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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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
(Das Parfum)
저자
파트리크 쥐스킨트
ISBN
9788932909998
(8932909997)
쪽수
293쪽
옮긴이
강명순
출판사
열린책들
최초 발행
1985년 독일
장르
범죄.미스테리
시리즈
2006년 영화 "향수"
1. 개요
2. 줄거리
3. 등장인물
3.1. 주인공
3.2. 1부
3.3. 2부
3.4. 3부 & 4부
4. 영화화
5. 여담


1. 개요


18세기 프랑스에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이 시대에는 혐오스러운 천재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는 그중에서도 가장 천재적이면서도 혐오스러운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이 책은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드[1]

생 쥐스트[2], 푸셰[3]보나파르트[4] 등의 다른 기이한 천재들의 이름과는 달리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라는 그의 이름은 잊혀져 버렸다.

물론 그것은 오만, 인간에 대한 혐오, 비도덕성 등 한마디로 사악함의 정도에 있어 그르누이가 그 악명 높은 인물들에 뒤떨어지기 때문은 아니다. '''단지 그의 천재성과 명예욕이 발휘된 분야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냄새라는 덧없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 1부의 첫 문단 中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전세계적으로 2천만 권 이상, 48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20세기 들어 가장 많이 팔린 독일 소설 중의 하나이다. 클래시커 100개 소설 중 유일하게 현대 소설로 등재되었다. 소설의 엄청난 인기때문에 도리어 저평가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표면상으로는 향수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와 살인이야기가 나오는 낭만주의적 소설같지만, 실제 그 속은 모더니즘과 지나친 이성의 도구화를 비판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창하는 엄청나게 거시적인 의미를 내포한 소설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서 소설을 다시 읽으면 문장 하나하나가 새롭다. 움베르토 에코장미의 이름처럼, 알고보면 소설에 나오는 고전적인 문장 하나하나도 기존의 작가들에 대한 패러디이자 짜깁기이다.[5] 그래서 장미의 이름과 함께 가장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소설로 불리고 있다.

2. 줄거리


18세기의 프랑스, 천재적인 후각[6]을 타고난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태어나자마자 고아[7]가 된다. 후에 향수제조사 ‘주세페 발디니’의 후계자가 되어 파리를 열광시킬 향수를 만들지만, 마레 거리에서 만난 소녀의 향을 온전히 소유할 방법을 계속 찾던 그는 ‘향수의 낙원’, 그라스로 향한다. 그곳에서 모든 사람들을 매혹시킬 향수를 제조하게되고… 그 재료는 25명의 아름다운 여인들이었다.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와 관계한 자들은 너나할 거 없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8]. 그나마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그르누이를 처음 거두어주었던 테리에 신부와 맨 처음 유모였던 잔 뷔시가 예외긴 하지만, 이 둘은 완전 엑스트라로써, 후에는 언급되지도 않는다. 헌데 잘 보면 향 때문에 살해당한 소녀들 말고 그르누이와 관계됐다 비참해진 이들을 보면 그래도 싸다 싶은 면모들이 다들 있다. 테리에 신부와 잔은 이 점에서 예외로, 이 둘은 그르누이로부터 아무것도 착취하지 않으면서도 그르누이의 생존에 나름 도움된 사람들로 묘사를 보면 근본적으로 선하고 도덕적이며 인간에 대한 애정도 있는 사람들인 듯 하다. 어쩌면 그래서 별 일 없던 걸지도...
기본적으로 피카레스크 장르의 구성을 띄고 있으며, 그르누이 자체의 캐릭터가 독자들로 하여금 혐오감과 순수함, 열정, 동정심 등 온갖 상반된 감정들을 느끼게 한다. 또한 작중 인물들은 그르누이를 꺼려하거나 무서워하거나 무관심한데, 그 이유가 바로 냄새가 없기 때문이라는 설정. 실로 악마와 같은 인물로, 그런 그가 최후에 추구하고자 했던 향수는 결국 사랑이었다는게 아이러니.

3. 등장인물



3.1. 주인공


이 작품의 주인공. 1738년 7월 17일, 파리의 페르 거리에서 생선장수를 하던 여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인적인 후각을 타고난 인물로, 작중의 묘사에 따르면 혐오스러운 천재.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3.2. 1부


