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바티스트 그르누이

 


'''Jean-Baptiste Grenouille'''

18세기 프랑스에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이 시대에는 혐오스러운 천재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는 그중에서도 가장 천재적이면서도 혐오스러운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이 책은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드[1]

나 생 쥐스트[2], 푸셰[3]나 보나파르트[4] 등의 다른 기이한 천재들의 이름과는 달리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라는 그의 이름은 잊혀져 버렸다.

물론 그것은 오만, 인간에 대한 혐오, 비도덕성 등 한마디로 사악함의 정도에 있어 그르누이가 그 악명 높은 인물들에 뒤떨어지기 때문은 아니다. '''단지 그의 천재성과 명예욕이 발휘된 분야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냄새라는 덧없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 소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1부의 첫 문단 中

1. 개요
2. 행보
2.1. 1부
2.2. 2부
2.3. 3부
2.4. 4부
3. 연보
4. 기타


1. 개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의 주인공. 영화판 배우는 벤 위쇼.
18세기 프랑스에 살았던 가상의 인물로 인간의 수준을 초월한 초인적인 후각의 소유자이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혐오스러운 천재.'''"
그의 가장 무서운 능력은 바로 '''초인적인 후각'''이다. 말을 늦게 트고 사회성도 좋지 않았으며 어렸을 적부터 고생을 하고 산 탓에 외모도 볼품없었지만, 그 후각 만큼은 동물적인 수준을 뛰어 넘어서 가히 신에 가깝다. 한번 맡은 냄새는 결코 잊지 않으며, 한니발 렉터기억의 궁전마냥 그 냄새를 머릿속에 수집해서 또다시 맡고 조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일반인을 초월한 감각의 소유자답게, 어지간한 향기와 악취에는 도리어 무감각한 편이다. 보통 사람들은 견디지도 못하는 악취에도 아랑곳하지 않지만, 정 반대로 왠만한 향기에도 매혹되거나 만족하지 않는다. 그 때문인지 자신을 만족시켰던 향기에 대해서 엄청난 집착을 보인다.
그의 또다른 무서운 능력은 그 후각에 못지 않은 초인적인 수준의 기억력과 의지력이다. 살아 남거나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고통이라도 묵묵히 감내할 수 있을 정도의 끈기를 지니고 있으며 덕분에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겼다. 비록 머리가 비상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기억력은 상당히 뛰어난 편이며 가면 갈수록 경험이 쌓이면서 타인의 심리를 쥐고 흔드는 등 교활한 면모가 강해진다. 또한 앞서 언급하였듯이 냄새에 대한 감각과 기억력은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은 수준이다.
'''향기[5]는 머지 않아 사라진다'''는 진실을 마주하면서 큰 상실감에 빠지며 이 향기를 보존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
초인적인 후각 외에 또 한가지 무서운 사실은 그와 얽힌 사람들이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는 징크스이다. 거기엔 일종의 패턴이 있는데, 그르누이를 착취하거나 그를 이용해 이득을 취한 사람, 혹은 그르누이를 부당하거나 비도덕적으로 대한 사람들이란 것이다. 자기 자식인 그르누이를 살해하려 한 친어머니, 그르누이의 능력에 위기를 느끼고 일부러 포악한 그리말에게 일곱 살 어린애를 팔아넘긴 가이아르 부인, 그르누이를 학대하고 착취하다 역시 돈 받고 넘긴 그리말, 그르누이의 재능으로 가장 많은 득을 본 발디니, 그르누이를 이용해 엉터리 이론을 성공시킨 후작[6], 역시 그르누이의 재능을 마음껏 취하고 그에 따른 대접은 제대로 하지 않은 드뤼오 등이다. 악마의 재능답게 악마의 가호라도 받는 것 같다. 특히 그르누이의 능력을 이용한 사람들이 주로 죽는 걸 볼 수 있다.[7] 그르누이를 이용하지 않고 나름 최선을 다했던 유모와 신부는 별 일 없었는데, 이것이 그들과 아주 짧은 시간만 같이 있었기 때문인지 그를 착취하거나 학대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참고로 진짜 아무런 이후 행적 언급이 없었던 뷔시에 비해 신부는 그루누이가 7세가 되던 무렵 아무런 통보도 없이 양육비 지원을 갑자기 끊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지나가는데[8] 일부러 지원을 끊은것 일수도 있지만 "'''통보도 없이 갑자기'''"라는 언급으로보아 신부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것일 가능성도 있다.[9]
향기 외엔 아무런 관심도 애정도 욕심도 없다는 것이 성격적인 가장 큰 특징이다. 부귀영화에 대한 욕심이나 맛있는 음식이나 성적 욕구 등이 전혀 보이지 않으며 남에 대한 공감 능력도 전혀 없는 사이코패스지만 냄새 외엔 아무것도 욕심 내지 않고 아무런 쾌락도 욕구도 추구하지 않아 대단히 순수하고 무소유에 무위적인 부분도 있다. 향기 외엔 소유하거나 욕심 내고 싶은 것이 비정상적으로 없다.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아 이용하기 쉬운 바보로 보이기도 하고 스스로도 그걸 의도하지만, 향기에만 관심 있어서 그럴 뿐 결코 바보가 아니며 목표를 위해선 매우 교활하다. 혐오스럽고 비인간적이지만 향기에만 집중된 순수함이 그르누이의 특징이자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이를 지배할 수 있지만 '''정작 본인의 체취는 없다.''' 이는 그르누이 본인의 절대적인 컴플렉스로 남는다. 작품 내에서 냄새는 '영혼' 혹은 '인간성' 그 자체인데 때문에 냄새가 없는 그르누이는 인간적이지 않은 존재로 묘사된다. 즉 그르누이 자신이 보기에나 타인이 보기에나 그르누이는 영혼이 없는 존재 혹은 악마이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주변인은 그르누이가 주변에 있었음에도 있었는 줄 눈치 채지 못하고, 그와 만났음에도 만난 기억을 금새 잊어버리고, 심지어 어린 아이들까지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느낌을 느끼며 무의식적인 거부감을 느낀다.

