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 좌명원종공신녹권 및 함

 


[image] '''대한민국의 보물'''
1656호

'''1657호'''

1658호
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
'''이형 좌명원종공신녹권 및 함'''
재조본 유가사지론 권42
[image]



'''소재지'''

'''분류'''

'''수량/면적'''

'''지정연도'''

'''제작시기'''

'''지정해제일'''
2010년 8월 25일
[image] '''대한민국 보물 제1657호'''
'''이형 좌명원종공신녹권 및 함'''
李衡佐命原從功臣錄券및 函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분류'''
기록유산 / 문서류 / 국왕문서 / 교령류
'''수량/면적'''
1축(함1점포함)
'''지정연도'''
2010년 8월 25일
'''제작시기'''
조선 태종 11년(1411)
[image]
1. 개요
2. 내용
3. 국보에서 보물로 격하
4. 바깥고리
5. 보물 제1657호


1. 개요


李衡佐命原從功臣錄券및 函. 이형좌명원종공신녹권 및 함은 1411년 조선태종이 이형(?~1433)을 좌명원종공신에 책봉하며 하사한 공신녹권과 녹권을 보관하는 보관함이다.
이형좌명원종공신녹권 및 함은 본래 태종11년이형원종공신록권부함이라는 명칭으로 국보 제278호로 지정되었으나, 2010년 국보에서 지정해제 되면서 국보 목록에서 제278호라는 번호는 영구결번#s-5이 되었고, 이와 동시에 이형좌명원종공신녹권 및 함이라는 명칭으로 보물 제1657호로 재지정 되었다.
이형좌명원종공신녹권 및 함은 본래 개인 소장 문화재이지만 원 소유주가 이를 국립고궁박물관에 기탁하면서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 되어 있다.

2. 내용


이형좌명원종공신 녹권의 크기는 가로 약 2.4m, 세로 약 35cm, 재질은 닥나무로 만든 황색 두루마리 종이이며 두루마리의 한 쪽 끝에는 두루마리를 말 수 있도록 나무로 된 축이 달려 있다. 또한 본 녹권을 보관하는 함도 녹권과 함께 전해지고 있다.
본 녹권은 2차 왕자의 난과 관련이 깊다. 태종은 1400년 2차 왕자의 난을 제압하고 왕위에 오르면서 공을 세운 신하들을 그 등급을 1등부터 4등까지 나누면서 좌명공신으로 책봉하였다.
이로부터 11년이 지난 1411년, 태종은 1400년에 좌명공신을 못 받았던 신하들 83명을 대상으로 좌명원종공신에 책봉하였고, 이 수훈 목록에 통훈대부 판사재감사였던 이형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형은 이때 3등좌명원종공신을 받으면서 본 공신녹권을 하사 받았다.
공신은 본래 그 공훈의 정도에 따라 정공신과 원종공신으로 나누어지며, 정공신은 원종공신보다 더 격이 높고 공이 많다고 평가 될 때 주어지는 등급이다. 이 경우에서는 좌명공신이 정공신이고 좌명원종공신이 원종공신이다. 또한 정공신과 원종공신 간에는 세운 공로에 차이가 있으니만큼 당연히 포훈에도 차이가 있는데, 정공신의 경우 교서와 녹권을, 원종공신에게는 녹권만 발급 하였다. 이에 따라 원종공신에 오른 이형은 녹권만 하사 받았다.
이형의 녹권에는 태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보좌한 공로에 대해 치하하는 내용과 좌명원종공신에 봉해지는 83명의 신하들의 명단, 그리고 좌명원종공신에 오른 공신들에게 수여되는 보상이 적혀있다. 이형이 받은 좌명원종공신 3등에게는 논밭 15결(結)과 그의 후손들에게 음직을 수여하는 것이 포상으로 주어졌다.