  • 그르누이의 어머니
주인공인 그르누이의 친모로, 본래 파리의 페르 거리에서 생선장수를 하고 있었다. 이름은 끝까지 언급되지 않는다. 나이는 20대 중반 정도이며 외모도 아름다운 편이다. 그러나 그 때문인지 결혼하지 않았음에도 수차례 임신을 하고는, 아이를 낳을 때마다 몰래 쓰레기더미에 방치해 죽여버렸다. 저녁때쯤이면 아기들은 이미 죽어서 다른 온갖 쓰레기들과 함께 쓸려나갔고, 그렇게 버린 사생아가 4명.(...) 삶의 목표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수공업자와 결혼하고 정식 부인이 되어 임신과 출산을 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인 1738년 7월 17일, 평소처럼 생선을 손질하던 중, 갑작스런 진통을 느끼면서 5번째 아이인 주인공 그르누이를 낳는다. 이전의 4명처럼[9] 아이를 낳은 직후에 식칼로 탯줄을 잘라내고는 그대로 생선 찌꺼기 더미에 묻어버렸으나, 그 자신도 통증으로 잠시 기절한다. 주위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괜찮다"면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다시 장사를 하려 했으나, 때마침 그르누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발각된다. 이후 그르누이는 사람들에게 구출되어 고아원에 보내졌고, 그르누이의 어머니는 그동안 수차례 자신의 아이를 살해했던 사실이 들통나는 바람에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참수형을 당한다.
  • 잔 뷔시(Jeanne Bussie)
생 드니 거리의 유모. 테리에 신부에게 고용되어 그르누이를 맡아 키우게 되었으나, 불과 몇 주 만에 도저히 그를 키울 수 없다며 돌려주러 왔다. 그 까닭은 그녀가 유모 일을 하면서 젖을 먹여준 아기들은 하나같이 좋은 체취를 가지고 있는데 그르누이만큼은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잔 뷔시는 그르누이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불길한 느낌을 받고는 두려움과 혐오감을 갖게 된다. 잔 뷔시는 테리에 신부 앞에서 그르누이에게 악마가 씌었다고 주장했고, 결국 아기를 수도원에 돌려주고 만다. 영화에서는 테리에 신부와 함께 잘렸다. 모성애적 체취를 가지고 있다 하며, 아이들을 사랑하며 애정으로 돌보는 듯하다.
  • 테리에 신부(Father Terrier)
고아가 된 그르누이의 양육을 담당하게 된 생 마리 수도원의 신부. 구호 기금으로 빈민들을 복지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귀찮은 일을 싫어하기는 하지만 다정다감하고 교양있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르누이의 회상으론 체취가 시큼했다고 한다.
그르누이를 유모인 잔 뷔시에게 맡겼으나, 잔 뷔시가 돌아와서 그르누이에게 악마가 씌었다고 주장하자 그 말을 우매한 아녀자가 떠드는 미신 정도로 일축하고는 해고해버린다. 이후 젖먹이 그르누이를 돌보며 자신이 신부가 되지 않았다면 수공업자가 되어 이런 아이를 낳고 살았을 것이라는 공상을 하던 중, 동물적인 후각과 냄새맡는 행위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이는 그르누이의 모습을 보고는 그가 평범한 아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겁을 먹고는 그르누이를 최대한 멀리 데려가 또다른 유모인 가야르 부인에게 맡긴다. 테리에 신부의 판단이 그르누이에게 해가 된 것이 아닌 게, 테리에 신부가 떠넘긴 가야르 밑이 아니었다면 그르누이는 살아남지 못했을 거라고 한다.
이후의 행적은 불명. 잔 뷔시와 함께 해를 입지 않은 운좋은 케이스로 여겨지지만, 꼬박꼬박 양육비를 보내오다가 그르누이가 7세가 될 무렵 별다른 통보 없이 갑자기 중지되었다는 구절이 나오는고, 이것이 신부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음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10]
영화에서는 잔 뷔시와 함께 잘렸다.
  • 가야르 부인(Madame Gaillard)
테리에 신부가 그르누이를 떠넘긴 유모로, 샤론느 거리에 살고 있는 20대의 젊은 과부이다. 이후 그르누이가 소년이 될 때까지 보살핀다. 어릴 적에 아버지가 휘두른 부지깽이에 이마를 잘못 맞는 바람에 후각을 상실했으며, 그로 인하여 감정 또한 잃었다. 그에 걸맞게 굉장히 냉철한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공정함을 유지하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다.
돈만 낸다면 나이와 출신을 가리지 않고 어떤 아이든지 맡아주며, 절대 편애하지도 학대하지도 않는다. 양육비의 절반은 자신이 갖고 절반으로 아이들을 기르는데, 경기가 좋아도 절대 그 이상의 몫을 가지지 않고 반면 아무리 아이들의 생명과 직결되어도 그 이상 써주지도 않는다. 결론적으로 덕분에 그녀가 맡은 아이들의 사망률은 그 일대에서 가장 낮았고[11], 후각이 마비되어 있어 그르누이의 이상함도 알지 못했다. 그르누이가 그녀에게 맡겨지지 않았으면 절대 살아남지 못했을 이유. 다만 점차 그르누이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알게 되었으며,[12] 잔 뷔시와 테리에 신부가 그랬던 것처럼 그르누이를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게 된다. 후각이 없기 때문에 그 이유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젖먹이였던 그르누이가 7세의 소년이 된지 얼마 후, 테리에 신부의 수도원에서 보내던 양육비가 별 통보도 없이 갑작스럽게 끊기자, 그녀는 늘 해왔던 대로 딱 1주일만 더 기다렸다. 그러고는 그르누이가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포악한 무두장이인 그리말에게 일꾼으로 팔아버린다.