2. 행보



2.1. 1부


1738년 7월 17일, 파리의 페르 거리에서 생선장수를 하던 여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미혼이었던 그르누이의 어머니는 그동안 수차례 출산을 하고도 몰래 자신이 낳은 아이를 생선토막 찌꺼기 속에 파묻어서 죽여왔었기에 그르누이 또한 그렇게 죽을 뻔 하였으나, 갑작스럽게 터뜨린 울음소리 덕분에 살아남고, 그의 어머니는 그동안의 살인행각이 드러나 살인죄로 기소되어 결국 사형당한다.
어머니가 죽은 후, 갓난 아기의 몸으로 유모 잔 뷔시와 테리에 신부에게 맡겨졌다. 그러나 그르누이에게는 문제점이 있었으니, 천재적인 후각을 타고난 대신에 '''그 자신의 몸에서는 아무런 냄새'''[10]도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몸에서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 그르누이에 대해 본능적으로 불쾌감과 혐오감, 공포감을 느꼈다.
결국 이 때문에 그르누이는 잔 뷔시와 테리에 신부에게 사실상 버림을 받게 되었고, 이후 고아원을 운영하는 가이아르 부인에게 맡겨지게 된다. 어릴 적에 당한 사고 때문에 후각을 상실하는 장애를 지녔던 가이아르 부인은 그르누이의 문제점을 알지 못하고 한동안 그를 잘 키웠으나, 그의 범상치 않은 능력을 눈치채고는 내심 그를 두려워하다가, 교회에서 지원받던 양육비가 끊기자 그를 거친 성격의 무두장이 그리말에게 맡겨버린다.
그리말의 밑에서 몇 년 동안 노예처럼 살며 청소년기를 보낸 그르누이는 어느 한 소녀로부터 태어나서 맡아본 적이 없는 경이로운 향기를 느끼게 되었고, 급기야는 이를 살해하고 만다. (영화판에선 의도된 살인이라기 보단 실수에 가까운데 여자가 비명을 지르려 하자 입을 막아버렸는데 이를 너무 오래 막고 있던 탓에 여자가 죽어버렸다.) 그르누이는 이후 향수제조업자가 되어 이런 경이로운 향수를 만들고 말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고, 퇴물이 된 향수장인 주세페 발디니 앞에서 한 번 맡은 냄새 만으로 에센스를 조합하여 향수를 만들어 내 천재성을 인정받고는 그의 도제가 된다. 그르누이는 발디니의 밑으로 들어가 자신의 놀라운 재능으로 수많은 뛰어난 향수의 조합공식을 만들어 그를 돈방석에 앉게 해주었으며, 그 대신에 발디니로부터 증기를 이용한 향수제조법을 전수받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배운 증기법으로는 (자신이 죽인 처녀처럼) 동물부터는 향기를 뽑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11] 절망하여 앓아 눕고 사경을 헤메게 된다. 발디니는 죽어가는 그르누이에게, 프랑스 남부에 가면 더욱 정교한 냉침법이라면 그르누이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조언을 해준다. 이 말을 들은 그르누이는 기적처럼 회생해서 발디니의 사업을 번창하게 한 후, 발디니 밑에서 만든 향수를 다시 만들거나 제조법을 발설하지 말 것, 그리고 발디니가 죽을 때까지 파리에 돌아오지 말 것[12]을 조건으로 도제자격증을 얻어 프랑스 남부의 그라스로 떠나게 된다.

2.2. 2부


