거뿐이라... 그나마 그녀 살아생전 사진이나 주변 인물들 이야기를 담아서 찾아낸 수필 및 간략한 글을 넣어 미첼의 유작이라느니 온갖 홍보를 하며 책을 냈지만 그다지 팔리지 않아 묻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