과거에 남편이 공동병원에서 죽은 것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자신은 충분한 돈을 벌어서 집을 1채 구한 후 세를 받아먹으며 노후를 보내다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는 일 없이 조용히 임종을 맞이하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노파가 된 후에는 평생동안 악착같이 긁어 모은 재산으로 소원대로 건물주가 되어서 그럭저럭 모자람없는 노년을 보낸다. 그르누이가 죽은 뒤에도 한참을 더 살 정도로 매우 장수하였는데 그것이 되려 불행이 되었다.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게 되면서 닥쳐온 인플레이션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집과 재산을 모두 잃었고, 설상가상으로 노환에 시달려 공동 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결국 최후에는 남편이 죽은 바로 그 병원의 똑같은 방에서, 얼굴조차 모르는 수십 명의 병에 걸린 빈민들에 둘러싸인 채 누워있다가 종양이 목구멍까지 가득 퍼져 말 한 마디 못하는 상태로 지내다가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데,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죽어라 노력했던 그 꼴이 결국 되고 만 것이었다. 개인이 아무리 죽어라 노오력하며 조용히 살아도 사회 자체에 엄청난 일이 터지면 다 소용없다, 한 개인 따위는 거대한 사회의 흐름에 속절없이 휩쓸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인물. 향년 92세로, '좀 더 일찍 죽었다면 그 정도로 비참하게 끝나지는 않았을 거'라는 뉘앙스의 해설이 첨부된다. 그르누이와 엮이면 언젠가는 비참한 결말을 맞게된다는 법칙의 마지막 희생자. (죽은 순서 기준. 그르누이와 만난 순서로 따진다면 첫 번째.)
영화 속에서는 이런 가야르의 길고 장황한 최후를 묘사하기 어려웠기 때문인지 그대로 재현되지 못하고, 처음부터 노파로 나오며 그리말에게 그르누이를 팔아넘기고 귀가하던 중에 강도를 만나 허무하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각색되었다.[13] 심지어 목을 베이고도 한동안 살아서 쌕쌕거렸다(!).
  • 그리말(Grimal)
가야르 부인에 이어 그르누이를 맡게 된 모르텔르리의 무두장이.[14] 성격은 매우 거칠고 포악한 편이다. 무두질 공장의 매우 가혹하고 열악한 환경 때문에 평범한 인부들을 돈주고 고용하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으며, 때문에 언제 어떻게 죽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천애고아들을 인신매매로 사들여서 노예처럼 부려먹고 있다. 이런 환경에 노출된 아이들은 대부분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병에 걸려 죽어갔다.
그르누이는 첫 대면 때에 그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는 이 작자가 말 한 마디 어기는 순간 얼마든지 자신을 때려죽일 사람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후 그가 시키는 대로 가축처럼 열심히 일하게된다. 처음에는 그르누이 또한 다른 고아들과 마찬가지로 죽든 말든 상관없는 소모품으로 취급하였으나,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끈기있게 일을 잘 하는 데다가 무두장이들이 걸리는 병도 한번 쯤 앓고는 면역이 되어 걸리지 않게 되자 그를 매우 유용한 일꾼으로 여기고는 대우해주기 시작한다. 물론 기껏해야 푹 잘 수 있는 잠자리를 따로 마련해주거나 아주 약간의 쉬는 시간을 주는 등 '가축으로서' 더 오래 쓰일 수 있게 하는 정도지만 말이다.
다른 아이들은 픽픽 죽어나갔으므로 기술을 배울 정도로 오래 살아남지 못해, 사실상 유일한 도제가 된다.. 영화에서는 발디니를 만날 때까지 무려 5년이나 별 탈 없이 버텼다고 나온다.
이후 향수 제조인인 주세페 발디니가 그르누이의 재능을 알아보고는 제법 많은 돈을 주고 그를 데려가겠다고 제안하자 군말없이 승낙한다. 그리말 자신은 횡재했다고 생각하고는 주점에 들어가 그 돈으로 실컷 술을 퍼마셨으나, 만취한 상태로 귀가하던 중 다리 위에서 고꾸라져 그대로 익사하고 말았다. 영화판에서는 이를 두고 '돈 냄새만 맡아보고 저승길로' 갔다는, 호쾌한(?) 나레이션이 들어갔다.
  • 마레 거리의 소녀
이름 모를 소녀로, 그르누이가 죽인 최초의 사람. 당시 그르누이는 고작 15세였다. 불꽃놀이를 보러[15] 나왔다가 그녀의 체취를 감지한 그르누이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던 놀랍도록 아름다운 향기에 감탄했고, 필사적으로 향기의 근원인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는 자두 씨를 빼는 일을 하고 있다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뒤돌아봤다가 그르누이를 보는 순간 목을 졸려 죽어버렸다. 그르누이는 그녀의 시신에서 향기를 최대한 들이마신 뒤 도주한다. 그날 밤에 그르누이는 태어나서 최초로 행복이란 것을 느꼈고, 자신의 삶의 목적을 깨달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향수 제조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소설의 독특한 설정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저마다 향기를 지니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아름다운 외모로 칭송받는 사람은 실상은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향기가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즉 미인의 아름다움의 근원은 바로 향기였던 셈. 그르누이는 작중에서 이 비밀을 처음으로 알아낸 사람이었으나 이 때문에 냄새를 소유하겠다는 욕망을 지니게 되었으며 무자비한 연쇄살인마가 된다.
  • 주세페 발디니(Giuseppe Baldini)