그라스로 향하던 중,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저분하고 복잡한 도시인 파리를 떠나 자연의 맑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게 된 그르누이는 점차 이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13] 그는 사람을 피하면서 대자연의 청정한 공기에 이끌려 점점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플롱 뒤 캉탈'이라는 곳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은 어느 한 방향으로도 한 걸음만 더 내딪으면 인간세상과 가까워지는, 즉 가장멀리 떨어진 오지다. 그는 그라스로 가야한다는 목적조차 잊은 채 장장 7년 동안 거기에 틀어박혀 은거생활을 하게 된다. 깊숙한 동굴 속에 파고들어 있다가 배가 고프거나 용변을 볼 때만 밖으로 나오고, 먹는 거라곤 죽은 들짐승 시체나 벌레 뿐인 그야말로 짐승같은 생활. 대부분의 시간은 반쯤 꿈같은 자기 머릿속에서, 오직 냄새로만 이루어진 궁전에서 냄새로만 이루어진 하인의 수발을 받으며 살면서 맡아왔던 여러 냄새들을 떠올려 맡을 뿐인 생활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정작 자기 자신의 몸에서는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에 충격을 받은 그르누이의 내면에는, 이전에 자신이 맡았던 소녀의 향기를 반드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다시 싹트게 된다. 결국 그르누이는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된다.
산에서 내려온 그르누이는 말 그대로 짐승에 가까운 모습이었기에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는데, 그르누이가 자신이 산적들에게 붙잡혀 7년 동안이나 굴속에 갇혀있다가 간신히 탈출했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이에 속아넘어가 그를 도와줄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고, 때마침 몽펠리에 지역의 유지였던 에스피나스 후작은 그르누이야말로 자신이 고안해낸 '치명적 유동체' 이론을 증명할 샘플이라 생각하여 그를 자신의 저택으로 데려와 후원하게 된다.[14] 그의 도움으로 그르누이는 급조해서 완벽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사람의 냄새'라고 할 수 있는 향수를 만들어냈다.[15] 그리고 그것을 뿌린 결과, 여태껏 마치 냄새없는 괴물같았던 그르누이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이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르누이가 지나가면 누가 지나가는 것을 느끼고 확인했으며, 뛰어놀던 아이들은 그르누이가 지나갈 수 있게 길을 비켜주었고, 실수인 척 부딪히고 사과하니 전이라면 마치 유령과 부딪힌것처럼 깜짝 놀랐을 테지만 지금은 태연하게 괜찮다고 말하고 마저 길을 가는 것이었다. 그르누이는 결혼식을 보며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에 위화감없이 섞이며 그들을 실컷 조롱했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그르누이는 어느 날 슬쩍 그라스로 떠났다. 그 날은 이 향수를 뿌리지 않았기에, 문지기도 그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해 대체 언제 사라진건지 알 수가 없었다.

