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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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
현대건설주식회사
'''한문 명칭'''
現代建設株式會社
'''영문 명칭'''
Hyundai Engineering & Construction Co., Ltd.
'''국가'''
대한민국
'''설립'''
1950년 1월 10일
'''전신'''
현대토건사
'''업종명'''
종합 건설업
'''기업규모'''
대기업
'''모회사'''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75 (계동)
'''대표이사'''
윤영준
'''아파트 브랜드'''

'''상장유무'''
상장기업
'''상장시장'''
유가증권시장 (1984년 ~ 현재)
'''편입지수'''
코스피지수
KRX100
KOSPI200
'''종목코드'''
000720
'''도급순위'''
2위
'''링크'''
홈페이지 페이스북 블로그 노조 홈페이지
1. 개요
2. 역사
2.1. 인수전
2.2. 계동 사옥
3. 지배구조
4. 역대 임원
5. 인식 및 평가
6. 아파트 브랜드
6.2. 디에이치(THE H)
7. 사건·사고
8. 기타
9. 관련 문헌
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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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대자동차그룹 계열 건설업체. 대한민국의 건설업 Big 5[1]. 5대 대기업 건설회사. 약칭은 '현건'.
본사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75 (계동) 현대빌딩에 위치해 있다.[2]
왕회장 시절 현대그룹의 간판기업이자 모체 기업으로 사실상 모든 범현대그룹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재계순위 7위인 현대중공업그룹도 현대건설 조선사업부가 그 출발이었다.
노조는 민주노총 건설기업노련 소속이다.

2. 역사


1947년 5월에 이 회사의 전신인 현대토건사가 세워지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주식회사가 아니었고, 1950년 현대자동차공업사[3]와 합병해서 주식회사로 전환, 현재의 현대건설이 되었다. 6.25 전쟁 당시 미군 숙소 등을 지으며 세를 확장하기 시작하여, 한강 인도교, 경인고속도로, 소양강댐, 고리 원자력 발전소 등을 지으면서 급성장했다. 1955년 현대상운을 합병한 후 1958년 충북 단양 석회석광을 사서 1964년 시멘트공장을 세워 시멘트제조업도 했다. 1965년에는 태국 파타나~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따내어서 대한민국 건설업계 최초로 해외건설공사를 수주한 회사가 되었다. 1967년 단양 시멘트공장을 현대시멘트로 분리했다.
뭐니뭐니 해도 이 회사의 역작은 1970년에 개통한 '''경부고속도로'''. 태국 고속도로 시공 경험 덕분에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한 시공사들 중에 가장 많은 공구를 따내게 된다. 1976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따냈는데, 참고로 사우디 산업항 공사로 벌어들인 돈은 9억 3000만 미국달러로, 당시 '''대한민국 정부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고 전해진다.# 지금으로 치면 사업 하나 성공해서 250조를 벌어온 격. 그 외에 1971년 현대콘크리트를 합병한 후 1973년 조선사업부를 현대중공업으로, 1974년 기술사업부를 현대종합기술개발, 1976년 관악석산/주택사업부/콘크리트사업부를 한국골재개발/한국도시개발/벽제콘크리트로 각각 분사시켰다. 뒤이어 1977년 가구사업부를 금강목재공업, 1987년 알루미늄 사업부를 현대알루미늄, 1989년 중기사업부를 현대중기산업으로 각각 독립시켰다. 1999년 현대엔지니어링까지 합병하고 주상복합 브랜드 '하이페리온'과 아파트 브랜드 '현대 홈타운'을 각각 런칭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 1973년 1차 오일쇼크를 계기로 1975년 중동에 진출했고, 특히 이라크에서 많은 공사를 수주했는데 1990년 걸프전이 발발하고 이라크가 경제제재를 당하면서 1조원 이상의 공사대금이 미수금으로 남게 된다. 당시 현대건설 회장이었던 이명박은 정치권에 진출하기 위해 이 상태에서 회사를 떠나고(...) 현대건설은 이라크 미수금을 대손 처리하지 않은 채 숨겨오다가 2000년 '''2조 9천 8백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면서 부도를 냈다.#
결국 2000년 정주영 명예회장이 은퇴한 후 2001년에 정몽헌 회장은 경영권을 포기하고, 채권자들의 출자전환이 이루어지면서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관리했다. 그 후 워크아웃 절차를 밟으면서 엔지니어링사업부를 현대엔지니어링, 철구사업부를 현대철구, 영농사업부문을 현대서산농장으로 독립시키는 등 구조조정을 이행하여, 2006년 5년 2개월 만에 워크아웃을 조기졸업했다. 같은 해 IT기획부를 현건C&I로 독립시켰다.

