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

 




メードインジャパン
Made in Japan
메이드 인 재팬
1. 개요
2. 역사
2.1. 현재
3. 주요 제품군
4. 여담
5. 목록


1. 개요


일본제(日本製). 현지에서는 日本製 그대로 사용하고, 日製는 히타치제작소(日立製作所)의 줄임말로 통용된다. 좁은 뜻으로는 일본에서 생산된 물건을, 넓은 뜻으로는 일본의 제조업(계)까지를 뜻한다.

2. 역사


사실 일본은 빠르게는 17세기부터 도자기 등 일부 제품군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이는 산업화 이전 가내수공업의 틀에서 받던 평가였으며, 근・현대 일본이 구축한 일제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일본의 장인 정신이라던가 모노즈쿠리(物作り) 정신이라든가 노포라든가 하는 것들은 전부 이러한 가내수공업의 연장선상에 있었으며 저렴한 가격에 고품질 대량생산을 한다는 의미를 가지는 현대의 일제와는 명백히 거리가 있었다.[1][2]
또한,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이뤘던 일본 제국이 패전으로 해체되기 직전이던 1940년대에도 일본의 공업 기술력은 부족하기 그지없었다. 고장이 잦은 제로센을 비롯한 전투기부터 어뢰를 비롯한 수많은 폭탄의 유폭에 이르기까지... 신뢰성이 부족한 병기들이 패전의 원인 중 하나가 됐을 정도다.[3]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일제의 품질이 훌륭하다는 인식을 가진 이유는, 그래도 자기네들보다는 잘 만들었기 때문[4]에 지나지 않는다. 아시아에서 그나마 근대화를 이뤘던 나라도 없다시피했다.
이런 이미지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이 당시는 개발도상국이 수입대체산업화 혹은 그와 유사한 정책으로 무역장벽을 형성하고, 외국 기업의 시장 진출을 대가로 기술이나 자본을 유치하는 형태의 산업구조가 유행하였다. 일본의 경우 일제 당시 근대화의 유산, 그리고 6.25 전쟁 특수 그리고 탄탄한 내수가 있어 이러한 과정을 상당부분 생략할 수 있었으나, 그럼에도 미국 기업을 상대로 같은 방식을 추진했다. 그러나 당연히 기술 전수, 제품 카피, 라이센스 생산 등을 동원하여도 초기에는 미제에 비해 열약하기 그지없는 품질을 자랑했고 이를 자국민에게 밀어넣으며 생산 노하우를 쌓아갔다.[5] 세계적으로 일제가 싸기만 한 짝퉁으로 유명했던 시기도 이 시기다. 하지만 생산 노하우가 축적되다보면 품질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 이러한 경제 모델의 근간이고, 덤으로 일본은 거대한 내수시장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빠른 초고도성장까지 이어가다보니 노하우 축적 속도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 즈음이 되면 일본이 세계 3위 경제대국에 등극했는데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해서 미제와 일제가 품질면에서 차이점이 없어졌고, 특히 일본 자동차는 어느 정도 자가용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포화상태에 다달을즈음에 오일 쇼크를 제대로 활용하면서 미국차를 시장에서 밀어내면서 미국 시장을 순식간에 잠식하는데 성공했다. 미국 자동차와 일본 자동차는 주거환경에 발맞춰서 설계되었는데 미국은 뉴욕이나 보스턴같은 오래된 도시지역을 제외하면 도로폭이 넓었기 때문에 차를 굳이 작게 만들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일본은 도로폭이 주요 간선도로도 4차선 안팍으로 설계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에 맞추워 차를 설계했는데 처음에는 눈에 띄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당시의 고도경제성장과 함께 기술력이 급성장하고 거기에 주거환경으로 자동차 설계가 도리어 장점이 되면서 재빠르게 기름 덜 먹는 차를 양산할수 있었고, 미국차는 그러지 못하면서 1970년대 중후반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급속히 늘렸고 미국자동차 시장에서 일본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넘었다. 디트로이트가 치안부재의 도시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전자제품 역시 신칸센을 시작으로 해서 첨단 이미지를 쌓기 시작했고 이윽고 1970년대 중후반이 되면 (당시로써는) 첨단 전자제품들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빨리 여타 전자제품도 미국 전자제품 시장을 장악해나가는데 성공했다. 이렇듯 싸구려 자국산을 무역장벽으로 인해 억지로 소모하던 상황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따른 기술력의 향상으로 품질이 향상되나가면서 뒤집었고 특히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로 일본인의 구매력이 과대평가되면서 완전히 일변하여, 이젠 수출용 제품보다 내수용 제품을 공들여 만드는 상황이다. 거품 붕괴로 내수가 침체된 이후에도 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여담으로 일제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 1970년대 당시 미국의 고금리 정책과 이후 이어진 레이거노믹스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일본이 열심히 쫓아가던 미국의 제조업이 자기들끼리 고꾸라지면서 자연히 일제가 부상할 환경이 구축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플라자 합의로 가격 경쟁력이 하락하긴 했으나 첨단산업에서 자리를 잡은 일제에는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고 평가된다. 오히려 일본 완성품 제조업의 부진은 엔고가 만성화되는 와중 1980년대 한국 2010년대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가격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2.1. 현재


