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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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와 생애
李漢相[1]
대한민국의 기업인 출신 선교사.
1953년 9월 10일, 삼풍그룹 회장 이준[2] 의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경기도 양주군 출신이며,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다녔다고는 하나, 냉담자였다는 것 말고는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게 별로 없다. 1972년에 연세대학교에 입학했으며, 형이자 그룹의 후계자로 유력했던 형 이한웅[3] 이 중동에서 근무하다 사고로 객사해서 이 때부터 그룹의 후계자로 각광을 받았다. 다른 회사에서 일하다가 1989년 12월 1일 삼풍백화점이 지어지자 아버지의 회사에 들어가 회사의 사장을 지냈다. 친동생 이한창은 전무로 지냈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한 금수저의 평범한 일생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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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건물에 이상이 있음을 오전부터 보고받았지만, 이한상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후 3시쯤 돼서야 아버지인 이준 회장 주재로 건물 이상에 대한 긴급 회의를 열었지만, '''보수 작업은 하되 영업은 계속하자'''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오후 5시 40분, 붕괴가 본격화되었고 이 소식을 들은 이준, 이한상 일당은 대피 방송도 안한 채 먼저 백화점을 빠져나왔다고 알려졌지만, 이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당시 청문회 영상이나 직원 증언에서 이한상과 임원진은 참사 현장이 아닌 곳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고, 참사 건물에 없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후술할 KBS 모던코리아 `시대유감, 삼풍`에서 한국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외면한 채 참사의 비극을 특정 개인에게 전가하는 한국 언론과 사회 분위기로 재조명된다. 결국 17분 뒤인 5시 57분, 백화점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애초부터 건물 자체를 부실하게 지은 건 물론 관리도 허술하게 했고, 당일 조짐이 있음을 분명히 알았음에도 지들끼리 빠져나왔다고 오보되자 시민들은 그들에게 분노했다. 그렇게 이한상은 아버지 이준과 삼풍백화점 경영진, 뇌물을 받아서 건축 허가를 낸 일부 공무원 등과 같이 구속되었다. 그의 나이 당시 42세 때였다.[4]
3. 그 이후
2002년 10월, 출소했다. 2000년, 어머니이자 이준의 아내 조현옥이 대한민국 법무부에 가석방을 탄원했지만, 시민 단체 등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출소 이후 두문불출 하다가 목사인 지인을 통해 선교사가 되기로 하고 몽골로 출국했다. 출소 1년 뒤인 2003년 10월 4일, 아버지 이준이 사망할 당시 상주임에도 불구하고 빈소를 지키지 못했다.
출소 이후 성서침례대학원대학교에서 목회학 석사를 취득했다.
사고 이전과 석방 후에도 언론의 노출을 가급적 피해왔지만 2015년 1월, CBS에 출연해 그 동안의 몽골 선교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2020년 2월 KBS 다큐멘터리 '모던코리아'에 출연해 사고 당시를 회고했다.
당시 백화점의 책임자였지만 붕괴 사실을 알면서도 미리 빠져나갔다는 이유로 사고 2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당시 이한상 사장을 비롯한 삼풍의 임원진들도 붕괴를 예견하지 못하고 붕괴 시점까지도 백화점 건물 안에 머물러 있었다. 건물의 균열을 발견하고 모든 임원진들이 모여 건물 보수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었던 것. 다만, 무너진 A동 건물이 아닌 반대편 B동 건물에 있었기에 임원진들이 모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사건 당시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아이러니였다. 만일 당시 보수공사 회의를 하고 있지 않았다면 이한상 사장을 포함 많은 임원들도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이한상 사장은 붕괴가 일어난 뒤 사고 현장에서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다가 그대로 구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아래의 KBS <시대유감, 삼풍> 영상을 보면 잘 설명되어 있다.
이한상 사장은 인터뷰에 응하면서 "어떤 말을 한다 하더라도 그 분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하며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고, 그 영상이 유가족 대표에게 전달되었는데 유가족 대표는 "내가 만약 백화점의 경영자였다면 어땠을까, 우리 모두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4. 비판
삼풍백화점은 아버지 이준 회장과 경영진들, 뇌물수수 후 불법으로 건축허가를 내준 공무원들이 부실하게 지었으며, 붕괴 당일 이한상 당시 사장도 붕괴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처를 제대로 안 해서 이런 끔찍한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아버지의 개차반스런 인간성에 잘 부각이 안 돼서 그렇지 이 쪽도 아버지급으로 엄청난 개차반이었다. 붕괴 즈음에는 아버지의 건강이 안 좋아져서 이한상이 사실상 경영을 맡았는데, 독선적인 경영으로 부하 직원들과 갈등을 빚었고, 동생인 이한창(이준의 3남)과도 경영 문제로 사이가 좋지 못했다고 한다.
여러 혐의를 받고 구속되었지만 고난, 영적전쟁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되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이한상 사장의 형수도 부상을 당했는데, 거기에 많은 논란이 겹치다 보니 고인드립과 패드립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