2.3. 3부


그르누이는 그라스로 들어가, 향수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장인의 미망인 아르뉠피와 그의 내연남 도미니크 드뤼오의 밑으로 들어가 겉으로는 평범한 향수제조업자로 위장하는 한편, 그의 밑에서 냉침법을 배우며 자신의 야망에 한발짝 더 다가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우연히 로르라는 여자아이에게서 과거에 죽인 여자의 향기와 비슷한 경이로운 향기를 느낀다. 다만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완성되지 않은 향이었기에 그녀가 다 자라서 완성되는 순간 반드시 그 향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혼자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자 가장 먼저 만든 건 앞서 만든 사람의 냄새였다. 다만 그건 급한대로 비슷하게 만들어낸, 평범한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자신의 기준에선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 향이었고 이제는 재료와 시간이 충분한만큼 더욱 더 정교하게 만들어냈다. 그것도 그냥 만드는 것도 아니고 목적에 따라 쓸 수 있게, 사람의 성격조차 묘사해내는 여러가지 향수를 만들어냈다. 거기에 사람이 있다는 것만 겨우 알릴 정도로 옅어서 사람들 사이에 아무렇지 않게 섞일 수 있는 겸손한 냄새, 약간 진한 땀냄새와 트뤼오의 정액 냄새를 흉내내어 그르누이가 거칠고 다급한 사람처럼 느껴지게 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냄새, 사람들(특히 여인들)의 동정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냄새, 고약한 악취같아서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그를 피하게 만드는 냄새[16] 등등을 만들어내, 옷을 갈아입듯 필요에 따라 바꿔쓴 것이었다. 이 냄새들로 거리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된 그르누이는 이제 냉침법으로 사물의 향기를 추출해내는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르누이는 금속같은 무생물의 냄새부터 시작해 생물의 냄새도 채취해내기 시작했고, 이 때 생물이 저항하는 것 때문에 별 수 없이 죽이고 나서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떠돌이 벙어리 여자에게 돈을 주고 여러 기름을 바른 천을 두르게 해서 어떤 조합의 기름이 사람의 체취를 가장 잘 추출해낼 수 있는지도 알아냈다. 그러던 중 그르누이는 로르의 향기를 다시 한 번 맡아보고 돌아와 그걸 떠올리다가, 문득 자신이 그 향기를 가져와 소유해도 오래가지 못하고 소멸해버리고 만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내 어차피 잃을 것이라면 한 번이라도 소유하고 잃는 것이 좋다는 것과, 그 향기를 그냥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향기들과 조합해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유지되도록 만들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보석을 원석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 세공하고 다른 보석과 조합하여 쓰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향기를 붙들어놓기 위해서는 꽃같은 것의 향기가 아닌 '''다른 재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후 그라스에서 연쇄살인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운 여성들이었다. 