2.1. 인수전


2010년 산업은행이 매물로 내놓았는데, 서로 왕회장의 적통임을 내세우는 정몽구 회장의 현대기아자동차그룹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이 입찰에 참여했다. 현정은 회장은 남편 정몽헌 회장의 유지를 잇기 위해, 정몽구 회장은 사실상 왕회장의 장남으로서 현대건설이 가지는 범 현대가의 모체라는 상징성 때문에 인수전이 과열되었다. 이때 현대그룹현대자동차그룹이 '''각 신문 1면 광고를 도배'''하면서 벌인 디스는 여러모로 유명했다. 한겨레경향신문 등 진보 언론에서도 서로 비난하는 광고가 나갔을 정도였고, TV 역시 매한가지였다.
2010년 11월 16일에 5조 5천억 원을 제시한 현대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고, 이로써 현대그룹은 재계 12위로 올라갈 수 있었으나, 이날 현대그룹 관련 주식은 모조리 폭락했다. 명분을 위해서라지만 무리한 인수라는 분석이 있었으며, 잘못하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했다가 경영 위기까지 간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오히려 인수에 실패한 현대차그룹 관련 주식은 올랐었다. 그런데, 당시 현대그룹은 프랑스의 모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인수자금을 마련하려 했는데, 채권단이 이 대출에 대한 '''대출계약서'''를 요구했으나 현대그룹이 대출확약서니 뭐니 하며 이상한 서류를 들이대다가 결국 '''대출계약서를 제시하지 못하여''' MOU(양해각서)가 해지되었고, 2011년 1월 14일에 채권단과 현대차가 MOU를 맺고 2011년 4월 1일 인수가 마무리되어 현대차그룹의 계열사가 되었다.[4]
현대건설의 인수로 인해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정주영 시절 현대그룹의 정통을 이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룹은 이를 기념하여 명칭을 공식적으로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바꾸었다.

2.2. 계동 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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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계동 사옥'''
계동 사옥 부지는 본래 휘문고등학교가 있던 자리로, 휘문고가 강남으로 이전한 후 현대에서 사들여 1983년 10월 사옥을 완공했다.
본래 현대그룹의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집무실이 현대건설의 계동 사옥 15층에 있었고, 정몽구 회장은 왕자의 난 과정에서 잠깐 현대그룹 회장직에 있었던 이후 계열분리하였기 때문에 발을 끊었고, 이후 정몽헌 회장이 2003년 계동사옥에서 투신자살을 하면서 이 회장 집무실은 주인없는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2011년 4월 1일 11년만에 정몽구 회장이 계동사옥 회장 집무실로 출근하면서 "11년 만의 (계동사옥) 출근이네요.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라는 말을 남겼다. 사실 계동사옥은 현대그룹과 현대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층별로 쪼개어 친척회사들에게 팔았기 때문에 이미 10개층은 현대자동차그룹 소유였기에 오려면 얼마든지 올수 있었으나, 떠올리기 싫은 옛 기억 때문에 오지 않았었다.#
여담으로 현대건설이 위치하고 있는 계동사옥이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입지를 자랑한다'''는 평을 듣는다. 주변에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운현궁, 덕수궁, 종묘 등 조선시대 고궁들이 즐비하고, 헌법 최고기관인 헌법재판소를 마주보고 있으며, 뒤쪽의 북촌한옥마을에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고#, 앞쪽의 인사동, 낙원상가, 탑골공원에서 다양한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다. 원래 보건복지부 등 정부기관이 들어섰을 정도로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고...또한 서울대학교병원과도 지척이고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기관과 대기업들의 본사, 그리고 각국 대사관들이 인근에 있는 등[5] 그야말로 노른자 중 노른자.
단, 현직자 의견으로는 현대건설의 안국동보다 광화문, 종로3가 쪽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경복궁이나 창덕궁, 북촌마을은 관광객들이나 찾지 회사원들에게 무슨 의미가 이야기가 있고, 인사동, 낙원상가, 탑골공원도 역시 안국보다 종로가 더 가깝다. 오히려 회사원들이 선호할 병원, 매점, 커피샵, 식당, 헬스장 같은 시설들은 상당히 부족하며 관광객들 방문이 늘어 그나마 나아지고 있다.
거기에 교통편도 오히려 불편하다. 안국역을 통과하는 버스가 그리 많지 않다. 아무리 봐도 종로의 압승. 단, 현대건설 사옥의 위치 자체가 예전부터 명당이라 알려진 곳이기 때문에 지금도 궁궐이 있고 청와대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정주영 회장도 땅의 일부를 나라에 기부하면서까지 (원서현대공원) 위 땅에 건물을 세운 것이다. 물론, 회사 터 명당이라는 사실이 직원들에게 크게 와 닿는 메리트는 아니다. 지금은 보건복지부가 빠지고 강서구에 있던 현대엔지니어링과 양재에 있는 현대엠코가 건물로 들어와 수요인구가 늘어 소비성 업종이 계속 생겨나는 중이다.