반일감정이 심했을 시절에도 일제의 품질은 인정하는 경향이 강했고, 이러한 경향은 일본제와 한국제의 품질이 거의 대등해진 2000년대까지도 이어졌었다. 당장 언론에서도 일본의 기술력을 본받아야 된다느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고, 1980년대에는 일본으로 해외 여행을 나갔을 때 일제 코끼리 밥솥을 사 온다거나 하는 식의 에피소드가 나왔을 정도, 물론 미제보다 객관적 품질이 앞서는 제품군은 정해져 있었으며 그렇지 않은 제품군도 만만찮게 많았지만 공통적으로 가성비는 앞섰기에 일제 선호 현상이 계속되었다고 보면 된다.[6]
오히려 일제의 위상이 흔들린 이유는 한국과 중국의 부상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 또한 일본이 취했던 경제 모델을 거의 그대로 따라갔는데, 한일기본조약 당시 엔화의 형태로 차관을 지급한 시기부터 포항제철 설립, 현대건설소양강댐 건설, 현대 포니 생산 등 상당수 대기업이 일본 기업의 자본과 기술의 영향력에서 성장하였다. 그와 동시에 일본도 엔고로 인하여 가격 경쟁력을 잃어 고꾸라졌고, 일본 전자업체들이 버블경제 붕괴의 후유증을 채운다고 다수의 인력들을 구조조정했는데 그 다수의 인력들이 한국 및 중국업체로 재 취직하면서 기술력이 유출된 이유도 있기도 한데다가 결정적으로 일본 전자업체들이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는 보수적이고 임기응변적인 대처를 하는데 급급하면서 이 빈자리 중 특정 제품군들을 한국이 채웠다. 가성비로 승부하던 일제가 우수한 품질이나 가격이 비싸다는 이미지로 옮겨간 시기도 이때이다. 그리고 아베노믹스를 기점으로 일본 제조업이 큰 호황을 맞은 상황이지만[7], 미국이 뒤늦게 엔고를 유도했음에도 특정 분야에서 일본의 우위를 찾아오지 못한 것처럼 어쨌든 상당수 전자제품에서 중국제 및 한국제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일제의 명성이 이전 같지 않은 상황이고, 일본 내에서도 '일본제라는 이유만으로 잘 팔릴 거라는 옛날 환상은 이제 버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일본 기업 제품은 내수용이 수출용보다 품질이 더 좋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동일기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엔고로 인한 가격 경쟁력 하락은 일제의 품질에도 영향을 미쳤다. 엔고현상이 일어나면 일본 기업은 강도 높은 원가절감 압박을 받게 되고, 원가절감을 실시하다보니 품질마저 떨어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일례로 일제 필기구의 경우 1980~90년대 생산품보다 2000년대 생산품들의 품질이 더 떨어진다는 주장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자기기 또한 마찬가지인데 일례로 소니 단파라디오인 ICF-SW22는 90년대 훌륭한 품질로 유명했으나 2005년 이후 생산품은 (원가절감을 위해 사용한 무연납 때문인지 몰라도) 사소한 접촉 불량이 있고, 볼륨 품질에도 문제가 생기고 있다. 소니 타이머 항목 참조. 그래도 자동차, 오토바이, 건설기계, 공구, 정밀 기계류, 화학 소재류, 로봇, 광학 제품 등등 여러 분야에서 그 명성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전자업계와 조선업계가 전성기때의 명성에 비해 추락한 것은 사실인지라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그래도 2016년 이후 소니를 비롯한 상당수 일본 전자업계가 부활하고 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존의 전자나 가전제품 사업은 과감히 축소하거나 철수하고 다른 분야의 사업으로의 전환에 성과를 보이는 편이다. 소니의 경우는 전자제품 회사라기 보다는 이제 영화/음반/게임류 위주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성격이 강하고 파나소닉은 의료기기나 자동차 배터리 등 전장사업 분야가 이젠 주력이다. #

3. 주요 제품군


마이크로 칩, 비디오 게임기[8], 휴대용 음악 재생기 등의 전자제품부터 자동차, 대형 산업 기계 등도 일제가 유명하다.그러나 1990년대 이후를 기준으로 21세기에는 백색가전갈색 가전은 한국과 중국에게 점유율을 빼앗기고 현재는 내수용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건설 및 이공과학, 의료기기 분야에서 그동안 축적된 원천기술을 보유한 저력은 어디가지 않아서 여전히 한국보다 앞서고 있다.
가격에 대해서는 한때 일본 제품은 일본 내 제품 경쟁이 워낙 극심해, 다른 나라에 꿀리지 않는 제품이 일본에서는 2류로 취급받아 수출을 나간다는 인식이 있었다. 현재도 수출용이 더 품질이 좋고 저렴하다는 인식이었던 한국 제품과 다르게 일본 제품은 내수용이 수출용보다 품질이 더 우세하다는 인식이 많았다. 그래서 동일한 제품도 일본공장에서 생산된 경우 외국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보다 더 비싸게 받은적도 있었다.