대체 누가 죽인건지 종잡을 수 없어 그라스는 공포에 빠지고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수상한 사람들을 무턱대고 의심하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머리카락이 전부 잘려나가고 옷이 사라져 있었는데, 이는 그르누이가 그 사람을 죽이고 몸에 기름바른 천을 발라 향을 추출해낸 다음 체취가 뭍어있는 머리카락과 옷으로 싸서 함께 가져간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살인은 뚝 중단되었고, 사람들은 점차 공포스러운 연쇄살인이 끝난 것으로 여겨 조금씩 안심하고 있었다.
한편 그라스의 집정관인 앙투안느 리쉬는 이 연쇄살인사건을 조사하던 중, 살인자가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미녀들을 살해하고 있는데 이는 마치 일종의 "아름다움을 수집"해서 소유하려는 것임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연쇄살인이 끝난 줄 알고 있는 동안 그 혼자만은 그 살인마의 최종목표가 그라스 최고의 미녀인 자신의 딸 로르일 것이라고 직감하게 되었다. 비록 그 아름다움이 '향기'라는 것만은 몰랐지만 그르누이의 행보를 가장 정확하게 알아맞춘 것이다.
앙투안느 리쉬는 딸을 지키기 위해 그녀와 함께, 최대한 은밀하게 다른 곳으로 떠났으나, 그르누이는 냄새로 이를 추적하였다. 그리고 결국 리쉬가 다 끝났다고 안심한 바로 그 날 로르를 살해하고 그 냄새를 추출해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만큼은 당국과 여러 공권력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특히 그르누이가 리쉬 일행이 떠난 날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한 경비대원에게 물어보면서 인상을 남긴 바람에 결국 덜미를 잡혔다. 처음엔 이를 믿기 힘들어하던 사람들도 그르누이의 오두막을 수색하면서 나온 살인 흉기와 죽은 사람들의 옷가지, 머리카락 등 결정적인 증거들이 드러나며 확신하게 되었다. 그르누이는 별다른 저항없이 자신이 살인자라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고, 결국 사형판결을 받게 된다.
그르누이는 쇠몽둥이로 근육과 관절이 끊어진 상태에서 죽을때까지 방치되는 끔찍한 형벌을 받게 되었으나, 사형을 당하기 직전, 자신이 살해한 처녀들과 로라의 몸에서 탈취한 향기를 조합해서 마침내 자신의 목표였던 '''궁극의 향수'''를 만들어낸다. 사형을 받기 위해 광장에서 사람들 앞으로 끌려간 그르누이가 그 향수를 자신의 몸에 뿌리자, 사람들은 그르누이에게 매혹되어 그를 마치 천사처럼 숭배하게 된다. 심지어 딸을 잃고 울분에 치를 떨던 앙투안느 리쉬마저도 그르누이를 자신의 양자로 삼겠다고 해버릴 정도였다. 그르누이의 향수 때문에 황홀경에 빠진 광장의 군중들(약 만 명!)은 그 자리에서 '''단체로 집단 난교를 펼치기 시작한다.''' 그 날 동안 그라스 전체는 광기어린 향락과 난교의 장으로 변해버린다. 이 광경을 바라보며 그르누이는 '''악마처럼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승리를 자축하지만 곧 밀려드는 허탈감을 견디지 못하고 그라스를 빠져나온다.