파리의 늙은 향수 제조인. 성격은 상당히 보수적이고 완고한 편이다. 이탈리아 출신. 한때는 제법 유명한 장인이었으나,[16] 지금은 새롭게 떠오른 신예인 펠리시에에게 밀려 망해가는 퇴물에 불과하다. 때문에 작중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에도 펠리시에의 향수를 분석해서 베껴보려고 하다가 포기하고 좌절감에 빠져있었다. 이후에는 진지하게 은퇴를 하고는 가산을 모두 정리해서 아내와 함께 낙향할 마음을 품고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이대로 계획을 진행했으면 어쩌면 꽤 편안한 노후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연히 그리말에게 주문했던 가죽을 가지고 심부름을 온 그르누이와 만난 뒤, 그르누이가 자신을 향수제조인으로 만들어달라는 애원을 하게 되면서 인생이 바뀌게 된다. 처음에는 그르누이를 좀 모자란 애송이 정도로 여기고는 무시했으나 곧 그의 엄청난 재능을 알아보고는 그리말에게 돈을 주고 그를 사온다. 그리하여 그르누이는 발디니의 도제가 되어 그의 밑에서 증기법을 이용한 향수 제조법을 배우며 도제 과정을 밟게 된다.
이후 발디니는 그르누이의 뛰어난 재능을 이용하여 사람들이 흠뻑 빠질법한 뛰어난 향수를 수차례 만들어냈고,[17] 그로 인하여 늘그막에 엄청난 부와 명성을 거머쥐게 된다. 그 자신은 그르누이의 재능을 훔쳐서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품기도 하지만, 고뇌 끝에 결국 그 모든 것이 신이 자신에게 내려준 은총이라는 식으로 자기합리화를 한다.
이후 그르누이는 자신이 원하는 향수 제조법, 즉 증기법보다 한층 더 정교한 냉침법[18]을 배우기 위해서는 프랑스 남부의 도시인 그라스로 가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 도제 증명서를 받아들고 결국 그를 떠난다. 발디니 또한 그르누이의 비법을 훔쳐서 성공했다는 점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던 데다가, 이미 그르누이에게서 앞으로 몇대는 먹고 살 수 있을 만한 양의 향수 제조법을 빼냈기에[19] 흔쾌히 그를 보내준다. 그러나 그르누이가 떠난 그날 밤, 잠자던 중에 집이 갑작스레 다리와 함께 무너져버리는 바람에 허무하게 죽어버린다.[20]
작중에서도 특히 눈에 띌 정도로 입체적인 인물 중 하나. 사실상 그르누이를 제외하자면 이만큼 비중이 큰 인물도 없으며, 어찌보면 1부의 또다른 주인공이라 할 만한 인물이다. 특히 처음에 자신이 늙어서 더이상 향수 제조인 노릇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은 그 묘사가 절실하면서도 강렬하다. 나름 독실한 기독교도이자 양심 있는 장인이라는 완고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지만, 성공을 위해서라면 이를 철저하게 저버리고 또 그러고도 이를 신의 뜻이라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위선자로서의 면모도 있다. 그르누이에게는 증기를 이용해 향수를 제조하는 기술과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상식, 향수 제조인으로서의 기초적인 지식을 전수해준 스승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착취해서 막대한 돈을 챙긴 악덕 고용주이기도 하다.
  • 셰니에(Chénier)
발디니의 도제. 도제라고는 하지만 특별히 향수 제조를 돕는다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항상 가게 카운터를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발디니보다 약간 젊지만 그 역시 늙은이다. 첫 등장시에는 늙어서 퇴물이 된 발디니와 곧 망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향수가게를 마음 속으로 동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후에 발디니가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소년인 그르누이를 데려와 도제로 삼은 후 갑자기 엄청난 성공을 연이어 거두는 기적을 목격하게 되었지만, 그만큼 일감이 늘어나서 바빠졌기 때문에 그르누이가 그 성공의 배후에 있다는 점은 끝까지 알지 못한다. 이후 발디니 사후에 자신이 유산 상속인으로 지명되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지만, 그르누이가 떠난 직후에 다리 위의 집이 붕괴되는 바람에 발디니의 목숨은 물론 모든 재산과 향수 제조법, 유언장 등도 함께 강물 속으로 사라져버리며 모든 것을 잃자 허탈감을 견디지 못하고 신경 쇠약에 걸린다.
  • 앙투안 펠리시에(Antoine Pélissier)
그르누이로 인해 발디니가 대성공하기 이전에 파리에서 가장 유명했던 향수 제조인. 작중에서는 직접 등장하지 않고 발디니 등에 의해서만 간간히 언급된다.[21] 발디니의 언급에 따르면 본래 식료품업자였으며, 수공업자 조합에서 도제와 장인을 거쳐 승진하는 전통적인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특출난 후각만으로 성공한 사람인 듯 하다. 그래서 보수적인 성격의 발디니는 그를 몹시 미워하고 질투하고 있었다. 비록 초인적인 후각을 지닌 그르누이와 비교할 만한 수준은 아니겠지만, 향수 제조인으로서의 실력은 매우 뛰어난 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의 걸작인 "사랑과 영혼"이라는 향수는 그르누이가 처음 발디니를 찾아갔을 때만 하더라도 파리 시내에서 쓰지 않는 곳이 드물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다만 그르누이는 감귤향과 로즈마리는 너무 많고 장미유는 너무 적어서 좋은 향수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르누이가 후각만으로 이 향수를 복제해내고 같은 재료의 비율을 재조합해 더 좋은 향수를 만들어내자, 그전까지 그를 미친 놈 취급하던 발디니가 데꿀멍하는 파트의 묘사가 일품.
그르누이 덕에 발디니가 유명해진 이후엔 더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아마 그르누이가 있는 동안은 신세가 완전히 역전됐겠지만 그 직후 발디니가 죽었으니 미래는 밝을 듯.