3. 지배구조


2019년 7월 기준
주주명
지분율
현대자동차
20.95%
국민연금
11.29%
현대모비스
8.73%
기아자동차
5.24%

4. 역대 임원


  • 대표이사 명예회장
  • 부회장
    • 정진행 (2019~ )
  • 대표이사 부회장
    • 김창희 (2011~2012)
  • 대표이사 사장
    • 정주영 (1947~1968)
    • 정인영 (1968~1977)
    • 조성근 (1972~1977)
    • 이춘림 (1977~1978)
    • 이명박 (1977~1988)
    • 정훈목 (1988~1991)
    • 이내흔 (1991~1996/1996~1998)
    • 김정국 (1992)
    • 김광명 (1993~1998)
    • 심현영 (1996/2001~2003)
    • 김윤규 (1998~2001)
    • 심옥진 (1998~2000)
    • 이지송 (2003~2006)
    • 이종수 (2006~2009)
    • 김중겸 (2009~2011)
    • 정수현 (2012~2018)
    • 박동욱 (2018~2020)
    • 윤영준 (2020~)

5. 인식 및 평가


대한민국의 건설업 Big 5[6]. 5대 대기업 건설회사. 건설업계에서 워낙 역사도 길고 해외 진출의 선봉 역할을 한 덕분에 일종의 큰형님 취급도 받는다.
2000년대만 해도 과거에 잘나가던 시절과 달리 대우건설, 삼성물산에 밀리며 이빨빠진 호랑이라는 인식이 있었으나, 지금은 과거의 명성을 거의 다 되찾았다고 할 정도로 사정이 많이 다르다. 건설 회사들의 성적표와 같은 건설회사 도급 순위에서 '''2009년에 대우건설을 꺾고 도급순위 1위를 탈환하여 2013년까지 5년 연속 1위를 유지'''하였으며,[7] '''빅데이터를 비롯한 건설 회사 브랜드 평판에서도 줄곧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국내 건설 회사 역사상 최초로 3년 연속 1조원 클럽에 가입'''하는 등 '''정주영 회장 이후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거기에 탄탄한 자본력을 갖춘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이고,[8] '''그룹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기업'''으로서 그룹 내 비중이 매우 크다. 사실 왕자의 난 이후 정몽헌 회장 쪽이 현대그룹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 건 다름아닌 그룹의 모태와도 같은 현대건설의 존재 때문인데, 이제 정몽구 회장이 그 현대건설을 먹었으니 왕회장의 적통을 자처할 수 있게 된 셈.[9]
한편, 2018년 1월 5일자로 7년 동안 현대건설을 이끌면서 건설업계 최장수 CEO로 부임해 온 '''현장통''' 정수현 사장이 물러나고, '''재무통'''으로 명성이 높은 박동욱 재경본부장이 새롭게 사장으로 부임함에 따라 회사 차원의 리스크 관리 및 수익성 증진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6. 아파트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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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에는 브랜드 없이 ''''現代''''라는 한자 두 글자만 1993년까지 쓰다가 1994년부터 위와 같이 타원과 빗금 9개로 이루어진 건설사 로고를 새로 만들어 붙였다.[10] 사실상 현대 자체가 일종의 브랜드였는데, 실제로 강남구압구정 현대아파트의 경우 '''압구정 현대아파트 자체의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들이 사는 아파트라는 이미지나 사회적 위상'''이 워낙 높다보니 시공사에서 아이파크 브랜드로 도색해주겠다고 요청했지만 주민 대부분이 반대한 사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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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홈타운 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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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페리온 BI'''
1990년대 후반 아파트 브랜드 열풍에 맞춰 1999년 12월부터 시공한 아파트들은 '현대홈타운'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하였다. 주상복합 브랜드로는 '하이페리온'을 런칭하였다.