자동차는 현재까지도 세계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인기의 이유는 다름아닌 높은 내구성이다. 국내에서도 르노삼성 SM5 1세대가 일제부품으로 조립된 사례로 내구성 하나는 명차라고 호평받은적이 있다. 다만 2010~2011 도요타 리콜 사태 등을 불러일으키면서 이미지가 손상되었다. 또한 스즈키, 닛산도 일본에서 연비조작과 무자격자 검사같은 사고도 있어 비판 받은적이 있다. 일본자동차 업계에서는 가전업계의 몰락을 타산지석 삼아 토요타를 중심으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있다.
후쿠시마 발전소 사건 이후로는 식품과 더불어 점점 공업제품에도 방사능이 검출된다는 보도가 늘어나면서 비꼬는 의미의 평판도 첨가되었다.
문구류, 특히 금속제는 일본산이 성능과 더불어 경량화가 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가위, 부엌칼 등이 대표적. 필기구도 일본산이 색감이 좋아 매니아층이 많다.

4. 여담


고베제강 사태 수습도 제대로 안되었는데, 2017년 11월 연이어 미쓰비시 머티리얼 품질 조작이 발각되면서, 논란이 되었다. ##2
2018년 2월, 월스트리트 저널은 일본의 제조업 모델이 부서지고 있다면서, 품질 데이터 조작 등의 불상사가 잇따르는 일본 기업의 현상과 원인을 분석했다. #1 #2

5. 목록



[1] 이런 장인정신 때문에 소량 개별생산에는 고품질이였는데 여기에 대한 반대급부로 (그냥 전통적으로 만들어도 잘 만드니) 현대적인 생산관리, 품질관리 등의 도입이 주요 열강에 비해 늦었다. 밑에도 나오는 공업 기술력 부족도 이런 이유다. 한두 개의 명품을 만드는 것과 동일한 품질로 대량생산하는 것은 다르다. 여담으로 그당시 생산관리, 품질관리 등이 가장 앞섰던 나라는 미국이었다. 전체적인 기술수준은 독일과 비슷하거나 조금 앞섰지만 이런 관리분야는 압도적으로 미국이 우위였다. [2] 후지타 덴의 자서전에 보면 1950년대 미국에 식기류를 납품할 때의 일화가 있는데 일본의 납품업자들이 '나이프와 포크는 우리가 최고지' 하는 장인정신이 넘치긴 했지만 제품 간의 품질편차가 컸고 무엇보다 (발주처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정된 납기를 두번씩이나 지키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그만큼 주먹구구식이였다는 것이다. 참고로 일본은 전후 이 문제가 자국 공업 기술의 가장 큰 문제였다는 것을 인식하고 미국에서 W. Edwards Deming 같은 전문가를 초청, 품질관리에 노력한다.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1951년에 만든 것이 데밍상(Deming Prize)이다. 일본에서 품질관리에 뛰어난 기업에 주어진다.[3] 1950년대 냉전시기 미국이 일본을 경제발전에 의한 자본주의 진영의 일원으로 키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일본 제품을 수입했었던 때가 있었는데 당시 미국 소비자들의 반응은 '거 봐. 일제라서 잘 고장나지'였다. 영화의 대사가 허구가 아니었다. 가히 지금의 made in China 수준의 인식이라고 볼 수 있다.[4] 자력으로 간단한 공업제품을 만들 수 있는 생산라인을 갖출 수 있는 나라가 당시에는 거의 없었다.[5]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50년대에는 미국이 일본을 자본주의 일원으로 키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술전수를 해주고 조악한 물건을 수입해주기까지 했다. 반면에 일본기업들은 내부적으로 카르텔을 형성, 국내에서는 자국민에게 원가보다 비싸게 제품을 판매하면서 반대로 미국에는 헐값으로 덤핑 수출하는 등의 방법으로 생산 노하우를 축적해갔다. 일본 TV제조사 카르텔이 이 중의 하나다. 물론 상기 이유로 미국에서는 알면서도 60년대는까지 눈감아 줬다. [6] 7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National 전기다리미보다 미국 GE 전기다리미의 품질이 더 좋았다. 문제는 가성비였지만.[7] 2021년 현재 들어서의 평가는 그것조차도 과거처럼 공산품이나 소비재보다는 중간재 부품이나 소재류 등 하청 성향의 산업이 강해졌다. 그리고 이 결과는 한일 무역 분쟁이후 일본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에서 잘 드러나게 된다.[8] 아타리 쇼크로 미국 게임 시장이 몰락한 후 1980~1990년대까지는 닌텐도가 독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