3.3. 2부


  • 에스피나스 후작(Taillade-Espinasse)
라 타이아드 에스피나스 후작. 몽펠리에에 사는 과학자이긴 한데 식물 씨앗에 소의 정액을 뿌려 우유 꽃이라는 걸 만들려고 하는 등 약간 사이비스럽다. 그 당시 그가 가장 열성을 올리던 건 소위 '치명적 유동체' 이론으로, 땅에서는 생명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마비, 소멸시키는 독가스가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에 모든 생물들은 땅에서 최대한 멀어지려고 한다는 이론이다. 곡식의 이삭이나 꽃봉오리, 사람의 머리가 최대한 땅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그 증거라나...[22] 아무튼 이 때문에 '산적 때문에 7여년간 땅 속 동굴에 갇혀있었다'고 주장한 그르누이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23] 그리고 그를 자신이 개발한 환기 장치 속에서 신선한 '높은 곳의' 공기만 마시게 하면서 깨끗이 씻기고 좋은 음식을 먹이고 말끔한 옷을 입혀 얼마 뒤 강연에 선보이며 그의 치명적 유동체 이론을 입증시킨다. 그르누이가 떠난 이후 자신의 이 '생명의 유동체'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카니구 산에 올랐고, 옷을 다 벗어던지고 노래를 부르며 눈보라 속으로 사라지는데, 당연하지만 그것이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였던 마지막 모습이 되었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시체조차 발견되지 않았는데, 오히려 추종자들은 그가 생명의 유동체를 받아들이면서 몸이 가벼워져 영원한 젊음을 얻은 채 산 속을 떠돌아다니고 있다고 믿으며 그를 숭배(?)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각색을 위하여 에스피나스 후작이 등장하는 2부의 내용이 송두리째 잘려버렸고, 때문에 산속의 동굴에서 은둔하던 그르누이가 후작을 만나지 않고 곧바로 그라스로 들어가게 된다.