6.1. 힐스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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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스테이트 BI'''
2006년 9월 현대홈타운을 주상복합 브랜드 하이페리온과 함께 폐지시키고 통합 브랜드인 '힐스테이트'로 새롭게 런칭하였다.

6.2. 디에이치(THE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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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 BI'''
2015년에는 프리미엄 브랜드인 '''디에이치(THE H)'''라는 브랜드가 런칭되었고, '상류층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이미지'를 표방하며 실제로 평당 분양가 3500만원 이상 '''초고가 아파트에만''' 붙여질 예정이라고 한다. 결론은 힐스테이트는 없어지지 않고 새로운 브랜드가 또 런칭된 것.
현재 반포동 삼호가든 재건축 사업이나 개포동 디에이치 아너힐즈, 그리고 방배동 방배5구역과 일원동 일원대우 등 강남권 일부 재건축 아파트에 이 브랜드가 쓰이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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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 '디에이치' 삼호가든3차… 내년 상반기 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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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아너힐즈’ 고급화 전략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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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7500억원 서초구 '방배5구역' 최종 시공사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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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530억 규모 강남 일원대우 재건축 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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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이래 최대의 재건축'''이라는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수주에 성공하여 '''디에이치 클래스트'''라는 이름으로 지을 예정이다.
다만 현대산업개발의 '현대아파트'와 구분하기 위해서 2000년대 이후, 이곳에서 짓는 아파트는 특유의 現代 한자표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실 왕자의 난 이전 현대그룹이 쪼개지기 전에 현대그룹 내의 주택건설은 이곳이 아닌 현대산업개발 전담이었으며, 왕자의 난 이후 현대그룹이 쪼개지고 현대건설과 현대산업개발이 남남이 되자 이곳에서도 현대홈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아파트건설을 시작하게 된 것. 따라서 현대산업개발아이파크와는 건설사 자체도 아예 다른 브랜드이다.

7. 사건·사고


2019년 현대건설 법무실 대리가 '''3년'''에 걸쳐 '''64억 원'''을 횡령하는 초대형 사고가 터졌다.## '''3년'''동안 '''64억 원'''을 횡령하고도 추가로 '''48억 원'''을 횡령하려다가 대전지방법원 공탁공무원에게 덜미를 잡힌 것이다.## 또한 이 직원은 횡령한 돈을 모두 마카오에서 도박으로 탕진하였다고 진술하여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사람들은 대리급이 혼자 '''64억 원'''을 횡령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표시하면서 그룹의 준법기능을 담당하는 법무실에서 '''3년''' 동안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명색이 대기업이라는 현대건설의 운영이 실상 구멍가게만도 못한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을 하고 있다.