2.4. 4부


인간들로부터 극단적으로 피하는 은거 생활에서도, 궁극의 향수를 이용해 모두의 사랑을 받는 일에서도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한 그르누이는 파리로 돌아간다. 그가 도착한 곳은 페르 거리의 자신이 태어났던 그 자리. 밤이 되어 모여든 유랑 빈민들 앞에서 그르누이는 자신의 몸에 그 향수를 병째로 쏟아버린다. 그의 향기에 이끌린 빈민들은 처음에는 그라스의 시민들처럼 그를 천사처럼 떠받드는 듯 하다가 그의 냄새를 차지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그 자리에서 그르누이의 육신을 갈가리 찢어버린 후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뜯어먹어 버린다.''' 그르누이를 죽이고 그 시체를 모조리 파먹어 버린 후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에 놀라움을 느끼면서도 난생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3. 연보


  • 1738년
    • 7월 17일 : 그르누이는 프랑스 파리의 페르 거리에서 생선장수를 하던 여인의 아들로 태어난다. 태어난 직후 생선찌거기 속에 버려졌으나, 울음소리로 스스로의 위치를 알려 어머니를 사형대로 보내고 그 자신은 살아남는다. 이후 교회의 보호를 받게 되었으며, 경찰관 라 포스로부터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라는 세례명을 받게 된다.
아기 그르누이는 유모 잔느 비쉬와 테리에 신부를 거쳐서 샤론느 거리의 유모 가이아르에게 맡겨진다.
  • 1747년
    • 교회로부터의 양육지원비가 끊기자 가이아르는 그르누이를 모르텔르리의 무두장이인 그리말에게 팔아버린다. 그르누이는 이후 몇년 동안 그리말의 밑에서 노예 내지는 가축처럼 혹사당한다. 당시 8세.
  • 1751년
    • 시간이 흘러 무두장이 일에 능숙해진 그르누이는 그리말로부터 처음으로 자유시간을 부여받는다.
  • 1753년
    • 9월 1일 : 국왕 루이 15세의 즉위일을 기념하는 불꽃놀이가 펼쳐졌을 때, 그르누이는 외출을 했다가 난생 처음으로 매혹적인 향기를 맡게된다. 그것이 한 소녀의 체취였음을 알게 된 그르누이는 그 향기를 소유하겠다는 욕망 때문에 소녀를 교살함으로써 첫번째 살인을 저지른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르누이는 자신이 맡았던 환상적인 향기를 소유하고 말겠다는 야망을 품게 되었고, 그 일생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향수제조인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얼마 후에 그르누이는 심부름차 늙은 향수 제조인인 주세페 발디니를 찾아갔다가 그 앞에서 자신의 재능을 증명해 보이고 그의 도제가 된다. 그리말은 그 직후에 사고로 익사하게 된다. 당시 15세.
  • 그 해에 그르누이는 발디니의 사업을 도와 그를 부자로 만들어주었으나, 자신이 발디니로부터 배운 증기법으로는 살아있는 생물체로부터 냄새를 추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에 빠진 나머지 중병에 걸리게 된다. 병세는 날로 악화되어 그르누이는 발디니의 병수발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목전에 두게 된다. 그러나 자포자기한 발디니로부터 프랑스 남부에서 사용되는 냉침법이라면 그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듣자 기적처럼 회생한다. 이후 그르누이는 3년간 발디니를 위해 일하게 된다.
  • 1756년
    • 5월 : 발디니가 70세가 되던 해, 그르누이는 발디니를 위해 그동안 향수를 만들었던 사실을 발설하지 않을 것, 그리고 다시는 파리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조건 하에 도제자격증을 취득하고 프랑스 남부의 그라스로 떠난다. 이로써 그르누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파리를 떠나게 된다. 그 날 밤에 발디니는 사고로 집이 무너져 사망한다.