3.4. 3부 & 4부


  • 앙투안 리시(Antoine Richis)
그라스의 부집정관. 총명하며 이성적인 두뇌의 소유자이며 성격은 매우 냉철한 편으로, 비교적 낮은 계급에서 자수성가하여 출세한 사람이다. 유일한 가족은 딸인 로르 리시 뿐인데, 비록 딸을 몹시 사랑하기는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 대한 욕망을 품고 있어서 괴로워한다. 그녀가 어릴 때는 전혀 그러지 않았는데 자라면서 점점 참기 힘들어진 것으로, 아마도 향기 때문인 듯 하다. 하지만 본능적인 욕망에 저항하며 딸에게는 손을 대지 않고 애지중지하며 키운다.
이후 그라스에서 도무지 범인을 알 수 없는 기이한 연속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는 그르누이가 훌륭한 향기를 지닌 여자를 찾아내 죽이고 그 향기를 탈취하기 위해 벌인 것이었다. 그라스 사람들은 그르누이의 이러한 의도를 알지 못했으나, 앙투안은 연쇄살인마가 어떤 "아름다움"을 사냥하고 다닌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챘고, 살인마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아름다움의 요소를 수집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24] 갑자기 살인행각이 끊기자 끝난 줄 알고 다행이라 여기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범인이 마지막으로 노리는 살인 목표를 로르라고 추측했고 사실이었다.
살인마가 처녀만 노린다는 걸 이용하기로 한 앙투안은 맞선 이야기가 오가던 귀족 아들에게 로르를 시집보낼 계획을 세우고. 그라스 근처의 어느 섬 수도원에 로르를 맡긴 뒤 약혼한 남성을 데려와 식을 치를 생각이었지만 냄새를 맡고 따라온 그르누이는 리시 부녀가 묵은 여관에서 로르를 죽이고 향기를 채취해 달아났다.
이후 그르누이가 체포되자 그는 굳이 감옥에 찾아가보지 않고, 그저 그가 처형당하는 날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를 보리라고만 생각한다. 딸을 잃은 충격이 어마어마한 듯. 하지만 막상 처형하는 당일, 그르누이가 뿌린 향수에 홀려 그를 아들이라고 부르며 껴안는다.[25] 그리고 기절한 그르누이를 데려와 딸이 자던 침대에 눕혀놓고 자기 아들이 되어달라 한 뒤 마저 자라고 하고 방 밖으로 나가고, 그 사이 그르누이가 탈출한 뒤로 등장하진 않는다.
  • 로르 리시(Laure Richis)
그르누이가 다시 한번 만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향기를 지닌 여성. 다만 처음 만났을 때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어린 소녀였기 때문에 향기가 완전히 성숙하지 않아, 그녀가 자랄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는다. 그르누이의 예상대로 그녀가 성숙하자 곧 그라스에서 제일 유명한 절세미인이 되었으나, 그르누이를 제외하면 그것이 그녀의 향기 때문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미모도 좋은 걸로 추정되는데 그르누이가 냄새만으로 매혹적이고 독특한 미모를 지닌 소녀들을 찾아내고 머리 색깔도 알아맞히고 하는 것을 보면 향기가 미모를 반영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제일 좋은 향기를 지닌 로르는 미모 역시 세기의 미모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나중에 그르누이에게 살해당했을 때 그라스 사람들이 충격받은 부분의 묘사를 보면 거의 성스럽다고 생각할 정도의 아름다움이었다.
  • 아르뉠피(Arnulfi)
그라스의 향수 및 장갑 제조업 장인의 아내였던 과부. 작중 내 서술로는 장사에 꽤 일가견이 있으며 금전감각도 철저한 듯하다. 그르누이가 일자리를 구하던 시점부터 이미 드뤼오와 내연 관계였고 이후 재혼한다. 그르누이를 고용하면서 오두막을 제공할 때 이후로는 가끔 언급만 될 뿐 등장은 없다. 아르뉠피가 그르누이를 고용하면서 내준 오두막은 이후 그가 살해한 여인들로부터 탈취한 체취를 가공하는 실험실이 되어 버린다.
  • 도미니크 드뤼오(Dominique Druot)
그라스의 향수 및 장갑 제조업의 도제. 큰 키의 당당한 체격에 정액 냄새를 물씬 풍기는 오만한 성격의 사내이다. 다만 원래 장인이 사망한 이후 실질적으로 장인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르누이가 도제로 들어오자 그나마 처음에는 힘 안 드는 일이라도 같이 하거나 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을 죄다 그르누이에게 떠넘기고 자기는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거나 아르뉠피와 자거나 하는 일밖에 안한다. 중간에 아르뉠피와 결혼해서 정식 장인으로 승격했다. 그르누이가 사형장에서 향수를 이용해 빠져나간 후, 그르누이가 머물던 오두막이 원래 드뤼오의 것이었단 이유로 체포당한다. 당연히 드뤼오는 무죄를 주장했지만 14시간 동안 고문받은 후에는 자기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하며 다음날의 사형을 지금으로 당겨달라고 애원까지 하게 된다... 결국 그대로 구경하는 사람도 없이 졸속으로 사형당하고 그대로 매장된다. 그르누이 때 그 차마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기도 힘든 사건이 있었던 만큼 그의 사형은 최대한 간단하고 빠르게 집행했으며, 영화판에서는 이를 반영하여 교수형에 처했다.