8. 기타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퇴직금'''을 지급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바로 2000년 지급된 정주영 명예회장의 퇴직금이 그것이다.
당시 현대그룹 24개 계열사에서 총 217억이 지급되었는데, 그 중 현대건설이 지급한 액수가 157억이다. 퇴직금은 퇴임 직전 3개월 평균 월급여에 연간 상여금을 12로 나눈 금액을 더한뒤 총 근속 연수를 곱하는 방식으로 계산하고, 대표이사의 경우 근속연수에 4배를 곱해준다. 정주영 회장은 1947년 5월 창립 때부터 53년간 대표이사로 근무했기 때문에 평균월급(상여금포함) 7천4백만원에 가산근속연수 2백12년(53x4)을 곱한 1백57억원의 퇴직금을 지급받았다.
보통 재벌총수들은 퇴직금의 지급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퇴직금 지급은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의 자금사정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 더군다나 당시 산업은행으로부터 4000여억원을 지원받은 현대건설의 입장에선 더더욱 부담이 되는 금액일 수밖에 없어서 내심 퇴직금 수령을 스킵해 주시길 바랬으나.. 자세한 내용은 정주영 문서 참조.
이 퇴직금은 당시 현대자동차를 사이에 두고 정몽구 회장과 경쟁하고 있던 정몽헌 회장을 지원하기 위해 현대자동차 주식의 매입에 사용되었으나, 현대자동차가 정몽구 회장 쪽으로 정리되고 현대건설이 부도위기에 처하면서 현대자동차 주식은 모두 매각되어 현대건설의 회사채 매입에 쓰여졌고, 그 회사채는 출자전환되어 현대건설 주식으로 바뀌었다. 이 주식은 정주영 회장이 사망하면서 현대건설에 증여된 후 감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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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서울 계동의 현대그룹 본사 사옥과 똑같이 생긴 건물이 '''롯데호텔'''을 달고 있어서 블라디보스토크를 처음 방문하는 한국인들을 당황하게 하는데, 이 건물은 사실 현대중공업그룹의 현지계열사 블라디보스토크 비즈니스 센터 사(VDC)가 운영하는 구 호텔현대로, 1997년 완공 당시 현대그룹 본사 사옥과 똑같은 디자인으로 지어진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호텔 가운데 가장 시설이 좋은 5성급 호텔이다. 우중충한 외관과 달리 내부 시설은 꾸준히 리모델링하고 한식당도 있고 상당히 훌륭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다. 조선업 불황기에 현대중공업이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2017년에 VDC를 호텔롯데가 인수하였다. #
한국에도 롯데호텔 블라디보스토크와 비슷하게생긴 호텔들이 있는데 이들역시 호텔현대로 운영되던곳들이었다. 현재는 라한에 인수되어 운영되고있다.[11]
산하에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여자프로배구단을 두고 있다.
현대건설에서 재개발•재건축을 전문으로 다루는 "매거진H" 채널을 선보였다. 유래는 잡지를 뜻하는 매거진과 현대의 H, 하이엔드 (High-end), 하이 소사이어티(High-society)를 결합한 것이다. 링크

9. 관련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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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대림산업, GS건설. 일명 '삼현대대지'[2] 현대빌딩이 본관이고, 현대건설빌딩이 별관이다. 현대빌딩에는 현대건설이 입주해 있고, 현대건설빌딩에는 현대엔지니어링이 입주해 있다. 왜냐면 IMF때 본관 지분을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친척 회사에 팔고, 별관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건복지부가 세종시로 이전하자, 다시 본관으로 복귀하였다.[3] 현재의 현대자동차가 아닌 일제시대부터 운영하다가 일제의 기업정비령으로 일진공작회에 강제합병된 자동차정비업체 아도 서비스(Art Service)를 해방 후 반환받아 이름을 바꾼것이다. '''현대'''라는 명칭은 여기서 처음 쓰였다.[4] 여담이지만 현대차가 현대 건설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이 큰 도움을 주었다는 '''썰'''이 있다.[5] 그래서인지 사옥 주변에 외국인들이 많기로 유명하다[6]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대림산업, GS건설. 일명 '삼현대대지'[7]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삼성물산 건설부문에 이어 7년 연속 2위.#[8] 현대건설의 강점 중 하나가 탄탄한 재무건전성인데, 건설 회사 중 신용등급이 가장 높고, 부채비율 또한 매우 낮다.#[9] 정몽구 회장이 왕회장의 자취가 진하게 남아있는 현대건설을 각별히 아낀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10] 그런데 사실 현대건설은 토목건축에 집중했기때문에,'''현대'''아파트는 대부분 현대산업개발에서 지은것이다. 아래 압구정현대아파트와 아이파크도 현대건설이 아닌 현대산업개발의 이야기.[11] 특히 이중 목포 호텔은 조선소에 오는 해외 바이어들을 위한 호텔로 만들어서인지 객실에서 현대 목포 조선소를 내다볼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