    • 8월, 그르누이는 그라스로 가던 중, 생전 처음 마셔보는 자연의 맑은 공기에 심취하여 플롱뒤의 캉탈산으로 들어가 그 곳의 동굴에 틀어박혀 7년 동안 은거하게 된다. 당시 18세.
  • 1764년
    • 2월 : 7년 동안의 은거 끝에 자신의 몸에 선천적으로 체취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에 빠진 그르누이는 캉탈산을 떠나 몽펠리에의 에스피나스 후작을 만나 그의 후원을 받게 된다.
    • 5월 : 그르누이는 인공적으로 자신의 체취를 만들어내는 실험을 마친 후, 에스피나스 후작를 버리고 그라스로 떠난다. 그로부터 얼마 후인 그해 여름, 에스피나스 후작은 자신의 "유동체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벌거벗고 높은 산 위로 올라갔다가 행방불명된다.
일주일 후, 그르누이는 프랑스 남부의 그라스에 도착해 장인의 미망인인 아르뉠피가 경영하는 향수제조업체에 들어가 일자리와 오두막을 얻게 되었으며, 그녀의 내연남인 도제 드뤼오로부터 침지법과 냉침법을 전수받게 된다.
또한 그르누이는 그라스에서 자신이 과거에 살해했던 소녀의 향기와 거의 똑같은 체취를 풍기는 로르 뤼시라는 소녀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 향기를 빼앗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그는 이후 2년 동안, 그녀가 성숙해져 본연의 향기를 낼 수 있을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 1765년
    • 아르뉠피와 드뤼오는 마침내 결혼하게 된다.
    • 5월 : 그르누이는 그라스에서 15세의 한 아름다운 처녀를 살해해 그 시신으로부터 향기를 탈취한다.
    • 8월~9월 : 그르누이는 살인행각을 반복한다. 그라스는 계속되는 연쇄살인으로 발칵 뒤집어진다.
  • 1766년
    • 3월 : 그르누이가 최종표적으로 삼은 소녀 로르 리쉬의 아버지인 집정관 앙투안느 리쉬는 살인사건을 추리하던 중, 연쇄살인마가 어떤 "아름다움"을 수집하고 있으며, 그 최종표적은 그라스 제일의 미녀인 자신의 딸이로르 리쉬가 될 것임을 간파한다. 그는 새벽에 몰래 자신의 딸과 함께 그라스를 떠나 부이용 남작에게로 대려가 그의 아들과 로르를 결혼시키고자 마음먹는다.
그르누이는 그날에 냄새를 통해 로르 리쉬가 그라스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후각을 이용해 로르 리쉬를 추격하게 되고, 결국 한밤중에 리쉬 부녀가 묵던 여관에 침투하여 로르 리쉬를 살해하고 그 시신으로부터 향기를 탈취한다.
그러나 그르누이가 리쉬 부녀를 추격하던 중 급한 마음에 경비병에게 길을 물었던 일이 화근이 되어 결국 꼬리가 밟혀 체포당한다. 그르누이는 도합 25명의 소녀들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다.
그르누이는 사형을 당하기 직전, 자신이 만든 비장의 향수로 사람들을 현혹시켜 그라스를 난교의 아수라장으로 만든 후 빠져 나온다. 삶의 목적을 성취한 후 허탈감에 빠진 그르누이는 고향인 파리로 가서 죽음을 맞기로 결심한다.
  • 1767년
    • 6월 25일 : 파리의 이노셍 묘지에 도착한 그르누이는 그날 자정, 부랑자들 앞에서 비장의 향수를 그 몸에 모두 뿌려버린다. 그 냄새에 현혹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그르누이의 육신을 해체해서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먹어 버린다. 그렇게 그르누이는 꿈을 이루고 고향인 파리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향년 28세.