4. 영화화


한국에는 2007년에 개봉했다. 소설과 영화는 그 주제가 조금 다른데, 둘을 비교해보면 더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소설과 영화 둘 다 마지막에 허탈감을 느끼며 사람들이 향수라는 가면을 벗은 온전한 자기 자신을 봐 주길 바라는 것은 같다. 차이점이라면 소설에서는 '증오'를 받기를 바란 반면, 영화는 '사랑'을 받길 바란다. 자세한 내용은 향수(영화) 문서 참조.

5. 여담


그르누이가 사람의 향기를 뽑아내는 과정은 향수 제조법 문단 3번의 추출법이긴 하지만 용매에 담그진 않고 용매에 담갔던 린넨 천 등을 죽은 사람의 몸에 감았다가 회수해서 린넨 천으로부터 향을 추출하는, 상당히 소름끼치는 방식. 영화에선 용매가 담긴 유리통에 시체를 넣기도 했다.[26] 소설과 영화 모두에서 여자들 머리카락을 다 밀어버리는 묘사가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머리카락을 용매와 함께 뭉쳐놓았다가 짜내는 장면이 나온다.
너바나In Utero 앨범의 노래 Scentless Apprentice은 이 소설의 주인공 그루누이를 바탕으로 했다. 데레마스의 냄새패치 아이돌 이치노세 시키의 싱글곡인 비밀의 투왈렛이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넉살이 가사를 쓴 코드쿤스트의 곡 향수도 이 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1] 광기어린 가학적 성욕으로 점철된 문학 작품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아예 그의 이름을 따 사디즘이라는 말이 만들어질 정도.[2] 프랑스 혁명 당시에 "죽음의 천사"로 불린 과격 혁명파의 거물 중 하나였다.[3] 프랑스 혁명기 당시에 테르미도르 반동을 주도한 혁명파이자 정치가였다.[4] 군인으로 시작해 프랑스 혁명기 막바지에 황제로 등극했다.[5] 물론 의도적으로 이러한 구성을 넣은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다.[6] 냄새로 사물의 위치를 분간할 정도다.[7] 시장에서 생선 장사하는 엄마가 일하다가 산통을 느끼고 그냥 거기서 아이를 출산한다. 영화로 보면 비주얼과 브금이 아주 충격적이다. 참고로 모친은 미혼이며 그르누이 이전에도 아이를 몇 명 낳았지만 모두 생선 찌꺼기 더미에 파묻어 그냥 죽게 내버려두었고, 그르누이 또한 그렇게 했다. 하지만 그르누이는 울음을 터뜨려 사람들에게 발견되었고 덕분에 모친은 이전에 행했던 영아 유기까지 합친 죄로 참수당한다. 영화판에선 교수형.[8] 영화에서는 적절한 편집과 함께 관계자들의 사망과정이 더 신명나게 표현되었다.[9] 즉 이전에 영아 살해만 4번. 아이를 낳을 때도 능숙하게 탯줄을 잘라버린다.[10] 다만 작중에서 그르누이를 제가 이득 보려고 이용하는 사람들은 전부 비참하게 죽어나가는 모습이 제법 자세하게 나오는데, 테리에 신부는 그 이후 근황이 전혀 나오지 않는지라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고 해도 그저 조용히 자연사한 것 이상은 아닐 가능성도 있다.[11] 물론 조금만 더 돈을 쓰면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상황에도 한푼도 안 쓰는 냉혹한 성격이니 절대 선인은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아이들의 몫을 엄격히 구분하여 그들을 위해 쓰기는 하는 셈이다.[12] 예를 들어 상한 음식을 정확하게 골라내고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어두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밤에도 물건을 척척 잘 찾아오며, 결정적으로 자신이 지나치게 잘 숨겨두어서 찾지 못하던 돈을 그르누이가 순식간에 찾아준 일도 있었다.[13] 영화에서는 그르누이가 넘겨지고 다시 가야르 쪽으로 장면이 넘어가며 강도를 당하는 장면이 나오고, '그리고... 7프랑에 애를 넘긴 여자는 이렇게 될 줄 알았을까?' 라는 인생무상스러운 나레이션이 나온다.[14] 짐승의 날가죽에서 털과 기름을 뽑아 가죽을 부드럽게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15] 사실 정확히는 '뭔가 특별한 냄새가 있나 싶어서' 나온 것 뿐이었다. 그르누이에게 시각적 아름다움은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불꽃놀이 자체는 고개 한 번 들어 쳐다보지도 않았고, 그저 냄새가 화약 냄새 뿐인 걸로 실망만 했다.