3. 국보에서 보물로 격하


본 유물이 국보로 지정된 1993년경 당시에는 태종 때 발급된 원종공신녹권으로는 처음 발견된 것이었고 녹권과 그 보관함도 온전히 전해져서 보존 상태도 상당히 양호하여, 1993년 4월 27일 태종11년이형원종공신록권부함이라는 명칭으로 국보 제278호로 지정되었었다. 하지만 2010년 8월 25일 국보에서 지정해제 되고 이형좌명원종공신녹권 및 함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보물 제1657호로 재지정 되었다. 즉, 국보에서 보물로 등급이 격하된 것이다. 2020년 9월 현재까지도 본 유물을 빼고는 국보가 보물로 격하된 다른 사례가 없는데,[1][2] 이렇게 된 내막은 다음과 같다.
앞서 서술 되었듯이, 1400년 태종은 2차 왕자의 난을 제압하는데에 공을 세운 신하들을 좌명공신으로 책봉하였고, 이때 무신이었던 마천목은 좌명삼등공신(정공신)을 받고 공신녹권을 하사 받았다. 그리고 마천목이 받은 좌명공신녹권은 현대까지 전해지면서 마천목좌명공신녹권이라는 이름으로 2006년 4월 28일 보물 제1469호로 지정되었다.[3]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정공신인 마천목이 1400년에 받은 좌명공신녹권은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이에 반해 원종공신인 이형이 1411년에 받은 좌명원종공신녹권은 이미 1993년에 국보로 지정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즉, 마천목이 받은 좌명공신녹권이 이형의 좌명원종공신녹권보다 시기적으로도 앞서는 것이고 책봉된 공신 등급도 마천목이 정공신으로서 이형의 원종공신보다 더 높은데, 정작 문화재 지정 등급은 이형의 좌명원종공신녹권이 마천목의 것보다 더 높게 평가되어 있는 상태였던 것.
따라서 문화재 등급 조정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선 마천목의 것을 국보로 올리거나 이형의 것을 보물로 내리거나 이 둘 중 하나가 이루어져야 했다. 하지만 다른 공신녹권들의 문화재 지정 상황을 살펴보았을 때 이형의 것을 보물로 내리는 것이 맞다고 결론 지어졌고, 이에 따라 본 유물은 태종11년이형원종공신록권부함이라는 명칭으로 등록되어 있던 국보 지정이 해제되고 보물 제1657호로 재지정 되면서 이형좌명원종공신녹권 및 함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받게 되었다.[4]

4. 바깥고리



5. 보물 제1657호


공신녹권은 나라에 공이 있는 인물에게 공신으로 임명하는 증서를 말한다. 이 녹권은 태종이 잠저(潛邸, 동궁)에 있을 때 밤낮으로 보좌한 신하들의 공로를 가상히 여겨 포상하고 수여한 원종공신록권으로, 태종 11년(1411) 11월에 당시 통훈대부판사재감사였던 이형에게 발급한 3등공신록권이다. 크기는 가로 243㎝, 세로 34.7㎝이며, 종이질은 닥나무종이이다.

태조 이성계가 봉한 원종공신 이후 두 번째로 발급된 녹권으로, 조선 전기 공신에 대한 대우와 공신록 양식을 연구하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로 평가된다.


[1] 발굴조작 사건이 밝혀지면서 국보 지정이 취소된, 국보 제274호였던 귀함별황자총통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경우는 아예 위작이었기 때문에 다른 등급의 문화재로 재지정되지 않았다.[2] 위작이 아님에도 다른 등급으로 재지정 없이 아예 국보 지정이 취소된 경우가 2020년에 발생했다. 자세한 것은 백자 동화매국문 병 참조[3] 마천목은 정공신이기에 녹권과 함께 교서도 하사 받았을 것이지만 교서는 현재 전하지 않는다.[4] 보물로 재지정되면서 문화재 등록 명칭이 변경된 이유는 국가지정문화재 지정명칭의 기준이 변경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