4. 기타


그의 이름을 "그루누이"라고 표기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출간된 정식 번역본을 따르자면 "그르누이"가 맞다. 한국에서는 이 표기를 은근히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다.
[1] 사드 후작. 광기어린 사디즘과 성욕으로 점철된 문학작품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며 훗날 가학 성애를 뜻하는 사디즘의 어원이 되었다.[2] 생 쥐스트. 프랑스 혁명 당시에 "죽음의 천사"로 불린 과격 혁명파의 거물 중 하나였다.[3] 조제프 푸셰. 프랑스 혁명기 당시에 테미에도로의 반동을 주도한 혁명파이자 정치가였다.[4]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군인으로 시작해 프랑스 혁명기 막바지에 황제로 등극했다.[5] 작품에서 향기는 영혼이나 다름없다.[6] 다만 후작은 딱히 비참하다거나 운이 나쁘다거 할 죽음은 아니다. '치명적 유동체' 이론에 너무 심취되어 높은 산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눈보라 속으로 환희에 가득 차서 들어갔으니,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물론 목표는 '영원한 젊음'이지 '죽음'은 아니었고, 하필 산에 오르는 날 기후가 안 좋아 어느정도는 죽음의 법칙이 작용한듯하다. 그래도 자신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도전에서 환희에 차서 죽었으니..죽은 후에도 전설로 남았다고. 참고로 그 역시 그르누이를 이용해 성공하긴 했으나 작중 그나마 그르누이를 대접은 해줬다. 본인의 엉터리 이론에 근거해 스스로 선택했기에 그르누이 없이도 언젠가는 했을 법한 일이긴 하지만, 그르누이를 이용하여 이론이 성공하여 도취되어 한 모험이니 그르누이가 없었다면 역시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을 수도 있다.[7] 그의 능력을 두려워해 잔혹한 그리말에게 팔아넘긴 가이아르 부인은 반대로 '너무 오래 살아서' 비참해졌다. 다만 영화판에서는 그루누이를 팔아치우자마자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강도들한테 살해당했다. 그리고 발디니도 영화판에서는 그루누이랑 꽤나 친하게 지내는 것처럼 나오고 악행이라고 할만한 거라고는 그루누이가 떠날 때 수십 종류의 향수 레시피를 적어달라고 한 것 밖에 없는지라 선인처럼 보인다.[8] 이유는 불명이지만 양육비가 들어오지 않은것 때문에 그리말에게 팔려가게된다.[9] 다만 작중에서 그르누이가 거쳐간 사람이 죽어나가는 경위는 제법 상세히 묘사되는지라, 그 이후 정말 아무 근황도 언급되지 않는 이 신부는 신변에 문제가 생겨봤자 그냥 자연사일 가능성이 높다.[10] 하지만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아 그가 그런 후각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는 의견도 있다.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나지않아 냄새맡는 것에 집중하는게 가능해서 그런지도[11] 증기를 이용한 향수제조법은 꽃의 냄새 정도만을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12] 사실상 발디니 밑에서 일할 때의 일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것이다. 다만 그르누이 입장에선 별로 의미있는 제약도 아니었다. 첫번째 조건은 그르누이의 능력이라면 그보다 훌륭한 향수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두번째 조건은 파리의 모든 냄새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에 파리에 다시 올 이유가 딱히 없어서.[13] 작중에서 파리는 그야말로 온갖 냄새가 뒤섞인 악취의 구렁텅이로 묘사된다. 실제로 상하수도나 각종 청결용품이 개발되기 전, 많은 사람이 모여사는 대도시의 위생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14] '치명적 유동체' 이론이란, 땅에서 모든 생명을 고갈시키는 일종의 가스와 같은 물질이 생성되며, 이것 때문에 모든 생명체가 죽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땅에서 멀어질수록 수명이 연장되어 결국은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인데, 그르누이는 7년동안 동굴 속에 살면서 그 몰골이 끔찍할 정도로 흉악해졌기에 자신의 이론을 증명할 기회라 여겼던 것이다. 물론 누구나 알다시피 7년 동안 그르누이가 한 것처럼 제대로 식사 안 하고 안 씻고 이발이나 면도도 안 한다면, 동굴이 아니라 호화 주택에서 지내도 거지꼴이 될 것이다(...).[15] 작 중 묘사에 따르면 사람마다 체취는 제각각이지만 그 기본이라 할만한 특유의 냄새가 있다고 한다. 그르누이는 우선 고양이 똥에 상한 치즈, 생선 썩은 내 등을 조합해 사람의 냄새라기보다는 시체의 냄새같은 악취를 만들어냈고, 거기에 몇 가지 향기로운 재료들을 첨가했다. 그러자 마치 좋은 향수를 뿌린 사람의 체취같은 게 완성되었다. 그리고 추가로 이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향수를 만들어냈다. 이 향수를 일반인이 뿌리면 그 사람의 체취와 합쳐지며 마치 앞의 향수 같은 향이 완성된다. 체취가 있는 앞의 것을 그르누이 자신에게 뿌리면 뒤의 것과 유사해지는 것이다.[16] 둔감한 드뤼오도 이 냄새를 맡자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돌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