[16] 그렇다곤 해도 사실 그가 만들어낸 향수 중에 크게 히트친 것들도 그가 실상은 자신이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서 전수받았거나 비법을 비밀리에 사들인 것 뿐이었다.[17] 물론 실제로는 전부 그르누이가 만든 것이며, 발디니는 그 곁에서 향수를 제조하는 공식을 기록하거나, 그에게 향수 제조인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지식과 기술을 전수해주었을 뿐이다.[18] 그르누이는 단순히 꽃에서 추출한 항료나 에센스뿐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이 지닌 냄새를 훔쳐오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19] 떠나보내면서 조건을 달았다. 첫째로 발디니의 집에서 머무는 동안 만든 향수는 이후에 다시 만들지 말고, 둘째로 발디니 생전에 파리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말고 셋째론 앞의 조건들을 모두 비밀로 하라는 것. 다만 그르누이 입장에서는 이미 냄새로 속속들이 다 아는 파리에 다시 올 생각도 전혀 없고 그에게 만들어준 향수들도 얼마든지 더 좋은 걸 만들 수 있는 하찮은 것들이어서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20] 작중에서 발디니가 사는 집은 향수 가게를 겸하고 있는 큰 저택으로서 다리 위에 지은 것으로 묘사된다. (실제로 당시 프랑스에서는 이런 식으로 다리 위에 지은 건물이 많았는데, 건물의 무게가 다리를 더 튼튼하게 해줄 거라고 믿어서였다고.) 그런데 다리가 낡은 탓에 온갖 향수 재료로 들어찬 무거운 집의 무게를 더 버티지 못하고 폭싹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이 다리가 붕괴될 당시에는 셰니에와 직원들이 모두 자리를 비운 상태였기 때문에 이 사고로 죽은 사람은 발디니와 그 아내 뿐이었다. 영화에서는 집이 불안정하단 걸 강조하기 위해선지 그르누이가 들어온 첫날부터 집이 흔들리는 장면을 복선으로 넣어줬다. 하지만 발디니는 자주 있는 일이라며 별로 신경을 안 쓴다.[21] 영화판에서는 가죽을 배달하러 가던 그르누이가 한 향수 가게를 스쳐 지나가는데, 신제품 샘플을 시향시켜 주는 주인에게 손님이 "펠리시에 씨, 정말 대단하네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짧게 지나간다.[22] 사실 곡식의 이삭, 꽃봉오리가 높은 곳에 매달린 이유는 각각 지상에 있는 포식자에게서 낱알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리고 냄새를 바람에 실어서 멀리 보낸 후 벌이나 나비가 꽃가루를 옮기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사람의 머리는 말할 것도 없이 더 먼 곳을 보며 위협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이고. 그렇기에 누가 들어도 헛소리를 하고 있는건데...[23] 사실은 플롱 뒤 캉탈이라는 곳에서 그 어떤 사람의 냄새도 나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어 쭉 지내왔던 것이다.[24] 살인마는 젊은 여성들만을 노렸는데, 강간 흔적이 전혀 없었다. 거기다 그도 고위 공직자인 만큼 그르누이에 의해 살해당한 여인의 시체를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그 아름다움 때문에 깜짝 놀랐었다.[25] 원작에서는 향수에 홀린 사람들 한가운데 선 그르누이에게 달려와 그를 껴안으며 "아들아, 날 용서해 다오!"라며 흐느낀다. 한편 영화에서는 처음에는 향수에 약간이라도 저항한 듯 칼을 들고 와 겨누며 "네가 나까지 속일 수는 없다!"라고 외치지만, 향수의 허망함을 느낀 그르누이가 죽여달라는 태도로 팔을 벌리자 결국 칼을 떨어뜨리곤 "용서해 다오... 아들아!"라며 그르누이를 포옹한다. 원작에서 리시가 향수에 속지 않고 그르누이 자신을 죽이려 달려오는 거라 생각했던 것을 어느 정도 반영한 연출이다.[26] 그러나 이 방법은 들킬 위험성이 높아(몇몇 사람이 통을 가린 천을 들춰보려고 했다) 결국 원작의 방식대로 한다. '꽃향기를 추출할 때 햇빛을 가리면 더 잘 될지 실험해보는 중이다'라고 그르누이가 둘러대자 (평범한 후각을 가진)드뤼오가 멋대로 용매 몇 방울의 냄새를 맡아보고는 "향기가 하나도 안 나잖아?"라며 시비를 걸고 그르누이가 "아, 실패했나 보네요"라고 말하며 위기를 넘긴다. "실패했다"는 말은 드뤼오에게 둘러대는 말이기도 하지만 시청자에게 이 방법은 실패했음을 알리는 중의적인 말이기도 하다.